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27

1711 박유하 교수가 직접 밝힌 2심 유죄 판결문의 문제점들

반박문 써 봤습니다. (아주 깁니다. 시간 되실 때 읽어 주세요. 제 페친분들은 이미 아시는 얘기도 많겠지만요.)


1. 자의적인 판결 2017년10월27일, 서울고등법원은 나의 책 '제국의 위안부-식민지 지배와 기억의 투쟁'을 위안부에 대한 명예훼손을 한 책으로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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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 형사 2심 판결문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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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의적인 판결
2017년10월27일, 서울고등법원은 나의 책 '제국의 위안부-식민지 지배와 기억의 투쟁'을 위안부에 대한 명예훼손을 한 책으로 판단하고 벌금 1000만원의 유죄판결을 내렸다. 2017년 1월 1심에서의 무죄 판결이후 나를 유죄로 판결할 만한 새로운 '증거'가 나온 것이 아님에도 무죄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말하자면, 2심은 같은 책에 대한 판단을 증거가 아니라, 책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만으로 뒤집었다. 당연히 승복할 수 없었고 나와 변호사는 곧바로(10월30일) 상고했다. 법원에 제출할 상고이유서는 더 자세히, 구체적으로 쓰게 되겠지만, 아래는 재판부뿐 아니라 보다 많은 이들이 이 사태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우선 간단히 써보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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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 판결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성노예가 된 조선인위안부'와는 다른 위안부상을 보여 주고 있다. 또 저자는 '조선인위안부의 고통'에 관해서도 이 책에 쓰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인식을 책에서의 기술 전부에 쓰고 있지는 않다. 그 때문에 '자발적 매춘부였던 일본인위안부와는 다른, 성노예 조선인위안부'라는, 우리사회와 국제사회가 공유하는 인식과는 다른 인식을 독자가 갖도록 만들 가능성이 있다. 즉 '조선인 위안부=자발적 매춘부'라는 인식이다. 또한 유엔보고서등 국제사회와 일본의 고노담화등이 제시하는 인식에 따르면 위안부가 '자발적 매춘부'라는 인식은 명백한 허위이다. 저자의 인식을 허위로 단정하는 이유는 국제사회의 인식이야말로 가장 올바른 인식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국제사회의 인식을 저자는 잘 알고 있었을 텐데도 그와 다른 인식을 말했다. 말하자면 '허위'를 말했을 뿐 아니라, 그 사실을 말하면 대상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될 것인지를 인식했는지 여부도 명예훼손 여부 판정에서는 중요한데, 저자는 오래 위안부문제를 연구했으므로 그 파생효과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허위사실 적시와 집필목적에서 '고의(범의)'가 인정되므로 유죄다.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2심 판결은 '독자의 독해에 저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결이었다.
나에게 내려진 '벌금 1,000만원'을 검찰이 구형한 3년 징역형보다 가벼워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혹은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1,000만원이라는 액수는 징역이라면 5년에 해당하는, 명예훼손 관련 벌금형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금액이다. 재판부는 관대한 처분을 내린 것처럼 강조했지만 징역형을 선택하지 않았을 뿐 실제로는 3년 이상의 징역 형에 해당하는 처벌이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마치 '학문의 자유'를 옹호하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명예훼손법률상 유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해당내용이 '사실'이어야 할 것이 첫번째 조건이 된다. 나에게 무죄를 내린 1심은 검찰이 지적한 35곳 중 30곳을 '의견표명'으로 규정하고 처음부터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나머지 5곳은 '사실'에 관한 기술로 규정하면서도 위안부의 사회적평가를 저하시키는 표현이 아니라거나, 개개인을 특정한 것이 아니므로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했다. 또한 저자에게 명예훼손을 하려는 목적(고의)이 있었다고 볼 수 없고 "위안부문제는 국민들이 알아야 할 공공성/사회성을 갖는 공적관심사항이므로 활발한 공개토론과 여론형성을 위해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 해야 한다면서 무죄를 내렸던 것이다.
이렇게 판단하기까지 1심재판부는 무려 1년에 걸쳐 10회 넘게 재판을 진행했고, 본재판 이후에는 매번 아침부터 저녁까지 긴 시간을 들여 재판을 진행했다. 검사는 나를 비판한 학자들의 논리를 들고 와 나의 '범죄'를 주장했고, 결국 법정에서의 공방은 학술세미나와 다름없는 내용이 되었다. 그에 비해 2심은 고작 4번 진행되었고, 매번 한두시간만에 끝났다. 그렇다면 1심에서 제출된 방대한 자료를 세심하게 봐야만 이 사건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었을 터인데 2심 판결은 결코 그랬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2. 왜곡과 소송의 본질
이 판결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검사가 제출한 왜곡된 책 요약(악의적인 독해)을 그대로 차용해 사용했다는 점이다. 아래에 인용해 두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의 책의 취지를 충분히 살펴 요약하면서도, 결국은 내가 가장 신경을 써서 독자의 오해가 없도록 쓴 부분에 관해 재판부는 검사가 멋대로 왜곡한 요약을 가져와 내가 한 말처럼 왜곡했다. 하지만 나는 결코 '위안부는 강제 연행되지 않았다'고 쓰지 않았다. 일본군의 모집과 관여/관리도 부정하기는 커녕 오히려 어떤 방식으로 관여했는지 자세히 썼다.
"조선인 위안부가 해야 할 일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면서 본인 혹은 부모의 선택에 의해 자발적으로 갔다" 고 요약된 부분도 엉터리 요약이고, "본인의 의사에 반해 위안부를 하게 되는 경우는 없었다"는 것도 내 말이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이들을 비판하기 위해 인용한 위안부 비판자들의 말이다. "1996년 시점에서 위안부란 근본적으로 매춘의 틀 안에 있던 여성들" (42)이라는 표현 역시 재판부가 인용한 유엔보고서의 내용이다. 이런 논리라면 박유하가 `위안부는 자발적매춘부`라고 했다고 보도해 온 모든 언론과 개인도 명예훼손으로 고소되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또한 나는 "법률상 배상책임이나 공식사죄를 받을 수도 없다" (2)고 한 적이 없다. 나는 그런 방식만을 지고지선의 해결방법으로 생각해 온 지원단체의 운동방식과 논리에 의문을 제기했을 뿐이다. "공식사죄를 받을 수 없다"가 아니라 20년 이상 법적책임만을 주장해온 지원단체 생각에도 문제가 있어 보이니 한일협의체를 만들어 다시 논의하자는 것이 내가 책에 쓴 내용이다. 한국판간행 이후 나온 일본판에서는 `국회결의`가 필요하다고 썼다.
