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8

주동빈 -학위논문과는 별개의 몇 개 논고를 내게 되었다.202506

(3) 주동빈 - 0. 이제 상반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작년 말부터 학위논문을 정리하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뜻대로 되지... | Facebook

주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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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이제 상반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작년 말부터 학위논문을 정리하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학위논문 체계에 맞추려고 넣지 않았지만, 해명해야 할 소재들이 있었다. 그래서 학위논문을 떼어낸 글도 있지만, 별개의 몇 개 논고를 내게 되었다.

 1. 우선 한국사학보에 식민지 '개발'팀 특집 2로 나오게 된 논고가 있다. 1920년대부터 준비된 총독부 4대 도시계획서(경성, 부산, 평양, 대구)와 '치수'의 관계를 다룬 글이었다.
 학위논문에 없는 글이지만, 그 고민의 연장선에 있다. 본고에서는 4대 도시계획서 작성 과정에서 치수계획(방수+배수)이 선행조건으로 떠올랐던 점에 주목했다. 이 글에서는 다른 연구에서 충분히 검토되지 못한 평양도시계획서를 같이 보았다. 왜 1929년 평양부 도시계획이 대동강 연안이 아닌 곳으로 바뀌었는지 보면서, 상기 내용에 주목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 모처에서 들었던 히로세 선생님의 마지막 발표가 대동강 치수사업에 대한 것이었다. 앞으로 대동강과 보통강 치수계획의 특수성을 조금 더 밝혀나가고 싶다).

 2. 다른 하나는 역사연구에 실린 <서평양시가계획>과 조선인 중소공장지대의 조성(1929~1935)이다. 학위논문 일부를 떼어낸 글이다. 평양부 행정당국의 핵심적 정책목표는 아니었으나, 부 자체재원으로서 전기적립금을 적극 활용하여 '서평양'(실제로는 북부 평양)에 조선인 중소공장지대가 조성되었던 점에 주목했다. 종래 '민족자본' 연구에서 주목한 1920~1930년대 메리야스/방직 및 고무공장의 증가가, 이 점에서 식민지 지방행정기구 및 '지방의회'와 깊이 관련되어 있던 점에 주목했다.

 3. 곧 한국민족운동사연구에 발간될, 해방 후 월남민 향토지 <평양지>의 식민지 기억에 대한 글도 있다. <평양지>는 1964년 발간되었다. 민족운동가이자 평양 전기부영화 운동의 리더, 해방 후 이북5도청 평안남도지사 김병연(1896~1965)이 주도했다.
 해방 후 고당전-평양지간행회는 김병연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일제하 평양 사회운동계 및 언론계 인물들이 집필 및 편집을 담당했고, 상공업자들이 후원했다(<평양지>보다는 <고당전>이 유명하지만, 그 이유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 읍지의 해제에서 시작해, 근대, 현대 평양 도시사를 짤막하게 다루었다.
 그런데 "근대평양"이 도산과 고당의 영도 아래 조선인 상공업자들의 주도로 건설되었다는 <평양지>의 민족주의 서사는 내부적으로 차질을 빚는다.
 예컨대 이 글은 부(협의)회의 조선인 과반수 차지, "국가적 뒷받침"이 "완전히 결여"된 "민족자본"의 형성이란 두 가지 사실을 병렬했다. 두 사실관계는 병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얼핏 보면 충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부(협의)회가 뭘 하는 기구인지 써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보다 7년 전 훨씬 더 긴 분량으로 발간된 북한 <평양지>가, 일제하 평양 지역엘리트들이 "지방자치"에 보조를 맞추는 "예속 부르죠아지"라고 한 점과 상반된다.
 지금 일제하 평양 도시사를 연구할 경우, 월남민들이 정리한 이 자기기억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기억(의 내적 모순)만을 다루었지만, 앞으로 해방 이후 정치사까지 시야에 넣고 싶다.

 - 이제 학위논문에 있는 글 중 반 정도를 공간했다. 좀 더 다듬어서 내고픈 마음이 크지만 .... 아무튼 가용한 시간 내에서 낯 부끄럽지 않게 낼 수 있기를.
 - 이제 1930년대 초중반은 부(협의)회 부분과 운동사 부분이 남았다. 학위논문의 정점에 있는 글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전체사적인 의미 부여를 염두에 두고, 긴 호흡으로 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욕심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 심사과정에서 나온 말들 중 마음에 콕콕 박히는 말이 있다. 그런데 사람이 마음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마 심사자도 그 점을 알고 한 이야기겠지만.... 효율적으로 바뀔 수 있는 힘을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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