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7

“남한살이 10년…탈북민 정책? 거의 방치 수준” - 유코리아뉴스



“남한살이 10년…탈북민 정책? 거의 방치 수준” - 유코리아뉴스

“남한살이 10년…탈북민 정책? 거의 방치 수준”<릴레이 통일코리아>(8) 유지연 통일한마음지원센터 센터장

김성원 기자
승인 2017.10.13 14:57

가정주부 유지연(48) 씨는 오전엔 보험사에서 일을 보고, 오후엔 자원봉사 일을 하고, 저녁엔 대학원을 다닌다. 거기다 탈북민이다. 유 씨가 자원봉사 일을 하고 있는 인천시 논현동 건물을 찾았다. 유 씨는 다른 탈북 여성들과 함께 백화점에 납품할 옷감을 만들고 있었다.

명함을 봤더니 직함이 여럿이다. 통일한마음지원센터 센터장, 바르게살기운동 남동구협의회 이사, 안전행정부 생활공감모니터단 위원, 밸런스행복코칭 전문코치. 저녁에는 성산효대학원대학교에도 다닌다. 효문화학과에서 다문화를 전공하고 있다.

유 씨가 입주한 사무실은 인천논현역 옆 건물 7층으로 인천의 탈북민과 다문화가정을 돕고 있는 예사랑선교회(대표 신영욱 목사) 사무실이기도 하다. 최근 신영욱 목사가 같은 건물 9층에 입주한 통일한마음지원센터에 인사차 찾아갔다가 사연을 듣고 아예 한 달여 전부터 사무실을 같이 쓰고 있는 것이다.


납품에 바쁜 유 센터장을 붙들고 남한 살이, 한마음지원센터 활동 등 이것저것 물었다. 유 센터장은 어떤 질문에도 당당하고 거침이 없었다. 특히 정부의 탈북민 정책와 관련, 정부가 고쳐야 할 부분과 탈북민이 고쳐야 할 부분을 명확히 구분해서 강조했다.

유 센터장과의 인터뷰는 추석 연휴 전에 있었다. 답변 중간중간 신 목사가 부가설명을 하기도 했다. 신 목사는 “유 씨 같은 사례, 통일한마음지원센터 같은 활동이 남한 사회에서 인정받고 자리잡아야 한다. 그냥 개인의 일로 놔둬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유 센터장과의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유지연 통일한마음지원센터 센터장이 탈북민들과 함께 백화점에 납품할 옷감을 만들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통일한마음지원센터는 어떤 곳인가?

저희(탈북민)가 한국 와서 한국분들과 결혼을 하고 애를 키우면서 집에 있는 엄마들이 많다 보니까 처음에는 그냥 봉사단체로 시작했다. 봉사를 하려다 보니까 돈이 필요했다. 개인돈도 모아봤지만 부족하고 해서 구청 보조금으로 시작하게 됐다. 어떤 봉사를 할까 생각하다가 북한 사람들이 봉제를 되게 잘 한다. 하지만 박는 기술은 있는데 여기서 원하는 제품을 만드는 방법을 모르다 보니까 ‘그러면 우리가 그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을 진행하자’ 해서 4년 동안 봉제 기술을 배워왔다.

-봉제교육은 센터장님이 직접 하시나?

처음엔 한국 강사들을 모셔서 배웠다. 그 다음부터는 탈북민 강사를 양성해서 거기서 잘하는 분을 선출해서 지금은 탈북민이 교육을 하고 있다.

-그럼 봉사하시는 분들도 탈북민, 봉사받으시는 분들도 탈북민인가?

다 탈북민들이다.

-봉제 교육 말고는 어떤 활동을 하시나?

지역 어르신들 위안잔치도 한다. 저희가 만든 제품을 요양원이나 어린이집 같은 데 보내는 기부활동도 한다. 그리고 남동구 논현동에 있는 통일동산 관리 업무도 하고 있다.

-통일동산은 어떤 곳인가?

남동구청에서 고향을 그리는 탈북민들을 위해 소나무를 130그루 정도 심어놨다. 거기에 붙어 있는 이름표가 낡았으면 교체해주고 잔디도 깎아주고 의자도 만들어주고 그런 봉사활동을 한다. 올해부터는 탈북민 심리상담도 해주고 있다.

-센터장님 보시기에 탈북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뭔가?

