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김일성 신화의 진실 - 김성주, 진지첸, 김일센, 김일성으로 살았던 한 인간의 생애
김용삼 (지은이) | 북앤피플 | 2016-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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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에서의 항일 무장 독립운동은 신화가 됐고, 금단의 영역이 되었다. 이 부분을 잘못 건드리거나 그 정신을 훼손하면 가차 없이 ‘친일’의 주홍글씨가 새겨진다. 김일성을 수식하는 용어를 분해해 보면 ‘만주’ ‘항일’ ‘무장 독립운동’ 등 세 덩어리로 의미가 분절된다. 저자는 역사적 기록을 통해 그 세 덩어리의 실체를 추적한다. 선입관이나 가치관을 버리고 그 의미를 추적하면서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만주라는 공간에서 비슷한 시기에 한반도의 남과 북의 운명을 가른 지도자 그룹이 형성됐고,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혹은 자유민주주의자)들 간에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한 분단의 유전인자들이 이미 1920~30년대부터 싹트기 시작했으며, 이데올로기의 진영 대립에 외세가 개입되어 복잡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의 복잡한 근현대사는 남과 북의 관점, 즉 일국사적 관점이 아니라 세계사적, 동북아 관계사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진정한 그림이 그려지게 된다.
북한의 지도자가 된 김일성이란 존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벽은 김일성은 대체 몇 명인가 하는 점이다. 김일성이란 이름의 한자 표기가 네 가지나 혼재(金日成·金一成·金一星·金日星)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본명인 김성주도 한자 표기가 세 가지(金聖柱, 金成柱, 金誠柱)나 된다. 북한은 김일성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모든 인물들의 행적을 북한 지도자 김일성 한 사람의 업적으로 만들어놓았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김일성의 행적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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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김일성, 항일 무장투쟁의 신화는 진실인가?
제1장 김성주 시절
여러 명의 김일성들
‘김일성 전설’의 실존 인물 김광서
한인들의 간도(間島) 이주사
김성주의 가계
압록강 건너 만주로 이주
기록마다 서로 다른 미스터리 학력
어머니 강반석의 재가(再嫁)
김성주, 공산주의와 만나다
한인들의 만주 이주
김성주, 일성(一星)이란 호(堂號)를 얻다
항일 빨치산 투쟁에 뛰어든 김성주
일본의 만주 침략
민족주의 계열의 항일 무장투쟁
다양한 세력들, 만주에서 게릴라전 전개
한인(韓人)들이 중심이 된 동북인민혁명군 출범
소련의 볼셰비키 혁명
소련의 배신으로 몰살당한 한인 무장 독립군
소련의 두 번째 배신-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중국공산당 내의 한인 빨치산들의 운명
중국공산당에게 토사구팽 당한 한인 공산주의자들
제2장 김성주에서 김일성으로
‘김일성’이란 인물의 정식 등장
제1의 김일성 이야기
통일전선전술로 동북항일연군 출범
보천보 습격사건의 진실
북한이 보천보 습격사건 미화찬양에 전력투구하는 이유
제1의 김일성(제6사장) 사살설(說)
제2의 김일성 등장
동북항일연군 지원한 스탈린
만주국, 동북항일연군 토벌에 나서다
노조에 쇼토쿠의 토벌작전
김일성 항일 투쟁의 실상
항일운동인지 약탈 살상인지…
