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통일이 세계의 손이나 주변 4강국들의 손으로 만들어질
것 같지는 않다. 오로지 남북한 주민들의 손으로서만 통일은 시작될 수 있고 끝날 수 있을 뿐이다.
특히 남한의 도움으로 북한이 시작하고 끝내야 한다. 통일은 남북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분단도 마음이요 통일도 마음이다. 남북 주민들의 마음속이
변하지 않는 한 통일은 올 수 없다. 남북 주민들의 마음속이 아직도 분단이다.
진실은 회복 되어야 한다. 역사는 회복되어야 한다.
통일은 회복되어야 한다. 내 글은 김일성을 떠나보내는 씻김굿이다.
1956년~1967년 사이 경쟁자 모두 죽여 버리고 주체사상이라는
사이비종교를 만든 신흥 교주. 이 비교(秘敎)를 유지하기 위해 북한의 문은 닫힐 수밖에 없었고 정권은 세습될 수밖에 없었을 뿐이다. 이제
통일을 하기 이전에 이 사이비종교 교주 김일성부터 남북 주민들의 머릿속에서 몰아내지 않으면 통일은 없다. 남북의, 특히 북한 주민의 탈(脫) 김일성화가 가장 시급하다. 북한 주민으로서야 그것 하나를 위해 3~4대를 고초를 겪은 그 김일성 혁명의 자존심마저 버리라면 허탈하겠지만 진실은 진실이고 거짓은 거짓인 것이요 변할 수가 없다.
김일성 청산이 곧 핵 청산이요 진실회복이다. 남북 주민이 모두
김일성을 청산하고 핵을 청산하고 진실을 회복하지 않는 한 통일은 올 수 없다. 통일은 진실이다.
진실은 언제고 온다. 김일성이 깔아 놓았던 그 모든 거짓 역사의 카펫 위를 밟고
진실은 온다. 통일은 온다. 거짓의 화신 김일성, 남북을 거짓의 왕국을 만들어 놓았던 김일성이여 영원히 한반도를 떠나라.
남북은 지난 70년 동안 좋든 싫든 모두 김일성 그늘 아래서만
살아 왔다. 이제 남북 주민들이 모두 김일성 그늘을 탈피할 때만이 통일을 논할 수 있다. 김정일 김정은은 오로지 김일성의 그림자를 자처할 뿐이다. 탈 김일성화가 탈 김정일이요,
탈 김정은이다. 그게 통일이다. 남북 주민들의
마음이 통일이다. 마음속의 김일성과 어떻게 굿바이든 뱃바이든 하느냐가 곧 통일이다. 아무도 김일성을 사모하진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두가 그 평가나 존재탐색을 유보했을 수는
있다.
이제 그 유보를 끝내자. 그 유보가 바로 분단이었다.
이제 분단은 끝났다. 김일성은 없다. 완전한
평가가 내려졌다. 김일성은 갔다. 그 아들 손자와 함께.
그 철벽같은 북한의 폐쇄 울타리와 함께. 김일성이여 영원히 안녕. 그 많은 목숨 잡아먹고 병신 만들고 눈 막고 귀 막았던 무식하고 교만했던 독재자여 영원히 이 땅에서 사라져 달라. 북한 주민들의 마지막 자존심은 그들의 탈 김일성화에서 찾아야 한다.
두 달 전부터 치밀하게 38선 근처에 군대를 몰아다가 대기시켜
놓고는 “몇 월 며칠 새벽 몇 시 미제의 주구에 의한 이승만 도당의 북침에 대응하여 하는 수 없이 남한 해방전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라는 말이 전쟁의 첫 거짓말이었다.
북한 주민들은 아직도 모두 그렇게 믿고 있다. 아니 지금도 1953년 7월 27일 휴전 일을 북한의 전승절(戰勝節)로 기린다. 그 작은 북한이 그 큰 대국 미국을
물리친 날이라면서 .
김일성은 인류 역사상에서 거짓말을 가장 잘 활용한 정치가로 기록될 것이다. 바로 그 능란한 역사 위조 기술로 해서 거짓 왕조를 1세기나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북한에서는 어떤 역사책이나 문학작품도 당의 검열을 통과하지 않은 출판은 없다. 아니
처음부터 당의 지시에 의한 제작이 아니고는 시작이 안 된다. 그런 만큼 모든 출판물은 당의 생각이고 그 당이란
즉 수령 한 사람의 생각이다.
저자 : 정자환의 자기소개글
일제 치하 1938년 가평에서 태어난다.
6.25 전쟁의 우여곡절 끝에 이화여자고등학교(1954~1957년)를 졸업하고, 그 해 서울대 문리대 영문학과에 입학하여 4년을 다니고, 졸업한다(1961년). 졸업 후에는 덕성여자고등학교 교단에 섰다가, 결혼과 함께 그만두고, 주부의 몸으로 동아일보 6기 공채에 유일한 홍일점으로 붙어 기자생활을 시작한다(1964년). 십여 년의 기자생활을 뒤로 한 채, 유신이 선포되던
그 해 미국 하와이대학으로 유학을 간다(1972년).
그곳에서 사회인류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1977년), 1980년부터 카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4년 정년퇴직한다. 민주교수협의회 회장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우연히 접하게 된 북한의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다방면으로 연구하였다. 사실 아직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한 아쉬움이 많은 처지에, 북한의 민주주의를 얘기한다는 것이 꺼림칙하게 느껴지는 그런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역사적 사실만큼은 솔직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 이 글을 탈고했다.
그곳에서 사회인류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1977년), 1980년부터 카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4년 정년퇴직한다. 민주교수협의회 회장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우연히 접하게 된 북한의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다방면으로 연구하였다. 사실 아직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한 아쉬움이 많은 처지에, 북한의 민주주의를 얘기한다는 것이 꺼림칙하게 느껴지는 그런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역사적 사실만큼은 솔직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 이 글을 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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