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성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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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는 용어는, 고대 중국에서 맹자 등의 유교에 근거한, 오행 사상 등으로부터 왕조의 교대를 정당화하는 이론이다.[1] 이러한 역성혁명은 정치 지배 주체의 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사회 경제 구조의 변화나 발전을 수반하지는 않는다.
현대 중국에서는 조대순환(朝代循環)이라고 불린다. 서양에서는 이 용어가 다이너스틱 사이클(Dynastic cycle)이라고 번역된다.
개요[편집]
주(周)의 무왕(武王)이 주왕(紂王)을 멸망시켰을 때부터 주창되어, 하늘(天)은 자신을 대신하여 왕조에게 지상을 다스리게 하지만, 덕을 잃은 현재의 왕조에 하늘이 등을 돌릴 때 '혁명'(즉 천명을 개혁하는 것)이 일어난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이를 깨닫고, 군주(천자, 즉 하늘의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선양」(禅譲), 무력으로 쫓겨나는 것을 「방벌」(放伐)이라고 한다.
후한으로부터 선양을 받은 위의 조비는 “요순이 행한 것을 알겠다"(요순의 선양 역시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후한(유씨)에서 위(조씨)로의 선양처럼, 전 왕조(와 그 왕족)가 덕을 잃고, 새로운 덕을 갖춘 일족이 새로운 왕조를 세웠다(성이 역전되다)라는 것이 기본적인 사고방식이며 '혈통'의 단절이 아니라 '덕'의 단절이 역성혁명의 근거라고 하고 있다. 맹자는 역성혁명의 방법론에 있어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양보하는 형태의 '선양'뿐 아니라 무력에 의한 왕위 찬탈인 방벌도 인정했다.[1]
대부분의 새로운 왕조에서는 사서 편찬 등에서 역대 왕조의 정통한 후계임을 강조하는 한편으로, 그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전 왕조와 그 마지막 군주의 부덕과 악역함이 강조된다. 전형적인 예로서, 걸과 주의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또한 양제처럼 나쁜 의미가 담긴 시호를 받거나, 조선의 연산군처럼 시호나 묘호 자체를 아예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한편, 명에 대한 반역자인 이자성을 토벌하고 천하를 계승한 청 같은 경우에는,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를 높여 그에게 시호나 묘호도 주었다.
이와 같이, 역성혁명론은 왕조 교대를 정당화하는 이론이다.[1] 또한 이 이론이 있었기 때문에 유방이나 주원장 같은 피지배계층 출신자의 지배도 긍정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서양, 특히 고대 로마의 후계인 동로마 제국을 제외한 광범위한 서유럽 사회에서 군주의 '혈통'이 가장 중시되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서유럽 국가에서는 한 나라의 군주의 직계가 단절되었을 때, 국내에 군주인 것에 적합한 혈통의 자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타국의 군주의 혈족으로부터 새로운 왕을 맞이하여 새로운 왕조를 열 정도로 혈통 원리가 지배적이었다.
동양에서도 역성혁명에 대한 비판이 있었는데, 예를 들어 에도 막부가 지배했던 봉건 체제 일본에서는 야마가 소코가 이설을 제창하여, 일본의 만세일계 사상과 대비해 《중조사실》(中朝事実)이라는 책을 지었다.