탈북민 정착과 관련해서는 어떤 기준점이라는 건 없는 것 같다. 한국에서의 정착은 일단 부딪혀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옆에서 뭘 해주려고 해도 본인이 경험을 안하면 그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질 않으니까 본인들이 사회에 나가서 많이 부딪혀보기를 저는 바란다. 어떤 사람들 중에는 10년 전에 왔지만 정착 못하는 사람도 있고 온 지 3년 됐는데 정착을 빠르게 하는 사람도 있다. 격차가 큰 것 같다. 2-3년 전까지는 탈북민이 자격증을 따면 정부에서 자격증 수당도 주고 취업해서 1년 지나면 장려금도 주고 했는데, 작년부터는 미래행복통장 정책이 나오면서 거의 방치 수준이 아닌가 생각한다. 처음엔 미래행복통장이 좋다고 생각했다. 내가 50만원만 적금하면 정부에서 50만원을 채워주는 거니까. 미래행복통장은 기존에 와 있던 사람들은 해당이 안되고 지금 오는 사람들한테 혜택이 되는 건데 그분들이 한국에 금방 나와서 정착하기도 어려운데 그 혜택을 보려면 죽든살든 회사에 가서 일해야 한다. 그러면 120-150만원 받는데 그 돈으로 50만원 저축하는 게 사실 힘들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기(남한)는 탈북민을 그냥 방치하는 것과 똑같구나’ 이런 생각이 많이 든다. 탈북민 만나서 대화해보면 알지 않나. 기존 와 있던 사람들은 ‘너무 좋다. 50만원 내가 저축하고 정부에서 50만원 대주면 너무 좋다. 그걸 3년 모으면 적지 않은 돈이 되겠다’ 생각하는데 지금 나온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그게 쉽지 않다는 거다. 회사에서 월급 120-150만원 받아서 가정생활비 쓰면 통장에 적금할 돈이 어디 있냐는 거다. 그리고 남한에 올 때 대부분 아이들도 데리고 온다. 애들과 같이 사는데 그것 가지고는 생활비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거다. 이렇게 되면 탈북민에 대한 혜택이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2-3년 전만 해도 행사를 하면 탈북민들이 많이 모였는데 지금은 무슨 행사를 한다고 해도 불러올 탈북민이 없다.

(미래행복나눔통장은 통일부가 탈북민 초기 정착과 취업 지원을 위해 2015년 도입했다. 국내 입국 5년 미만 탈북민을 대상으로 취업시 최소 월 10만원에서 최대 월 50만원까지 적금에 들면 통일부가 같은 금액을 매칭 적금해주는 제도다. 하지만 박주선 국회 부의장이 최근 공개한 ‘미래행복통장 사업 2016년 예·결산 내역을 보면 2016년의 경우 목표 인원 400명 대비 실제 가입한 인원은 192명에 불과했다. 그만큼 탈북민에겐 문턱이 높고 현실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왜 그런가?

혜택이라는 게 없으니까. 다 나가서 일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초생활수급자라도 아프지 않을 경우 조금이라도 나가서 일하려고 아르바이트라도 하다 보니까 적극적으로 살고 있는 게 실감이 난다. 그렇지 않고 집에서 노는 사람들 보면 아픈 사람들이거나 애 키우고 있는 엄마들이다.

-탈북민들이 아등바등 일하는 이유가 생활 때문인가?

생존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거다. 나온 지 8-10년 된 분들은 이제는 돈맛을 알아서 나가서 일을 한다. 지금 나오는 사람들도 6개월이면 생계비가 딱 끊어져 버리니까 나가서 일하는 거다. 이렇게 생활전선에서 뛰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 여유가 없는 거다.

-탈북민들이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바람직한 거 아닌가?

바람직하기는 한데, 몸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일해야 한다는 데 대해 서글픈 마음이 있다.

-그런 분들이 많나?

