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자를 위대한 리더십이라고 포장하지 말라
2012년 11월14일, 징기스칸 생일이라며 갑자기 없던 휴일이 생겼다. 신문을 찾아보니 대충 이런 짤막한 내용이 씌어 있다.
“매년 음력 겨울 첫째 달 첫째 날이 징기스칸의 생일임이 확실하고 그의 탄생 850주년을 맞아 올해 11월14일을 공휴일로 정하고 매년 양력으로 시행할 것을 국회에서 의결하였다.”
이것은 뭐 난수표식 표현이다. 음력 겨울 첫 달의 첫째 날이라… 언듯 생각하면 음력 1월 1일인데, 11월 14일은 어디서 왔는가 궁금하다. 따져보니 올해 11월14일은 음력 10월1일이고 따라서 추운 이곳의 겨울철 첫 달의 첫째 날이 맞다.
(사진 : 징기스칸 초상, 몽골국립박물관)
징기스칸의 생일에 대하여 어디에도 정확한 기록이 없다. 그 시대를 묘사한 몽골비사나 기타 사료를 가지고 학자들이 연구 유추한 결과 음력 10월 1일이라고 확신한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1162년에 태어났다고 하니 2012년이 850주년인 셈이다. 물론 이마저도 정확하진 않고 유력한 의견일 뿐이지만 말이다.
기록이 전무했던 그 시절의 몽골족은 야만족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기원전에도 중국은 한자를 사용했고 로마도 큰 역사뿐 아니라 음식, 목욕탕, 노예제도등 자질구레한 내용까지 라틴문자를 사용해 모두 기록하던 때였으니 말이다. 몽골전통문자라는 파스파는 후대 쿠빌라이칸의 지시에 따라 13세기 후반에 나왔으니 그나마도 다행이긴 하지만 그 당시 아시아 전역에서 쓰인 흔해 빠진 한자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록까지 없다는 것에 답답한 생각이 든다.
한족과는 철천지 적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적의 장점은 문화, 군사전략, 인종, 종교까지도 수입하고 포용하던 징기스칸의 정복정책을 보았을 때 한자를 배척했다기 보다 표의문자를 수용할 정도의 정신세계로 까지는 발전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사진 : 동쪽을 주시하는 징기스칸 동상, 울란바토르 동쪽 90km위치)
(2008.12월 촬영, 지금은 주변이 관광단지화 되어 있고 동상의 허리쯤 출입구가 있어서 말머리위로 올라가면 전망대 역할을 함. 전망대 입장료가 외국인에게 1만원 가량)
최근에 와서 전세계적으로 징기스칸의 리더십을 본받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며 교수며 리더십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주로 떠들고 다닌다. 나는 여전히 이런식의 추종에 대하여 비판하는 입장이다. 무엇을 본 받자는 것인가?
그들이 주장하는 징기스칸을 칭송해야하는 이유로
– 인류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고,
– 오늘날의 지구촌을 가능케 한 서막을 열었고,
– 유라시아의 광대한 자유무역지대를 만들고,
– Global Comunication Network(오늘날의 Internet)을 만들었다
고 한다.
가히 징비어천가 수준이다. 아무리 찍어 붙일게 없어도 그렇지 정복의 결과로 자연스레 만들어진 것을 마치 인류를 위한 저런 고귀한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살륙을 하고 침략을 한 것처럼 말한단 말인가? 평화롭게 살던 사람들이 그들에게 저항하다 가마솥에 통채로 삶기고, 허리가 부러지는 처형을 당하고, 문화재가 불타고, 여자들이 전리품으로 바쳐지고 하였다. 그들이 정복한 곳은 이런 야만적 침탈이 예외없이 일어났다. 그 시절 그들의 본질은 침략과 약탈만이 핵심가치인 약육강식의 야만인이었을 뿐이다. 그들에게 지구촌, 자유무역지대, 글로벌 네트워크 따위의 기상을 품었다고 해설하는게 말이 되는가.
‘징기스칸의 위대한 리더십’이란 것을 보자.
