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21

‘남북대화 70년’ 비사…김정일 ‘무소불위’ 권력 행사하지 못했다? : 정치BAR : 정치 : 뉴스 : 한겨레



‘남북대화 70년’ 비사…김정일 ‘무소불위’ 권력 행사하지 못했다? : 정치BAR : 정치 : 뉴스 : 한겨레


‘남북대화 70년’ 비사…김정일 ‘무소불위’ 권력 행사하지 못했다?

등록 :2018-03-21
정치BAR ‘남북 대화 70년’ 비사와 교훈


1972년 5월 박정희 정부 특사 김일성 북한 주석(오른쪽)이 1972년 5월 평양을 방문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험 쳐 본 적 있지요. 쉬운 문제부터 풀고 어려운 문제는 나중에 풀지 않습니까?”

1972년 5월 북한이 정상회담을 제안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은 거부했다. 이후 남북관계는 어려운 문제는 손도 못 대고, 쉬운 문제도 자주 틀렸다. 그렇게 분단 70년이 흘렀고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2018년은 달라야 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똑같이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환영한다. 우리는 이 순간을 간절히 기다려왔다.



지도자의 결단과 실무

현재의 국면은 과거와 다르다. 우선 속도다. 과거는 완행열차였다. 서는 역이 너무 많다 보니 늘 가다가 길을 잃었다. 북한과 미국은 그러지 말고 고속열차를 타자고 한다. 일정 단계까지 한번에 가자고 한다. 미국은 북한의 가시적인 핵 포기를 요구하고, 북한은 가시적인 체제보장을 요구한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남북관계 발전의 제도화’를 얻어야 한다.

과거에는 실무적인 방식으로 접근했다면, 지금은 정상회담 중심으로 돌아간다. 4월 말 남북정상회담을 시작하면 한-미, 북-미, 남-북-미 정상회담이 순차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높다. 과거는 상향식이었지만, 지금은 하향식이다. 지도자의 결단이 실무적 판단을 끌고 가는 방식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연 지도자가 어디까지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느냐다.

북한의 지도자가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2005년 6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을 때 일이다. 당시 정 장관은 금강산 자가용 관광을 제안했다. 어차피 육로로 가는데, 남쪽에서 아예 자기 차를 끌고 군사분계선을 넘자고 제안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흥분되는 일’이라고 하면서 흔쾌하게 수락했다. 그때 임동옥 통일전선부장이 나섰다. 그는 ‘실무적인 문제로 어렵다’고 말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정 장관을 보고 ‘안 된다는데요’라고 말하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북 ‘존엄’ 무소불위 권한행사 못해
김정일, 금강산 승용차 관광 수용
실무자가 반대하자 “안된다네요”
서해평화지대도 군부 의견 수렴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해평화협력지대를 제안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은 잠시 정회를 하고 군부의 의견을 들었다. 물론 김정일 위원장과 김정은 위원장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수령’이라고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어떨까? 그는 오랜 부동산투자업의 경험으로 직감을 중시하고 결단을 선호한다. 그는 체질적으로 실무와 거리가 멀다. 벌써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고위직의 공석이 많다. 언제나 주인공이 되고 싶은 트럼프 대통령은 실무의 공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에 안 들면 과감하게 잘라버리기 때문에 실무자는 침묵한다.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미국 대통령이 결정할 수 있는 권한도 크다. 그러나 대통령의 결단으로 관계 개선의 문을 열 수는 있지만, 실질적인 이행을 위해서는 의회의 비준과 법률의 개정이 필요하다. 팀추월 경기처럼 지도자가 앞서 나갈 수 있지만, 실무가 도착해야 움직일 수 있다.

외교는 사람이 한다. 정상회담에서 지도자의 품격은 중요하다. 특히 신뢰가 없거나 적대적인 관계에서 더욱 그렇다. 과거 소련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은 서독의 빌리 브란트를 만나고 나서 ‘독일보다는 독일 총리를 더 신뢰한다’고 말했다. 훗날 2018년의 역사에서 결정적 전환의 순간이 언제였을까를 묻는다면, 아마도 김여정 특사가 문재인 대통령의 ‘진정성’을 확인했을 때로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은 2007년 비서실장으로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맡아서 실무에도 밝다.