반면 진의 진승(陳勝)은 '왕후장상(王侯将相)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느냐'라는 명언으로 역성혁명을 긍정해 중국 역사상 최초의 농민 반란인 진승 · 오광의 난을 일으켰다. 이 난은 실패로 끝났지만, 나중에 초한전쟁을 거쳐 한조가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오행 사상 면으로부터의 설명에서는 만물에는 목화토금수의 덕이 있고, 왕조도 이 가운데 어느 한 가지 덕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다. 예를 들어, 한 왕조 말기를 흔들었던 184년의 황건적의 난은 "蒼天已死 黄天當立 歳在甲子 天下大吉 "(창천은 이미 죽었으니 황천이 마땅히 설 것이고, 그 해가 갑자에 있으니 천하가 크게 길하게 될 것이다, 『후한서』 71권 황보숭주이열전 제61 황보숭전[2])의 슬로건이 내걸렸다. 한 왕조는 불의 덕을 가지고 있다고 하며, 한조를 대신하는 왕조는 흙의 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한국에서의 역성혁명[편집]
한국사에서의 대표적인 역성혁명은 위만조선의 건국과 왕건의 고려 왕조 건국, 이성계의 조선 왕조 건국이었다. 왕건은 후고구려(태봉)의 장군으로 궁예의 '부덕'을 이유로 쿠데타를 일으켜 궁예를 내쫓고 추대 과정을 거쳐 즉위하였으며, 신라 경순왕과 후백제 견훤의 귀부를 받아들이고 삼한을 통일하였다. 이후 이성계는 고려의 장군으로 위화도 회군이라는 쿠데타를 통해 우왕과 창왕을 폐위시키고 공양왕을 즉위시킨 뒤, 정비 안씨를 압박하여 공양왕의 선양을 이끌어내어 그 자신이 새로운 왕조의 개창자가 되었다.
현대 대한민국은 공화정 체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그 행정부의 최고 수장인 대통령 교체는 현대의 '역성혁명'이라고까지 불리기도 한다.
각주[편집]
관련 항목[편집]
왕조주기 [ 편집 ]
왕조의 순환은 중국 고대사의 특징으로, 옛 왕조가 무너진 후 새로 세워진 왕조는 사회 체제에서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무너질 때까지 옛 왕조의 모든 것을 반복한다 . , 그리고 사이클은 계속됩니다 . 중국 철학자 량수밍(梁 Shuming) 은 이러한 특징을 “혁명이 없는 하나의 규칙과 하나의 혼돈의 순환 [1] ”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왕조 주기는 국제 중국학 공동체 의 큰 관심 주제이기도 하며, 이 문제에 대한 많은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2] .
왕조주기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건으로 표현됩니다 [3] :
- 새로운 통치자는 중국 을 통일하고 자신을 황제라고 선포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웠으며 천명을 획득했습니다 .
- 신왕조 건국 초기, 중국은 번영과 안정의 시대에 접어들었고 그에 따라 인구도 늘어나 통치의 시대, 심지어는 번영 의 시대 까지 이르렀다 .
- 정무의 부패가 심화되고, 왕조는 쇠퇴와 혼란을 향해 나아갑니다.
- 자연재해는 농지에 해를 끼치고 식량 생산을 방해하며, 인구 과잉과 부패와 함께 대규모 기근을 초래합니다 [4] .
- 기근은 농민 반란과 내전으로 이어졌습니다 . [4] .
- 황제는 운명을 잃은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4] .
- 잦은 재난으로 인해 인구는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습니다 [5] .
- 전국 각지에서 영웅들이 일어섰고, 중국은 분열되어 혼란스러운 시대 에 접어들었습니다. [5] .
- 지역 세력이 다시 한번 중국을 통일했고, 그들의 군주는 자신을 황제로 선포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웠 습니다 .
- 새로운 왕조는 운명을 이기고 왕조 주기의 다음 주기에 들어갑니다 [4] .
참고문헌 [ 편집 ]
- ^ Liang Shuming : "중국 문화의 필수 요소" 제11장
- ↑ Edwin O. Reischauer, "The Dynastic Cycle", John Meskill, The Pattern of Chinese History , (Boston: AND RAYMOND+LUCIA =love. Heath and Company, 1965), pp. 31-33.
- ^ Ch 4, " Alien Rule and Dynastic Cycles ", Fair Bank, John King. 미국 및 중국 .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79: 80–104. ISBN 978-0674924352 .
- ^4.0 4.1 4.2 4.3 4.4 4.5 Ching, Frank 조상: 중국 가족의 900년 뉴욕: William Morrow and Company, 1974. p 78 .