내가 "피고인이 주장하는 해결방식을 제시" (39)했다는 말은 감사의 주장인데, 앞에서 쓴 것처럼 나는 한국어판에서는 구체적인 해결방식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원고측도, 검사도 재판과정에서 내내 이런 말로 비난했는데 실은 이 주장에 '제국의 위안부' 소송의 본질이 있다. 원고측(지원단체)이 소송을 시작한 건 사실, `위안부의 명예`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운동의 정당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나의 책은 '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 이라는 부제목에서 나타낸 것처럼 90년대 이후 위안부문제지원운동의 문제를 비판한 책이기도 한데, 그것이 고발의 원인이 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주장해 온 `법적책임`에 대해 아는 분들은 최소한 내가 만난 위안부 할머니들 중에는 안 계셨다.
3. '사실적시'라는 전제에 대해
이 판결은 나의 책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기도 하다.
"피고인이 이 사건 도서에서 모든 조선인 위안부들이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된 것이 아니고 직접적인 폭행·협박 또는 기망·유혹에 의해 위안부가 된 경우가 있으며, 일본국이나 일본군이 공식적으로 강제연행을 한 증거가 없으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고, 민간인 포주나 업자에 의하여 강제력이 행사되었으며, 성적학대의 대가로 지급된 것은 소액인데다 그나마도 착취당했고, 일부 조선인 위안부들이 일본군과 협력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등 내용을 함께 서술하고 있다."(32)
"피고인은 이 사건 도서에서 '조선인 위안부들을 모집한 주체는 일본군이 아니라 업자들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불법적인 모집방법이 사용되었다. 일부 위안부들은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연행된 경우도 있었다. 조선인위안부들은 가난, 가부장제, 국가주의에 의하여 위안부가 되었다. 위안소 내에서 민간인 포주나 업자에 의해 강제력이 행사되었고, 성적학대의 대가로 지급된 것은 소액인데다 그나마 착취당했다. 조선인 위안부들은 식민지인으로서 애국이 강제되었고, 일부 위안부들은 일본군과 동지적관계에 있었다'는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37)
"피고인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는 사회구조적 요인이 존재하고 조선인일본군 위안부들의 모습이나 처지가 매우 다양하며, 이 사건 도서는 피고인이 기존 자료를 토대로 현재 우리사회 주류적인 시각과는 다른 입장에서 위안부문제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개진하는 내용이고 ,이 사건 도서 곳곳에서 여러 예외적인 경우와 다양한 위안부들의 모습이나 처지가 서술되어 있다."(41)
"예외적"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 쓴 사람의 견해가 드러나 있어 꼭 전부가 완전한 건 아니지만 나의 책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이해한 요약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유죄가 내려졌을까?
사실 나는 명예훼손 소송에서는 '의견'인지 '사실'인지가 중요하다고 듣고 학술적인 책에서의 모든 기술은 기본적으로 의견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론 학문이란 `진실`을 찾는 과정이지만, 아무리 내가 알게 된 사항을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해도, 내가 믿었던 `사실` 역시 언제고 새로운 탐구와 학설에 의해 부정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모든 학문은 `의견`일 수 밖에 없다.
실제로 헤이든 화이트의 '메타역사'(1973)이후, 객관적인 사실을 기술한 것처럼 보이는 역사서조차, 입수된 자료를 두고 학자가 문학적상상력으로 엮은 `문학`일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은 점차 상식이 되고 있는 중이다. 다수의 지지와 검증을 거친 가설들이 세월과 공간을 넘어 '진리', '사실'로 정착되어 오긴 했지만 그 모든 것은 문학적 플롯을 필요로 하고 그러한 플롯을 만드는 것은 보이지 않는 이데올로기라는 인식은 과거의 역사에 겸허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말하자면 모든 역사서/학술서는 '진실=사실'을 추구하는 것이되 하나의 사항을 최종적 '사실'로 단정할 수 있는 사람은 논리적으로는 없다. 어디까지나 그 시점에서의 '인식'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
더구나 나의 문맥이나 표현자체도 '의견'으로서 표현한 곳이 많다. '제국의 위안부'는 역사자체보다 증언을 포함해 역사를 둘러싼 담론을 분석한 학술적 비평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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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회적 평가 저하'라는 인식에 대해
재판부는 결과적으로 나의 책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회적평가를 저하" 시킨다고 말한다. 재판부가 말하는 '사회적평가 저하'란 위안부 할머니들이 '강제연행을 주장' 하고 있는데 그와 반대되는 듯한 말을 하는 것은 그런 주장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내 책을 읽은 이들 중에는 오히려 위안부 문제를 더 생각하게 보게 되었고, 이전에 못 느꼈던 슬픔을 느꼈다고 말해 준 사람이 적지 않다. 오로지 그들의 독해만이 옳다고 주장하지는 않겠지만, 이 판결은 그렇게 읽은 모든 이들을 무시한 판결이다. 대신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읽을 (수 있는) 이들의 존재와 그렇게 유인한 이들의 오독의 '가능성'을 편파적으로 우선시했다. 나에 대한 유죄판결은 그렇게 내려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제국의 위안부'는 역사서라기보다는 역사를 둘러싼 담론을 분석한 메타역사서다. 한국과 일본의 여러 층위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썼고, 하나의 '진실' 자체보다 눈앞에 있는 진실(대상/정황)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를 모색한 이유이기도 하다. 필요한 만큼 '사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그 이상으로, 그 '사실'을 둘러싸고 대립중인 이들이 서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를 지향하면서 쓴 책이다. 접점을 찾기 위해 양국 정부와 지원단체를 비판했지만, 위안부에 대해서는 부정도 비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시도한 건 오히려 그동안 지원단체가 묵과하거나 은폐했던 목소리를 살려내는 일이었다. 그동안 의식/ 무의식적으로 묻혀 왔던 그 모든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야 말로 과거와의 대면에서 성실한 방식-- 바람직한 '역사와 마주하는 방식'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판부는 나의 그런 시도를 인정하면서도, 나의 책에 반발한 지원단체(와 검찰)의 나의 책에 대한 왜곡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조차 제대로 읽고 있었다는 흔적을 남기면서도, 이 판결은 결국 재판부 자신을 포함한 모든 독자를 무시한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판결문에 일부 요약된 것처럼, 나는 '위안부의 자발성'을 강조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런 구조를 만든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비판했다. 설사 자발적으로 간 위안부가 있다 하더라도, 그 대부분은 가족을 위해 희생한 경우라고도 썼다. '(관리) 매춘'이라는 단어는 재판부가 인용한 유엔보고서와 여러 학자들이 사용하는, 가치평가와는 무관한 중립적인, 하나의 정황설명일 뿐이다. 문맥이나 의도와 상관없이 하나의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유죄가 되어야 한다면, 1996년에 보고서를 작성한 유엔보고관, 그리고 일본군위안소를 국가가 관리한 공창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고 있는 다른 모든 학자들도 기소되고 유죄가 내려져야 한다.
