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2

“친미-반미 이분법 넘어 ‘탈미’로 가야” - 대안을 향한 성찰 ⑧ 미국 2006

“친미-반미 이분법 넘어 ‘탈미’로 가야”


정치정치일반
“친미-반미 이분법 넘어 ‘탈미’로 가야”
<한겨레> 선진대안포럼 1부 대안을 향한 성찰 ⑧ 미국. 멀리할 수 없는 제국

수정 2006-04-03 



[선진대안포럼] 1부 대안을 향한 성찰 ⑧ 미국





멀리할 수 없는 제국냉전 반공주의·관성적 반미 모두 비판


“미국 변화시켜 정상적 한·미 관계로”
“친미로 세운 나라 반미로 망한다.” 

최근 어느 보수단체 집회에 나붙은 현수막 내용이란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소개했다. 참석자들이 크게 웃었다.

“미국 숭배자도 미국 공항 검색대에서 한번 발가벗겨지면 반미가 된다.” 또한번 참석자들이 웃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가 꺼낸 이야기였다. “친미-반미를 대립시키는 것만큼 허구적인 게 없다”고 말했다.

“지금 ‘반미’하자는 의견은 무의미하고 관념적이다.”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미에 반대하자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반미를 넘어 ‘탈미’로 가자”는 게 김명인 인하대 교수의 제안이었다.

<한겨레> 선진대안포럼 참석자들은 그렇게 친미-반미의 이분구도를 입을 모아 비판했다. 
그 이분구도 안에서 자라난 냉전반공주의자들이 비판의 첫번째 대상이었다. 
동시에 ‘기계적·관성적 반미’도 성찰의 대상이 됐다. 

권용립 경성대 교수는 “반미 또는 친미로 자신을 규정하는 사람들은 엄숙한 명분을 현실에 단순화시켜 적용하는 경향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하나의 입장만으로 미국을 바라보는 태도가 문제라는 것이다.

김명인 교수는 특히 반미 구호가 국민적 공감대를 넓게 얻지 못하는 지점을 짚었다.
“한국 근현대사를 잘 모르는 신세대들에게 미국의 ‘역사적 죄과’만 강조하는 것은 별 소용이 없다. 오히려 현재의 한미관계에 대한 합리적·객관적 이해를 높이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김 교수는 여러 차례에 걸쳐 “반미를 넘고 지미(知美)·용미(用美)를 거쳐 탈미로 가자”고 제안했다. 여기서 ‘탈미’란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한·미 관계를 정상화시키자는 것이다. 
지미·용미는 그 상태에 이르기까지 적절하게 미국의 힘을 활용해 운신의 폭을 넓히자는 뜻이다.

김 교수는 “이제 세계적 차원에서 누구도 미국을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인류의 공존공영을 방해하는 고약한 말썽꾸러기라는 인식이 더 크다. 이런 점에서 ‘탈미’를 추진해야 한다. 그러면 보수와 진보를 다 설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정인 교수는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접근했다. “한국인들의 인지 구조에는 친미·숭미·반미·혐미가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세력은 한-미동맹이 국익을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하고, 
진보세력은 반미 역시 평화공존·공동번영을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국제정세의 맥락에서 탈미의 가능성을 짚었다. 이 교수는 우선 “미국을 배제하면 동북아나 한반도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발상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냉전 해체 이후 미국이 새로운 동북아 질서 구축을 모색하고 있고, 한국 역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비교적 잘 발전시킨 상태”라며 “바로 이 지점에 한국이 미국을 변화시켜 새로운 한미 관계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80년대 이후 반미운동의 변화 흐름을 짚은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반미’ 개념의 새로운 적용을 주문했다. 홍 교수가 관심을 두는 것은 한국인의 의식구조와 한국사회 전반에 뿌리박은 “미국은 좋은 사회라는 이데올로기”다. 

그는 “세계 최대의 낭비국가·오염국가·전쟁국가인 미국의 실체를 제대로 본다는 맥락에서 의도적으로 반미라는 개념을 새롭게 사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 안의 미국’을 정돈해야 ‘우리 밖의 미국’과도 대등한 관계를 모색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중국 힘 빌려 미국과 거리두기 비현실적이고 위험한 대안”

‘중국편승론’ 순진한 발상…“북 개방위한 ‘중국 활용론’ 주목을”

‘탈미’로 가는 길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중국은 묘한 매력을 풍기는 나라다. ‘중국 편승론’은 급성장하고 있는 또다른 강대국 중국의 힘을 미국과의 거리두기에 활용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겨레> 선진대안포럼 참석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아직 이르다.”(문정인 교수), “비현실적이고 위험한 대안이다.”(이남주 교수), “중국에 대해 좋은 생각만 갖고 있는 건 매우 천진난만한 것이다.”(정세현 민화협 의장)

중국의 실체를 제대로 보자는 이야기가 많았다. 정세현 의장은 “과연 중국이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힘있는 나라가 될 것인지 잘 봐야 한다”며 “중국의 고도성장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도 분명치 않고, 그렇게 되더라도 심각한 내부 문제가 분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정인 교수는 중국 스스로도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지위를 바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동북아에서 유일하게 미국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나라이긴 하지만, 미국의 패권적 지도력이 건재한 상황에서 중국은 지역패권보다는 다자협력체제를 선호하면서 미국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도 “중국이 아직은 안정된 체제가 아니다”라고 짚었다. “중국은 가치·체제 등에서 아직 과도기적 과정에 있다. 대외정책도 내부 정세의 변화에 따라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중국 활용론’에 주목하자는 제안이 많았다. 핵심고리는 북한 문제 해결이다. 정세현 의장은 “중국이 아시아 사회주의의 안정성 차원에서라도 북한의 개방·개혁을 설득하는 상황이 바람직하다”며 “북한의 개방·개혁을 위해 중국을 활용하자”고 말했다.

이남주 교수는 이를 위해 주어진 시간이 5~10년 정도라고 말했다. “중국은 지금 ‘중국위협론’이 확산되는 걸 심각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주변국의 입장을 고려해 대외정책을 설계하고 있다. 이 시기가 앞으로 5~10년 정도 유지될 것이다. 이 기간 내에 한-중 관계의 기초를 튼튼히 할 필요가 있다.”

이념지향에서 다소 결이 다른 참석자들이 한결같이 ‘실익과 합리’의 자세로 미국·중국을 대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은 흥미로왔다. 문정인 교수는 “배타적 한-미동맹과 배타적 중국편승을 우리의 살 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세현 의장은 “미국과 중국을 싸움 붙이고 중간에서 뭘 하겠다는 발상은 안 된다”고 말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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