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27

알라딘: 북펀드 『한국전쟁의 기원』 두 책

알라딘: 북펀드
14,337,000원, 149명 펀딩 / 목표 금액 10,000,000원
펀딩 중 (마감 2023-05-21, 출간예정 2023-05-22)
  • 2023-04-26에 목표 금액을 달성했습니다.
  • 100자평 작성하면 추가 마일리지 1% 적립 

*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 스토리
  • 구성
  • 알라딘굿즈
  • 유의사항
  • 응원댓글


한국전쟁을 다뤘지만, 사실 전쟁을 넘어 한 시대와 역사에 대한 증언이 된 현대의 명저!
국내외를 통틀어 한국전쟁에 관하여 이 연구를 넘어선 책은 단연코 없다!

“상당히 자랑스럽게도 『한국전쟁의 기원』 두 책은 세 가지 상을 받았다.
1권은 미국 역사학회에서 19세기 이후 시대를 다룬 가장 우수한 저서에 수여하는 존 킹 페어뱅크John King Fairbank 저작상을 받았다.
2권은 국제연구협회International Studies Association의 퀸시 라이트Quincy Wright 저작상을 받았다. 그리고 1984년 전두환 독재정권은 1권을 금지도서 목록에 올렸는데, 두 권뿐인 외국인 저서 가운데 하나였다.” _ 브루스 커밍스, 한국어판 서문에서

책 소개

글항아리 ‘현대의 고전’ 시리즈 제16권으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이 출간되었다. 1권이 나온 1981년으로부터는 43년 만에, 2권이 나온 1990년으로부터는 34년 만에 완역된 것이다. 역자는 해외 한국학 명저들을 국내에 번역·소개해온 김범 국사편찬위 편수연구관이다. 1·2권 합쳐 18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며 번역에는 5년이 소요되었다. 독서의 편의를 위해 2권은 상·하 두 책으로 분권하여 독자들과 만난다. 브루스 커밍스가 한국어판 완역을 기념하여 새롭게 쓴 장문의 서문이 실려 있어 그 가치를 더욱 빛낸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의 기원』은 읽어본 사람은 없지만 못 들어본 사람도 없을 정도로 워낙 유명한 책이어서, 그 번역 사정에 얽힌 과거사를 잠깐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1권은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모두 번역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원서가 출간(1981년)된 5년 뒤 두 번 번역됐고(김주환 옮김, <한국전쟁의 기원>(상·하), 청사, 1986; 김자동 옮김, <한국전쟁의 기원>, 일월서각, 1986) 일본에서는 그보다 조금 늦게 역간됐다.(<朝鮮戦争の起源―解放と南北分断体制の出現> 1권, 鄭敬謨·林哲 옮김, シアレヒム社, 1989; 2권, 鄭敬謨·加地永都子 옮김, シアレヒム社, 1991)
이런 상황은 2권의 번역에서 바뀌었다. 미국에서 2권이 출간(1990년)되고 12년 뒤 일본에서는 1, 2권 전체를 다시 번역해 펴냈다. 그러니까 1권은 개정판이고 2권은 초역본이다. 1권은 처음 작업한 번역자 세 분이 그대로 참여했고, 2권은 전문 번역가 한 분이 새로 들어왔다.(<朝鮮戦争の起源 1―解放と南北分断体制の出現>, 鄭敬謨·林哲·加地永都子 옮김, 明石書店, 2012; <朝鮮戦争の起源 2―‘革命的’ 内戦とアメリカの覇権>(上·下), 鄭敬謨·林哲·山岡由美, 明石書店, 2012) 일역본의 중요한 특징이자 장점은 전공자와 전문 번역가의 협업으로 이뤄졌다는 것인데, 내용으로나 언어로나 수준 높은 학술서를 번역하는 데 이상적인 조합이다. 한국에서는 일역본이 나오고도 20년이나 더 지난 2023년에야 초역본이 나오게 됐다.
한국 현대사를 다룬 가장 중요한 저작 가운데 하나가 그 사건이 일어난 당사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먼저 완역됐다는 사실은 우리 학계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나라와 일본의 학문적 태도―특히 번역과 관련해―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 작은 창문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한국전쟁 연구에 ‘내전’이라는 획기적인 시각 전환을 촉구한 책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한 논의는 소련의 팽창주의적 정책이 전쟁을 발했다는 ‘전통주의’와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이 소련의 군사행동을 유발했다는 ‘수정주의’로 나뉘어졌다. 두 주장은 모두 해방 직후의 남북한은 전쟁을 주도할 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으며, 국제적 요인에 의해 전쟁이 일어났다는 해석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한국전쟁 연구 초기에는 스탈린이 한국전쟁을 주도했다는 전통주의가 주류를 형성하였으며 한국의 학자들도 대부분 전통주의적 입장을 지지했다. 전통주의자들은 스탈린이 마오쩌둥과 김일성을 부추겨 전쟁을 일으켰다고 주장했지만 스탈린의 의지만을 중시할 뿐 김일성의 동기나 의지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전통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된 수정주의는 한국전쟁이 남한의 이승만 정부와 미국의 맥아더, 중국의 장제스 등의 음모에 의해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사실관계 여부를 떠나 전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함으로써 한국전쟁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들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수정주의자들은 미국이 이승만의 북한 공격을 방조하여 북한의 남침을 유도했으며, 전쟁을 중국으로 확대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을 무너뜨리고자 했다고 주장한다. 수정주의 학파의 개척자로 불리는 미국의 D. F. 플레밍Fleming 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냉전과 그 기원The Cold War and Its Origin』에서 기존의 전통주의 해석과는 다르게, 미국이 자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소련을 압박하게 되었고 결국 소련의 군사적 대응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초기 수정주의 학자인 가브르엘 콜코Gabriel Kolko도 이승만 정부가 전쟁 초기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남한 군대를 고의적으로 급하게 퇴각시키면서 미국의 참전을 요구했고 김일성이 이러한 음모에 말려들면서 남침하게 되었다며 미국의 ‘전쟁 유도설’을 주장했다.
초기 수정주의가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태에서 전쟁의 책임을 찾은 것과는 달리 브루스 커밍스Bruce Comings는 당시 한반도 내에 존재했던 계급적 대립과 이념적 대립을 미국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개입함으로써 전쟁이 발발했다고 주장했다. 커밍스는 1945년 남북한이 독립한 당시부터 심각한 이념 대립과 충돌로 내전과 같은 혼란이 지속되고 있었으며 이러한 혼란의 결과가 전쟁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미국이 개입하여 전쟁이 확대되었으며 미국은 확전의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했다. 커밍스의 주장은 전통주의적 시각이 다수를 차지하던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이었다.
커밍스는 한국전쟁은 내전Civil War이었다고 단정한다. 그는 “한국전쟁이 대립하는 두 체제의 한국인들이 그들만의 목적을 위해 싸운 전쟁으로 한국인이 한국인을 공격한 내전이었으며 단지 미국이 개입하여 전쟁이 길어진 것에 불과한 것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1990년대 구소련의 문서 공개로 김일성과 스탈린의 역할이 밝혀진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미국의 남북전쟁과 한국전쟁이 유사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해방 직후 남한의 다수 대중은 사회주의 국가 수립을 강력히 희망했고 외세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남한에서 사회주의 혁명-내전이 일어났을 것”이라며 한국전쟁은 북한의 사회주의 세력과 남한의 친미 우익세력의 대립이 발전하여 일어난 내전이었다고 주장한다.