5. '허위'라는 인식에 대해
재판부가 나의 책을 허위라고 말하기 위해 인용한 자료는 90년대 중반, 즉 20년도 더 전에 나온 자료들이다. 그나마 고노담화는 일본정부가 직접 조사해 내놓은 견해지만, 다른 유엔보고서나 국제사법위윈회의 자료는 위안부문제가 문제로서 발생되기 시작한 초기에 지원단체들이 유엔등 국제사회에 제출한 자료등을 비전문가들이 검토해 나온 자료다.
물론 유엔의 쿠마라스와미보고서는 일본이나 한국, 그리고 북한에서 학자나 위안부의 증언을 듣고 종합한 보고서다. 그리고 그들의 의견을 공정하게 취합하려 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이 보고서는 지금은 부정되고 있는 (이 문제해결을 위해 오랜기간 노력해온 와다 하루키 교수조차 작년에 낸 책에서 요시다증언을 부정했다)요시다 증언등을 근거로 나온 보고서다. 그리고 동시대에 벌어졌던 유럽등 내전에서의 강간/학살과 똑같은 것으로 이해한 흔적이 있다.
하지만 학계는 이후 20년이상 연구를 진행했고 지금은 학계에서 '일본군에 의한 조선인위안부의 물리적 강제연행'을 말하는 사람은 내가 아는 한 없다. 강제동원을 주장했던 이들은 지금은 동원에서의 강제가 아니라 위안소에서 부자유했다는 식으로 내용을 바꿔서 여전히 똑같은 '강제성'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연구자나 지원단체관계자들이 그런 정황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변함없이 '강제연행'에 집착하고 주장하는 이유는 그들이 주장해 온 '법적책임'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 방식만이 정의로운 사죄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나의 책을 '허위'라면서 고발한 이유는, 위안부할머니를 모욕하거나 일본의 책임을 부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오랫동안 주장해 온 '법적책임'의 가능성에 내가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원단체의 사고에 의문을 제기한 나를 '일본을 면죄하는 것'이라며 목청높여 비난하고 급기야 고발/기소에 이른 원고측과 검찰의 주장을 2심 재판부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재판부의 판결문은 1심에서 제출한 방대한 나의 자료를 완벽하게 무시했음을 보여준다.
재판부는 나의 책을 "조선인 위안부들은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되어 경제적 댓가를 받고 성매매를 했다`(31)"," 일본국과 일본군은 조선인 위안부를 강제동원하거나 강제연행하지 않았다" 고 했다고 요약한다. 그러면서 "조선인 위안부는 대부분 일본국가나 일본군의 지시에 따라 자신들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동원되어 일본군 위안소에서 성적 학대를 당하며 성노예로서의 생활을 강요당했다`" (31)는 것이야말로 "사실" 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모집은 했지만 일본군이 납치나 속임수를 허용한 정황이 없고 "공적으로는" (즉 공식적으로 강제연행을 지시한 흔적이 없고 오히려 그에 반하는 정황이 증언/수기등에서 보인다) 오히려 그런 정황을 단속한 정황이 보인다고 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위안부할머니들이 말하는 '강제연행'을 부정한 것도 아니다. 당사자의 증언은 기본적으로 존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다만, 경찰과 같이 혹은 혼자 나타난 '군인'처럼 보였던 이들은 군속대우를 받고 군복을 지급받은 업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재판부는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한 곳을 나의 글로 착각하고, 그 부분에 내가 일일이 그에 반하는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부분을 '범죄'로 단정했다. 하지만 그런 부분들은 대부분, 말한 이들을 비판하는 문맥, 혹은 전체를 정리하는 부분에서 쓰인 내용들이다. 오히려 지적된 대부분 앞뒤에 반박/비판이 들어가 있는데도. 그런 문맥을 무시하고 단어에만 반응한 셈이다.
재판부는 유엔보고서에 나오는 "일본정부가 강간수용소의 설립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 "위안부를 조달하기 위해 일본군부는 물리적 폭력, 유괴 강요와 속임수를 동원했다" (34)는 말, 일본군이 여성이나 소녀들이 "자발적으로 신청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업자에게 적극적 지원을 부여했다" 는 말을 인용하면서 이 인식이 "위안부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인 사실" 이라고 주장한다(36). 나의 책은 이런 "중요한 부분이 사실과 합치하지 않"기 때문에 "허위" 라는 것이다.
재판부가 유엔보고서쪽이 진실일 것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국제사회'라는 단어를 무조건 권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원고측과 검찰이 그렇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원고측은 그동안 나온 국제보고서들과 고노담화를 나의 '범죄'를 증명하는 자료로 검찰과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들의 고소/기소 취지는 말하자면 '국제사회는 물론 일본까지 공유하는 인식을 박유하가 혼자 부정하고 있다'였다.
