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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soon Park
오늘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과 인공지능에 기초한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생활철학과 자치와 협동의 마을공화국을 요구한다. 새로운 생활철학과 새로운 생활양식을 만들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코로나바이러스와 인공지능은 말해주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생명과 생태계에 대한 파괴적이고 적대적인 사고방식(물질론과 기계론)과 생활양식을 버리라는 경고를 주고 있다.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은 생명과 인간의 본성과 목적을 실현하는 생활철학과 생활공동체를 만들지 못하면 인공지능과 기계들이 인간을 대체하고 제거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물질론과 기계론에 근거한 서양 현대철학은 생명과 정신, 역사와 인간의 본성과 목적을 이해하고 실현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서양현대철학은 기계적 결정론과 물질적 환원론에 빠져 있다. 오늘 자연과학자들과 사회 역사과학자들이 생명과 정신에 대하여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라. 결정론과 환원론에서 자유로운 학자들이 누가 있는가? 물질론과 기계론, 결정론과 환원론에 빠진 인간들은 자신들과 타인들의 생명과 정신을 파괴하고 죽이는 길로 가지 않을 수 없다.
1968년에 프랑스 학생혁명으로 일어난 68혁명은 정권교체를 이루지는 못했으나 유럽사회 전체를 혁신하는 큰 바람을 일으켰다. 68혁명의 주역이면서 프랑스와 유럽의 탈현대 철학의 대표자가 탈현대철학의 선도자 들뢰즈, 구조주의 문화사상가 푸코, 구조주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알튀쎄르다. 이들은 획일적 전체성과 동일성을 추구한 서양의 이성주의 철학을 부정하고 욕망과 감정, 차이와 다양성을 강조하지만 생명과 정신의 초월성과 높은 이상을 부정하였다. 물질과 기계, 욕망과 감정에만 집중하는 이들의 철학은 인간의 구원과 해방을 위한 출구가 없다. 들뢰즈는 나이 70에 이르러 자기 아파트 15층에서 투신자살을 함으로써 생을 마감하였다. 푸코는 동성애를 하다가 에이즈에 걸려 죽었다. 알튀쎄르는 정신착란에 빠져 아내를 살해하고 정신병동에 갇혔다가 죽었다. 이들에게서 새로운 생활철학과 생활양식을 기대할 수는 없다.
생명은 물질 안에서 물질을 초월한 것이다. 생명이 물질(육체) 안에 있다는 점에서 생명은 물질적이고 기계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생명은 물질을 초월한 새로운 차원의 존재라는 점에서 물질과 기계를 초월한 것이고 물질과 기계보다 한없이 고귀하고 보람 있는 것이다. 물질과 기계를 기준으로 보면 생명과 정신은 없는 것이고 공허한 것이다. 그러나 생명과 정신의 본성과 목적에 비추어 보면 생명은 물질과 기계보다 더 확실하고 심오하게 실재하는 것이다. 생명과 정신은 없는 것이지만 그저 없는 것이 아니라 없으면서 가득한 것이다. 충만한 무(無)다. 공허하지만 그저 공허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거룩한 빔(空)이다.
생명의 세 가지 본성과 원리는 스스로 하는 자발적 주체성, 하나로 이어지고 통하며 상생 공존하는 전체성, 새롭게 자라고 커지는 창조적 진화성이다. 주체성과 전체성, 창조적 진화성은 모두 물질과 기계의 법칙과 속박을 초월한다. 그것들은 결코 물질과 기계로는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다. 주체인 나를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초월적 무한자에 이르고 전체성을 계속 확장해 가면 영원한 무한자에 이르고 창조적 진화의 근원과 목적을 추구하다 보면 창조적 절대자에 이른다. 생명의 본성과 원리, 사명과 목적, 가치와 보람은 모두 하나님을 가리킨다. 이 하나님은 생명과 영으로 존재하는 분이지 사물이나 기계처럼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생명과 영은 생명과 영의 차원에서 보면 물질과 기계가 존재하는 것보다 더 확실하고 분명하게 실재한다.
생활은 생명을 살리는 활동이다. 생명은 물질과 기계를 초월하는 더 깊고 높은 차원의 존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생명을 살리는 활동을 하려면 물질과 기계보다 더 깊고 높은 차원의 존재를 보고 느끼고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자연만물과 생명체들 뒤에 위에 그 속에 생명과 영이 있음을 믿고 알고 살아야 한다. 생활철학은 나와 모든 다른 존재자들 뒤에 위에 그 속에 생명과 영(의 임)을 보고 느끼고 드러내고 실현하고 높이는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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