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06

알라딘: 일본 열광 -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도쿄 일기 & 읽기

알라딘: 일본 열광

일본 열광 -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도쿄 일기 & 읽기 
김정운 (지은이)  프로네시스(웅진)  2007-06-10

327쪽




책소개

일본인들의 정서적 키워드를 다양한 각도에서 찾아낸 책.
 '하얀 빤스와 도덕적 마조히즘', 
'라부호테루와 옥시덴탈리즘' 과 같은 흥미로운 주제로 일본의 특질을 잡아낸다. 
문화란 '정서 공유의 리추얼'이라는 지은이의 견해가 잘 드러나는 일본 문화론 책이다.

일본을 방문하는 모든 외국인이 감탄해 마지않는 섬세한 배려의 깊은 이면에는 
어머니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을 갈구하는 응석부림과 주체적 자아로 서지 못하는 자의식의 결핍이 깔려 있다는 것, 
주체적 자아의 결핍은 근대의 중심플롯인 ‘친부살해’의 핵심 플롯이 생략되어 있기에 자의식이 결핍되어 있고, 
그것이 문화적인 자학으로 이루어진다는 지은이의 견해는 
그 사실여부를 떠나 독특하고, 흥미롭다.

지은이는 일본에 관한 책이 보다 많아지고 더욱 다양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출간했으며, 일본 문화를 현상적으로 일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나름대로 재구성해 보여주고 있으니 한번쯤 지은이를 따라 일본을 다시 보는 것도 그리 나쁜 경험은 아닐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 슈프레 강가에서 일본 열광으로

1. 하얀 빤스와 도덕적 마조히즘
노안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바쁘면 자신이 정말 중요한 사람인 것처럼 착각한다
'하얀 빤스'가 자꾸만 눈에 보인다
하얀 빤스, 전투 소녀에서 짱구 엄마까지
모세는 이집트인이었다. 유대인이 아니다
배려와 자학은 동일한 심리적 구조의 다른 표현이다
하얀 빤스는 절대로 벗겨지면 안된다
군대와 학교에는 심리학적 공통점이 있다
신주쿠교엔에 가면 유럽을 만날 수 있다
천황은 사람이 아니다. 전능한 신이다
마조히즘은 또 다른 마조히즘으로 진화한다

2. 라부호테루와 옥시덴탈리즘
일본 음식은 항상 2%가 부족하다
일본 사람도 역시 뭔가 아쉽다
아이팟 신화의 배경에 결핍이 있었다
이상한 통계의 나라
누구나 약간의 페티시 경향을 갖고 있다
일본인들의 성욕은 아주 독특한 이미지로 매개된다
일본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서양을 만들어낸다
자발적 오리엔탈리즘으로 대응하다
경쟁력은 처절한 '서양 만들기'에서 나온다

3. 사무라이와 오르가슴 장애
와세다 대학 교정에서 하루키를 추억하다
착한 남자들 속에 사무라이 정신이 부활한다
다이조부데스카(사내대장부입니까)?
도쿄에서는 '내 안의 또 다른 나'가 끊임없이 말을 걸어온다
언어의 규칙은 불안을 통제하려는 의도이다
일본어 문법에는 절차적 권위주의가 담겨 있다
정해진 리추얼의 반복을 통해 절제를 내면화한다
절차적 권위주의는 심리적 장애로 발전한다
권위의 실체는 없다. 권위의 절차만 남아 있을 뿐이다

4. 다 벗었지만 안 벗은 걸로 하기
혹카이도의 눈과 강원도 화천의 눈
오타루에서 '내 기쁜 젊은 날'의 이미숙을 기억하다
일본의 목욕탕에서는 다들 수건으로 가린다
벗었지만 서로 벗지 않은 걸로 하자
겨울은 그저 견뎌야 하는 계절이다
청결에 대한 강박이 도를 넘어서다
일본식 개인주의는 개인주의가 아니다
어디에나 시선이 존재한다
빈 벤치는 그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원근법과 관점 전환 능력
천황에게 복종하면 쇼균의 권력이 유지된다
카메라 기술이 살아 있는 한, 일본은 게속 잘 살게 되어 있다