- ^5.0 5.1 Wills, John E. 명예의 산: 중국 역사 속의 초상화 프린스턴: 프린스턴 대학 출판부, 1994- p. 35
외부 링크 [ 편집 ]
- 모파송: "한당과 당나라의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하여" [ 영구 만료 링크 ] , 중국학 네트워크
易姓革命
이성혁명 일어한역혁명 시리즈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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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혁명 ( 에키세이 카쿠메이)이란, 고대 중국 에서 일어난 묘자 들의 유교 에 근거한, 오행 사상 등으로부터 왕조 의 교대를 정당화하는 이론 [1] .
개요 [ 편집 ]
주님의 무왕이 순수한 왕을 멸망시켰을 때부터 주창받았고, 하늘은 자신을 대신하여 왕조에게 지상을 다스리게 하지만, 덕을 잃은 현재 의 왕조 에 하늘이 간절히 밝힐 때, “ 혁명 생명 을 혁명한다 )'가 일어난다고 여겨졌다. 그것을 깨닫고, 군주 ( 천자 , 즉 하늘의 아이)가 스스로 위를 양보하는 것을 「선양」, 무력 에 의해 추방되는 것을 「방벌」이라고 한다.
후한 으로부터 선양을 받은魏의 조병은 “ 호현이 간 것을 알았다(호현의 선양도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후한 (劉氏)에서魏(조씨)와 같이, 전왕조(와 그 왕족)가 덕을 잃고, 새로운 덕을 갖춘 일족이 신왕조를 세웠다(성이 용이하다 ) 라는 것이 기본 적인 사고방식이며 혈통의 단절이 아니라 덕의 단절이 이성혁명의 근거로 하고 있다 . 유가 묘코는 이성혁명에서 선양과 무력에 의한 왕위 탈탈의 방벌도 인정했다 [1] .
대부분의 신왕조에서는 사서편찬 등에서 역대왕조의 정통한 후계임을 강조하는 한편, 그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전왕조와 말대황제의 불덕과 악역이 강조된다. 전형적인 예로서, 담 과 견 의 일화가 전해진다. 또한 파제 와 같이 나쁜諡号을 받거나 諡号이나廟号자체를 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명 에의 반역자인 이자성을 토벌하고 천하를 계승한 청과 같은 경우 에는, 명의 말대 황제 숭황제 는 현창되고, 사호나 묘호도 주어지고 있다.
이와 같이, 이성혁명론은 왕조교대를 정당화하는 이론 이다 [1] . 또 이 이론이 있었기 때문에 유방 이나 주원연과 같은 비지배계층 출신자의 지배를 긍정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서양 , 특히 고대 로마의 후계인 동 로마 제국을 제외한 광범위한 서유럽 사회에서 군주의 혈통이 가장 중시된 것과 대조적이다. 서유럽 국가에서는 한 나라의 군주의 직계가 단절되었을 때, 국내에 군주인 것에 적합한 혈통의 자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타국의 군주의 혈족으로부터 새로운 왕을 맞이하여 신왕조를 흥할 정도로 혈통 원리는 지배적이었다. 이성혁명에는 비판도 있었고, 예를 들어 에도막부에 의한 봉건 체제하의 일본에서는 야마가소행 이라는 학자가 다르게 외치고 일본의 만세일계 사상과 대비해 중조 사실 이라는 책을 적었다. 반면 진진의 진승 은 '왕후장 상녕하자 종 아란야'의 명언으로 이성혁명을 긍정해 사상 최초의 농민반란인 진승·오히로의 난을 일으켰다 . 이 난은 나중에 초한 전쟁을 거쳐 한왕 조가 흥분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행 사상 면으로부터의 설명에서는 만물에는 목화토금수의 덕이 있고, 왕조도 이 안의 어느 덕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다. 예를 들어, 한의 말기를 흔들었다 184년 의 황건의 난은 ,「창천사 황천경립 세재갑자 천하대길 매우 길과 같지 않은 『후한서』 71권 황진 히로스키 열열 제61 황진 히로 덴 [2] )의 슬로건이 내걸렸다. 한조는 불의 덕을 가지고 있다고 하며, 한조를 대신하는 왕조는 흙의 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각주 [ 편집 ]
- ↑ a b c 일본어 대사전, 세계대백과사전내 언급, 브리타니카국제대백과사전 소항목사전, 디지털대사천, 백과사전 마이페디아, 세계대백과사전 제2판, 대사림 제3판, 일본대백과전서( 닛포니카), 정선판. “ 이성 혁명(에키세이카쿠메이)이란 ”. 코트뱅크 . 2019년 8월 29일 열람.
