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4

‘정의·평화’보다 ‘일본 돈’ 택한 유네스코, ‘위안부’ 세계기록유산 등재 결국 보류 - 민중의소리

‘정의·평화’보다 ‘일본 돈’ 택한 유네스코, ‘위안부’ 세계기록유산 등재 결국 보류 - 민중의소리
지난 2015년 파리를 순방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네스코 본부를 방문, 특별연설을 마치고 이리나 보코바 사무총장과 악수하고 있다.
지난 2015년 파리를 순방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네스코 본부를 방문, 특별연설을 마치고 이리나 보코바 사무총장과 악수하고 있다.ⓒ뉴시스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는 교육, 과학, 문화 등의 분야에서 국제협력을 촉진함으로써 세계평화와 인류 발전을 증진시키고자 만들어진 유엔 전문기구다. 유네스코 헌장 1조에는 '정의, 법의 지배 및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보편적인 존중'이라는 문구가 있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보류 과정을 보면 유네스코가 '정의·평화'라는 지향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 의문이 나온다.
기록유산 등재 여부를 판단하는 유네스코 국제자문위원회(IAC)는 프랑스 파리에서 30일(현지시각) 기록유산 등재권고 명단을 발표했는데, '위안부' 기록물에 대해선 '대화를 위해 등재 보류 권고' 결정을 내렸다. 앞서 한국과 중국 등 8개국 시민단체는 지난해 한반도 출신 '위안부' 피해자 중 최초로 피해를 증언한 배봉기 할머니의 육성 증언 테이프 등 2700점 이상의 자료를 기록유산으로 신청했다.
유네스코가 '위안부' 기록물 등재를 보류하면서 향후 등재 전망은 불투명해졌다. IAC는 성명에서 "위안부(피해자) 기록물의 등재 신청자와 당사자들 간의 대화 절차를 개시할 것을 사무총장에게 권고한다", "관계 당사자들이 대화하기 편리한 장소와 시간을 마련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등재를 신청한 8개국 시민단체들과 일본 정부의 의견이 엇갈리므로 당사자들 간의 정치적 긴장 등을 방지하기 위해 대화에 나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무총장의 중재로 대화의 장이 마련되는 것이 쉽지 않은 데다 '강제 동원'을 부인하고 있는 일본 정부가 갑자기 입장을 바꿔 등재에 찬성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유네스코 측의 사정도 긍정적이진 않다.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등재 보류 결정을 내림에 따라 공은 다음달 취임하는 차기 사무총장인 오드레 아줄레에게 넘어갔는데, 아줄레가 "유네스코는 대립이 아니라 대화의 장"이라고 말해온 것을 고려하면, 등재를 주저할 가능성이 크다.
가해국과 피해국의 입장이 대립된 상황에서 '당사자간 대화를 통한 해결'을 권고한 것이 향후 유사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걸림돌이 되거나 기록물을 보존하는 유네스코 역할을 방기하는 것 아니냐는 근본적인 문제도 남아 있다.
한일 위안부 협상 이후 일본에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 위안부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백지화 등 공감할 수 없는 문제가 계속 불거져 국민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자료사진)
한일 위안부 협상 이후 일본에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 위안부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백지화 등 공감할 수 없는 문제가 계속 불거져 국민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자료사진)ⓒ김주형 기자
일본의 자금줄 압박과 박근혜 정부의 외면
기록물 등재 보류 이면에는 유네스코의 자금줄을 틀어쥔 일본이 있다. 일본 정부는 8개국 시민단체들이 공동으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등재를 신청하자, "세계기록유산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자금 압박과 로비로 등재 저지에 나섰다.
일본의 유네스코 분담금은 최근 탈퇴를 선언한 미국(22%)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전체의 10%가량이다. 미국이 2011년 팔레스타인이 유네스코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분담금을 내지 않다가 최근 탈퇴 선언까지 한 상황이어서, 현재는 일본이 최대 분담국으로 돼 있다. 기술적으로는 일본이 연말까지 1년 단위로 내는 분담금을 납부하면 되지만, 일본은 10월 말인 이날까지도 여전히 분담금을 내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돈으로 유네스코를 압박하고 있다는 분석과 유네스코가 굴복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는데, 사실상 현실이 된 셈이다. 일본의 압박으로 유네스코는 최근 당사자간 이견이 있는 사안은 등재를 보류하는 내용의 세 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일본의 압박 등을 고려하더라도, 전쟁범죄와 여성 인권 등의 자료가 총망라된 대체불가능한 '위안부' 기록물을 등재 보류한 유네스코의 입장을 이해하긴 힘들다. 등재를 신청한 8개국 시민단체들은 "이번 등재 신청은 일본을 비난하거나 폄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20세기 비극의 역사를 21세기의 사람들이 어떻게 극복해 갔는가에 대한 기록물이자 여성인권회복에 대한 국제적 기록물에 관한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사실을 증명하는 문건에 등재를 보류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등재 외면도 뼈아프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부터 표면화되었던 '위안부' 피해자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움직임을 처음에는 지원하기로 했으나, 2015년 말 한일 '위안부' 합의가 체결된 뒤에는 태도를 전면 바꿨다. 박근혜 정부가 등재사업 예산 4억4000만원을 한 푼도 집행하지 않자, 서울시가 정부를 대신해 보조금을 일부 지원하는 일까지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가 지원 재개를 결정했지만, 이미 일본의 전방위 압박이 진행된 뒤였다.

정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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