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5

알라딘: [전자책] 삶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2020

알라딘: [전자책] 삶의 한가운데

삶의 한가운데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 epub
루이제 린저 (지은이),박찬일 (옮긴이)민음사2020-01-31 원제 : Mitte des Lebens

삶의 한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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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11,000원 9,900원 (마일리지550원)
전자책정가
7,700원
판매가
제공 파일 : ePub(10.28 MB)
TTS 여부 : 지원
종이책 페이지수 382쪽, 약 28.7만자, 약 7.6만 단어


책소개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1950년)는 그녀의 <도덕의 모험>(1957년)과 함께 '니나 소설'이라고 불린다. 작가는 '니나'를 통해서 전후 독일의 암담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참된 삶을 추구하는 여성의 한 전형을 성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침체되어 있던 독일 문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현재까지도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가 되었다.

이 소설은 주인공 니나를 사랑하는 슈타인의 일기 및 편지, 그리고 니나와 그녀의 언니 간의 며칠 간의 짧은 만남과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삶의 의미를 부단히 추구하고 모색하는 매혹적인 인간상을 그려낸 작가는 현재도 전 세계의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책속에서
나는 이것을 당신한테만은 말할 수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무언가가 하고 나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이 이 무엇인지 모릅니다만 그것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또 나는 그 무언가를 상실할까봐 불안합니다. 영원히 말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불안의 가장자리, 아직 포착 가능한 불안의 제일 바깥 가장자리에 불과합니다. 실체는 뭔지 모릅니다-21쪽  접기 - 이매지
만약 어떤 사람이 인생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면 그는 그 의미를 결코 알게 되지 못할 거예요. 그것을 묻지 않는 자만이 해답을 알아요.-27쪽 - 이매지
우리가 처음 만난 이후 당신은 내 삶과 떼어놓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내 삶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당신은 내 본질 중 굳어있는 부분을 용해시켰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좋은 일을 베풀고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마치 숨쉬는 공기처럼 당신이 필요합니다. -54쪽 - 이매지
이 세상에는 거짓 우울도 있는 법이야. 니나는 계속했다. 언니는 사람들의 눈을 보아야만 해. 많은 사람들에게 우울은 겉으로만 그럴 뿐이고 어떤 의도 내지 센티멘털리즘의 표시일 뿐이야. 정말로 우울이 깃들인 눈에는 활기, 집중, 분주함 같은 것들이 있지. 그러나 이것은 무대의 막일 뿐이야. 그 뒤에 무대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해. 그런데 간혹가다 막이 올려지면 사람들은 뒤가 어둡다는 것과, 거기에 한 사람이 아무 희망도 아무 분노도 없이 앉아 있고, 누군가 그에게 다가가서 그를 좀 더 좋은 세계로 데려가려 하면 그가 그것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을 거야. 그는 좀 더 좋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거야. 그는 이미 우울에 중독된 거야. 그가 언니에게 웃고, 마치 언니를 믿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언니와 같이 가기 위해 일어서지는 않아-65~6쪽  접기 - 이매지
아. 때때로 모든 것을 걸 만한 위험이 없는 삶이란 아무 가치가 없어.-66쪽 - 이매지



저자 및 역자소개
루이제 린저 (Luise Rinser) (지은이)

독일의 소설가인 루이제 린저는 1911년 독일 피츨링에서 태어났다. 뮌헨대학에서 심리학과 교육학을 전공하고, 교사로 재직하였으나 1939년 나치의 억압으로 해직 통보를 받게 된다.
그녀는 지휘자였던 첫 번째 남편과 작곡가였던 두 번째 남편을 통해 음악에 깊은 조예를 갖게 되었으며, 전문가적 관점으로 음악을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베를린 예술아카데미 회원으로 윤이상을 만났던 그녀는 자신 역시 반反나치 투쟁으로 투옥되었던 경험으로 윤이상이 가진 아픔을 깊이 공감하며 오랜 친교를 유지했다. 또한 노자, 도교 등 동양사상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윤이상의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윤이상의 음악과 정신의 모든 것이 담긴 이 책이 그녀의 손으로 적힌 건 이 때문이다.
대표작으로 『생의 한 가운데』, 『덕성의 모험』, 『다니엘라』,『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 『완전한 기쁨』, 『고독한 당신을 위하여』, 『미리암』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윤이상, 상처 입은 용>,<고원에 피어난 사랑>,<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 … 총 132종 (모두보기)
박찬일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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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독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독일 카셀대학교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으며,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이다. 1993년 《현대시사상》에서 등단했고, 시집 『화장실에서 욕하는 자들』, 『나비를 보는 고통』,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모자나무』, 『하느님과 함께 고릴라와 함께 삼손과 데릴라와 함께 나타샤와 함께』 등이 있다. 연구서 『브레히트 시의 이해』, 『독일 대도시 시 연구』 등이 있으며,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검은 토요일에 부르는 노래』 등을 번역했다.
최근작 : <시대정신과 인문비평>,<아버지 형이상학>,<멜랑콜리커들> … 총 27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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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굴복당하지 않고 배반하지 않기 위해 새창으로 보기 구매
 우리는 저마다의 삶을 산다. 나는 나의 삶을 살고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산다. 두 개의 삶이 겹쳐질 때도 있다. 삶과 삶 사이에 사랑이 존재할 때, 지향점이 같을 때다. 그렇지만 두 삶이 온전히 포개어지는 건 아니다. 아니, 우리네 삶이란 결코 그럴 수 없다. 서로 같아지려고 노력해도 결국엔 어느 하나의 그늘 속에 다른 하나가 머물게 된다. 때로는 아주 작은 부분만 남겨두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기도 한다. 내 삶은 나를 위해 존재하고 당신의 삶은 당신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단순하고도 명료한 진리를 우리는 생의 전체를 걸고 찾으려 애쓴다.



 니나와 슈타인의 생도 특별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사랑했고 그래서 하나가 될 수 없었다. 아니 하나가 되기를 포기했다. 니나와 슈타인은 극명하게 달랐던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도 달랐다. 그러니 지독한 사랑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주제로 보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현재의 사랑을 똑바로 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때문에 시간이 지나 니나 앞에 도착한 슈타인의 일기는 애절하고 비통하다. 차마 그 사랑을 읽을 수 없어 니나는 자신을 보러 온 소설 속 화자인 ‘나’를 통해 그것을 읽게 만든다.



