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1

알라딘: 재일의 틈새에서 | 김시종 (지은이),윤여일 (옮긴이) 2017

알라딘: 재일의 틈새에서


재일의 틈새에서 | 동아시아 라이브러리 3
김시종 (지은이),윤여일 (옮긴이)돌베개2017-12-29
원제 : 在日のはざまで (2001년)































Sales Point : 142

9.3 100자평(3)리뷰(1)


- 절판 확인일 : 2023-02-14

404쪽
책소개
재일조선인으로서 실존적 고민을 사상적으로 깊이 일구어온 시인 김시종의 평론.에세이집이다. 일제의 식민지배와 해방, 제주 4.3사건, 일본으로의 탈출과 한국전쟁, 공산당 활동 등 역사의 파도에 온몸으로 함께했던 김시종.

이 책은 특히 도일 후 이십여 년간 사회주의 활동에 매진했던 시인이 조총련과 결별한 뒤 일본 공립 고등학교에서 조선어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에 쓴 산문을 한데 엮은 것으로 재일조선인으로서 당대 사회를 향한 치열한 자의식과 통찰이 응축되어 있다. 제40회 마이니치출판문화상(인문사회 부문) 수상.


목차


한국어판 서문

제1장 일본어를 살며
클레멘타인의 노래 | 내가 만난 사람들 | 일본어의 두려움 | 흔들리는 인광 | 이어 부르는 노래의 슬픔 | 지금이야말로 정신의 시간 | ‘붐’의 그림자에 | 잿빛 햇살 아래서 | 자기복원에의 희구 | 해학, 조선의 이 내밀한 웃음 | ‘추’를 사는 사상 | 김지하의 시를 떠받치는 것

제2장 끊어 잇다
‘연대’에 대하여 | 조선인의 인간 복원 | 결락의 토용 | 뼛조각 생각 | 망령의 서정 | 두 가지 광기 | 으레 하는 것, 흔히 있는 것, 의심하는 것 | 뒈져라 기호품! | 정치와 문학 | 남북조선 ‘융화’ 속의 단층 | 포개진 음화

제3장 세대에 빛을
드러내는 자와 드러나는 자 | 조선어와 만난 사람들 | 왜 ‘조선어’인가 | 차별 속의 기점과 시점 | 본명을 가로막는 것 | 재일을 잇는 생리언어 | 이카이노의 연말 | 차별어에 대하여 | 광주사태의 안과 밖 | ‘60억 달러’에 얽힌 것 | 전망하는 재일조선인상

초판 후기 | 헤이본샤 라이브러리판 후기 | 해설: 강인하고 섬세한 지혜(호소미 가즈유키) | 역자 후기: 틈새와 지평 | 연보 | 찾아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김시종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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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부산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자랐다. 1948년 4·3항쟁에 참여해 이듬해인 1949년 일본으로 밀항해 1950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일본어 시를 쓰기 시작했다. 재일조선인들이 모여 사는 오사카 이쿠노生野에서 생활하며 문화 및 교육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53년 서클지 『진달래』를 창간했으며 1959년에는 양석일, 정인 등과 『가리온』을 창간했다. 1966년부터 ‘오사카문학학교’ 강사 생활을 시작했다. 1986년 『‘재일’의 틈에서』로 제40회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1992년 『원야의 시』로 오구마 히데오 상 특별상, 2011년 『잃어버린 계절』로 제41회 다카미 준 상을 수상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의 특별조치로 1949년 5월 이후 처음으로 제주도를 찾았다. 시집으로는 『지평선』(1955), 『일본풍토기』(1957), 『장편시집 니이가타』(1970), 『이카이노시집』(1978), 『원야의 시-집성시집』(1991), 『화석의 여름』(1999), 『경계의 시』(2005), 『재역 조선시집』(2007), 『잃어버린 계절』(2010), 『등의 지도』(2018) 등이 있다. 접기

