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06

고영범 -양방언, 추성훈, 강상중..자이니치라 불리는 그들의 고민 (KBS 20090814 방송)



고영범
26 March at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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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생애의 절반 가까이를 외국에 살고 있는 처지가 되었는데(악의적으로 묻는 자들에게는 대답을 거부하지만, 내 국적은 여전히 한국이다. 미국인이 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내 역사의 의미 깊은 부분이 한국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국인이 된 사람들은 그들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제일 멍청하게 여기는 게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다. 정체성이 정말 한 개인에게 중요한 질문이고 그 질문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면, 그 질문을 하는 자는 조상 대대로 어떤 사회에서 태어나 그 사회를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온 사람(자기자신을 포함해서)은 정체성에 관련된 문제가 없는지 먼저 물어봐야 한다. 그때 그 질문은 수십 수백 겹의 의미망을 가지고 있는 게 될텐데, 외국에 살고 있는 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질문의 정말 고약한 점은, 이 내용 없는 추상적인 질문이 질문자의 위치--그의 '이념적 정체성'을 위장하고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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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영상에서 김정운이라는 이는 세 명의 자이니치에게 당신은 일본인인가 한국인인가 하는 질문을 변주하는 이런저런 질문들을 계속 던지고 있는데, 여기에는 자신은 한국인이고 '정체성 위기 제로'라는 전제가 들어 있다. 나는 이 사람한테 물어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당신은 모든 문제가 해결됐나? 당신의 모든 문제는 국적으로 수렴되는가? 아마도 그렇지 않을텐데, 그렇다면 왜 이런 허황한 질문을 마치 상당히 의미있고 중요한 질문인 것처럼 가지고 다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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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한국 정부가 정해준 용어이고 가장 포괄적이니 이걸 쓰도록 하자)에게 가장 큰 문제는 정체성이 없는 게 아니라 자신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낼 때 가해지는 차별이다. 실제로 이 인터뷰에서 세 명의 인터뷰이들이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건 정체성이 아니라 차별(두 나라 모두에서)의 문제다. 그리고 김정운은, 아마 몰라서 그러고 있는 것 같은데, 끊임없이 이들의 발언을 방해하면서 정체성의 문제로 되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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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게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차별을 은폐하기 위해 동원된다는 것이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많은 경우 "한국에 대한 당신의 태도를 정하라"는 요구로 번역되는데, 이 다음 순서는 크든작든 희생의 요구가 아니면 처벌이다. 그렇지 않은가? 나만 당할 순 없다, 뭐 이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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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제일 재미있는 건, 미국의 자칭 리버럴(한국에서 '진보적'에 해당하겠다) 백인들이 나같은 아시안 이민자들에게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하거나 정체성과 관련된 난처한 처지를 이해하는 척하는 경우다. 여기에 대한 내 대답은 앞에 쓴 세 문단이다. 요약하자면, "너희가 날 차별하지 않는다면 내게는 정체성 문제 같은 건 없지만, 너희가 날 차별하기 시작하는 순간, 아 씨발 내가 여기 왜 와서 이런 꼴을 당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게 될 것이고, 내 정체성의 위기는 그렇게 시작될 것이다."가 되겠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많은 한국인들은 "그러게 거길 왜 가서"라고 반응하는데, 그 안에는 차별을 용인하는 태도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 문장은 아주 쉽게 "그러게 여길 왜 와서"로 반복되기 때문에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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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영상에 나오는 김정운의 멍청함은 정말 참기 어렵지만, 세 명의 현명한 자이니치를 보는 재미로 끝까지 봤다. 조만간 이 주제를 둘러싼 친절한 글을 한 편 써야 하는데, 쉽지 않다 쉽지 않아... 그러게 내가 추상명사를 함부로 쓰지 말라 그랬잖아, 잘난척하다가 스스로 속아넘어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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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방언, 추성훈, 강상중..자이니치라 불리는 그들의 고민 (KBS 20090814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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