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녀’에서 ‘혼혈 얼굴’까지…성형으로 본 중국의 변화
미용성형으로 본 중국 여성의 미 인식 변화 <오만한 서구와 혼혈 얼굴>
이유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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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3-07-05
2004년 중국 최초의 성형수술 미녀 선발대회에 참가한 여성들이 베이징에서 열린 최종 리허설 도중 걷기(워킹) 연습을 하고 있다. 베이징/AFP 연합
“서양인들은 오만하다.”
2014년 5월. 중국 상하이 고급 아파트 단지 내 스타벅스에 앉은 20대 여성은 한국에서 온 성형 연구자에게 언짢은 투로 말했다. 중국인들의 성형수술은 그저 예뻐지려는 실천일 뿐인데 서구인들이 ‘우리를 닮으려 노력한다’고 평가하면서 우쭐댄다는 얘기다. 몇 년 뒤 또 다른 중국 여성은 이 시대의 가장 예쁜 얼굴로 이상적인 백인 얼굴과 동양인의 외모가 섞인 ‘혼혈 얼굴’을 꼽았다. 현대 중국 여성의 미인 이미지는 인종과 계급 동학, 글로벌 소비주의와 관계를 맺으며 유동하고 있었다.
<오만한 서구와 혼혈 얼굴>(서해문집 펴냄)은 미용성형을 중심으로 중국 여성들의 미 인식 변화를 탐색하는 오랜 연구 끝에 나온 대중 인문교양서다. 2015년 한국의 미용성형 문화를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 맥락에서 분석한 <성형>을 쓴 태희원 박사가 펴낸 ‘성형 2탄’이자 아모레퍼시픽재단의 지원으로 아시아의 미를 탐구하는 ‘아시아의 미’ 시리즈 18권이다.
지은이는 중국 근현대사와 여성 이미지의 변천사를 검토하며 2014~2021년 중국 상하이·베이징·지난·하얼빈과 한국의 서울, 경기 등에 거주하는 20~30대 중국 여성 16명을 만났다. 주로 대도시에 사는 여성이었지만 출신지는 광둥성·후베이성·랴오닝장성·헤이룽장성 등으로 다양했다.
한국인 독자로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한국의 성형기술이 중국에서 겪는 곤경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중국 시장을 ‘개척’한 한국 미용성형 의료진이 품은 ‘차이나 드림’은 곧 어려움에 부닥쳤다. 한국 미용성형의 상업성과 위험성을 비판하는 중국 내 담론이 증가했고 그곳 미용성형 의사들이 한국 의료진의 기술을 ‘한국 스타일’로 차용해 실속을 챙겼기 때문이다. 중국 의료진의 실력이 한국 못지않다는 대중 여성의 자부심에도 내셔널리즘이 엿보였다.
2009년 중국 성형외과 의사들이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를 찾아 성형수술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 중국 사회에서 새로운 미의 기준과 욕망이 출현하고 담론이 변화하는 장면은 책의 핵심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마오쩌둥 시대의 이상적인 여성 이미지는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는 단단한 철의 노동자, ‘철녀’였다. 사라진 것 같았던 미용성형은 폭발하듯 성장한다. 개혁개방정책 이후 1980년대 말 ‘포스트 마오 시대’는 “성형수술이 중국의 얼굴을 바꾼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2000년대엔 여성의 외모를 이윤 창출로 이용하는 산업 전반을 ‘미녀 경제’라 일컬었다. 여성노동자의 지위가 후퇴하고 여성성의 핵심으로 ‘뷰티’가 진입했으며 “예쁜 얼굴은 쌀(돈)이 된다”는 메시지가 여성을 자극했다.
2003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중국 최초의 인조미녀’ 하오루루의 사진. 전신 성형을 하면서 수술과 회복과정을 공개한 최초의 중국 여성이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최근엔 찍어낸 듯 비슷한 성형미인을 ‘저급 얼굴’이라 하는데, 이를 ‘왕훙(인플루언서) 얼굴’이라 일컫고 “성형괴물”이라며 배척한다. 이와 대비되는 ‘고급 얼굴’은 성형으로 구현할 수 없는 얼굴, 당당한 기운을 내면의 미로 강조하는 ‘중국의 현대적 여성상’으로 부각된다. 저자는 이런 담론 모두가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고 가격을 매길 수 있다는 사고의 틀 안에 있다고 본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추앙받는 ‘혼혈 얼굴’은 비백인 인종의 외모를 비하하는 시각과 짝을 이뤄 시장을 확대한다고 분석한다.