소련으로 탈출한 김일성
소련 88특별정찰여단 시절
소련군의 대일전(對日戰) 개시
제3장 김일성, 북한에 공산 위성국가 세우다
소련군, 북한에서 군정 실시
민족주의자 조만식의 존재
김일성, 소련 군함 타고 원산으로 귀국
스탈린의 극비 지령, “북한에 공산정권 수립하라”
스탈린, 김일성 면접 후 북한 지도자로 낙점
공포통치기구 설치
현준혁 암살 사건의 파장
박헌영과 김일성의 비밀 회동
북조선 민주기지 건설론 등장
북한 역사의 결정적 전환점,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김일성 장군 평양에 나타나
김일성 환영대회는 실패작이자 성공작
화폐개혁으로 ‘붉은 지폐’ 남발
한인 출신 88여단 소속 볼셰비키당의 ‘3거두(巨頭)’
조만식, 조선민주당 창당
신의주에서 사상 최초의 반소 반공의거 발생
연안파의 초라한 입북
조선의용군 압록강지대 무장해제 당해
김일성 정권 창출의 1등 공신, 소련파
모스크바에서 날아든 신탁통치 결정
김일성과 박헌영의 엇갈린 대응
조만식의 목숨 건 저항
공산 단독정권 수립 다그친 스탈린
슈킨 보고서 등장
제4장 모든 것은 스탈린의 뜻대로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출범(사실상의 공산 단독정권)
소비에트화를 위한 ‘민주개혁’ 실시
김일성을 암살하라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 파탄
숙명의 라이벌 박헌영과 김일성
스탈린, 김일성과 박헌영 모스크바로 불러 면접을 보다
스탈린이 김일성을 북한의 지도자로 택한 이유
북조선노동당의 탄생
박헌영의 영구 월북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도 파탄
북조선 인민회의(국회) 창설, 북조선 헌법 제정 공작
군대와 보안대 장악
남북 지도자 연석회의 공작
제2차 남북연석회의
소련군정, 북한 내각 구성하다
‘스탈린의 뜻대로’
제5장 6·25 전쟁의 전범(戰犯) 김일성
남침전쟁 준비
만주에서 국공내전 재개되다
김일성의 남침요구, 스탈린이 거부
김일성의 집요한 국토완정의 꿈
스탈린과 모택동의 불편한 관계
훈련으로 위장하여 38선으로 무기와 병력 이동
남침 관련 정보, 미국 첩보기관은 알고 있었다
굼벵이처럼 기어 온 인민군 전차
미국의 재빠른 참전
남침 초기, 인민군의 성공 및 실패 이유
유엔군 인천 상륙으로 전세 대역전
김일성 평양 탈출
중공군, 압록강을 건너다
패전 책임 전가 위해 노심초사
적당한 선에서 휴전
피의 숙청, 정적(政敵) 소탕작전
소련공산당 20차 대회의 파장
‘주체의 왕국’ 완성하다
제6장 박정희와 김일성을 배출한 만주
유럽으로 열린 창, 만주
제1차 세계대전과 일본
만주는 일본의 생명선?
만주국의 한인들, 2등 국민으로서의 가능성과 한계
만주 산업개발 5개년계획 추진하다
박정희와 김일성의 대결
남북 국력의 역전
김일성 연보
주
참고문헌
김일성의 주요 활동지역도
P.97 : 소영웅심이 강했고, 민족주의적 성향이 있던 아버지 김형직의 피를 이어받은 김성주는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중국 공안경찰대장에게의 재가로 인해 비뚤어진 심성에 공산주의 사상이 스며들면서 과격 테러분자로 거듭나게 된다. 이런 과격 테러분자에게 있어 공권력의 힘이 미치지 않는 만주는 그야말로 가슴 뛰는 자기 세상이었다.
P.114 : 만주라는 공간은 한민족의 현대사에서 의미심장한 두 개의 그룹을 배양해냈다. 한 그룹은 중국 국적을 취득하고 중국공산당에 소속되어 동북인민혁명군(후에 동북항일연군)의 일원으로 빨치산 무장활동을 벌였다. 그 반대쪽에 만주군관학교(봉천·신경), 혹은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일본(혹은 만주국) 국적자로서 만주군(혹은 일본 관동군) 소속으로 동북항일연군과 싸웠다.
만주라는 동일한 공간에서 일제의 편에 섰던 그룹은 후에 대한민국 국군의 주역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정부의 핵심 요직을 구성하게 된다. 반면에 중국공산당과 소련군 편에 서서 일제와 투쟁한 그룹들은 후일 북한으로 들어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설의 핵심이 된다.
