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병합 100년
일제를 향한 ‘증오와 선망’… 지도층·지식인들, 엇갈린 시선
2010.08.29 22:00 입력
김종목 기자
한국인의 일본 인식 100년
29일로 한일강제병합조약이 공포된 지 꼭 100년을 맞았다. 경술국치일 이후 지난 100년 동안 한국인은 일본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졌고, 인식의 변화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한국인은 항일, 반일, 극일을 외치면서 한편으론 일본의 근대와 문명을 선망했다. 식민지배에 저항하면서 자본과 문명·상무정신은 배워야 할 모델이라는 이중적 인식이 개화기 때부터 지속됐다. 서울대 일본연구소는 반년간지 ‘일본비평’ 하반기호에서 신채호·윤치호·이광수·이승만·박정희 등 주요 인물들의 일본 인식관을 분석했다. ‘일본비평’을 바탕으로 해 한국의 일본 인식관 변천사를 살펴본다.
<b>최제우</b> ‘나라 위해 멸해야할 원수’ 적대감… 동학혁명 영향
최제우 ‘나라 위해 멸해야할 원수’ 적대감… 동학혁명 영향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1824~64)는 강한 민족중심적 성향으로 일본에 매우 비판적이다. 수운은 이미 19세기 중반 이후 서구세력뿐 아니라 일본 세력의 확장이 조선의 안위를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는 ‘안심가’에서 일본인을 “개같은 왜적놈” “그 역시 원수로다”라며 적대 관계로 설정한다. 인권평등을 주장한 수운이지만 일본은 예외다. 박광수 원광대 교수는 “수운은 임진왜란 등 조선침략과 한국인 희생에 적대적 감정을 간직했고, 일본을 멸해야 할 대상으로 삼았다”고 분석한다. 박 교수는 “수운의 가르침은 제자들의 동학혁명과 3·1운동을 능동적으로 결행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박지향 서울대 교수는 친일파로 분류되는 윤치호(1865~1945)의 일본 정서를 흠모와 증오가 교차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윤치호는 강제병합 이듬해인 1911년 105인 사건으로 6년형을 선고받지만, 일제 말기 중일전쟁 자원입대를 독려하고, 칙선 귀족원의원을 지내는 등 친일파의 삶을 살았다.
여러 차례 일본을 방문한 그는 일본인의 정중함·깨끗한 거리 등을 열거하며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나라” 중 하나로 여겼다. 러일전쟁의 승리를 자랑스러워했는데, ‘황인종’이라는 동질 의식도 컸다. 한편으로는 일본인을 편협·왜소하며 힘에만 의지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친일과 관련, 박 교수는 “국가의 목적을 국민의 안녕·행복의 유지에서 찾았기 때문에 동족에 의한 가혹한 통치보다 이민족의 관대한 지배가 낫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b>이광수</b> 일본 = 문명, 조선 = 야만, 이분법적 민족개조 발상
이광수 일본 = 문명, 조선 = 야만, 이분법적 민족개조 발상
친일파 지식인 중에서 이광수(1892~1950)를 빼놓을 수 없다. 윤대석 명지대 교수는 이광수에 대해 “조선과의 대조 속에서 문명으로서의 일본을 발견하고, 거꾸로 일본과의 대조 속에서 야만으로서의 조선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이광수의 유학 시절 글들은 시종일관 ‘일본=문명’ ‘조선=야만’의 이분법적 인식을 보여준다. “일본은 우리가 좇아야 할 문명으로서의 거울”이란 생각은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민족 개조론으로 이어졌다. 물론 그에게 일본은 억압적 존재이기도 했다. 그가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하거나 임시정부 일을 한 것은 그 때문이다. 윤 교수는 “근대와 문명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본 나쓰메 소세키나 루쉰과는 달리 이광수는 문명과 근대에 맹목적이었다”고 분석한다.
<b>신채호</b> ‘개화 선배’로도 여기다 훗날엔 ‘적 강도’일 뿐
신채호 ‘개화 선배’로도 여기다 훗날엔 ‘적 강도’일 뿐
신채호(1880~1936)는 항일투사이자 민족사학자다. 무장항일투쟁의 이념적 기반을 제공하고, 일제 경찰에 체포된 뒤 어떠한 타협도 거부하다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박노자 노르웨이 국립오슬로대 교수는 “신채호가 일본을 오로지 적대시만 했다고 말한다면 이 또한 그의 복합적 세계관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것”이라며 신채호에게서 ‘근대지상주의’의 영향을 발견한다. 신채호가 1908년에 ‘대한매일신보’ ‘대한협회보’에 기고한 글을 보면 그는 일본을 “단순히 ‘적’이라기보다는 모종의 긍정적 경험을 배울 수 있는 ‘개화 선배’ ”로도 여겼다. 박 교수는 “신채호에게 고대 조선은 일본에 자랑할 수 있는 ‘스승의 나라’이자 ‘상무정신의 국민’이었지만, 근대 조선은 일본보다 열등한 ‘실패자’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이후 무장 독립투쟁 노선을 견지한 망명 시절 신채호는 ‘국권’을 빼앗아 조선민족에 ‘멸망’ ‘멸종’을 가져다줄 수 있는 ‘제국주의 침략자’라는 평소의 적대적 일본관을 더 벼려간다. 1922년 <조선혁명선언>을 집필할 즈음에 일본은 ‘근대화의 모델’로서의 의미는 없어지고 ‘적 강도’일 뿐이었다.
[한·일병합 100년]일제를 향한 ‘증오와 선망’… 지도층·지식인들, 엇갈린 시선
이승만(1875~1965)은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강한 반일의식을 표출했고, 반일 이데올로기를 통치 이데올로기의 하나로 이용했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그런데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승만은 단지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반일 의식을 표출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미국 중심의 세계 체제 속에서 미국의 일본 중심정책을 전환시켜 냉전의 최전선에 있는 한국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이승만은 생각했다.
이승만이 추구한 것은 ‘반일을 통한 또 다른 일본 되기’였다. 박 교수는 “그의 반일 의식은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됐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또 “이승만의 반일 의식은 북한에 대한 고려 속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승만은 미국 중심의 제1세계에서 한국이 일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미국의 대일 정책과의 괴리가 컸다. 대신 “일본이 경제적 측면에서 미국의 파트너가 된다면, 한국은 안보·군사적 측면에서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고 봤다. 박 교수는 “이런 실용적 대일 인식은 식민지 시기부터 계속된 그의 반일 인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b>박정희</b> 만주국서 ‘핵심요소’ 흡수… 경제계획 계발체제 뿌리
박정희 만주국서 ‘핵심요소’ 흡수… 경제계획 계발체제 뿌리
박정희(1917~79)에 대해선 한때 만주 군관학교 시절과 일본 육사유학, 만주국군 장교 임관에 이르는 시기에 대한 언급은 금기 사항이었다. 당시 박정희와 그의 집권에 관한 연구도 빈 공간이었다. 한석정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박정희의 식민지 경험 중 만주국 시절에 초점을 맞춰 ‘박정희 개발체제’의 연원을 분석한다. 만주국 경험이 개발체제의 운행을 과다 결정(또는 예정)했고, 그 중요 요소가 독일·소련 등지에서 발원해 만주국을 경유한 ‘하이 모더니즘’이란 주장이다. ‘건설국가’ ‘속도와 획일성’ ‘무서운 동원체제’ ‘근검과 위생의 강조’ ‘신체의 규율’ ‘대중예술의 정치적 동원’ 같은 개발체제의 핵심 요소들이 만주국으로부터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박정희가 만주에서 목격한 것은 관동군이 밀어붙인 경제개발, 중공업, 도시·철도 건설, 위생 개선 등 발전에 대한 강박적 신념, 혹은 하이 모더니즘적 요소다. 한 교수는 “박정희 시대에 4차례나 추진된 개발계획에 깊은 영향을 드리운 것은 만주국의 계획경제”라고 말했다. 또 산업전사, 근로봉사, 증산의 정신 등 일본 제국과 만주국의 용어도 이어졌다.
<b>박경리</b> ‘토지’ 속 도덕적 양극화… 독립투사 선, 일본인 악
박경리 ‘토지’ 속 도덕적 양극화… 독립투사 선, 일본인 악
박경리(1926~2008)의 대하소설 <토지>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다. <토지>에는 일본인이 직접 등장하진 않지만 일본(인)과 일본 문화 언급들은 넘쳐난다. 김철 연세대 교수는 <토지>를 통해 박경리의 일본과 일본인 상을 검토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잔인무도한 악당들과 영웅적 초인들의 대결이 <토지>의 서사문법인데, 특징적인 것은 ‘선(인)’과 ‘악(인)’의 이분법과 도덕적 양극화다.
“양극화된 세계 속에서 선(인)의 무리는 만주벌판을 누리는 독립투사들, 지하에서 암약하는 혁명가들, 그리고 일본(인)에 대한 강렬한 적개심과 혐오감을 간직하는 다수의 민중들이며, 악(인)의 무리는 일본(인)과 친일파”들이라고 김 교수는 말한다.
<b>이어령</b>일본문화 ‘축소지향’ 규정… 접경지대 피식민자의 사유
이어령일본문화 ‘축소지향’ 규정… 접경지대 피식민자의 사유
80년대 일반 대중의 일본 인식에 큰 영향을 끼친 지식인은 이어령(1934~ )이다. <축소지향의 일본인>(82년)은 당대의 베스트셀러이자 지금도 한국의 ‘일본인론’의 대표 저서로 꼽힌다. 황호덕 성균관대 교수는 한국을 일본의 대등한 비교대상으로 설정한 이어령의 일본문화론을 제국과 식민지 사이의 ‘접경지대’에 선 피식민자의 사유로 파악한다. 황 교수는 “식민본국인에게 인정받겠다는 피식민자 특유의 열의, 이를 통해 세계성을 매개하겠다는 피식민자 특유의 보편주의”라며 “이어령의 일련의 일본문화론은 축소지향이라는 ‘작아진 일본’ 안에서 한국문화론을 세계적 차원으로 승화시키려 했던 후기식민지적 실천의 일종이었다”고 평가한다.