수상 : 2022년 아시아문학상
최근작 : <일본풍토기>,<재일(在日)을 산다>,<이카이노시집 외> … 총 11종 (모두보기)

윤여일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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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방문학자로 베이징에서, 도시샤대학 객원연구원으로 교토에서 체류했다.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로 제주에서 지내고 있다. 『물음을 위한 물음』, 『광장이 되는 시간』, 『사상의 원점』, 『사상의 번역』, 『동아시아 담론』,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상황적 사고』, 『여행의 사고』(전3권)를 쓰고, 대담집 『사상을 잇다』를 펴냈으며,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전2권),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 더보기

최근작 : <모든 현재의 시작, 1990년대>,<‘경계’에서 본 재난의 경험>,<공동자원의 영역들> … 총 4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재일(在日)을 살아가는 사상’은 무엇인가
가혹한 운명에 저항하는 문학 정신, 김시종의 에세이와 평론

『재일의 틈새에서』는 재일조선인으로서 실존적 고민을 사상적으로 깊이 일구어온 시인 김시종의 평론·에세이집이다. 일제의 식민지배와 해방, 제주 4.3사건, 일본으로의 탈출과 한국전쟁, 공산당 활동 등 역사의 파도에 온몸으로 함께했던 김시종. 이 책은 특히 도일 후 이십여 년간 사회주의 활동에 매진했던 시인이 조총련과 결별한 뒤 일본 공립 고등학교에서 조선어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에 쓴 산문을 한데 엮은 것으로 재일조선인으로서 당대 사회를 향한 치열한 자의식과 통찰이 응축되어 있다. 제40회 마이니치출판문화상(인문사회 부문) 수상.

‘재일’이라는 사상의 시인, 김시종의 산문 세계

‘사상(思想)시인’이라고도 불리는 재일조선인 김시종. 그는 시인이야말로 가장 선진적이고 가장 전위적인 의식의 소유자이어야 하며, ‘익숙해진 일상으로부터의 이탈’, 그리고 그 ‘익숙해진 일상’과 대치하는 일이 시를 낳는 원동력임을 강조해왔다.
뒤틀린 일본과 한반도 사회를 비추는 그의 서늘한 시선과 시 세계는 『원야의 시』(原野の詩)가 제25회 오구마 히데오 상 특별상을, 『잃어버린 계절』(失くした季節)이 다카미 준 상을 수상하는 등 높은 평가와 조명을 받아 왔다. 장편시집 『니이가타』(新潟)를 비롯한 그의 작품은 일본어로 썼으면서도 반일본적 서정성과 리듬을 강조한 독특한 글로 응축된 표현의 지평을 열었다. 한편 최근 펴내어 오사라기 지로(大佛次?) 상을 수상한 자전 『조선과 일본에 살다』(2015, 한국어판 돌베개 출간)는 평생 가슴 깊이 봉인해왔던 제주 4?3의 기억을 특유의 문체로 풀어낸 회고록이었다.
자라온 제주에서 벌어진 4?3의 광풍 속에서 목숨을 걸고 일본으로 탈출해 오사카에 정착하게 된 재일 1세대인 그는 누구보다 먼저 ‘재일을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실존적 문제에 깊이 천착해 왔다. 그렇기에 자신이 살고 있는 일본과 조국 조선의 현실에 무관심할 수 없는 시인이기도 했다.

