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1

Kaoru Ohmae 【 ぼく日本人なの?】 Book Cover Challenge4

(8) Facebook
Kaoru Ohmae

【 ぼく日本人なの?】Book Cover Challenge4//
「日本人だったら遊ばないよ。日本人か韓国人かはっきりして。」 幼稚園の時、息子が韓国の子に言われた言葉である。「日本の悪い奴」「日本人は泥棒だ」と言う。どこの国も子供というのは素直で手厳しい。//
 韓国の親戚は「韓国人としては当然の感情だから抗議してはならない。」と言う。しかしハルモニは黙っていなかった。あまり事を荒立てたくない私としては静かにしておいて欲しいと懇願したが無理だった(笑) ハルモニ強し! ハルモニの愛は麗し!//
日韓の子は多かれ少なかれ社会生活をして行く中で経験していく出来事。なぜか日本の市民団体が「韓国で歴史問題で苛められる日本の子はいない」と主張しているのを何度か見かけた。苛めというのは複合的なことから起こるので何とも言えないが「そういう子はいない」と言うのは、子ども達の声に蓋をしてしまっているのではないか。//
 私達家族が中国に赴任したのは運悪くTHAAD問題で韓国への感情が悪化した時であった。会社の業績が悪く突然帰国命令が出された。「No Korea」で傷心の息子は韓国に帰って来たその日、空港から降りて乗った地下鉄で顔を覆って泣いた。地下鉄の全ての窓に「No Japan 行きません。買いません。」という貼り紙が貼ってあったからだ。//
おびたたしい数の貼り紙に息子は「中国だって韓国に対して公共の場所でここまでしなかった。」とベソをかきながら言う。確かに国が違うから、やり方は違ってた。それもまた学びの一つ(笑) 彼は「No Korea」と「No Japan」をほぼ同時期に経験した。彼の二つのアイデンティティはプシューと縮んでしまった。//
 韓国の学校に行く日、息子は徹底して日本製の物を排除し、南京で中国の友達にもらった中国製品に入れ替えた。ただリコーダーだけは時間がなかったので買い換えが出来なかった。made in Japan と書かれたリコーダーを見て「どうしよう」と途方にくれている。//
 私は自分用のリコーダーを息子に見せた。そこには made in Indonesiaと書かれている。息子は顔をパッと輝かせた。これを持って行くと言う。インドネシアは上海で一番仲が良かった友達の国だ。彼は遠く離れた、そして恐らくもう会うことのない中国とインドネシアの友達に守られるようにして登校したのである。彼は6歳の時に地球人になると宣言した。「No Erth」はまだ経験したことがない。//
 さて、この本のことである。//
この本を読んだのは40年近く前のこと。 市の読書感想文で賞をもらった本でもある。何となく未来の私の子供がこの本を読めばいいと思って捨てずに持っていた。息子はこの本を読まないだろうか。//
 かつて中国残留孤児だった家族が日本に渡り生活する様子が書かれている。時代は変わった。当時の中国と今の中国は違う。しかし、民族が抱える根本的な問題は変わっていない。10歳の息子は「民族ってそんなもんだよ」と涼しい顔をして言う。もし彼がこの本の感想文を書いたら、どう表現するのだろう。その声に蓋をせずに向き合ってみたい。//
 この本も数奇な運命を辿っている。船で日本から韓国に送られ、また船で中国に送られ(厳しい本の検閲もすり抜け)、またまた船で韓国に戻ってきた。次はどこに行くのだろうか。本は海の湿気で随分とカビ臭くなった。40年近く本の持ち主に寄り添いながら過酷な旅を続けている。//
----------
この企画はルールがありますが、私自身の考えで次の方は指名しません(笑) ///