삼성 창업자인 이병철(1910~87)의 일본관은 분명하지 않다. 김영욱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단편적 기록에 의하면 식민지배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내면서도 일본인, 특히 일본인의 기질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 기업인 중에서 이병철은 일본 지향적이었고, 삼성 역시 일본 색채가 강했다. 이병철 자신은 물론 세 아들과 손자도 일본 유학파다. 기술과 자본 도입선도 일본이었다. 김 위원은 “국내외 경제 및 경영 정보를 수집하는 창구로 일본을 썼고, 이를 삼성의 경영에 적극 활용했다”며 “이병철은 치밀한 전략이 요구되는 이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고, 이것이 후일 후계자 이건희가 극일에 성공한 요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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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멜로드라마의 악역들
─ 『토지』의 일본(인)
▒ (위) 『토지』의 작가 박경리
▒▒ (오른쪽 페이지 위 왼쪽부터) 솔 출판사에서 간행된 『토지』, 하동 평사리의 ‘최참판댁’, 원주시 박경리 문학공원 내에 세 워진 박경리의 동상
고전적 멜로드라마는 모더니티에 대해 다소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 구하고 공통되는 이중의 심리적 반응을 보였다. 한편으로 멜로드라마는 가혹하 고 예측 불가능한 근대 자본주의의 물질적 삶에 놓인 개인의 무능력함을 극적으 로 표현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관객들에게 우주로부터 더 고차원적인 도덕적 힘 이 여전히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그 정의로운 손으로 세계를 다스린다는 것을 안심시킨다는 점에서 준 - 종교적인 개량적 기능을 수행했다.
미덕의 찬미, 궁극적인 시적 정의( poetic justice)와 함께 멜로드라마는 사람들이
근대적 삶의 부침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보상적 믿음을 제공했
다. — 벤 싱어, 『멜로드라마와 모더니티』1)
1. 민족 - 멜로드라마로서의 『토지』
멜로드라마에 관한 잘 정리된 한 연구에 따르면, 멜로드라마란 다섯 가지의 핵심 구성요소가 다양하게 결합되어 있는 일종의 ‘개념군’(cluster concept)인데, 그 다 섯 가지 요소란 ① 강렬한 파토스, ② 과장된 감상성, ③ 도덕적 양극화, ④ 비고전
* 지은이│김철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문과 석, 박사 과정을 마쳤다. 한국교원대 교수를 거쳐, 현 재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식민지 시대의 한국문학을 통한 식민주의, 민족주의 문제 등에 관심을 갖 고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국문학을 넘어서』, 『‘국민’이라는 노예』, 『식민지를 안고서』, 『복화술사들』, 『문학 속의 파 시즘』(공저), 『해방전후사의 재인식』(공저) 등이 있다.
1) 벤 싱어(Ben Singer), 『멜로드라마와 모더니티』, 이위정 옮김, 문학동네, 2009, 202쪽.
적 내러티브(즉, 행위의 에피소드적 연발), ⑤ 스펙터클 효과 등이다. 어떤 연극이나 영화, 혹은 문학 작품을 멜로드라마로 지칭하는 데에는 이것들 중의 단 두세 가지 심지어는 단 하나의 요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2) 박경리의 장편 대하소설 『토지』에 나타난 일본 및 일본인 상(像)을 검토하고 자 하는 이 글에서 나는 멜로드라마에 관한 위와 같은 정의에 의지하여 이 소설 을 읽어 보려 한다. 멜로드라마의 구성 요소 중 특히 앞의 세 가지 요소들, 즉 강렬 한 파토스, 감정의 과잉, 도덕적 양극화는 수많은 인물과 광활한 지역을 포괄하는 이 소설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성이며 전5부 16권에3) 달하는 기나긴 이야기를 지탱하는 뼈대이다. 평사리의 대지주 최참판댁에 가해지는 끝없는 고난과 시련, 긍정적 인물들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억압과 고통, 그로부터 생성되는 강렬한 파 토스는 『토지』의 전체 무대를 지배한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고통에 처한 인물 들을 묘사하는 소설의 문체는 격정적인 어휘들, 비탄과 분노로 터질 듯한 절규들, 느낌표(!)가 범람하는 문장들을 끝없이 쏟아낸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도덕적 양극화이다. 선(인)/악(인)의 선명하고도 가차 없
는 이분법은 총 6,800페이지를 넘는 엄청나게 방대한 양의 이 소설에서 조금도 변치 않는 원칙이다. 이 선악의 선명한 양극화는, 뜻밖에도, 아니 당연히, 양적으 로 방대한 이 소설의 내부적 밀도를 매우 느슨하고 무미건조하게 만드는 것인데, 이 양극화된 세계 속에서 선(인)의 무리는 만주벌판을 누비는 독립투사들, 지하에 서 암약하는 혁명가들, 그리고 일본(인)에 대한 강렬한 적개심과 혐오감을 간직하 고 있는 다수의 민중이며, 악(인)의 무리는 소수의 일본(인)과 ‘친일파’들이다. 평화로운 농촌 평사리의 풍성한 한가위 잔치 마당을 덮치는 일본 군경(軍警) 의 잔학행위 묘사로부터 시작되는 『토지』의 첫 장면이 예시하듯, 모든 재앙과 고 통은 이 악의 무리들로부터 온다. 일본(인)과 ‘친일파’는 “악의 뿌리”이며 “절대악” (8-250)이다. “만일에 극악무도한 친일파 조준구가 최참판댁을 집어삼키지 않았
2) 벤 싱어, 『멜로드라마와 모더니티』, 19쪽.
3) 『토지』의 텍스트는 1994년에 솔 출판사에서 간행한 『土地』 1~16 을 사용한다. 이 글에서 소설의 인용은 권수와 페이지 를 표기(예컨대, 1-57, 14-29 등) 하는 것으로 한다.
더라면” 그 모든 비극과 불행은 없었을 것이며, “일본의 침략이 없었던들”, “일본이 내 강산을 범하지 않았던들” 그 모든 고초도 없었을 것이다. “제국주의 일본의 동 물적 탐욕은 그 얼마나 많은 조선 백성들의 운명을 바꾸어 왔는가.”(14-64)
그러므로, 악랄하고 잔인무도한 악당들과 영웅적 초인들의 대결이 『토지』의
기본적인 서사문법이 되는 것은 이 양극화한 선/악의 세계, 멜로드라마의 세계에 서는 당연한 일이다. 이 멜로드라마의 세계 속에서 궁극의 승리를 향해 가는 선 (인)의 총칭(總稱)은 ‘민족’이다. ‘민족’ 또는 ‘조국’은 선(인)의 근거이며 또한 종 착지이다. 다시 말해, 출발점이자 회귀점으로서의 ‘민족’은 이 멜로드라마의 진정 한 주인공이다. 『토지』를 민족-멜로드라마로 명명한 까닭은 거기에 있다.
2. “딱정벌레”와 “나비”
그러면 『토지』에서 이 ‘악당’은 어떻게 그려지는가? 놀라운 점은, 일본(인)이 “악 의 뿌리”, “절대악”, “마귀” “악마” 등으로 지칭되고 모든 재앙의 원천으로 설정되 어 있는 것에 비해, 정작 일본(인)이 소설 무대 위에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소설 내의 사건이나 인물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에 흘러넘치는 것은 일본(인)과 일본문화에 대한 언급 들이다. 우선 다음의 장면을 보자.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일본인의 의상이나 색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생각하다니?”
“갑충(甲蟲), 딱정벌레를 연상하지 않습니까?”
“……?”
“반대로 일본 여자하고 결혼해서 그들 속에 묻혀 살아온 처지인만큼 조선을 대 상으로 하는 제 눈이 맹목적일 수만은 없을 겁니다. 그래 조선의 의상과 색채를 생각해 보았지요.” “그게 뭐냐?”
“나비, 학입니다.”
<중략>
“일본의 옷이나 색채는 상당히 그로테스크합니다. 특히 색채는 불투명하고 부 피를 느끼지요. …… 옷 형태에 있어서도 율동이 없습니다. …… 한마디로 복잡 하고 그로테스크하지요. 조선의 의상과 빛깔을 봅시다. 구십 프로 이상은 흰색 이며 나머지 색채도 거의 중간색이란 없어요. 모두 흰색이며 투명하지요. 그리 고 옷의 형태로는 율동하지 않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선도 밀착되지 않은 직선 에는 풍부한 율동을 허용하고 밀착할 수밖에 없는 곳은 곡선으로 처리하고 있 습니다. 투명한 갓, 갓이야말로 아마 세계적 명작이 아닐까요? 그러면 갑충 혹은 딱정벌레, 학 또는 나비의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10-161)
일제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은 친일파 조용하와 그의 동생인 조찬하가 나누
는 이 대화에서, 일본 의상을 ‘딱정벌레’에 조선 의상을 ‘나비 또는 학’에 비유하는 조찬하의 관점이 얼마나 타당한 것인가는 지금 이 글에서의 관심사가 아니다. 동 시에 저러한 종류의 민속학적 지식이 실은 제국주의 지배자들로부터 전해진 것 이며, 피식민자가 그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을 재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식민주의의 작동방식이라는, 매우 익숙해진 탈식민주의의 논법을 새삼 스럽게 끄집어내려는 것도 아니다.
위 인용에서의 비논리와 자기중심적 편견을 지적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위의 인용은 『토지』에서의 다른 일본(인)론에 비하면 훨씬 절제되 어 있고, 균형 잡힌 것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예외적인 것이다. 장황하지만, 다음의 인용들을 보자.
칼날과 섹스, 그것이야말로 진실로 일본의 수천 년 역사의 진수가 아니었던가.
(10-14)
우리 조선 사람이야 아무리 막돼묵었다 캐도 삼강오륜은 알제. 조선에 나온 왜 놈들은 상놈치고도 그런 상놈이 없다는 기라. 뭣한 놈도 훈도시 하나 사타구니 에 끼고서 여자 앞에 나타나는 기이 예사거든. 산골이나 도중섬에서 온 놈들은 정말 짐승하고 똑같다 하더마. (7-458)
이조 오백년 동안 심은 삼강오륜, 그 윤리 도덕에 길들여진 상민들은 비록 의복 이 남루했을지언정 예의 범절을 모르는 왜인들을 짐승 보듯 했으며 (7-229)
조선을 저 늑대들이 먹어치울 때 떨어진 부스러기를 찾아서 하수구의 쥐떼처럼 몰려왔던 그네들 백성, 더럽고 염치없고 상스러웠던 그 왜인들 (7-230)
일본이 어째서 섹스의 왕국인가. 말라버린 샘터를 채우기 위함이요 그나마 진실 과도 같이 착각하기 때문이다. …… 말할 것도 없이 그로테스크는 칼, 피, 괴기이며 그것은 필연적으로 에로티시즘과 상합하고 무의미의 결과를 낳는다.(14-312)
삼강오륜을 헤아리는 조선의 농부들 눈에 본토에서 버림받은 비천한 일인들이 짐승으로 보였다. 그들은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야만인이었다.(10-16)
“일본것들 하층 사회를 들여다보면 우리네 하층사회가 훨씬 양반이지.”