P.369 : 로마넨코 사령부는 이 사실을 모스크바에 보고하고 당 중앙의 승인을 얻어 김성주를 김일성으로 둔갑시키는 공작을 치밀하게 준비했고, 이 공작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자 10월 12일 저녁 평남 인민정치위원회 위원들에게 먼저 선을 보이고, 10월 14일 일반에 공개키로 한 것이다. 당시 일반인들은 불세출의 항일영웅 김일성 장군은 연세가 이미 노경에 이르렀을 것이고, 기골이 장대하며 위풍당당한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모로 보나 대중들의 상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30대의 새파란 젊은이가 남에게 얻어 입은 것 같은 양복 차림으로 나타나 “김일성 장군”이라고 소개하자 참석자들은 눈을 의심했다. 이날 김일성을 첫 대면한 사람들은 나이가 젊다든가 하는 점보다도 그 인품, 풍체 자체가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나 초라한 데 놀랐다.
저자 : 김용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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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황교안 2017>,<대구 10월 폭동 / 제주4·3사건 / 여·순 반란사건>,<시간을 달리는 남자> … 총 20종 (모두보기)
소개 :
대전고, 중앙대 문예창작과, 경남대 북한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조선일보> 기자, 시사월간지 <월간조선> 편집장, 경기도 대변인, 경기콘텐츠진흥원 감사를 역임했다. <월간조선> 기자로 활동하며 50여 개 국 현지취재를 통해 전·현직 국가원수 네 명을 특종 인터뷰했다. 황장엽 망명사건 특종보도로 제1회 대한민국 언론상 수상, 2008년 해양사상 보급에 공헌한 공로로 장보고대상을 수상했다. 2013년 『이승만과 기업가 시대』로 전경련 시장경제대상 우수상, 2015년 『대한민국 건국의 기획자들』로 전경련 시장경제대상을 수상(공동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이승만과 기업가 시대』(북앤피플), 『이승만의 네이션 빌딩』(북앤피플), 『이승만 깨기』(공저·백년동안), 『시간을 달리는 남자』(공저·백년동안), 『한강의 기적과 기업가 정신』(프리이코노미스쿨), 『김일성 신화의 진실』(북앤피플), 『대구 10월 폭동, 제주 4·3사건, 여순 반란사건』(백년동안), 『자유주의 틀 깨기』(백년동안), 『재미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전3권·월간조선), 『조선 5백년 역사대탐험』(동방미디어) 등이 있고, 이승만 대통령이 감옥에서 쓴 『청일전기』를 번역 해제했다.
우리의 복잡한 근현대사는 남과 북의 관점, 즉 일국사적 관점이 아니라 세계사적, 동북아 관계사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진정한 그림이 그려지게 된다
오늘날 남북 대결의 철학적 뿌리는 ‘항일’이다. 항일을 했느냐, 안 했느냐. 여기서 수세로 몰리면 한쪽은 항일세력이 만든 국가라는 정통성과 민족적 권위를 선점하게 되고, 반대쪽은 친일 민족반역자들이 세운 국가라는 낙인과 오물을 뒤집어쓰게 된다.
항일을 하되 외교적이고 문화적이고 교육적으로 했느냐, 아니면 화끈하고 선명하게 무장 투쟁의 방식으로 했느냐. 이것은 후자가 절대적 도덕적 권위를 쟁취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만주에서의 항일 무장 독립운동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신화가 됐고, 금단의 영역이 되었다. 이 부분을 잘못 건드리거나 그 정신을 훼손하면 가차 없이 ‘친일’의 주홍글씨가 새겨진다. 따라서 이 주제는 거의 종교의 영역이나 다름없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다.
김일성을 수식하는 용어를 분해해 보면 ‘만주’ ‘항일’ ‘무장 독립운동’ 등 세 덩어리로 의미가 분절된다. 필자는 역사적 기록을 통해 그 세 덩어리의 실체를 추적한다. 쓸 데 없는 선입관이나 가치관을 버리고 그 의미를 추적하면서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만주라는 공간에서 비슷한 시기에 한반도의 남과 북의 운명을 가른 지도자 그룹이 형성됐고,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혹은 자유민주주의자)들 간에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한 분단의 유전인자들이 이미 1920~30년대부터 싹트기 시작했으며, 이데올로기의 진영 대립에 외세가 개입되어 복잡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의 복잡한 근현대사는 남과 북의 관점, 즉 일국사적 관점이 아니라 세계사적, 동북아 관계사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진정한 그림이 그려지게 된다.
