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내소사를 끝으로 추석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그 전에 이번 여행길에 참 이상한 일이 있었다.
친정집에서 추석날을 보낸 우리 가족은 추석다음 날에는 아빠의 고향인 장흥에 가서 간소한 성묘를 지냈다. 증조할아버지 성묘를 마치고 그 옆의 할머니 묘소에 절을 하고 일어서다가 가족 모두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던 것이다. 천지합일의 관념이 살아있는 시골여자인 내 눈에는 범상한 장면이 아니어서 마음에 새겨졌다.
부안 내소사(來蘇寺)가 무슨 뜻인가 찾아 보았더니 되살아날 소(蘇)자를 쓴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와서 새롭게 소생하리라는 뜻의 절이름이었다.
친정인 장성에서 곧바로 서울로 올라가려다가 갑자기 머릿속에서 부안내소사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무작정 찾아 갔는데 그 풍광과 간직한 뜻이 의미심장하고 좋았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가슴아픈 일이 생기거나 간절해질 때, 절로 떠오르는 옛 기도문처럼 정겹고 신령스러운 내소사였다.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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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ID GC08000463
한자 扶安來蘇寺大雄寶殿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로 243[석포리 268]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미란
[상세정보]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내소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당.
[개설]
내소사(來蘇寺)는 633년(무왕 34)에 혜구 두타(惠丘頭陀)가 세운 절로 원래 이름은 소래사(蘇來寺)였다고 한다. 당시 소래사는 2개의 사찰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대소래사는 불에 타 소실되었고, 소소래사가 남아 현재의 내소사가 되었다.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扶安來蘇寺大雄寶殿)은 내소사의 본 공간에 위치한다.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을 봉안한 불전으로, 1633년(인조 11)에 청민 대사(淸旻大師)가 절을 고칠 때 지은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위치]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은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로 243[석포리 268번지 입암마을] 내소사 경내에 있다. 내소사 전나무길 진입로가 끝나는 지점에 사천왕문(四天王門)이 있고, 사천왕문을 지나면 내소사의 불이문인 봉래루(蓬萊樓)가 나온다. 봉래루를 지나면 내소사 삼층석탑(來蘇寺三層石塔) 뒤로 대웅보전(大雄寶殿)이 자리한다.
[변천]
1633년에 건축되었다.
[형태]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단층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있는 장식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쳐 나온 부재들의 포개진 모습은 우리 옛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잡석으로 쌓은 비교적 높은 축대 위에 낮은 기단을 두고 자연석의 초석(礎石)을 배치하였으며, 그 위에 기둥을 세웠는데 모서리 기둥[隅柱]만 배흘림이고 나머지는 곧은 원기둥[圓柱]이다.
앞면의 기둥 사이에는 중앙 칸에 사분합문(四分閤門)을, 좌우 칸에 분합문을 달았다. 창호에는 정교하게 해바라기꽃과 연꽃, 국화꽃 등의 꽃무늬가 새겨 있는데, 그 새긴 모양이 문마다 다르고 섬세하고 아름다워 목수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대웅보전의 문살은 공예적 가치가 높은 독창적인 장식물로 조선 중기 이후의 건축 양식을 가늠할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요소인데, 수백 년의 세월 속에 채색은 다 지워지고 나무결 무늬만 남아 있지만 만져 보면 감촉이 매우 좋다.
처마를 받친 공포는 다포계이다. 중앙 칸에 3개, 좌우 칸에 2개씩 배치되어 모두 11개의 공포로 결구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외출목과 내출목은 내출목이 1개가 더 많은데,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은 외3출목·내5출목으로 전통 형식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나 쇠서[우설(牛舌)]들이 겹겹으로 중첩되어 뻗어 나와 있는 공포의 구성은 조선 중기 이후의 다포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건물 내부의 5개 출목에 걸쳐진 살미 첨차(山彌檐遮)에는 모두 연봉형을 새겼으며, 소위 운궁(雲宮)이라는 장식적 형태로 변모되어 있다. 정면 중앙 칸 위에 ‘대웅보전’이라고 쓰인 현판이 있다. 현판의 글씨는 조선 후기의 명필인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1705~1777]의 글씨이다.
대들보는 앞뒤 기둥 위의 공포에 걸쳐졌는데 자연 그대로의 굽은 재목을 사용하였다. 대들보 위에 동자형(童子形)의 대공(臺工)을 세워 종보[宗樑]를 받치고 있다. 대들보에서 건물 측면의 가운데 기둥에 걸치도록 각각 2개씩의 충량(衝樑)을 배치하였다. 벽체 윗부분에 있는 부재 끝을 연꽃 봉오리 모양으로 장식하였고, 보머리에는 용이 물고기를 물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 건물의 화사함을 더해 주고 있다. 천장은 우물 정(井) 자 모양으로 짜 맞추어 지붕 윗부분을 가리고 있는 우물천장으로 꾸몄다.