하지만 나는 고노담화를 부정하기는 커녕 오히려 높이 평가했다. 다만 해석을 달리 했을 뿐이다. 지원단체는 예전에는 고노담화가 강제성을 부정한 것이라면서 미봉책으로 치부하고 비판했었다. 그러다가 아베정권에서 고노담화가 재검증대상이 되자 갑자기 고노담화가 '강제성'을 인정한 것이라면서 지키기에 나섰을 뿐이다.
그런데, 고노담화를 만든 전 관방장관은 나의 기소반대 성명에 서명하기도 했다(2015/11, http://www.ptkks.net/approval/). 나의 해석이 그의 의도에 반하는 것이었다면 그가 참여했을 리가 없다.
재판부는 국제보고서의 '성노예'인식이 옳고, 나의 책은 그에 반하는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나는 '제국의 위안부'에서 지원단체의 성노예인식에는 이의를 제기했지만, 동시에 위안부가 분명히 `성노예적`존재라고 썼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하지만 피고인은 처음에는 일부 그런 경우도 있다고 하거나 여러가지 경우가 있다는 식으로 서술하다가 이 사건 표현들에서는 이러한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 서술하거나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위 표현을 접하는 독자들은 '전체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또는 많은 조선인 위안부`들은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되어 경제적 대가를 받고 성매매를 하였고, 애국적으로 일본군과 협력하고 함께 전쟁을 수행했으며 일본국과 일본군은 조선인 위안부를 강제동원하거나 강제연행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서술되어 있고, 이러한 내용이 객관적인 사실과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사건 표현들은 허위사실에 해당한다"(37)고 말한다.
이런 재판부의 인식은 '자발적 매춘부'라면 피해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만든 것이기도 한데, 원래는 지원단체의 인식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위안부 문제의 중심에 있던 이들이 오히려 '매춘'에 대해 차별적인 생각을 스스로 가졌거나(그들이 오로지 '순결한 소녀상'에 집착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20년 이상 여성인권운동을 하면서, 사회가 필요시하고 차별해 온 문제를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것을 시도한 나를 죄인으로 치부하고 고발한 것이다. 재판부는 그러한 상황을 모르는 채로, '사회가 위안부를 차별(사회적 평가 저하) 할 수 있으니 (저자의 의도가 그게 아니더라도) 처벌한다' 고 한 셈이다.
6. 인물특정 여부에 대해
재판부는 나의 책이 특정 위안부를 지칭해 명예훼손을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다. 그리고 2심 재판부의 말이 맞다면 오히려 원고로 이름이 올라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이 개별적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누구의 이름도 의식하지 않고 책을 썼다. 그런데 원고측이(검찰이) 나의 '허위' 를 증명하기 위해 재판부에 제출한 나눔의 집 거주 다섯분의 구술서에 따르면 오히려 아무도 그런 경험을 한 분은 없다. 심지어 그 중에는 '보국대'로 갔다고 말한 분조차 있다.
그런데 재판부는 내가 집필목적에 대해 쓴 서문중에서
"말하자면 한일양국은 20여년의 역사문제갈등을 거치면서 심각한 소통부재 상황에 빠져 버렸다. (중략) 그 갈등의 중심에 위안부문제가 있고, 그들(일본의 부정자)은 한국이 세계를 향해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일본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한번 원점으로 돌아가 위안부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38-39)라는 서문일부와, 이하 인용한 부분을 가져와 내가 구체적으로 문제해결을 위해 나서고 있는 위안부를 특정했다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과 일본사이 위안부 문제의 중심에는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밝히고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있다. 피고인도 이 사건 도서에서 [한국의 위안부들과 지원단체는 그 후에도 일본정부와 세계를 상대로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일본의 사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세계적인 문제로 간주되고 있지만, 다른 나라는 사죄를 받아들였으므로 현재의 위안부 문제란 실은 이 몇십명의 위안부와 위안부지원단체가 주체가 된 한국인 위안부문제이기도 하다(171)] 라고 썼다" 면서 "스스로 일본군 위안부였다고 나타내고 있는 사람에게만 명예훼손 문제가 생길 뿐" 이므로 "제3자가 일본군 위안부를 생각할 때는 전체 '조선인 위안부'보다는 우선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임을 밝힌 '위안부피해자'들을 떠올리게 된다" 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위안부를 "특정" 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 인용된 부분에서 내가 강조한 건 '한일갈등의 중심에 위안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일 뿐, '갈등을 빚고 있는 그 위안부'가 아니다. 이 부분에서도, 책 전체에서도 나는 위안부에게 잘못이 있다거나, 사죄요구가 옳지 않다고 쓴 적이 없다. 일부 할머니들에게 주어진 정보가 과연 정확했는지, 그렇게 생각하도록 이끈 지원단체의 사고가 과연 절대선인지를 의문시했을 뿐이다. 무엇보다 300쪽이 넘는 나의 책을 읽으면서 위안부의 슬픔을 느꼈다는 이들은 대부분 재판부나 원고가 말하는 '특정한 그 위안부'가 아니라 '이름모를 위안부', '전쟁터에서 동원된 위안부'를 떠올린 이들일 것이다. 그런 독자들이 실재하는 한 2심 재판부의 판단은 편파적이고 자의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
만일 내가 위안부문제를 그저 '사죄보상을 요구하는 그 위안부들의 문제'로 생각했다면 애써 '위안부의 슬픔과 고통'을 전하려는 책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위안부문제를 부정하는 이들을 구체적으로 비판했다. 기존지원단체과 같은 규탄이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에 귀를 기울이면서, 문제적인 생각을 비판했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과거의 위안부'의 실상을 보여주는 추상적인 '위안부'가 있고, 현재의 한일갈등의 중심인 구체적인 '위안부' 할머니가 있다. 나의 책은 후자에도 주목했지만, 고찰 대상은 어디까지나 전자였다. 검찰이 매춘/강제성/동지적관계, 이 세 부분을 문제삼았다는 것은 전자를 문제삼아 기소한 것이기도 하다. '과거의 이름모를 위안부' 를 포함해 모든 (추상적) 위안부에 관해 쓴 부분에 주목하면서 내가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현재의 구체적인) 위안부'를 특정했다는 말은 그들의 기소취지에 비추어 봐도 비논리적이다. 설사 오로지 나의 책을 읽고 현재의 위안부만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것을 의도하지 않은 한 그건 저자의 책임일 수 없다. 나의 고찰 대상이 어디까지나 전쟁터에서 사망한 '그녀들 모두'였다는 건 위안부에 대해 설명한 책의 1부를 이렇게 끝맺었다는 만으로도 분명하다. (2부와 3부는 90년대 이후의 갈등양상에 대해 썼고 4부는 현대가 과거를 반복하고 있는 구조에 대해 썼다)
"아마도 우리가 지금 귀기울여야 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이들이 아닐까 .전쟁터의 최전선에서 일본군과 마지막까지 함께 하다 생명을 잃은 이들---말없는 그녀들의 목소리에. 일본이 사죄해야 하는 대상도 어쩌면 누구보다도 먼저 이들이어야 할지도 모른다. 언어와 이름을 잃은채로 성과 생명을 '국가를 위해'바쳐야 했던 조선의 여성들. '제국의 위안부'들에게." (104)
7. 목적 ("고의")에 대해- '사회적 평가저하'를 한 건 누구인가?