많다. 생산직에서 일하는 분들 중에 어떤 자존심 강한 분들은 ‘내가 기초생활수급비 받아서 뭐하나. 그냥 내가 나가서 일하겠다’고 해서 남한 오자마자 회사 나가서 일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5-10년 일하면 온몸이 다 아프다고 한다. 야근까지 해야지 토요일까지 일하는데 돈은 돈대로 모여지지 않으니까 힘들다고 나앉는 분들이 많다. 또 한국분들과 결혼해서 결혼신고를 하는데 그런 분들도 몇 년 나가서 일하다가 지치면 ‘가짜 이혼을 해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는 분들도 많다. 물론 다른 사람들처럼 공무원도 쉽지는 않지만 그런 데 취직할 수 있는 길이 많다면 괜찮은데 탈북민들에게 그런 자리는 한정되어 있지 않나. 제가 포기 못하는 이유가 ‘탈북민들을 조금만 뒷받침하면 되는데...’ 이런 마음 때문이다. 우리 같은 경우도 센터를 운영하면서 어디 가서 기부를 받으려고 해도 그게 네트워크가 다 형성이 되어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 이미 네트워크가 되어 있는 분들은 그걸 통해서 기부를 잘 받는데 우리처럼 그런 힘이 미약한 단체들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이렇게 힘든데 일반 탈북민은 얼마나 힘들겠나.

-그러면 한마음지원센터는 기부금이나 후원은 못받으시나?

정부나 지자체 보조금은 받지만 기부금은 전혀 들어오는 데가 없다.

-보조금 가지고 운영이 되나?

보조금은 운영비로 쓸 수가 없다. 수강생 교육비를 받기는 하는데 그걸 가지고 운영비는 택도 없이 모자란다. 할 수 없이 제 개인돈으로 충당할 때가 많다.

-돈이 어디 있어서 그렇게 감당하시나?

돈이 없지만 작년까지는 그런대로 했다. 탈북민들이 모여서 도움을 주고받고 하면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계속 해야겠구나’ 생각이 든다. 센터가 만수동에 있을 때는 임대료라야 전기세 포함해서 40-45만원 선이었다. 내가 옷을 만들어서 하나 팔면 8만원 정도 하니까 별로 부담스럽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제가 작년에 금융을 너무 배우고 싶어서 보험회사에 들어갔다. 금융 컨설팅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해서 보험회사를 갔는데 우연히 가서 시험을 쳐서 합격이 되어서 다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보험회사 범위가 아픈 사람 건강이나 재정 계획 설계해서 파는 개념이 아니었다. 해보니까 부동산도 알아야 하고, 병원 의사처럼 병원 업무도 알아야 하고, 심지어 은행 업무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센터를 한국 사람한테 넘겨야겠다고 생각해서 회장으로 한국 사람 섭외까지 했는데 막판 임대료 분담 문제로 고사를 하는 바람에 결국 내가 다시 센터를 맡게 됐다.

-그럼 보험업무도 그만두신 건가?

보험은 계속한다. 아침 7시에 회사 출근해서 서류 다 작성해놓고 조회, 업무 끝나면 다시 여기로 넘어와서 센터 업무 보고, 저녁에 또 대학원엘 간다. 아침 7시에 나오면 저녁 10시까지 팽이처럼 돌아간다.

-남한에 오신 지는 얼마나 됐나?

10년째다.

-10년 살아보시니 남한살이 어떤가?

힘들다(웃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북한에 있을 때는 아침에 출근했다가 퇴근하면 저녁에 모여서 동네에서 함께 놀고 그렇게 29년을 살았다. 중국에서는 7년 정도 살았지만 거기서는 쫓기는 삶이었다. 2006년 한국에 왔을 때 당시 벼룩시장이 한창 활성화될 때였다. 그때 부동산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월 임대료 이런 걸 가지고 돈을 번다고 누군가 귀띔해줬다. 그래서 대학도 부동산학과에 갔다.

유지연 통일한마음지원센터 센터장 ⓒ유코리아뉴스


-돈에 눈이 빨리 뜨이신 것 아닌가?

그런 일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4년제 부동산학과를 졸업하고 결혼하고 애를 낳다 보니까 일할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 우울증이 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동네 탈북민들 모아서 ‘봉사활동 좀 해보자’ 해서 단체를 꾸렸는데 그게 5년 동안 오게 된 거다.

-얼마 전 종편에 자주 출연하던 임지현 씨가 북한 가서 ‘남한살이가 지옥이었다’고 했는데 그게 과장됐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견 공감하는 탈북민도 있었다. 센터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

그 분은 북한을 탈출해서 중국에서부터 잘못된 삶을 살았던 사람이니까 그 사람이 인식하는 게 탈북민 전반의 인식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친구가 지나온 삶을 보면 무슨 일을 생각할 때 너무 단순하게 결정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중국에서 살았던 삶, 한국 와서 TV에 나왔던 삶 등 너무 편안한 것을 선호하다 보니 자기 스스로 그런 상처를 받는 길이었지 않나 싶다. 한국에 와서 힘들었다는 거는 저도 공감한다. 5년 동안 센터를 운영해보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다문화보다 더 힘든 게 탈북민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문화는 말은 안통하지만 힘들 때는 부모나 가족들과 통화라도 할 수 있지 않나. 그런데 탈북민들은 각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까 처음에는 뭉쳐서 웃고 떠들고 지내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까 정보를 공유하길 싫어하다. 같은 탈북민이라도 친하지 않으면 자꾸 벽을 쌓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럴까?

