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5

보수하며 진보하기 - 교수신문

보수하며 진보하기 - 교수신문
보수하며 진보하기
  •  설한 편집기획위원/경남대·정치철학
  •  승인 2017.04.03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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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설한 편집기획위원/경남대·정치철학
▲ 설한 편집기획위원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를 거쳐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이른바 보수와 진보가 곳곳에서 충돌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드문제, 재벌개혁, 일자리, 북핵, 주변국 외교 등 도처가 정치적 지뢰밭 상황이다. 한편에서는 대선을 보수와 진보의 대결로 끌고 가려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 구분을 뛰어넘자고 한다. 어떤 형태로든 기존의 관행과 통념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하는 변화의 거센 물결 속에 어차피 어느 정도의 이념적 갈등은 불가피하다.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 갈등과 대결 구도가 지배하고 있다. 모든 사회적 이슈가 이념갈등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버리고 다른 모든 판단 기준과 상식은 무용지물이 된다. 세월호 참사나 국정농단 사태와 같이 어처구니없는 일들조차 보수와 진보 프레임에 갇혀 대결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진보와 보수, 개혁과 수구는 서로 뒤엉켜 개념 자체도 불명확하거니와 실체도 모호한 게 사실이다. 이처럼 진보, 보수 모두 정체성 위기와 혼란을 겪으면서도 사회 전체가 이념과 진영논리로 분열돼 싸우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보수와 진보는 무엇인가.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시대와 국가, 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화돼왔다. 그럼에도 보편적 용어법에 따르면, 대체로 보수는 자유와 자율을 중시하고, 진보는 평등을 우선한다. 보수는 개인의 가치를, 진보는 공동체적 관점을 앞세운다. 보수는 경쟁, 경제적 자유, 성장, 효율성, 정치적 질서를 강조하는 반면, 진보는 연대, 경제적 평등, 분배, 민주성, 정치적 자유를 강조한다. 그래서 보수는 자유 시장경제와 작은 정부를 지지하나, 진보는 상대적으로 큰 정부를 선호한다. 또한 보수는 관행과 관습, 전통을 중시하며 역사의 연속성을 강조해 기존질서의 수호에 적극적이지만, 진보는 변화의 맥락에서 미래를 조망하며 얼마간의 역사단절을 감수하더라도 이상사회를 꿈꾼다.
보수와 진보는 일견 대척 관계에 있고 상호 갈등을 빚는 게 사실이지만 상대적인 개념으로 서로 관계적인 의미를 가진다. 즉, 보수와 진보의 가치들은 서로를 통해 정의되거나 설명되는 개념으로 이원적 대립구조에서 개별적으로 존재할 때보다는 나란히 있을 때 서로의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러니 보수와 진보 양자는 서로를 필요로 하며, 어느 하나 가볍게 볼 수 없지만 그 어느 쪽도 절대가치를 주장할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오류는 보수와 진보를 서로 적대적인 관계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나 양극단을 제외하면 진보적 가치를 무조건 배척하는 보수는 없으며, 보수적 가치를 무시하고 배제하는 진보 또한 없다. 진보와 보수는 선악의 관계가 아니라 균형을 추구해야 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는 가치와 정책의 차이를 넘어서 배타적이고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게다가 보수는 반공주의와 발전주의에 집착해 이념적 빈곤에 허덕이고 있으며, 이념 과잉의 진보는 민주화 이후 방향감각을 상실해 왔다. 그리해 보수와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이 공통적으로 보인 형태는 바로 守舊였다. 그러니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우리의 보수와 진보는 모두 반동이며 개혁과 혁신의 대상일 뿐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공존하며 경쟁해 온 보수와 진보는 역동적인 상생관계다. 보수와 진보의 관계는 완전히 대립적이지도 않고 완전히 상보적이지도 않다. 두 이념의 관계는 어느 지점까지만 보완적이며 서로를 강화한다. 그러나 한 이념이 지나치게 강해져 그 지점을 넘어서면 두 이념은 서로 적대적인 관계로 전환하며 사회는 병들고 만다.
이 둘 사이의 관계가 적대적인 상태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 보수와 진보가 서로를 강화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로 지도자의 역할이다. 지도자의 리더십은 한 국가의 흥망을 좌우한다. 한국의 정치과정에서 대통령의 위치는 실로 막강하다. 사회적 합의형성을 위해서는 대통령은 자신의 이념적 정향을 넘어 어느 쪽으로도 크게 편향되지 않는 균형된 마음의 자세로 보수와 진보를 함께 포용해야 한다. 한국은 여전히 保守할 것을 만들기 위해 進步해야 하는 나라다. 보수와 진보의 올바른 공존 그리고 그 발전적 止揚을 위해 중용의 리더십과 정치철학을 지닌 지도자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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