한국의 ‘성괴(성형괴물) 담론’이나 미용산업 등과 비교할 부분이 많지만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아 아쉽다. 하지만 중국 미용성형 문화와 이상적인 여성상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지구적이면서도 지역적인 접점에서 ‘아시안 뷰티’를 연구한 결과로서 믿음직한 교양서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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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서구와 혼혈 얼굴 - 미용성형을 중심으로 살펴본 중국 여성의 미 인식 변화 | 아시아의 미 (Asian beauty) 18
태희원 (지은이)서해문집2023-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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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아시아의 미 (Asian beauty) (총 18권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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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중국 미용성형 문화를 신자유주의 중국 사회의 맥락에서 탐색하여 중국의 여성 뷰티 이상과 의미를 분석한 책이다. 이를 위해 미용성형과 중국의 젠더 담론, 국가 정체성, 글로벌 소비문화를 탐색했고, 신자유주의 중국에서 여성의 미용성형 실천과 그 함의를 좀 더 깊이 있게 살펴봤다. 특히, 첫 번째 인터뷰이가 던진 ‘오만한 서구’ 화두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인터뷰이가 원하는 ‘혼혈 얼굴’까지 따라가면서, 현대 중국 사회에서 이상적 미의 기준과 여성상이 어떠한 양상으로 생성되고 소비되는지 살폈다.
이 책은 5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 ‘뷰티 이데올로기의 변화’에서는 중국 근현대사에서 여성성과 뷰티 개념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2장은 ‘중국 미용성형 산업의 역사’를 살펴본다. 3장은 ‘차이나 드림을 좇는 한국 미용성형 산업의 열망과 곤경’을 다룬다. 4장 ‘셀러브리티 경제와 성형’에서는 중국에서 미용성형과 관련한 화제들을 만들어 내는 중국의 여성 셀러브리티들을 다뤘다. 5장 ‘더 아름다운 얼굴 만들기’에서는 중국 젊은 세대 여성들의 미용성형 경험과 의미를 분석한다.
prologue
1. 중국 뷰티 이데올로기의 변화
미녀는 반혁명적 단어|개혁개방정책과 뷰티·여성성의 귀환|중국의 현대화 프로젝트와 코즈모폴리턴 여성상
2. 중국 미용성형의 역사와 현재
서구적 미(美) 규범과 미용성형의 태동|성형수술과 계급투쟁|“포스트 마오시대, 성형수술이 중국의 얼굴을 바꾼다”|중국 최초의 인조미녀 ‘하오루루’|만국기를 단 의사들|온라인 플랫폼 경제와의 결합
3. 한국 미용성형 산업의 열망과 곤경
차이나 드림을 좇는 한국 의사들|중국 언론에 재현된 한국 미용성형 담론의 변화|한국에 미용성형을 하러 가는 이유와 가지 않는 이유
4. 셀러브리티 경제와 성형
궈징징(郭晶晶)과 왕푸샹(旺夫相) 열풍|뜨거운 엄마? ‘라마(辣?)’ 양미(??)|패기 있는 전형적 중국 미녀 판빙빙(范??)|이국적 인형, 안젤라베이비와 디리러바(迪??巴)
5. ‘더 아름다운 얼굴’ 만들기
아시아 뷰티 경제와 접속하는 소녀들|일상적 차별의 산물들: 부모, 거래, 얼굴 대출|고급 얼굴과 저급 얼굴|혼혈 얼굴과 서구 얼굴
epilogue
감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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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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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태희원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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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여성가족청소년사회서비스원 선임연구위원. 연세대학교 문화학과 박사. 지은 책으로 《페미니즘 교실》(공저), 《성 사랑 사회》(공저), 《엄마도 아프다》(공저), 《성형》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 〈신자유주의적 통치성과 자기계발로서의 미용성형 소비〉 등이 있다.
최근작 : <오만한 서구와 혼혈 얼굴>,<페미니즘 교실>,<성.사랑.사회 (워크북 포함)> … 총 6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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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오만한 서구’에서 ‘혼혈 얼굴’까지,
중국 미용성형 문화 속 미 인식 변화를 탐색하다
중국 미용성형 문화를 신자유주의 중국 사회의 맥락에서 탐색하여 중국의 여성 뷰티 이상과 의미를 분석한 책이다. 이를 위해 미용성형과 중국의 젠더 담론, 국가 정체성, 글로벌 소비문화를 탐색했고, 신자유주의 중국에서 여성의 미용성형 실천과 그 함의를 좀 더 깊이 있게 살펴봤다. 특히, 첫 번째 인터뷰이가 던진 ‘오만한 서구’ 화두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인터뷰이가 원하는 ‘혼혈 얼굴’까지 따라가면서, 현대 중국 사회에서 이상적 미의 기준과 여성상이 어떠한 양상으로 생성되고 소비되는지 살폈다.
“포스트 마오시대, 성형수술이 중국의 얼굴을 바꾼다.”