5. 젖은 눈의 남자와 불륜 기차
나이가 들어도 눈이 계속 젖어 있으면, 사고를 친다
슬픈 한국 남자는 당구장으로 가고, 슬픈 일본 남자는 기차를 탄다
교토에서는 불륜을 해도 된다?
나도 기차를 탔다
프로이트도 기차를 탔다
프로이트는 처제 민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다
'젖은 눈'의 일본 남자들도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려고 기차를 탄다
기차가 그들을 구원해주지는 않는다
무엇 하나 좋은 일 없었던 아버지는 그러나 행복했다

6. 유방 숭배와 물신 숭배의 문화심리학
'미친 사쿠라'는 가슴 큰 여인에 열광한다
보고 싶은 건 따로 있다
여성들이 다시 가슴을 키우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여성의 가슴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유방 숭배는 고립된 자들의 슬픈 몸짓이다
일본 여성은 한국 공항으로, 일본 남성은 하녀 카페로 간다
독일 통일은 백화점과 섹스숍 때문이었다!
새로움과 감동을 파는 것이 핵심이다
니혼바시 위에는 하늘이 없다
미쓰코시 백화점 니혼바시 본점에 일본식 자본주의가 있다
야마테 언덕 외교관의 집에서 모차르트를 듣는다
상류 문화도 시간이 흐르면 모두의 것이 된다
'상대적 박탈감'은 허구다

7. 벤또와 가족 로망스
꽃그늘 아래를 걸어봤는가? 정말 꽃으로 만들어진 그늘 아래를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 오벤또
오벤또는 '배려'를 소비한다
하얀 시트와 하얀 식탁보가 행복감을 안겨주는 이유가 있다
'아마에'와 '이불 깔아주기'로 모성 의존이 재생산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일본의 아자세 콤플렉스
'개인은 편안하고 사회는 불안한' 한국, '개인은 불안하고 사회는 편안한' 일본
아타미의 전통 여관 '기운카쿠'
미시마 유키오는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 로망스'와 사무라이 정신
일본의 가족 로망스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는다
차라리 자기 배를 갈라버린다
그럼 한국은?

8. 결핍의 정원에서
추성훈의 '유도 최고'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과 양방언의 '아시아 음악'
일본은 왜 정원에 집착하는 것일까?
일본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다
그래서 일본은 하나도 안 받아들인다
일본은 '편집국가'다

에필로그 - 도쿄 론리울프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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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섹슈얼리티를 오직 사정으로만 이해하는 남자들은 항상 허탈하다. 동물적 욕구만 존재할 뿐, 문화적, 미학적 차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기 때문이다. 이러한 욕구 불만을 다양한 상징적 소비를 통해 해소하려고 한다. 그 처절한 노력 가운데 하얀 빤스는 왜곡된 섹슈얼리티의 전형을 보여준다.-p37 중에서

근대 일본의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동양인의 정체성을 버리고, 근대 기술의 빈틈을 메우는 삶을 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착한 아들들을 장인정신이란 이름으로 위로했다. 이런 위로만으로 기계의 빈틈을 메우며, 자신의 삶을 한결같이 희생한 철도원과 같은 착한 아들들 때문에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p194 중에서  접기

1920년대 미국 대통령 캘빈 쿨리지와 그의 부인이 양계장을 방문했다. 영부인이 양계장 주인에게 수컷은 하루에 몇 번이나 교미를 하는지 물었다. 하루에 열두 번도 더한다고 주인이 대답했다. 영부인은 그 이야기를 대통령에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주인이 대통령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대통령이 물었다. 매번 같은 암탉과 교미를 하나요? 주인은 대답했다. 아니오 매번 다른 암탉과 합니다. 대통령은 그 이야기를 다시 영부인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쿨리지 대통령의 이름은 대통령으로서의 업적보다 쿨리지 효과 로 더 유명하다. 일부일처제와 새로움에 대한 본능적 욕구 사이에서 일어나는 본질적인 딜레마를 분명하고도 유쾌하게 정리해줬기 때문이다.-219쪽  접기 - 다이조부