“김시종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얼굴과 표정을 대면하는 일, 어떤 눈물과 핏자국을 엿보는 일, 어떤 절규와 발자국 소리를 엿듣는 일이다. 그러다가 그 언어의 단편을 대하고 있는데 일순 불가사의한 각도에서 새로운 사유의 단편이 나를 쳐다보는 일이다. 김시종의 작품은 읽는 자와 그렇게 서로를 비추는 관계 맺기를 욕망하는 듯하다.” ―역자 후기

이 책 『재일의 틈새에서』(‘在日’のはざまで)는 김시종이 1971년부터 작성한 평론과 에세이를 모은 산문집이다. 제주에서부터 매진했던 사회주의 활동을 일본에서도 적극적으로 이어 갔던 그는 차츰 강화되는 김일성 우상화와 획일주의에 반발했다가 십 년간 조총련 조직으로부터 표현행위 봉쇄를 당한다. 스스로 그 굴레를 박차고 나온 그는 이후로도 줄기차게 쓰고, 말했다. 남한과 북한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기에 ‘재일조선인’으로 남은 그는 1973년부터는 재일외국인 최초의 공립학교 교사가 되어 15년 동안 일본 학교에서 조선어를 가르치는 ‘대단히 의미 있는 시간의 중심’에 서 있기도 했다. 이 책 『재일의 틈새에서』는 바로 그 시기에 벼려진 김시종의 정신이 담긴 글들이다. 이 책에서 그가 말하는 재일의 ‘틈새’란 조국과 거주국 사이의, 남과 북 사이의 명료한 경계선이 아니라 여러 사상과 인물들이 복잡하게 맺히는 공간이다. ‘재일의 틈새’ 그 자체이기도 한 그의 글들 안에서는 박정희, 김지하, 김희로, 서승, 고교생 H, 윤동주, 미시마 유키오, 연합적군, 오키나와, 체 게바라를 비롯한 여러 이름이 북적이고 서로를 비추며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온몸으로 겪어낸 20세기의 역사, 디아스포라의 삶

김시종은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태어나, 4·3사건에 휘말려 1949년 일본으로 탈출하기 전까지 소년 시절 대부분을 어머니의 고향인 제주에서 보냈다. 해방 전까지 그는 그야말로 황민화 교육이 길러낸 제국의 소년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일본 동요와 군가에 흠뻑 빠졌으며, 집에서도 일본어를 쓰지 않는 부모를 답답해했고, 전차병 학교에 지원하여 천황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어 했다. 한글은 한 글자도 쓸 줄 모르고 ‘식민지 지배’ 같은 말은 들어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외골수 ‘황국소년’이었다. 그러던 1945년, 열일곱의 그는 자기 나라라는 의식조차 없었던 조선으로 ‘떠밀려오듯’ 해방을 맞이한다.
해방공간이 펼쳐진 이후의 제주에서 그는 조국에 일익이 되고자 하는 의지와 판단으로 좌익활동에 매진한다. 그리고 참혹한 4?3이 몇 년에 걸쳐 제주를 피로 물들인다. 2015년에 펴낸 자전 『조선과 일본에 살다』에서 그는 비로소 그 현장에 있던 자신을 놀라울 만큼 정밀하고 생생하게 증언한 바 있다. 당시 남로당 연락책이었던 그는 목숨을 구하기조차 어려워진 제주에서 부모가 절박하게 마련해 준 수단으로 1949년 5월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탈출한다.
그렇게 일본에 ‘불법입국’한 그는 오사카의 재일 집단거주지 이카이노(猪飼野)에 깃들여 살게 된다. 불안과 가난이 뒤얽힌 디아스포라의 공간 속에서 차츰 삶의 자리를 잡아나가게 된 그는 한국전쟁이 치러지던 1950년 무렵부터는 일본공산당에 가입해 사회주의 운동을 이어가는 등 활발한 사회, 문학 활동을 이어나갔다.
본래 ‘북조선’으로 가고자 했던 그였으나, 김일성 우상화와 조총련의 북한 편향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1957년 그는 조총련으로부터 조직적 비난을 받고 ‘코스모폴리탄적 허무주의자’로 낙인 찍혀 십 년간 고립된 채 일체의 표현 행위를 가로막힌다. 1959년에는 일본공산당에서 이탈했고, 1970년에 는 조총련의 조직적 규제에서 완전히 빠져나온다. 한편 그에게 한국은, 남로당 활동 경력뿐 아니라 이후로도 군사정권을 비판하는 평론을 잇달아 쓰고, 5·18 광주항쟁에 관한 시집 『광주시편』을 펴낸 이력으로 인해 돌아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렇게 그는 이카이노에서 계속해서 일본어로 일본과 한반도 사회를,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실존을 직시해 나간다.