 슈타인과 니나가 다르듯 니나와 ‘나’도 다르다. 지루할 정도로 평탄한 삶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나’가 폭죽처럼 터져버리는 삶을 살아가는 니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우리의 그것을 대신한다. 슈타인과 ‘나’가 니나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서다. 중심에 서야 하는 삶, 절망을 이겨내야 하는 삶, 누군가가 아닌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삶 말이다. 그런 니나를 슈타인은 지지했고 사랑했고 잠시나마 결혼이라는 제도를 빌려 그녀를 소유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니나는 스프링 같았고 예측할 수없는 곳에서 튀어 올랐다. 아니다. 슈타인은 그녀의 삶을 예측할 수 있었다. 스무 살 어린 니나의 열정을 슈타인은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녀를 사랑했으니까.



 1930~1940대 독일에서 니나가 삶을 산다는 건 해야 할 일과 사유해야 할 것들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이다. 슈타인을 사랑했지만 니나는 스스로 사랑은 아주 미세한 것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절박한 상황에서 심지어 자살을 기도했을 때에도 니나가 의지하고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슈타인뿐이었다. 나치즘과 싸우는 니나의 정치적인 행보는 아주 위험했지만 그녀에게는 유일한 선택이었고 옳았다. 그 선택을 위해 얼마나 많은 내적 갈등(우리가 삶을 극복하면 좀더 높은 삶을 얻는다는 것이 사실일까?, 71쪽)의 시간을 보냈을지 누구도 짐작할 수 없지만 말이다.



 니나는 왜 모든 걸 혼자서 감당하고자 했을까.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자유, 고독, 절망, 고통을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 답은 오직 자신의 삶 가운데 있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언니였던 ‘나’도 니나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살아내느라 버거웠다. 산다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그래서 니나의 연락을 받고 동생과 짧은 시간에 대화를 나누며 슈타인의 일기를 읽는 동안 지난 삶에 대해 돌아볼게 된다. 자신이 살아온 삶은 과연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니나의 삶을 통해 생을 생각한다.



 ‘온갖 아름다움이란 것이 일시적이고 다만 얼마 동안 빌려온 것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 그리고 우리가 인간들 틈이나 나무와 극장과 신문 사이에 있으면서도 마치 차가운 달 표면에 앉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독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은 누구나 다 우울하지.’ (65쪽)



 ‘인생은 끝없이 펼쳐져 있는 풀밭이 아니라, 그 속에서 내가 있는 힘을 다 짜내야 하는 네 개의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일 뿐이야.’ (69~70쪽)



 니나가 읊조리듯 던지는 단호한 말들이 내게로 스며들어 박히고 만다. 슈타인의 일기를 모두 읽고  ‘나’가 흘린 눈물을 흘린 것처럼.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그녀가 보고 싶다. 더 알고 싶다. 그녀는 분명 아름다운 사람일 것이다. 빛나는 눈동자를 지녔을 것이고 내가 묻는 어떤 질문에도 흔쾌히 답을 내줄 것만 같다. 혁명가, 소설가, 인권운동가, 전사처럼 자신의 생을 소모했던 니나, 그런 니나를 18년 동안 목숨처럼 사랑했던 슈타인. 둘 가운데 누가 더 사랑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둘 가운데 누가 상대를 놓아주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사랑했다는 게 중요하다.



 니나는 여전히 삶의 한가운데 있다. 때때로 죽음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며 앞으로 나간다. 삶에 굴복당하지 않기 위해 살아간다. 삶을 배반하지 않기 위해 살아간다. 소설 속 니나가 아닌 세상의 모든 니나가 그럴 것이다. 저마다 삶의 한가운데를 들여다볼 수 있기를 바라며.



‘우리는 생의 의미를 알려고 했어요. 그래서는 안 되는 거죠. 만약 의미를 묻게 되면 그 의미는 결코 체험할 수 없게 돼요. 의미에 대해 묻지 않는 자만이 그 의미가 뭔지 알아요.’ (319~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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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16-07-05 공감(24)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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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스토리보다 더 중요한 건? 새창으로 보기 구매




 유명한 책이라도 손이 선뜻 가지 않는 작품이 있다. 내겐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도 그 속에 든다. 이 책이 <생의 한가운데>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이 무척 오래 전이었으며,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 목록의 꼭대기에 상당기간 앉아 있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 경우를 궁합이라고 하면, <삶의 한가운데>와 나는 궁합이 맞지 않았던 거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선택하지 않게 되더란 것. 근데 왜 갑자기 이 책을 골랐느냐 하면, 소설가라고 한 때 칭했던 신영숙이가 자기가 썼다고 주장한 <엄마를 당부해>란 작품 속에서 이 유명한 작품 <삶의 한가운데>의, 다른 부분도 아니고 상대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첫 문장을 과감하게 조금 바꿔 썼다는 이야기를 들어, 그때부터 호기심이 발동을 했기 때문이다. <삶의 한가운데>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여자 형제들은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든지 혹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든지 둘 중 하나다.”



