한국사에서 주요 쟁점이 되고 있는 사항들에 대해 쉽게 풀어 쓴 책으로,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책이다.
- 환국과 환단고기 문제에서부터,
- 백제의 요서지방 경략설,
- 영산강 유역의 일본식 무덤의 주인 문제,
- 양반의 권한에 대한 오해,
- 간도 회복설의 문제,
- 민족대표 33인의 변절설,
- 진짜 일제의 식민사학 등
식민지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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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을 내놓는 변명을 겸해 • 5
01 환국은 없다 • 10
02 『천부경』의 비밀 • 24
03 신채호와 『천부경』 • 38
04 단군 기념주화의 비밀 • 52
05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어디인가? • 60
06 중국에 흑치국이 있었을까? • 68
07 백제는 요서 지방을 점령했을까? • 74
08 임나일본부가 정말 있었을까? • 84
09 우리나라에 있는 일본 무덤의 비밀 • 102
10 에밀레종의 비밀을 찾아서 • 110
11 그림자가 없는 무영탑 • 116
12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죽었을까? • 122
13 탐관오리 황희, 청렴한 황희 • 132
14 임금님 목숨을 구한 죄로 죽었다는 김덕생의 진실 • 142
15 신숙주의 아내는 자살했을까? • 148
16 퇴계 이황과 기생 두향 이야기의 진실은? • 158
17 벌레가 만든 글자 - 기묘사화의 진실을 찾아서 • 164
18 송강 정철과 기생 자미 • 174
19 이순신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 • 180
20 청 황실의 성이 신라를 생각해서 만들어졌을까? • 206
21 사도세자는 왜 죽었을까? • 212
22 양반은 사람을 막 죽여도 괜찮았을까? • 220
23 정조는 독살당했을까? • 226
24 고산자 김정호는 옥에서 죽었을까? • 234
25 간도는 우리 땅일까? • 240
26 조선은 전쟁 없이 스스로 망했나? • 254
27 민족대표가 한용운 이외에는 모두 변절했다고? • 268
28 안창호의 약속 • 280
29 사라지지 않는 쇠말뚝 괴담 • 286
30 한국인은 그리스에서 왔다? • 302
31 식민사관이란 무엇인가? • 308
32 역사학과 유사역사학 • 326
참고문헌 • 341
찾아보기 • 344
책속에서
[책을 내놓는 변명을 겸해]
2018년 12월 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통일문화연합’이라는 단체의 창립식이 열렸습니다. 창립식 후에 세미나가 개최되었는데 여기서 ‘차세대 역사 7적 후보’라고 하여 제 이름이 올라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역사 7적(처음엔 5적), 선대역사 7적과 후보 3적, 준역사 7적과 후보 4적을 거론하고 그 다음에 차세대 역사 7적을 선정했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역사학자를 “일제식민사학자들이 철저히 왜곡하며 우리 역사를 폄하하고 축소한 이론을 검증 없이 무조건 추종하였다”라는 이유로 매도한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이 책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잘못 알고 있는 여러 역사 사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과연 제가 유사역사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아무 검증도 없이 무조건 추종하고 있는 사람인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에 그간 신문, 잡지, 블로그, 페이스북 등에 쓴 글을 한데 모았습니다. 한 권의 체제에 맞추기 위해 많이 손을 봤음에도 어떤 글은 청소년이 대상이고 어떤 글은 성인이 대상이어서 문장 사이에 다소 편차가 있습니다. 이 점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그렇더라도 앞서 펴낸 『유사역사학 비판』이나 『하룻밤에 읽는 조선시대사』 등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을 쓰고자 했고, 이전 책에서 분량을 고려해 간략하게 언급할 수밖에 없던 부분을 자세히 논증하고자 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각 편이 독립적이어서 관심이 가는 부분부터 읽어도 괜찮습니다만, 유사역사학 관련은 아직도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이 있어서, 이 부분의 개념을 알고자 한다면 맨 마지막 편을 먼저 읽는 것도 괜찮습니다. 저는 유사역사학을 붙여서 사용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단어로 ‘유사한 역사학’이 아니라 그냥 ‘유사역사학’입니다.
