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건의 송사에 역사학계의 시선이 온통 쏠려 있다. 사건 중심에는 이덕일(54)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이 있다. 이덕일 소장은 사학자이자 유명 작가. 그는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조선왕 독살사건’,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 등 40여권의 역사서를 냈다.
송사에 휘말린 사학자 이덕일 소장
이 소장이 송사에 휘말리게 된 이유는 그가 쓴 책 때문이다. 이덕일 소장은 2014년 9월 4일 ‘우리 안의 식민사관’(만권당)을 출간했다. 주요 내용은 “우리 사회에 식민사관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데 그 중심에 ‘사(史)피아’, 즉 식민사학자들과 그 추종자들이 있다”는 주장이다. 책에서 이 소장은 그가 ‘식민사학자’라 칭하는 일부 주류 사학자들을 실명으로 비판했다. 이 소장은 그들의 저서와 논문, 공개 발언을 비판 근거로 삼았다.
주류 사학자들을 “식민사학자”라 실명 비판
이 소장이 비판한 사학자 중에는 김현구(71) 고려대 사범대 교수가 있다. 이 소장은 자신의 책 337p~354p에서 김 교수를 집중 비판했다. “김현구는 임나일본부가 실제로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쓴 인물”이라는 주장이다. 이 소장은 비판의 근거로 김현구 교수의 책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창비)’를 제시했다.
이덕일 “김현구 임나일본부설 주장했다”
이덕일 소장은 책에서 “김현구는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에서 3단 논법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이 주장하는 ‘김 교수의 3단 논법’은 다음과 같다.
①한반도 남부에는 실제로 임나일본부가 있었다.
②그런데 임나일본부는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지배한 것이 아니라 백제가 지배했다.
③백제를 지배한 것은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다.
이 소장은 이외에도 ▲김현구 교수가 사용한 천황, 조공사(朝貢使) 등의 용어가 일본식 표현이며 ▲‘일본서기’를 이용한 빈도가 잦고 ▲가야를 ‘임나’라고 표시한 한반도 지도를 사용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김현구 교수가 “일본 중심적 사관을 갖고 있다”며 비판했다. ‘일본서기’는 720년에 편찬됐다는 일본 최초의 사서로, 학계에서는 ‘위서(僞書)’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김현구 “임나일본부설 주장한 적 없다”며 이덕일 고소
책을 출판하자마자 문제가 불거졌다. 출간 직후인 2014년 10월, 김현구 교수가 이덕일 소장을 검찰(서울서부지검)에 형사사건으로 고소한 것이다. 죄명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김현구 교수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고대 일본이 한반도의 남부를 오랫동안 지배했다는 내용의 임나일본부설 내지 일본의 한반도 남부경영론이 옳다고 주장한 사실이 없다. 그런데도 마치 고소인(김현구 교수)이 위와 같은 임나일본부설이 옳다고 주장한 것처럼 피의자(이덕일 소장)의 저서 ‘우리 안의 식민사관’에서 허위 주장을 함으로써 고소인(김현구 교수)의 명예를 훼손했다.”
검찰 “명예훼손이라 보기 어렵다” 무혐의 결론
고소 이후 이덕일 소장은 마포경찰서로 두 차례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조사 결과는 ‘무혐의’였다. 담당검사인 서울서부지검 이지윤(형사제1부 부부장) 검사는 2015년 5월 15일 ‘혐의 없음’이라며 불기소 결정서를 발부했다. 결정서에 명시된 무혐의 이유는 이랬다.
“학자의 입장에서 다른 학자의 연구결과 및 견해를 재해석해 나름대로 견해를 표명하는 것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때 신중해야 한다. 학문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기 때문이다. 피의자(이덕일 소장)의 주장은 고소인(김현구 교수)의 주장에 대한 자신의 분석 및 재해석 결과를 표명한 것으로써, 구체적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검찰 “학문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사건은 일회성으로 끝나는 듯 했다. 이덕일 소장은 7일 팩트올에 “그냥 해프닝으로 끝날 줄 알았다”고 말했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장의 생각과는 달리,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김현구 교수가 서울고등검찰청에 상고, 임무영(52) 부장검사가 이덕일 소장을 서울지방법원에 기소한 것이다. 기소명령을 내린 건 6월 26일, 이 소장이 조사 받은 건 7월 1일이었다.
서울고검에 상고, 임무영 부장검사 기소
임 검사가 이덕일 소장에게 적용하고 있는 법 조항은 형법 제33장 ‘명예에 관한 죄’에 명시돼 있다. 해당 조항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형법 제309조 ①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신문, 잡지 또는 라디오 기타 출판물에 의하여 제307조 제1항의 죄를 범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 제309조 ② “제1항의 방법으로 제307조 제2항의 죄를 범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 제307조 ②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공소장에서 임무영 검사는 “(이덕일 소장은) 피해자가 일본 극우파의 시각에 동조해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 같은 매국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피해자의 책에는 피고인의 주장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지 않았다”고 했다. 임 검사는 “이로써 피고인은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으로, 출판물에 의해 공연히 허위 사실을 적시하여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이덕일 소장을 기소했다.
임무영 검사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
앞서 마포경찰서에서 조사한 결과는 ‘무혐의’였다. 서부지검 이지윤 검사는 이를 받아들여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그런데 김현구 교수의 상고로 이덕일 소장이 기소되면서 사건이 다시 불거진 것이다. 1차 공판은 9월 16일 오전 10시 20분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다.
역사학계는 이 송사의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무려 70년을 끌어온 학계의 ‘식민사관 논쟁’의 결론이 소송 결과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식민사관 논쟁이 대체 무엇이기에 해방 이후 70년 동안이나 학계가 몸살을 앓아온 것일까. 쟁점은 다음의 3가지로 집약된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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