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김일성평전’과 김일성의 실체
주성하기자입력 2016-12-29
30부만 가까스로 출판된 ‘김일성평전’. 오른쪽 사진은 1930년대 초반 김일성 장군으로 활동했던 중국공산당 만주성위 군사위 서기 양림이다.
논란이 예상되는 새로운 책을 하나 알게 됐다.
주성하 기자 ‘김일성평전(상·하편)’. 상편만 700쪽이 넘는다. 저자 유순호는 중국 옌볜에서 나서 자랐고 오래전부터 항일투쟁사에 천착했다. 동북항일연군 군장 조상지의 전기 ‘비운의 장군’(1998년)을 쓴 지 3년 뒤 중국에서 “사회주의 문화시장을 교란한다”는 죄목으로 활동 금지를 당해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이후 조상지의 후임인 허형식 군장의 전기 ‘만주 항일 파르티잔’(2009년)을 출판했고 이번에 김일성평전을 마무리했다.
난 김일성 연구의 한 획을 그은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서대숙)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와다 하루키)은 물론이고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8권까지를 모두 정독했다. 이 중 유순호의 김일성평전은 과거 모든 김일성 연구서를 뛰어넘는 ‘끝판왕’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저서들이 광복 이전의 기록물 중심인 데 반해 김일성평전은 항일 연고자들의 회고, 중국 공산당의 비밀자료실에 보관된 문헌들과 수백 장의 진귀한 사진 등 과거 김일성 연구자들이 접할 수 없었던 생생한 중국 측 자료들로 채워져 있다. 동북의 항일투쟁사를 논함에 있어서 중국 측 자료의 중요성은 거의 절대적인데 드디어 그 빗장이 풀린 것이다.
저자는 1980년대부터 20년 넘게 관련 자료를 모으고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당시엔 김일성의 상관이던 인물들이 중국에 많이 생존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이 거의 다 세상을 떠나 더 이상 만나거나 얘기를 들을 수 없다.
김일성평전은 김일성 신화의 거품을 걷어내고 있다. 혁명 모금을 한다며 부자들을 협박하던 10대의 김성주도, 만주에 퍼진 김일성 신화를 이용하려 이름을 개명한 20대의 김성주도 당시 함께했던 이들의 증언으로 밝혀내고 있다. 앞서 만주에서 김일성으로 활동했던 인물들이 누구였는지도 책은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북한이 크게 선전하는 ‘북만원정’도 사형 당할 위기에 처하자 야반도주한 것이며 1938년에 김일성이 일제에 항복하려 했다는 증언도 들어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1920, 30년대 만주는 거대한 항일의 바다였고, 김일성은 작은 실개천이었다. 김일성의 가장 큰 업적은 죽거나 사로잡히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최후까지 살아남은 김일성은 수많은 항일 선배들의 업적을 가로채 실개천을 바다로 둔갑시켰다. 이런 신화 조작은 지금도 3대 세습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한 중국인 연고자는 저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김일성이 자기가 하지 않은 일, 남이 한 일도 자기가 한 일이라고 거짓말하는 것은 두고 볼 수 없다. 이것은 도적질과 같은 행위가 아니고 뭐겠는가.”
나는 통일 후 북한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김일성 신화를 벗겨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은 옛날 반공교육 시대에 만들어진 김일성 가짜설로는 어림도 없다. 김일성과 함께했던 이들의 증언은 빼고, 그냥 ‘카더라’식 위주로 채워진 주장은 북한 역사보관소의 원본 문헌들만 공개돼도 즉시 생명력을 잃을 것이다.
김일성평전은 통일 후엔 북한에서 밀리언셀러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 책이 완전무결한 것은 아닐지라도 이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는 책은 찾기가 어렵다.
북한은 김일성평전의 출판을 막기 위해 원고를 사겠다는 등 각종 회유를 했고, 사료를 갖고 뉴욕까지 날아와 이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역사는 진실이어야 한다는 신념 아래 원고를 들고 서울로 왔다. 하지만 그가 100여 개의 출판사와 접촉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국가보안법 때문에” “보수단체가 고소하면 변호사비로 큰돈을 날릴 것”이란 이유라고 한다. 자비로 우여곡절 끝에 겨우 상편 30부만 찍었지만 이대로라면 이 책은 출판사를 찾지 못해 묻힐 처지다.
이미 1980, 90년대에 김일성의 항일투쟁사를 담은 책들이 출판됐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난 2016년의 대한민국에 접어든 마당에 김일성 신화를 무너뜨릴 저서가 김일성의 항일활동을 다뤘다는 이유로 외면당하고 있다.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우리는 진보한 것인가, 퇴보한 것인가. 역사 앞에 정직하게 대할 자세와 준비는 돼 있는 것인가. 북한의 역사 왜곡을 당당히 단죄할 수 있을까. 김일성평전 하나 찍을 아량조차 사라진 곳이 된 것일까.