인간이 생산하는 물건의 가치는 사용가치에 있다. 즉 사용하려는 목적에 의해 결정되는 가치다. 사용가치에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생산자의 노동의 목적이 살아 있다. 아직은 인간의 냄새가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인간의 생활 방식이 복잡해지고 다양한 상품 교환이 이뤄지면서,서로 교환되는 상품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매겨주는 잣대가 필요하게 되었다.교환가치다. 돈이 생겨난 것이다.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는 이 교환가치가 사용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데 있다고 맑스는 주장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필요해서가 아니라 단지 바꾸기 위해 물건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생산자의 목적과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상품 자체가 독립하여 전능한 힘을 갖게 되는 물신 숭배의 시작이다. 바로 이 교환가치와 사용가치의 모순적 관계로부터 자본주의의 온갖 문제가 파생된다는 것이 맑스의 자본주의 비판이다.-225쪽  접기 - 다이조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분열에 대한 맑스의 지적은 탁월하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또 하나의 가치가 있다.심리적 가치다.자본주의적 상품 사회에서 인간의 상품 구매 행동은 새로움과 감동의 구입이라는 또 다른 원리에 의해 결정된다. 감동가치의 구매다.동구의 사회주의는 이 새로움, 놀라움,감동의 경험이 동반하는 삶의 기쁨을 애써 무시하려 했다.자본주의적 허영이라고 했다.그리고 계몽을 통해 그 욕구를 없애려 했다. 결국 실패했다.
감동가치는 단순한 자본주의적 상품 교환 과정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문화와 예술을 포함하는 인간의 모든 미학적 행위의 심리학적 근본 동기가 되는 것이다.-226쪽  접기 - 다이조부
우리는 감동하기 위해 산다. 왜 사냐고 묻거든,그저 웃지요 라면 그건 그저 정신 나간 사람일 따름이다. 감동과 감탄이 없는 삶은 인간의 삶이 아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진정한 기쁨을 동반한 감동의 경험은 드물다. 자본주의는 바로 그 빈틈을 기가 막히게 파고든다. 자본주의는 인위적인 감동과 감탄의 기술이 극대화된 시스템이다.하지만 진정한 가치를 가진 감동스러운 경험이든,상업주의에 농락당하는 사이비 감동의 경험이든,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의 효과는 동일하다.-227쪽  접기 - 다이조부


저자 및 역자소개
김정운 (지은이) 


문화심리학자이자 여러가지 문제연구소장이자 ‘나름 화가’.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디플롬, 박사)했다.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전임강사 및 명지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일본 교토사가예술대학 단기대학부에서 일본화를 전공했다. 

2016년 한국으로 돌아와 여수에 살면서 그림 그리고, 글 쓰고, 
가끔 작은 배를 타고 나가 눈먼 고기도 잡는다. 
《중앙선데이》 ‘김정운의 바우하우스 이야기’를 연재 중이며
 『에디톨로지』,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자의 물건』, 『노는 만큼 성공한다』 등을 집필했다. 접기

최근작 : <노는 만큼 성공한다>,<목사 김선도 1~2 세트 - 전2권>,<목회가 참 신났습니다> … 총 39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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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인생, 좀 재미있게 삽시다! - 2009.06.26

김정운(지은이)의 말

생각은 걸으면서 하는 거다. 앉아서는 잡생각만 하게 되어 있다. 걸으면서도 손에는 수첩을 놓지 않았다.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남의 집 담벼락에 기대서서 수첩에 휘갈겼다. 나중에 보니 해독이 어려운 글씨도 많았다. 전혀 연관될 것 같지 않은 생각의 조각들이 서로 맞물리면 너무 기뻤다. 지나가는 이들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나이든 이들은 내 눈길을 피했고 착한 여자들은 수줍어하며 웃었다. 내 의식의 한구석에 갇혀 있던,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던 삶의 기쁨이 충만하게 나를 채웠다. 참으로 오랜만에 찾아온 행복감, 그래서 '일본 열광'이다.