“그건 그래. 짐승이다.” (8-419)
유교사상에 길들여진 조선 백성들의 잠재된 의식 속에는 예절과 검소 그 격조 높은 선비 정신의 잔영이 있었을 것이요, …… 일본 것은 저속하고 치졸해 보였
을 것이다. (10-11)
칼의 문화, 유곽문화(遊廓文化), 그것도 문화의 범주에 속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 겠으나 여하튼 일본 군화가 지나간 곳이면 맨 먼저 어김없이 서는 게 유곽이다.
그러고 보면 칼과 섹스는 불가분의 관계인 것 같고 (13-49)
왜풍이 들어와서 그런 것이 다 무너지고 말았구나. 짐승 겉은 왜놈들 삼강오륜
도 모리는 세상 아니가. (10-146)
사람이 방편으로 살면 못 쓰는 법이다. 그것은 왜놈의 사고방식이야. 사람과 사 람 사이에는 신의지 방편으로는 길게 못 가느니 (14-255)
일본문화의 정수(精髓)를 ‘칼과 섹스’로 단언하고 일본인을 ‘짐승’ ‘야만인’으 로 묘사하는 이러한 언설은 『토지』의 전편에 걸쳐 쉴 새 없이 반복된다. ‘조선 사 람은 아무리 막돼먹었어도 삼강오륜이 몸에 밴 점잖은 양반’인 데 비해 ‘왜놈은 더럽고 상스러운 야만인, 짐승’이라는, 이런 난폭한 인종주의적 편견이 한국문학 의 노벨상 수상을 거론할 때마다 으레 손꼽히곤 했던 작가의 작품에 이렇게 미만 해 있다는 것은 놀랍지만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편 다음의 인용들은 『토지』에서 엄청나게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무수한 일 본(인)론 혹은 일본문화론 중의 일부분이다.
일본의 특성이야말로 황당무계한 것도 진실이 되며 진실에 대한 고뇌가 없기 때 문에 참다운 뜻에서 사상과 종교도 부재야. 차원 높은 문화 예술이 없는 것도, 그 들의 음악이나 춤을 보아. 단조로운 몸부림, 힘의 폭발이 없는데 칼을 들면 잘 싸
우거든. (11-213)
일본에는 투철하게 진실을 탐구하는 지성이 없다. …… 진실은 언제나 서슴없이 필요에 따라 우그려놓는 구리 그릇과도 같은 것이며 그들에게는 역사의식이 없
다. 종교나 철학이 발붙이지 못하는 것이 그 땅이다. (14-315)
군주가 현인신인 이상 진리 진실의 추구는 불가능한 것 아니겠어요? 역사적으 로 항상 남의 것을 모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원인이 거기 있지요. 일본이 칼, 무기 말고 해 놓은 게 뭐 있습니까? (15-265)
마음 속 깊이에 통곡이 울음이 없고서 어찌 사색을 할 수 있겠습니까? 종교에 귀 의할 수도 없지요. 진리를 탐구하고 문화를 형성할 수도 없습니다. 일본인에게 진정한 종교가 있습니까? 진정한 이데올로기가 있습니까? (15-272)
병신놈으 자석들, 옷 하나도 못 맨들어서 흥, 우리 조선의 상복을 가져간 놈의 쪽 발이 자석들이 무신 별 수가 있일 기라고. (5-170)
그 옛날 나라의 기틀을 잡아주고, 무지몽매하여 고구려에서 보낸 국서(國書)도 오직 읽는 이가 왕인(王仁)의 자손 한 사람뿐이었다든지, 그런 그들에게 지식을 전달해주고, 죽통(竹筒)에 밥 담아먹는 그들에게 도예를 가르치고 불상을 바다 에 띄워 보내주고 그렇게 예술을 전수해주었는데 우리는 지금 저들에게 야만족
으로 매도되고 있다. (13-70)
제에기랄! 그릇이 없어 대통에 밥 담아 먹던 왜놈이 임진왜란 때 도공을 끌고 간 일은 몰랐던가, 죽일 놈들, 그 주둥아릴 가지고서 애급의 피라밋이 어떻고 스핑 크스가 어떻고……. (10-301)
그들이야말로 무지몽매한 야만족으로 유구한 우리 문화의 세례를 받음으로써
눈을 뜨지 않았는가. (16-79)
당신들 가난한 문화를 떠받친 것은 소수의 로맨티스트, 그러나 창조에 있어서 그것은 차원이 낮지요. …… 종교 중에서 불교 하나를 들어봅시다. 기라성 같은 고승들, 찬란한 불교 문화, 지금도 그 전례는 해변의 조개껍질만큼이나 도처에 굴러 있소. 당신네 나라는? 니치렌(日蓮)? 구가(空海)? 중으론 그렇게밖에 손을 꼽을 수 없는데 그들은 뭘 했나요. 경전을 얻어왔고 국난 내습을 외쳤을 뿐,…… 당신네들은 단결을 성취하였소. 배부른 돼지가 되었지요. (10-151)
일본은 강국이다, 노대국 청국과 러시아에게 도전하여 승리한 강국, 이 강국이 라는 관념은 그들의 빈약하고 보잘 것 없는 문화까지 승격하게 했지요. 상스럽 고 조잡한 문화가 위대하게 보여지기 시작한다 그 말입니다. (10-300)
조선에서 얻어가고 빼앗아가고 끝없이 가져가도 빈곤한 바탕에서 생략할 수밖 에 없는 일본의 치졸한 단순성, 풍요한 바탕에서의 생략과는 무서운 거리지요. 제 말이 틀렸나요? 임진왜란 때 수많은 도공들을 끌고 간 것도 그렇고, 오랜 옛 날부터 조선 자기에 미치고 탐했던 것은 그것을 만들지 못하는 문화적 빈곤, 다 시 말하면 정신적 빈곤에서 온 거 아닙니까? 안 그렇습니까? (11-287)
주목할 것은 이 언설들의 다양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 동일함이다. 서로 다른 인물들에 의해 발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과 일본문화에 대한 이들 의 발언 내용은 모두 한결같다. 같은 내용이 다른 인물들의 입을 통해, 또는 화자 의 직접적 서술을 통해 쉴 새 없이 반복된다: 일본에는 종교도, 사상도, 철학도, 문 화도, 예술도 없다. 일본의 문화나 예술은 저속하고 빈곤하며 상스럽고 조잡하다. 있는 것은 칼과 섹스뿐이다. 일본(인)과 일본문화를 ‘야만인’과 ‘짐승’으로 매도하 고 경멸하는(그리고 아마도 그로부터 심리적 쾌감을 얻을) 이 시선은 『토지』의 전편 에 걸쳐 끊임없이 지속된다. 요컨대, 넘쳐나는 일본(인)론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없다.’ 자신과 타자의 관계를 문명/야만의 구도로 설정하는 것이야말로 제국주의 지배의 초석이라는 인식은 이 세계에서는 물론 생겨날 수 없다. 말할 것도 없이, 제국주의를 넘어설 상상력 역시 이 안에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다.
3. “씨를 말려야 해!”
더욱 문제적인 것은, 위와 같은 일본문화론이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현학적 겉치 레마저도 완전히 벗어던진 채 일본(인)이 묘사될 때이다. ‘악당=일본(인)’에 대한 저주, 증오, 혐오, 경멸의 정서와 언어들은 『토지』의 모든 인물들이 공유하는 것이
다. 작가는 서사의 전개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본인들을 삽화적으로 가끔 등장시 키는데, 그때의 묘사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러하다.
“임마, 왜놈들 씨종자 작은 걸 몰라? 나보다 작은 놈이 있다는 것 그거 과히 기분
나쁘지 않다.”
<중략>
“왜놈들 말이야, 왜놈들 말인데 어떻게 보이지?”
“사람의 상판이긴 마찬가지죠.”
“모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군고구마 같이 뵈지 않나?”
“군고구마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배창자가 터지는 한이 있어도 다 먹어치우 겠습니다.”
“그러면은, 따뜻하고 귀중품 숨기기에도 든든한 하라마끼[腹卷]라면 어떨꼬?” “모두가요? 그렇지만도 않지요. 해꼬오비(허리띠)에다가 신갱부꾸로[信玄袋]를 걸머진 늙은 것은 어떻고요? 눈에 눈꼽이 끼어서 벌벌 떠는 꼴이야말로 거지 중 상거지, 아 저기 보십시오. 맨종아리가 드러난 여자 말입니다. 쪽바리 여자 말입
니다.” (8-109)
사회주의자이며 투철한 독립투사인 서의돈과 그의 후배가 나누는 대화가 이 러하다. 한편 만주 용정의 조선인 학교 교사이며 열렬한 민족주의자로서 독립운 동에 가담하고 있는 송장환이 길거리에서 우연히 일본인을 만나는 또 다른 장면
을 보자.
이들 앞을 지팡이를 짚은 늙은 일본인 한 사람이 걸어간다. 쥐색 히도에(홑겹옷) 아랫도리를 양켠 다리에서부터 걷어올려 검정 오비(허리끈) 사이에 끼우고, 그 러니까 정강이는 물론 엉덩이도 아슬아슬한데, 와라지(왜 짚세기)를 신은 늙은 사내는 등에 봇짐 하나를 짊어지고 있었다. “에크망이나! 개상놈으, 망칙스럽다.”
사내의 드러난 정강이를 보고 기겁을 한 아낙이 얼른 길을 비켜선다. “저 늙은 것은 뭘 해처먹겠다고 여까지 왔을까?” 송장환이 중얼거렸다.
“자식놈이라도 찾아온 게지요. 행색을 보아하니 죄 없는 백성인 성 싶소.”
