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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전에 썼던 글과 최근 윤 정부의 외교정책을 보며 쓴 글이다.
다시 총선을 앞두고, 거칠게 진행되는 국내외적 정치과정 속에서 나라와 민족의 대계(大計)를 생각하게 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노부(老夫)의 심정을 밝혀본다.
*실사구시와 실용주의에 바탕한 연합정치로 개혁을 성공시키자!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개혁 과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양극화 해소와 사회안전망의 확보이고, 다른 하나는 복지를 확대할 수 있는 물질적 토대를 가능케 하는 시장(市場)의 활력(活力)을 살리는 것이다. 이 둘의 조화를 통한 개혁이 ‘기후 위기나 팬데믹 현상등을 야기하는 문명 자체의 전환’으로 이어지는 것이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근본 과제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심각한 상태이다. 10:90의 사회라는 말이 중산
층의 몰락을 이야기하고 있고, 노동계 안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대기업노동자와 중소기업노동자 간의 양극화도 심각하고, 흙수저 금수저로 이야기되는 새로운 신분제 사회의 등장을 우려케하는 심각한 이중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른바 부모 찬스와 각종 지대 등 ‘합법적 불공정’이 눈앞에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서 ‘공정한 경쟁’이라는 이미 한물갔어야 할 담론을 전면에 나서게 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가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사회경제적 약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의 확충을 둘러싼 논의들이 개혁의 주요 과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근래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들이 대선의 증요 쟁점이 되는 것 또한 어떻든 진일보한 것이다. 한쪽의 ‘보편적 복지론’은 다른 한쪽이 우려하는 ‘재정의 위기’에 대한 대책이 함께할 때 비로소 현실성 있는 주장이 될 것이다. 복지의 확대는 재정의 확대를 의미하고, 재정의 확대는 세수(稅收) 확대를 말하는데, 이때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생산 주체의 의욕이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결국 중간층 이상의 마음을 얻는데 개혁의 성패가 달려 있다. 여기서 말하는 중간층은 단지 소득수준으로 구분하는 중산층을 넘어서 ‘의식의 성숙’을 중요한 요소로 포함하는 개념이다.
개혁에는 필연적으로 저항이 따르게 된다. 과거에는 정권 차원에서 힘으로 저항을 잠재우려 했다. 그런데 더이상 그런 방식은 통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마땅히 버려야 할 구시대의 적폐로 되었다. 이제 개혁의 성패는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나 집단이 개혁에 동참하도록 얼마나 합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한 전제가 개혁 주체의 도덕적 권위다. 정치적 반대자도 그 도덕성만큼은 인정할 수 있어야 지속적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 요즘 유행어처럼 된 ‘내로남불’로 인식되는 정치 주체로는 개혁은 추진력을 상실한다.
도덕성을 바탕으로 ‘통합’과 ‘전환’의 비전을 제시하고, 불굴의 의지와 정책을 통한 실행력을 갖출 때 비로소 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나는 실사구시와 실용주의의 연합정치로 개혁과 통합을 성공시키는 것과 문명의 전환이라는 인류 보편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것이 하나로 이어진다고 보고 있다. 정치의 전환과 문명의 전환을 하나로 잇는데 성공하는 것이 한국에 21세기의 모범 국가를 탄생시키는 길이고, 신냉전으로 진행되는 열강의 각축장에서 지금까지의 수동적인 피해자의 입장으로부터 적극적으로 새로운 세계질서에 발언권을 갖고 그 변화를 추동하는 나라로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합정치의 성공은 순진한 이상이 아니라, 절박한 현실이다. 조금이라도 정파나 진영의 이익을 넘어 나라와 공동체의 운명을 생각한다면, 이 길을 통하지 않고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가기 힘들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2차대전 후 신생 독립한 나라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 자본주의에 대해 한국의 좌우(左右)가 실사구시의 바탕에서 지금까지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성장을 1차적으로 보고 그 문제점(모순)을 부차적으로 본 우파 계열이 그 부차적으로 보았던 모순이 이제 경제적 안정 자체의 최대 장애로 되고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 모순과 문제점에 집중했던 좌파계열이 한국자본주의가 이루어낸 물적 토대의 중요성과 그 기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대통령제로는 이런 연합정치를 실현시킬 수 없다는 것이 그동안의 경험이었다. 대통령 개인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나라를 편 가르기의 혼돈과 정체(停滯)에 빠트리는 것이 87체제의 한계라는 것을 실감해온 역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정치적 환경이 누구도 선뜻 개헌을 추진하지 못한 채 권력투쟁의 와중에 휘말리고 말아왔다. 이제 더이상 결단을 미룰 수 없다고 본다. 차기 정부에서 연합정치가 제도적으로 가능한 개헌을 통해 제7공화국의 출범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게 될 때 정치의 대대적인 전환이 가능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관성과 욕망과 상상력에서 해방되자.
