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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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 글에 대한 발제문을 쓰려고 하는데 너무 어렵다. 가라타니 고진의 글은 상당수 마르크스나 다른 여타의 사상가들에 대한 해석을 전제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라타니를 비판할 때는 1) 해석의 정확성에 대한 비판과 2) 가라타니 자신의 주장을 구별하여 해야 하는데 일단 구별해서 하기가 쉽지 않고 내 경우에는 1)에 대해 너무 할 말이 많아서 자꾸 논의가 옆으로 샌다. 입문자들을 위해 발제한다고 생각해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더 고민이 많이 된다. 어떻게 써야 될까? 계속 쓰다가 지우고 있다.
근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틀리게 독해하지? 진짜 신기하네. 한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전공자들의 글을 읽어보면 이 인간들은 딱 <자본론>만 읽은 티가 나거든? <자본론>"만" 읽고 좀더 읽었으면 <정치경제학비판요강>에 몇개의 원고들 정도. 류동민 정도가 좀 그래도 자기도 이런거 할 줄 안다는 걸 보여주려고 철학 얘기도 하고 인문학 얘기도 하는데 근본없다. 본인이 헤겔 등의 독일철학을 공부해본 적 없다는 티를 너무 많이 낸다. 대부분이 다 이렇게 딱 경제학 텍스트만 중심으로 독해한 게 너무 티가 나서 사실 내가 말하기가 편하다. 여러분들은 경제학 텍스트 위주로 읽으셨는데 저널리즘 쪽도 읽어보고 이런 것도 읽어보고 하면 논의가 이렇게 확장된다, 이렇게 말하면 되는데 가라타니는 진짜 신기한 게 이 사람은 <자본론> 외에도 마르크스 텍스트를 정말 많이 읽은 티가 난다. 안 나면 사실 안읽었네? 하고 그냥 무시해버리면 되는데 이 사람은 분명히 마르크스를 <자본론>을 중심으로 해서 자기 해석 잡아놓고 나머지 다른 원고들도 자기 나름대로 독해한 티가 확실하게 난다. 그래서 더 황당하다. 아니, 이걸 어떻게 이렇게 읽지..
대표적인 게 엥겔스가 의회제 민주주의로 공산주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주장하는건데.. 아니, 레닌 이래로 100년을 그 해석을 비판해왔고 비록 레닌식의 독해에 잘못된 지점이 있더라도 의회제 민주주의를 통한 공산주의로의 이행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건 명백하고 또 이들의 이론체계에서 그게 불가능하다는 점도 명확한데 그걸 그냥 부정해버린다. 그리고 곧바로 엥겔스=레닌=국유화 사회주의로 등치시켜서 엥겔스 때문에 기존의 맑스주의가 망했다고 결론 내고 마르크스는 협동조합주의자였다는 식으로 말한다. "엥겔스의 제자인 베른슈타인도 협동조합을 중시했는데 이게 사실 마르크스가 본류다, 베른슈타인은 마르크스가 엥겔스처럼 국유화를 주장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다." 이런 식으로 말한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입틀막.. 베른슈타인이 마르크스를 비판하는 건 그가 국유화를 주장했기 때문이 아니다. 베른슈타인은 협동조합 중에서 "소비협동조합"만 중시했다. 마르크스가 "생산협동조합"을 중시한 것을 두고 생산협동조합 중에 제대로 기능하는 게 없다고 하면서 마르크스의 협동조합론은 현실성이 없다고 비판한다. 베른슈타인은 내가 그의 이론체계를 분석해서 네프콘에 3부작으로 연재한 걸 읽어보면 설명이 다 된다.
가라타니는 이 지점에서 베른슈타인의 입장을 거의 그대로 따라한다. 베른슈타인은 마르크스의 협동조합론을 생산협동조합론이라 규정하고 소비협동조합이야말로 진정으로 보편적이고, 애당초 "민주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얘기를 거듭한다. 가라타니는 이런 베른슈타인의 주장에서 그가 생산협동조합과 소비협동조합을 분리한 사실을 가린 다음에 마치 협동조합 전체가 애당초, 원래부터 계급적 관계가 지양되어 민주적인 것처럼 말한다. 베른슈타인이 생산자 협동조합은 무조건적으로 권위주의적이고 위계적이라 비난한 걸 모를 리가 없을텐데 그는 베른슈타인이 모든 협동조합을 긍정한 것처럼 말한다. 그렇지가 않다. 베른슈타인은 생산자 협동조합은 본래적으로 그 내부에 포섭된 생산자들의 이해관계에만 집중하게 되어 보편성을 가질 수 없다고 본다. 반면에 소비자 협동조합은 자본제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다 소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보편성을 갖고 있다. 이 보편성에 기초해서 소비자 협동조합을 매개로 농민, 수공업자 등의 다른 여러 계급들을 포섭하여 민주주의의 기반으로 삼아 생산자 협동조합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어야 한다는 게 베른슈타인의 생각이었다. 기본적인 구도 자체가 가라타니가 생산과정에서의 노동조합 운동을 비판하고 유통과정에서의 소비자 보이콧 운동을 지지한 것과 꼭 같다. 즉 가라타니는 베른슈타인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둘의 차이점은 국가에 대한 인식과 국제주의 정도밖에 없다. 가라타니가 주권방기를 통한 근대국가의 소멸을 지향한다면 베른슈타인은 국가야말로 자유의 최후의 보루라는 인식을 한다. 민주주의적으로 개조된 국가는 굳이 지양될 필요가 없다. 베른슈타인이 반복적인, 실현될 수 없지만 끊임없는 시도 속에서 생산자 협동조합으로의 이행을 지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라타니도 칸트를 가져와서 규제적 이념으로서의 세계공화국 운운한다. 세계공화국이 바로 실현될 수는 없지만 규제적 이념으로 우리에게 방향성을 제시해준다는 식의 말이다. 그러니까, 가라타니는 혁명적인 것처럼 스스로를 치장하는 수정주의자에 지나지 않는다. 수정주의자라는 표현을 욕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미리 말한다. "국제주의적인 수정주의자"랄까? 가라타니의 주장을 되짚어보면 역설적이게도 혁명의 불가능성에 대한 논의만 나온다. 그 자신이 진지하게 자신의 주장을 믿는지도 의문스럽다.
아무튼 계속해서 글을 이렇게 적다가도 이게.. 문헌사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게 의미가 있는가? 이런 생각이 들어서 계속 고민하게 되는데.. 모르겠네. 어떻게 해야 될까나. 비판하고자 하면 정말 책 몇 권 쓸 수 있는데.. 나는 이 사람이 읽거나 인용한 거의 모든 문헌들을 다 읽어보았기 때문에 이 사람이 뭘 보고 말하는지 다 안다. 적어도 내가 읽었을 때 이 주장이 가라타니가 읽은 어떤 문헌 어디에 나온 것까지 다 말할 수 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가라타니의 주장은 지적 사기에 가까운 게 너무 많다. 10여 년 정도 공부를 더 쌓아서 읽으니 더 열받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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