보복하고 대결하는 시인의 언어, 조선어와 일본어

시인 김시종에게 일본어란 자신의 감성과 사고체계를 길러낸 정다운 모국어와도 같은 언어였던 동시에 ‘국어’로서 강제되었던 식민지 종주국의 언어이기도 했다. 이후 그는 조국의 현실과 사회의식에 눈을 떠 민족의 말과 글, 문학을 왕성하게 배워나갔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학생운동과 남로당 활동에 투신하는 등 커다란 사상적 전환을 겪는다. 그러나 그런 그가 ‘해방’되어 떨어져 나왔던 일본에서 결국은 생의 대부분을 살아가며 일본어로 말과 글을 써나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사실은 재일시인 김시종이 끊임없이 의식하고 대결해야 하는 쓰라린 조건이자 아이러니였다. 김시종에게 ‘일본어’는 모어도 모국어도 아닌, 식민지 지배 아래서 무방비로 받아들이고 만 ‘지배자의 언어’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잘 통하는 유창한 일본어가 아니라 일본어에 대한 위화감을 계속 표명하고자 하는 일본어다. 의지적으로 선택해 긴 세월에 걸쳐 철저히 조탁한 위화감, 그것이 ‘일본어에 대한 보복’이라고 그는 말한다. 일본어로 적히는 김시종의 문장 속에는 늘 절실한 투쟁이 그 자체로 직조되어 있다.

나는 내 요람 시절의 꿈을 가득 품고 있는 일본어를 버릴 마음이 전혀 없다. 과중한 규제를 받으며 습득한 일본어를, 일본인을 향한 최대의 무기로서 나는 구사하고 싶다.” “일본인의 시각, 일본인의 감성, 일본인의 사유를 깨뜨리는 무기로 삼는 것이다.

일본어와의 투쟁과 ‘재일’의 의미에 대한 고민을 품은 채 1973년 9월 마흔셋의 김시종은 재일 외국인으로서 첫 공립고등학교 교원이 되어 효고현립 미나토가와고교에 부임하면서 또 하나의 국면을 맞는다. 일본의 공립학교에서 그는 최초로 정규 과목이 된 조선어를 교사로서 가르치게 된다. 이 시기 교단 현장에서 있었던 생생한 경험과 고민이 『재일의 틈새에서』에는 여러 편의 글에 걸쳐 담겨 있다. 조선인이나 피차별 부락 출신이 다수인 학생들 사이에서 진보된 해방교육을 해나가는 자부심 가운데서도 ‘우리가 왜 조선어를 배워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조선어가 비로소 자신에게 복수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그의 자괴감은 일본 사회에 내재한 여러 소수자들에 대한 일본 사회의 ‘차별’이라는 문제로 나아간다. 그러한 가운데서 차별-피차별의 이항을 고정적으로 인식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한 정신적 전환의 방향을 대담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는 ‘재일’에 대한 그의 궁극적 물음과도 이어진다.

김시종의 명제, ‘재일을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어떻게 사고해야 재일을 산다는 것의 의미에 다다르고, 재일의 실존을 어떻게 펼쳐야 재일 세대의 전망이 설 것인가. 재일이라는 근대 백 년의 역사가 뒤얽힌 일본에서 거주하면서 분단이라는 민족적 시련에 시달리는 조국의 역사적 운명에 닿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나는 왜 재일조선인인가.