“그래요? 내 눈에는 굶주린 늙은 짐승 같소.” 송장환은 길가에 침을 탁 뱉는다. (4-138)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일본인(그것도 초라한 거지 행색의 늙은 일본인)을 향한 지식인들의 언어와 행동 속에 담긴 이 ‘야만적’ 제노포비아(Xenophobia)는 『토지』의 세계에서 결코 예외적인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니다. “왜놈, 왜년, 왜헌병, 왜말, 왜종자, 왜책, 왜돈, 왜기생, 왜소리판” 등의 비칭(卑稱)은 등장인물뿐만 아 니라 작가의 지문에서도 흔히 쓰이는데, “친일파나 지식인 말고”, “조선의 대지 이며 생명”인 “대다수 민초들은 왜놈, 왜년이라 하며” 그것은 “역사적인 자부심” 의 표현이라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14-92) 그러면 ‘왜놈’은 누구인가? “상대 가 약하다 싶으면 사악하기가 뱀 같고 늑대같이 포악해지지만 상대가 강하다 싶 으면 순식간에 쥐새끼로 표변하는 습성”을 가진 것이 ‘왜놈’이다.(12-319), “독버 섯”(9-187) 같은 존재인 ‘친일파’, ‘민족반역자’도 마찬가지다. “왜놈 밑에 빌붙어 서 사는 놈들은 상대편이 약하다 싶으면은 밟아 뭉겨버릴라 하고 잘난 체하면은
겉으로라도 우대하는 버릇”(7-305)이 있다.
『토지』에서의 일본(인) 묘사가 삼류 통속극의 진부하고 상투적인 상상력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특히 이 ‘악당들’의 외모를 묘사할 때이다. “게다 짝 신고 안짱걸음 걸으면서 땅바닥에 떨어진 동전 살피듯 땅을 보고 걷는 그들 습
성”(12-55)은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속바지를 안 입는 일”(8-407)과 더불어 심한 혐오감을 안겨 주는 것이다. 진주 ES 여고의 일본인 교사들을 묘사하는 다음의 장 면은, 일본(인)에 대한 혐오의 정서가 이 작가의 붓과 상상력을 얼마나 제약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 준다.
뻐드렁니에다가 머리가 다붙은 이마, 위로 치올라간 두 어깨를 꾸부정하게 꾸부 린 모습으로 안짱걸음을 걸으며 두 팔은 허수아비같이 힘없이 늘어뜨리고 얼굴 에는 언제나 남을, 특히 조선인을 업신여기는 표정을 싣고서 수업 시간에는 조 선인 흉보는 것을 서슴지 않았던 이와자키 선생, 설탕을 가져오면 점수를 달게 주겠다, 뻐드렁니를 드러내고 시뻘건 잇몸을 드러내놓고 웃던 미술 선생, 역시 뻐드렁니에 몸집, 키가 다 작았으며 안경을 썼던 음악 선생은 항상 사람 좋은 미 소를 머금고 있었으나 눈곱만치도 동정심이라고는 없는 구경꾼이었다. 그리고 센티멘틀리스트인 체육 선생, 얘기를 해 놓고 보니 용모에는 뻐드렁니가 꽤나
많다. (16-321)
‘악당은 용모가 추하고 못 생겼다’(당연히, 선인은 ‘잘 생겼다’)는 것은 이 멜로 드라마에서 철저하게 지켜지는 서술적 원리이다. 일본인이나 친일파는 그 도덕 적 타락에 못지않게 천박하고 비천한 용모로 묘사된다. 친일파이며 모든 재앙을 불러온 악당 조준구는 ‘돼지처럼 뚱뚱하고 작달막’하며, 여밀정(女密偵) 배설자 의 외모는 ‘추악하고 마귀 같다.’ 아마도 『토지』의 악당 가운데 가장 악랄하고 잔 인한 악당은 일본 경찰의 밀정(密偵)인 김두수일 터인데, 그 역시 뚱뚱하고 못 생 겼을 뿐 아니라, 놀랍게도, ‘뻐드렁니’(!)를 가졌다.
여기서, 『토지』의 서사가 선(인)/악(인)의 선명하고도 가차 없는 이분법에 의 해 유지되고 있다는 이 글 첫머리에서의 지적을 상기해 보자. 『토지』의 수많은 지 면은 이 악당들에 대한 증오와 저주, 끓어오르는 적개심의 표현으로 가득 차 있 다. “왜놈”과 “친일파”, “민족반역자”에 대한 증오와 혐오는 통제할 수 없는 감정 과잉의 상태를 보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저주의 감정을 담은 이 언사(言辭)들이 작가가 그토록 혐오해 마지않는 일본식 그로테스크를 빼어 닮았다는 점이다. 예 컨대, “위대한 영웅”,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지극히 높은 경지”로 표현되는 항일 투사 김환이 자신에게 연정을 품은 여자를 뿌리치며 다음과 같이 말할 때, 이 짧 은 표현 속에 들어 있는 그로테스크한 음산함은 ‘일본적인 것’을 훨씬 능가한다.
환이 미친 듯이 웃어젖힌다. 그러다가 별안간 몸을 일으키는 여자에게 덤벼든 다. 꽉 껴안는다. 여자 얼굴을 뒤로 젖히며 목에 얼굴을 파묻은 환이…… 다시 낮 은 소리로 속삭인다. “사팔띠기한테 시집 가라구…….” 다음 순간 환이는 여자를 떼밀어 젖힌다. 여자는 나자빠지면서 몸을 모로 눕
힌다.
“싫은 계집이 달라붙으면 죽이고 싶더구먼. 왜놈의 배때기를 찌르듯이, 미칠 지
경으로 밉더군.” (5-205)
욕정을 품고 남자에게 달려든 여자. 뒤로 젖혀진 여자의 목. 그 목에 얼굴을
파묻은 남자. 나자빠진 여자. “죽이고 싶다”는 남자의 말. 거기에 더해지는 “왜놈 의 배때기를 찌르듯이” 라는 대사. 이 짧은 문장들의 급박한 연쇄가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는 ‘칼과 섹스’가 결합된 ‘에로 구로’(エロ-グロ, erotic grotesques)의 쾌감 에 다름 아니다.
한편, 최서희 가(家)의 집사이며 항일 운동가들을 막후에서 지원하는 장연학 은 “종전의 추상적 반일감”으로부터 “진정한 분노”와 함께 “항일의 정열이 분출 하는 활화산같이 된 것을 느끼게” 되면서, “동물적으로 일본인을 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16-349) 서희의 아들이며 뛰어난 천재이며 일본 유학을 마친 화가이 며 서울의 중학교 교사이며, 그의 친구의 말에 따르면, “관음보살”과도 같은 인물 인 환국은 “인간을 짐승같이 도륙하고 학살하는 이 시대의 악마”는 “일본이다!” 라는 깨달음에 이르러, “씨를 말려야 해! 그들 인종이야말로 씨를 말려야 해! 인류 가 존속하기 위해선 제발, 그들은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해!”라는 절규를 토한
다.(16-286) 신교육을 받고 일본 유학을 한 지식인 여성들의 대화 속에서 “씹어 먹을 놈들”, “씨를 말려야 해요”(8-122), “악의 뿌리는 잘라내야 한다”(8-250) 같 은 언사는 예사롭게 쓰인다.
4. 이구동성(異口同聲)의 인형들
‘악당들’에 대한 이러한 극단적 감정 과잉은 『토지』의 서술 방식에 심각한 혼란과 결함을 초래한다. 이제 그 점을 살펴보자. 위에서 인용한 『토지』에서의 일본(인) 론과 일본문화론은 저마다 다른 인물들에 의해 말해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중요한 것은 그 발언들이 다른 인물들에 의해 발화되었다 하더라도 그 내용은 언제나 동일하다는 점이다. 내용뿐만 아니라 사용되는 어휘, 표현 방식, 거 론되는 사례들이 거의 대부분 똑같다는 것이다. 그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다음 인용에서의 발언들을 주목해 보자.
한마디로 인내와 저력 같은 것이 없는 인물이야. 화려한 문벌로 군부를 누른다, 하기는 일본놈들 문벌에는 약하니까 말이야. (12-327)
소좌쯤이면 젊지도 않았을 텐데 유치하기가 짝이 없어. 일본놈들 의식수준은 아 무리 밖에서 뭐가 들어와도 자랄 줄 모르거든. (12-327)
아닌 게 아니라 일본은 너무 염치가 없는 쥐새끼야. 칼을 들고 나갔으면 적을 베 고 이기든지 아니면 우치지니(討死: 戰死)를 하든지 또 아니면 사과하고 화해를 하든지 할 일이지, 칼을 휘두르면서 이거 큰일 났구나 누구 와서 말려주는 사람 없을까? 형편없는 졸장부들이야. (12-329)
(일본에) 본래 뭐가 있기나 했나? 빼앗아오고 비럭질해 오고 묻혀서 오고, 일본 도와 후지산(富士山) 밖에 더 있어? (12-351)
‘일본놈들은 문벌에 약하다’, ‘일본놈들의 의식 수준은 자랄 줄 모른다’, ‘일본 은 쥐새끼’, ‘일본에 있는 건 일본도와 후지산뿐’ 이라는 등의 발언들 역시 지금까 지 살펴 본 일본(인)론 및 일본문화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유의할 것은 위 의 발언이 “만주에서 일본 군부의 덕을 보고 사는” “우익 대륙낭인” 무라카미라 는 인물의 입을 통해 발화된 것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일본 군부에 밀착해 있는 ‘우익 대륙낭인’이 일본인과 일본 군부를 이런 식으로 비난한다는 사실의 개연성 여부가 아니다. 그런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다만, 이 ‘우익 대륙낭인’의 일 본(인) 및 일본문화에 대한 비하와 폄하의 언사가 앞서 보았던 조선인들에 의한 그것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는 것,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위의 장면은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 무렵 만주국의 수도 ‘신경’의 일본인 사회에 대한 묘사 중에 나오는 부분인데, 『토지』에서 매우 희귀하게 일본인만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일본인들은, 유인실과 연인 관계에 있는 오 가다를 제외하고는, 『토지』의 다른 인물이나 사건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다만 일 회적인 삽화로 등장할 뿐이다. 그런데, 한번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 인물들의 소설 내적 역할은 무엇일까? 모두 2개 장(章)에 걸쳐 진행되는 이 장면에서 무라카미 와 그의 친구들은 남경 학살 이후 중국에서의 정치적・군사적 정세에 관해 기나긴 ‘전문가적’ 시국담을 늘어놓는다. ‘일본인의 시국관’이라는 제목에서 분명해지듯 이, 작가는 여기서 일본 지식인의 입을 통해 일본의 대륙침략을 성토하고 그 야만 성을 폭로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의 그러한 의도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보다시피, ‘우익 대륙낭인’ 무라카미는 작가의 일본(인)론 및 일본문화 론을 되풀이하기 위해 등장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일본(인)과 일본문화에 대한 비하와 혐오의 정서가 극단화되면 될 수록, 『토지』의 인물들은 신분의 귀천, 지위의 고하, 남녀노소, 심지어는 위의 인 용에서 보듯, 조선인, 일본인을 막론하고 모두 똑같은 발성(發聲)을 하는 인형 들, 즉 극단적 감정으로 가득 찬 작가의 일본(인)론을 전달하는 하나의 메가폰 (megaphone)으로 화한다. 사정이 이런 한, 『토지』에서 일본(인)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드러내는 등장인물의 독백이나 상념이 슬그머니 작가 또는 화자의 노골 적인 서술로 바뀌거나, 인물들 사이의 대화가 작가의 말과 자주 뒤섞이는 것은 조 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갖은 지랄을 다 한 일본의 행동”(12-325), “심장에 철 판을 깐 일본정부”(12-326) 같은 표현들은 인물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화자의 중 립적(neutral) 서술 가운데 갑자기 돌출함으로써 소설의 문체와 어조(tone)에 큰 혼란을 초래하는데,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 이때에 작가는 인물과 사건을 배치 하고 규율하는 숨은 손이 아니라, 소설의 무대 위에 직접 뛰어들어 발언하는 이해 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독자는 기억할 것이다”라든가 ‘아, 참, 잊었는데 아무개는 어찌어찌 되었다’라는 등의, 이른바 전지적 시점의 화자가 소 설무대에 맨 얼굴을 불쑥 드러내는 어처구니없는 문체의 혼란은 이 소설에서 심 심치 않게 일어난다.