북플 bookple
평점 분포     8.2

구매자 (6)
     
1년동안의 일본 체류로 이정도 글을 쓴 것은 수고이!  구매
플레빌 2009-02-23 공감 (1) 댓글 (0)

     
동의할 수 없는 몇가지만 뺀면 사물을 보는 시야를 넓게해준 보물같은책  구매
rkffkvkrhtm 2007-12-02 공감 (1) 댓글 (0)

     
제법 시일이 지난 책인데도 현재 역시 유효한 책. 재미와 내공이 더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절대 좋아할 수 없는 국가지만 알아야 할 필요는 있으니까  구매
히버드 2020-10-08 공감 (0) 댓글 (0)

     
2007년 출간 당시 읽었을 때는 그저그랬는데 2012년 다시 읽어보니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1년의 체류로 이런 글을 쓸수 있는 저자의 내공이 너무나도 부럽기만 하다. 역시 좋은 책은 두고두고 봐야 한다.  구매
블루버드 2012-03-29 공감 (0) 댓글 (0)

     
일본이 궁금한 사람이 한번쯤 재미있게 볼만한 책. 약간 편협하고 산만한게 흠인듯.  구매
bookshelf 2007-12-18 공감 (0) 댓글 (0)

마이리뷰
     
혹시 저자에게 일본은 마음의 고향?

한국의 논객이 일본 우익 언론에 출현하여 서구화로 일본다움을 잃어가는 모습에 한탄하는 글을 쓴다던가 하는 일이 있다. 그들에게 일본은 마음의 고향격이다. 버릇없는 서구 자유주의도 아니고 배은망덕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도 아닌 것으로, '자기다운 것'으로 설정한 것이다.

'자기다운 것'이란 대체로 (메이지 발명품인) 일본다운 것으로, 일제 식민 교육을 통해 조선인이 자기다운 것으로 여기게 된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패전과 해방 후에 천황이라든가 일본이라든가 하는 이름은 사라졌지만 형식은 뿌리 그대로 살아남았고 이제는 현대 일본을 훈계할 지경이다. '유도리 교육' 따위가 일본을 망쳤다는 식으로 말이다.

내가 <일본 열광>의 지은이에게서 암암리에 느낀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는 일본에서 권위의 실체는 사라졌지만 권위의 절차는 남아있다고 언급한다. 일본에 대해 미묘하게 비판적이지만 절차가 남아있음을 훌륭하다고 여긴다. 반면 한국은 (일본과 다른) 목표도 없으면서 권위도 절차도 없다. 목표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일본에 비교해서 한국은 상태가 매우 불량해보임을 지적할 뿐이다.

저자가 지나가듯 언급한 "목표"란 문제를 파고들어갔다면 <일본 열광>은 전혀 다른 책이 되었을 것이다. 일본 사회가 외면한 목표는 무엇인가 혹은 우리 사회에 가능한 새로운 목표는 무엇인가라고 묻게 될 것이고, 그랬다면 386 세대의 재미없는 시절도 암중모색의 한 시기로 뜻있게 자리매김될 수도 있었을 것이며 목표없어 보이는 현재의 한국도 긍정적인 각도에서 볼 여지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묻지 않는다.

그럼 그가 칭찬하는 (일본의) '절차'란 것은 뭘까? 개인은 불편해지더라도 사회는 안정적이 되게끔하는 시스템이다. 개인적 불만이 있어도 사회 전체를 위해 각자를 자발적으로 억제하도록 하는 내면화된 관습이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좌우는 물론이고 상하의 위계질서까지 존중해주는 마음가짐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위치를 스스로 중시하고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리학 사전에도 없는 "상대적 박탈감" 따위에 놀아나면 안된다. 뭐 대충 이런 식이다.

물론 개인이 불편해지고 사회는 안정되는 시스템은 부작용이 있음을 저자는 무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게는 (일본을 본보기로 보건데) 부작용 따위는 즐겁게 감당할 수 있다고 여기는 듯 하다. 한국 사회가 (일본과 다른) 새로운 목표가 분명히 없다면 일본처럼 부작용을 감수하며 사는 것도 충분히 즐겁다는 것이다. 일본 사회는 그 부작용의 고통을 덜어주는 수많은 진통제 상품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들은 세계 각지에 잘 팔리는 문화가 되었으니 이 정도면 근사하지 않은가?