 이 정도면 ‘인상적인 첫 문장’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임팩트가 있다. 적어도 그렇게 주장할 수 있다. 문장 자체가 한 문단 속에 다른 문장들과 섞여 있을 만하지 않고, 오직 문단의 가장 앞부분에만 어울린다(고 나는 주장한다). 영숙이는 이 문장을 절대 복사하지 않았다. 걔도 뇌가 있으니까. <엄마를 당부해> 25쪽의 마지막 줄에 있으며 역시 한 문단을 시작하는 문장으로 이렇게 써놓았다. “모녀관계는 서로 아주 잘 알거나 타인보다도 더 모르거나 둘 중 하나다.” 책을 사서 봤느냐고? 천만의 말씀. 인터넷 서점의 ‘미리보기’ 기능이 이럴 때 좋다. 만일 영숙이가 한 문단을 “긴 터널을 지나니 거긴 눈의 나라였다.”라고 시작했다면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을 거다. 누구나 다 어느 소설에서 따 왔는지 아니까. 근데 모녀 관계 어쩌고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나는 영숙이도 이게 <삶의 한가운데>에서 나오는 문장인지 몰랐을 수도 있다고 믿는다. 영숙이가 습작시대에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밥 먹듯 해온 것이 필사였는데, 필사도 한 두 편이지, 언젠가 부터는 완전필사가 아니라 부분적으로 좋은 문장이 나오면 아무 생각 없이 공책에 적어놓았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랬다면 이게 사달이 아니었겠나. 공책 한 페이지 넘기면 좋은 문장이 쌔고 쌨는데 그걸 안 써먹어? 한 번 썼는데 아무도 시비하지 않는다. 그럼 두 번 써먹고, 또 시비가 없으면 다음부터는 상습적 도둑질을 하게 되는 거겠지. 그냥 베낀다는 게 아니라, ‘자매’가 ‘모녀’로 바뀐 것처럼 약간씩의 변형을 거쳐서.
 하여간 이런 이유로 <삶의 한가운데>를 읽기 시작했다. 루이제 린저가 1911년생. 책을 발간한 것이 1950년. 린저 본인이 반나치즘 운동으로 1944년에 투옥되어 종전 후 풀려난 전력이 있다. 이런 경험이 소설의 주인공 니나 부슈만에 어느 정도는 그대로 투영된다. 니나 역시 1911년생이며, 1944년부터 종전 때까지 교도소에 수감된 전력을 가지고 있는 소설가로 설정했다. 성격이 아주 독특한데, 예를 들면 열두 살 위의 언니의 “결혼식 때 부모님이 니나에게 마치 시동처럼 내(니나의 언니이자 화자) 면사포를 들고 가도록 시키자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몹시 화가 난 듯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가지고는 나의 면사포에 침을 뱉었다.” (7쪽)
 니나의 이런 독특한 성격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요새 말로 하면 극도의 까칠함이랄까. 누가 자신을 칭찬해주는 것도 싫고, 말 한마디를 해도 좋은 어투는 초장부터 출장 가버리는 성격. 그러나 이런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현실, 즉 현재의 삶에 적극적으로, 온몸으로 부딪혀 상처를 입고, 절망하는 인물이다. 니나의 이런 일련의 행위가 간혹 자신을 위해서, 자주는 타인을 위해서이기는 한데 타인의 눈에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게 비치는, 끔찍한 젊음의 고통 속에서 활활 타버리는 여인.
 바뎀바일러에 있는 뢰머바트 호텔의 바에서 니나의 언니인 화자 ‘나’가 실로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에 동생 니나를 우연히 발견한다. 위스키를 거푸 마셔대는 야성적인 여성. 결코 예쁘지는 않지만 매력 있는 모습의 니나. 결혼 후 동생에 관해 한 번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가, 외국 생활을 하면서부터 완전히 잊고 있던 니나를 마흔아홉 살이 되어 우연히 만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호텔에서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고독한 니나를 우연히 만나고, 몇 주 후 전화가 와서 자신이 있는 뮌헨에 와달라는 전화를 받아 애꿎은 남편이 피곤해 하건 말건 자동차 운전을 시켜 밤새 달려와서 작품의 첫 문장, ‘서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자매들 간의 대화를 시작한다. 니나보다 스무 살이 많은 의사 슈타인 씨가 죽기 전에 니나 앞으로 남겨놓은 일기를 매개로 해서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동생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 이야기.
 그러나 루이제 린저는 니나의 입을 통해 말한다.
 “그래 맞아, 라고 니나가 말했다. 바로 그거야, 이 이야기는 긴장을 시켜. 왜냐고? 전적으로 스토리에 의존해 있기 때문이야. 나는 이것을 참을 수 없어. 모두 이렇게 쓰고 있으니까. 이런 이야기는 내 머리에 한 다스나 들어 있어. 그러나 아무런 가치도 없어. 소재는 중요하지 않아.” (149쪽)
 린저는 스스로의 작품에서 소설엔 스토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선언한다. 그럼 뭐가 중헌디? 심리상태다. 불안하고, 좌절하고, 곤경에 처하고, 실패하고, 도와주려다 오히려 면박을 당할 때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을 할까. 슈타인 박사가 묘사하는 니나와, 니나가 설명하는 당시 상황의 차이점. 이런 것들이 린저가 천착했던 진짜 모습은 아니었을까, 린저가 진짜로 쓰고 싶었던 작품은 철저한 심리소설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독일의 47그룹과 10년 이상 차이가 나는 루이제 린저는 결국 책의 마지막까지 스토리를 이어나가고, 결론을 맺고, 심지어 에필로그 비슷한 광경을 그려내기까지 한다.
 재미있는 소설책. 등장인물의 대사 부분에 따옴표나 기타 부호들을 붙이지 않아 더 감성에 호소하는 것처럼 읽히는데, 이것도 영숙이 분위기하고 유사....하다. 그러니 세상살이 조심해야 하는 거다. 한 번 수상하게 보니까 이것저것 다 이상한 거 아닌가. 다른 건 몰라도 독자의 한 사람으로 나는 앞으로도 집요하게 글 도둑질에 관해서 물고 늘어질 것이다. 작품의 소비자를 이것보다 더 우롱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의 독후감은 결국 기, 승, 전, 글 도둑질. 이렇게 된 것.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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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19-04-01 공감(22)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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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가 내 인생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했다. 새창으로 보기 구매
"니나가 내 인생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했다." p276

의 "내"가 슈타인이

"당신의 인생은 마치 일요일을 망쳐버리는 재미없고 어려운 학교 숙제 같아요" p349

라고 말하는 니나를 사랑했다.



상대를 사랑하게하는 자신의 사랑에는

나에게 걸맞는 대상을 찾은 상대에 대한 보상과

눈부신 대상을 찾은 나에 대한 보상이 있는 것 같다.



"~하려고했다"의 과거체인 슈타인은 "한다"의 의지체를 사용하지 못하고 죽는 날까지 맴돌았다.

그 과거체마저 나에 대한 보상의 일환인 것 같았다.



해설이 말한다. 몇 페이지를 채 넘기지 못할 만큼 등장한 알렉산더가 니나의 진정한 사랑이라고.

해설이 잘 못되었나 생각했지만, 잘 못된 것은 슈타인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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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9-04-20 공감(2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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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몰락하지 않아요! 새창으로 보기
올초 건강검진에서 췌장에 혹이 보인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미 여러 지인을 췌장암으로 보낸 경험이 있기에, 각종 검사가 진행된 한 달의 시간 동안 난 생을 정리했다. 각종 서류를 미리 준비해 클리어 파일 홀더에 차곡차곡 정리해 옆지기에게 알려줬고, 아이들에게도 미리 유언을 해두었다. 난 꽤나 사무적으로 유능하게 일처리를 진행했다.



그런데 최종 검사결과 앞으로도 추적 관찰은 필요하지만 암은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기쁘다는 듯이 소식을 전하는데, 난 순간 냉정을 잃고 무너졌다. 3개월, 길어야 1년을 넘지 않을 줄 알았던 단기 프로젝트가, 끝이 없는 하자보수의 나락에 빠진 거 같았다. 막막해서 눈물만 났다.

