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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과 문학 l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W. G. 제발트 (지은이) | 이경진 (옮긴이) | 문학동네 | 2013-06-20 | 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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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W. G. 제발트 선집 제1권으로, 20세기 말 독일어권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W. G. 제발트의 역사의식과 문학론을 살필 수 있는 핵심적인 저서이다. 1997년 스위스 취리히 대학에서 진행했던 강연과 후기를 정리하여 묶은 '공중전과 문학', 강연 주제의 문학적 사례인 작가 논문 '알프레트 안더쉬'로 구성되어 있다.
두 텍스트를 관통하는 주제는 전쟁과 폭력 앞에서 입을 닫고 역사수정주의를 암묵적으로 지지했던 전후 독일문학에 대한 비판이다. 이미 전세가 기운 이차대전 말 영국군의 공습으로 희생된 수많은 독일인에 대해, 독일 국가와 문단 전체가 애도를 회피하고 과거를 수정하는 일에 몰두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누구도 꺼내지 못했던 민감한 주제를 담은 이 책은, 출간 당시 독일 사회의 격렬한 반응과 함께 이른바 '제발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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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ㆍ7
공중전과 문학ㆍ11
알프레트 안더쉬ㆍ145
주ㆍ195
옮긴이의 말ㆍ203
W. G. 제발트 연보ㆍ213
관련 인물 정보ㆍ217
「공중전과 문학」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이 파괴 행위는 새로 건설된 국가 연감에 일반론으로 얼버무려 기록되었을 뿐 집단의식에 전혀 상흔을 남기지 않은 양 치부되었고, 당사자의 회고에서도 거의 배제되었을 뿐 아니라 그간 독일의 내적 상태에 관해 진전된 논의에서도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으며, 훗날 알렉산더 클루게가 확인해주었듯이 그 어떤 것도 공적으로 의미 있는 기호가 되지 못했다. (14쪽)
1940년대 말에 나온 전체 문학작품 중 하인리히 뵐의 소설 『천사는 침묵했다』만이 유일하게, 당시 폐허에서 실제로 주위를 둘러본 모두를 사로잡았던 그 경악의 깊이에 근접하는 표상을 전달해준다. (중략) 그 검은 피, 끈적이며 굳어가는 피, 죽어가는 자의 입에서 이쪽으로 벌컥 쏟아지는 피, 그 여인의 가슴에 퍼져 침대보를 물들이고 침대 가장자리를 넘어 바닥으로 떨어진, 번져가며 고인 피, 뵐의 강조처럼, 잉크같이 매우 까만 그 피는 생존 의지에 반하는 나태한 심장(acedia cordis)의 상징이자, 독일인이라면 그 종말의 순간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음침하고 불가항력적인 우울증의 상징이었다. (22-23쪽)
지하 방공호에서 도망쳐나온 사람들은 찐득찐득한 거품을 내며 녹아내리는 아스팔트 속으로 기괴하게 발을 절룩이며 쓰러져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밤에 죽어갔는지, 아니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음이 그들을 채가기 전에 미쳐갔는지 누구도 정확히 몰랐다. (44쪽)
우리는 어떤 곤충 군체가 그들의 이웃집이 무너져내렸다 하여 슬픔으로 마비되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반면 우리는 인간 본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공감 능력을 기대한다. 이런 점에서 1943년 7월 말 함부르크에서 소시민들이 매일의 일정한 다과 시간을 고수했던 것은 무엇인가 소름끼치게 부조리하고 추잡한 면을 지니고 있다. (62쪽)
모든 작가 중 가장 깨어 있는 클루게조차 우리가 자초한 그 불행으로부터 우리 자신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것이라며 미심쩍어하고, 우리가 뉘우칠 줄도 모른 채 과거의 길과 다시 자유로이 연결되는 길을 계속 만들어내기만 할 것이라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낸다. 그런 까닭에 파괴된 고향을 바라보는 클루게의 시선은, 지적인 의연함에도 불구하고, 발터 벤야민이 말한 역사의 천사처럼 경악에 붙들려 있다. (95쪽)
나는 그 파괴의 밤들에 대한 기억들이 존재했고 존재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그 기억들이 일반적으로 또 문학적으로 표현되는 형식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렇게 형상화된 기억들이 독일연방공화국을 형성하는 공적인 의식 속에서 국가 재건 이외에는 그 어디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112쪽)
「알프레트 안더쉬」
안더쉬가 일부 가혹한 현장 비평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인정받듯 전후 수십 년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가로 손꼽힐 만한 작가인가, 그렇지 않은가? 만일 그가 중요한 작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 실패는 어떤 종류의 것인가? 작품에 드러나는 결점들은 가끔 있는 문체상의 오류일 뿐인가, 아니면 심층적인 문제의 징후인가? (154~155쪽)
평일이면 이 감수성이 풍부한 청년은 “어느 출판사의 경리부에서” 일을 하고, 여가시간에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자기 주변을 전체주의 국가조직으로 에워싼” 사회를 무시하며 지냈다고 한다. 안더쉬가 일한 파울하이제 가의 레만 출판사가 국수주의정책과 인종학, 우생학을 앞장서 대변하던 곳이었음을 고려해볼 때, 그곳을 지배하던 전체주의의 현실을 계속 무시하며 지내기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159쪽)
문학작품은 내면생활을 감싼 외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저급한 안감은 어디에서나 드러나는 법이다. (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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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저자)
: 섬세하고 농밀할 뿐만 아니라 사물의 물성에 통달한 듯한 제발트의 언어는 한마디로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 제발트처럼 국외에서 영원히 거주한 독일 작가만이, 그렇게 설득력 있는 고상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폴 오스터 (소설가)
: 최근 몇 년간, 유럽에서 들려온 가장 독창적인 목소리.