【 Book Cover Challenge】
「読書文化に貢献するためのチャレンジで、参加方法は好きな本を1日1冊7日間投稿する」というものです。
①本についての説明はナシで、表紙画像だけをアップする。
②その都度1人のFB友達を招待し、このチャレンジへの参加をお願いする。
See translation
You, 이권희 and 18 others
2 comments
Like
Comment
Share
Comments
  • 息子さん、辛い思いをされましたね。
    ウチの長男も年長になるときに、全く韓国語が出来ない状態で韓国に来て、散々やられました。
    やっぱりハルモニは味方になってくれましたね。いじめた子を叱ってくれたり。
    それでも大変で6年生でフィリピンに1年間出しました。
    帰国後は開き直ってます。
    小さい子には酷なことですが、宿命というか、経験したことが血肉になって強くなればいいと思っています。
    未だに言われますよ。
    「ママはボクがどんなに大変だったか分かってないよ」って涙
    4
    • Like
    • Reply
    • See translation
    • 8 h
  • 親としては切ないですね。大昔の話ですが、自分自身は米国では必ずインディアン役で火あぶりや穴埋めにされ、日本に帰ると日本語が話せない(=話せた)、集団行動が取れないと言われました(本人は気にせず)。
    当時の日米の物質的な差が、子どもの自分には道義的な差の結果(アメリカは正しいから豊かなんだ)と思えてアメリカに帰りたいと泣いたことはありましたが、いじめられたと感じて泣いたことはなかったように思います。
    お子様の健やかで逞しい成長を祈ります。
    1
    • Like
    • Reply
    • See translation
    • 7 h
    • Edited




 [나는 일본인이야?] Book Cover Challenge4 // "일본인이라면 놀지 않아. 일본인인가 한국인인가 분명"유치원 때 아들이 한국의 아이 하신 말씀이다. "일본이 나쁜 놈」 「일본인은 도둑"이라고 말한다. 어느 나라도 아이라고하는 것은 솔직하고 따끔한. // 한국의 친척은 "한국인으로서 당연한 감정이기 때문에 항의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너무 일을 荒立て 싶지 않은 나로서는 가만히 두어달라고 호소했지만 무리였다 (웃음) 할머니 강하다! 할머니의 사랑 려! // 한일의 아이는 어느 정도 사회 생활을 해 나가는 가운데 에서 경험 해 나가는 일. 왜 일본 시민 단체가 "한국에서 역사 문제 괴롭힐 수있는 일본의 아이는 없다"고 주장하고있는 것을 여러 번 보인. 구박하는 것은 복합적인 일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왠지 말할 수 없지만 "그런 아이는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이들의 목소리에 뚜껑을 버리고있는 것은 아닐까. // 우리 가족이 중국에 부임 한 것은 불행하게도 THAAD 문제에서 한국에 대한 감정이 악화 된 때였 다. 회사의 실적이 악화 갑자기 귀국 명령이 내려졌다. "No Korea"로 상심의 아들은 한국에 돌아온 그날 공항에서 내려 타고 지하철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지하철의 모든 창에 "No Japan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라는 장판이 붙어 있었다 때문이다. // 띤 한 자의 수의 장판에 아들은 "중국도 한국에 대해 공공 장소에서 여기까지하지 않았다."고 울상을 흘리면서 말한다. 물론 국가가 다르기 때문에 방법은 달랐어. 그것도 배우 중 하나 (웃음) 그는 "No Korea"와 "No Japan"을 거의 같은시기에 경험했다. 그의 두 정체성은 뿌슈 찌그러져 버렸다. // 한국 학교에가는 날, 아들은 철저하게 일제의 물건을 제거하고 난징에서 중국 친구에게받은 중국 제품으로 교체했다. 단지 리코더 만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교체가 없었다. made in Japan이라고 쓰여진 리코더를보고 "어떡해"라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있다. // 내 용 리코더를 아들에게 보였다. 거기는 made in Indonesia라고 쓰여져있다. 아들은 얼굴을 확 빛냈다. 이것을 가지고 간다고 말한다. 인도네시아는 상하이에서 가장 사이가 좋았던 친구의 나라 다. 그는 멀리, 그리고 아마도 이제 만날 수없는 중국과 인도네시아 친구 지켜 지도록하고 등교 한 것이다. 그는 6 살 때 지구인이된다고 선언했다. "No Erth"아직 경험 한 적이 없다. // 그런데이 책이다. //이 책을 읽은 것은 40 년전의 것. 도시의 독서 감상문에서 상을받은 책이기도하다. 왠지 미래의 내 아이가이 책을 읽으면 좋다고 생각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었다. 아들은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일까. // 일단 중국 잔류 고아였던 가족이 일본으로 건너 생활하는 모습이 적혀있다. 시대는 변했다. 당시의 중국과 지금의 중국은 다르다. 그러나 민족이 안고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변함이 없다. 10 살짜리 아들은 "민족은 그런 것이 야"라고 차가운 얼굴을하고 말한다. 만약 그가이 책의 감상문을 쓰면 무슨 표현하는 것이다. 그 목소리에 뚜껑없이 마주보고 싶다. //이 책도 기구한 운명을 걷고있다. 배를 타고 일본에서 한국으로 보내져 또한 배를 타고 중국으로 보내 (어려운 책의 검열도 빠져), 또 다시 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음은 어디로가는 것일까. 본 바다의 습기에 상당히 곰팡이 냄새되었다. 40 년 가까이 책의 주인에 동행하면서 힘든 여행을 계속하고있다. // ----------이 기획은 규칙이 있지만, 내 자신의 생각 다음으로 지명하지 않습니다 (웃음) //