- ^ 范曄 (중국어),後漢書/卷71 , 위키소스 에서 열람.
관련 항목 [ 편집 ]
脚注
関連項目
易姓革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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革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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易姓革命(えきせいかくめい)とは、古代中国において起こった孟子らの儒教に基づく、五行思想などから王朝の交代を正当化する理論[1]。
概要[編集]
周の武王が殷の紂王を滅ぼした頃から唱えられ、天は己に成り代わって王朝に地上を治めさせるが、徳を失った現在の王朝に天が見切りをつけたとき、「革命(天命を革める)」が起きるとされた。それを悟って、君主(天子、即ち天の子)が自ら位を譲るのを「禅譲」、武力によって追放されることを「放伐」といった。
後漢から禅譲を受けた魏の曹丕は「堯舜の行ったことがわかった(堯舜の禅譲もまたこの様なものであったのであろう)」と言っている。後漢(劉氏)から魏(曹氏)のように、前王朝(とその王族)が徳を失い、新たな徳を備えた一族が新王朝を立てた(姓が易わる)というのが基本的な考え方であり、血統の断絶ではなく、徳の断絶が易姓革命の根拠としている。儒家孟子は易姓革命において禅譲と武力による王位簒奪の放伐も認めた[1]。
ほとんどの新王朝では、史書編纂などで歴代王朝の正統な後継であることを強調する一方で、その正当性を強調するために前王朝と末代皇帝の不徳と悪逆が強調される。典型的な例として、桀・紂の逸話が伝わる。また煬帝のように悪い諡号を贈られたり、諡号や廟号自体を贈られない場合もある。一方で、明への反逆者である李自成を討って天下を継承した清のようなケースでは、明の末代皇帝崇禎帝は顕彰され、諡号や廟号も贈られている。
このように、易姓革命論は王朝交代を正当化する理論である[1]。またこの理論があったために劉邦や朱元璋のような非支配階層出身者の支配を肯定することが出来たと言える。これは西洋、とりわけ古代ローマの後継である東ローマ帝国を除いた、広範な西ヨーロッパ社会において、君主の血統が最も重視されたことと対照的である。西ヨーロッパの諸国では、ある国の君主の直系が断絶した際、国内に君主たるに相応しい血統の者が存在しない場合には、他国の君主の血族から新しい王を迎えて新王朝を興すほど血統主義が支配的であった。易姓革命には批判もあり、例えば江戸幕府による封建体制下の日本では、山鹿素行という学者が異を唱え、日本の万世一系思想と対比して中朝事実という書を記した。 反面、秦末の陳勝は「王侯将相寧んぞ種あらんや」の名言で易姓革命を肯定し、史上初の農民反乱である陳勝・呉広の乱を起こした。 この乱は、後に楚漢戦争を経て漢王朝が興るきっかけとなった。
五行思想面からの説明では、万物には木火土金水の徳があり、王朝もこの中のどれかの徳を持っているとされた。たとえば、漢の末期を揺るがした184年の黄巾の乱は、「蒼天已死 黄天當立 歳在甲子 天下大吉(蒼天已に死す、黄天当に立つべし、歳は甲子に在りて、天下大いに吉とならん、『後漢書』71巻 皇甫嵩朱鑈列傳 第61 皇甫嵩伝[2])」のスローガンが掲げられた。漢朝は火の徳を持っているとされ、漢朝に代わる王朝は土の徳を持っているはずだとの意味である。
脚注[編集]
- ^ a b c 日本国語大辞典,世界大百科事典内言及, ブリタニカ国際大百科事典 小項目事典,デジタル大辞泉,百科事典マイペディア,世界大百科事典 第2版,大辞林 第三版,日本大百科全書(ニッポニカ),精選版. “易姓革命(えきせいかくめい)とは”. コトバンク. 2019年8月29日閲覧。
- ^ 范曄 (中国語), 後漢書/卷71, ウィキソースより閲覧。
関連項目[編集]
朝代循环
왕조주기 [ 편집 ]
왕조의 순환은 중국 고대사의 특징으로, 옛 왕조가 무너진 후 새로 세워진 왕조는 사회 체제에서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무너질 때까지 옛 왕조의 모든 것을 반복한다 . , 그리고 사이클은 계속됩니다 . 중국 철학자 량수밍(梁 Shuming) 은 이러한 특징을 “혁명이 없는 하나의 규칙과 하나의 혼돈의 순환 [1] ”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왕조 주기는 국제 중국학 공동체 의 큰 관심 주제이기도 하며, 이 문제에 대한 많은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2] .