뉴욕 타임스
: 대부분의 작가는 쓰일 수 있는 것을 쓴다. 그러나 최고의 작가들은 쓰일 수 없는 것을 쓴다. 프리모 레비, 그리고 무엇보다 제발트가 그렇다.
워싱턴 포스트
: 더없이 놀라운 글. 강렬한 문장과 통찰로, 제발트의 생을 사로잡았던 기억의 문제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책이다.
옵저버
: 시의적이며 경이로운 책. 제발트는 전쟁의 참혹함을 이해하는 것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던 현명한 작가이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 침묵을 강요당했지만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제발트의 목소리, 그 암울한 형상. 이 책은 이러한 성찰에서 흘러나온 슬픔에 잠겨 있다.
가디언
: 제발트는 우리 시대의 허위와 도덕적 회피에 대해 차분하게, 그러나 격렬히 항의한다. “오늘날 어떤 형식의 문학이 필요한지를 숙고하는 일은, 전쟁 생존자에 대한 기록문학을 통해 의미를 얻었다”라는 엘리아스 카네티의 논평에 제발트보다 더 잘 부합하는 작가는 없다.
디 차이트 (독일 시사 주간지)
: 묻혀 있던 기억의 파편을 찾아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억의 파편들로 제발트가 비판한 기억의 공백이나 독일문학의 침묵, 그 어떤 것도 채우거나 덮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3년 7월 1일 문학 새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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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W. G. 제발트 (Winfried Georg Sebald)
최근작 : <자연을 따라. 기초시>,<현기증.감정들 (양장)>,<현기증.감정들 (반양장)> … 총 7종 (모두보기)
소개 :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깊은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독일 작가 중 한 사람이다. 1944년 5월 독일 남부 알고이 지역의 베르타흐에서 태어나, 프라이부르크와 스위스 프리부르에서 독일문학을 공부했다.
1966년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그곳에서 어학을 가르쳤다. 1970년부터 노리치의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에서 문예학을 가르치는 한편, 1973년 알프레트 되블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독일 함부르크 대학에서 오스트리아문학에 관한 논문으로 교수자격을 취득한 뒤, 1988년 이스트앵글리아 대학 독일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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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이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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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 총 2종 (모두보기)
소개 :
문학이라면 언어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좋아했지만 기이하게도 독일 문학은 읽은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대학에서 독문학을 접하고 공부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 독일로 유학까지 가게 되었고 현재는 대학에서 독문학과 문예이론을 가르친다. W. G. 제발트의 문학을 발터 벤야민의 멜랑콜리 역사철학의 시각에서 살펴보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 인연으로 제발트의 『공중전과 문학』을 번역했다. 타자와 윤리, 애도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중 문학 번역에서 이러한 윤리적인 것의 이념이 실천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독일 낭만주의 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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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가장 경이로운 작가 W. G. 제발트,
독일문학을 법정에 세우다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W. G. 제발트 선집 제1권. 20세기 말 독일어권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W. G. 제발트의 역사의식과 문학론을 살필 수 있는 핵심적인 저서이다. 1997년 스위스 취리히 대학에서 진행했던 강연과 후기를 정리하여 묶은 「공중전과 문학」, 강연 주제의 문학적 사례인 작가 논문 「알프레트 안더쉬」로 구성되어 있다.
