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혼, 어땠어?] 청춘들이 보여주는 ‘무협 판타지’
등록 2022-07-14
남지은 기자
[드라마톡 볼까말까]
tvN 홍자매 집필…혼 바꾸는 ‘환혼술’ 눈길
드라마 속 현실서 꿈 이뤄가는 청춘들 모습
오늘날 청춘들의 모습과 맞닿은 지점 많아
한국형 무협 판타지 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준 <환혼>. 티브이엔 제공
지난 6~7월 수많은 드라마가 첫 방송을 시작했다. 그런데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 우영우의 이야기를 다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엔에이·ENA) 외에는 대부분 화제성이 약하다. 재미가 없는 걸까, 안 봐서 모르는 것일까. <한겨레> ‘드라마톡’ 평가단이 <우영우> 외에 볼만한 작품을 추천한다. 지난달 18일 방송을 시작한 <환혼>(티브이엔 토·일 밤 9시10분)이다.
<환혼>은 영혼을 바꾸는 ‘환혼술’로 인생이 달라진 남녀 주인공이 삶을 헤쳐나가는 로맨스 퓨전 사극이다. 아버지가 ‘기문’을 막아 술법을 배울 수 없게 된 장욱(이재욱)이 천하제일 살수인 낙수(고윤정)의 혼이 깃든 무덕이(정소민)를 우연히 만나 사제지간이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따라 이야기가 흐른다. 환혼술이라는 소재와 한국형 무협 장르, 코믹함을 가미한 전개 등이 신선하다. <쾌도 홍길동> <화유기> 등으로 특유의 한국형 무협 판타지를 만들어왔던 홍자매(홍정은, 홍미란)의 작품이다. 시청률은 1회 5.2%로 시작해 8회 6.8%로 줄곧 5~6%(이상 닐슨코리아 집계)대를 유지하고 있다. 박준화 연출.
<환혼> 갈무리 화면.
남지은 기자 = 이전에 실패했던 홍자매의 무협 판타지가 <환혼>에서 성공한 것 같다. <화유기>에서는 상상력만 엿보였다면, <환혼>에서는 내실도 다진 느낌이다. 캐릭터 서사도 좋고, 무게감을 적당히 덜어내 코믹한 설정도 버무렸다. 시청자들이 힘 빼고 볼 수 있다. 기발함, 창의성 측면에서만 따져본다면 최근 시작한 드라마 중에서 가장 돋보인다. 1회에서 선왕인 고성(박병은)이 환혼술을 연마한 장강(주상욱)과 혼을 바꾸는 장면부터 흥미롭더라.
정덕현 평론가 = 바로 그 혼을 바꾼다는 설정이 <환혼>의 관전 포인트다. 초절정 고수 낙수가 혼을 바꿔 들어간 몸이 하필이면 무덕이라는 저질 체력에 술법 자체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는 것과 무덕이가 낙수임을 알아보고 몸종으로 데려와 사실은 사부로 모시면서 막힌 기문을 열고 술법을 배우려는 장욱은 바로 환혼술 때문에 관계가 복잡 미묘해진다. 겉으로는 장욱이 주인이고 무덕이가 몸종인 주종관계지만, 실제로는 무덕이가 사부고 장욱이 제자인 사제관계가 되는 것. 하대와 존대가 왔다 갔다 하는 관계 자체가 코믹하고 흥미로운 재미를 만든다.
남지은 기자 = 캐릭터가 주는 재미도 있다. <환혼>은 기술보다는 캐릭터가 끌고 가는 드라마다. 1회부터 어떤 혼이 또 어떤 몸에 들어갈까, 잔뜩 기대하고 보다 보면, 갈수록 특별한 게 없어서 실망하게 되지만, 다른 사극에 견줘 캐릭터 간 재미있는 ‘플레이’가 많다. 특히 장욱과 무덕이가 나오는 장면들이 그러하다. 서율(황민현)을 몰래 지켜보다가 발각된 이후 임기응변으로 내뱉은 무덕의 대사를 듣고 피식 웃었을 시청자들 많았을 것이다. “사모해유~.” 장욱이 스승인 무덕이의 몸속 낙수가 서율한테 잘해주자 “스승님 바람 피지 마”라는 대사로 질투하는 장면도 신선했다.
정덕현 평론가 = 이런 설정들이 비판적이지 않고 장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웹콘텐츠 문화의 성장과 연관된다. 최근 몸을 바꾸거나 인생을 리셋하거나 시간을 되돌려 다시 살아보는 등의 판타지가 웹소설과 웹툰에서 유행이다. 특히 웹소설에서 최근에 선보이는 무협소설은 대부분 ‘인생 리셋’ 같은 판타지 설정이 가미되어 있다. 이를 과거와 달리 ‘신무협’이라고 부른다. <환혼>도 이런 경향의 한 계보로 보인다.