탈북민들은 처음 정착할 때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는다. 그런데 어울려서 놀다 보니까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나는 힘들어서 기초생활수급비 받는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하면 그 말이 구청 같은 데 들어가게 되고 그러면 ‘기초생활수급비 부정사례’로 중단되는 일도 발생한다. 그런 사례들이 반복되다 보니 점점 벽을 쌓고 자기를 숨기게 되는 거다. 저도 이 사업을 하다 보니까 그런 게 보이는 거다. ‘아, 얼마나 힘들었으면 내가 아픈데 아프다는 얘기를 터놓을 사람이 없을까.’ 저희가 심리상담을 하면서도 그런 걸 자주 본다. 같은 탈북민한테보다는 남한 사람한테 털어놓겠다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탈북민과 남한 사람은 자라온 환경이 다른데 털어놓는다고 한들 완전히 풀릴 수가 없는 거다. 아무리 그래도 탈북민들끼리 공통점이 더 있을 수밖에 없다. 저도 논현동 살다가 탈북민들 때문에 간석동으로 이사갔는데 간석동은 또 나름대로 고립되는 게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애 때문이다. 내가 탈북민인 게 알려지면 아무래도 애한테 영향이 있을까봐 지역 아줌마들을 만날 수가 없는 거다. 나는 항상 애한테 ‘당당해라. 너는 대장이니까.’ 이런 말을 하는데도 한쪽으로는 불안한 거다.

(신영욱 목사: 그게 안되지. 쉽지 않지. 처음엔 북에서 오신 분들이 자기들끼리만 교류를 하고 남쪽에 계신 분들과는 교류를 잘 안했다. 그게 문제였다. 자기들끼리만 알면 남한의 일부만 알고 또 잘못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걸 자기들끼리는 속내를 터놓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북에서 오신 분들 중에 질이 좀 안좋은 분들이 탈북민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는 일이 발생했다. 또 터놓고선 얘기했는데 그게 잘못돼서 북에 있는 가족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생겼다. 그러다보니 서로 벽을 쌓는 거다.)

-탈북민끼리 서로 벽을 쌓는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소를 해야 할까?

물론 목사님 말씀하시는 것도 맞다. 임지현 씨 경우도 보면 남한의 탈북민 가족들 얘기를 북에다 다 불어 가지고 지금 북에 있는 그 사람들이 조사를 받고 있다고 들었다. 또 한국에 정착하는데 애가 학교를 다니니까 애한테 부정적 영향을 줄까봐 같은 탈북민 엄마들과 거리를 두는 경우도 있다. 부류가 다양하다 보니까 그걸 한 마디로 딱 정의하기가 애매모호하다. 정착 기준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탈북 여성이 한국 남자와 결혼하는 경우엔 그나마 몇 년 살다보면 잘 정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같은 탈북민끼리 결혼해서 사는 경우는 어려움을 겪는 걸 많이 봤다.

-센터장님은 남한 분과 결혼하셨나?

그렇다.

(신영욱 목사: 내가 북에서 오신 분들과 같이 지낸 지가 10년이 넘었다. 나는 항상 한계를 느낀다. 내가 남한 사람이기에 북쪽 사람들이 나에게 마음을 터놓는 데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렇다고 먼저 다가가면 또 부담스러워하고. 내가 갈 수도 없고 그분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 기다리는 동안 너무 많은 일들을 봤기 때문에 그게 안타까운 거다. 그렇다고 막 도와드릴 수도 없는 거고. 또 하나는 내가 남자이기 때문에 탈북민 70% 이상이 되는 여성들과 접촉점 찾기도 어렵지만 같이 일을 해봐도 잘 맞지 않을 때가 많다. 내가 원하는 쪽으로 나를 도와준다고 오신 분들도 그걸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단기적인 뭔가를 기대하는 경우도 많고.)