한국전쟁의 기원은 1차적으로 1945년부터 1950년까지 일어난 사건에서 찾아야 하며, 2차적으로는 일제강점기에 형성돼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부터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한국에 특별한 흔적을 남겨놓은 세력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막간—식민 지배로부터의 해방에서 시작해 분단 국가 수립을 거쳐 1950년 대포의 포성으로 끝난—의 특징은 혁명적 성격이 짙은 시기였다는 것이다.
1945년 8월 한반도 전역에서는 정치·경제·사회의 전면적 변화를 요구하는 주장이 터져나왔다. 정치 변화의 요구는 정당, 인민위원회, 노동조합, 농민·청년·여성의 대중조직 같은 여러 단체를 스스로 결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제강점기 이후 대부분의 농민이 지주에게 지배된 소작제 아래 놓여 있던 토지 상황에 초점을 맞춘 사회·경제적 변화의 요구는 이런 폭발적 정치 참여를 불러왔다. 다시 말해 1945년이라는 격변기에 전개된 한국 정치를 연구하려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근본 문제인 지주와 농민의 관계를 다뤄야 한다. 이것은 일본 지배에서 벗어났을 때 한국 사회가 지닌 본질적 특징이었다.
1950년에 일어난 전쟁의 기본 쟁점은 해방 3개월 만에 명백해졌고, 10만 명 이상이 희생된 농민 반란·노동운동·유격전과 38도선 일대의 전투를 유발했다—이것은 모두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발생했다. 달리 말하면 1945년부터 시작돼 혁명과 반동의 변증법을 거치며 전개된 충돌은 국내적이고 혁명적이었다. 1950년 6월에 시작된 재래적 방식의 전쟁은 그저 다른 수단으로 이 전쟁을 지속한 것이었다.
그 전쟁은 본질적으로 내전 성격을 지니고 있었지만, 한국은 진공 상태가 아니었으며 서로 주도권을 다투는 강대국과 한국의 힘으로는 어떻게 하기 어려운 외부 힘의 소용돌이 안에 있었다. 남한과 북한 모두 상처 입지 않은 채 해방을 맞지는 않았다. 양쪽 다 일제강점기를 겪었다. 그 식민지 외피는 오랜 기간 지속되다가 너무 갑작스럽게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아울러 1945년 한국은 사회 내에 잠재하는 모순이 뚜렷이 나타나자 그것을 홀로 해결하지 않고 전후戰後 시기를 지배한 새로운 두 강대국, 소련·미국과 두 고대 국가, 국내 혁명에 휩쓸려 있던 중국과 몰락한 제국 일본과 함께 풀려고 했다. 이처럼 40년 가까이 일제에 속박되었던 한국은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분단되는 비운을 맞았다. 일본부터 만주까지 길고 복잡하게이어진 구조는 즉시 해체됐고, 그 뒤 5년 동안 한반도에 제기된 질문은 어느 쪽—모스크바·워싱턴·베이징—에 새롭게 충성할 것인가였다. 또는 한국은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선택할 수 있는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통일국가의 이상을 실현할 것인가? 한국전쟁은 이런 문제와도 연결돼 있었다.