두 텍스트를 관통하는 주제는 전쟁과 폭력 앞에서 입을 닫고 역사수정주의를 암묵적으로 지지했던 전후 독일문학에 대한 비판이다. 이미 전세가 기운 이차대전 말 영국군의 공습으로 희생된 수많은 독일인에 대해, 독일 국가와 문단 전체가 애도를 회피하고 과거를 수정하는 일에 몰두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누구도 꺼내지 못했던 민감한 주제를 담은 이 책은, 출간 당시 독일 사회의 격렬한 반응과 함께 이른바 ‘제발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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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부 소개 】
자발적 망명과 『공중전과 문학』의 가치
독일인으로 태어났지만 독일인이기를 원하지 않았던 ‘자발적 망명자’, 그러면서도 독일이 회피해왔던 독일 역사에 가장 집요한 관심을 쏟았던 W. G. 제발트. 국내에는 『이민자들』, 『토성의 고리』, 『아우스터리츠』 등의 문학작품으로 먼저 소개된 그는, 논쟁적인 논문을 발표한 문학비평가이기도 하다. 이번에 출간된 『공중전과 문학』은 비평가 제발트의 목소리가 담긴 대표적인 저서로, 작가로서 명성이 절정에 이른 시기에 발표해 논란을 일으킨 ‘문제작’이다.
구조적인 면에서 볼 때 이 책은 제발트 고유의 ‘산문 픽션’과 학술 논문 사이에 존재한다. 여러 갈래의 사유 가닥으로 글의 얼개를 짜나가고, 언어를 시각화하는 장치로서 사진 자료를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산문 픽션의 구조를 따라간다. 동시에 사실임직한 허구를 표현하는 것이 아닌 정확하고 방대한 사실 자료를 바탕으로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전후 독일문학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술 논문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한편, 이 책은 그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끊어질 듯 계속되는 문장의 구사, 지워진 것을 떠올리는 기억의 고통, 집요한 기억하기에 대한 대가로 찾아오는 고독, 흔적을 되새겨나가는 여행과 산책 등이 그의 작품에서 왜 그토록 중요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그의 문학적 의식이 역사 기술의 한 측면으로서의 문학, 사라진 흔적을 추적하는 기록으로서의 문학, 실천적 글쓰기로서의 문학을 소망하고 있다는 확인도 이 책의 소중한 결실이다.
공중전이라는 전쟁 - 파괴의 자연사
「공중전과 문학」은 영국군의 독일 공습 당시 상황을 분석하고, 공습으로 희생된 수많은 독일 자국민에 대해 애도하지 못했던 독일 국가와 전후문학의 경향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점은 자칫 보수적인 문학관이나 국가주의적인 관점에서 국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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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참혹함은 말할 것도 없고, 전후 독일은 왜 자국민의 처참한 희생에는 침묵했는지, 또 독일 문학가들은 몇몇을 제외하고 그 침묵에 동조했는지 제발트는 날카롭지만 그 특유의 우아한 문체로 비판한다. "애도할 줄 모르는 무능력에 빠진" 독일에 대한 비판이자 문학의 의무를 생각케 하는 글.
잠자냥 ㅣ 2017-02-12 l 공감(4) ㅣ 댓글(2)
신선한 책이었습니다. 그가 제기하는 주제에 대해서는 곱씹어 여러 차례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풀보210 ㅣ 2016-05-04 l 공감(0) ㅣ 댓글(0)
왜 독일 작가들이 수백만 명이 경험한 독일 도시들의 파괴를 서술하려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러한 서술을 하는데 왜 그렇게 무능했는가에 대한 제발트의 예리한 분석과 비판.
스누피 ㅣ 2016-03-28 l 공감(0) ㅣ 댓글(0)
2차 세계대전 말기 연합군의 무차별 도시 폭격과 이후 독일 문학에서 어떻게 다뤄졌는가에 대한 문제를 비판한 내용. 우리 역사의 굵직한 사건과 이것을 문학에서 어떻게 다루고 있었지? 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정신 ㅣ 2016-02-01 l 공감(0) ㅣ 댓글(0)
예루살렘의 아렌트처럼, 제발트는 피해자주의에 젖은 채 자신의 과거를 애써 망각하며 살아가는 독일사회에 날선 칼날을 들이댄다. 하지만 제발트는 그 칼날이 바로 자신을 향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문체에 깊이 드리운 고독과 멜랑콜리가 이를 반증한다.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생쥐스뜨 ㅣ 2015-10-18 l 공감(1) ㅣ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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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 4편
문학의 임무에 관해서 레삭매냐 ㅣ 2018-01-31 ㅣ 공감(21) ㅣ 댓글 (2)
5년만에 제발트의 <공중전과 문학>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더 특별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책이 출간되기 전에 내가 모니터링을 한 책이기 때문이다. 보통 말미에 모니터링한 사람의 이름이 들어가는데, 지금 들춰보니 내 이름이 빠져 있더라. 이유는 너무 오래 돼서 잘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넣어 달라고 말해야 하나. 5년 전 일을 헤집어서 그러기엔 너무 귀찮네 그래.