북한의 지도자가 된 김일성이란 존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벽은 김일성은 대체 몇 명인가 하는 점이다. 김일성이란 이름의 한자 표기가 네 가지나 혼재(金日成·金一成·金一星·金日星)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본명인 김성주도 한자 표기가 세 가지(金聖柱, 金成柱, 金誠柱)나 된다.
여러 학자들의 노력 끝에 구한말 대한제국의 멸망기에서부터 일제하 만주 일대에서 활동했던 김일성이란 이름을 사용한 항일 독립운동가나 공산빨치산 활동가를 찾아낸 것을 취합하면 총 11명이다. 이 중에서 북한의 지도자가 된 김일성으로 추론할 만한 인물군은 세 명 정도로 압축된다.
워낙 학자들의 견해가 상반되어 김일성이 한 명이었는지, 아니면 세 명(제1의 김일성, 제2의 김일성, 김성주)인지도 명쾌하게 결론을 낼 수 있는 사료는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아 헷갈리게 만든다. 어쨌거나 김일성이 한 명이었는지, 세 명인지의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오늘날 북한은 김일성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모든 인물들의 행적을 북한 지도자 김일성 한 사람의 업적으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김일성 신화는 그 출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허위, 거짓, 조작, 날조, 남의 것 가로채기, 과장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그 무시무시한 거짓의 숲에서 자료와 증언을 통해 진실을 추적하는 작업
따라서 이 책에서는 북한이 ‘경애하는 수령님’으로 떠받드는 김일성의 행적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구성을 했다. 그 총합으로서의 김일성의 생애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만주에서의 항일 무장 독립운동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신화가 됐고, 금단의 영역이 되었다. 이 부분을 잘못 건드리거나 그 정신을 훼손하면 가차 없이 ‘친일’의 주홍글씨가 새겨진다. 따라서 이 주제는 거의 종교의 영역이나 다름없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다.
김일성을 수식하는 용어를 분해해 보면 ‘만주’ ‘항일’ ‘무장 독립운동’ 등 세 덩어리로 의미가 분절된다. 필자는 역사적 기록을 통해 그 세 덩어리의 실체를 추적한다. 쓸 데 없는 선입관이나 가치관을 버리고 그 의미를 추적하면서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만주라는 공간에서 비슷한 시기에 한반도의 남과 북의 운명을 가른 지도자 그룹이 형성됐고,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혹은 자유민주주의자)들 간에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한 분단의 유전인자들이 이미 1920~30년대부터 싹트기 시작했으며, 이데올로기의 진영 대립에 외세가 개입되어 복잡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의 복잡한 근현대사는 남과 북의 관점, 즉 일국사적 관점이 아니라 세계사적, 동북아 관계사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진정한 그림이 그려지게 된다.
북한의 지도자가 된 김일성이란 존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벽은 김일성은 대체 몇 명인가 하는 점이다. 김일성이란 이름의 한자 표기가 네 가지나 혼재(金日成·金一成·金一星·金日星)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본명인 김성주도 한자 표기가 세 가지(金聖柱, 金成柱, 金誠柱)나 된다.
여러 학자들의 노력 끝에 구한말 대한제국의 멸망기에서부터 일제하 만주 일대에서 활동했던 김일성이란 이름을 사용한 항일 독립운동가나 공산빨치산 활동가를 찾아낸 것을 취합하면 총 11명이다. 이 중에서 북한의 지도자가 된 김일성으로 추론할 만한 인물군은 세 명 정도로 압축된다.
워낙 학자들의 견해가 상반되어 김일성이 한 명이었는지, 아니면 세 명(제1의 김일성, 제2의 김일성, 김성주)인지도 명쾌하게 결론을 낼 수 있는 사료는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아 헷갈리게 만든다. 어쨌거나 김일성이 한 명이었는지, 세 명인지의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오늘날 북한은 김일성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모든 인물들의 행적을 북한 지도자 김일성 한 사람의 업적으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김일성 신화는 그 출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허위, 거짓, 조작, 날조, 남의 것 가로채기, 과장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그 무시무시한 거짓의 숲에서 자료와 증언을 통해 진실을 추적하는 작업
따라서 이 책에서는 북한이 ‘경애하는 수령님’으로 떠받드는 김일성의 행적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구성을 했다. 그 총합으로서의 김일성의 생애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간 이래 평양 창덕학교 2년, 독립군이 세운 화성의숙 6개월을 제외하고는 모든 교육을 중국 학교에서 받았다. 아버지 덕에 어린 시절 중국 국적도 취득했다.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중화사상의 세례를 받았다. 중국 학교에서 배우고 익힌 중국어는 만주 일대에서 마적질과 공산당 활동을 하는 데 있어 유용한 무기가 되었을 것이다.