내부의 후불벽(後佛壁)은 측면의 기둥 열에서 약간 뒤로 물러나면서 내부 공간을 확보하였다. 불단 위에는 아미타 구품인을 한 불좌상과 좌우에 보살 좌상을 안치하였고, 그 위에 닫집을 따로 설치하지는 않았다. 후불벽 뒷부분에는 유명한 「백의관음보살좌상」이 있는데, 이 그림은 바위에 앉아 있는 백의를 입은 관음을 묘사한 것으로 조선 말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백색의 천의(天衣)는 중생의 소원을 들어주는 관세음보살의 특징을 잘 잡아낸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후불 벽화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불단의 기둥을 뒤로 물려 넓은 내부 공간을 이루며, 상부의 포작들은 연꽃 봉오리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고 천장에도 가득히 장식을 하였다. 안팎 모두 장식으로 충만해 있지만 적절히 절제되고 통일되어 있어 번잡한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현황]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은 대한불교조계종 내소사의 주 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1963년 1월 21일에 보물 제291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은 보물 제29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웅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내소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來蘇寺木造阿彌陀三尊佛座像)은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255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후불벽 뒷부분에 그려진 「백의관음보살좌상」은 비록 비지정 문화재이긴 하지만 문화재로 지정되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수려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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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來蘇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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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내소사 일원
불교
유적
문화재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혜구두타가 창건한 사찰. 시도기념물.
이칭이칭소래사(蘇來寺)
시도지정문화재지정기관 전라북도종목 전라북도 시도기념물(1986년 09월 09일 지정)소재지 전북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로 243 (석포리)더보기
접기/펼치기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혜구두타가 창건한 사찰. 시도기념물.
접기/펼치기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633년(무왕 34)혜구(惠丘)가 창건하여 ‘소래사(蘇來寺)’라고 하였다. 그 뒤 1633년(인조 11)에 청민(靑旻)이 대웅보전을 지어 중건하였고, 1604년(인조 18)청영(淸映)이 설선당과 요사를 지었다.
1902년관해(觀海)가 수축한 뒤 1983년 일주문을 세우고 1985년 대웅보전을 중수하였으며, 1986년 천왕문을 짓고 설선당과 요사를 보수하였다. 1987년 봉래루를 해체 복원하였으며 1988년 요사인 진화사(眞華舍)를 건립하였다. 1995년 수각(水閣)과 종각을 짓고 범종을 조성하였다.
소래사가 내소사로 바뀐 것은 중국의 소정방(蘇定方)이 석포리에 상륙한 뒤, 이 절을 찾아와서 군중재(軍中財)를 시주하였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고쳐 불렀다고 전하나 사료적인 근거는 없다.
현존하는 당우 및 중요문화재로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된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1963년 보물로 지정된 부안 내소사 동종, 1963년 보물로 지정된 백지묵서 묘법연화경, 1997년 보물로 지정된 내소사 영산회 괘불탱 등과 1986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내소사 설선당과 요사, 설선당(說禪堂) · 보종각(寶鐘閣) · 봉래루(蓬萊樓), 1986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삼층석탑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대웅보전은 1623년(인조 1)에 완공되었는데 그 의장(意匠)과 기법이 매우 독창적인 조선 중기의 대표작이다.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를 깎아 서로 교합하여 만들었다고 하며, 법당 내부의 벽면에 그려진 관세음보살상 등의 그림도 일품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건물은 호랑이가 화현(化現)한 대호선사(大虎禪師)가 지었다 하고, 벽화는 관세음보살의 화현인 황금빛 날개를 가진 새가 그렸다고 하는데, 그때의 일화가 지금도 전하고 있다. 또한, 고려동종은 1222년(고종 9)변산 청림사(靑林寺)에서 만든 종인데, 1850년 땅속에서 발굴된 뒤 이 절로 옮겨졌다.
그리고 법화경절본사경은 조선 초기에 이씨 부인이 망부(亡夫)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한 글자를 쓰고 한 번 절하면서 지극한 정성으로 필사한 것이다. 정면 6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인 설선당은 인조 때 승려의 수학 장소로 건축되었고, 봉래루는 1414년실상사지(實相寺址)에서 이건하였으며, 현재 산문(山門)으로 사용하고 있다.
부속암자로는 입구의 지장암(地藏庵)과 절 후방 1.5㎞ 지점에 청련암(靑蓮庵)이 있다. 절 일원이 1986년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접기/펼치기참고문헌
『전통사찰총서』 9(사찰문화연구원, 1997)
『한국(韓國)의 명산대찰(名山大刹)』(국제불교도협의회, 1982)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 상(上)(문화재관리국, 1977)
접기/펼치기관련 미디어(8)
부안 내소사 일원
부안 내소사 연래루 정측면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 정면
부안 내소사 대웅전 문살무늬 / 소슬꽃살
부안 내소사 설선당과 요사 중 설선당 정면
부안 내소사 삼층석탑
부안 내소사 동종
부안 내소사 영산회괘불탱다음 슬라이드이전 슬라이드
접기/펼치기집필자
김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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