나의 제발트 읽기 프로젝트 네 번째 책으로 <공중전과 문학>을 골랐다. 모니터링하고 받은 책이 분명 어디 있을텐데, 집안을 모두 뒤져도 찾을 수가 없어서 결국 어제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기 시작했다. 왜 내가 읽고 싶은 책은 읽고 싶을 때 나타나지 않는 걸까. <토성의 고리>도 사서 다 읽고 나니 어디선가 불쑥 등장하더라만.
제발트는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을 상대로 한 연합군, 특히 영국 공군의 지역폭격이라는 이름으로 수행된 대규모 공중 폭격전의 부당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사실 영국이 실시한 대규모 폭격은 전쟁을 조속하게 끝내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전쟁을 수행 중이던 독일 시민들의 사기를 꺾기 위한 선전전에 해당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핵심이다. 게다가 실제적으로 그렇게 막대한 전쟁 비용과 인원(폭격수 60/100명 꼴로 사망)을 동원해서 실시한 공중전이 독일 시민들의 전쟁의지를 꺾지도, 산업 생산 피해도 미미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영국군이 정말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고 싶었다면, 나치의 유능한 군수장관 알베르트 슈페어가 지적한 대로 교통요충지나 정유시설, 연료설비, 볼베어링공장 같은 전쟁물자를 집중적으로 생산하는 전략목표를 대상으로 정교하고 선별적인 폭격을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 대륙에서 압도적인 독일군의 블리츠크리크(전격전)로 유례없는 패배를 기록한 영국군은 사실상 대항할 수단이 전무했다. 온갖 기괴한 작전 구상들이 나온 끝에 도출된 결론이 바로 공중전이었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가용자원을 동원한 공중전이 사실상 적국에게 크게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비싼 기회비용을 들여 생산한 엄청난 수량의 폭탄을 썩힐 수는 없었다. 그 결과 불행한 다수 독일 민간인들이 막대한 희생을 치러야 했던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당시 나치 독일의 프로파간다 전문가들이 선전한 대로 “가학적인 테러 공격”이나 “야만적인 깡패짓”이라는 문구들이 어쩌면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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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1943년 7월 마지막 주에 수행된 고모라 작전에 목표였던 함부르크에서 벌어진 대규모 살상에 대한 기록들을 공개한다. 미국 제8공군의 지원을 받은 영국 공군은 연속적으로 1만 톤 달하는 화염폭탄과 파쇄폭탄의 비를 함부르크에 퍼부어댔고, 함부르크 시내를 강타한 화염 폭풍은 도시에 살던 인명과 유서 깊은 건축물들을 그야말로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서로 뒤엉켜 불타 버린 시신들에 대한 제발트의 서술은 너무 끔찍해서 차마 읽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45쪽에 등장하는 사진이 고모라 작전이 만든 비극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제발트는 비판의 화살을 다수의 독일 지식인들에게도 돌리고 있다. 전쟁 중에 저질러진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수많은 원죄 때문에 연합군이 실시한 부당한 폭격에 대해서도 전후 독일 지식인들을 비롯한 문학인들도 의도적으로 입을 다물고, 의식적 저지와 회피 혹은 외면했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도 충분히 시대상황을 고려해서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침묵하는 다수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폐허가 된 조국의 재건이었다. 승전국들의 점령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만한 발언들은 극도로 자제해야 한다는 자기검열이 작동한 것일까.