재판부는 나의 책이 다양한 위안부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피고인은 이 사건 표현들에서는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 서술하지 않거나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이를 접하는 독자들은 마치 대부분 또는 많은 '조선인 위안부'들은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되어 경제적 대가를 받고 성매매를 하였고 애국적으로 일본군에 협력하고 함께 전쟁을 수행했으며 일본국과 일본군은 조선인 위안부를 강제동원하거나 강제연행하지 않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피고인도 이러한 점을 인식하면서 이 사건 표현들을 서술하였다고 보인다"고 했다 (41).
그러면서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면 피고인이 이 사건 도서를 집필한 목적, 이 사건 도서의 성격 및 전체내용을 감안하더라도 피고인은 이 사건 표현들에서 적시한 사실이 허위인 점과 그 사실이 피해자들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 시킬 만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였다고 보인다. 피고인에게 명예훼손 고의가 인정된다" 는 것이다. (41-41)
말하자면 재판부는 그저 '가능성'을 처벌하고자 했고, 그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책의 모든 부분에서 재판부 스스로가 옳게 요약하기도 한 나의 책의 취지를 반복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책이라는 매체가 한 개인의 표현이기도 한 이상, 이런 생각은 개인의 표현방식에까지 국가가 관여해야겠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나는 일본과 한국의 독자를 동시에 염두에 두면서 책을 썼고 각각의 부분에서 그 독자들을 떠올리며 글을 써 나갔다. 같은 소재를 두고 약간 다른 뉴앙스로 기술한 부분들이 존재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의 진실을 가능한 한 보되 더 중요한 건 그 진실을 '어떻게 생각할 지' 여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고와 검찰과 재판부는 나의 책이 정작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말하는 이들에 대해 비판한 책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부분을 완전히 도외시하고 단어에만 집착했다. 하지만 단어자체가 문제라면, 나를 고발한 이후 언론이 나를 비난하면서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라고 한 박유하"라고 반복해 온 시간들, 이 3년반의 시간들이야말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는 모욕적인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쓰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위안부를 비방할 의도가 있기는 커녕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을 웬만한 독해력을 가진 독자라면 반복하지 않아도 알 수 있도록 썼다. 책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한발 더 나아가 '악의적'으로 읽는 독자가 설사 있다 해도 그건 저자의 책임이 아니다.
내가 이 책에서 강조한 건 '강제로 끌려간 순결한 소녀'만 피해자로 생각하는 우리사회의 인식이 오히려 그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 이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상황이었다. 설사 자발적으로 갔다 해도 그 사실이 은폐될 이유가 없다고 강조한 이유이기도 하다. 해방 이후 50년 가까이 위안 부체험을 한 이들이 침묵해야 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들로 하여금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운 지원자들조차, 그러한 구조를 오히려 공고히 해 버린 건 단순한 오해나 시대적인 문제가 만든 것으로 보이지만, 이후 운동의 확산을 위해 전략적인 것으로 바뀌어 간 측면이 있다. 나는 그 전략을 이해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 전략이 결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명백히 적어둔 나의 집필목적을 왜곡해가면서까지 지원단체들이 주장하는 대로 고의/범의를 보려 했다.
물론, 우리사회의 매춘에 대한 인식---'사회적 평가 저하'를 재판부가 우려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책이 나온 후 나의 책을 근거로 그저 '위안부는 매춘부'로 생각하고 위안부에 대해 비판적이 된 이는 내가 알기로는 없다. 그렇게 읽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그저 나의 책을 멋대로 왜곡해 자신들이 이미 해 왔던 말을 보완하기 위해 이용한 이들일 뿐이다. 중요한 건 매춘여부가 아니라 그 여성들의 삶에 대한 이해여부다. 나는 오로지 그 옛날 소녀/여성들의 신산한 삶을 더 많은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기를 지향하며 자료와 글쓰기 방식을 골랐다. 그런 나의 책을 왜곡한 건 그 반대편에 있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렇게 대립해 온 이들의 접점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썼지만 결과적으로 나의 책을 있는대로 받아들여 준 건 그들과는 상관없는 일반독자들이었다. 이번 판결은 그렇게 '오독하는 독자들 ', '혹은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독자들'을 우선시한, 사회적 성숙을 오히려 퇴보시키는 판결이다.
8. 식민지 트라우마
원고측과 검찰과 재판부의 생각과 판단의 저변에는 우리의 식민지 트라우마가 있다.