김시종은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가면서 일본으로 귀화하지도 한국으로 귀의하지도 않았다. 그가 조선적을 유지함으로써 그는 일본 사회에서 조선인으로 남겠다는 의지와 동시에, 동족학살 위에 미국이 만들어낸 반공국가 한국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뜻을 견지했다.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살면서 조국과 거주국, 남과 북 사이의 재일이라는 틈새를 새로운 생활의 거처로 삼고자 했다. 조국에서 떨어져 있다는 조건을 열등감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바로 그 지점에서 문화 창조를 일구는 데 따르는 고뇌를 끌어안고자 했다. 이러한 물음 앞에서 그는 ‘재일’의 현재와 미래를 직시하면서, 다음 세대에 ‘재일’의 조건을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방향으로 제시하는 길잡이로서도 일조하고자 하고 있다. 이는 그가 시인으로서 추구해온 궁극적인 지향점과도 맞닿는다.

재일조선인에게 ‘조선’이란 ‘재일’입니다 젊은 재일 세대들이여, ‘재일’을 사는 것에 확신을 만들어 냅시다. 고유의 전통 관습에서 끊겨져 있더라도 그것이 곧 부채가 되는 게 아니라, 우리는 본국에조차 없는 것을 갖고 있으니 그것을 들여옴으로써 풍부해져야 할 전통을, 관습을, 끝내는 사상마저 만들어 내는 ‘재일’의 ‘시작’에 서기로 합시다. 본국을 흉내 내서 ‘조선’에 이르는 게 아니라, 이를 수 없는 조선을 살아 ‘조선’이어야 할 자기를 형성합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김시종은 ‘재일을 산다’는 것의 복잡한 의미를 대단히 주체적이고 선구적인 방향으로 제시해 내기에 이른다. 일본인으로의 ‘귀화’나 조선인으로서의 ‘귀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당하는, 함께 살아가고 있는 재일 세대들에 대해 김시종은 조국 분단의 상태에서 “재일이야말로 통일을 산다”고 단호히 선언한다. 그의 시와 글, 표현들 하나하나가 ‘통일’의 현 좌표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평론.에세이선 『재일의 틈새에서』는 시인 김시종의 치열한 정신이 산문적으로 가장 생생하게 있게 드러나 있는 한 권이다. 어떤 이들은 ‘강제연행’으로, 또 어떤 이들은 ‘난민’이 되어, 혹은 살 길을 찾아 태어난 고향에서 멀어져 다른 문화권에서 모어와는 다른 언어를 생활언어로 삼아 살게 된 디아스포라의 시대에 ‘재일’이라는 통절한 체험에서 추출해 낸 김시종의 지혜와 표현은 말을 빼앗긴 무수한 개인들의 소리를 명징하게 이어 내고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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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日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서경식이 어딘가에 쓴 것처럼, 이런 책에는 ‘해설‘을 덧붙일 수 없다. 다만 ‘응답‘할 수 있을 뿐이다. ‘응답한다‘는 것은 ‘지나쳐버리거나 간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남한 사회가 취해 왔던 ‘태도‘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일 것이다.
생쥐스뜨 2018-08-28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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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만 틈새에서 살았을까?


책읽기 삶읽기 339

재일조선인만 틈새에서 살았을까?
― 재일의 틈새에서
김시종/윤여일 옮김
돌베개, 2017.12.29.

(일제강점기에) 외아들이 해를 입을까 봐 아버지가 조선어로 말을 붙이지 않았다며 훗날 어머니는 거듭 타일렀지만, 황민화 교육만이 나를 맹목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런 만큼 권력이 쥐락펴락하는 ‘교육’의 연약함과 대단함을 생각하게 된다. 또한 거꾸로 식민지 조선에서 압제가 얼마나 가열찬 것이었는지도 과묵한 아버지의, 목에서 막히고 만 말로 알 수 있다. (18쪽)




일제강점기를 살지 않은 사람으로서 그무렵 조선말을 쓸 수 없던 학교나 마을이나 사회를 헤아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낯선 나라에 뚝 떨어져서 하루아침에 그 낯선 나라에서 쓰는 말로만 살아가라고 한다면, 이때에 어렴풋하게나마 지난날 이 땅에서 살던 사람들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을까요.