물론 우리에게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로 널리 알려진 하인리히 뵐(<천사는 침묵했다> 오래 전에 국내에 출간됐지만 절판된 상태다), 한스 에리히 노사크(<늦어도 11월에는> 문학동네), 헤르만 카자크, 아르노 슈미트, 페터 드 멘델스존(대부분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가들이다) 같은 소수의 양심적 작가들과 무명의 인사들이 남긴 기록이 있지만 너무나 빈약했고 산재되어 있었다고 저자는 저술한다. 한 마디로 말해 제 2의 과거 청산 작업 중에 모두에게 완전한 침묵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과 어쩌면 이렇게 딱 들어맞는지 모르겠다. 주류 수구언론들에서 연일 적폐청산에 대한 존재하지도 않는 피로감을 호소하며 지난 9년간의 악몽을 뒤로 하고, 미래로 달려 나가자는 주장과 꼭 맞아 떨어지는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침묵하는 다수는 미래에 벌어질 범죄의 공동정범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중전과 문학> 세 번째 장에서는 취리히 강연과 지면을 통해 제발트의 연합군 공중전에 관한 비판이 공개된 뒤 쏟아진 다양한 비난의 일부분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의 영국식 표현이 담긴 문장을 문제 삼은 어느 교장 선생님의 칭찬과 비난으로 범벅이 된 편지는 또 어떤가. 어디서나 지엽적인 문제들을 본래 어젠다가 가리키는 방향에서 이탈해서 중점으로 삼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또 어떤 글들은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서투르고 과민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도 했다. 저자는 문학가이면서 동시에 역사가를 능가하는 그런 철두철미한 역사가의 정신으로 자신이 접한 사료들을 대한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다름슈타트에서 온 H박사의 글은 정말 구제불능의 황당무계하다고 밖에 말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연합군의 지역폭격이 독일 민족을 말살시키려는 해외 유대인들의 음모론에서 비롯되었다는 해괴한 주장이다. 실제 나치 치하를 체험한 것도 아닌 사람이 이런 주장을 한다는 점이 극히 우려스럽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수정주의적 역사관도 이런 주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제발트의 <공중전과 문학>은 1942년 여름, 스탈린그라드를 포위한 정예 독일군들이 루프트바페의 공중폭격으로 4만 명이나 되는 무고한 스탈린그라드 시민들을 살상됐다는 소식을 듣고 환호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고모라 작전으로 폐허가 된 함부르크의 사진을 보고 환호작약하는 연합군 병사들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 것처럼 내게는 들렸다.
책의 후반에 등장하는 문제적 인간, 알프레트 안더쉬의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오로지 제발트의 비판에 의하면, 사상적으로는 극우파 선배 에른스트 윙거를 추종했고 문학적으로는 토마스 만을 뛰어 넘고 싶어했던 성공과 유명세를 쫓는 협잡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국내에는 문학과 지성사에서 예전에 <잔지바르 또는 마지막 이유>라는 9개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이 출간되었는데 구해 두기는 했으나 미처 읽어 보지는 못했다. 독일 '문학의 교황'이라고 불리는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일찍이 그의 글에 대해 “거짓말과 키치의 밥맛 떨어지는 조합”이라는 혹평을 내렸다.
제발트의 분석에 따르면 원래 공산당 출신이었던 안더쉬는 몇 달 간의 강제수용소 생활을 거쳐 제국에 봉사하는 신실한 인간으로 개조되었다. 유대인 출신 부인과의 결혼도 제국문예부의 회원이 되기 위해 이혼으로 깔끔하게 마무리지었다. 베허마흐트의 일원으로 이탈리아 아르노 전선에서 1944년 6월 미군의 전쟁포로가 되어 미국으로 보내지기도 했다. 제발트는 안더쉬의 초기작부터 말년에 발표한 그의 주목할 만한 모든 작품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좌파에서 우파로, 다시 좌파로 재전향하며 오락가락하는 안더쉬의 삶을 관통하는 성공과 유명세를 향한 출세욕을 그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제 내가 읽어야 하는 제발트의 책들은 두 권이 남았다. 그 중의 하나인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된 <현기증. 감정들>은 이미 읽었지만 다음달에 다시 읽을 계획이다. 그나저나 문학동네에서 5년 전부터 제발트 선집으로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는 <캄포 산토>는 과연 언제나 출간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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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이라니 게다가 문학. dellarosa ㅣ 2017-05-07 ㅣ 공감(27) ㅣ 댓글 (14)
공중전이라니? 공중전이라하는 것은 도그파이트(dogfight), 즉 비행기 사이의 전투를 의미하지 않는가? 제목을 본 순간 난 그렇게 이해했다. 그리고 기대했다. 도대체 제발트는 공중전과 문학을 어떻게 엮어서 이야기 할 것인가? 대단한 능력자 아닌가? 공중전과 문학이라니? 하지만. 글을 읽고 나서 공중전이라는 것은 본문에 비추어보면 공습(air raid)이란 걸 알 수 있다. 2개의 논문에서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첫번째 글은 공습과 관련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독일어를 잘 몰라서 정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독일어와 우리말의 미묘한 차이로 인하여 오해가 생긴 것 아닌가 생각해본다. 혹은 내가 지나치게 협소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공중전이라고 하면 도그파이트가 바로 떠오르긴 하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보니 비행을 통해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을 통틀어 공중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제목 중 '공중전'은 연합군의 독일에 대한 공습을 뜻하고 '문학'은 전후 독일 작가들의 그 공습에 대한 반응을 의미한다.
