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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中國近現代史硏究のスタンダード-卒業論文を書く
[연구사의 정리 – 그 목적과 작성하는 법]
1974년, 다나카 마사토시(田中正俊)는 연구사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무릇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어느 누가 써도 같은 『객관적』인 연구사는 단지 하나만 존재할 수 있는 것뿐이다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생각컨대 연구사라고 하는 것은 그 필자가 자기의 문제의식과 관련하여 과거의 여러 연구나 여러 학설에 비판적인 관점을 붙여, 이와 같이 독자적으로 구성한 《연구사》위에 그 《연구사》가 직면하고, 또한 그 발전에 있어 개척되어야하는 이른바 《壁》을 연구자 자신의 문제의식에 비추어 발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자면 《연구사》의 독자적인 형성의 성과로서 이 《壁》을 뚫고 연구를 새롭게 발전시켜 나가는 것에 연구자 스스로가 그의 고유한 사명을 자각시킬 수 있는 《연구사 上의 과제》를 찾아내는 것, 뿐만 아니라 그 과제를 그 자신의 것과 동시에 보편적인 과학성을 구비한 문제로서 설정하는 것을, 《연구사》는, 그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이다.”(田中正俊. 1974/1999)라고 했다. 좋은 말이다.
본론에서는 이러한 틀 속에서 졸업논문의 작성에서 연구사의 정리가 가진 의미와 유의점을 중국현대사연구에 입각하여 생각하고자 한다. 논문이 자신의 연구 성과를 공표하는 것이라고 하면, 선행연구를 정리하는 등의 귀찮은 일은 왜 해야 될 것인가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 먼저 역사연구나 연구사를 정리하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아울러 하나의 연구 주제(테마)를 파악하는 문제의식이나 관점이 시대의 변화와 함께 얼마나 변화했던 것인가, 더욱 나아가 시대를 긋는 연구란 어떻게 이루어져 왔던 것인가에 대해서, 일본의 의화단 연구를 사례로 논하고자 한다. 일본의 의화단 연구는 중국근현대사연구에 항상 새로운 측면을 개척해 온 분야이다. 그리고 그 위에 서서 연구사를 정리하는 경우에, 문제의식이나 관점의 변화를 읽어내는 것의 의의를 생각하고 연구사에서 문제의식과 관점의 변화는 어떻게 관계가 있는지, 또 우리는 거기에서 무엇을 배워 자기 자신의 졸업논문에 살리면(활용하면) 좋은 것일까.
본론의 구성은 아래와 같다. 제1절에는 연구사를 정리하는 것의 의미를, 역사연구의 즐거움은 무엇인가 하는 것부터 생각한다. 특히, 여기에는 논문이 에세이와도 감상문과도 다른 이유를 설명하고, 거기에 연구사의 정리가 필요한 이유를 지적한다. 다만, 이러한 논의도 추상적인 것에 머물러서는 알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제 2절에는 일본의 의화단 연구를 사례로 의화단을 파악하는 관점이 시대의 변화와 함께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이치코 추조(市古宙三), 고바야시 카즈미(小林一美), 사토 키미히코(佐藤公彦), 치바 마사지(千葉正史), 요시자와 세이지로(吉澤誠一郎), 다섯 분의 연구를 중심으로 논한다. 다섯 분의 연구를 거론한 것은 다섯 분의 연구사 시대별 문제의식과 관점의 변화를 현저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 점에서 유래한다. 제 3절에는 연구사 정리의 방법과 요점, 그 의미에 대해 논한다. 마지막으로, 연구사를 정리함에 빠지기 쉬운 함정을 다루며 그런 함정을 피하기 위한 유의점에도 언급한다. 또한 그것을 일상생활에서 가지는 의미로부터 생각한다. 일본의 의화단 연구의 동향을 논한 専論(전문연구)에 사토 키미히코(佐藤公彦, 2001)의 논문이 있다. 본론과 아울러 참조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연구사정리의 목적]
- 역사 연구의 즐거움
역사 연구의 즐거움은 어떠한 점에 있는 것일까. 그것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다고 생각되지만, 필자의 경우, 우선 史料를 읽는 재미를 찾고 싶다. 밤낮으로 몰두하여 史料를 읽고 있으면, 사료의 背後에 있는 역사의 정경이 눈앞에 떠올릴 때가 있다. 또한 그것이 原文書인 경우, 여백에 번짐이나 문자의 흐트러짐, 먹물의 번짐이 있는 상태 등에서 저자의 마음에 있는 동요가 절실히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때, 현재에 있으면서 자신이 과거의 세계로 끌려 들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사료를 읽고 있는 자신으로 돌아온 때에 과거의 세계에 몰입하고 있는 자신이 현재에 있으면서도 과거의 세계를 생각하고 과거의 세계에서 현재를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그것은 현재와는 떨어진 과거의 세계에 일단 몸을 두고 타인의 관점에서 현재를 살며 자기 자신을 상대화하여 보거나 생각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사료를 읽고 자신을과거의 세계에 두는 것으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이다"라곤 한다. 