어찌어찌 병원문을 나선 뒤 지난 가을까지 맥이 빠진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난 이미 생을 마무리했는데, 내 앞에는 여전히 생이 남아있었다. 난 내 앞에 새로 뚝떨어진 시간을 어떻게 계획하고 지탱해 나가야 할 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나마 가족들과 지인들의 따뜻한 격려에 힘입어 지난 가을 이후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중이다. 일단은 손에 잡히는 책을 이것저것 읽어치우고 있는데, 그러다 보면 답은 못 찾아도 신경은 분산되는 효과가 있는 듯 하다. 그러다 읽은 책이 '삶의 한가운데'이다.



분명히 어렸을 적 읽은 책인데, 손톱 만큼도 기억나지 않는 책이었다. 읽다가 집어던졌던 걸까. 아니면 글자만 읽은 걸까. 하여간 처음 읽는 책처럼 읽는데, 재미가 없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은 건 니나의 고백 때문이었다.



나는 누워서 기다렸어. 죽음을, 아니, 죽음의 상태를, 배후를 기다리고 있었어. (중략) 나는 아직 살아있었어. 그리고 나는 삶 속으로 다시 내던져졌던 거야. 나는 몹시 부끄러웠어. 위대한 기회가 지나가 버렸다는 것을 알았고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 (중략) 죽음이 나를 데려가려 하지 않았으므로 나도 죽음을 더 이상 원하지 않았어. 삶쪽으로 돌아서게 된 거야. 그런데 산다는 것은 그 무렵의 나에게는 아는 것, 무섭게 많이 아는 것, 생각하는 것, 모든 것을 파고드는 것을 의미했어. 그 밖에는 없었어.



끝까지 읽은 지금도 여전히 니나는 삶의 재개를 어떻게 2번이나 성공했는지 모르겠다. 자살까지 시도했었으면서, 누군가의 자살을 도와주기도 했으면서, 니나 당신은 어떻게 난 몰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거지? 하아, 일단은 닥치는대로 더 열심히 읽는 수 밖에 없는 걸까, 아니면 니나를 다시 읽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루이제 린저의 전기를 읽어볼까.



49쪽 니나의 고백

126쪽 니나의 편지

136쪽 니나의 소설

211쪽 니나의 토론

303쪽 니나의 시도

345쪽 니나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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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4-11-30 공감(18) 댓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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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는 극단과 기다림이 삶의 전부라고 말하는 두 자매가 나온다. 이건 초반이니, 자매의 가치관이 쭉 가게 될 지 어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상관도 없다. 이것 아니면 저것, 늘 선택에 강요 당하며 살아온 우리에게 극단이 아니면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니나가 딱히 이상할 것도 없다. 1930-1940년대 독일을 살았던 니나의 정신상태와 결정과 경험에서 오는 삐뚤빼뚤한 착란들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극단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외치는 의견이 때때로 더 옳게 보인다. 명확한 것을 안정으로, 불명확한 것을 불안으로 느끼는 것 또한 지극히 당연하다. 알레고리와 알고니즘, 추상성 속에 놓인 시대의 상처와 불안이 개인의 삶을 어찌 좌지우지하지 못하겠는가.



이제 믿지 않는다. 흔들린다는 것이 살아있는 증명이라는 것을. 대신 믿는다. 죽은 듯 고요한 삶 속에도 아니, 평온해보이는 심장 안에 요동치는 불꽃이 숨어있기도 한다는 것을. 니나는 모든 것이고, 니나를 탄생시키기에 그즈음 독일의 불안은 한 치의 실수도 없었다. 다름을 향해 그토록 처절하게 내달려왔으면서 차이를 알기 무섭게 상대를 쳐내는 교묘함. 고통과 격정이 살아있는 증거라면, 어째서 니나는 지금 떠나야만 하는 것일까. 왜 슈타인을 받아주지 못했던 것일까. 무엇이 그녀로 인해 온전히 그에게 안기지 못하도록 만든 것일까.



내가 인생에서 아무것도, 어떤 의미 있는 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내 인생은 그냥 사라지고 있으며 나는 살지 않았다는 불안감, 나는 실수를 저질렀으며 영원히 내 인생은 작은 궤적 속에서 움직일 뿐이라는 불안감들입니다.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나한테서 어떤 의미 있는 것이 나올 수 있겠어요. 이 무슨 오만인지요. 그렇지만 나는 이것을 당신한테만은 말할 수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무언가가 <너는 무언가를 이룰 수 있어> 하고 나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이 <무언가를>이 무엇인지 모릅니다만 그것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또 나는 그 무언가를 이루지 못할까봐 불안합니다. 그 무언가를 영원히 상실할까봐 불안합니다. 영원히 말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불안의 가장자리, 아직 포착 가능한 불안의 제일 바깥 가장자리에 불과합니다. 실체는 뭔지 모릅니다. (pp.20-21)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던가. 사랑을 내려놓음으로서 사랑을 표현하는 일, 말하는 대신 침묵을 택하는 일, 묻기 전에 끙끙앓는 일, 니나처럼 뒤늦게 안 사실에 대해 이제와서 돌이키려 하지 않는 일 모두 용기로만 가능했다. 고전문학이 다 그렇지만 지독하게도 밑줄을 많이 그었다. 누구에게나 좋게 읽히는 책, 누구든지 좋다고 하는 책, 작가도 작품도 너무 유명해서 흠이 없는 책은 유난히도 태클을 걸고 넘어지고 싶은 법. 그래서 더 줄줄이 문단마다 밑줄을 아니 포스트잇을 붙여뒀을까. 붙이는 것도, 떼어내는 것도 모두 내 것이나, 붙이는 나와 떼어내는 나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삶이 불편한 사람은 니나를 보며 전후 불안에 미쳐버린 광기어린 여자의 하염없는 독백, 쓸데없는 하소연으로 일축할지 모른다. 니나의 갈구하는 삶 전부를, 그녀 안에 도사리는 불안과 광기와 체념을 감싸기가 벅차다. 그래, 이건 벅찬 일이다. 동시에 어린 날들 날 괴롭힌 모든 고민이기도. 어째서 내가 너로 인해서만 증명되나. 모든 화두를 풀지 못하는 숙제에 맞춰놓고 낑낑대다 날이 새도 그때는 두렵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못된 마음을 먹지 않아도 됐다. 그런 내가 요즘 데스노트를 쓴다. 없어져버려라, 쓰고나서 멈칫, 어쩔 땐 움찔, 그렇게 심장에 못을 하나쯤 박아넣는 기분을 느낀다. 피노키오 인형이 되어가는 고독을 맛본다. 흔들리지 않도록 꽝꽝 박혀버린 못, 스며들 수도 튀어나갈 수도 없는 불안. 불안 속에 더욱 또렷한 나의 존재감. 나는 불안으로만 존재한다. 그러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렇지만 생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폭풍우에 의해 약간 손상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깊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바람을 안고 가는 배와 같았다. 이 배를 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 배는 원하는 곳에 도착하거나, 아니면 어딘가 자기의 행운을 잡을 수 있는 새로운 대륙의 새로운 해안으로 가게 되리라고 믿을 것이다. 니나의 절망이 진정에 와닿고 나의 가슴을 후벼팔지라도 내가 이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가 이런 데 있는 것이 아닐지. (p.101)