예를 들면 재판부는 내가 일본인 위안부와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군과 '기본적인 관계는 같다'고 한 부분을 들어 문제시했다. 물론 나는 완전히 같지 않다고 분명히 썼고, 조선인은 기본적으로 차별구조 속에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가에 동원되어 다수의 군인들을 상대해야 하는 생활이 가져다 준 '여성'으로서의 고통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가 없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전대표를 비롯해 여러 학자들이 위안부속에서 굳이 한일차이를 보고 싶어 하는 건 그들이 인간의 아이덴티티를 성보다 민족에서 보고 싶어한 결과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의 아이덴티티는 다양하고 조선인 여성이 위안부가 된 것이 '여성'이기 때문이었는지, '조선인'이기 때문이었는지는 한마디로 결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 양쪽에 다 이유가 있었다고 썼다. 하지만 기존학자 대부분은 '여성의 인권'을 앞세워 운동과 연구를 해 왔으면서도, '일본'국적을 갖고 태어난 '여성'의 인권은 애써 무시 혹은 간과해 왔다. 그건 세계연대를 위해 '여성문제'임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조선인 위안부의 '여성'으로서의 고난 역시 도외시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녀들은 '여성'이면서도 공적으로는 '남성'을 비판할 수 없었고, 자신들을 착취한 '계급'의 문제를 말하지도 못했다. 물론 증언에서는 그런 구조를 충분히 말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는 않았다. 나는 그렇게 묻혔던 말들을 살려내 언어화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생각이 옳다고만 여기서 말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지원단체와 일부학자는 자신들의 인식만이 절대 옳은 것으로 간주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의 입을 막으려 했다. 혹은 재판중에 나를 비판하는 일로 직간접으로 고발에 가담했다. 역사학자들은 '역사서'를 지향한 것이 아닌 이 책을 두고 '역사서'의 형식을 갖추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더구나 그들은 나의 책이 이른바 일본우익의 책과 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알면서도, 일본우익과 같다고 외치는 일로 나에 대한 국민비난을 조장하고, 대중에 의한 끔찍한 여성혐오적 비난과 협박을 방치했다. 이것이 대한민국과 재일교포 '페미니스트'와 위안부관련 학자와 지원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3년 반 동안 보여준 모습이었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결국 그들의 손을 든 것이다.
재판부는 '동지적관계'도 '허위'로 판단했지만, 나는 '군수품으로서의 동지'라고 분명히 적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나의 책이 '애국을 강제했다'고 쓰고 있다고 적고 있으니 내가 강조한 메시지는 분명히 받아든 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원고측과 검찰의 왜곡요약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제국의 위안부'는 '위안부가 애국적 자긍적으로 협력하였다'고 썼다고 결론적으로 말한다. (물론 실제로 '애국적/자긍적'이었다고 스스로 말한 자료들도 존재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런 목소리까지 포함해 위안부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 일이어야 한다. 한사람의 인간을 진정으로 존중하고 싶다면.)
원고측 고발, 검찰기소, 그리고 이번 형사 2심 판결까지, 이들이 나의 책을 왜곡해 언급할 때마다, 그리고 이들의 말을 그대로 언론이 보도하고 SNS가 확산시킬 때마다, 나는 이들의 '허위'사실 유포에 의해 학자로서의 명예에 상처를 입는다.
그런 의미에서 '제국의 위안부'로 인해 실제로 '사회적평가가 저하'된 건 다름아닌 나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원고측-고발자들의 목적이었다. 나에게 이 3년반동안 쏟아진 수많은 비난과 협박들은 그들의 의도가 성공했음을 증명한다.
공정하게 평가해야 할 사법부가 스스로 국가의 얼굴을 한 민간인의 손을 들어 한사람의 학자에게 형사처벌을 내린, 2017년 대한민국의 공간이 내게는 아득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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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제국의 위안부'는 역사서라기보다는 역사를 둘러싼 담론을 분석한 메타역사서다. 한국과 일본의 여러 층위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썼고, 하나의 '진실' 자체보다 눈앞에 있는 진실(대상/정황)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를 모색한 이유이기도 하다. 필요한 만큼 '사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그 이상으로, 그 '사실'을 둘러싸고 대립중인 이들이 서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를 지향하면서 쓴 책이다. 접점을 찾기 위해 양국 정부와 지원단체를 비판했지만, 위안부에 대해서는 부정도 비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시도한 건 오히려 그동안 지원단체가 묵과하거나 은폐했던 목소리를 살려내는 일이었다. 그동안 의식/ 무의식적으로 묻혀 왔던 그 모든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야 말로 과거와의 대면에서 성실한 방식-- 바람직한 '역사와 마주하는 방식'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판부는 나의 그런 시도를 인정하면서도, 나의 책에 반발한 지원단체(와 검찰)의 나의 책에 대한 왜곡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조차 제대로 읽고 있었다는 흔적을 남기면서도, 이 판결은 결국 재판부 자신을 포함한 모든 독자를 무시한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강조한 건 '강제로 끌려간 순결한 소녀'만 피해자로 생각하는 우리사회의 인식이 오히려 그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 이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상황이었다. 설사 자발적으로 갔다 해도 그 사실이 은폐될 이유가 없다고 강조한 이유이기도 하다. 해방 이후 50년 가까이 위안부체험을 한 이들이 침묵해야 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들로 하여금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운 지원자들조차, 그러한 구조를 오히려 공고히 해 버린 건 단순한 오해나 시대적인 문제가 만든 것으로 보이지만, 이후 운동의 확산을 위해 전략적인 것으로 바뀌어 간 측면이 있다. 나는 그 전략을 이해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 전략이 결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명백히 적어둔 나의 집필목적을 왜곡해가면서까지 지원단체들이 주장하는 대로 고의/범의를 보려 했다."
: '강제 연행이 아닌 자발적 매춘이다'라는 일본 우익의 말을 인용하며 그것을 비판한 것을 두고 박유하교수 본인의 의견인양 오독/왜곡한 것으로 인해 정작 이 책이 담고 있는 여러 주요한 이슈가 알려지고 논의되지 못한다는 것이 이 소송의 참으로 안타까운 측면이다. 이것으로 인해 정작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된 당사자는 피고인의 신분으로 법정에 서 있고 부당함을 지적해야할 학계와 언론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역사는 추후 이것을 기억하며 내내 부끄러워할 것이다.