다른 저자의 글에 ‘유사역사학’이 등장하는 경우 ‘유사 역사학’이라고 띄어서 쓰곤 하는데,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편집자들은 사전에 등재된 단어가 아니면 명사와 명사의 결합은 띄어 쓰는 습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사역사학’은 영어 pseudohistory를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하나의 명사로 취급해야 합니다. 이를 ‘사이비역사학’으로 옮길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문제는 아니겠지만, 영어 단어 역시 하나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유사’와 ‘역사학’을 떼어놓으면 ‘역사학’의 한 종류처럼 여겨지는 착각이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유사역사학은 역사학이 아니기 때문에 별도의 단어로 구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이 책에는 유사역사학을 비판하는 글이 포함되어 있지만 온전히 유사역사학 비판을 위해 쓴 글들은 아닙니다. 일반인이 잘못 알고 있는 역사 상식을 바로 잡고 싶은 생각으로 쓴 글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은 『고교 독서평설』에 연재한 글이며 책의 제목 역시 그 연재 제목에서 따왔습니다. 잡지 연재는 분량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축약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는데, 그렇게 생략한 부분을 가능한 한 되살렸습니다. 또 연재 글에 있던 사소한 오류도 모두 바로 잡고자 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런 책이 어떤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족주의에 경도되거나 유사역사학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불쏘시개일 수 있습니다. 동심으로 역사를 보는 사람들에게는 동심 파괴 수준의 책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상식이 보강되기를 바라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자기 의견과 정면충돌하는 이야기를 보면 그다지 환영하지 않곤 합니다. 필자를 향한 믿음이 큰 경우라면 오히려 저자 의견에 경도되는 쏠림 현상을 보일 수도 있지만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역사작가인 제 경우에는 반감만 사고 마는 것이 아닐까 우려스럽기도 합니다.
다만 누군가는 광야에서라도 진실을 외쳐야 하기 때문에, 평생 해온 대로 다시 한 번 우리나라 역사학이 개척한 영역을 소개하고 다 같이 역사 이해의 지평을 넓히길 희망하며 이 책을 내놓습니다.
여기에 실린 견해는 대부분 역사학자의 연구에 의거한 것입니다. 참고도서와 참고논문을 통해 참조한 자료를 밝혔습니다. 때로는 본문에 명기하기도 하였습니다. 누락된 자료가 있어도 너그러이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그럼에도 이 글에 어떤 잘못이 있다면 제 책임이라는 점을 밝혀둡니다.
접기
『환단고기桓檀古記』라는 희대의 위서가 판을 치게 된 근원을 알게 되면 매우 허탈해진다. 그것은 단지 글자 하나를 잘못 읽어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우리나라 최초로 ‘단군檀君’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책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왕검王儉’은 등장하는데 단군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삼국유사』에는 단군의 계보도 같이 나온다. 이 계보가 문제가 되었다.
1904년 동경제국대학에서 『삼국유사』를 활자본으로 만들었는데 이때 “昔有桓國(謂帝釋也)”이라고 나왔다. 그런데 1921년 교토대에서 발간한 『삼국유사』 영인본을 보면 환인의 囯자 위에 덧칠을 해서 因으로 보이게 만들어놓았다. 이로부터 일제 식민사학자가 환국을 환인으로 고쳤다는 주장이 퍼져 나가게 되었다. 이 책의 소유주가 일제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今西龍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조선 후기에 『삼국유사』를 오독해서 ‘환국’ 이 등장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因의 이체자 문제를 넘어서서 당대의 많은 사료가 ‘환인桓因’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유학자의 오독 때문에 ‘환국’이 등장하고 민족 자존감을 앙양시켜야 했던 역사가들이 ‘환국’을 주창하면서 잘못 읽은 단어가 널리 퍼지고 말았다. 그리고 해방 후 이 과정이 바로잡혀가던 중에 유사역사가들이 ‘위대한 환국’을 창조해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이야기는 『조선상고사』 연재가 신채호의 뜻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앞서 문장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문장이 좋지 않은 것은 『조선상고사』 원고 자체의 문제였다. 이 원고는 신채호가 직접 『동아일보』에 연재한 것이 아니었다. 아직 미완성된 원고였고 누군가 가필했을 가능성도 있다.
흑치상지의 성은 ‘흑치黑齒’, 즉 ‘검은 이’다. 흑치상지의 조상은 원래 왕족인 부여 씨였는데 나중에 흑치 지역을 받아서 성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 흑치라는 지방이 어디인가에 대해서는 몇 가지 논의가 있다.
