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Bong-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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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대만 근현대사 수업을 듣던 중 양국 역사에서 사용되는 여러가지 개념에 적지 않은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구한말 시기를 상정하는 "근대近代", "근대화近代化"는 대만사에서 "현대現代"와 "현대화現代化"로 인식된다거나, Identity를 우리는 정체성正體性을 해석하는 것에 반해 대만에서는 認同으로 표현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단어는 Identity로 해석되기는 하지만 recognition과 acknowledge의 의미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즉 한국에서 사용하는 정체성은 본질적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를 기반하는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대만의 認同은 기억 활동의 한 형태로 개인 및 집단의 경험을 기억해내는 인지認知의 활동으로 설명될 수 있으며, 이는 본질의 고유성보다는 상호 인식과 활동에 좀 더 초점을 맞춘 해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 민족 혹은 민족에 대한 형용사로 사용되는 ethnic은 대만에서 족군族群을 표현할 때 사용되고 있다. 물론 민족이라는 단어가 전혀 사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특수한 경우에 한정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강한데 예를 들어 근래 대만사의 선사 시대 및 고대사 연구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는 원주민족原住民族의 경우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동일한 한자를 사용하고 있지만 개념의 상세한 해석에 있어서는 그것을 쓰는 국가와 그 사회마다 다른 점이 적지 않다. 하물며 우리에게 있어서 근대라는 이미지는 구한말, 대한제국으로 연상되지만,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전후로한 시기의 이미지가 있고 중국의 경우에는 아편전쟁 이후의 시기가 연상되는 것에서도 동일한 단어에 대한 인식의 층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제가 이 분야에 대해 잘아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개념 인식의 차이는 당시 국가와 사회가 처해있던 상황과 전통에 상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동일한 맥락으로 사용하는 해방과 독립은 대만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해방과 독립을 피식민국가에서 주권의 회복이라는 점에 무게를 두고 해석하고 있다면, 대만은 주권의 회복보다는 전승국인 중화민국을 주체로 한 통치권의 접수라는 해석이 우세하게 사용되고 있다. 우파 계열의 학자들은 광복 혹은 해방 대신에 戰勝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적은 편에 속한다. 오히려 대만에게 있어 광복은 8월 15일보다는 미주리함에서 일본이 항복문서를 서명한 9월 2일이며 이 날은 현재 대만에서 국군기념일로 정해져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2차 대전 이후 조선인과 대만인의 국제 지위 및 처분에 대한 차이에서도 나타난다. 조선인을 피식민지의 해방민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적국이었던 일본국적자로 처우할 것인가의 문제가 논의되었던 적이 있다. 대만의 경우에도 해석이 복잡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대만인을 전승국의 국민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조선인과 마찬가지로 이전 적국국적자로 볼 것인지에 대한 딜레마가 존재한다.
1946년 도쿄에서 일어난 시부야 사건(渋谷事件)은 당시 양국의 딜레마와 원한이 행동과 폭력으로 표출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대만인에게는 피식민지의 국민이었지만 전승국의 국민으로 지위가 바뀌었고, 일본은 자신의 지배를 받던 사람들을 패전국의 국민으로 대우를 해야 했으니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아쉽게도 전후 대만국민의 국제 지위에 관한 기존의 연구 중에는 아직까지 여기에 대한 확답을 내주고 있지는 못한 듯 하다). 여기에 1947년 2.28사건까지 겹치면서 대만인의 지위와 인식에 관한 많은 혼선들이 생겨났다.
아무튼, 대만에서는 광복과 독립 그리고 해방의 개념을 동일한 선상에서 인식하지 않고 있는듯 하다. 예를 들어 현재 대만 사회에서는 대만 독립이라는 단어를 두고 전후의 상황을 지칭하는데 사용하기 보다는 지금 대만 정치와 사회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하나의 순수한 대만의 국가를 건설하자는 의미로 사용하는 빈도가 늘어난듯 하다. 해방 역시 마찬가지로, 저자의 배경과 관점에 따라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참고로 일본의 식민지배를 두고도 각 학자들은 일본식민시기, 혹은 日據시기, 일본시기를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일제시기라는 표현을 사용한 사례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즉 2차 대전 전후 한국과 대만의 지위에 관련한 양국 사학계의 인식에는 어느 정도의 층차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동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양태라고 생각된다.