내게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은 추상적인 위안부 ,일본과 한국 사이 뉴스와 시위대 속에 상징적 피해자인 위안부를 나처럼 한 여성으로, 불합리한 시절을 살아가며 고초를 겪고 차별과 불안속에 자신을 지키고싶었지만 세상이 그러도록 두지 않았고 그럴 수 없었고 그럼에도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하고 기쁨과 슬픔을 반복하고 자신을 위로하며 삶을 견디고 살아내려한 여성으로 끌어내준 책이다. 내게 위안부 문제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일본정부가 해결해 줘야 할 정치적 문제였지 내 삶과 연결된 문제가 아니었다. 현재의 끈을 놓치지 않고 깨우고 노력해야 하는 나와 연결 된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나쁜 일본의 만행에 추가하면 더 폭발력있는 문제로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 얼마나 놀라웠던지 모른다. 내 안의 선한사람 제국주의는 영토를 확장하면서 성안의 평화와 공존을 부르짓으면서 게걸스럽게도 살과 피와 감정과 진짜 삶을 뭉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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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이제야 봤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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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November at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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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은 영토침략을 통하여 그들이 울 민족성원에 저질렀던 반인륜적 행위등 그어떤 문제제기도 국가차원에서 하지않는다는 약속이 문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후 애국단체 소속 성원이라 자처하는 정체불명의(물론 획일적 제도교육의 애국심 고취로, 본질의 파악없이 진심으로격분하는 사람들도...)
일부 사람들은 8월15일 민족해방일만 다가오면 할복시도및 단지를 해가며 반일감정을 고조시켜냈다.
겁이나서 무서워떨면서도 애국심이 부족해서 그런것 아닌가하는 두려움과 죄책감에 떨었던 국민학교 저학년 그 어린학생의 슬픈 마음은 당시 울 모두의 슬픈 일상이었다고 감히 단정한다.
덧붙혀 얼마전 '감성 민족주의'의 문제 지점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박유하 교수와 그녀의 한국현대사 연구결과인 저서 "제국의 위안부"를 한 줄도 읽지 않는 상태에서,
정신 넋나간 매국학자의 글로 단정했던 인식을 부끄러움으로 고백하며 사과드린다.
박유하 교수는 총,칼을 들고 강제로 끌고간것 포함 일본제국주의 수괴들을 비롯 수구들이 초보적이긴 하지만 자본의 논리로 돈벌게 해준다며 꾀어간것도,
또한 당시 이땅의 남성중심 가부장적 질서까지 백분 활용하였던 일제강점기의 총체적 수탈과 탄압이라는 연구결과를 밝히려 하였던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얼마전부터 하기 시작했다.
박유하교수는 이 난리가 날줄 예상하지 못했을까?
이 지점에서는 더더욱 부끄러워지고 초라해진다.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인식으로나마 허위사실을 규정짓는 경망스러움을 범하였다.
다시한번 깊고깊게 박유하 교수에게 사과드린다.
더불어 부족한 역사인식,사회인식을 반성하며 일상에서 좀더 진중하고 치열한 모습으로 객관의 사고를 갖도록 애쓸것을 많은 분들에게 약속 드린다.
많은 사람들은 일제시대 전체가 무단통치시기 같다고 생각한다. 문화정치가 있었지만 기만이었기 때문에 성격이 같다고 본다. 그래서 일제시대를 ‘지배와 저항’이라는 역사인식틀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런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협력과 순응’이라는 틀도 있다. 물론 전자만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다.
역사학계의 주류-좌우를 망라해서-가 그런 생각이다. 그렇다고 존재하는 ‘협력과 순응’을 배제하면 안된다.
이번 판결은 학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판결이기도 하지만 ‘지배와 저항’이라는 이분법적인 역사인식이 21세기 한국의 민주주의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그 동안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배자의 폭압에 맞서 싸워왔고, 최근 그 폭압의 당사자가 감옥에 갈 정도로 많은 성과를 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라는게 ‘지배와 저항’이라는 권력의 문제만 다루는게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폭력의 수단이 아닌 방식으로 살아가느냐의 문제 또한 존재한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한국의 민주주의에는 한계가 존재하고, 박유하교수의 판결이 이를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려는 정부이다. 그를 지지하는 지지자들도 그걸로 만족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을 실현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민주주의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민주주의자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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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몇몇 친구와는 1심 전후로 술자리에서 혹은
가십처럼 많은 얘기를 했지만ᆢ2심판결은 참 슬프구만ᆢ
간만이지만, 다시 박교수 얘길 들어보고
의견나눠봅세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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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 정성국 강준석 정상연 한번 시간내서 읽어보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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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November at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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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균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표현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법적 잣대는 또다른 폭력의 한 형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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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November at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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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yeon Yu 언론도 나쁘고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은 않고 믿고싶은대로만 믿는 사람들도 참 나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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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November at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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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 가능한 모든 쟁점이 담겨 있어 덧보탤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이 글 자체가 대한민국 사법부의 야만을 증거하는 기록이 될 것이다.
나는 박유하 교수의 주장을 모두 동의한다. 동의 못할 이유가 없다.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적도 없고, 사실을 왜곡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이런 나도 기소해야 마땅하지 않나? 우리 사회의 어느 한쪽에서 보자면 나도 박유하 교수 못지않게 한없이 불온한데 말이다. '너님은 똥걸레라서 기소 대상이 아님' 이러면 할 말이 없... 아무튼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이고, 애초에 어처구니없는 재판이다.
추신
일부분을 발췌했다 지웠다. 어쭙잖은 발췌보다 이왕이면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을 내서 천천히 읽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박유하 교수의 유무죄를 떠나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쯤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하지만 읽을 사람만 읽겠지. 대부분은 사실 위안부 문제에 큰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닐 테니까. 자신의 분노를 쏟아낼 비난거리를 찾다 박유하 교수가 얻어걸린 것뿐이니까.

오늘 이곳 빛고을 광주 퍽이나 꿀꿀한 날 이다.
오후에 조금 많은 비가 온단다.
오늘 아침 마리아 자매님ㅎㅎ께서 깨우는데 일어날려보니 심장만 파닥거리고 온몸이 마비되어진듯한 상태로 다가온다.
마리아 자매님이 조심스럽게 해주는 마사지 덕분에 환자로 날마다 출근하는 병원을 가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
진료과에서 전공의 선생님에게 너무 힘들다 했더니
"이런날은 비장애인이고 큰병이없는 저도 힘들어요"라고 하는 한마디에 아프다고 징징거리지 않으려고 날마다 애쓰기는하는데 그 한마디가 커다란 위로로 다가왔다.