또 한편, ‘악당’에 대한 끓어오르는 적개심을 표현할 때마다 마치 무성영화의 변사처럼 무대 앞으로 뛰어 나와 긴 연설을 늘어놓는 이 ‘계몽적’ 작가의 존재는, 이 소설에서 ‘친일파’ 못지않게 비난의 대상이 되는 존재가 ‘계몽주의자’들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심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고관대작들, 지주 들, 친일파, 그들의 자손들이 동경 유학을 떠나” “일본의 치졸한 문화를 묻혀 와서 이 강산에 뿌릴 때”, “조선 백성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유민이 되어” 떠돌았 다. 일본 유학생을 비롯한 신식 지식인들은 “수천년 경험의 축적인 내 역사를, 수 천년 풍토에 맞게 걸러내고 또 걸러내어 이룩한 내 문화를 부정하고 능멸하며, 내 땅에서 천년을 자란 거목을 쳐 뉘며 서구의 씨앗 하나 얻어다가” 심었다. 그 지식 의 정체는 “내 것을 부수고 흔적을 없게 하려는 것, 소위 개조론이며 계몽주의”인 데 그것은 “민족반역자” “배신자”의 것이다. “동경 유학생과 기독교와 일본의 계 몽주의 삼박자”(14-64)에 대한 작가의 이러한 반감과 혐오는 일본(인)에 대한 증 오 못지않게 자주 표현된다(계몽주의의 대표격인 이광수와 최남선에 대한 인신공격
성 매도도 쉽게 발견되는데 그에 관한 논의는 이 글에서는 생략한다).
저 계몽주의(啓蒙主義)의 탈을 쓴 친일분자들이 민족을 개조한답시고 내 것 을 깡그리 내다버리고 내 것을 깡그리 부숴버리고 내 모든 것을 부정하며 애국, 우국의 지사로 세상에 그 얼굴을 드러내니 사람들은 그를 선각자로 섬기더라.
(13-71)
어쨌거나 그들은(동경유학생 — 인용자) 민족에 대한 배신, 내 백성에 등을 돌리 고 왔다는 것을 배제할 수는 없으리라. 그들의 대부분이 출세지향이었으니까. …… 그들이 묻혀 올 일본의 가치관이 역사를 난도질하고 민족정신을 파괴할 위
험 부담은 심각하다. (12-57)
오늘날 이 땅에서 중간층을 위시하여 하부층에까지 침투해 오고 있는 것은 왜 놈의 식민정책이 몰고 온 계몽주의, 그러니까 조선을 말살하려는 한갓 구실이요 허울 좋은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런 속사정과는 다르다 하더라도 기독교
가 몰고 온 계몽의 양상, 즉 낯선 문화를 이 땅에 심고 있는 형편을 보건대, (12-
141)
같은 내용이 서로 다른 인물들에 의해 발화되는 현상은 여기서도 여전하지 만, ‘계몽주의’와 ‘일본 유학생’을 ‘친일분자’ ‘민족반역자’ ‘배신자’ 등으로 비난하 는 이 어법에서 더욱 문제적인 것은, 작가가 이런 어법 속에 담긴 스스로의 모순 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계몽주의나 계몽문학에 대한 신경질적인 거부감과 날선 비난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토지』 전체가 바로 다름 아닌 계몽주 의 문학의 서사 문법 — 예컨대, 봉건사회로부터 근대로의 이행과정에 대한 사회 역사적 탐구, 근대적 변화에 직면한 개별 인간들의 구체적 생활상, 근대국가 형성 을 위한 민족적 동질성의 고취,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한 계몽적 형상화 — 을 그 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전혀 무감각하다.
작가의식의 모순은 ‘일본 유학생’의 경우에 더욱 심하다. 작가의 말에 따르 면, 동경 유학생들은 ‘고관대작, 지주, 친일파’의 자손들로서 ‘다른 백성들이 일본 의 학정 아래 신음하고 있을 때’ 그들을 ‘배신하고’ ‘출세를 위해서’ 일본 유학을 갔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수천년 갈고 닦은 내 문화를 부정하고 일본의 가치관 을 묻혀 오는’ 일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작가는, 『토지』의 많은 주요 인물들이 동 경 유학생 출신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떤 해명도 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동경의 일류대학을 다닌다는 것은 그 인물이 얼마나 우수한 두뇌를 지녔는가를 입증하는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토지』의 주인공 최서희의 아들인 환국과 윤국은 모두 ‘대지주의 아들’로서 일본 유학생이다. 진주에서 유일하게 서울의 ‘K중학교’4)로 진학한 환국은 “동대 (東大)는 아니었지만 어머니의 소원대로 법과를 지망하여 조도전(早稻田, 와세
다 — 인용자) 예과에 입학”(9-285)한다. 와세다를 그만 두고 ‘동경미술학교’로 진 학한 그가 동경 고급 주택가의 널찍하고 조용한 하숙집에서 하녀가 날라다 주는 식사를 하며 지내는 모습(12-62)은 대지주의 아들인 환국의 배경을 생각하면 조 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장면의 묘사 직전에 작가가 동경 유학생을 ‘배신자’로 비난하는 기나긴 언설을 늘어놓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 까? 작가의 말에 따르면, “모집으로 끌려온 조선의 수많은 백성이 무서운 채찍 아 래 이승과 저승을 헤맬 때”, “체력이건 두뇌건 문벌이건, 선택받아 이곳에 온” 유 학생들은 “내 백성에 등을 돌리고 온” “배신자”이다. 동경 유학생들이 “묻혀 올 일 본의 가치관이 역사를 난도질 하고 민족정신을 파괴할 위험 부담은 심각”한데, 유 학생 가운데도 “먹고 살만한 계층에서는 쉽사리 댄디즘의 무풍지대로 도망”(1257)치는 것이다.
이러한 서술 바로 다음에 작가는 동경 하숙집의 환국을 묘사한다. 아침잠에
서 깨어난 그가 맨 먼저 하는 일은 “칸딘스키의 초기 그림”을 보는 일이다. 이어서 일본인 하녀 오하츠로부터 식사 주문을 받고, 복도로 나가 정원의 작은 연못을 바 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고향의 부친 걱정 등으로 우울한 그의 내면이 그려지기는 하지만, 동경 유학생을 ‘배신자’로 질타하던 바로 조금 전의 작가의 목소리는 여 기서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먹고 살만한 계층은 댄디즘의 무풍지대로 도망치고 말았다’라는 작가의 목소리 역시 댄디즘과 깊이 관련된 칸딘스키의 그림에 심취
4) 작가는 『토지』의 등장인물들이 1920년대에 다닌 증등학교를 모두 ‘중학교’로 지칭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과 어긋난다. 1938년 제3차 교육령 개정으로 내선공학(內鮮共學)이 이루어지고 조선의 ‘고등보통학교’(고보)가 ‘중학교’로 개칭되기 이전까지 조선에서 ‘중학교’는 일본인 자녀들이 다니는 소수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소설내적 정황상 1923년에 환 국이 진학한 ‘K 중학교’는 ‘경성제일고보’일 것이다. 그 외에도 작가는 진주나 부산에 있는 ‘고보’를 모두 ‘중학교’로 지칭 하고 있다. 한편 1940년대 진주의 ‘ES 여고’라고 표기된 학교도 실은 ‘ES 고등여학교’ 즉, ‘ES 고녀’로 표기해야 한다.
하는 환국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킨다.
그런가 하면, 사회주의 비밀 조직에 관여하고 있는 환국의 동생 윤국은 일본 에서 “일류 농과대학”을 마치고 다시 “Y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는데, 일본 의 일류대학을 둘씩이나 다닌 그의 경력은 모든 사람의 찬탄과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그런 윤국을 “사내 중의 사내, 잘난 놈”(14-397)으로 칭송하는 이시우는 만 주벌판에서 생을 마친 독립지사 이동진의 손자이며 최참판댁과 인연이 깊은 이 부사댁의 당주(堂主)인데, 경의전(京醫專)을 졸업한 의사이다. 그는 자신의 동생 인 이민우가 일본에서 “형편없는 사립”을 다닌다는 사실에 늘 자존심이 상해 있 고, 당사자인 민우 역시 그러하다. 민우는 “친일해서 이권 나부랭이 따내는 매국 노”들에게 분노를 느끼는 젊은이인데, “경성제대 시험에 떨어지고 이듬해 경의전 에서도 시험에 떨어”졌는데(13-181) 그럴 때마다 형인 이시우는 ‘먼저 앓아 눕는 다’. 그러던 민우가 마침내 다시 시험을 쳐서 와세다(早稻田) 대학에 합격하자 이 시우는 아주 흡족해 한다.(14-395) 한편, 환국의 친구이며 진주의 자산가요 유지 인 이순철은 ‘통 크고’ ‘머리가 명석한’ 사내이며 유도로 단련된 몸매를 지닌 보스 기질의 남자다. 진주의 친일파 김두만의 아들 김기성을 “명색이 대학이지,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지도 모를 학교를 유학이랍시고 뽐내기로는 구역나게 뽐내는 놈”(13-316)이라고 경멸하는 그는 “일본의 일류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고등문 관시험’에 삼년을 내리 낙방하고 이제는 진주의 손꼽히는 기업가로 행세하는 인 물이다.