1권의 핵심

제1권에서는 해방 이후 첫해를 주로 다뤘다. 그 시기에 남한과 북한 모두 기본 구조가 형성되고 전쟁의 씨앗이 뿌려졌기 때문이다. 1950년과 전쟁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연구가 집중되면서 그해는, 그리고 때로는 1948년에 이르는 기간까지도 대체로 무시돼왔다—마치 1948년이나 1949년 이전은 중요하지 않다거나 남한에서 3년 동안 시행된 미군정만 간단히 언급하면 된다는 태도다. 그러나 1948년 남한과 북한에서 분단 정권이 수립된 것은 1945년과 1946년에 만들어진 사태의 최종적 표현일 뿐이며, 한국전쟁은 그 이전 5년 넘게 계속된 갈등의 대단원이었다. 요컨대 1945년 8월 및 1950년 6월과 관련된 주요 사건들은 끊기지 않는 사슬로 얽혀 있다.
1945년부터 1950년에 이르는 기간에는 그 자체의 배경도 있다—한국의 옛 질서를 무너뜨린 36년의 식민 지배와 거기서 동원된 여러 방법은 일제가 무너지면서 나타난 새로운 체제를 준비하고 형성하는 기반이 됐다. 일본의 통치는 변화를 촉진하거나 억제하면서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를테면 한국 노동계급의 출현을 촉진하고 기업가적 요소의 발전을 저해했다. 일제는 중심부인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를 근대화시켰고, 1931년 이후 한국과 만주를 통합하려고 시도하면서 도로·철도·항만·통신 시설을 건설했다.
또한 1권에서는 냉전의 기원이 한국 문제 안에 잉태되어 있었다는 여러 증거를 검토하고 있다. 미·소의 전형적인 냉전 관계는 종전 뒤 아시아에서 미국이 소련과 직접 맞선 유일한 나라인 한국에서 처음으로 나타났다. 봉쇄정책은 비록 워싱턴의 승인을 얻지 못했지만 처음부터 추진됐다. 해방 뒤 첫해 중대한 몇몇 시점에 서울에 있던 봉쇄론자들은 존 J. 매클로이, 애버렐 해리먼, 조지 케넌 등의 지지를 얻었다. 1945년 한국은 미국에게 중요하지 않은 벽지였지만, 훗날 다른 나라와 지역이 가야 할 길을 보여주었다. 서울의 군정청이 추진한 모험적이고 선제적인 정책은 워싱턴의 동요와 비난을 불러일으켰지만, 끝내 호의와 지지를 얻었다. 지휘권을 쥔 쪽은 워싱턴이 아니라 서울인 것 같았다. 달리 말해 1945년이나 1946년 무렵 워싱턴에서 잘못된 정책이라고 판단한 것은 1947년이나 1948년이 되자 앞을 미리 내다본 통찰로 평가됐다. 물론 1950년에 감지된 소련의 한국 침략에 맞서 미국의 대응이 전 세계적 규모로 전환되면서 한국은 전면과 중심으로 이동했고 긴박감이 뚜렷해졌다. 그러나 무력 충돌 및 그 결정과 관련된 영향력은 처음부터 미군정이 가진 것으로 보인다.

2권의 핵심

『한국전쟁의 기원 2』는 분량이 방대하여 한국어판에서는 2권으로 분책했다. 2권에서 브루스 커밍스는 방법론과 이론적 고찰로 시작한다. 참을성 없는 독자들은 건너뛰고 싶어질 것이나 이 이론적 고찰에 대한 이해 없이는 본문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1부에서 저자는 1940년대 후반 미국과 세계의 관계에 관련된 이론적 주장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대체로 많은 문헌들에서 잊혔거나 오해되고 있다고 판단되는 미국과 관련된 진실을 복원하려고 시도했다. 1권에서 다룬 시대는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이 전쟁의 기원을 배태한 논리를 지배했지만, 1947년 무게중심이 워싱턴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전체적 상황에서 볼 때 미국 쪽을 자세히 다루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에 책의 전반부는 미국 내부의 사정에 집중된다. 2부와 마찬가지지만 1부에서는 연대순으로 접근하기보다 1947~1950년을 한 덩어리로 다뤘다. 1부와 2부 모두 사실을 폭넓게 밝혀 중심 사건을 평가하는데 공통된 기반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2부에서는 한국의 내부상황을 다시 검토해 남북의 특성과 외국과의 관계를 평가했다. 3부는 중심 사건의 서곡이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살펴본 각 장은 초여름 해안에 부딪치기 전 세력을 키우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파도와 같다. 커밍스는 1950년 6월 25일 직전의 몇 달, 몇 주, 며칠을 오가며 몇몇 장들을 긴박하게 구성했다. 18장「누가 한국전쟁을 일으켰는가?」는 한국전쟁에 관련된 전통적 논의에서는 출발에 해당하지만 이 책에서는 결말이다. 그 뒤의 4부에서는 전쟁의 기원을 비쳐주거나 그것이 내전이자 혁명전쟁이었다는 저자의 해석을 뒷받침해줄 여러 측면을 담고 있다.
2권의 부제 ‘폭포의 굉음’은 저자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따뜻하고 화창한 날 미국 군함이 처음 인천항에 들어간 지 5년이 조금 넘은 뒤 시베리아의 한파가 한국과 미국을 덮쳤을 때 두 나라는 깊디깊은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국에게 그 심연은 일본에서 해방된 뒤 참으로 대담하고 위험하게 자치를 시도한 것이었고, 미국에게는 세계의 패권을 무모하게 추구한 것이었다. 그 표현은 딘 애치슨에게서 따온 것인데, 그는 1950년 연방의회 출석을 준비하면서 유럽과 두 대양大洋이 미국 건국 이후 약탈적 세력에서 미국을 보호해준 방벽이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것은 모두 끝났다. 영국 제국이 쇠퇴하고 자신이 세계의 주도권을 잡게 되자 미국은 처음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폭포의 굉음이 새롭게 들린” 사람의 처지가 됐다는 것이 부제에 담긴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단순히 한국전쟁의 기원을 넘어 해방정국부터 전쟁 발발까지 이 땅에서 벌어진 좌우대립의 역사, 이를 관찰·간섭·통제해온 미 군정과 워싱턴의 상황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복원해냈다는 점에 그 가치가 있다. 역자 김범 국사편찬위 편사연구관은 ‘옮긴이의 말’에서 “이 책을 번역하면서 해방부터 한국전쟁까지 좌우대립이 얼마나 치열했고 좌익의 세력이 얼마나 번성했는지 새삼 실감했다. 지금 우리가 이런 자유를 누리는 것이 놀랍게 느껴진 때도 적지 않았다”라고 적었다.