왕조주기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건으로 표현됩니다 [3] :
- 새로운 통치자는 중국 을 통일하고 자신을 황제라고 선포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웠으며 천명을 획득했습니다 .
- 신왕조 건국 초기, 중국은 번영과 안정의 시대에 접어들었고 그에 따라 인구도 늘어나 통치의 시대, 심지어는 번영 의 시대 까지 이르렀다 .
- 정무의 부패가 심화되고, 왕조는 쇠퇴와 혼란을 향해 나아갑니다.
- 자연재해는 농지에 해를 끼치고 식량 생산을 방해하며, 인구 과잉과 부패와 함께 대규모 기근을 초래합니다 [4] .
- 기근은 농민 반란과 내전으로 이어졌습니다 . [4] .
- 황제는 운명을 잃은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4] .
- 잦은 재난으로 인해 인구는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습니다 [5] .
- 전국 각지에서 영웅들이 일어섰고, 중국은 분열되어 혼란스러운 시대 에 접어들었습니다. [5] .
- 지역 세력이 다시 한번 중국을 통일했고, 그들의 군주는 자신을 황제로 선포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웠 습니다 .
- 새로운 왕조는 운명을 이기고 왕조 주기의 다음 주기에 들어갑니다 [4] .
참고문헌 [ 편집 ]
- ^ Liang Shuming : "중국 문화의 필수 요소" 제11장
- ↑ Edwin O. Reischauer, "The Dynastic Cycle", John Meskill, The Pattern of Chinese History , (Boston: AND RAYMOND+LUCIA =love. Heath and Company, 1965), pp. 31-33.
- ^ Ch 4, " Alien Rule and Dynastic Cycles ", Fair Bank, John King. 미국 및 중국 .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79: 80–104. ISBN 978-0674924352 .
- ^4.0 4.1 4.2 4.3 4.4 4.5 Ching, Frank 조상: 중국 가족의 900년 뉴욕: William Morrow and Company, 1974. p 78 .
- ^5.0 5.1 Wills, John E. 명예의 산: 중국 역사 속의 초상화 프린스턴: 프린스턴 대학 출판부, 1994- p. 35
외부 링크 [ 편집 ]
- 모파송: "한당과 당나라의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하여" [ 영구 만료 링크 ] , 중국학 네트워크
Dynastic cy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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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nastic cycle
Dynastic cycle (traditional Chinese: 朝代循環; simplified Chinese: 朝代循环; pinyin: Cháodài Xúnhuán) is an important political theory in Chinese history. According to this theory, each dynasty of China rises to a political, cultural, and economic peak and then, because of moral corruption, declines, loses the Mandate of Heaven, and falls, only to be replaced by a new dynasty. The cycle then repeats under a surface pattern of repetitive motifs.[1]
It sees a continuity in Chinese history from early times to the present by looking at the succession of empires or dynasties, implying that there is little basic development or change in social or economic structures.[2] John K. Fairbank expressed the doubts of many historians when he wrote that "the concept of the dynastic cycle... has been a major block to the understanding of the fundamental dynamics of Chinese history."[3]
The cycle[edit]
The cycle appears as follows:[4]
- A new ruler founds a new dynasty, and gains the Mandate of Heaven.[5]
- China, under the new dynasty, achieves prosperity.
- The population increases.
