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이 일을 어찌할꼬?
기자명 금강일보 입력 2023.07.11
한남대 명예교수
나는 산으로 둘러싸인 농촌에서 나고 자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어른들이 하는 농사일을 옆에서 지켜보거나 도우면서 자랐다. 모를 심거나 풀을 맬 때 그리고 가을에 타작할 때 형제자매들이나 동무들과 함께 놀이를 하면서 그 일을 도왔다. 노는 것이 일이요, 일을 놀이로 할 때가 많았다. 그렇게 곁다리로 보고 느끼고 실습하였기에, 그 때 얻은 농사에 대한 경험과 감각이 분명하다. 그 때는 농기구가 모두 재래식이었고, 전기나 모터를 사용하는 농기구는 하나도 없었다. 기계라는 것은 동네에 발로 밟아 돌리는 탈곡기 몇 대가 있었을 뿐이고, 집집마다 쟁기 훌칭이 괭이 삽 호미 낫 톱 도끼 따위들뿐이었다. 모두가 다 소나 사람의 힘으로 농사일을 하였다. 내 고향에는 큰 부자가 없었다. 부자라고 해야 일소 두 마리, 머슴 두 사람 정도를 두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갓난아이로부터 유소년 청장년 그리고 연세가 매우 높은 어른들까지 좋은 분포를 이루어 지냈다.
그런데 지금은 농촌에 가면 모든 농가들이 다 재래식 농기구부터 몇 천만 원하는 최신 농기구까지 갖춘 집이 많다. 어느 농가는 근 스무 가지의 값이 나가는 농기구를 가지고 농사한다. 그는 물론 자기 농사뿐 아니라 다른 집 농사일까지 그 기구를 사용하여 돕거나 품을 판다. 이분들 중 대부분은 70세와 80세를 훨씬 넘은 고령자들이다. 걷기도 별로 신통치 않고 눈도 잘 보이지 않는, 스스로 ‘종합병원’이라고 말하는 이들이지만 일단 농기구를 끌고 논과 밭으로 새벽부터 나가 일을 시작하면 몸 상태를 잊고 해질 때까지 농작물과 소통한다. 농사할 사람이 없기에 힘이 좋은 농기구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농기구가 새로 생기기에 농사일을 할 인력이 줄어들어도 일은 처리된다. 물론 고급 농기구를 마련할 때는 빚을 얻을 수밖에 없다. 지금 농촌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나이 많은 사람들은 어려서부터나, 이른 젊은 시절부터 농사일을 했던 분들이다. 그런데 그들과 중간에 귀농한 인력을 제외하면, 농촌에는 어리거나 젊거나 중간 연령대의 사람이 없다. 어느 지역에서는 면 단위에 하나밖에 없는 초등학교에 입학생이 3-6명 정도가 되는 곳도 많다. 어쩌다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들리면, 오래간만에 돌아온 멸종희귀종 보듯이 신기해 할 수밖에 없다. 이런 농촌에서 지금 농사를 하는 노인들은 힘이 부쳐서 매년 농사일을 줄인다. 그러면서 당신들이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될 때 이 땅에 누가 씨를 뿌리고 가꾸고 거두어들일까 걱정한다. 새로 탄생하는 아이가 없고, 새로 흘러드는 젊은 인력이 없는 농촌은 소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 스스로 만들어 내는 먹을거리가 소멸될 것 역시 불을 보듯이 훤하다. 누구들은 ‘수입하면 되지’ 하는 한량한 소리를 하지만, 먹고 마시는 것들은 상당한 부분 스스로 해결한 다음에 남이 생산한 것을 들여오는 것이지, 모두를 외부에서 가지고 온다는 것은 망해도 싼 말이다. 말 그대로 암담하다.
어찌해야 할까?
혹시 이런 정책을 펼치면 조금 도움이 될까?
1. 지금 군대에 현역으로 가지 않고 대체복무나 공익근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농촌과 어촌에서 그 기간 복무하게 하는 일이다. 노동을 해보지 않았기에 그 일이 되겠느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젊은 인력을 배치하여 연세 든 분들을 돕는 일은 대단한 일일 것이다. 또 도시출신의 젊은이들이 농어촌으로 가서 힘드는 노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 옳으냐, 또는 남의 귀한 자식을 그렇게 막노동을 시켜도 좋으냐 하는 불만과 비판도 있겠지만, 노동을 모르는 젊은 사람들에게 거룩한 노동을 경험하게 하는 것은 아주 탁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일정 기간 농사일과 바닷일을 경험하는 중에, 앞으로 자신의 직업으로 선택할 사람이 있다면 굉장한 일이라고 본다. 지금 농어촌에는 외국에서 들어온 노동자들 없이는 일이 안 되는 부분이 많다. 이 대체복무를 하는 이들을 노동력으로 활용하면 두 가지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노동인력을 어느 정도 확보하는 것이 되고, 다른 하나는 그 중 몇 명이라도 농사일이나 바닷일을 자기 직업으로 선택하겠다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 모든 정당에서 농어촌으로 대체복무인력을 배치하거나 파견하는 일을 정책으로 적극 펼치는 일이 일어나면 좋겠다.
2. 농어촌이나 도시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성장과 교육을 국가가 책임지는 정책을 펼치면 좋겠다. 인구가 절벽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걱정하면서 둘째나 셋째 아이가 나올 때 돕겠다는 것으로는 출생장려가 되지 않을 것이다. 첫 아이 출생부터 국가가 완전히 책임지는 정책을 세밀히 펼쳐야 한다. 아이를 낳은 분들의 경력단절이 되지 않게 세밀한 정책이 개발되면 좋겠다. 동시에 농어촌의 교육과 복지와 문화정책이 탁월하게 내용이 개발되고 지원되면 좋겠다. 겉으로 보이는 어떤 기반시설에 투자하는 대신, 충실한 내용으로 가득 채워지는 정책이 개발되고 펼쳐질 필요가 있다.
3. 요사이 선거법 개정이 국회에서 논의된다. 의원수를 줄이고, 비례대표 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인구중심의 선거구 책정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대도시에서는 한 구에 2-3명의 국회의원이 배출되기도 하지만, 지역에서는 3~4개의 군에서 한 사람의 의원이 나오는 곳도 있다. 인구와 지역이 절충되어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시골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의회에 꽤나 많이 진출하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비례대표 중에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일정한 비율을 확보하게 하는 법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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