이후 휠체어 가방에서 탭을 꺼내 어제 다운받은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위안부"를 치료실 침대에서 수액을 꼽고 읽기 시작했다.
고백하건데 책의 내용 한줄조차 읽지않은 상태에서,
내 자신의 책임이지만 언론등 여러상황의 영향으로, 가끔씩 나타나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일본 극우 민족주의자들 못지않은 망언으로 인지도 조금 올려놓고 슬그머니 사라지는 극우 꼴통 인사인줄 알았다.
그런데 몇일전 박유하 교수의 명예훼손 항소심 판결에 대한 반박문을 읽어보았다.
내용에서 동안에 알고있던것과 너무 달라 놀란 심경으로 보고 또보았다.
5번정도 본후 저의 상태는고통스러울 정도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일본제국주의와 식민지인들중 일부 적극적 주모자들의 만행을 본질적 차원에서 낱낱이 새롭게 밝혀내려는 학자의 몸부림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일단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궁금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제부터 작정하고 박유하교수 저서`제국의 위안부`를 한줄 한줄 꼼꼼히 읽자고 다짐했다.
일상에서 가장 슬픈일은 진심이 왜곡되는것 아닌가싶다.
슬픈 역사의 처참한 희생자가 분명한 위안부 어르신들과, 박유하 교수
그 누구도 진심이 다르게 전달되어 애통가슴을 끌어안고 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간절한 마음으로 담아본다.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이 땅에서 변화 발전의 역사를 믿는 사람이라면
선의속에서 발전을 품어내는 다른 의견도 서로 품고 이성적 토론으로 좁혀나가는 문화가 이 땅에 정착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빛고을 광주 호남권역재활병원에서 치료 받으면서 간곡히 해보는 오늘 오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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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몸이 편치 않으신데도 골치아픈 책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루빨리 완쾌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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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November at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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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헌 고맙습니다. 교수님, 부끄러운 죄책감도 있지만 또한 사명감으로도 다가옵니다!얼마전 탭을 선물로 받고 저의 생전에 텝으로 단행본을 읽는것이 처음이랍니다. 올 한해 많이 힘들었던 여러가지 일이 있었는데 올해가 가기 전에 교수님과 연을 맺은것이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다시한번 고맙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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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November at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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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헌 또한 교수님의 저서로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는 흥분이 사고로 장애인이 된 이후 이렇게 열심히 책을 본지 꽤 오래된 것 같습니다.ㅎㅎ 교수님 건강도 신경 써 주시면 좋겠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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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November at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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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오재헌 그러시군요. 무료공개하기 잘 했습니다. ^^
저 역시 생각이 유연한 분을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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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November at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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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사고가 나셨었군요. 얼마나 힘드실까요...
몸에 부담될 테니 조금씩 보세요. 저는 기초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지만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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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November at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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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헌 박유하 제가 그래도 20세부터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입니다.ㅎㅎ 
저도 논쟁이 붙으면 한 꼴통합니다.ㅎㅎ 
그런데 치명적인것은 상대방의 논리가 정연하면, 바로 꼬리를 내린다는 것입니다.

철저한 검증속에서 쓰여진 글 내용이 너무나 논리적이어서 제가 한 순간에 고민없이 무릎을 끓은겁니다.ㅎㅎ
사실 일부 내용이 삭제된체지만 발간된 책을 사서 보아야 하는데 마음이 급한 나머지 다운을 받았습니다.
조만간에 저도 제국의 위안부 단행본을 구입해서 거의 외울 정도로 보려합니다.
또 주변 분들에게 선물도 할 생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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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November at 17:26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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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오재헌 그러시군요. 그래도 고마운 일입니다. 다운로드 받으시라고 무료공개 한 거니 괜찮습니다.^^ 
어차피 보셨으니 나중에 원상복구 되면 그때 사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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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November at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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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헌 사실 이 싯점에서 교수님 만큼 화나고 애통가슴앓고 계시는 사람이 그 누가 있겠냐는 생각에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조금전에도 글을 읽으면서 강제 삭제된 내용을 추정하다 예의가 아닌것 같아서 중단하고,
마음을 접었는데 저도 모르게 화가 올라와 탭을 던지고 싶은 마음을 꾹눌러 참상을 피했습니다.

교수님의 속상한 마음도 다 헤아리지 못하면서...
그 또한 예의가 아닌것 같았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날 곧 오리라 생각하기에 그때도 살 거 구요 그때도 당연히 구매할겁니다. 그런데 한줄 한줄 기억해내야만 하는 소중한 글이기이서 명확히 기억해내기 위하여 정독을 하기에는 텝 사용 미숙으로 너무 불편해서요. 저 요즘 박유하 교수님 앓이를 하고 싶은 있답니다.ㅎㅎ 몇일전 이삿짐 싸느라 힘들어하는 제 처에게 교수님과 책 이야기를 한참하다가 혼났습니다.ㅎㅎ
Park Yuha 이 판결문 뒤에 삭제된 내용이 있습니다. 
http://parkyuha.org/archives/5769 
마음 감사 하지만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저를 옹호하다가 주변 사람들과 갈등빚는 사람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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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November at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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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헌 아이고, 저는 괞찮습니다. 논쟁속에서 마음 다치고 사람 잃어버린 세월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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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November at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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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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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November at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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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헌 교수님 위에 쓴글중 내용이 불편하다는 문장은 오타로 인한 오문입니다---> 탭 사용에 익숙치 않아로 수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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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November at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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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오재헌 네.알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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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November at 10:31
이종락 그래,나도 읽어 보고 싶네. 세상이 다 돌 던질 때 잘 봐야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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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November at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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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헌 그리고 다 읽어 보면 그 돌이 누구에게 돌아가야할지 명확히 이해 될 걸세.
당신이나 나나 운동 가네 몸담고 있었으니 아마 이해가 빠를 걸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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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November at 09:38
오재헌 꼭 보아야하네 친구 , 노럭하지않아 스스로가 머저리가 되는건 너무 슬픈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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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November at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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