민족주의적 성향의 활동을 했던 부친 김형직이 공산주의자들의 테러로 죽고, 모친 강반석이 어린 세 아들을 먹여 살리겠다고 만주의 공안대장에게 재가를 하면서 사춘기 소년 김일성의 인생이 크게 빗나가기 시작한다. 중국인 양부(養父)의 지원으로 길림 육문중학에 입학했으나 공산주의 서클 활동에 휘말려 중퇴한 이후, 그는 이종락 일파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금 명목으로 강제 세금 징수, 테러와 살인을 일삼았고, 독립운동가 양세봉 장군이 보낸 고동뢰 소대를 몰살하고 도주했다. 이 와중에 살 길은 공산 항일부대에 가담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 인생 전환을 하게 된다.
1933년 9월 동령현성 전투에 공산유격대의 일원으로 참가하면서 빨치산 생활을 시작한 이 청년은 때로는 김성주로, 때로는 김일성이란 가명으로 활동하며 중국인 직속상관들의 총애를 받았을 것이다. 왜냐면 당시 공산유격대 활동에 종사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문맹이었다. 그나마 중학 교육을 받아 중국어와 한문을 읽고 쓸 줄 아는 김일성의 존재는 매우 귀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가 중국공산당 유격대 내의 한인 간부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는 민생단의 광풍에서 살아남은 것은 동료나 상관들을 처절하게 밀고하거나, 중공당으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얻는 주구(走狗) 역할을 충실히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북한이 요란하게 떠드는 김일성은 그 존재가 한 명이든 여러 명이든 그것은 중요한 팩트(fact)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는 그가 어떤 항일투쟁을 했고, 한민족 역사발전 과정에서 순기능을 했는가, 그 반대인가의 여부다.
김성주는 어린 시절부터 만주라는 거친 환경과 질풍노도의 소용돌이 역사에 맨몸으로 노출되어 국가관이나 역사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상태에서 중화사상에 지배되었고, 만주 일대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마적질과 인명 살상을 일삼았다. 중국공산당 유격대의 빨치산으로 입산한 그는 만주 지역 일대를 살인자로서 도망 다니던 시기에 체득한 거친 폭력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중국공산당 간부들에게 충성을 바쳤고, 자신의 국적인 중국에 충성했으며, 중화 조국(祖國) 옹호와 실지 동북(失地東北)의 회복을 위해 불철주야 활동했다.
중국 국적자로서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중화 조국의 옹호와 실지 동북의 회복 투쟁에 앞장서다가 중국을 탈출하여 소련으로 넘어가 소련군 소속이 된 그는 재빨리 사태의 본질을 파악한다. 자신이 섬겨야 할 상국(上國)과 충성을 바쳐야 할 상대를 중국과 중국공산당에서 소련과 소련공산당으로 재빨리 바꾼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고, 소련군이 북한에 진주하여 군정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북한 지역에 공산 위성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내세울 지도자가 필요했다. 평양 주둔 소련군 제25군 사령부는 분위기를 파악해 보니 조선공산당의 지도자 박헌영은 서울에 있었고, 38선 이북 지역에는 믿을 만한 공산당원을 찾기 힘들었다.
지도자 후보로 여러 인물을 물색하던 중 하바로프스크에서 자신들이 군사첩보 공작원으로 양성한 김일성, 즉 김형직의 아들 김성주(金聖柱)를 발견하게 된다. 소련군정 사령부 첩보국과 특수선동부는 김성주의 출생지에서부터 가족사항, 학력, 성분, 중국공산당 입당과 활동사항, 빨치산 활동 등 그에 대한 일체의 신상조사를 끝냈다.