몸이 다 커버렸는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른다면 망설임없이 니나를 만나야 한다. 흔들리는 배에 올라탄 힘 없는 승객이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라도. 내 안에 무엇을 키우며 사는지 알고 싶다면 그래도 니나를 만나야 한다. 니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서 비로소 모든 것이 된 여자. 슈타인의 마음 속이나 언니의 삶의 지표에서도, 니나 자신의 의식 안에서도 모두 불완전함으로서 완벽해진 여자다. 니나는 사랑을 갈구하지만 곁에 가지 못한 채 망설이고, 재능을 타고 났지만 더 쓰지 못해 괴로워한다. 그러고도 집시여인처럼 하염없이 헤맨다.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없는 삶. 흔들림이 그녀를 뿌리째 털어낸다.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이의 뒷모습을 노래하는 건 시인만이 아니었나 보다. 늙은 남자 슈타인이 어린 여자 니나를 욕심낼 때 슈타인은 이러한 모든 니나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녀로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탐하겠다는 뜻이다.



누가 누군가를 가질 수 있는가. 가진다는 것이 무엇인가. 갖지 못한 건 니나였을 뿐인데 슈타인은 모든 것을 갖지 못한 것과 같다. 뿌리, 용기, 안정, 평온, 사랑이 그의 곁에 머물지 않는다. 대신 많은 것을 가진다. 불안, 흔들림, 경이, 전율, 열망, 폭발하는 삶의 의미들. 척박한 삶의 빈틈으로 하염없이 스며드는 모든 것들은 사랑으로 퇴치가능한 불안이 아니었다. 훨씬 더 밑바닥에 존재했다. 소극적인 그의 사랑을 비웃을 수 없었다. 그를 홀대할 수도 없었다. 나는 완전한 절망을 원했다.



내 시가 형편없다면, 정말로 형편없어서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에도 감상적이고 싸구려라면, 나 자신의 내부에도 감상벽과 싸구려 경향이 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거야. 누구든 그가 쓴 것과 똑같아. 이걸 분리시킬 수는 없어. 만약 언니가 좀더 날카롭게 주의해 본다면, 모든 가짜를 꿰뚫어볼 수 있을 거야. 슈타인의 말이 전적으로 옳아. 나도 그와 같은 생각이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어. (p.119)



나는 내가 어떤 사람에게 유혹 당하는지,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지, 인간적으로 매료 되는지 비교적 잘 안다. 하지만 내가 소용돌이 치는 느낌을 나는 알지 못한다. 알 것 같으면서 알 수 없어 다시 안달한다. 그래, 나는 안달한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 할 때 소용돌이는 얼마나 미치도록 안락한가. 여기도 저기도 아닌 곳이 삶이라던가. 숨을 곳과 증발할 곳이 있어 평온함을 느끼던 삶. 뽐내고 아는 체 하고 싶어 안달하던 삶.



나는 니나가 느끼는 감정과 니나의 삶, 부러워하면서도 선뜻 니나처럼 살지 못하는 언니, 니나를 사랑하는 이유와 같은 이유로 사랑하지 못하는 슈타인의 심장, 어느 한 곳에 놓이지 않는 수선화 같은 삶을 알 것 같다. 강처럼 흐르고 싶지만 고인 물이 될 수밖에 없는. 갖기는 싫고 남주기도 싫은. 여기도 저기도 아닌. 원하면서도 감당할 수 없어 고뇌하는. 모든 것들. 이름 없는 뚜렷한 것들. 삶의 한가운데서 우리를 지배하는 어떤 영역의 중요한 혹은 사소한 일부분들. 무엇을 사랑했었나, 우리는. 어디를 향하는가, 내 심장은. 내가 원하는 것과 이루어진 결과가 꼭 같아지는 날이 오기나 할까. 나의 질문은 공허한 공간을 떠도는 울림으로 되돌아온다.



니나는 엘베 강과 같은 존재다. 유혹적이고 순진하며 도덕에 얽매여 있지 않고 본능적으로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멀고 낯설게 느껴져 붙잡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또한 니나가 언젠가 여자가 되었을 때 가지게 될 얼굴을 이미 보았다. 니나가 자신의 인간적인 영혼을 인식할 때까지 무슨 일이 더 일어나야 할 것인가? (p.123)



얽매이기 싫은 삶을 감당하려면 고독을 감수해야 한다. 본능대로 살기 위해 원하는 것 앞에 더 원하는 것을 놓을 수밖에 없다. 선택의 순간에 비교적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영혼이라면 여자는 이 시대의 모든 것을 감싸야 한다. 총소리, 숨소리, 한숨소리가 지배하던 땅이 있었다. 인종 싹쓸이가 위험한 이유는 숙청 자체가 아니라 남은 자들의 혼란 때문이다. 혼란. 대재앙. 홀로코스트. 테러. 척결. 땅과 지배 전쟁이 타당성에 골몰할 때, 니나는 내면에 귀기울임으로서 침잠한다.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그녀는 더이상 이 땅에서 사람 답고 여자 답고 어른 답게 살지 못한다. 겪지 않고는 절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버린다.



