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은 老철학자의 충고를 잘 따르고 있나 [열국지로 보는 사람경영]
장박원입력 : 2023.02.18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년 전인 2021년 3월 100세가 넘은 노(老)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를 만났습니다. 문재인 정부와 갈등 끝에 검찰 총장직을 사퇴하고 첫 외부 일정이었습니다. 지금의 여당인 국민의힘의 유력한 대선 주자로 거론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윤 대통령이 정치에 뛰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정작 본인은 확신이 서지 않았나 봅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김 교수에게 정치를 해도 되겠냐는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이에 김 교수는 이런 충고를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애국심이 있는 사람, 그릇이 큰 사람, 국민만을 위해 뭔가를 남기겠다는 사람은 누구나 정치를 해도 괜찮다. 정의를 상실하면 그 사회는 유지될 수 없는 게 상식이다.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유능한 인재가 나오는 게 아니라 함께 일할 줄 아는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다.” 현재 윤 대통령은 노 철학자의 충고를 잘 실천하고 있는 것일까요?
김형석 교수
▲ 김형석 교수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노인의 경륜은 청년의 패기가 닿을 수 없는 경지입니다.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전국시대 말 진나라가 초나라를 정벌할 때 노장군 왕전과 젊은 대장 이신과 관련된 일화입니다. 왕전과 그의 아들 왕분은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명장입니다. 진나라는 강의 물줄기를 바꾸는 수공으로 위나라를 정복하고 초나라 공략에 나섭니다. 이때 진나라에서 대장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이신입니다. 그는 조나라 정벌 때 참전했고 진시황 암살을 주도한 연나라 태자 단을 처단하는 공을 세웠습니다.
진시황은 이신에게 초나라 정벌에 어느 정도 군사를 동원하면 될지 물었습니다. 이신은 25만명이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의심이 많았던 진시황은 왕전을 불러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왕전의 답은 전혀 달랐습니다. “이신이 25만의 군사로 초나라를 공격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 병력만으로는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신의 판단으로는 60만 대군이 아니면 초나라 정벌은 불가능합니다.” 진시황은 이 말을 불신했습니다. 왕전이 노인이라 겁이 너무 많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초나라 공략의 임무를 이신에게 맡겼습니다.
이신은 20만명의 군사를 동원해 호호탕탕 초나라로 진군했습니다. 개전 초기엔 여러 성을 함락하며 어렵지 않게 목적을 달성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초나라는 역시 남쪽의 강대국이었습니다. 항연이라는 걸출한 장수도 있었습니다. 항연은 진나라 멸망 후 한왕 유방과 패권을 겨루던 초왕 항우의 숙부입니다. 항연은 유인과 매복 작전으로 이신의 군대를 무찔렀습니다. 잃었던 성들을 모두 되찾았을 뿐 아니라 진나라와 가까운 조나라 경계까지 추격했습니다. 진시황은 패장인 이신의 관직과 봉읍을 삭탈하고 곧바로 왕전을 찾았습니다. “장군이 20만명으로 초나라를 공격하면 패배할 것이라고 했는데도 과인이 그 충고를 듣지 않아 낭패를 보았소. 이번 싸움은 장군이 아니면 이길 수 없소.” 그러자 왕전은 다시 60만 대군을 요구했습니다.
진시황이 그렇게 많은 병력이 필요한 이유를 묻자 왕전이 대답했습니다. “옛날엔 전쟁을 할 때 법도가 있었습니다. 무기를 들고 싸우면서도 예법에 따랐습니다. 그래서 제왕이 군사를 쓸 때 절대 많은 군사를 동원하지 않았고 인명 피해를 최소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열국 모두 총력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강국이 약한 나라를 멸하고 많은 군사로 적은 군사를 짓밟고 있습니다. 한 번에 수만 명을 죽이고 수 년간 성을 포위하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전쟁의 양상이 이렇게 바뀌었으니 병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습니다. 더욱이 초나라는 100만의 군사를 동원할 수 있는 대국입니다. 60만으로도 부족할 수 있습니다.” 경륜에서 나온 왕전의 탁견에 진시황은 승복하고 60만 대군을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출정을 앞두고 왕전은 진시황에게 의외의 요청을 했습니다. 그것도 죽간에 꼼꼼하게 적어 올렸습니다. 내용은 진나라 수도 함양 땅의 비옥한 전답과 주택을 여러 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손들에게 물려 주고 싶다는 노욕을 내비쳤습니다. 이미 부귀와 명성을 누리고 있던 대장군이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초나라 정벌에 부장으로 참전했던 몽무는 왕전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왕전은 그를 불러 비밀리에 말했습니다. “진왕은 성격이 사납고 의심이 많네. 지금 정예병 60만을 내게 주었으니 이는 온 나라의 군사를 준 것과 다름없네. 내가 자손을 위해 좋은 땅과 집을 달라고 한 것은 바로 진왕의 마음을 안심시키기 위한 방책일세.” 몽무는 노장군 왕전의 지혜와 처세술에 탄복했습니다.
진나라 명장으로는 장평대전에서 조나라를 상대로 대승한 백기가 있었습니다. 전술과 용맹은 왕전보다 뛰어났습니다. 하지만 수 십만명의 조나라 포로를 생매장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자존심이 너무 강했습니다. 자신의 공로만 믿고 왕조차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백기는 반역죄에 몰려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왕전은 이런 백기의 실책을 반면교사로 삼았을지도 모릅니다. 총력전으로 바뀐 전쟁 양상을 냉철하게 읽는 분석력과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혜안, 전쟁터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던 실전 경험을 두루 갖췄을 뿐 아니라 처세술까지 뛰어난 노장군 왕전이 있었기에 진시황은 천하통일을 달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윤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하기 전에 노 철학자를 찾은 것은 훌륭한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행보가 결실을 맺으려면 경륜에서 나온 충고를 늘 마음에 두고 초지일관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애국심, 큰 그릇, 국민만을 위한 마음. 정의의 회복, 함께 일할 수 인재들….” 윤 대통령이 매일 되새겨야 노철학자의 충고입니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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