편집자 책소개

한국에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1·2』는 그 높은 명성만큼이나 두터운 무지의 장막에 가려져 있었다. 유명하지만 정작 읽은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인데 2권이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탓이다. 이 책의 1권은 미국에서 1981년에 출간되었고 2권은 10년쯤 뒤인 1990년에 출간되었다. 1권의 번역은 1980년대에 바로 이뤄졌지만 1990년에 출간된 2권은 30년이 넘도록 번역되지 않았다. 그런데 1945~1947년 시기를 다룬 1권보다 1947~1950년 시기를 다룬 2권이야말로 한국전쟁과 직결되고 분량도 1권의 두 배 정도라서 2권이 번역되지 않는 건 어찌 보면 심각한 문제이기도 했다. 저자는 한국의 한 출판사와 2권의 한국어판 출간 계약을 맺었지만 어떤 사정인지 결국 나오지 않았고, 계약은 종료되었다. 그렇게 표류하던 중 2017년 뜻있는 소장학자가 단독으로 1·2권을 모두 번역해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글항아리에서 『연산군』을 저술했고, 『무신과 문신』을 번역하신 김범 국사편찬위 편사연구사였다. 그는 제임스 팔레, 존 던컨, 에드워드 슐츠 등 해외 한국학의 주요 성과들을 한국에 꾸준히 번역 소개해왔고 그 연장선상에서 이 책도 옮긴 것이다. 순수한 번역에만 5년이 걸린 원고지 7000매 분량의 대장정이었다. 김범 선생이 우리에게 연락을 주신 건 출판인으로서 매우 큰 행운이었다는 건 이 책의 서문만 읽어보아도 알 수 있었다.
나와도 벌써 나왔어야 하는 책의 원고가 도착한 만큼 서둘러 펴내야 했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의 편집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저자의 사색은 깊고 다채로웠으며 문학적 표현이 수시로 등장하는데다 지독한 만연체로 인해 난공불락이었다. 특히 2권은 문법이 파악이 안 될 정도로 매우 어려운 영어를 구사하고 있어 번역과 교열이 엄청 힘들었다. 이런 내용은 <옮긴이의 글>에 자세히 소개되었다. 편집 막판에 브루스 커밍스 선생이 장문의 한국어판 서문을 보내주셔서 이것이 가뭄 끝 소나기처럼 달았다. 여러 차례 써달라도 요청을 해도 감감무소식이라 몸이 편찮으신가 했는데 분량과 내용이 압도적이라 기다렸던 보람이 있었다. 이 책의 편집 과정에는 한국전쟁 전공 교수 1명, 밀리터리 전문가 1명, 인문서 편집경력 20년차 2명과 보조 편집자 2명이 달라붙어서 2년 정도의 지난한 작업을 했다. 마치고보니 비교적 만족스러운 상태로 세상에 내놓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 과정이 6년이나 걸렸던 점은 출판사의 역량에 따른 한계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기다려주신 저자, 역자, 독자께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죄송하다는 말씀도 드린다. _ 편집자 강성민