현대 중국 사회에서 미의 기준과 여성상은 어떻게 변화했나
이 책은 5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 ‘뷰티 이데올로기의 변화’에서는 중국 근현대사에서 여성성과 뷰티 개념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개혁개방정책과 샤강, WTO 가입과 글로벌 소비자본주의 문화의 유입, 미녀경제의 확산, 현대적 중국 여성상의 창조 등이 주요한 장면들이다. 마오시대 중국에서 ‘미녀’는 반혁명적 단어로 금기시되었으나, 2000년대 중국에서는 미녀경제가 가장 핫한 단어가 되고 있다.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가 곧 돈이며 성공이라는 문구가 상식처럼 퍼져 나갔다. 미녀경제와 대비되면서 창조된 ‘중국의 현대적 여성상’은 성공한 여성 이미지를 통해 재현되었고, 외면의 미뿐만 아니라 우아한 매너와 풍부한 지식, 대담함, 통찰력 등 현대적 버전의 내면의 미 모두를 갖춰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한편, 뉘한즈(女汉子)와 같이 규범적 여성성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창의적 실천들도 감지된다. 중국의 젊은 세대 여성들은 외모를 치장할 자유를 얻게 됐지만, 여성성에 뷰티를 핵심에 두는 또 다른 규율에 종속되고 있다.
2장은 ‘중국 미용성형 산업의 역사’를 살펴본다. 동아시아에서 미용성형은 서구 의료기술의 유입이라는 측면에서 일본, 한국, 중국이 유사하지만, 중국은 공산주의 정권 수립으로 인해 다른 경로를 걸었다. 문화혁명 시기를 거치면서 미용성형은 부르주아에 영합하는 기술로 탄압의 대상이 되었고, 개혁개방정책 이후에야 그 얼굴을 다시 내밀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국의 WTO 가입으로 부와 아름다움을 흠모하는 시대가 시작됐고, 성공을 위해서는 아름다운 외모가 필수라는 ‘지금의 상식’이 출현했다. IT를 접목한 의료미용 앱을 개발한 CEO들은 의사들의 ‘마이크’를 낚아챘고 중국 미용성형 문화를 설명하고 산업을 확장하는 앞자리에 섰다.
3장은 ‘차이나 드림을 좇는 한국 미용성형 산업의 열망과 곤경’을 다룬다. 2000년대 초반 한국 정부는 ‘메디컬 코리아’를 실현할 대표 사업으로 미용성형 산업을 선정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의사들은 중국 시장을 개척하는 기업가로 변모했다. 중국 언론은 한국 미용성형의 상업성, 위험성을 비판하는 담론을 증
폭하고 있고, 중국 미용성형 의사들은 한국 의사들의 미용성형 기술을 한국 스타일로 차용하며 실속을 챙기고 있다. 상업화된 한국 성형의료의 문제와 더불어 반한 감정, 중국 특색의 미를 주장하는 여성들의 자부심에서 중국의 내셔널리즘이 엿보이며, 이는 한국 미용성형의 차이나 드림을 곤경에 처하게 만든다.
4장 ‘셀러브리티 경제와 성형’에서는 중국에서 미용성형과 관련한 화제들을 만들어 내는 중국의 여성 셀러브리티들을 다뤘다. 중국의 미용성형 담론은 서구적 혹은 한국적 미(美)의 추종이 아니라 중국 내부에서 인정받는 아름다운 얼굴의 예시를 찾고 이와 관련한 중국 내부와 관념과 가치들에 관한 이야기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셀러브리티를 둘러싼 미용성형 스토리에는 부와 인기에 대한 열망, ‘중국 특색’에 대한 자부심, 글로벌 패션 뷰티의 화려함에 대한 흠모가 자리한다. 여성 셀러브리티에 대한 관심과 외모 논평은 미용성형 서사와 병렬 배치되며, 의혹 혹은 진실과 무관하게 미용성형의 가능성을 예시하는 지식들을 생산한다.
5장 ‘더 아름다운 얼굴 만들기’에서는 중국 젊은 세대 여성들의 미용성형 경험과 의미를 분석한다. 미용성형 경험은 글로벌·아시아 뷰티경제와의 접속, 일상적 외모 차별과 부모의 기대, 문화적 내셔널리즘이 얽혀 있는 장 안에서 구성된다. 여성들은 젊음과 뷰티를 사회적 인정과 경제적 이익으로 교환하고자 하는 주체적 의지를 나타내지만, 여성이 보여지는 존재라는 점에 대해서는 수긍하는 태도를 보인다. ‘현대적 중국 여성의 얼굴’이 이상화되면서 고급 얼굴과 저급 얼굴이라는 차별적 이분법이 생성된다. 최근에는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서구 백인‘과 아시아인의 혼혈 얼굴이 성형 롤모델로 인기를 얻고 있다. 혼혈 얼굴은 서구적인 미에 대한 각색과 변형, 어리고 유순한 여성상의 강조, 비백인 인종에 대한 혐오 정서를 흡수하면서 팽창하는 중국 미용성형 시장의 얼굴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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