-정부의 탈북민 정책이 겉돌고 있다고 하셨는데 탈북민 정책과 관련해 통일부에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면?

아무리 좋은 정책이 나오면 뭐하나.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중요하다. 정부는 남북하나재단을 통해 여러 가지를 많이 내놓는 것 같다. 그걸 빨리 캐치해서 활용하는 사람은 잘 정착하는 거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힘든 거다. 다 안을 수는 없는 것 같다. 요즘 보면 학교는 학교 나름대로 탈북민 학부모나 자녀들에 대한 게 잘되어 있다. 사회단체도 나름대로 잘 되어 있고. 민주평통이나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같은 데서도 탈북민 위한 프로그램이 많다. 그렇다 보니 한국분들이 상대적으로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정책적으로는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싶다. 문제는 탈북민 각자다. 저희도 어떨 때는 탈북민들에 대해 화날 때가 많다. 어떨 때는 사회단체 같은 데서 너무 많은 걸 주니까 자꾸 갖다주는 걸 바랄 때도 있고. 한 가지, 예전 같으면 자격증이 있거나 취업을 하면 장려금을 줬다. 그런데 미래행복통장이 생기면서 이게 없어졌다. 이 부분이 다시 부활하면 좋겠다. 장려금을 주면 자격증 따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니까. 예전처럼 자격증 장려금이라도 나오면 한국사회에서 컴퓨터라도 배워서 자격증을 가지고 일할 수 있으니까. 예전의 예를 보면 그래도 자격증을 취득해 놓은 사람들의 이력서를 받아보면 자격증이 많다. 지금은 그런 혜택이 없으니까 학원가서 공부할 생각은 안하고 다 생산직 가려고 하고 한다. 그러니 생활이 더 안좋아지는 것 같다.

-오히려 과거에 자격증 장려금 줄 때가 더 좋았다는 말씀인가?

그렇다. 저희도 그 덕분에 공부해서 자격증을 가질 수 있다. 어딜 가더라도 컴퓨터 자격증 이런 게 갖춰져 있으면 공공기관에서 사람 모집한다고 할 때 당당하게 이력서 들이밀 선택권이라도 있지 않나. 그런데 지금은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취약계층 받으라고 혜택은 많아지는데 자격증 가진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다 보니까 그런 자리가 있어도 못가지 않나. 사람을 개발하려면 그런 자격증 장려금 혜택을 주는 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신영욱 목사: 전에는 자격증을 취득하면 장려금을 주니까 학원 가서 자격증 취득해서 몇 십만원 받고, 또 그게 끝나면 취업할 생각은 안하고 또 다른 학원 가서 공부하고 그랬다. 그런 문제 때문에 제도가 바뀌었는데, 제도가 안좋으면 보완하고 개선하는 쪽으로 가야 하는데 일거에 싹 잘라버리고 바꿔버리니까 너무 현실과 잘 맞지 않을 때가 많다.)

-10년 전 남한에 오셔서 본인 정착하기도 힘드실 텐데 5년간이나 남 정착하는 일을 도와오신 것 같다.

몇년 전 ‘통일한마음 봉사단’ 만들 때 만수동에서 개소식 했었다. 구청장, 구의원, 국회의원도 왔었다. 그런데 그때 구청 과장이라는 분이 ‘이걸 차려서 얼마나 버티려고 그러냐?’ 부정적으로 얘기했다. 진짜 운영해보니까 만만치가 않다. 북한 사람은 북한 사람대로 이 시스템을 이해 못하니까 저를 안좋게 생각하고, 또 한국 사회에 손내밀자고 하니까 ‘우리를 좀 도와주세요’ 하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가 않는 거다. 사실 제가 보조금을 받아서 운영해 보니까 내 돈이 더 많이 들어간다. 보조금은 항상 자부담 원칙이 따르기 때문이다. 센터 운영비도 내가 생각지 못하는 비용들이 많이 들어간다.

(신영욱 목사: 그게 참 힘들다. 같이 북에서 온 분들도 뭔가 삐딱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우리를 이용해서 어디서 돈이나 받아먹는 것 아닌가?’라며 오해하는 분들도 있고. 그런 의식 자체가 개선이 되어야 하는데 남한분들은 남한분들대로 이런 걸 잘 이해 못하고, 탈북민에 대해 대부분 남한 사람들은 관심도 없고, 관심이 있어도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하는 경우는 드물고.)