저자는 일본으로부터 거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무개의 있다 없다 식의 책들이 일본을 단지 글장사를 위한 주전부리감으로 삼는데 그치는데 반해 이 책의 저자에게 일본은 일종의 아버지급이다. 단 저자는 '일본'이란 아버지의 멋짐과 후짐을 다 보는 착한 아들이다. 그래서 일본 문화의 유아적인 면조차 그에겐 비판보다는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또 막 나가는 한국과 비교해보면 일본은 나름 훌륭하기까지 하다.

저자는 이 책으로 일본을 보는 또 하나의 시각을 첨부하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나 쓸만한 첨부였는지는 의심스럽다. 일본에 대해 이렇느니 저렇느니 단언하는 습관을 가진 이들을 위한 색다른 재료 정도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 접기
간달프 2007-06-29 공감(1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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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빤스와 도덕적 마조히즘 


    몇 년 전, 오사카의 어느 지하상가 구석, 공중전화에서 나는 전화를 걸기 위해 서 있었다.
    핸드폰 필수인 시대에 공중전화에 동전을 넣는 것은 묘한 두근거림을 느끼게 해주었다.
    교토에 놀러가고 싶다는 나의 고집 때문에 N은 그 먼 도쿄에서 비싼 기차를 타고 날아오는 중.     먼저 오사카에 도착한 나는 심심하기도 하고, 지리도 몰라 길 잃어버릴까봐 역 주변만 돌면서
    놀다가 지루해졌기 때문이다. 동전 투입구에 돈을 넣기 전에 손바닥에 펼쳐본 일본의 동전들을
    쳐다보았다. 낯설다. 원래 그렇다. 매일 쓰는 화폐가 아니면 낯설다.
    그러다가 와르르 바닥에 동전들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이런, 제길.
    나는 허겁지겁 동전들을 줍기 시작했다. 500엔짜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수하리라.
    그렇게 혼자 바둥대고 있을 때 한 아저씨가 지나가면서 쳐다보았다. 나를 지나쳐 몇 걸음 가던
    그 아저씨는 가던 길을 되돌아와 줏은 100엔을 내 손에 주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과 기분으로, 

    "..... 아리가토-고자이마스....." 

    아저씨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다시 가던 길을 갔다.
    나는 두 가지의 충격을 동시에 받았다. '아리가토-고자이마스' 에 대한 대답으로 '천만에'라는 그
    어떤 제스처나 대답이 아저씨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과, 일본에서는 보기 힘들 정도의 무뚝
    뚝한 표정이었다. 일본은...길을 걸어가던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도 살짝 미소 띈 표정을 보여주는데(물론 전부 다 그런 건 아니다), 자신이 먼저 선행을 하면서 뚱한 표정은 뭐람.
    내 반응이 먼저 문제였을까? 보통은 활짝 웃으며 정말 고맙다는 듯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하니까? 솔직히 말하면, 난 아저씨가 가던 길을 되돌아 오면서까지 동전을 주워주은 것에 놀라던
    중이라 그런 표정관리는 못 했었다,라는 핑계와 평소 나는 원래 표정이 잘 없다.(긁적) 

    이런 것이 충격으로 다가올 정도로 일본인의 친절과 과한 웃음 띈 얼굴은 이미 전세계에 알려진
    당연한 '문화'다. 간사이 공항의 경찰 제복을 입은 아저씨도, 오사카역의 안내원 아저씨도 항상
    부드러운 표정으로 최대한 친절하게 대해준다. 호텔 데스크 직원이나 지역정보안내소 직원들에게
    내가 심술굳게 일부러 영어로 말해도 그들은 (삐질땀을 흘리면서까지) 나를 도와주려고 애를 쓴다. 