과거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 의해 의미가 부여되며, 현재도 과거와의 관계를 통해 의미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이를) 媒介하는 것은 물론 사료이다. 그것은 史料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품고 있는 문제 의식이 잘 다듬어 자신의 내면이 깊어져 가는 과정이다. 史料는 史料의 측에서 말을 걸어오는 경우도 있지만, 이쪽의 물음에 따라서 대답해 주는 경우도 있다. 물음이 절실하면 절실할수록 史料는 무겁게 대답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사료에서 받아서 가져오는 감각은 각각 다르다. 가능한 한 각자가 얻을 수 있는 감각을 중요하게 하고, 거기에서 각각의 독자적인 세계를 열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문제를 끝까지 파고들어 갔을 때, 어떤 사건이나 형편에 대해 나름대로 자신이 갖고 있던 선입관이나 고정관념이 와르르 무너지고 그것이 무너진 순간에 다른 세계가 뇌리에 나타날 때가 있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무의식적으로 덮고 있던 덮개가 걷어치워지는 순간이다.
과거와의 대화란 사료를 매개로 한 자기 자신과의 대화이기도 하다. 다만 사료를 우두커니 읽으면서 史料의 하나하나에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기성관념으로 부터 해방된 다른 새로운 사실과 해석을 이끌어 내는 연구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만으로는 단순히 혼자만 좋은 것으로서 獨善으로 끝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기쁨이나 독선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도 사람은 스스로 터득한 연구 성과를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검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 다른 이들의 검증을 받는 것은 타자의 관점에서 자기의 논리가 가진 모순과 시점을 씻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거기에서는 다른 이들을 설득하기에 충분할 것 같은 논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논문이 에세이와도 감상문과도 다른 이유이다. 거기에는 논문을 작성하는데 지켜야 할 정해진 것이나 규칙, 필요한 절차나 방법이 있다. 그렇다면 그런 논문에서 연구사의 정리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졸업논문을 위해]
졸업논문을 쓰는 경우, 먼저 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주제이다. 일반적으로 연구 상의 주제 설정은 사료를 읽거나 通史를 보거나 하는 과정에 우연한 의문에서 부터 생기는 것이 보통이다. 다만, 주제를 설정하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 다양한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어쨌든, 졸업논문에서는 주제를 작고 한정된 범위 내에서 설정하는 것이 정석이다. 주제가 크면, 아무래도 중구난방식의 논문이 되어버려 논점이 산만하게 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주제가 정해지면 주제에 따라 선행 연구나 관련 문헌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 연구사를 정리하는 것의 필요성이 생긴다. 연구사를 정리하는 것의 의미는 종래의 연구에서 자신과 같은 주제를 가진 연구의 유무를 조사하고 연구의 중복을 피하는 것, 혹은 자신과 같은 문제 의식을 가진 연구의 존재를 알고 참고하려는 점에 있지만, 그것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연구사의 목적 중의 하나는 선행 연구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자신의 연구에 의의를 갖도록 하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연구의 요점은 축적된 선행연구에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 문제점을 극복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學說史 가운데 자신의 연구를 어떠한 모습으로 意義를 부여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연구에 연구로서의 정당성을 찾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우, 자신의 연구가 종래의 여러 가지 학설과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어야 한다. 