<환혼> 갈무리 화면
남지은 기자 = 장욱, 무덕이, 서율, 박당구(유인수), 진초연(아린), 고원(신승호), 낙수(고윤정) 등 ‘그 시절’ 청춘들이 대거 등장하는 점도 눈에 띄는 요소다. 이 퓨전 사극의 시대 배경은 가상의 대호국이다. 그 시절 청춘들의 우애를 보는 것도 즐겁고,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진 캐릭터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 그중에서 낙수와 그 낙수의 혼이 들어간 무덕이가 가장 강하다는 것은 기존 사극과는 좀 다른 지점이다. 보통 사극에서는 경쟁구도가 기본인데, 세자인 고원과 장욱이 ‘어른’들의 꾀임에 경쟁구도를 이뤄가다 어느 순간엔 힘을 모으는 설정도 ‘청춘’들을 다르게 바라본, 돋보이는 장면이다. 세자가 몸종한테 지는 설정도 사극에서 본 적이 있나? 그러고 보면 세자 캐릭터도 은근 매력 있다.
정덕현 평론가 = 무덕이와 장욱 둘 다 ‘발휘되지 못한 능력 혹은 잠재력’을 가진 청춘이라는 설정은 기성세대들이 꼬이게 만든 현실 앞에서 제 꿈을 마음껏 펼쳐나가지 못하는 현재의 청춘들을 떠올리게도 한다. 이들의 무협 판타지 서사가 현실적인 카타르시스와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환혼> 갈무리 화면
남지은 기자 = 5명 혹은 그 이상 되는 젊은 캐릭터들을 흔히 말하는 ‘톱스타’로 채우지 않은 시도도 좋다. 이 중에서 정소민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배우고, 다른 이들은 팬덤이 있지만, 대중적으로 얼굴이 알려진 배우라고 보긴 힘들다. 제작비 400억원을 들인 드라마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그런 선택 덕분에 좋은 배우들이 널리 알려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특히 이재욱이 연기를 잘하더라. 1회에서는 살짝 어색한 느낌도 있었는데, 갈수록 능청스러운 말투 등이 입에 찰싹 달라붙더라. 사극에서 코미디까지 소화하는 게 쉽지 않은 데 다 잘한다.
정덕현 평론가 = 이재욱은 <어쩌다 발견한 하루>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등 드라마에서 지금과 같은 까칠해 보이지만 슬쩍슬쩍 연인을 챙기는 역할을 잘 소화했다. 그래서 <환혼>에서도 정소민과의 이런 케미가 잘 그려진다. 하지만 이 작품이 연기 포텐을 끄집어낸 건 무덕이 역할의 정소민이라고 생각된다. 사부였다가 몸종이었다가 연인으로까지 변신하고, 액션에 코미디 그리고 멜로까지 해야 하는 쉽지 않은 역할을 소화해내고 있다.
남지은 기자 = 아쉬운 점도 있다. 서율과 당구, 초연, 고원 캐릭터의 매력이 다 드러나지 못한 느낌이다. 박진(유준상) 캐릭터에 주어진 코믹 설정도 너무 과한 것 같다. 캐릭터가 무너지는 느낌이랄까. 이는 연출이 잡아줘야 하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시즌2 때를 기대해본다. 드라마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면 모든 캐릭터가 사랑받았을 거란 생각에 <환혼>의 지금 ‘이 정도’ 인기가 조금은 아쉽다.
정덕현 평론가 = 후반부에 본격화될 태생의 비밀 코드는 드라마의 극성을 한층 높여줄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건 태생의 비밀이 혼과 몸 두 차원에서 그려진다는 것이다. 무덕이는 진요원을 이끄는 진호경(박은혜)이 찾고 있는 잃어버린 첫째 딸로 추정되는데, 낙수는 과거 아버지(윤서현)를 죽인 송림의 술사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진무(조재윤)에 의해 살수로 키워진 인물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건 진무 간계에 의한 것이라는 게 밝혀지지만). 혼과 몸이 다른 두 인물이 저마다의 태생의 비밀을 갖고 있어 이것이 동시에 풀어지는 과정은 상당히 흥미로울 것으로 보인다.
남지은 기자 = 그런 흥미가 드라마 보는 재미가 아닐까. 시청자를 끌어모으는 요인일 테고. <환혼>은 시작부터 시즌1과 시즌2로 나뉘어 방영하기로 했다. 그런데 최근 사실인지 아닌지 모를 시즌2 ‘스포’로 시청자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이제 시즌1 중반 정도 방영했는데 시즌2 정보라니. 사실 여부를 떠나서 그런 이야기는 드라마 볼 맛을 떨어뜨린다. 사건 사고도 아니고 결말을 상상하며 재미있게 보고 있는 시청자들한테 실례가 아닐지.
정덕현 평론가 = 어쨌든 <환혼>은 아쉬운 점도 많지만 한국 무협 판타지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연재드라마톡 볼까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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