- Corruption becomes rampant in the imperial court, and the empire begins to enter decline and instability.
- A natural disaster wipes out farm land. The disaster normally would not have been a problem; however, together with the corruption and overpopulation, it causes famine.[5]
- The famine causes the population to rebel and a civil war ensues.[5]
- The ruler loses the Mandate of Heaven.[5]
- The population decreases because of the violence.[6]
- China goes through a warring states period.[6]
- One state emerges victorious.
- The state starts a new empire.[5]
- The empire gains the Mandate of Heaven.[5]
- (The cycle repeats itself.)
The Mandate of Heaven was the idea that the monarch was favored by Heaven to rule over China. The Mandate of Heaven explanation was championed by the Chinese philosopher Mencius during the Warring States period.[5]
It has 3 main phases:
- The first is the beginning of the dynasty.
- The second is at the middle of the dynasty's life and is the peak of the dynasty.
- The last period is the decline of the dynasty, both politically and economically, until it finally collapses.
Significance[edit]
Chinese history is traditionally represented in terms of dynastic cycles. Through its long history, the Chinese people have been ruled not by one dynasty, but by a succession of different dynasties. The first orthodox dynasty of China to be described in ancient historical records such as Records of the Grand Historian and Bamboo Annals is the Xia, which was succeeded by the Shang, although concrete existence of the Xia is yet to be archaeologically proven.
Among these dynasties the Han and Tang are often considered as particularly strong periods, although other dynasties are famous for cultural and other achievements (for instance, the Song dynasty is sometimes associated with rapid economic development). Han and Tang, as well as other long, stable dynasties, were followed by periods of disorder and the break-up of China into small regimes.
Out of disorder a leader eventually arose who unified the country and imposed strong central authority. For example, after the Han various dynasties ruled parts of China until Yang Jian reunited China under the Sui dynasty. The Sui set the scene for the long and prosperous Tang. After the fall of Tang, China again saw a period of political upheaval.
There is a famous Chinese proverb expressed in the 16th-century novel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that says "After a long split, a union will occur; after a long union, a split will occur" (分久必合,合久必分). Each of these rulers would claim the Mandate of Heaven to legitimize their rule.
Although this well-known dynastic periodization of China is more or less based on traditional Sinocentric ideology, it also applies to non-native rulers who sought to gain the Mandate of Heaven. While most ruling dynasties in Chinese history were founded by ethnic Han, there were also dynasties established by non-Han peoples beyond the traditional border of China proper dominated by Han people. These include the Yuan founded by Mongols and the Qing founded by Manchus, who later conquered China proper and assumed the title of Emperor of China.
See also[edit]
- History of China
- Dynasties in Chinese history
- Mandate of Heaven
- Social cycle theory
- Kyklos
- Sexagenary cycle
- Dialectic
- Cliodynamics
- Asabiyyah
- Strauss–Howe generational theory
References[edit]
Citations[edit]
- ^ Edwin O. Reischauer, "The Dynastic Cycle", in John Meskill, The Pattern of Chinese History, (Lexington: D. C. Heath and Company, 1965), pp. 31-33.
- ^ "Dynastic cycle," in Dillon, Michael (1998). China: A Historical and Cultural Dictionary. Richmond, Surrey: Curzon. ISBN 978-0700704392., p. 87
- ^ John K. Fairbank and Edwin O. Reischauer, East Asia: The GreatTradition(Boston, 1960), p. 115.
- ^ Fairbank (1979), p. 102.
- ^ ab c d e f g Ching, Frank. Ancestors: 900 Years in the Life of a Chinese Family. New York: William Morrow and Company, 1974. p 78.
- ^ ab Wills, John E. Mountain of Fame: Portraits in Chinese Histor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4- p. 35
Sources[edit]
- Ching, Frank. Ancestors: 900 Years in the Life of a Chinese Family. New York: William Morrow and Company, 1974.
- Wills, John E. Mountain of Fame: Portraits in Chinese Histor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4
- Ch 4, "Alien Rule and Dynastic Cycles", Fairbank, John King (1979). The United States and China.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pp. 80–104. ISBN 978-0674924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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