즉, 자기 자신은 기존 연구의 어떤 점에 불만을 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수법을 취했는지, 어떠한 결론으로 이끌려고 하는지 명시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서 자신의 주장, 혹은 결론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논문을 쓸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는 연구사를 정리하고 문제 의식을 정할 모든 출발점이 된다. 연구사의 정리는 단순히 연구의 낭비를 덜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기존 연구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자기 연구의 특색을 세우는데 있어서, 또 질서가 서있는 논문을 쓰는 것에서도 필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연구의 기본적인 방향으로서는 큰 틀에서 간과하거나 누락시킨 연구를 보완하고 메우는 것에 있다. 또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선행연구의 내용을 부정하거나 그 구조의 재검토를 구하는 것에 있다. 더욱이 견해가 고정되어 있는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종래와는 다른 시각으로 밝혀 재평가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라도 왜 종래에 이러한 것들이 알려지지 않았는지 혹은 알고 있었음에도 왜 중요시되지 않았는지를 생각해야하는 경우, 그것에 깊이 관련된 것은 연구자 개개인의 문제의식이나 역사를 인식하는 관점이다. 이 일은 연구사의 정리에 관하여 무엇이 어떠한 각도에서 논해져 왔는가하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무엇이 간과되어 왔고 간과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시대적 상황의 변화와 아울러 문제의식과 역사를 파악하는 관점의 변화를 읽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사정리의 요점]
중국근현대사연구의 추이는 “近代”를 어떻게 파악하는가, 또 “중국”이라고 하는 대상을 어떻게 파악하는가라는 점과 연관되어 있다. 요시자와 세이지로는 “근대”란 세계 각지에서의 유사성이 확대되는 경향이 다양성을 능가하는 시대이며, 이 “유사성”은 곧 “근대성”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존재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吉澤誠一郎、2002) 여기서의 특징은 “중국”의 “근대”를 상대화하는 “사회”와 “문화”를 포함한 전체적인 구조의 변질에 있어 파악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과거의 주된 연구에는 분석의 기본이 역사의 단선적인 발전을 기조로 한 階級의 對立에 있었다. 그리고 고바야시 카즈미는 민중의 “反帝反封建”운동이 민중의 심성에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세계를 연 것으로서 의화단의 의의를 찾았다. 의화단운동도 개개의 연구자의 “근대”와 “중국”에 대한 관점과 깊이 연관이 있다. 바꿔 말하면, “근대”와 “중국”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의화단을 파악하는 문제의식에 투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요시자와 세이지로는 무너지는 체제에서의 하나의 상징으로, 고바야시 카즈미는 개척해야 하는 이상세계의 架橋로, 각각 의화단을 파악하고 있는 것의 배경에서는 각각의 연구를 키운 시대의 공기가 느껴진다.
본론에서 취한 이치코 추조, 고바야시 카즈미, 사토 키미히코, 치바 마사지, 요시자와 세이지로 다섯 명의 연구에서의 특징은 개개의 연구를 이룬 시대성이 각인되어 있는 동시에, 선행연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위에서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이치코 유조은 연구에 얽혀 있는 정치성을 배제하고 실증성을 중요시했다. 고바야시 카즈미의 경우에는, 사회경제사 가운데에 형성되어 있는 사회경제사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지적하였고, 1970년대에 민중의 精神史라는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사토 키미히코의 연구는 1980년대 이후의 지역사회사가 제기한 과제와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사회사의 방법을 도입하면서 실증적인 면에서도 독자적인 경지를 열었고 세계에서 으뜸가는 연구를 축적했다. 1990년대의 치바 마사지의 연구는 과학기술의 발달에 대한 예민한 감각에서 생겨났다. 게다가 요시자와 세이지로는 “중국”의 “근대”에 대해 독자적인 견해를 나타내면서 “문화”를 시야에 넣어 기존 왕조·관헌과 민중의 상호대립적인 관점을 극복하였다. 각각의 연구에서의 획기적인 점은 각각의 시대성을 몸에 각인하고 선행연구의 한계와 문제점을 먼저 인정하고 그것을 뛰어넘으려 한 것에 있다고 생각된다.