[Book Cover Challenge] "독서 문화에 기여하기위한 도전에서 참여 방법은 좋아하는 책을 1 일 1 권 7 일간 게시한다 '는 것입니다. ① 본 설명은없이 표지 이미지 만 올라간다. ② 그 때마다 1 명의 FB 친구를 초대하고이 도전에 참여를 부탁한다.
See translation 20You, 이권희 and 18 others 2 comments Like Comment Share

Comments

Hiromi Kobayashi
아들, 힘들게 되었어요. 우리집 장남도 고위 될 때 전혀 한국어를 할 수없는 상태에서 한국에 와서 몹시당했습니다. 역시 할머니는 아군이되어 주었어요. 왕따 아이를 혼내 주기도. 그래도 힘들지 6 학년에서 필리핀에 1 년 냈습니다. 귀국 후에는 정색하고 있습니다. 작은 아이에게는 가혹한 일이지만, 숙명이라고 할까, 경험 한 적이 혈육이 강해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알려져 있어요. "엄마는 내가 아무리 힘들었던 가야할지 않았어"라고 눈물 4 Like · Reply · See translation · 8 h

Warwick Rue 부모로서 안타깝 네요. 먼 옛날의 이야기입니다 만, 자신은 미국에서 반드시 인디언 역에서 화형이나 보충에되어 일본에 가서 일본어를 할 수없는 (= 이야기했다) 집단 행동을 취할 수 없다고했습니다 (본인은 신경にせず). 당시 미일 물자 차이가 자녀의 자신은 도의적 인 차이의 결과 (미국 올바른 때문 풍부한거야) 생각하고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울어 본 적이 있었지만, 왕따 고 느낌 울기는없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어린이의 건강하고 씩씩한 성장을 기원합니다


https://ja.wikipedia.org/wiki/%E6%89%8B%E5%B3%B6%E6%82%A0%E4%BB%8B

『ぼく日本人なの?』 (1984年、ほるぷ出版。絶版)青少年読書感想文課題図書。中国残留孤児が連れ帰った子ども崇山 (ツォンシャン)が、日本の子どもたちに「くさい、きたない、中国へ帰れ!」と、いじめられていた。しかし、心根のやさしい崇山は、給食につばを吐かれるなどのいじめをうけても、「人間が好き」と、人を信じつづける。東京都江戸川区の小学校にほんとうにあった話を素材にしている。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