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석
Favourites ·
5 d
·
자오팅양의 <천하>와 <천하체계>는 내가 2015년 이래로 하고 싶어했던 작업을 체계적으로 잘 구성해놓았다. 읽을수록 한탄하게 된다. 아, 내가 이걸 썼어야 했는데.. 더 잘 할 수 있는데.. 서양이 "자유"를 추구한다면 동양은 "질서"를 추구한다는 그의 주장이 내가 하고 싶던 얘기였다. 사람 사는건 적어도 개인의 레벨에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나 비슷비슷하다.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질서가 필요하고, 질서를 자유를 보장해줌으로써만 스스로를 정당화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와 질서는 배치되는 게 아니라 의존적 관계를 형성하며 발전해나간다.
문제는 이 운동과정 자체만 놓고 보면 우리가 동서양의 차이를 판별할 수가 없다. 동양에도 자유가 있고 서양에도 질서가 있다. 자유와 질서의 순환과정을 보고 있으면 동서양이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아시아의 '법치주의' 운운하는 역사학자들이 능력이 부족하다거나 내셔널리즘에 사로잡혀서 그러는 게 아니다. 개인 레벨에서 보면 비슷비슷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개인레벨에서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사소한 차이'가 전체로 확장될 때 큰 격차를 낳게 되는 걸 보려면 결국 자유와 질서의 운동을 총괄하여 보아야 한다.
자오팅양은 개인→시민사회→국가로 진행되는 서양적 자유의 전개와 천하→전제국가→가정으로 전개되는 동양적 질서의 전개를 대비시킨다. 개인이 '사회계약'을 통해 "인민"이라는 국가의 권력적 기반으로 작동하게 된다면, 가정이라는 도덕적 공동체가 형성한 "민심"이 전제국가를 움직이고 천하대세를 결정짓는다. 탁월한 분석이다. 특히 "가정"을 설정하는 것에서 정말 감탄했다. 아, 그래. 중국사와 한국사를 공부해보면 결국 가족이라는 걸 건들지 않을 수 없는데 이 가족을 유럽적 의미의 가족과 등치시키는 건 곤란하다. '가정'이라는 개념으로 설정해서 거기서부터 파생되는 도덕적 감각이 민심을 형성한다고 하는 건 정말 탁월하다. 민심이라는 어떤 "덩어리"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개념으로 조성하기 어려운데 그걸 잘 해냈다.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이런 작업들을 더 많이 읽고 체계화를 제대로 해서 전제주의라는 개념을 잘 사용해보고 싶다. 잘할 수 있을 듯한데.. 일본 사상사와 중국 사상사도 좀더 깊게 공부해야 하는데 할 일이 너무 많다. 일단은 내가 생각하는 건 근대사회론을 통해서 근대사회에 대한 나의 이해를 체계화해놓았으니 그에 기초해서 일본, 중국 등의 근현대사와 사상사를 다시 되짚어보며 좀 이론적 체계화를 시도해보면 되지 않을까 한다. 잘해보고 싶다. 이걸 제대로 해보려고 마르크스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마르크스라는 주박에 사로잡히는 바람에 정작 할 일을 못하고..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