이렇듯, 동경 유학생에 대한 작가의 격렬한 반감과 비난은 『토지』에서의 동
경 유학생 출신의 많은 긍정적 인물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한편, 이 긍정적 인물들 사이에 충만해 있는 ‘학벌주의’에 대해서도 작가는 어떤 비판의 시선도 비 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동경 유학생과 ‘그들이 묻혀 올 계몽주의’에 대한 작가의 저 가차 없는 비난의 언사들은 대체 어디를 향한 것일까? 그리고 이런 모순은 어 디에서 발생한 것일까? 일본(인)과 친일파, 즉 ‘악당들’에 대한 극도의 증오와 감 정의 과잉이 작가로 하여금 냉정한 서술자의 위치를 잃게 한 것일까?
5. “조선의 잔 다르크”
『토지』에서 극도의 증오심의 대상이 되는 일본인이나 친일파와는 달리, 유일하게 예외적인 일본인은 유인실과 연애하는 오가다 지로다. 소설 무대에 삽화적으로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다른 일본인들과 달리, 오가다는 『토지』의 서사에 깊이 개입해 있는 주요 인물이다. 동시에 그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깊이 분노하 는 양심적 일본인이며 조선인 우국지사들의 동지이기도 하다. 이 ‘흔치 않은 일본 인’과 동경 유학생 출신의 여성 지식인 유인실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비련(悲戀) 은 여러 모로 관심을 끌 만한 소재이다.
주목할 것은, 이 비련의 이야기가 한 젊은 남녀의 사적인 애정담으로서가 아 니라, ‘민족’과 ‘피’를 은유하는 하나의 수사적 장치, 더 나아가, 그것의 절대성 을 확인하는 사건으로서의 기능 —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작가의 의도였을 것인 데 — 을 한다는 점이다. 유인실과 오가다의 만남은, 그 당사자들에게도 그렇고 주위의 다른 인물들에게도 그러하듯이, 개인 대 개인이 아닌 ‘조선민족’과 ‘일본 민족(또는 인종)’의 만남으로 이해되고 또 그렇게 그려진다. 예컨대, 유인실과 오 가다의 만남의 장면에서 독자는 젊은 연인 사이에 으레 있을 법한 어떤 애정에 찬 대화나 행동도 찾아 볼 수 없다. 그 대신에 일본의 조선 침략에 대한 유인실의 비 분에 찬 공격, 조선민족과 민족문화의 우수함 및 그에 대비되는 일본문화의 저열 함에 대한 열띤 공박, 그리고 그에 동조하거나 설득 당하는 오가다의 모습 등이 이 연인들이 만나는 장면을 지배한다.
사정이 이런 한, 이 연애가 당사자에게나 주위 사람에게나, ‘민족’이나 ‘피’에 대한 ‘배신’으로 이해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가다의 아이를 낳은 유인실은 “저의 행동은 마땅히 돌로 쳐 죽여야 할 배신인 것을 저 자신이 인정합니다.”(1242)라고 울부짖으며, 그 아이를 맡아 기르는 조찬하는 “인실에게 생명보다 더한 것이란 조국과 내 겨레를 배신했다는 것”(13-445)임을 깨닫는다. 한편, 유인실의 오빠인 유인성이 인실과 오가다의 관계를 알고 난 뒤 받은 충격을 묘사하는 다음 의 장면은, 이 연애 사건을 다루는 작가 의식의 문제성을 한 눈에 보여 준다.
‘그놈은 누구냐! 오가다 그놈은 어떤 놈이냐!’ 민족의식 없이, 거의 동족같이 상종해 온 오가다 지로, 그의 결점까지 인간적인 매력으로 보아왔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동생같이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했 던 오가다가 갑자기 흉물같이 압도해온다. 송충이같이 징그러운 존재로 의식을 점령해온다. 이민족, 정복자, 거대한 발바닥으로 강산을 깡그리 밟아 뭉개는 괴 물. …… 남자들은 더러 일본 여자와 관계를 맺었고 인성도 그런 사내들을 몇 보 아왔다. 물론 바람직한 일로는 생각지 않았지만 이렇게 격렬한 치욕과 혐오감을 갖게 하지는 않았다. 저 북만주 땅에서 독립군을 토벌하는 일병(日兵)에게 능욕 당한 조선의 여인들이 자결로써 생을 결산한 사건들은 가슴에 응어리져 남아 있
는데. (9-443)
파농(F. Fanon)은 식민 종주국인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피식민지 모로코 출 신의 흑인 남성 엘리트들이 프랑스 영토에 첫발을 딛자마자 하는 일이 백인 창녀 를 ‘정복’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통해 피식민자에게 내면화된 식민주의적 의식 과 그 분열을 분석한 바 있거니와, 누이동생이 ‘지배민족’과 연애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 저 ‘오빠’의 내면이야말로 실로 문제적이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제국주의자에게 식민지는 흔히 ‘여성’으로 표상된다. 다시 말해, 식민지 획득은 강한 남성에 의한 여성의 정복으로 은유된다. 동시에 피식민지 남성에게 그것은 자신의 여자 즉, 아내나 딸, 누이 등을 빼앗긴 것으로 표상된다. 그는 더 이상 ‘남 성’일 수 없고 ‘아비’일 수 없고 ‘오빠’일 수 없다. 피식민지 남성에게 주어지는 이 ‘거세’(去勢)의 감각이야말로, 식민주의의 모방의 결과이며 또 계속해서 그를 식 민주의의 모방자로 만드는 심리적 동력이다. 그러므로, ‘정복자의 여자’를 ‘정복’ 함으로써 거세된 자신의 남성성을 되찾고자 하는 피식민지의 남성이야말로 식민 주의를 충실하게 학습한 영원한 노예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이동생이 일본인과 연애한다는 사실에 대해 치욕감을 느끼는 ‘오빠’ 유인 성은 왜 조선 남자가 일본 여자와 관계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치욕감을 느끼 지 않는 것일까? ‘정복자의 여자’를 ‘정복’한 ‘피정복자 남성’의 쾌감이 이 남성들 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자신의 여자가 정복자의 남성과 관계하는 것에 대 해 이 남성들은 심한 무력감과 분노를 느낀다. 이 분노와 무력감을 그들은 어떻게 해결하는가? 유인성은 누이동생의 연애사건에 대한 분노와 치욕의 감정을 “일병 에게 능욕 당한 조선의 여인들이 자결로써 생을 결산한 사건”으로 연결시킨다. 외 부로부터의 침략을 여성 신체에 대한 훼손으로 표상하고, 그렇게 훼손된 여성 신 체를 말소시킴으로써(“자결”) 상처로부터의 회복을 기도하는 난폭한 가부장주 의5)는 제국주의의 식민지 정복과 언제나 짝을 이루는 것이었다. 유인성은 그러한 피식민지 남성의 심리를 전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누가 뭐래도 인실은 조선의 딸이고 조선의 잔다르크야”(12-101)라고 말할 때, 그는 참을 수 없는 치욕감을 누이를 화형(火刑)(잔다르크)시킴으로써 해결하는 것이다. 요컨대, ‘훼손된 누이’ 는 ‘조선의 딸’로 불려나와 거룩한 죽음에로 나아감으로써 모든 허물을 씻는 것이 다. 이 위안이 있고서야 유인성은 어디론가 영원히 사라질 결심을 한 인실에게 오 백원의 돈을 건네주는 것이다.
이렇듯, 유인실과 오가다의 관계는 사적, 개인적 관계로서가 아니라 ‘민족’과 ‘피’의 환유물(換喩物), 피식민지 남성의 분노와 치욕감을 대변하는 상징물로 이 해된다. ‘민족’과 ‘피’가 절대적인 한, 이 관계의 해피엔딩은 물론 기대할 수 없다. 과연 비련의 두 주인공은 자신의 종족으로부터 추방되어 이국을 떠도는 신세가 된다. 유인실은 만주에서 중국인으로 변신해 살아가고 오가다는 만주 일대를 정 처 없이 떠도는 존재가 되는데, 이 결말은 자신의 종족을 ‘배신’한 결과로서의 ‘축
출’(expulsion)이나 ‘파문’(excommunication)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민 족에 대한 존엄은 변할 수 없는 보편적 윤리”(13-457)라는 정언명령이 있는 한 민족을 넘은 개인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 오가다 지로라는 예외적인 일본인 의 존재는 그 말을 전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예외적인 인물은 예외적이라기보다 오히려 『토지』의 다른 모든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작가의 ‘민
5) 『토지』 전체가 완미(頑迷)한 남성주의, 봉건적 가부장주의에 입각해 있다는 점은 또 다른 분석을 필요로 하는 주제이나, 여기서는 지면 관계상 다른 기회를 기약할 수밖에 없다.
족지상론’을 설파하기 위한 또 하나의 메가폰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 이다.
6. 원더우먼(Wonder Woman)과 ‘전원일기’(田園日記)
어둠이 짙으면 빛도 강하다. 이 말은 『토지』에서의 선(인)과 악(인)의 형상화 방 법을 가리키는 데에 가장 어울리는 말이다. 통속 멜로드라마의 상투적 묘사법, 즉 흉악하고 포악한 ‘악당’과 지고지순한 ‘선인’의 극단적인 대비는 『토지』의 서사를 이끄는 기본 동력이다. 추악하고 타락한 ‘악당들’(‘왜놈’, ‘친일파’, ‘민족반역자’)의 반대쪽에 선량하고 도덕적이며 인간적 미덕과 초인적 용기로 가득 찬 ‘선인들’(항 일독립투사들, 민족주의적 지식인들, 농민을 비롯한 ‘민초들’)이 존재한다.