버림 받은 삶, 책임 지는 삶, 극단의 삶, 본능의 삶은 되어버리기 전에는 알 수 없지 않던가.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삶도 있지 않던가. 어떻게 나를 빼고 나에 대해 말할 것인가. 편린으로 가득 찬 편협한 경험을 전체의 보편적 진리로 삼는 것은 위험하다. 좋아하는 것, 아는 것, 느끼는 것으로 어떤 영혼을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나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하물며 살아가는 일이 벅찬 감동이라는 걸 누가 말해줄 수 있을까. 영혼을 어느 누가 증명해 보일까. 만약 내 안에 이것들이 없다면 나는 어떻게 나아가며 무엇으로 나를 멈추게 할까. 아무도 자신의 심장을 들여다보지 않음으로서 타인에게 상처주는 일을 즐길 수 있다는 것만 알겠다



그런데 당신 곁에 있으면 나는 불편합니다. 당신은 내가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나를 몰아갑니다. 당신은 나를 수줍은 소녀로 만들고, 어떤 때는 성숙한 여자만이 할 수 있는 결단을 기대합니다. 나는 그중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자유롭게 있어야 한다는 것 외에는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나는 내 속에 수백 개의 가능성이 있는 것을 느껴요. 모든 것은 나에게 아직 미정이고 시작에 불구합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자신을 어떤 것에다 고정시킬 수 있겠습니까. 나는 정말 내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당신에겐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정말로 나를 모릅니다. (p.127)



초반에는 이해할 수 없던 사실들이 중후반을 지나며 차차 자리를 잡아가면서 퍼즐이 맞춰지는 듯한 짜릿함을 느꼈다. 니나의 삶. 슈타인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 자유, 평화, 고독, 용기, 어둠, 갈망, 열정 등등. 니나의 언니가 읽는 슈타인의 일기와 편지, 니나와 함께 머문 며칠 간의 대화, 마지막 니나의 언니와 슈타인의 만남 등으로 꾸려진 이 소설은 정확히 누군가의 가슴 정중앙을 겨냥할 수 없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에 순응하게 하는 특유의 힘을 가진 소설이었다. 자유 말고 우리에게 주어진 거대담론이 없었다. 니나는 바로 그 자유를 위해 사랑마저 회유당한 장본인이었고, 슈타인이나 니나의 언니 의견과는 달리, 나는 니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남자가 누군지 그게 슈타인인지 끝까지 알 수가 없어 초조했다.



아마 그녀는 나를 사랑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니나는 그녀가 내 안에서 보기를 원하는 것만 사랑할 수 있었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내가 혼란스럽게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노여워했다. 그러나 나는 자기 합리화나 안일한 생각들을 폄훼하는 그녀의 고귀한 습관이 나 때문에 훼손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pp.177-178)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이야기로 종결짓기에 이야기는 너무나 크고 무겁다. 니나 신드롬. 우리가 니나에게서 본 것, 내가 니나에게 마지막까지 바란 건 사소하고 잔인한 사랑은 아니었다. 어째서 니나가 되길 바라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할까. 어째서 니나는 그 불안과 흔들림으로 모든 남자들의 불씨가 되었나. 하는 것들에서 자주 멈칫했다. 도망가지 않는 것과 손을 맞닿아 보는 것. 하지만 그를 위해 피해버리는 것. 이 모든 것을 글로 쓰기가 두렵고 벅차다. 니나는 글로는 표현되지 않는 더 깊고 은밀한 곳의 간절함인 것 같다. 모든 순간에 나서 싸움으로서 존재를 드러내었던 니나가 결국 슈타인을 만나지 않고 영국으로 가버린 것으로 나는 모든 생의 의지를 본다. 어째서 슈타인에게만 그토록 냉정하고 모질게 굴었는지. 삶의 위험한 순간들마다 그에게 상담했으면서도 마지막까지 그를 거부했던 까닭은 무엇인지.



그때 나는 생각했어요. 봐라. 너는 중요한 인식의 순간에, 적나라한 진실 앞에서, 도망치고 있다. 다시 들어가라. 노인을 보고 너 자신을 보라. 비록 두렵기는 하겠지만 전혀 해는 안 되는 법. 이것도 삶의 일부일 뿐. 모든 것을 경험해야 한다. 추악한 것을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은 중요한 것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p.190)



마지막에 이르면서 드디어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상처와 도전으로 얼룩진 삶이야 말로 니나가 불안했던 이유이자 용기였다는 것도. 평온한 세상이었다 해도 그녀는 누군가의 아내로만 살기에 적절치 않은 여자였을 것이다. 모험과 도전으로 너울거리는 격정스런 일생이야 말로 그녀가 가장 바랐던 삶이니까. 가만히 앉아 정말 신나고 즐거운 일 없을까 외치는 우리의 심장에도 니나의 붉은 열정 한 가닥이 박혀있음을 이제는 알겠다. 무언가는 유혹하고 나는 유혹을 외면하고 유혹은 누군가의 삶 한가운데 들어가 똬리 틀고 기다린다는 걸. 꺼내줄 날만을 학수고대 한다는 걸.



내가 우는 것이 슈타인의 지난 고통과 니나의 엄청난 이별 때문만이 아니라, 나 때문에 그리고 축축하고 촘촘한 회색빛 그물에 얽혀 있듯 자신의 운명에 얽혀 있는 인간들 때문에 우는 것이라는 것을. 대체 누가 그 그물을 찢어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p.370)



그러면 이제 우린 니나처럼 한치 두려움 없이 -행여 두렵더라도- 삶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그물에 걸려 징징대고만 있을 것인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불평만 할 것인가. 내 삶에만 도전과 모험과 기적이 없다고 목소리 높일 것인가. 다 여기, 삶의 한가운데 있는데!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고 없는 일이 되지는 않는다. 내 인생의 주도권은 원하지 않는다 해서 넘겨줄 수도 없는 일. 아마 니나는 불꽃으로 장미가시로 빛으로 모두의 안에 남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 안에서 니나는 열정이고 용기다. 오래도록 꺼져서는 안될 빛이다. 빛은 나를 향해서만 비친다. 한 줄기 빛은 나를 따를 것이고 나는 눈감지 않을 것이다. 니나가 그러했듯이. 마지막까지 자신을 지켰듯이.



그렇게 모두 그물을 찢어낸 작은 구멍 사이로 진짜 삶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누구의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것이므로. 그 안에 진짜 내가 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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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2-03 공감(34) 댓글(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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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2-03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수다쟁이님의 소재에서 봤어요.
저 표지의 여성분이 작가라고 했던 것 같은데 지적이게 생긴 외모가 마음에 들어서 책에도 더욱 관심이 가는 것 같아요.