대기업과 부유층의 사회적 책임과 양보를 이끌어낼 수 있는 보수 정당과 노동의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 기득권 노조의 양보를 설득할 수 있는 진보 정당들이 문명 전환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향해 함께 노력하는 정치문화와 제도를 만들어보자.
그것이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개혁이다.
* 외교정책과 남북관계의 새로운 정립
상호불가침과 내정불간섭은 국교를 수립하는 국가가 전제하고 받아들이는 국제법상의 일반원칙이다.
체제가 다르고 비우호적인 국가와도 이런 원칙에서 국교를 맺고 통상을 하며 여행을 한다.
남북은 동족이라는 이유와 통일이라는 동상이몽의 환상 때문에 핵전쟁의 공포를 머리 위에 이고 살고 있다.
모든 국내정치의 과제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고, 국제 관계에서 강요되는 신냉전의 볼모가 되고 있다.
민족의 장래를 동상이몽의 통일의 환상에서 벗어나 남북이 처한 현실에서 출발하자는 이야기를 해온지가 오래되었지만, 환상에서의 탈피가 쌍방이 서로 주적主敵임을 새삼스럽게 확인하는 퇴행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 족쇄에서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벗겨내는 것이 최대의 과제다.
이른바 '분단체제론'이나 '통일지상주의'의 허구에서 벗어나 실태를 보고 나라와 민족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
남북이 '통일을 전제로 하는 특수관계'라는 기이한 동상이몽의 합의에서 벗어나 '국제법상의 일반외교관계로 국교를 수립'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해야한다.
기이하다고 하는 것은 이 합의가 쌍방의 통일 지향을 합의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상대에게 흡수되지 않으려는 공포와 불신의 원인으로 되고 있고, 동족 상잔의 비극을 재현할 수 있는 원인으로 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로 주적임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지금이 어쩌면 이런 전환을 결단할 기회일지 모른다.
정부에 진지하게 권한다.
'급변사태 등에 의한 붕괴' 같은 것을 전제하는 것은 정상적인 정책이 아니고, 지금의 정세로 볼 때 오히려 중국에 의해 더욱 안 좋은 상황으로 될 가능성마저 있다.
북이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이며 핵무장한 국가라는 것들이 두 국가로 공존하는 것을 막을 이유는 되지 않는다.
북의 민주와 인권을 위해서도 일대 전환을 결단하기 바란다.
우리 민족이 남방 삼각(해양세력)과 북방삼각(대륙세력)의 사이에 낀 볼모가 아니라, 그 균형을 잡는 주도적 역할을 바라보는 것도 이 전환에서 출발할 수 있다.
‘가치동맹’과 ‘이익동맹’은 국제 관계의 양날이다.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외교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현 정부의 북핵(北核)과 신냉전에 대처하는 방향에 대해서는 지금의 현실에 비추어 부득이한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자유’라는 가치가 전체주의와 권위주의 국가블럭에 대한 방어 차원으로 좁혀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긴 역사에서 볼 때, 문명의 전환을 통해서 자유와 평등 그리고 우애를 질적으로 심화시키려는 우리 공동체의 이상이야말로 진정한 미래 가치이다.
지금으로서는 남북 두 국가가 일반국가관계로 국교를 정상화하고, ‘민족 경제권(經濟圈)’을 형성하는 정도가 현실적인 목표라고 생각한다.
남북이 각각 내부 개혁을 진척시켜서 어떤 꿈을 공유하는 상태로 될지는 미리 예단할 수 없는 미래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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