조선인은 학교나 공공장소에서 조선어를 못 쓰게 된 사태에 그다지 저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뭐 가만히 있는 게 좋다고들 했으니 … 이처럼 아이를 볼모 삼아 조선을 철저히 일본화해 가던 선두에 실은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42쪽)


고약한 냄새가 자욱한 어둑어둑한 흙바닥에는 볏짚만 깔린 채 배가 볼록해 파리가 꼬이는 아이들이 몇이나 있고 반쯤 열린 솥이 변변찮은 아궁이뿐이었습니다. 소작농들이 이런 상태로 살고 있다는 것을, 엎드리면 코 닿을 광주 시내에서 몇 년이나 공부하면서도 몰랐다는 게 충격이었습니다. (46쪽)




식민지인 조선에서는 나라가 조선이었어도 조선말을 쓸 수 없었습니다. 그무렵 한겨레가 쓰던 말은 ‘조선말(조선어)’이라는 이름이었고, 일본 제국주의가 이웃나라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국어’라는 이름을 붙인 말은 ‘일본말(일본어)’이었어요. 그래서 일제강점기 교과서를 보면 ‘조선총독부 국어 교과서’에는 오로지 일본말만 나옵니다. 그때에는 ‘국어 = 일본말’이었으니까요.


그러면 일제강점기에 ‘국사’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무렵 ‘국사 = 일본사’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사’라고 따로 이름을 붙여야 비로소 이 나라 역사였어요.




지문날인을 해야 외국인등록증이 발급되는 규제에서 엿보이듯 일본의 사회질서 속에서 재일조선인은 여전히 치안의 대상이다. 특히 이 사실은 조금도 변할 기미가 없다. (69쪽)


그렇다. 일본의 자위론이 떠올랐다. 타국을 침범하던 일본이 ‘평화’를 위해서라며 입에 올린 게 ‘문단속론’이었다. 즉 보복이 두려운 게 아니겠는가! (200쪽)




재일조선인으로 살아온 발자국을 담은 《재일의 틈새에서》(김시종/윤여일 옮김, 돌베개, 2017)를 읽습니다. 이 책은 일본에서 일본말로 처음 나왔고, 이제 한국말로 옮겨서 새로 나옵니다.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가는 하루란 무엇인가를 그리는 이야기요, 우리한테 나라·뿌리·고향·바탕이란 무엇인가 하고 하나하나 되묻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국어·국사’라는 이름하고 ‘조선어·조선사’라는 이름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참말로 ‘국어·국사’라는 이름은 한겨레도 중국도 대만도 안 썼습니다. 일본에서조차 안 썼지요. 지난날 중국이나 조선이나 일본은 ‘중국어·조선어·일본어’하고 ‘중국사·조선사·일본사’처럼 말했습니다. 이러다가 일본이 제국주의로 치달으며 이웃나라를 식민지로 삼을 적에 ‘국어·국사’라는 이름이 튀어나왔어요. 일본 제국주의가 내세운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울타리를 군홧발로 세우면서 쓰던 이름이 ‘국어·국사’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 이런 이름을 털지 못합니다. 더구나 이 이름에 이런 뜻이 깃든 줄 모르기 일쑤이지요. 그냥 쓰는 말 한 마디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일제강점기 생채기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롯해서 재일조선인이라는 한겨레를 헤아리려 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국어·국사’ 같은 식민지 찌꺼기 이름을 털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일본 시의 전통이 만일 조선 시에 열등감을 느낀다면, 그건 시 한 편이 제대로 죽음에 값한 시인을 갖지 못한 까닭이겠죠. 조선에는 옛부터 시 한 편으로 목숨을 내놓아야 했던 시인이 많았습니다. (139쪽)