한국어판 서문 발췌

나는 당초 두 권을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1940년대 후반의 한국 관련 자료들을 연구하면서 나는 두 권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는데, 1947년은 미국 정책에서 분수령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냉전은 트루먼 독트린이 발표되면서 본격화했을 뿐 아니라 딘 애치슨은 그 독트린을 한국을 방어하는 데까지 확장하려고 했다. 나는 이것을 1947년 1월에 작성된 다른 자료에 스테이플러로 첨부된 수기 메모에서 처음 봤는데, 거기서 조지 마셜 국무장관은 남한에 단독정부를 수립하고 그것을 일본 경제와 연결시키라고 애치슨에게 지시했다. 이것은 완전히 수정된 일본 정책의 일부였는데, 일본 인접 국가들의 산업을 복구하는 방침을 철회하고 일본의 군사력과 정치력을 박탈하되 경제적 거점으로 다시 복원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었다(이것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1977년 나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있었는데, 한 직원이 큰 손수레 가득 골판지 상자를 싣고 가면서 내게 그 안에 든 것을 읽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것은 ‘242 기록군Record Group’인 ‘노획 문서’였는데, 1950년 가을 미군이 북한을 점령했을 때 수집한 출판물과 극비 자료의 보고였다. 갑자기 내 연구 주제가 내 앞에 펼쳐졌다. 이를테면 1940년대에 발간된 『노동신문』은 북한 바깥에서 이용할 수 있는 복사본이 없었지만, 이 문서에는 그 공식 기관지가 거의 다 들어 있었다. 2년 넘게 이 자료들을 읽으면서 북한에 대한 내 이해는 극적으로 달라졌다.
1권에서는 기존의 미국 비밀문서와 1940년대 후반 남한에서 간행된 자료를 주로 이용했지만 이제 나는 어떤 기록 보존 담당자도 볼 수 없었던—그들은 그 언어를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자료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CIA와 그 밖의 정부 기관이 오랫동안 이 문서들을 간헐적으로 삭제한 정황이 있었지만 대부분 그것은 1951년의 자료를 손에 들고 있는 것과 같았다). 한국전쟁과 관련된 글을 쓴 미국 학자들이 대부분 한국어를 읽지 못한다는 것은 슬픈 사실이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인 윌리엄 스툭William Stueck은 242 기록군에 흥미로운 것이 있느냐고 내게 뻔뻔스레 묻기까지 했다. 당신의 관심을 끌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 두 가지 신념은 내가 이 책들을 쓸 때보다 더 깊어졌다. 첫째는 특히 군대와 경찰에서 일본에 협력한 거의 모든 한국인을 다시 고용하기로 한 미군정의 결정이 무엇보다 가장 압도적이고 우선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1945년 한국인 항일 유격대를 추격하던 일본군 대좌였던 김석원이 1949년 여름 내내 38도선의 지휘관이 되리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반면 북한 지도부는 거의 모두 항일 유격대원 출신이었다. 또는 이것을 생각해보라. 일본군 장교이자 서로 좋은 친구 사이였던 두 사람이 1946년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2기로 졸업했다. 그들은 박정희와 김재규다. 그 뒤 베트남에서 프랑스에 협력했던 장교들을 다시 채용하면서 되풀이한 이 근본적인 오판은 식민지에 반대한 투쟁을 거쳐 건국한 미국이 20세기 중반 무렵 그런 지향을 완전히 포기했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 신념은, 1945년에 등장한 인민위원회는 매우 중요했지만 한국전쟁 관련 문헌에서 거의 완전히 무시돼왔다는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좀더 깊이 인민위원회를 연구하면서, 특히 제주도 인민위원회는 3년 동안 평화롭게 존속했지만 섬 인구의 적어도 10퍼센트가 끔찍하게 학살된 수치스런 유혈사태로 끝났고 그 학살은 미국인과 앞서 일본에 협력한 한국인 장교들이 주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누구나 곧 북한이 한국인 대다수가 반역자로 간주하는 사람들을 적대시함으로써 자신들의 입지를 확보할 방법을 찾으리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됐다.
2권을 완성하고 몇 년 뒤 소련의 한국전쟁 관련 문서가 기밀 해제됐다. 내가 이 문서의 내용을 통찰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상당히 빠르게 쏟아졌다. 그 문서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키는 데 소련이 더 강력하게 개입했음을 보여줬다. 242 기록군을 토대로 한 것이기는 했지만, 내가 북한의 독립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은 잘못이었다. 북한이 그의 승인 없이 독자적으로 행동하기에 스탈린은 너무나 엄청난 인물이었다. 소련이 이 전쟁에 참전하려 하지 않았다는 내 주장은 옳았다. 내가 살펴본 정보자료들에 따르면 개전 이후 소련 잠수함들은 한국 해역에서 신속히 퇴각했고, 조선인민군 군사 고문들은 철수하거나 귀국했으며, 1950년 후반 북한이 가장 큰 위기에 빠져 있을 때 스탈린은 그들을 위해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중국이 참전한 부분적인 이유는 동북부의 자국 산업시설을 보호하고 이르면 1920년대부터 중국에서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한 수만 명의 한국인에게 보답하는 데 있었다고 나는 주장했다. 중국 학자들이 많은 새 문서를 바탕으로 한국전쟁과 관련된 뛰어난 저서를 여럿 냈지만 나는 이 문제에 대한 내 판단을 바꿀 이유를 찾지 못했다.
나는 ‘음모론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은 음모에 대한 많은 환상을 갖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에게서 보듯 그것을 입증할 사실은 거의 없다. 1950년 6월 마지막 주에 문서로 작성된 몇 가지 음모가 교차됐기 때문에 독자들은, 특히 2권을 읽으면서, 많은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문서보관소에서 내가 본 것과 같은 자료를 분석한 저명한 역사학자들이 자신의 논저에서 그 자료들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을 보고—이를테면 장제스를 실각시키려는 미국의 쿠데타 계획—나는 그 증거들이 이런저런 문서보관소에서 묵혀지도록 내버려두는 것보다 증거가 있는 한 특정한 이야기를 따르기로 했다. 이 방법도 특정한 문서를 기밀 해제하지 않는 미국 당국 때문에 원활하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모든 작가가 바라는 탐구심 있는 독자들에게 봉사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나는 1945년 이후 이 유서 깊은 나라를 경솔하고 분별없이 분단시킨 미국의 고위 지도자들(당시 존 J. 매클로이보다 더 ‘고위’ 인사는 없었다)이 촉발한 분열에 나 자신을 개입시키지 않으려고 늘 노력했다는 사실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생산된 미 국무부의 많은 문서에 따르면 미국은 유격대 출신의 한국인들이 집권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에 들어갔고, 이제 그들은 그런 유격대의 후계자들이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가지고 평양에 앉아 있다고 말한다(이것보다 실패한 정책은 생각하기 어렵고 해결책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국을 분단시킨 것이 내 조국이었기 때문에 나는 늘 책임감을 느꼈는데, 내 개인적 견해가 어떻든 남한이나 북한 가운데 어느 한쪽을 편들 수 없다는 뜻이다. 결과와 상관없이 나는 면밀한 역사적 탐구가 두 한국이 누려야 할 화해로 가는 최선의 처방이자 방법이라 믿고 있고 늘 그렇게 믿어왔다. 진실은 당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이 경우 진실은 주요 문서들에서 찾을 수 있는데, 거기서 역사의 배우들은 자신이 대중에게 한 말과 곧잘 정반대로 행동했다. 사람들은 한국전쟁에 대한 내 ‘견해’를 자주 묻고 나는 친절하게 대답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나는 이 두 책에서 이전의 기밀문서에 대한 내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언젠가 누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 모두는 자신의 견해를 제시할 권리가 있지만 자신의 견해를 사실이라고 주장할 권리는 없다.
나는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준 한국인들에게 감사하면서 1권을 시작했다. 내가 한국어를 배워 읽을 수 없었다면 그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두 책 모두 한국어로 충실히 번역돼 한국에서 읽을 수 있게 돼 정말 기쁘다.