    한 번은, 도톤보리에서 오사카의 명물 '타코야끼'를 사서 먹은 적이 있다.
    원래 뜨거운 것을 못 먹는 내가 그걸 그냥 한 입에 삼켰다가는 당장 구급차에 실려갈지도 모를 일.
    그래서 타코야끼 전부를 반으로 쪼개 뜨거운 김이 공중으로 흩날려가 식혀 먹으려고 N과 함께 실외
    휴게실로 향했다. 그 때, 출입구에서 마주오던 젊은 사람들과 부딪힐 뻔했는데 그들은 당연스레, 

    "스미마센-" 

    라고 말했다. 나는 당연히.....한국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서....같이 '스미마센'이라고 말할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아마도 그 젊은 남자는 속으로 나를 욕했을지도 모른다. 예의 없다고. ㅡ.,ㅡ... 
    하지만 한국에서는...서로 사과 안 한다. 부딪혔어도 부딪힌 사람만 하지...쩝.

    한 번은, 일본의 사업가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탄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토종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제 집 드나들 듯 해서 그런지 한국에서의 습관을 오히려
    일본에서 자랑스럽게(?)하는, 자기 자신이 '한국인과 더 가깝다'라고 말하는 이상한 친구였다.
    버스에서 핸드폰으로 전화통화를 하는 그 친구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나는 도망가고 싶었다.
    아, 그 민망함이란. 거기다 전화내용이 나 때문에 취소를 하는 내용. 쪼잔한 자식, 일부러 나 들으라고..
     

    일본의 어떤 교육이, 어떤 문화적 정서가 그들로 하여금 (가식적일지라도, 아니 그래서 더 슬픈) 타인을
    향해 그런 맹목적인 웃음과 친절을 베풀게 하는가? 그 궁금증은 오래 전부터 내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직.간접의 경험으로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만큼 구체적으로 머리 속에 정리되어
    가기는 처음이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사소한 궁금증에서 시작한 문화심리학자의 피부에 와 닿는 경험
    에 의한 '일본 문화 해부하기'는 왜 그들이 안쓰러울 정도로 타인에게 친절하는가를, 왜 고이즈미 총리가
    부시 대통령 부부 앞에서 엘비스 프레슬리 춤을 추며 같은 동양인의 얼굴을 달아오르게 했는지를, 어째서
    일본 남성들은 보일듯 말듯한 애니나 만화속 여주인공의 하얀 빤스에 열광하는지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물론, 저자 주관적인 견해와 시각, 관심분야에 치중되어 있다는 것은 차치하고) 

    마조히스트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을, 혹은 타인의 힘을 빌어 스스로를 괴롭히는 걸 즐기는 자를 우리는 흔히 그렇게 부른다.
    그 반대로 남 괴롭히기 좋아하는 사람을 '새디스트'라고 한다. 농담삼아 '넌 마조끼가 있어~' 라거나
    '너 새디스트 아냐?'라고 쉽게 입에 담는 그 말들이 사실은 그렇게 가벼운 주제가 아니다.
    마조히즘, 그것은 아버지를 죽이지 않고 편하게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자식들을 괴롭히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다. 인류는 민주주의를 얻기 위해 기존의 틀과 문화, 아버지 세대의 그 모든 것을 거부하고
    반항하며 죽여나갔다. 그 '상징적 살해'의 업은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온다. 어떠한 형태로든.
    일본은 근대문화(서구문화)를 비교적 큰 저항없이 받아들였다. 물론, 일본도 처음에는 무사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바닷물이 밀려오듯 들어오는 서구문화를 거부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근대문화를 앞장서서
    일본에 뿌리 내리려고 안간힘을 쓴 것은 노랑머리 백인들이 아니라 바로 일본인, 자국민이었다.
    몸을 예로 들어보자. 외부에서 들어오는 병에는 강력히 반발하고 대항하며 그것을 죽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몸 안에서 발생되는 암세포는 왠만해선 막을 길이 없다.
    일본이 그렇다. 그들이 그렇게 빨리 서구문화를 흡수하고 더 나아가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모든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이고, 그에 앞장선 것이 스스로이기 때문이다.
    즉, 일본은 새로운 세상을 여는데 프랑스 대혁명의 시민들처럼 루이 16세의 잘린 목에서 나오는 피로
    몸을 씻으며 '살부의 죄의식'을 가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일본의 근대문화 발전과 마조히즘과의 관계란 뭐란 말인가?
    지나칠 정도의 친절과 사과를 함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오히려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을 가지게 만드는
    그 교활함을 탓하기 전에 왜 그들이 그렇게까지 마조히즘에 젖어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나를 생각해서 잡았던 일정을 나 때문에 취소하게 된 저 일본 사업가 친구는 일본식으로 나에게
    죄의식이나 미안함을 유발한 것이 아니라, 전형적인 한국식으로 끄집어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선 확실히 그는 한국인답다. 한국인은 마조히즘적이 아니라 새디즘에 가까운 형태로 상대의 잘못
    을 돌려서 질책하니까. 나처럼 직선적인 녀석은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미움받기 딱 좋지만. 