연합군은 2차대전 말기에 독일 민간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 폭격을 결정하고 실행한다. 주요 군사시설, 생산시설 주요 교통로를 정밀하게 폭격할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고 민간구역 공습으로 인하여 민간인들이 고통을 받는데, 전후 작가들의 이에 대한 시선에 의문을 제기하고 구체적 작품을 통하여 비판하고 있다.
핵심은 전후 작가들은 인간의 고통을 제대로 표현하고 충분히 인간적이었나?에 있어 보인다. 그들의 글을 통해 인간의 고통에 대한 무신경함을 비판하고 있다.
두 번째 글은 '알프레트 안더쉬'에 대한 비평이다. 짧은 글이며 안더쉬의 기회주의적인 면을 강하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비판하다.
제발트의 책을 구입해 놓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서야 <공중전과 문학>이라는 책을 통해 제발트 읽기를 시작한다. 그의 다른 책을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처음 구입했을 때 본문 속 사진을 훑어 보았다. 그 속의 사진만으로도 <공중전과 문학>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공중전과 문학>을 통해 나와 제발트 사이의 벽이 허물어졌다. 좀 더 그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p.s.
태인님이 알려주셔서 ^^;;
이제 자세히 보니 책표지에 제목이 있습니다.
Luftkrieg und Literatur
"Luftkrieg"는 수나 형태변화 때문인지 이 어휘는 국내 온라인 독한 사전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독일어는 몰라서 영어 위키백과에 나오는 소개를 보면
On the Natural History of Destruction is a 1999 book by the German writer W. G. Sebald. Its original German title is Luftkrieg und Literatur, which means "Air war and literature".
이렇게 나와 있는데 air war이면
공중전으로 표현하기에는 조금 협소해 보이기는 한데
글 내용으로 보아도 항공전이 더 정확해 보입니다만 공중전이 더 문학적이고 이쁘네요.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On_the_Natural_History_of_Destruction
참고 독일어 위키백과(Luftkrieg 뜻): https://de.wiktionary.org/wiki/Luftkrieg
문학이 할 수 있는 것, 혹은 해야만 하는 것 맥거핀 ㅣ 2014-11-20 ㅣ 공감(12) ㅣ 댓글 (4)
총 200킬로미터 길이로 늘어선 거주지는 남김없이 파괴되었다. 도처에 끔찍하게 뒤틀린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여전히 푸르스름한 인광이 깜빡이는 시체도 있었고 거무스름하게 타버려 원래 크기의 3분의 1로 쪼그라든 시체들도 있었다. 일부는 이미 식어 굳은 자기 몸의 지방 웅덩이에 엉겨붙어 있었다. 폭격이 끝난 며칠 뒤 바로 봉쇄 구역으로 선포된 죽음의 지대 안쪽에서는, 페허지의 열기가 어느 정도 가신 8월에 접어들어 징역대와 수감자들이 식은 잔해들을 치우는 소개작업을 시작했을 때, 일산화탄소에 중독되어 여전히 책상이나 벽에 기대앉아 있는 사람들이 발견되었고, 다른 쪽에서는 난방용 보일러 폭발로 터져나온 끓는 물에 삶아져 덩이진 살과 뼈, 혹은 산처럼 쌓인 시체들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또다른 이들은 섭씨 1,000도 이상 올라간 열기 속에서 숯이 되고 재가 되어버려서, 생존자들이 가족의 유해를 빨래바구니 하나에 다 담아갈 수 있을 정도였다. (p.44~46)
1943년 7월 말, 영국 공군은 미국 제8공군의 지원을 받아 함부르크와 그 일대를 연속적으로 폭격했다. '고모라 작전'이라 불린 이 프로젝트는 특정의 시설물 타격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도시를 가능한한 완전히 파괴하고 잿더미로 만드는 것이었다. 폭격은 며칠 간 계속되었고, 이 폭격으로 하루 밤 사이에, 4000파운드 이상의 폭탄이 투하되었고, 하루에만 4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외에도 이차대전 막바지에 영국 공군은 독자적인 40만 번의 출격으로 100만 톤의 폭탄을 적국 영토에 투하했으며, 한 차례 또는 수 차례 이상 공격받았던 총 131개의 독일 도시 가운데 몇몇 도시가 거의 철두철미하게 붕괴되었고, 독일 민간인 60만 명 이상이 이 공중전으로 희생되었다. 100만 톤의 폭탄, 40만 번의 출격, 60만 명의 희생자. 때로 숫자는 무서울 정도로 잔혹하다. 그러나 그 무서울 정도로 잔혹한 숫자는 여전히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숫자들은 그 이후에 대해서 아무 것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거대한 폭격 이후 모든 것이 파괴되어 버린 공간에서 이제 인간들은 무엇을 해야할지 이 숫자는 말해주지 않는다. 대신에 이제 다른 것들이 나선다. 잔해를 치우고, 죽은 자들을 묻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보호하고 새로운 도시를 재건해야 할, 수많은 사람들, 예를 들어 의사나 간호사, 경찰관과 소방관과 군인, 정치가와 행정가, 심리학자와 상담가, 건축가와 기술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언뜻 그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할 일이 있다. 