차례


1권한국어판 서문 007
머리말 025

1부 배경 041

1장 식민지 한국의 계급과 지배 기구 043
식민지 통치 기구 | 철도망의 발달 | 상업 | 노동력의 동원 | 저항운동

2장 식민지 한국의 지주와 소작농 087
일제강점기의 농업 | 한국 농민과 시장의 출현 | 한국의 인구 유출 | 동원과 반란 | 결론

3장 혁명과 반발: 1945년 8~9월 121
일본 식민 통치의 종식 | 조선건국준비위원회 | 조선인민공화국 | 인민공화국에 대한 반대 | 결론

4장 도가니 속의 한국 정책—1943~1945년 미국의 한국 정책에서 나타난 대립 159
신탁통치안의 대두—1943년 3월 | 카이로회담: “적절한 시기에” 독립시킨다 | 얄타와 포츠담: 불확실한 신탁통치 | 전후 최초의 봉쇄작전: 1945년 8월 한국의 분단 | 오키나와에서 서울로 “긴급히 이동하다” | 출발 전의 정책과 계획 | 결론

2부 1945~1947년 중앙의 정치 상황 197

5장 새 질서의 구축: 미군의 진주와 정부•경찰•국방 정책 199
인천과 서울: 새로운 우방과 적 | 식민지 관료 기구의 재건 | 사법과 경찰 기구 | 국방경비대의 출범

6장 남한 단독정부를 향해 249
임시정부의 귀국과 “정무위원회” | 좌익에 대한 탄압 | 토지•미곡 정책 | 결론

7장 국제협력주의적 정책과 일국독점주의적 논리: 경직되는 중앙의 태도, 1946년 291
후견과 독립, 민족 반역자와 애국자: 신탁통치를 둘러싼 혼란 | 궁지에 몰린 하지 | 미소공동위원회에서 남한 과도정부로 | 미소공위의 협상 | 미소공위를 전후한 좌익 탄압 | 좌우합작위원회와 과도입법의원 | 결론: “불만의 소리”

3부 1945~1947년 지방에서 발생한 한국인과 미군의 충돌 351

8장 지방 인민위원회의 개관 353
인구의 변화 | 교통과 통신의 상황 | 토지 소유 관계 | 지리적 위치 | 공백기의 길이 | 정치적 전사와 지표 | 미군의 각 도 점령

9장 지방 인민위원회의 운명 385
전라남도 인민위원회 | 전라북도 인민위원회 | 경상남도 인민위원회 | 경상북도 인민위원회 | 충청남•북도 인민위원회 | 강원도와 경기도 인민위원회 | 제주도 인민위원회 | 결론

10장 9월 총파업과 10월 봉기 451
9월 총파업 | 10월 봉기 | 진압의 방법 | 파업과 봉기의 원인 | 결론

11장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487
소련의 점령 | 하의상달下意上達의 정치 | 상명하달上命下達의 정치 | 김일성의 집권 | 북한의 중앙집권화 | 사회혁명 | 통일전선 정책 | 남쪽으로 부는 북풍 | 결론

12장 결론 : 부정된 해방 541

부록 561
주 570
참고문헌 659
옮긴이의 글 678
찾아보기 680


2-1권한국어판 서문 007
머리말 025

1장 책을 시작하며—미국 외교정책의 방법과 이론에 대한 회고 031
과학과 신비: “고도로 비선형인 불안정한 자유경계의 문제” | 미국 외교정책의 이론을 향해 | 이해할 수 없는 점진주의와 미국의 달걀 | 계급 투쟁의 목적과 그 결과로서의 국가 | 지배자와 이해관계 세력 | 국제협력주의/제국주의와 팽창주의/민족주의 | 미국 외교정책의 요소: 국제협력주의•봉쇄•반격

1부 미국 073

2장 봉쇄와 국제협력주의 075
정치가 애치슨 | “거대한 초승달 지대”: 애치슨 라인 | 케넌의 공학工學 | 전략의 정치: 한국을 둘러싼 국무부와 육군성의 갈등 | 워싱턴의 이승만 로비: “나는 이승만의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곤경에 빠졌습니다” | 유엔이라는 타협 | 2차 미소공동위원회 | 유엔과 1948년 선거

3장 반격과 민족주의 133
미국 민족주의의 재검토: 고립주의/반격의 정치•경제 | 팽창주의와 광물 | 반격론자와 공군력 | 맥아더와 윌러비: 지방의 반격 사령부 | 중국 로비, 매카시즘, 반격 | 제임스 버넘: 개입주의의 이론가