아이리시스 2012-02-03 20: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수다쟁이님 서재에서 봤어요. 제 책장에는 오래 전부터 있었는데.. 필독서지만 저는 예전부터 필독서들은 다 멀리해요ㅋㅋㅋ 그래서 이렇게 컸지요^^


비로그인 2012-02-03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쓰셨군요, 흐흐~ 저는 이 책 리뷰 못 쓸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떤 책이든 그것에 대해서 리뷰를 못 쓰겠어요. 손글씨로 글을 쓸지, 키보드로 쳐서 글을 쓸지도 모르겠고, 문단별로 핵심 내용을 구분해야 하나 그냥 일기처럼 솔직하게 써야 하나, 이래저래 어렵게만 느껴져요. <활자잔혹극>의 유니스처럼 되는건 아닌가 몰라요 ㅠ ㅠ


아이리시스 2012-02-03 21:08   좋아요  0 | URL
어맛, 수다쟁이님이다ㅋㅋㅋ 요즘 말예요. 카뮈와 지드를 쓰고, 사르트르를 쓸 수 있다면 모든 소설의 리뷰를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말테의 수기]도. 난 이거 읽지도 못하겠어요. 진도가 너무 안나가서.. 백만년동안 읽을 것 같아요. :)

너무 많은 게 오면 오히려 쓰지 못하는 거고 어려운 책일 수록 당연히 쓰지 못하겠고 그렇죠! 얼마나 억지로 썼는지 막상 독서를 끝내니까 이 책은 남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냥 뿌듯했죠. 근데 읽으면서 막 써둬서 올릴 수 있었어요. 내가 썼지만 나도 못 읽겠는데 누가 읽을지 궁금( '')


문단구분은 읽는 사람을 위해, 쓰는 건 수다쟁이님 마음대로! 알았죠?ㅋㅋㅋ
유니스가 어쨌는데요? 리뷰를 못 읽어서 읽으러 가요.


2012-02-03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03 2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잘라 2012-02-03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책, 멋진 리뷰예요. 제가 읽고 갑니다. 한 글자도 안 빼놓고-


아이리시스 2012-02-03 21:31   좋아요  0 | URL
땡큐 베리 머취. 꼭 다 읽고 독후감 써줘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2-03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진짜 멋진 리뷰..아까 와서 읽다가 나머지는 지금 읽었어요. 어렵기도 하지만 문장들이 좋아요
근데 전 이 책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저희 집 책꽂이에 있었는데도 한 번도 읽지 않았어요.
제목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50대가 되면 읽어보겠어요...ㅎㅎ


아이리시스 2012-02-03 21:33   좋아요  0 | URL
역시! 난 대역죄를 지어도 내 편이 되어줄 분들이 있는 거였어..( '') 뭐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요. 제가 문학학사를 딴 사람이 아니고 '이과반'에서 자연스럽게 화학공학과에 진학했다면 절대 말렸을 거예요. 이걸 읽어서 어쩌겠다는 거예요. 히틀러나 홀로코스트 관련 책 하나 읽는 게 낫지 하면서요. 그러니까 50대에도 읽지 마요ㅋㅋㅋ 60대에 읽어요, 현맘님.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페크(pek0501) 2012-02-04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의 리뷰를 쓰셨군요.
제가 표지가 닳도록 읽은 책이랍니다. ㅋㅋ

"얽매이기 싫은 삶을 감당하려면 고독을 감수해야 한다. 본능대로 살기 위해 원하는 것 앞에 더 원하는 것을 놓을 수밖에 없다." - 난 가끔 이런 문장을 쓰는 아이님의 나이를 의심하게 돼요. 너무 성숙하셔서...ㅋㅋ
그리고 우리 아이님의 특징은 열거법을 좋아하신다는... 것... 나도 배워 써먹어야징...


아이리시스 2012-02-05 01:51   좋아요  0 | URL
저는요 너무 오래 붙잡고 있어서 표지가 닳을 것 같았어요, 페크님. 비교적 잘 읽히는 편이었는데 사건 없이 물흐르듯 그것도 한 발자국 뒤에서 편지나 일기 같은 것들로 대해서 그랬나 봐요. 의도와 장치였을 테지만 그 공허가 지루하다고도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지금은! 다 읽어서 너무 좋아요. 움직이지 않으면 저절로 되는 게 없으니까요. 이해하든 못하든 끝까지 읽어두는 게 올해 목표예요. 저는 기승전결과 정리가 명확한 페크님표 글쓰기를 배울래요.

주말 잘 보내세요.
밤에 순대국을 너무 많이 먹었더니 배가 불러 잠을 못자고 인터넷 뒤지고 책 뒤적이고 있어요^^


노이에자이트 2012-02-04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우리나라 여성들에게도 사랑을 많이 받았지요.그런데 북한방문 이후 북한에 우호적인 글을 쓰면서 린저를 둘러싸고 우리나라에서는 보수 진보의 싸움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젠 그런 싸움도 좀 잠잠해져서 다행입니다만...


아이리시스 2012-02-05 01:53   좋아요  0 | URL
아 저도 북한방문 얘기를 들었어요. 참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요. 그 부분을 건드리면 우리나라에서는 답이 안나오니까.. 제3의 눈으로 보는 우리를 우리는 잘 받아들이지 않으니까요.

노이에자이트님 오랜만. 그리고 좋은 주말 밤 되세요!


가연 2012-02-04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지나가려다가ㅎㅎ 생의 한가운데일때 읽은 책인데 이젠 삶의 한가운데가 되었군요, 중반까지는 정말 눈한번 안깜빡이고 읽었는데 그 이후부터는 왠지 힘이 빠졌던 기억이 나네요. 나는 슈타인처럼 사랑하기는 싫지만, 그러나 슈타인처럼 사랑하게 될 것 같다, 라고 당시에 읽으면서 여겼었는데..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 가 되어버렸구먼요, 풋. 당시에 이 책 속편이 있다고 해서 백방으로 구하려고 했었는데 결국 포기했었답니다. 이것도 지금은 아무래도 좋구먼요, 하하.


아이리시스 2012-02-05 01:57   좋아요  0 | URL
민음사만 그렇게 번역한 것 같아요. [이방인]이 [이인]이 될 때 저는 좀 당혹스러웠어요. 가연님 반가워요. 어렵고 꽉찬 리뷰들 가끔 보거든요!

슈타인처럼 사랑하면 정말 외롭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둘이 사랑한다 해서 반드시 슈타인처럼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보장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아무래도 좋지만.. 저는 스무살 때 친구와 연인이 되어서 이미 10년이란 세월을 보냈고, 보내고 있고, 그래서 슈타인처럼 사랑하는 일이 앞으로 올지 안올지 모르지만 그렇게 평생을 갖지 못한 채 욕망하며 지켜보는 사랑이란 게 있을지 상상도 못하겠어요.

또 오세요. 하하.