이외에, 연구사의 정리에는 각각의 연구에서 사용되었던 사료에도 주목하는 것이다. 역사연구가 실증을 우선으로 하는 한 사료가 가진 의미의 크기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의화단의 경우 사료는 대부분 관헌 측이나 외국인과 기독교 선교사 등 의화단에 적대하는 입장에서 기독된 것이었다. 따라서 사료 측면에서의 한계를 극복하는데도 새로운 사료의 섭렵은 필요하다. 고바야시 카즈미의 저서에는 기본적인 史料集 외에 일본 防衛廳 防衛研究所의 사료와 신문기사 등이 이용되었다. 사토 키미히코도 역시 일본서적 외에 중국과 대만의 수많은 檔案史料, 현지 조사 기록이 사용되었다. 요시자와 세이지로의 특징을 이루는 것은 이들 사료 외에 영국과 미국의 외교문서와 신문이다. 좌우지간, 선행연구가 가진 사료의 측면에서의 약점이 무엇인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일본 의화단연구의 경우, 영국 선교사의 기록 등의 고찰이 향후 하나의 과제가 될 것이다.
[연구사 정리의 의미]
연구사를 정리할 때 유의해야할 일의 하나는 시대성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각 시대의 특유의 분위기, 시대가 공유하는 세계관, 윤리관을 몸에 지니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성은 연구 주제의 선정, 역사를 파악하는 관점에도 반영된다. 연구 주제의 선택에 시대별로 하나의 경향을 보이는 것은 시대성과의 관계 속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반대로 말하자면, 연구 주제의 양적 추이 속에 시대가 포함하고 있는 특징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시대가 다르다면 생겨나는 문제의식에도 어느 정도 차이가 생긴다. 다만 시대가 다르다고 해서 문제의식이 공유되지 않는 것이 아니며, 또 시대가 같다고 해서 문제의식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문제의식은 사람이 각각의 시대성, 각각의 경험을 그 몸에 각인하고, 현재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통의 주제에서 각각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화를 거듭하면 한층 더 높은 차원에서 위에 있고 싶어지는 것이다.
일본의 의화단연구의 변천을 봐도 잘 드러나는 것처럼, 각각의 연구는 상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각각의 시대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연구사를 정리하는 경우의 요점은 이 관계와 시대성을 확실히 파악하는 것이다. 즉, 연구사의 서술에 있어 각각의 논문의 주장을 단순히 나열하고 있는 것만으로 보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연구사로서는 불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논문이 선행연구의 어떤 문제에, 선행연구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려고 애쓰고 있는지, 또 그것을 문제 삼고 자신도 시대상황을 반영하고 있는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문제로 삼고 자신도 시대의 제약을 받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도 절대로 (그런 것은)아니다. 또한 안이함에 흐르기 쉽다. 따라서 자신의 사고를 상대화하고 끊임없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연구사를 정리하는 것의 의미는 他者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고가 가진 한계를 인식하고, 한계를 극복하려는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연구사를 정리하는 목적이 이런 것이라고 그것이 선행연구에 대한 일방적인 비판으로 빠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단순한 비판에서는 자기만족 외에 아무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기 자신이 他者를 파악하는 안력을 흐리게 만든다. 다만, 이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간단한 것이 아니다. 사람은 문제의식에 있어 처음 연구의 실마리를 찾지만, 문제의식이 강하면 아무래도 자신의 논리로 선행연구를 판단하는 것을 쉽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함정을 피하기 위해서는 선행연구를 읽는 경우에 일단 상대의 입장에 올라가 상대의 논리 속에 몸을 두고 생각을 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또 같은 논문에서도 시간을 두고 몇 번이나 다시 읽어 봐야 한다. 그리고 연구사 정리가 자신의 생각을 재검토하고, 거기서 발전의 가능성을 찾아내기 위한 것임을 확인해야 한다. 타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지 않으면 논의는 자신의 세계 속에 전개하는 것만으로는 발전의 계기를 찾을 수 없다. 그것은, 일상생활에서도 중요한 것이다.