4장 예정된 미로로 들어가는 운명: 첩보원과 투기자 195
중앙 정보기관 | 도노번의 냉전 거점 | 동아시아의 비공식적 관계자들: 셔놀트, 폴리, 윌로어, 쿡 그리고 그 밖의 중요 인물 | 굿펠로의 특수 임무 | 미로 속의 두더지: 영국의 첩보원 | 금광을 모두 점유하다: 황금•텅스텐•흑사黑砂•콩 | 콩의 가격 조작 | 결론

5장 관료 기구에 침투한 반격 245
봉쇄와 반격: 일본과의 관계 | 넓어진 초승달 지대 | 일본 로비와 미국의 정책 | 국가안보회의 문서 68의 봉쇄와 반격 | 결론

2부 한국 283

6장 남한의 체제 285
청년 단체의 대두 | 서북청년회 | 조합주의로 조직된 노동 | 남한 체제의 이념 | 교육자 안호상 | 한국의 자유주의와 이승만의 적대 세력 | 이승만의 지도력 | 이승만과 미국인 | 대일 협력의 문제

7장 남한 체제에 대한 저항 355
1947년: 의미 없는 1년 | 촌락에서 전개된 투쟁 | 제주도의 반란 | 여순반란

8장 유격대 투쟁 397
전라도의 유격대 | 경상도의 유격대 | 유격대가 사용한 방법 | 외부의 개입과 진압 활동 | 결론

9장 북한의 체제 427
대중 정당 | 협동조합주의과 혁명적 민족주의 | 정치적 탄압 | 경찰과 첩보

10장 소련과 북한 471
소련계 한국인 | 북한의 정치•경제와 소련 | 소련을 보는 북한의 시각

11장 북한의 대중 관계 505
1949~1950년 소련군 철수와 중국 영향의 유입 | 군대 통제라는 문제 | 마오쩌둥의 승리라는 다루기 힘든 영향: 동방은 붉은가? | 소련의 원자폭탄 | 결론

주 541
옮긴이의 글 603
찾아보기 607


2-2권3부 1950년 6월의 서곡 009

12장 점 간격: 미군 철수, 38도선 일대의 전투, 유격대 진압 011
봉쇄선 위의 한국 | 제한전과 전면전 | 1949년 38도선 일대의 전투 | 유격대 문제의 최종적 해결 | 결론

13장 “연설”: 프레스 클럽에서 제시한 애치슨 방식의 억제 049
예측하기 어려운 사태를 포착하고 이해하는 능력 | 애치슨의 극동 구상 | 타이완을 둘러싼 책략 | 프레스 클럽을 향해 | 평양의 문맹文盲 | 방어에 대한 애치슨의 생각 | 애치슨은 공격이 일어날 것을 고려했는가? | 프레스 클럽 이후의 연설: 총력외교와 인도차이나에 대한 관여

14장 전쟁 직전의 북한 095
1950년 북한에 대한 소련의 영향 | 소련의 대북한 군사 지원 | 북한 군사 행동의 징후 | 북한의 동기

15장 전쟁 직전의 남한 131
“일본 바로 옆”: 한국의 경제적 존재 이유 | 한국과 미국의 군사 관계 | “혼수상태의 위원회” | 5월 30일 총선거 | 혼란—나라를 구하려는 이승만의 노력 | 깊어지는 남한과 중국의 관계 | 홈부르크 모자를 쓰고 참호에 선 덜레스

16장 타이완의 암시 187
“주타이완 미국 군사고문단”의 문제 | 도노번의 특별 임무 | 굿펠로의 특수 임무: 중국기 대신 한국기를 게양하다 | 셔놀트의 특별 임무 | 쿡의 특수 임무 | 침공 | 쿠데타: 총통의 축출을 시도하다 | 결론

17장 6월의 어느 고요한 주말: 전쟁 직전의 도쿄, 모스크바, 워싱턴 239
의외의 삼각관계: 덜레스, 존슨, 맥아더 | 근접성의 위험 | 전쟁 직전 소련의 정책 | 데레비얀코 사건 | 전쟁 직전의 워싱턴

18장 누가 한국전쟁을 일으켰는가?—세 개의 모자이크 273
옹진의 충돌 사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전혀 몰랐다” | 개성에서 일어난 폭발 | 동부로 확대된 전투 | 남한과 북한의 일요일 | “북한이 침공했다는 증거 문서” | 그 밖의 증거 문서 | 두 번째 모자이크 | 정보 오류: “기묘하게 조합된 모자이크” | 선호하는 모자이크 | 결론: 결의의 본래 색깔

4부 종막 345

19장 봉쇄를 위한 전쟁 347
유엔의 행동 | 전쟁에 대한 미국의 반응 | “소련의 정말 엄청난 실수”: 전쟁에 대한 모스크바의 반응 | 중국의 반응 | 부산에 대한 맹공 | 인천 상륙: 거점의 확보

20장 한국전쟁의 정치적 특징: 인민위원회와 흰 파자마 401
서울 점령 | 인민위원회의 재건 | 토지개혁 | 지방 정치 | 남부의 유격전 | “흰 파자마”: 인민 전쟁과 인종차별의 문제 | 잔혹 행위의 문제 | 북한의 잔혹 행위 | 미국의 잔혹 행위

21장 반격을 위한 전쟁 457
커지는 소용돌이 | 남한의 북한 점령 | 크게 입을 벌린 함정: “우리는 메추라기 떼를 쫓아버렸다” | “중국군이 넘쳐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참전 | 호혜주의의 원칙 | 충격에 빠진 워싱턴 | 새로운 무기