1. 동서 8,000km의 유라시아 제국을 150년간 통치한 경영자
– 다민족 다종교국가 건설, 법치에 원칙
2. 전투때 마다 매회 새로운 전략 전술 기술로 타고난 전략가이자 정보전의 대가
– 적의 기술을 벤치마킹
3. 믿음과 의리를 소중히 여기는 진정한 리더십의 소유자
– 불우한 처지의 이웃을 측근으로 삼아 가족처럼 대했고 적조차도 자기편으로 만듬
4. 항상 도전적이고 혁명적인 사고를 계속
– 닫힌사회는 망하고 열린사회는 흥한다.
상기의 것을 리더십이라 우기고 굳이 이름을 달아야 한다면 약탈리더십이나 조폭리더십 정도 되겠다. 침략의 결과로 얻은 것을 되돌려 줄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큰 땅을 통치한 것이고, 모두 죽일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종교와 민족을 놔둔것이다. 그나마 네번째 도전적이고 혁명적인 사고를 계속했다는 점은 배울만하겠다. 그러나 이것 하나 가지고 위대 운운하는 것은 구차하다. 그리고 첨언 되어있는 ‘닫힌사회는 망한다’는 뜻은 자신들이 침략을 하려는데 항복하지 않고 성문을 닫은 국가에게 하는 경고 아니었던가.
징기스칸 사후의 일이니 관련도 없지만 그를 칭송하는 주저리 설명을 읽다보면 이런말도 나온다. 몽골이 세계를 정복후 가장 분쟁이 적은 평화의 시간이 왔고, (황송하게도)고려와의 30년전쟁 후 자주권을 인정했다는 거다. 그랬을까? 그들이 고려를 어찌 생각하는지 지도를 보자.
(사진 : 몽골제국 침략도, 몽골국립박물관)
그들의 역사에는 분명히 1218년 징기스칸 생전에 고려를 정복하고 복속한 것으로 나온다. 항몽전쟁을 한게 1231~1270년 이니 완벽한 역사왜곡이라 하겠다. 이는 다른 외국사이트를 봐도 같다. 우리만 아니라고 형제의 국가이고 자주권을 가졌다고 하는 꼴이 우습지 않은가. ‘忠’으로 시작하는 왕의 호칭이 이미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몽골은 다른 나라도 정복후 현지인을 그대로 지도자로 내세웠다. 그것과 고려의 것이 무엇이 다르다는 건가 말이다.
고려가 몽골과 형제관계를 맺었고 자주권이 있었다 것을 백보 양보해 조금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과 연대도 다른 징기스칸의 위대한 리더십이 무슨 연관이 있는데, 응? 왜 요따구 설명이 리더십항목에 같이 들어가느냐 말이닷!
전두환을 보라. 그 역시 믿음과 의리를 소중히 여기는 진정한 리더십의 소유자다. 혼란한 정세를 안정시키고 신출귀몰한 광주사태, 1212사태 등 전략과 전술을 타고난 지도자이며 도전적이고 혁명적인 사고를 계속하였다. 위 논리대로하면 전두환은 모두가 숭상하고 배워야하는 리더십을 가진 것이다. 김일성도 마찬가지지… 기념관 하나 세워서 위대한 리더십을 배우자고 해봐라. 사람들에게 뺨을 한대씩 맞아서 반나절이면 뼈가루가 날리지 않을까한다.
(사진 : 활을 쏘는 몽골기병, 몽골국립박물관)
징기스칸은 불세출의 영웅임에 틀림없다. 외부인에게는 그의 약탈과 침략 성공에서 소소하게 배울점은 분명히 있고, 몽골인에게는 야만족을 일시에 세계적 통치민족으로 만들어준 그를 국가와 민족의 영웅으로 받드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만이다.
누군가를 칭송하고 본받아야 한다면 위대한 업적과 위대한 사상이 중첩되었을 때 그러하다. 그에게 국토를 유린당하고 2만의 (국보급)여자를 상납하고 국가의 정체성을 침탈당했던 피해 당사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위대한 리더십이니 하는 말장난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저 역겹다.