맥거핀 2012-02-05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연님처럼 <생의 한가운데>라는 제목으로 알고 있는 책입니다. 늘 세계문학전집 목록이나, 아니면 중고생이 읽어야할 소설 목록에 들어있던 책인 줄로만 알고 있는데, 이런 내용이군요. 살짝 겉보기만 한 느낌으로는 쉽게 손이 갈 책인듯 싶지는 않네요. 현재의 내가 책 속의 자아를 감당해낼 자신이 없어요. 내 생의 한가운데는 커녕, 근처로도 가기 힘든데 어찌 니나의 삶 가운데로 가겠습니까. (물론 겉보기만 한 제 탓이겠지요.)


아이리시스 2012-02-05 02:03   좋아요  0 | URL
모두 읽어야 할 것 같지만 쉽게 손이 가지도 않는 책인 것 같아요. 제가 벼르다 읽은 것치고는 크게 감명 받지 못한 것 같아요.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상황과 마음가짐이 맞을 때 확 다가오는 거잖아요?!

맥거핀님 말이 맞아요. 내 생의 한가운데는 커녕, 근처로도 못 가겠고 책 속의 니나의 삶과 자아를 감당하기에 우리 개인의 삶이 너무 벅차요. 언젠가부터 뭘 읽고 보고 해도 푹 빠져들지 못해요. 그래서 자극적인 거 더 자극적인 걸 찾고! 자꾸 반복돼요. 겉보기만 한 탓 아니고 정확히 짚어내신 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12-02-06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이제 린저가 말년에 윤이상 전기도 썼더군요.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아이리시스 2012-02-06 17:40   좋아요  0 | URL
윤이상이 누구더라..( '') 하아.. 아.. 작곡가!

그런데 노이에자이트님, 루이제 린저가 남긴 다른 소설도 있나요? 정말정말정말로 이것밖에 못 들어본 것 같아요. 제대로 번역이 안되어서 그런가.......


마녀고양이 2012-02-06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나는 슈타인을 니나의 방식대로 사랑했지만, 그것은 지나가버린 어떤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삶이란 그런 것이겠지요. 우리는 선택하고 자신을 만들어나가고 어떤 것을 버리며 다시 자신을 만들어나가니까요.
과연 말이죠, 니나가 슈타인을 버린걸까요, 슈타인이 니나를 버린걸까요?
저는 슈타인이 니나를 놓아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생의 한가운데> 속편인 <빛 그리고 그림자>는 모두 편지이고, 니나의 입장에서 씌여진 글입니다.
그녀의 정열과 절망을 읽을 수 있지요. 그리고 니나의 단 한명의 남자에 대해서, 너무 슬퍼집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것은 절대적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의 한가운데>에서 가장 인상깊은 곳은,
니나가 단편을 쓰는 과정에서, 가장 마지막 구절, 박수치라고 말하는 가식이라면서 지워버리는 구절이었답니다.
우리의 삶이, 글 쓰는 과정이, 말하는 과정이, 그런게 아닐까 싶어서 말이죠.


아이리시스 2012-02-07 17:01   좋아요  0 | URL
속편이 있다고 가연님이 그러셨는데 마고님은 그것도 보신 거예요?

이렇게 얘기하니까 아슬아슬 잡힐 듯 하면서 몰랐던 것들이 제가 이해할 수 있는 한에서는 조금이나마 제자리를 찾는 느낌이에요. 저는 니나처럼 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돌아서고, 조화를 이루되 내 자리를 확실히 다질 줄 아는 여자요.

저도 그 구절이 우리의 글쓰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예전에는 자신감이 넘쳐서 아니다 싶으면 delete키를 속시원히 누르고 새로 시작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알량한 것도 자꾸 모아둡니다. 도움도 안되는 걸...........


마녀고양이 2012-02-07 19:28   좋아요  0 | URL
네, 저는 속편 구하느라, 난리치고 구해서 가지고 있지요.
벌써 20년 가까이 된 일인걸요... ^^


아이리시스 2012-02-07 20:50   좋아요  0 | URL
90년이나 사신 분이잖아요. 한 작품만으로 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생의 한가운데>는 전후 문학인데도 별로 전후스럽지 않게 읽히고 니나를 보면서 저도 전혜린을 떠올리고 뭐 어느 정도 예민이 극에 치닫는 기질이나 성향이 있어야 예술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보통 사람보다 강한 통찰력을 갖는데 좀 더 예민하게 느끼는 게 당연한 것도 같고요. 니나 보고 싶다............런던에서 뭐하고 살아요? 어떤 편지가 들었어요?

문득, 니나 같은 엄마를 둔 아이들은 불안하게 자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내 엄마가 집에 계시면서 된장찌개 냄새 풍겨주셔서 저는 불안함을 거의 모르고 자랐는데 요즘은 엄마 들어오실 때 제가 된장찌개 끓이고 있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노이에자이트 2012-02-06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루이제 린저가 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굉장한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전집도 나오고 그랬어요.헌책방에 가끔 나오던데요.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범우사에서 <옥중기> 외 몇 편이 번역되어 있어요.작가 서문이 재밌어요.


아이리시스 2012-02-07 17:06   좋아요  0 | URL
[요즈음에 와서 나는, 다른 사람들이 이제 와서야 깨닫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로부터 분리되어 독립된 미래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라는 것이 도대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과거란 현재 속에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이며, 현재로부터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이거요, 노이에자이트님?

음................ 이 작가분 정말 장수하셨네요... 요즘으로 보면 별 게 아닌건가..
보통 작가나 예술가들은 단명하니까요.


노이에자이트 2012-02-07 20:58   좋아요  0 | URL
그런 문장은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여하튼 왜 <옥중기>를 집필하게 되었는지 그 계기가 된 경험을 꽤 길게 썼으니 직접 읽어보시기 바랍니다.아이리시스 님이 인용한 문장은 어디에서 구했나요?


아이리시스 2012-02-07 21:19   좋아요  0 | URL
아................... 알라딘에서 책 찾으니까 거기 서문이요....................( '')
그렇군요.
저는 오래된 책을 막 구해서 읽을 정도로 부지런하거나 하나에 골몰하는 사람이 아닌데 21세기에 나온 새로운 번역본이 없어서 슬퍼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노이에자이트 2012-02-08 17:50   좋아요  0 | URL
<옥중기> 범우사 판은 읽기에 어렵지 않습니다.활자도 큰 편이죠.염려 말고 읽으세요.다른 출판사 것에 비해 값도 적당합니다.


아이리시스 2012-02-10 23:21   좋아요  0 | URL
네, 그렇구나. 고맙습니다^^


2013-03-15 23: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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