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2

럼즈펠드의 오만에 맞장구 치는 사람들 < 사회 < 김광원 칼럼니스트 - 미디어오늘

럼즈펠드의 오만에 맞장구 치는 사람들 < 사회 < 김광원 칼럼니스트 - 미디어오늘

럼즈펠드의 오만에 맞장구 치는 사람들
[김광원의 세상열기] 제기랄, 주한미군 빼(God damn it, Get them out)
기자명김광원 칼럼니스트
kwkim@mediatoday.co.kr
입력   2004.08.30 12:08
 
수정   2004.08.3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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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새로 부임한 크리스토퍼 힐 주한미국대사의 한미관계에 대한 언급이 주목을 끌고있다. 우연찮게 그들의 얘기는 거의 동시에 언론에 알려졌고 그 내용 또한 자극적이고 강압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럼즈펠드에 관한 얘기는 문정인(文正仁) 대통령 직속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에 의해 공개됐다.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국제경영원 초청 최고경영자 월례 조찬회 강연자리였다. 이날 문 위원장은 주한미군 감축이 앞당겨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반미데모 때문이었다는 `비화'를 소개했다. 지난해 말 서울 용산기지 앞에서 한국 시위대학생들의 던진 돌에 맞아 피를 흘리는 미군 헌병의 모습을 미국 NBC방송이 방영했고 이를 본 럼즈펠드가 미군철수를 앞당겼다는 것이다.

반미시위에 주한미군 감축 앞당겼다?

   
▲ ⓒ 연합뉴스
그 내용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상당히 모멸적이기까지 하다. 문 위원장은 "당시 이 뉴스를 본 럼즈펠드 장관이 매우 격분해 '제기랄, 주한미군을 빼내'(God damn it, Get them out)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문 위원장은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로 지상군 감축논의가 있었지만 감축이 앞당겨진 것은 우리측의 이런 무분별한 사소한 행동과 실수 때문이라는 점을 확실히 말할 수 있으며 직접 체험한 것"이라고 밝혔다는 보도다.
같은 날 힐 신임 주한미국대사는 미국 내 반한감정이 공화당 내 보수파뿐 아니라 민주당에까지 번져있다고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힐 대사는 여야 중진 국회의원들과의 용산기지 내 만찬석상에서 "취임 2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대사관 앞에서 데모를 하는데 미국 언론이 그걸 찍어서 보도하면 반한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한미동맹 관계를 잘 다질거냐 말거냐는 한국민에게 달려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두 미국관리의 얘기가 문제임에는 틀림없지만 물고늘어질 생각은 없다. 그들이 능히 가질만한 시각이기 때문이다. 답답한 것은 그런 자리에서 문 위원장이나 국회의원들이 보였거나, 보였을 반응이다. 문 위원장은 스스로 럼즈펠드의 그같은 행동에 수긍하는 뜻의 얘기를 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국회의원들의 반응은 소개되지 않았지만 맞장구였을 가능성이 높다. 힐 대사의 언급을 반박하는 얘기라도 했더라면 한국의 주류 보수언론이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들은 사설과 칼럼 등으로 럼즈펠드와 힐 대사의 언급을 거들고 나섰다. 동아일보는 30일자 <반미 반한감정으론 미래없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그동안 반미감정을 부추겨온 일부 시민단체는 무책임한 선동을 자제해야 한다"며 정부를 싸잡아 질책했다. 중앙일보 역시 이날 사설에서 럼즈펠드의 언급을 주한미군 감축시기에 반미감정이 작용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어 평택 등 미군기지 이전 반대시위를 우려한다고 나섰다.

그 이유를 모르는 것일까. 반미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됐음을 지적하는 말 한마디 없이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것이야말로 미국 관리들보다 더욱 고약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한미동맹 50년을 넘기고서도 여전히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개선할 생각 대신 반미감정만을 탓해서야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거의 '숭미(崇美)'에 가까웠던 한국 국민의 반미감정은 바로 일방적인 한미상호방위조약 및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등에서 시작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불평등한 한미관계야말로 반미감정의 원인이다.

미일불평등조약 개정해 반미감정 완화한 일본

이럴 때마다 미일동맹이 거론된다. 경제강국이면서도 미국의 품안에 안긴 채 고분고분한 일본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라도 더 얻을 수 있다는 논리다. 이 땅의 보수세력이 핏대를 올려가며 주장해온 사례다. 아전인수다. 미일동맹 관계의 발전이야말로 정반대의 측면에서 배울 만 하다. 그 한 예가 1957년 집권한 기시 노부스케 총리의 미일안보조약 개정추진이다. 그는 불평등한 이 조약의 개정이야말로 일본 내 팽배했던 반미감정을 없애는 지름길이라고 믿었고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 이를 1960년 실현시켰다.

사실 미국 관리들의 무례가 어디 한두번인가. 럼즈펠드 장관의 오만불손함은 이미 지난해 11월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는 당시 쟁점이 됐던 한국의 이라크 파병에 대해 '한국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배짱을 보였다. 그는 또 미국의 한국에 대한 이라크 파병요청이 6.25전쟁 때 미국의 한국파병과 같은 이유라고 주장했다. 한국기자들과의 질의응답중에는 '기가 막혀'(Oh  my goodness)라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이번엔 '기가 막혀'대신 '제기랄'을 썼을 뿐이다. 그들을 감싸는 자들이야말로 정말 '제기랄' 소리를 들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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