스런 역사로 보고 있고, 독일은 비스마르크를 통해 프랑스 황제
의 항복과 파리 점령을 통해 복수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1차대전,2차대전으로 또 프랑스는 독일에 큰 피해를 또
입게 되고,이런 역사의 앙금은 아직까지 해당 국민의 의식 속에
남아 있게 됩니다.
런던을 몇년간 공습해서 폐허로 만든 독일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영국인(잉글란드인인 잉글리쉬)도 수백년간 핍박을 받은
아일랜드인(아이리쉬)에게는 증오의 대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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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한 나라를 무너뜨린 사람은 영웅으로 칭하지 않기에 수
를 무너뜨린 당의 이연, 당을 멸한 주전충,원을 멸한 주원장 등
이 영웅이 되지는 않으나 2천년 전의 알렉산더 대왕이나 800년
전의 징기스칸 처럼 여러 나라을 정벌하여 수많은 국가를 괴롭
힌 사람은 영웅으로 취급되는게 일반적인 역사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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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은 내세울게 별로 없는 몽골민족에게 징키스칸은 자
부심과 자존심으로서, 주변민족을 괴롭힌 약탈자나 깡패라는
평가에 몽골인 그 누구도 절대 동의할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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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인은 당연히 그를 칭송하는게 맞을 겁니다. 제가 그 입장이라도 그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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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비판은 한국내 주창되는 징기스칸리더십에 대한 것입니다. 그를 위대한리더십의 화신으로 모시기에는 우리의 피해의식이 남아있다는 의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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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주장내용이 설득력이 부족함을 지적한 것이구요. 징기스칸리더십이 배워야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시는 분의 반론도 환영합니다. 본 발제의 목적은 토론입니다.
일본과 관계된 것은 임진왜란이나 그 이전 역사까지 따지는 한국인들이지만,고려시대에 우리 선조들이 몽골인에게 당한 피해에 대해서 까지 생각하는 한국인은 그리 많지 않을거 같은데요.
제 개인적으로는 징기스칸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평가
하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만 그의 리더십을 빙자해서 미화하는 건 반대합니다.
만일 읽어 보셨다면 그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를 내리셨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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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약간은 도발적인 저의 발제문에 대해 반박할 내용이나 다른 생각이 있으시면 기탄없이 지적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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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런 내용은 여러측면이 있으니 의견이 분분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가 사실관계를 잘못알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구요.
칭기스칸을 좋아하는 부류 중에 또하나는 일본 이란 것을 아시지요?
일본은 만주와 몽골을 두고 그렇게 가지고 싶어했고, ‘추진’ ‘진취’ 로
젊은 이들을 만주로 보냈다고 합니다. (사료 만주철도사, 단행본 만주국의 탄생과 유산 중)
(이평래 교수 연구논문과 단행본 20세기 한몽관계사에 수록)
이전에도, 지금 포스팅 같은 내용의 논의가 있었습니다.
(진중권인가……… 황석영의 알타이 문화연대 를 비판하면서)
일본은 러일전쟁시 ….일본의 해군은 러시아 제국 함대와 전투를 앞두고 너무 무서워 과거 임지왜란의 영웅이던 이순신 장군의 제단을 만들고 싸움에 이기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합니다. 이런 것은 일본인의 특성이지요, 적도 나의 영웅으로 또 기복신앙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숲과 나무가 울창한땅… 그곳에서 숲속에서 사냥을 하고 양과 염소를 키우던 유목민을 칭기스칸 집안 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역사에 남게 된 사람들은 결국 칭기스칸과 그의 자손들이 되었습니다. (좀 짧았지만) 어린 테무진은 잘 살아 보겠다고 죽을 힘을 다해서 싸웠습니다. 잔인했겠지요. ……
영웅이 위대하다고 악행까지 위대하다 말해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피해자적 역사의식이랄까 하는 반대의 생각이 좀 생겼다고 해야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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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씨가 몽골이란 이메일 아이디를 쓸 만큼 관심이 많은가 봅니다. 대표적인 우파 지식인이죠. 그의 논리는 매우 날카롭고 빈틈이 없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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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고비캐시미어의 설립취지가 전쟁배상금이었나요? 처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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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저는 아직도 징기스칸이 왜그리 침략에 몰두했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일종의 집착이며 피를 한번 본 사람의 악마적 본능이 아닐까 합니다. 침략의 결과 대단히 긍정적 요인이 있었다는 현상에 대하여는 동의하지만 그것은 결과론일 뿐이며 행위자체가 칭송받을 일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이런 기준은 과거라고 면피될 수 없는 보편적 사상이기도 합니다. 침략의 결과가 긍정적이기만 한게 기준이면 과학을 일으키고 군사전략을 발전시킨 히틀러도 칭송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선과 악이 있다면 악한 본성을 적나라하게 투영한 결과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세력은 커지고 유목만으로는 유지가 어렵게 되었던 징기스칸…..