철학자들은 이 파괴의 의미를 물을 것이고, 사회학자들은 이 재난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생각할 것이며, 교육학자들은 이 재난 속에서 다음의 세대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를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혹은 문학은? 이 거대한 공습, 폭격, 재난 혹은 범죄나 인간성 말살 속에서 문학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제발트의 <공중전과 문학>은 이것을 묻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문학이 할 수 있는 것, 혹은 문학이 해야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가장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두 단어 공중전(luftkrieg)과 문학(literatur) 사이에 놓인 이 'und'의 간극을 무엇으로 연결할 것인가? 물론 이 질문은 하나의 즉각적인 다른 문제 혹은 비판을 불러올 수 있다. 그것은 혹시 이 질문이 그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연합군의 독일 공습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닌가, 전쟁의 가해자인 독일 입장에서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라는 물음이다. 책을 읽으면 이 질문은 오해에 가까운 것처럼 느껴지는데, 제발트의 문제 제기는 전쟁의 전략적인 부분이나, 어떤 역사적인 맥락 혹은 특정 국가를 비난하려는 의도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즉 제발트는 영국을 포함한 연합국이 전쟁을 빨리 끝내려는 전략적인 목적으로, 혹은 독일이 자행한 폭격에 대한 보복전의 성격으로 이 폭격을 실행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는 관점으로 이 사태를 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 폭격은 어떤 특정의 목표로 실행된 것이 아니라, 단지 폭탄이 그렇게 대량으로 생산될 때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만들어진 폭탄은 어딘가에 쏟아부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며, 이것은 독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제발트는 글의 말미에서 이를 더욱 강조하여 말하고 있기도 한데, 독일도 게르니카, 바르샤바, 베오그라드, 로테르담, 스탈린그라드 등에서 수많은 거대한 폭격을 실행했으며, 나치스의 공군 원수 괴링도 기술적 수단만 가능했으면, 런던을 초토화시켰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제발트가 이러한 오해를 불러올 가능성을 무릅쓰고 50년도 더 지난 1990년대 말에 이 질문들을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전쟁이 불러오는 비인간성, 참화, 그 무상함에 다시 경고를 하는 목적 외에도 이것에는 크게 두 가지가 관련되어 있다. 하나는 전후 독일 사회에서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집단적 망각이다. 제발트가 여러 기록과 사례를 들어 논증하고 있는 바대로, 전후 독일 사회는 이 폭격이 불러온 거대한 파괴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꺼렸으며,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으려 했다. 그것은 다시 두 가지 문제와 연괸되는데, 하나는 앞서도 이야기한 바대로 가해자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피해를 이야기하는 것이 불러올 불필요한 문제를 회피하고자 함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보다 큰 문제로 이를 일종의 부끄러운 과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치스와 관련된 부분은 수많은 독일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잊고 싶은, 터부시되는 기억이며, 따라서 그와 관련된 이들 폭격의 참상마저도 피하고 싶고, 잊고 싶은 기억의 일부분이 되었다. 따라서 전후 독일인들은 이 죽음을 애도하고 기억하기보다는 그 시체를 '빨리 몰래 묻어버리고' 그 위에 새로운 국가와 도시를 건설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다른 하나의 문제는 보다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부분으로 그 상황에서 독일문학이 보인 전반적인 태도이다. 즉 일반 국민이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빨리 잊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할지라도 '문학'마저도 그래야 하는가, 라는 물음이다. 