소련군정은 그의 본명이 김성주였고, 만주 지방에서 항일 빨치산운동을 벌인 것은 사실이지만, 혁혁한 공을 세웠는지에 대해서는 근거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진짜 항일 빨치산 운동에 공을 세운 또 다른 ‘김일성 장군’이 있다는 풍문이 조선 인민들에게 널리 퍼진 가운데 조선 인민들은 해방된 조국에 그 장군이 개선하기를 고대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소련군정 사령부에서 일했던 박길용의 회고의 의하면 두뇌 회전이 빠른 정치사령부의 젊은 장교들은 바로 여기서 ‘미래의 수령’ 만들기 작전을 찾아야 한다고 지도부에 건의했다. 이 와중에 김성주(金聖柱)라는 자는 보천보를 습격하여 유명해진 김일성의 본명인 김성주(金成柱)와 발음이 같고, 러시아어나 로마자로 쓰면 완전히 동일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베리아의 소련 첩보부대는 연령차를 무시하고 김성주(金聖柱)를 김성주(金成柱)로 바꿔치기하여 그를 ‘김일성 장군’으로 날조한다. 스탈린에게 김성주(金聖柱)를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적극 추천한 인물은 당시 실력자 베리아였다.
스탈린은 1945년 9월 초, 베리아가 추천한 김성주(金聖柱)를 모스크바로 불러 크렘린궁 별장에서 4시간 동안 면접을 본 후 즉석에서 “이 사람이 좋다. 앞으로 열심히 해서 북조선을 잘 이끌어가라. 소련군은 이 사람에게 적극 협력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1945년 9월 18일 소련군은 김성주에게 소련군 대위 계급장을 단 군복을 입혀서 평양으로 데려와 조선인민들 마음 속에서 ‘전설의 항일투쟁의 영웅’으로 불리던 김일성 장군으로 둔갑시켜 북조선의 수령에 오르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의 본명은 김성주(金聖柱)에서 김성주(金成柱)로, 가명은 김일성 장군으로 둔갑하게 된다.
그가 소련군의 무등을 타고 입북하여 북한의 실권을 쥐고 조선노동당을 창건하면서 그는 3중 국적 및 3중 당적자가 되었다. 그는 소련군정 하에서 소련군 대위 및 소련공산당 하급당원으로서 상전인 소련군과 소련공산당의 지시를 받아 북한에 소련 위성 공산국가 수립에 앞장섰던 인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것이 김일성이 수행했다는 항일 무장투쟁의 숨길 수 없는 민낯이다. 이 정도의 허접한 선전선동에 대해 제대로 된 연구조차 하지 않고 무방비상태로 방치함으로써 우리는 저들의 가짜 항일투쟁에 속수무책으로 속아 넘어갔고, 저들의 선동에 발목을 잡혀 도덕적 권위를 훼손당해 왔다.
소련군에 업혀 들어온 김일성은 소련군 지도부와 소련공산당 당중앙(스탈린), 그리고 소련공산당 정치위원회의 지령을 받아 북한에 분단된 공산 위성국가를 수립하고 그 수령에 올랐고, 스탈린을 부추겨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벌였다. 이 전쟁이 국제전으로 비화하여 수백만 명이 죽고 다치는 비극을 연출했고, 38선은 휴전선으로 분단이 고착화 되었으며, 분단의 역사는 오늘까지 길고도 잔인하게 이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김일성이란 존재를 무방비 상태로 방임하는 바람에, 그가 조작해 낸 거대한 신화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횡행하도록 만들었고, 그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정신질환자들을 양산하도록 방치했다.
아직도 우리는 김일성이란 인간이 한 명인지 세 명인지 알지 못한다. 그가 보천보 습격을 지휘한 인물인지 아닌지도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아마 명쾌하게 그의 존재의 진실을 입증하는 자료는 중국공산당과 소련공산당 비밀문서고에 잠자고 있을 것이다.
괴물처럼 돌연변이를 일으킨 한 인간의 끝없는 권력욕이 북한이라는 국가 전체를 빨치산 아지트로 변모시켰고, 병영국가가 되었으며, 지구상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왕조세습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김일성 신화는 그 출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허위, 거짓, 조작, 날조, 남의 것 가로채기, 과장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그 무시무시한 거짓의 숲에서 자료와 증언을 통해 진실을 추적하는 작업을 진행한 것이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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