충성을 유지시키는 방법으로 현대적인 생산기술이 없었기에 징기스칸이 어렸을때 부터 보아왔던 정복지를 충복들에게 나눠주는 형태…
그래서 배신의 싹을 원천봉쇄하는 정권유지책…정복지의 물질과 여자는 단지 고기한점 던져주는 ….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 였을을 것이며….
커다란 쾌락을 맛본 군중은 더 큰 쾌락을 위하여…
초인적인 충성과 전투력이 발휘되었던 것이다.
결국 유목민의 특성과 야만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이러한 야만들은…
그동안 수없이 수도없이 반복되었지만…
모두 다 역사에 기록되어 진것이 아니였고…
빙산의 일각처럼 몽골 징기스칸의 행적은 …..
이것을 고스란히…..
영화의 다큐처럼….
역사적인 그림자를 우리에게 드리우고 있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거나
보드카에도….돈에도….나와 있는 영웅…으로…
그렇게 믿고 싶은 사람들도 있으니…더욱 신기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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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평가 감사드리고, 언제든 인용하십시오.
데 그게 얼마나 신빙성 있는 이야기고 몽골사람들은 그걸 어떻게 생각
하는지 궁금하네요. 미나모토 요시츠네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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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고 후대에 그려진 것이라 상상도 수준이겠지만 징기스칸 초상을 보면 북방계 특유의 얼굴에다 수염도 매우 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족하고는 형상이 매우 다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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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그의 탄생에 관련해서 몽골이 아닌 외부에서 태어나 들어왔다는 어떤 근거나 추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버지와 어머니와의 관계가 잘 나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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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아니면 말고라지만 그런 얘기 지어내는 일본 사람들 정신감정이 필요할 듯 합니다.
오늘 너무도 분명하여 이견의 소지가 없어 보이는 어떤 인물에 대한 평가도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면 그 인물의 존재와 행적에 대한 의미가 재해석 되고 재평가 되면서 별별 해괴한 소리들이 다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죠.
아직은 김일성을 연구하고 배우자 했다가는 적어도 한국인들에게는 뺨을 맞다가 “반나절이면 뼈가루가 날리”는 (이부분에서 빵터짐. ㅋㅋㅋㅋㅋ) 것이 맞겠다 싶지만, 1200 년이 지나면 또 모를 일이 되겠다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도적은 도적이고, 침략자는 침략자일 뿐인데 참 인간은 묘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본다는 것 자체가 인간에겐 불가능한 일인 것 같기도 하고요. 당장 눈 앞의 것도 결국은 자기 해석이란 렌즈를 통해야 이해가 되는 것이니까요. 게다가 어떤 가치를 수반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죠.
징기스칸의 리더십을 배우자는 분은 먹고 살아야 한다는 가치가 더욱 소중했을 수도 있고요.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많이 흐르면서 당시엔 극악의 행동도 점점 긍정적인 면이 부각되는 현상은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좋은 의견에 감사드립니다.
휴머니즘이란 개념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겠죠.
“적 왕의 목을 베고 그의 아내를 취하는 기쁨”을 최고의 목표로 삶고..
유럽 열강의 식민지 개척 이나..
지금 미국의 대외정책이나…
자신의 기쁨을 최우선하는 목표는 변함이 없고.. 그 수단만 효율, 세련화 시킨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