제발트는 전후에서 현재에 이르는 독일문학이 이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으로 답했으며, 일부 이 폭격이나 공습을 다루었다고 하더라도 부적절한 방식으로 다루었다고 말한다. 즉 이 연합국에 의해 이루어진 폭격을 다룬 문학의 수 자체가 많지 않으며, 일부 이 소재를 다룬 헤르만 카자크, 한스 에리히 노사크, 아르노 슈미트, 페터 드 멘델스존 등의 작품이 부적절하게 이것을 묘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있어서 부적절한 방식과 적절한 방식이란 무엇인가. 제발트가 말하는 부적절한 방식이란 허구화, 문학적인 수사, 통속적인 묘사, 비유의 남용 등이다. 그리고 이의 반대편에 사실에 입각한, 냉정하고 철저한 묘사와 같은 적절한 방식이 있다(예를 들어 가장 위에 인용한 묘사 같은 것이 그에 해당할 것이다). 적어도 이러한 것을 다룰 때에는 그런 방식이 필요하다고 제발트는 본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면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와 역사가가 다른 것은 무엇인가. 그런 것은 역사가들의 영역이 아닌가. 제발트는 (적어도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작가와 역사가의 구별이 무의미하다고 보는 것 같다. 그가 글에서 말하는 전체적인 맥락이나 어조도 그렇고, 그가 글에 인용한 벤야민의 문구를 미뤄보아도 그렇다. 발터 벤야민이 말하는 역사의 천사. "파편에 파편을 쉼없이 쌓아올리며 그 파편을 자기 발 앞에 내던지는 단 하나의 파국을 (본다). 천사는 머물러 있고 싶어하고, 죽은 자들을 깨우고 산산이 부서진 것을 한데 모아 맞추고 싶어한다. 그러나 천국으로부터 폭풍이 닥치더니 그의 날개를 꼼짝달싹 못하게 할 정도로 강하게 불어대서, 천사는 날개를 접을 수도 없다. 이 폭풍은 그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그를 떠밀고 있으며, 그러는 사이 그의 앞에는 잔해더미가 하늘까지 치솟는다.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러한 폭풍이다.(p.95)"
아무리 역사가나 작가가 애써 뒤돌아서 이들을 묘사하려 온 힘을 다한다 해도 그들(과 우리)은 끊임없이 미래로 떠밀려 나간다. 진보라는 폭풍에 의해서 말이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해도 누군가는 뒤돌아 서서 무엇인가를 사실 그대로 기록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모두가 앞을 보며 나아가는 사이에 잔해는 점점 하늘까지 치솟으며, 그 잔해를 그대로 둔다면 언젠가는 그 앞 길도 잔해로 뒤덮이는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며, 예를 들어 역사가들이 그런 것을 한다고 해도 수많은 역사가들이 숫자만을 기록하느라 또 많은 것을 놓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그 짐을 나눠져야 하며, 그것이 가장 처음의 질문, 즉 공중전 속에서 문학이 할 수 있는 것, 혹은 문학이 해야만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제발트의 답이다. 그리고 이는 한편으로 제발트의 문학에 대한, 혹은 작가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아우슈비츠 이후에, 공중전의 이후에, 아니 그보다 더한 것의 이후에도 문학과 작가는 여전히 필요하다는 자부심 말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작가는 망각에 대항하는 자이며 그의 글은 망각에 대항하는 무기이다.
덧1.
이 책 <공중전과 문학>에는 이 글 '공중전과 문학' 외에도 독일문학의 원로로 추앙받는 작가 알프레트 안더쉬를 비판한 '알프레트 안더쉬'도 실려 있다. 여기에도 문학에 대한 제발트의 어떤 태도가 드러나는데, 그것은 문학은 어떤 작가의 생애를 교정하거나 미화하는 도구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위에서 말한 어떤 문학에 대한 자부심과도 연관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덧2.
전체적으로 번역된 문장들이 어딘가모르게 삐걱거린다. 상대적으로 뒤에 '옮긴이의 말'은 드물게 볼 정도로 훌륭하게 잘 쓰여져 있는데, 문장이 이런 걸로 봐서는 글을 못 쓰는 분이라기보다는 번역 능력이 떨어지는 분이 아닌가 싶다.
덧3.
맥락은 많이 다르지만, 2014년의 한국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자꾸 어떤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예를 들어 '집단적 망각' 혹은 더 나아가 '망각의 강요'가 불러오는 어떤 심상 말이다. 어쩌면 예전 제주나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들만 보아도 이런 기억과 애도가 없는 '집단적 망각'과 망각의 강요, 더 나아가 왜곡과 희화화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닌, 계속 반복되어 온 것이 아닐는지도 모르겠다. 망각에 대항하는 우리의 작가들은 누구이며, 그들의 글은 어떠해야 하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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