    어릴 때, 즐겨보았던 애니가 있었다. 여전사들이 우주에서 악당들과 싸워서 늘 통쾌한 승리를 내는데, 그녀들.
    그래, 그녀들은 비키니 수영복에 가까운 복장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남자와 여자의 신체구조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도 전인 나이에 보았다. 그래서 아무 거부감이나 이상한 상상(?)없이 볼 수 있었고 그녀들을 (전투사로써)
    동경도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후 수 많은 만화에서 여주인공들은 늘 과한 글래머이거나 하얀 빤스를 살짝
    보여주는 청순한 여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굴이나 성격은 너무 청순한데 가슴은 대빵 크다. 그리고
    성격과는 달리 늘 빤스가 보이는 짧디 짧은 스커트를 입고, 마릴린 먼로도 아니건만 그들 주위는 항상 바람이
    불어제껴 빤스를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를 확인까지 시켜준다. 그럼 남자주인공들이 항상 그 멋진 여주인공과
    잘 되는가? 아니다. 남자주인공은 비참할 정도로 짝사랑만 하거나 무시받기 일쑤다. 여기서도 일본인들이 좋아
    하는(?) 마조히즘이 들어간다.  

    이 나이 때 또 좋아했던 것이, 로봇영화 중 남주인공을 무지하게 괴롭히는 애니가 있었다.
    남주인공은 우주에서 악당과 싸우기 전에 로봇으로 변하는데, 꼭 그 과정은 고문 같았다. 역시나 빤스만 입은
    남주인공이 어떤 캡슐에 들어가면 가시가 왕창 박힌 채찍같은 덩쿨이 그의 다리를 타고 올라가 온 몸을 휘감아
    그로부터 하여금 늘 비명을 지르게 했다. 아니,왜? 대체 왜? 좀 편하게 로봇으로 바뀌면 안 되나?
    그렇게 자신을 괴롭히면서까지 변해야 하는 이유는 뭔가? 그 빨간 빤스를 입은 남주인공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어떤 성적 흥분이라도 느끼길 원했는가? '유방'이란 단어도 '남근'이란 단어도 몰랐던 그 어린애한테? 
    기억력도 좋지 않은 내가 23,4년 전 봤던 애니의 그 가학 혹은 자학 묘사가 왜 그랬는지를 억지로 끄집어내자면
    이랬던 것 같다. '대의를 위해서는 너의 작은 희생이 필요하다' 뭐 이런. 그러니까 그 남자주인공은 매번 지구를
    지키려면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는 이야기. 그 장면이 어린애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이나 하고 만들었는지,원. 
    일본은 곳곳에 은근슬쩍 마조히즘을 강요한다. 그리고 그것을 즐기게 한다. 어릴 때 부터.