최참판댁의 하인에서 최서희의 남편이 되는, 독립투사이자 천재적인 화가 인 길상, 무당의 딸 월선(月仙)과의 평생에 걸친 애타는 사랑으로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평사리의 농민 용이, 길상과 최서희의 아들인 윤국과 환국 등은 모두 인 간적 품위와 위엄이 넘치는 인물들이다.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초인적인 용 기와 인내, 뛰어난 능력, 고결한 성품은 이들 모두에게 공통된 자질이다. 그 중에 서도 ‘선(인)’을 대표하는 남성 인물은 아마 김환일 것이다. 비극적 운명의 주인 공이자 지하 운동가로서의 김환은 끝없는 신비에 감싸인 인물이며, 모든 사람들 을 휘어잡는 엄청난 카리스마의 소유자이다. 지하운동가들의 모임에서 그는 언 제나 ‘바위 같은 침묵’ ‘찌르는 눈빛’으로 좌중을 압도한다. 한번 보면 빠져드는 남 성적 매력(하룻밤의 정사를 간절히 소원했던 여인이 그의 냉담한 거절 앞에 목을 매 어 죽을 정도의)도 이 인물의 형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질이다. 그는 “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지극히 높은 경지”(8-48), “영웅의 아들”(6-143), “김 장군(將軍)” (8-349)으로 칭송되는데, 정도의 차는 있지만 모든 긍정적 남성 인물들 역시 언 제나 비슷한 방식으로 찬탄과 흠모의 대상이 된다. 게다가, 선(인)에 속하는 인물 들은 모두 “잘 생겼다.” ‘악당들’이 추악하고 보기 흉한 외모를 지닌 것으로 묘사 되는 것에 비해, 이 선인들의 준수하고 헌걸찬 외모는 자주 강조된다.
남성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긍정적 여성 인물들 역시 빼어난 미모와 품위를 지니고 있으며, 인간적 미덕으로 가득 차 있다. 서희의 몸종이었다가 기생이 되는 봉순이(기화), 친일귀족 조용하의 아내인 임명희, 오가다 지로와 연인관계인 유인 실, 기화의 딸인 여의사 양현 등은 모두 ‘미인’들이며 특별한 재능이나 능력의 소 유자들로서, 그들은 언제나 그들을 흠모하는 남성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남성 여성을 통틀어 『토지』의 모든 인물들 위에 우뚝 선 지고지순의
존재는 말할 것도 없이 여주인공 서희이다. 사람들의 숨을 멎게 하는 그녀의 빼어 난 미모에 대한 강조는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빠짐없이 언급된다. 예컨대, 의 병 토벌에 나선 일본 군대가 최서희의 집을 수색하는 다음의 장면을 보자.
“내가 주인인데 무슨 일로 오시었소.” 유창한 일본말, 엄숙한 눈빛에 뱃삥(미인)이라 하려던 말을 꿀꺽 삼킨 왜병정이 다소 정중하게 묻는다.
“당신이 주인이오?”
“그렇소” <중략> 왜병정은 완전히 기가 꺾인다. “…… 부인, 죄송하지만 가택수색은 해야겠소.” 정중하게 나왔으나 가택수색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서희는 빙그레 웃는다.
<중략> 아주 누그러져서 어투는 친절하기까지 했다. 그는 수색을 개시하는 듯 집총한 채 서희 미모에 넋이 빠진 나머지 멍청이가 된 듯한 세 명에게 손짓을 한다.
“예의를 지켜 주시오. 집안에 오를 때는 신발을 벗어 주시구요. 아시었소?”
“그, 그렇게 하겠소.” 범치 못할 위엄에 눌린 듯, 왜병정들은 갈라져서 수색을 시작한다. (8-51)
포악한 ‘왜병정’들이 서희의 ‘미모에 넋이 나가’ ‘멍청이’가 되고, ‘범치 못할 위엄’에 눌려 ‘기가 죽어서’ 말을 더듬는 이런 장면은 서희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 에서 거의 어김없이 재연된다. 용정의 일본 영사관에 모인 일본 관리의 부인들 역 시 서희의 미모와 위엄에 압도되어 얼이 빠지고, 정보를 탐지하러 왔던 조선인 형 사 역시 서희를 만나서 진땀만 흘리다가 돌아서면서 ‘뭔가에 홀린 듯하다’는 느 낌에 사로잡히고, 서희가 탄 나룻배를 젓는 뱃사공은 ‘감히 서희 쪽을 쳐다보지 도 못한다.’ 조준구의 아들인 꼽추 병수에게 “서희는 빛이었고 우주의 신비였다. 관음상이요 숭배의 대상이며 인간적이 아닌 천상적인 것”이었다.(13-207) “옥을 깎아 만든 듯 단려하고 아름다운 몸”(13-287)을 지닌 그녀는 심지어, ‘늙지도 않 는다.’(13-344) 마치 독자가 그 사실을 잊기라도 할까 봐, 작가는 “그녀는 아름다 웠다” “진정 아름다웠다”는 감탄사를 쉴 새 없이 쏟아낸다.
마흔여덟의 최서희는 아직도 아름다웠다. 서산에 해가 지는, 그 노을빛같이 아 름다웠다. 물살을 가르며 가는 배, 뱃전에 서 있는 여인, 하얀 숙소(熟素) 겹저고 리 치마를 입고, 옷고름이 나부끼고 치맛자락이 강바람에 나부낀다. 그는 진정 아름다웠다. 고귀하고 위엄에 가득 차 있었다. (13-260)
물론 서희는 외모만 출중한 것이 아니다. 모든 남성들을 능가하는 사업가로 서의 수완과 배짱, 어떤 위험과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지략과 담력, 수하의 사람 들을 끝까지 돌보는 인간미는 그녀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에서 거의 빠짐없이 반 복 묘사된다. “학같이 고귀하시고 사물에 정통하시며 암호랑이 같이 무서우셨” 던(15-350) 외할머니 ‘윤씨부인’의 계승자인 그녀는 모든 사람들의 어려움과 고 통을 해결하는 구세주이다. ‘친일파’라는 비난을 들어가며 그녀는 묵묵히 독립 운동을 뒤에서 지원하며 자신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의 생활을 보살핀다. 최서희 가(家)의 집사인 장연학의 말에 따르면, “노상 비단옷 입고 밤길 걷기, 남몰래 하 는 일을 어느 누가 알 것인가. 그 분은 태산같이 바람을 막아주셨고, 물심양면으 로 그러지 않았더라믄 모두 싼싼조각이 났지. 장부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다만 한 이라.”(15-361) 요컨대, 그녀는 전형적인 시리얼 퀸 멜로드라마(Serial- Queen
melodrama)의 주인공, 즉 원더우먼(Wonder Woman)인 것이다.
고통 받던 선(인)이 본래의 위치를 회복하고 악(인)이 응징 당하는 것은 모
든 멜로드라마의 필연적 귀결이다. 『토지』 역시 예외는 아니다. 악당의 모략으로 자신의 땅에서 쫓겨나 이역(異域)을 떠돌던 군주가 충직한 가신(家臣)들의 도움 으로 와신상담 끝에 마침내 복수를 완결 짓고 권좌(權座)로 복귀한다 — 『토지』 는 현대독자에게 매우 낯익은 이런 플롯에 의지함으로써 독자의 공감을 호소한 다. 이 고통과 응징의 과정이 스펙터클하면 할수록 독자의 몰입은 배가되며 멜로 드라마의 효과는 극대화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토지』에서 독자를 몰입시 킬 만한 스펙터클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토지』의 서술에서 매우 특징적인 것은 사건의 진행이 인물들 사이의 대화나 독백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는 점 인데, 이것은 사건을 짐작하고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에는 효과적일지 모르나, 극 적인 사건의 현장으로 독자를 안내하지는 못한다. 숱하게 등장하는 비밀 지하조 직의 활동가들이 실제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전혀 묘사되지 않는다. 사선(死線) 에 선 그들의 활동은 언제나 술자리에서의 시국담이나 논쟁으로만 그려진다. 결 국 독자가 보고 듣는 것은 언제나 술을 마시면서 정세를 예견하고 논쟁을 벌이는 항일투사들의 밑도 끝도 없이 지루한 시국담뿐이다. 심지어 태평양전쟁 발발 이 전에 이미 “미국의 참전”을 예견하거나(13-318), 징용이나 학병을 피해 지리산 에 숨어든 인물들이 일본의 ‘항복’을 운운하고, ‘해방’ 이후 ‘사회주의 정권 수립’ 에 관해 논쟁하는(16-413)6) 등의 놀라운 예언(豫言)들도 이 시국담의 일부를 이 룬다.
그러나 스펙터클이 부재하다고 해서 이 소설의 멜로드라마로서의 성격이 약 화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토지』의 본령은 역시 ‘농촌 가정극’(Home Drama)에
6) “미국의 참전”을 기대하면서 “일본의 패망”을 예상하는 것은 진주의 사업가인 이순철인데,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지도 않 은 시점에서 식민지 지방도시의 평범한 조선인이 이런 예언을 할 가능성은 절대로 없다. 또한 학병을 피해 지리산에 숨 어든 조선인 청년들이 “일본의 항복이 경각에 달려 있다”고 하면서 ‘해방’의 그날을 준비한다는 것도 당시의 시점에서 상 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밖에도 『토지』의 인물들은, ‘친일파’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본의 패망’을 예견하고 있고, ‘해방’의 날이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자는 자세를 보인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분명하게 일제의 패망을 알고 있었다면, ‘식민지’도 ‘친일파’도 없었을 것이다.
있다고 할 수 있다. 『토지』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농촌, 특히 소설의 무대가 되 는 평사리 농민들의 일상생활에 관한 묘사일 것이다. 혼인과 출산, 탄생과 사망 같은 인간적 삶의 운행 속에 섬세하게 짜 넣어진 농민적 일상의 세세한 항목들을 묘사할 때 작가의 붓끝은 빛을 발한다. ‘악당들’에 대한 저주를 퍼부을 때 작가의 메가폰이 되고 마는 인물들과는 달리, 이때의 농민들은 저마다 살아 숨쉬는 생생 한 성격이 된다.