Comments
박찬승
족군은 원래 일본에서 만든 말 같은데, 대만 분들이 많이 쓰더군요. 원래 중국에 '족류'라는 말이 있었는데, 잘 모르는 것 같았어요. 족군의 군자는 무리 군(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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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Bong-Jun
아 지금 보니 제가 오타를 쳤군요. 바로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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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Bong-Jun
- 근래 대만의 대만사 연구 경향에 관한 小考(1):
선사 이래 원주민사를 중심으로(My Short review on the Latest research trends of Taiwanese History : Focused on the History of Aborigines since the Prehistoric Age)
* 舊文(근래 정리한 것으로 바탕으로 약간의 추가와 수정이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지금까지 내가 대만사 관련 대학원 전공수업 몇 가지를 수강하며 현재 대만사 연구의 경향과 특징에 대해 느낀 바를 간략하게 서술하고자 한다. 먼저 내 개인적인 관점에서 근래 대만사 연구는 구전자료를 기반으로 하는 원주민사/지방당안과 지리 중심으로 개편되고 있는 청대사/대만인의 생활상을 복원하고자 하는 식민시기사/백색공포와 민주운동을 규명하고자 하는 현대사로 크게 네 가지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근래 네 분야의 연구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은 일반적으로 중국대륙과의 연계성을 강조하는 이전의 연구 경향에서 벗어나 대만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질을 찾아내려고 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또한 최근 관련 연구자들의 행보를 보면 이러한 경향에서 나온 연구주제와 성과를 바탕으로 대만만의 분리된 특질과 독립성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가장 앞선 시기인 원주민의 역사에 관한 연구는 대만인의 정체성과 고유의 민족주의적 단초를 원주민들의 역사에서부터 찾으려고 한다는 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후의 세 연구와 유사한 경향을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일반적인 역사학의 기반이 되는 연대기적 자료의 부재 등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세 분야의 연구와는 다른 접근방식과 연구이론으로 진행되고 있다.
즉, 원주민 구전역사가 등으로부터 인터뷰의 방식으로 채집한 구전자료, 혹은 식민시기에 일본의 대만총독부에서 주도한 구전자료 기록활동의 결과물을 주로 사료로 채택하고 있다. 일반적인 역사학 연구는 연대기자료(chronicle)를 해제하는 것에 익숙하고, 이른바 ‘연도가 기재되어’ 있는 사료를 바탕으로 시간적 맥락을 우선시하여 그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면, 반대로 구전자료는 특정한 연대에 대한 체계가 존재하지 않았던 원주민 사회의 특징과 口傳하는 발화자의 인과관계가 없는 개별단위의 傳承에만 의존하는 방식으로 인해 일반적인 역사학의 연구방식을 적용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원주민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주로 인류학적인 접근방식을 원용하는데, 대표적으로 레비-스트로스의 구성주의적 이론과 접근방식을 선호하는 듯하다. 즉, 구성주의적 접근을 통해 시간적인 인과관계를 편집하려는 연대기적 연구방식이 어려운 조건 하에서 각 부족, 社들이 전승하는 異文 구전이 공유하고 있는 모티브를 파악하여, 원주민 각 부족과 부락들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先史 이래의 민족주의적 단초를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순차적인 연대기보다는 평면적인 관계도를 형성하여 분산적으로 인식되고 있던 원주민 사회를 하나의 잠재된 정체성을 가진 커뮤니티로 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명칭과 그 개념의 문제 역시 부각되었다. 특히 원주민의 명칭에 관련하여, 한국에서는 민족으로 번역되고 대만에서는 일반적으로 族群으로 번역되는 ethnic에 관해, 대만 원주민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원주민족原住民族"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去中國化의 경향까지 겹치면서 대륙으로 부터의 기원과 그 이론에 대항하고자 대만 원주민의 문화와 문물에서 대만 정체성의 기원을 찾으려는 학술적인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또한 각 시대의 구분에 관해서도 日據, 淸據 등의 표현이 사용되었다. 이는 대만을 통치했던 통치주체들을 Longer Duree의 관점에 입각하여 이들을 각각의 행위자로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대만을 통치했던 행위자들과 그들의 통치를 평면적 혹은 연대기적으로 인식하려고 하는 것이다. 즉 이러한 구분법은 통치자였던 스페인, 네덜란드, 청, 일본 그리고 국민당을 하나의 맥락에서 동등하게 이해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기에 나와 같은 외국인이 대만의 선사시대와 원주민사를 연구하기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 우선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연대기적 분석에 익숙해 있는 접근방식과 대만에서 태생하지 않고서는 습득하기가 어려운 역사 교양과 배경, 그리고 원주민 언어에 접근이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 주로 사용하고 있는 총독부의 구전기록 또한 발화자의 구전을 그대로 채집한 수준에 지나지 않기에 현재 연구자들에 의해 오류와 중복이 적지 않게 발견되었다. 연도 표기가 없다시피 한 각 부족들의 구전자료를 상호 비교하고 검증하는 것 또한 이 연구의 중요한 작업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대만사 중에서 특히 원주민 역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외국인이 있다면, 저자의 생각에는 유년기부터 대만에서 보내거나 최소 학부과정에서부터 대만사를 염두에 두고 공부를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원주민사에 관한 연구는 이미 뛰어난 연구자들에 의해 자기들만의 연구방식과 계통이 거의 확립이 되어 있는 상태이며, 여기에 적응하는 것 또한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로 근래에 중앙연구원 대만사연구소에서 식민시기 총독부가 조사하여 기록한 원주민 조사기록을 중국어로 번역한 바가 있다. 번역하면서 카타카나로 기재되어 있는 원주민 인명이나 고유명사를 로마자 표기법으로 변환하였는데, 이 변환된 표기의 발음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 발음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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