[마치며]
2011년 10월, 중국 산동성에서 “義和団運動一百周年国際討論会”가 열렸을 때 馬場毅의 사회에서 폴 코헨(Paul. A.Cohen), 路遥, 佐藤公彦三 세 분 미국, 중국, 일본을 대표하는 의화단연구자가 한 자리에 모여, 획기적인 좌담회가 있었다. 좌담회에는 서구문명과 의화단, 제국주의의 문제, 淸末 中國의 정치상황, 백련교와의 관계, 의화단의 슬로건인 “扶清滅洋” 등에 대한 의견교환이 이루어졌는데, 제국주의의 문제 등을 놓고 이견도 보였다. 사회를 맡은 馬場毅은 좌담회를 마무리함에 있어 “의화단이라는 같은 대상을 연구하면서 일본, 중국, 미국과의 각각의 학문적 전통, 연구방법, 개념이 같지 않습니다. …… 서로 학문적 전통, 연구방법, 개념이 다른데 가운데서 특정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한다는 점에서 오늘의 좌담회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했다. (馬場毅、 2002) 연구사의 정리에 있어서는 이처럼 일본의 연구가 세계 속에서 어떻게 규정될 것인가, 그리고 극복해야할 과제는 무엇인가 하는 점에서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본론은 졸업논문을 작성할 때, 연구사를 정리하는 것의 의미, 거기에 있어서의 유의점을 스스로 경계하는 마음으로 서술해본 것이다. 각각의 연구는 시대를 반영한다. 혹은 시대의 제약을 받고 있다. 따라서 연구사를 정리하는 경우에는 각각의 연구가 가진 배경이 되는 것, 시대성과 지역별 문제의식, 연구 방법의 차이를 읽고 인식하게 하는 것이 적당하다. 시대성이 다르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에도 차이가 생긴다. 또 지역이 다르면 학문적 전통, 연구방법에도 차이가 생긴다. 그러나 그러한 배경의 차이를 인정한 다음 중요한 것은 거기서 무엇을 배울지, 무엇을 배우고 자신을 높은 차원에 가지고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연구사를 정리하면 자신을 둘러싼 시대상황, 구체적으로는 자신이 의지해 서고 있는 사고의 기반이나 구조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다. 어떤 연구도 시대의 제약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자기 자신도 그것으로부터 자유가 없다. 그러나 한계의 소재를 아는 것으로 한계를 돌파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것은 졸업논문의 연구사에도 예외는 아니다.
본론의 독자는 반드시 졸업 후에 연구자의 길로 나가는 것이라고 한정할 수 없다. 압도적인 다수는 졸업논문을 제출하고 다른 길로 나갈 것이라 생각된다. 다만, 졸업논문의 작성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나 작성방법, 연구사를 정리하는 것에 포함되는 의미는 일상생활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상생활의 규칙이 연구의 측면에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서 그것들을 고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타인의 연구를 자신의 연구로서 할 수 없는 것은 일상생활에서의 상식 내에서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연구사 일상생활의 연장선상에 있다면 졸업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으로 익힌 작성방법은 일상생활에 크게 기여하는 것임을 말할 필요도 없다. 즉, 연구 상의 관점의 폭이 확대되고 깊이가 생기면 사고의 폭도 확대되고 풍부함이 더해진다고 생각한다. 졸업논문은 제출한 시점에서 끝난다. 그러나 얻을 수 있게 된 것은 무엇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 졸업논문을 쓰기 전과 후 자신이 변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멋진 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Kim Bong-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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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고 있는 주제로 예전 논문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읽을 때마다 이 부분은 完全同意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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