나는 재일조선인에게 ‘귀화’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귀화란 원래로 복원되는 것이지, 저기에 있는 체계로 마치 유카타처럼 자신을 다시 감싸는 허위의 소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170쪽)




《재일의 틈새에서》를 쓴 김시종 님은 어릴 적(일제강점기)에 일본말을 제 나라 말인 줄 여기면서 신나게 쓰던 부끄러운 이야기부터 풀어냅니다. 해방을 맞이하면서 벙 뜬 이녁 모습을 고스란히 적습니다. 일본에서 ‘어느 나라 품에 안길 수도 없는 살림’을 지어야 하면서 겪는 고단한 하루를 찬찬히 적습니다.


글쓴이가 들려주는 김희로 이야기란, 재일조선인 지문날인 이야기란, 남북녘으로 갈린 두 정치권력이 저마다 독재로 치닫는 모습을 일본에서 바라보아야 하던 이야기란, 모두 우리 발자국입니다. 같은 겨레가 두 나라가 되어 싸운 지난날도 우리 발자국이요, 우리가 바라지 않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나 떼죽임마저 우리 발자국이에요.




생각해 보면 조선인의 유구한 가락, 애초 군인대오의 행진과는 거리가 멀던 3박자의 장단이 어느샌가 2박자 군화의 울림에 짓밟힌 지 오래다. (318쪽)


전횡을 휘두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뒤를 이은 전두환 대통령, 그것도 석 달 사이에 스스로를 대장으로 끌어올린 전 소장의, 이 또한 악마의 자식이라고밖에 말할 길 없는 처절한 (1980년 광주학살) 포학상을 생각하노라면 ‘조선인’이라는 게 문득 부끄러워질 만큼 기가 죽는다 … 정말로 조선인은 민족적으로 야만적이고 동족 학살을 일삼는 부도덕한 무리들인 것일까? (319쪽)




우리는 스스로 남이며 북으로 가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일본이며 러시아이며 중국이며 중앙아시아로 퍼지지 않았습니다. 총칼에 눌리고 밟히면서 남북이 갈렸고, 곳곳으로 내쫓겨야 했습니다. 이런 우리는 정치권력이 이끄는 대로 군인이 되어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어요. 게다가 군사독재자가 시키는 대로 멀쩡한 사람들을 폭도로 내몰아 끔찍하게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평화로우며 착한 마음이 아닌, 위에서 시키는 대로 휘둘리는 사회였습니다.




‘광주사태’의 피비린내가 아직 가시지 않은 와중에 전두환 장군과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그리운 군가를 함께 노래하며 춤췄다는 감격을 좋아라 ‘회견기’에 적은 도쿄 모 대학의 교수가 있다. 얼마나 반죽이 잘 맞았겠는가! (320쪽)




재일조선인만 틈새에서 살지는 않았다고 느낍니다. 《재일의 틈새에서》를 쓴 김시종 님은 일제강점기에 어린 나날을 보내면서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일본말 잘하는 모범생’으로 지냈다고 해요. 어릴 적에는 이 모습이 얼마나 부끄럽거나 못난 짓인지 하나도 몰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1960년대를 비롯해서 1980년대까지도 이 나라 한국에서는, 학교에서 반공웅변대회를 열었고 민주평화운동은 사회를 어지럽히는 짓이라고 가르치기 일쑤였어요. 저는 1970∼80년대에 어린 나날을 보내면서 학교랑 사회에서 길들인 소름돋는 말을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습니다. 나라가 민주와 평화가 아니라면 틈새살이가 될 뿐이라고 할까요. 민주와 평화를 등진 나라에서는 누구나 틈새살이로 억눌린다고 할까요.


부디 군홧발이 모두 사라지기를, 모든 군국주의와 제국주의가 없어지기를, 이리하여 어깨동무와 따사로운 품이 태어나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북녘에서도 어리석은 낡은 모습을 말끔히 씻어내기를 바랍니다. 2018.3.14.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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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8-03-14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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