    물론, 이 책이 주구장창 빤스와 마조히즘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문화 속에 자리잡은 정서의 뿌리를 쫒아간다. 저자의 유머러스한 필체, 쉬운 서술은 단번에 한 권을
    먹어치우는데 가속도를 붙인다.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칼라 사진들도 수두룩하다.
    내가 왜 굳이 빤스와 마조히즘만 가지고 이야기하냐면, 이제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책 덕분에.
    몇 년 전, 일본 친구의 지나치게 한국인다운 언행들은 숨막히도록 지긋지긋한 일본문화로부터 일시적이라도 벗어
    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것과, 어릴 때 내가 보았던 애니에서 얻은 충격으로 나는 비키니 입은 여성을 봐도
    아무 느낌이 없거나 빤스만 입은 남자들은 어딘가 약해 보이는 착각을 하게 된다거나 등의 부작용 말이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을 보면 무릎꿇고 찬양하며 기관총을 꼭 선물해야 할 것 같고,
    빤스만 입은 남자들을 보면 이불로 싸서 구해주어야만 할 것 같다. 어디로? 그건 모른다. 

    때로는 내 환경과 익숙하지 않은 문화를 접함으로 인해 무의식속에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었던 나를 만나게 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면 해답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문제를 알면 안개는 걷히고 만다.
    사실, 일본과의 비즈니스에 도움이 될까 싶어 사서 본 책이, 예상치도 못한 만족을 주어 읽는내내 즐거웠다.
    어떤 나라의 사람을 알고 싶으면 그 나라 문화를 알아야 하고, 그 나라를 알고 싶으면 그 나라 사람을 알아야 한다. 

    책 표지에 써 있는 이 문구만큼 일본을 적절히 표현한 것을 발견한 적이 없다. 

    일본은 모든것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하나도 안 받아들인다. 

L.SHIN 2010-04-29 공감(5) 댓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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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을 넘어 분석으로

  일본 문화에 대한 현상만 소개하는 책들은 많으나, 이 책은 그 현상을 넘어 왜 그러한지에 대한 분석을 일반인들이 읽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 인문학 계열의 많은 책들이 너무 쉬워 깊이 없거나 혹은 너무 어려워 이해가 안되거나 하는데, 일반인들이 궁금해하는 적절한 주제를 가지고 비교적 쉽게 서술하여 부담이 없다. 일본에 대한 분석이지만, 결국 그와 비슷한 우리나라에 대한 분석이기도 한 책이다.
impacteng 2007-06-23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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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어요. 너무 주관적이긴 하지만

가볍게 읽기는 좋은 책인 듯하다. 

무척 주관적이어서(필자도 경고한 바지만) 자칫 선입견이 생기기 좋은 것 같다. 그러나, 

일본문화의 중요한 몇가지 특색들을 잡아내고 있는 듯해 유익한 책이었다. 

- 일본의 아들들은 아버지 부정의 과정이 없었다. 

- 미소년 몸매가 유행하면 여자의 사회적 진출이 강조되는 시대이고 

  풍만한 몸매가 선호되면 여자의 모성이 강조되는 시대. 

  날씬한 몸에 가슴만 큰 요즘 미인상은 슈퍼우먼을 강요하는 사회를 반영한 것. 

등등 인상 깊어서 여러번 되뇌이게 되는 내용도 많았다. 

반복해서 읽어봐야 할 것 같은 책이다.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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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ttygirljoice 2009-06-0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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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심리학자가 본 일본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책이다. 문화심리학이란 무엇일까. 생소하고 낯설게 느껴져도 이 책을 읽다보면 어렵지 않게 그 개념이 파악되고 무척 흥미로운 분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문화심리학으로 살펴본 일본 분석이다. '현상은 개념이 있어야 이해된다.' 즉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일본을 제대로 보기 위해 여러 개념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개념 내지는 용어에 매몰된 이론서는 아니다. 조금은 능청스럽고 수다스러운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어느 새 책의 끝장까지 성큼 다가와있어서 서운한 생각이 들면서 약간은 책을 아껴 읽고 싶은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책은 재미있게 읽었고 흥미로운 개념도 많은데 꼭 집어서 밑줄긋기에는 쉽지 않다. 정보와 수다를 넘나드는 대화처럼 말이다. 들은 것도 많고 재미도 있는데 남한테 옮기기에는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언젠가부터 일본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이 책을 보니 다시 그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일본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우리끼리 비웃고 얕잡아 보아도 일본은 우리가 배울 부분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시름만 깊어진다.

- 접기
nama 2010-02-27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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