물위를 보면 물밑이 보인다

물론 4월과 5월의 정상회담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통일전선부(북)-국가정보원(남)-중앙정보국(CIA·미) 팀이 현재의 정세를 만드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상회담의 준비과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협상의 세계에서 물위만큼 물밑 접촉이 중요하다. 물밑 접촉에서 핫라인은 유용한 소통수단이다. 남북관계에서 처음으로 핫라인을 개통한 때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때다. 당시 중앙정보부에 설치한 전화로 비무장지대에서 군사적 충돌을 막기도 했다. 이후 전화선은 늘 연결돼 있었다. 다만 관계 악화 시기에는 불통이고, 관계 개선 시기에는 소통했다.



물밑접촉 지속 위해 물위신호 필요
전두환정부 물밑 대화만 진행하다
북한 간첩선 격침사고 일어나자
대화 몰랐던 관료들 반대로 물거품
2004년 관계악화 풀어낸 것은
핫라인 통한 진정성 있는 대화촉구





1991년 5월 노태우정부 특사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1991년 5월 북한 청소년축구선수단 환영만찬에서 리명성 북측 축구협회 부회장과 대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4년 7월 필자가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이 되었을 때 남북관계는 악화 국면이었다. 당시 베트남에서 대규모 탈북자가 전세기로 들어오는 바람에 모든 대화가 중단됐다. 당시 핫라인을 통해 대화를 촉구하는 편지를 아주 많이 보냈다. 몇달 동안 전화는 불통이고 팩스는 응답이 없었다. 그러나 2005년 남북대화가 재개되었을 때, 북쪽은 한편으로는 답장을 못해서 미안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남쪽의 진정성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17년 하반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북한의 평창겨울올림픽 참가를 촉구하고, 평창을 평화정착의 기회로 만들자고 많이 호소했다. 응답이 없어도 진심 어린 노력이 북한의 마음을 움직인다. 모르긴 몰라도 현재의 국면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일부 사람은 물밑의 대화를 의심한다. 북한에 무엇인가 퍼주는 것이 아닌지를 오해한다. ‘퍼주기’는 남북관계에서 대표적인 거짓 선동이다. 물론 1994년 우여곡절 끝에 남북정상회담에 합의했을 때, 김영삼 대통령은 “돈 좀 쥐여주고 북한군을 후방 배치시키면 안 되겠나?”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정상회담이 성사됐으면 퍼주기라는 비판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의 남북정상회담에서 경제협력은 우선순위도 아니다. 유엔 제재 때문에 경제적 수단을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비핵화와 체제보장(평화와 관계정상화)의 교환에 집중하는 구도이기에 ‘퍼주기’론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남북한은 정상 간 핫라인을 설치하기로 했다. 지도자 사이의 직접 소통은 새로운 국면을 예고한다. 2000년 정상회담 이전에 특사교환을 통해 간접대화는 이뤄졌지만, 남북한의 지도자가 직접 소통한 적은 없다. 2000년 정상회담과 2007년 정상회담도 만남 이후 정상 차원의 소통을 지속하지 못했다. 남북 정상의 핫라인은 처음에는 어색할지 모르지만, 하다 보면 빈번해질 수 있다. 언제나 한국의 외교능력은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과 비례한다. 남북 정상의 핫라인은 한국 외교의 위상과 역할을 획기적으로 높일 것이다.

물밑의 대화를 불안의 시선으로 볼 필요가 없다. 남북관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물밑과 물위가 따로 놀기 어렵다. 1985년 전두환 정권 시절 남북한은 정상회담을 원칙적으로 합의하고 의제를 논의했다. 모든 협상은 물밑에서 이뤄졌고, 물위에서는 몰랐다. 물밑에서 물위로 전환하는 시점인 그해 10월 부산 청사포 앞바다에서 북한의 간첩선이 격침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물밑 논의를 알지 못했던 관료들의 반대와 여론의 악화로 결국 전두환 정부는 정상회담을 더이상 추진할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물위에서 적대의 말을 쏟아내면서 물밑에서 대화하기는 어렵다. 물밑 협상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물위에서 공개적인 신호를 보내야 한다. 물밑과 물위가 따로 놀면 잡음이 생기고 신뢰를 쌓기 어렵다. 그래서 물위를 지켜보고 있으면 대체로 물밑의 협상 진도를 짐작할 수 있다. 협상은 언제나 양면이다. 앞에는 상대가 있고 뒤에는 여론이 있다. 남북협상에서 여론은 북한을 설득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평창 국면에서도 그랬지만, 북한은 남쪽의 언론보도를 언제나 문제 삼는다. 우리는 반대로 언론을 북한의 양보를 얻어내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북한은 언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실무자들끼리 정보공유를 폭넓게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보안사고에 신경을 쓴다.