난 김일성평전은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때 공산주의자였던 사람이 어떻게 인민을 철저히 배신했는지를 통일 후의 북한 사람들이 다시 배워야 할 것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07/20161229/82083240/1#csidx582c65a347a318ababa7498b552e26b
논란이 예상되는 새로운 책을 하나 알게 됐다.
주성하 기자 ‘김일성평전(상·하편)’. 상편만 700쪽이 넘는다. 저자 유순호는 중국 옌볜에서 나서 자랐고 오래전부터 항일투쟁사에 천착했다. 동북항일연군 군장 조상지의 전기 ‘비운의 장군’(1998년)을 쓴 지 3년 뒤 중국에서 “사회주의 문화시장을 교란한다”는 죄목으로 활동 금지를 당해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이후 조상지의 후임인 허형식 군장의 전기 ‘만주 항일 파르티잔’(2009년)을 출판했고 이번에 김일성평전을 마무리했다.
난 김일성 연구의 한 획을 그은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서대숙)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와다 하루키)은 물론이고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8권까지를 모두 정독했다. 이 중 유순호의 김일성평전은 과거 모든 김일성 연구서를 뛰어넘는 ‘끝판왕’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저서들이 광복 이전의 기록물 중심인 데 반해 김일성평전은 항일 연고자들의 회고, 중국 공산당의 비밀자료실에 보관된 문헌들과 수백 장의 진귀한 사진 등 과거 김일성 연구자들이 접할 수 없었던 생생한 중국 측 자료들로 채워져 있다. 동북의 항일투쟁사를 논함에 있어서 중국 측 자료의 중요성은 거의 절대적인데 드디어 그 빗장이 풀린 것이다.
저자는 1980년대부터 20년 넘게 관련 자료를 모으고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당시엔 김일성의 상관이던 인물들이 중국에 많이 생존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이 거의 다 세상을 떠나 더 이상 만나거나 얘기를 들을 수 없다.
김일성평전은 김일성 신화의 거품을 걷어내고 있다. 혁명 모금을 한다며 부자들을 협박하던 10대의 김성주도, 만주에 퍼진 김일성 신화를 이용하려 이름을 개명한 20대의 김성주도 당시 함께했던 이들의 증언으로 밝혀내고 있다. 앞서 만주에서 김일성으로 활동했던 인물들이 누구였는지도 책은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북한이 크게 선전하는 ‘북만원정’도 사형 당할 위기에 처하자 야반도주한 것이며 1938년에 김일성이 일제에 항복하려 했다는 증언도 들어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1920, 30년대 만주는 거대한 항일의 바다였고, 김일성은 작은 실개천이었다. 김일성의 가장 큰 업적은 죽거나 사로잡히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최후까지 살아남은 김일성은 수많은 항일 선배들의 업적을 가로채 실개천을 바다로 둔갑시켰다. 이런 신화 조작은 지금도 3대 세습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한 중국인 연고자는 저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김일성이 자기가 하지 않은 일, 남이 한 일도 자기가 한 일이라고 거짓말하는 것은 두고 볼 수 없다. 이것은 도적질과 같은 행위가 아니고 뭐겠는가.”
나는 통일 후 북한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김일성 신화를 벗겨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은 옛날 반공교육 시대에 만들어진 김일성 가짜설로는 어림도 없다. 김일성과 함께했던 이들의 증언은 빼고, 그냥 ‘카더라’식 위주로 채워진 주장은 북한 역사보관소의 원본 문헌들만 공개돼도 즉시 생명력을 잃을 것이다.
김일성평전은 통일 후엔 북한에서 밀리언셀러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 책이 완전무결한 것은 아닐지라도 이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는 책은 찾기가 어렵다.
북한은 김일성평전의 출판을 막기 위해 원고를 사겠다는 등 각종 회유를 했고, 사료를 갖고 뉴욕까지 날아와 이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역사는 진실이어야 한다는 신념 아래 원고를 들고 서울로 왔다. 하지만 그가 100여 개의 출판사와 접촉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국가보안법 때문에” “보수단체가 고소하면 변호사비로 큰돈을 날릴 것”이란 이유라고 한다. 자비로 우여곡절 끝에 겨우 상편 30부만 찍었지만 이대로라면 이 책은 출판사를 찾지 못해 묻힐 처지다.
이미 1980, 90년대에 김일성의 항일투쟁사를 담은 책들이 출판됐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난 2016년의 대한민국에 접어든 마당에 김일성 신화를 무너뜨릴 저서가 김일성의 항일활동을 다뤘다는 이유로 외면당하고 있다.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우리는 진보한 것인가, 퇴보한 것인가. 역사 앞에 정직하게 대할 자세와 준비는 돼 있는 것인가. 북한의 역사 왜곡을 당당히 단죄할 수 있을까. 김일성평전 하나 찍을 아량조차 사라진 곳이 된 것일까.
난 김일성평전은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때 공산주의자였던 사람이 어떻게 인민을 철저히 배신했는지를 통일 후의 북한 사람들이 다시 배워야 할 것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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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donga.com/3/07/20161229/82083240/1#csidx582c65a347a318ababa7498b552e26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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