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6
[9년 4개월 만에 나온 <제국의 위안부> 관련 형사재판 대법원 판결을 보고]
10월 26일 오전 11시 15분, 대법원 3부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무죄 취지 파기환송. 보도자료를 보니, '원심(항소심) 판결에 대한 전부 파기'입니다. (그 일부를 아래에 붙여둡니다.)
1.
법정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한다'는 선고를 들었을 뿐 아직 대법원 판결문을 보지 못한 상태입니다. 어느 분이 보내준 대법원 보도자료에는 "학문적 표현물로 인한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의 성립 판단 시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인정하는 데에는 신중하여야 한다는 법리를 최초로 설시"하였다고 이번 판결의 '의의'를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학문적 표현물에 관한 평가는 형사 처벌에 의하기보다 원칙적으로 공개적 토론과 비판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선언"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4. 판결의 의의')
제가 줄곧 말씀드려온 바('광장/공론장에서 비판하고 반박하고 논쟁할 일이지 법정으로 갈 일이 아니다, 논쟁의 결과 설사 이 책이 한 부도 안 팔려도 좋지만, 그저 한 학자의 입을 틀어막아버려서는 안 된다')와 일치하고, 사법부의 판단은 이렇게 나와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2.
따라서, 애초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앞세운 고소고발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사건의 본질이 과연 '학문의 자유'(나 심지어 '표현의 자유' 문제?)였던 것인지, 그리고 집필의도와 결과 양쪽 다, 이 책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한 것인지, 저는 여전히 갸웃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이 책은 '식민지지배(민족)'와 '가난(계급)', 그리고 '가부장제'의 모순이 중첩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입체적 재구성이 한 축, 20년 넘도록 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에 앞장서온 정대협 등의 노선이 긍정적 측면과 더불어 이런저런 한계와 오류를 가지고 있다는 운동노선 비판이 또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출간된 지 10개월이 지나서 뜬금없이 나눔의집 쪽에서 320쪽짜리 책 109곳에 밑줄을 쳐서 '명예훼손'으로 고소고발을 하고 나왔고,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 "위안부와 일본군 병사는 동지(적 관계)"라는, 그렇게 말한 적 없는 것을, 혹은 앞뒤 맥락을 잘라버린 채로 따옴표를 붙여 마녀사냥에 가까운 프레임을 씌워버렸지요.
4.
저에게는 '34곳을 삭제하지 아니하고는... 출판, 판매, 배포... 등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가처분신청 결과야말로 참담한 것이었습니다. 논쟁을 하자는 책을 이렇게 잘라버리다니. 이의를 제기했지만, 가처분이니 우선은 '제2판 34곳 삭제판'을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론출판의 자유'란 무엇인가, ('언론출판' 중에 저 '언론'이란 무엇인가,) '출판'이란 무엇인가.
5.
1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야 그저 옆에 있었을 뿐이지만, 저자 박유하 교수는 마녀사냥에 내몰려 몸마음 심하게 상했습니다. 아주아주 뒤늦게나마 나온 오늘의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형사재판 파기환송심, 민사재판 항소심, 가처분신청에 대한 이의신청 재판이 얼른얼른 진행되어 하루빨리 이 굴레를 벗겨내기를 바랍니다.
6.
이 (저에게는) 지극히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 그동안 법정과 공론장에서 뒤집히는 상황들이 많았으니, 마음 졸인 건 사실입니다. 덕분에 대법원(2호 법정)에도 가보고 했습니다만.^^
그건 그렇고, 책을 만드는 저에게는, '제3판 원본 복원판'을 내야 이 사건이 마무리됩니다. 아직도 꽤나 더 걸어가야 합니다만, 그동안 저자 박유하 교수와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 그리고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해 마음을 모아주신 이곳저곳의 여러 분께 고맙다는 인사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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