유지연 통일한마음지원센터 센터장과 10여년 전부터 인천에서 탈북민 정착지원 활동을 해오고 있는 신영욱 인천 예사랑선교회 대표(오른쪽). 한 달여 전부터 통일한마음지원센터는 인천 예사랑선교회 사무실을 같이 쓰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예전 통계를 보니까 탈북민들이 남한 사회에서 제일 힘들어하는 게 ‘남한 사람들의 편견’이었다. 이런 남한 사람들의 편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

뉴스에서 북한에 대해 매일 안좋게 보도하니까 한국분들이 편견을 가지고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국 사람이 볼 때는 편견이라고 생각 안할 수가 있는데 북한 사람은 편견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탈북민이 생산직에서 일할 경우 사장 입장에서는 돈을 돌려야 되니까 급하게 처리하다 보면 막말을 할 수도 있는데, 탈북민은 그걸 ‘내가 북한에서 왔다고 네가 나를 이런 식으로 상대하나?’라고 오해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한국에서 살아보니까 한국 사람은 그런 식으로 말한 게 아닌데 탈북민은 그렇게 오해하는 부분이 종종 있는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대학도 나왔고, 대학원엘 다니고 있고, 5년 동안 센터를 운영해오면서 한국사회에 나갔을 때 당당함이 있다. 애를 빼놓고는 모두 당당하다. 보험회사 다니면서 보니까 한국 사람 중에도 컴퓨터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팀당 10명이면 그 중 컴퓨터 잘 하는 사람은 2-3명이고 나머지는 컴퓨터를 몰라서 매일 물어본다. 저 같은 경우는 컴퓨터를 잘 하니까 그런 게 막힘이 없으니까 기가 죽지 않는다. 내가 그만큼 지식이 많아야 책잡히지 않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다 한국사람 거쳐야 한다면 점점 정착하기 힘들어진다. 난 ‘어떤 식으로든 기초생활수급 혜택이 있을 때 공부 많이 해라. 자격증 따라’ 이런 얘기를 탈북민에게 많이 한다. 탈북민이 처음엔 한국사회를 잘 모르지만 10년 지나면 한국 사회를 다 터득하게 된다. 그럴 때 자격증이나 실력이 있으면 잘 정착할 수 있다.

-앞으로 꿈이 있다면?

(망설임없이) 한 10년 후 바다가 보이는 그런 곳에 집지어 놓고 농사일 하며 사는 것이다.

-그때 되면 봉사는 더 이상 안하실 건가?

봉사는 나이 들면 내려놔야 한다고 본다. 앞으로 10년 동안만 보험일 하고 은퇴할 생각이다.친한 탈북민끼리의 모임이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밥먹고 싶을 때 연락해서 모이는 친구들인데 그 친구들과 ‘앞으로 10년 동안 노력해서 각자 1-2억씩 돈 모아서 시골 같은 데 한 울타리 쳐놓고 살자’고 했다. 그게 좋은 것 같다. 제가 요즘 보험일 하면서 지방도 다니는데 탈북민 중에 1억 넘게 현금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 분들은 다 사업하는 분들인가?

아니다. 다 직장인들이다. 정말 김치에다 밥 먹으면서 6년, 8년 이렇게 모은 거다. 전북에는 그렇게 1억 8천만 원을 모은 탈북민도 있고, 대전엔 2억 이상 현금을 가지고 있는 탈북민도 있다. 이제 60세 지나면 그 이자로 살겠다는 계획이다. 탈북민 중에도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는 개인의 노력 차이라는 건가?

그렇다.

-10년 후 친구들과 같이 사시려면 지금부터 돈 많이 모으셔야겠는데?

이런 일 해서 어떻게 돈을 벌겠나. 나는 돈 모으는 재간이 없다.

-아무튼 지난 10년간 열심히 살아오신 것만으로도 탈북민뿐만 아니라 남한 사회에 귀감이 되실 것 같다. 10년 후 멋진 은퇴를 기대한다.



***<릴레이 통일코리아>는 통일 분야의 집단 지성을 통해 건강한 통일담론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보수-진보, 유명-무명, 국내-국외 등 통일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들을 가감없이 소개하고 토론하고 공감하자는 취지다. 일종의 통일을 향한 마라톤인 셈이다. 향후 인터뷰이들과 독자들의 만남, 북한 사람과의 인터뷰 등 다양한 장을 마련해가려고 한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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