정치적・역사적 환경과는 무관하게 변함없이 지속되는 가정사(家庭事)들, 예 컨대 부모 자식간의 불화, 부부불화, 고부갈등, 처첩(妻妾)갈등 등은 이 농촌 가정 극의 주요 소재를 이룬다. 작가가 수없이 강조하는 일제의 ‘수탈 정책’에도 불구 하고, 『토지』의 무대에서 평사리 농민들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유족한 생활을 누 린다는 사실은 이 소설의 본령이 농촌 가정극, 말하자면 ‘전원일기’(田園日記)의 세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권좌로 귀환한 ‘군주’ 혹은 ‘봉건 영주’의 자애로운 보살핌 아래 평사리 농촌의 일상은 세상의 변화, 세월의 흐름과 상관없이 언제나 똑같이 진행되는 것이다.
농촌 공동체의 변함없는 일상과 함께 반복되는 것은 재자가인(才子佳人)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이다. 『토지』의 많은 인물들을 괴롭히는 가장 큰 문 제는 남녀 간의 애정 문제다. 수많은 종류의 애정담, 삼각관계, 불륜(不倫), 사련 (邪戀), 비련(悲戀), 애련(哀戀) 등등의 스토리들이 부모세대로부터 자식세대, 손 자세대로 이어진다. 스펙터클의 부재를 대신하는 이 끊임없는 ‘혼사장애담’(婚事障碍譚)이야말로 『토지』의 모든 인물, 모든 공간을 이끄는 기본적인 서사이다. 그 러나 많은 경우 그것은 식민지 사회의 엄청난 속도, 특히 도시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동일한 이야기 구조나 심리묘사를 반복함으로써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멜 로드라마로서의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모든 개인의 이야기가 ‘민족’이라는 주인 공의 이야기로 수렴되는 이 멜로드라마의 구조상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결과일지
도 모른다. 장편 대하소설 『토지』는 다음과 같이 끝난다.
“뭐라 했느냐?”
“일본이, 일본이 말예요, 항복을, 천황이 방송을 했다 합니다.” 서희는 해당화 가지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정말이냐…….” 속삭이듯 물었다.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다음 순간 모녀는 부둥켜안았다. 이때 나루터에서 는 읍내 나갔다가 나룻배에서 내린 장연학이 뚝길에서 만세를 부르고 춤을 추며 걷고 있었다. 모자와 두루마기는 어디다 벗어던졌는지 동저고리 바람으로 “만세! 우리나라 만세! 아아 독립만세! 사람들아! 만세다!” 외치고 외치며, 춤을 추고, 두 팔을 번쩍번쩍 쳐들며, 눈물을 흘리다가는 소리 내 어 웃고, 푸른 하늘에는 실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해방’의 소식과 함께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항일의식의 분출’과 함께 “동물적으로 일본인을 살 해할 수 있을 것 같다”던 장연학은 춤을 추며 ‘해방’의 소식을 반긴다. 기나긴 대 하소설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 장면에 대해 이제 우리는 마지막으로 물어야 한 다: 서희를 휘감은 쇠사슬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무엇으로부터 ‘해방’된 것일 까? 장연학은 ‘동물적으로 일본인을 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증오와 분노를 그 대로 둔 채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을 반기었던 것일까? ‘원수’(怨讐)에 대한 증오 와 분노를 간직한 채 그는, 그리고 우리는 ‘해방’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럴 수 없는 한, 이러한 민족-멜로드라마는 다시 또 끊임없이 쓰여진다 는 것, 이른바 ‘해방’ 이후의 역사는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되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의 반일의식은 북한에 대한 고려 속에서도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1959년에 시작된 일본의 북송정책을 전후한 시기 이승만 자신의 발언과 북송정책에 대한 한국정부의 강력한 반발은 그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북한과 일본의 접촉 및 재일교포들의 북한으로의 귀환은 이데올로기적 전 쟁터인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승만은 한국이 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될 수 없다는 인식 하에, 역할 분담을 통한 새로운 파트너십을 추구했다. 일본이 경제적 측면에서 미국의 파트너 가 된다면, 한국은 안보, 군사적 측면에서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정 책 하에서 집단 안보동맹을 추진했고,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파병을 미국에 제안했다. 이렇게 본다면,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시기 이승만의 반일의식은 단순한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나왔다기보다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세계 질서 속에서 한국의 위 치를 적극적으로 고려한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일본의 정치인 및 과거사에 대한 발언 속에서도 확인된다. 이러한 실용적인 대일인식은 이미 식민지 시기부터 계속되 었던 그의 반일인식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주제어 : 이승만, 냉전, 실용적 대일인식, 미국의 대일정책, 분단상황
박정희, 혹은 만주국판 하이 모더니즘의 확산 | 한석정 투고일자 : 2010년 5월 29일 | 심사일자 : 2010년 6월 23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개발체제(1961~1979)의 식민적 연원은 연구의 빈 공간 이다. 이 글은 그의 해방 전, 특히 그의 생시에 언급이 금기였던 만주국 시절(만주국 사 관학교 졸업과 만주국군 장교 시절)에 초점을 맞추어, 그 경험이 후일 개발체제의 운행을 과다 결정(혹은 예정)했음을, 그리고 그 중요 요소가 독일, 소련 등에서 발원, 만주국을 경유한 하이 모더니즘(총력동원, 건설의 속도전을 강조하는 발전의 확신)임을 주장한다. 그리고 개발체제의 중요 환경인 냉전시대의 남북한 체제경쟁, 특히 한국 사회 동원의 뿌리가 만주국 시기에 있음을 아울러 지적한다.
주제어 : 박정희, 만주국, 개발체제, 하이 모더니즘, 냉전
민족-멜로드라마의 악역들 : 『토지』의 일본(인) | 김철
투고일자 : 2010년 6월 14일 | 심사일자 : 2010년 6월 23일
이 논문의 목적은 박경리의 장편 대하소설 『토지』를 멜로드라마의 관점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토지』는 강렬한 파토스, 과도한 감정, 도덕적 양극화 같은 멜로드라마의 요소 를 풍부하게 갖추고 있다. 악랄하고 잔인무도한 악당들과 영웅적 초인들의 대결이 『토 지』의 기본적인 서사문법이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도덕적 양극화이다. 선(인)/악(인) 의 선명하고도 가차 없는 이분법은 엄청나게 방대한 양의 이 소설에서 조금도 변치 않 는 원칙이다. 이 선악의 선명한 양극화는, 뜻밖에도, 아니 당연히, 양적으로 방대한 이 소설의 내부적 밀도를 매우 느슨하고 무미건조하게 만드는 것인데, 이 양극화된 세계
305 초록
속에서 선(인)의 무리는 만주벌판을 누비는 독립투사들, 지하에서 암약하는 혁명가 들, 그리고 일본(인)에 대한 강렬한 적개심과 혐오감을 간직하고 있는 다수의 민중이 며, 악(인)의 무리는 소수의 일본(인)과 ‘친일파’들이다. 이 멜로드라마의 세계 속에서 궁극의 승리를 향해 가는 선(인)의 총칭(總稱)은 ‘민족’이다. ‘민족’ 또는 ‘조국’은 선(인)의 근거이며 또한 종착지이다. 다시 말해, 출발점이자 회귀점으로서의 ‘민족’은 이 멜로드라 마의 진정한 주인공이다. 『토지』를 민족-멜로드라마로 명명한 까닭은 거기에 있다. 통속 멜로드라마의 상투적 묘사법, 즉 흉악하고 포악한 ‘악당’과 지고지순한 ‘선인’의 극단적인 대비는 『토지』의 서사를 이끄는 기본 동력이다. 추악하고 타락한 ‘악당들’ (‘왜놈’, ‘친일파’, ‘민족반역자’)의 반대쪽에 선량하고 도덕적이며 인간적 미덕과 초인적 용기로 가득 찬 ‘선인들’(항일독립투사들, 민족주의적 지식인들, 농민을 비롯한 ‘민초들’)이 존재한다. 농촌 공동체의 일상에 대한 생생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토지』 전체를 지배 하는 인종주의, 제노포비아, 국수주의적 문화본질론 등은 이 소설의 즐거운 독서를 크 게 방해하고 있다. 주제어 : 『토지』, 멜로드라마, 민족주의, 이분법적 인식, 인종주의, 제노포비아
일본, 그럼에도 여전히, 세계의 입구:『축소지향의 일본인』으로 읽는 한 후기식민지인의 초상 | 황호덕
투고일자 : 2010년 6월 10일 | 심사일자 : 2010년 6월 23일
“어째서 일본만이 홀로 공업 경제국으로 구미 문호와 같은 대열에 낄 수 있게 되었는 가?”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1982)이 출간된 시점은 1980년대 일본의 경제대 국화와 그에 따른 새로운 일본(인)론에의 요구가 비등했던 때였다. 이어령은 이 책에 서 후기식민지 출신의 비평가로서의 자신의 경험에 기초해, 서구 대 일본이라는 일본 인론·일본문화론의 틀을 깨고 동아시아 내에서의 차이라는 새로운 비교문화적 담론 틀을 제기했다. 즉 후기식민지인의 식민본국론이라는 틀 자체가 일종의 문화접경지대 로부터의 논의로서 비상한 주목을 끌었던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이어령의 일본문화론을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검토했다. 첫째 축소 지향으로 설명된 그의 일본문화론을 일관하는 방법은 사회 및 역사, 정치경제분석과 는 전혀 다른 기호론적 방법— 실제로는 국민성의 제유 배열에 의해 구성되었다. 쥘 부채, 도시락, 워크맨과 같은 일상의 사물과 세부가 국민성을 대표하게 되는 ‘유사기 호학적 제유’의 방법은 이 문화접경지대의 논의를 다시 문화본질주의의 유형학에 귀 착시키는 원인이 된다. 둘째 한일 비교의 방법을 통해 전개되는 그의 일본문화론의 심 층심리에는 일본문화론 읽기의 기대지평 안에 한국문화론을 기입하려는 후기식민지 인의 독특한 도전이 개입되어 있었다. 이렇게 일본을 통해 동양론의 심부로, 이를 통해 세계성・보편성으로 매개되고자 했던 그의 구상은, (후기)식민지인이 (구)식민본국을 통해 세계로 나아가려 할 때 택하게 되는 제국 에이전시의 존재를 다시금 확인하게 한
다. 셋째 축소지향이라는 일본문화론의 키워드가 실재하는 일본 상품과 문화 형식을 일부 반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축소지향이란 일종의 카메라 옵스큐라와 같은
306 일본비평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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