다른 한편으로 국내 여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북한이 민감한 현안에 훨씬 적극적이다. 2005년 8·15 기념으로 북한의 대표단이 방문했을 때다. 갑자기 북한 대표단이 현충원을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당시 정부 안에는 현충원 방문을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북한이 현충원을 방문하면 우리도 상응 조치를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5년 6월 노무현정부 특사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오른쪽)이 2005년 6월17일 평양 대동강 영빈관에서 6·15 공동선언 5돌 기념 민족통일 대축전에 참가하려 방북한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결국 치열한 토론을 거쳐 받기로 했다. 북한이 내미는 화해의 손짓을 거부할 명분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북한 대표단은 한국전쟁 전사자들이 잠든 현충원에 가서 역사적인 묵념을 할 수 있었다. 북한은 여론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훨씬 전향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여전히 보수적인 여론이 적지 않고, 정치적 논란을 피해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남북관계와 선거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6월에 지방선거가 있고, 미국에서는 11월에 중간선거가 있다. 선거에서 ‘북풍’은 성공하기 어렵다. 이번 정상회담 국면은 미국도 참여하는 남-북-미 삼각대화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보수적 색깔론이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다. 물론 대북정책을 둘러싼 여론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다. 여론의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김영삼 정부처럼 실패할 수 있다. 김영삼 정부는 언제나 여론에 충실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정책은 온건과 강경을 오갔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득실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여론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론을 만들어가야 성공할 수 있다.



믿어라. 그러나 검증하라

‘북한을 믿을 수 없다.’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의 핵심이다. 원래 협상은 믿을 수 없는 상대와 한다. ‘믿어라. 그러나 검증하라’는 말은 러시아 속담인데, 1986년 레이건 대통령이 레이캬비크에서 고르바초프를 만났을 때, 서툰 러시아말로 그렇게 말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불신은 일방적이 아니라 상호적이다. 내가 믿을 수 없으면 상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신뢰는 협상의 결과이지, 조건이 아니다.



북한은 믿을 수가 없다?
믿을 수 없으니 협상하는 것
신뢰는 협상의 조건 아닌 결과

속도가 너무 빠르다?
‘70년 냉전 해체’ 오히려 너무 늦어
분단세대 있을 때 분단아픔 치유를



남북관계에서 신뢰는 허약하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더욱 그렇다. 한반도는 비관의 계곡을 건넜다. 그러나 우리 앞에 낙관의 벌판이 펼쳐진 것도 아니다. 북한과 미국의 두 지도자는 여전히 의심이 많고 상대를 믿지 않는다. 지도자 뒤에 있는 실무자들의 의심은 더욱 뿌리가 깊다. 남-북-미 삼각대화에서 신뢰를 쌓는 과정이 필요하다. 2018년에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약속에 집중하고, 가능하면 초기 이행 조치의 수준이 돌이킬 수 없어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와 ‘돌이킬 수 없는 체제보장’,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남북관계의 제도화’를 일괄타결하고 짧은 시간에 이행해야 한다.

평창겨울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 정세는 악화에서 해결로 전환했다. 4월의 남북정상회담과 5월의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한반도 주변국의 연쇄적인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다. 산을 넘으면 또 얼마나 높은 산이 기다릴지 모르겠다. 다만 기적처럼 찾아온 2018년의 봄을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의 기회로 살려야 한다. ‘너무 빠른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분단 이후 간헐적으로 이어진 ‘70년의 대화’라는 시각에서 보면 오히려 너무 늦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이 헤맸고,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분단 1세대가 살아 있는 동안에 분단의 아픔을 치유해야 한다. 때가 왔는데 망설일 이유가 있을까?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70년의 대화> 저자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bar/836999.html#csidxe4f33f2da67f4c79f043b69cbbf1d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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