이 문제에 앞서 ‘담로檐魯’를 알아야 한다. 중국 사서 『양서梁書』 ‘백제전’에 보면 백제는 전국에 22담로를 설치하고 왕의 자제와 종족을 보내 다스리게 했다고 나온다. 담로는 일반적으로 ‘성城’을 뜻하는 백제어 ‘다라’나 ‘드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담로는 성을 중심으로 다스리는 백제의 지방행정구역을 의미한다.
임나일본부에서 ‘부府’는 실제 관청이나 지배 기관, 말하자면 조선총독부 같은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일본서기』에서는 ‘부’를 ‘재宰’로 읽으라고 말한다. ‘재’는 사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임나일본부’는 ‘임나에 있는 일본 사신’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때 일본은 ‘왜’를 가리키는 것이고. 이 점은 스에마츠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스에마츠는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부 지방을 다스렸다고 주장하니 앞뒤가 하나도 안 맞는 셈이다.
숙주나물의 이름은 조선 초 대신이던 신숙주申叔舟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숙주나물은 금방 못 먹게 쉬어버리는 특성이 있는데, 신숙주의 변절을 민간에서 비난해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신숙주의 후손인 고령 신 씨 집안에서는 숙주나물을 녹두나물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조상을 욕되게 하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숙주나물은 녹두에서 자라나는 싹이라서 녹두나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콩에서 자라면 콩나물, 녹두에서 자라면 녹두나물이다.
사람들은 흔히 반대로 생각하면 이순신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에는 그닥 변호하는 기색이 없으면서 왜 원균은 비호했을까 싶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순신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는 원균 정도는 아니었다. 또한 이순신을 비호하는 ‘정상적인’ 신하도 많았던 것 같다. 선조는 위 반간계에 걸려든 이후에 이렇게 말한다.
“이번에 비변사가 ‘제장과 수령들이 호령을 듣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라 비변사가 그들을 옹호해주기 때문이다.”
선조는 신하들이 이순신을 옹호할수록 화가 났다.
“이순신은 용서할 수가 없다. 무장으로서 어찌 조정을 경멸하는 마음을 갖는가. 우상右相이 내려갈 때 말하기를 ‘평일에는 원균을 장수로 삼아서는 안 되고 전시에는 써야 한다’라고 하였다.”
정조 때 채제공을 필두로 한 남인이 상당히 중용되었는데, 정조의 죽음으로 남인이 몰락하자 남인들 사이에서 정조가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그러나 정조가 죽었을 때 남인들은 조정에 있지 못했으므로 이것은 근거 없는 낭설에 불과했다. 이런 낭설을 베스트셀러 소설이 부활시킨 것이다. 동시에 정조는 개혁을 위해 스러져간 비운의 군주라는 이미지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정조의 이미지와 역사적 실체는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저자 소개
- 지은이: 이문영
- 최근작 :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하룻밤에 읽는 한국 전근대사 세트 - 전3권>,<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세트 - 전5권> … 총 65종 (모두보기)
-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초록불의 잡학다식’ 블로그를 통해 다양한 역사 콘텐츠를 써왔다. 매일경제신문에 「물밑 한국사」, 고교 독서평설에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 등을 연재했으며 유사역사학 비판서 『유사역사학 비판』과 『만들어진 한국사』, 역사학을 가르치는 『중학생을 위한 역사학 수업』, 역사 추리소설 『신라 탐정 용담』 등 다채로운 역사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임나일본부가 정말 있었을까?
청 황실의 성이 신라를 생각해서 만들어졌을까?
사도세자는 왜 죽었을까?
역사학과 유사역사학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우리나라 역사 가운데 잘못 알려진 사실이 무척 많습니다. ‘어차피 오래 전 일인데, 이렇게 알아도 그만이고 저렇게 알아도 그만 아닐까’라는 안일한 생각은 우리 역사를 스스로 폄훼하는 것입니다. 역사를 배우고 공부하는 이들이 역사적 사실, 사료를 다룸에 있어 균형 잡히고 올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될 것입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고대에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은 하늘 위로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우주선을 날려서 지구를 직접 관찰할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 주장을 입증해준다고 생각하는 증거만 수집한 후 ‘자, 증거가 이렇게나 많다’라고 말한다. 그들이 내미는 ‘증거’만 보면 정말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역사학에서는 그렇게 편향된 증거를 수집하는 것을 경계한다. 자기 주장과 맞지 않는 증거 역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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