22장 결론: 석양 521
패권의 구축과 재편: 한국인의 전쟁이 아니었다 | 얽힌 실과 풀린 실 | 역사와 기억 | 서쪽을 향해: 팽창주의의 종언 | 중심지의 교체

주 550
참고문헌 625
옮긴이의 글 643
찾아보기 647






미디어 서평 및 추천사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출간된 한국에 대한 서양어권 책 중 가장 중요한 책에 속한다. 책의 논지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한국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개발도상국에 대한 정책 수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 한국을, 미국의 한국 정책을, 그리고 한국이 금세기 경험한 전쟁들의 원인 중 일부를 이해하기에 중요한 이정표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 길고 밀도 깊은 연구와 생생한 관찰, 도발적인 주제와 해석 등 보통 길이의 리뷰로는 제대로 평가할 수 없는 책이다.
_그레고리 헨더슨Gregory Henderson, 외교관·『소용돌이의 한국 정치』 저자

기념비적인 연구서. (...) 다른 방대한 책들은 독자들이 지루해하지만, 이 책은 재미있게 읽힌다. 저자는 뛰어난 문체와 도발적인 논거를 통해 독자가 책을 끝까지 읽도록 매혹한다.
_박정신, 전 오클라호마대학 역사학 종신교수

한국에 대해서뿐 아니라 당시 미국 외교정책의 범위에 대해서까지 알려주는 이 책은 수많은 신화를 깨트린다. 저자의 지성과 세심함은 이 굉장한 연구 결과에 일관성을 부여한다. 남북한 국민들의 화해와 재통합을 위해 바쳐지는 책.
_휴 딘Hugh Deane, 저널리스트·『한국전쟁The Koreans War: 1945-1953』 저자




수상 이력

『한국전쟁의 기원』 1권으로 미국 역사학회의 존 킹 페어뱅크 저작상John King Fairbank Book Award, 2권으로 국제연구협회의 퀸시 라이트 저작상Quincy Wright Book Award을 수상했으며 김대중 학술상(2007), 제주 4·3평화상(2017)을 받았다.




지은이 및 옮긴이 소개


지은이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1943년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 출생. 1965년 데니슨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1967년 인디애나대학교에서 석사, 1975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67~1968년 서울에서 평화봉사단US Peace Corps으로 일하면서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1975~1977년 스워츠모어대학Swarthmore College 조교수를 시작으로 1977~1987년 워싱턴대학교, 1987~1994년 시카고대학교, 1994~1997년 노스웨스턴대학교 교수를 지낸 뒤 1997년부터 다시 시카고대학교에서 석좌교수 등으로 재직하고 있다. 1999년 미국 예술·과학 학술원American Academy of Arts and Sciences 회원으로 선출됐으며, 앞으로 나올 『케임브리지 한국사Cambridge History of Korea』의 현대사 부분 편집장을 맡고 있다.
주저인 『한국전쟁의 기원』 1권으로 미국 역사학회의 존 킹 페어뱅크 저작상John King Fairbank Book Award, 2권으로 국제연구협회의 퀸시 라이트 저작상Quincy Wright Book Award을 수상했으며 김대중 학술상(2007), 제주 4·3평화상(2017)을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전쟁의 기원』 1·2(1981, 1990) 외에 Korea’s Place in the Sun : A Modern History(1997. 김동노 외 옮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2001), North Korea : Another Country(2004. 남성욱 옮김, 『김정일 코드』, 2005), The Korean War : A History(2010. 조행복 옮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2017) 등이 있다.


옮긴이김범
1970년 서울 출생.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이다. 조선전기 정치사를 연구해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저서에 『사화와 반정의 시대』, 『연산군: 그 인간과 시대의 내면』, 『사람과 그의 글』, 『민음 한국사―15세기』(공저) 등이 있고, 번역서에 『유교적 경세론과 조선의 제도들: 유형원과 조선후기』(제임스 팔레), 『조선왕조의 기원』(존 던컨), 『무신과 문신』(에드워드 슐츠), 『조선의 변방과 반란, 1812년 홍경래 난』(김선주), 『동아시아 세계질서의 종막』(김기혁) 등이 있다.






도서명: <한국전쟁의 기원>


분류: 역사 >한국현대사
판형: 153*224mm/양장
쪽수:
1권 704쪽
2-1권 612쪽
2-2권 640쪽

정가:
1권 40,000원
2-1권 35,000원
2-2권 35,000원
출간 예정일: 2023년 5월 22일
펴낸 곳: 글항아리

* 표지 및 상세 제작 사양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상품구성 상세 보러가기 >

1번. 36,000원 펀딩
· <한국전쟁의 기원 1> 도서 1부
· 후원자명 인쇄 엽서 삽지
· 펀딩 달성 단계별 추가 마일리지 적립

2번. 63,000원 펀딩
· <한국전쟁의 기원 2-1> + <한국전쟁의 기원 2-2> 세트 (총 2권)
· 후원자명 인쇄 엽서 삽지
· 펀딩 달성 단계별 추가 마일리지 적립

3번. 99,000원 펀딩
· <한국전쟁의 기원 1> + <한국전쟁의 기원 2-1> + <한국전쟁의 기원 2-2> 세트 (총 3권)
· 세트 케이스
· 후원자명 인쇄 엽서 삽지
· 펀딩 달성 단계별 추가 마일리지 적립




알라딘 굿즈

오직 알라딘 북펀드에서만
3번 옵션(3권 세트) 구매 시,
세트 케이스



※ 알라딘 굿즈가 포함된 구성에 펀딩하셔야 받을 수 있습니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