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11

광장(소설)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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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소설)

최근 수정 시각: 2018-02-13 22:18:56


1. 개요2. 줄거리3. 상세4. 패러디


1. 개요[편집]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소설가 최인훈이 집필한 소설이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남북한 통일론에 대한 논의가 자유로워지면서 등장했으며 당시 남북한 이념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한 최초의 소설로 꼽힌다. 해방 직후에서 6.25 이후까지, 남북한의 이념 대립과 그 사이에서 파멸해가는 '명준'이라는 개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참고로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중복 출제(94년 1차/06년)된 두 번째 소설. 첫 번째로는 염상섭삼대(94년 1차/99년)가 있으며, 세 번째로는 이문구관촌수필이 있는데 무려 세 차례(03년/10년/18년)나 출제되었다! 한국 문학사에 있어서 중요한 수작이라 현재까지 수능이나 모의고사에도 자주 출제되고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도 수록되기도 해서 여하튼 고등학생들에게는 익숙한 작품일 것이다.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라는 첫 구절이 굉장히 유명하다. 처음부터 만들어진 문장은 아니고 작가의 연이은 개정으로 인해 만들어진 멋드러진 문장이다. 초판 문장은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이면서 숨쉬고 있었다" 이다.

2. 줄거리[편집]


작품 내의 시간은 타고르[1]호에서의 이틀뿐이고, 대부분의 이야기는 명준의 회상이다.

남한의 대학생 이명준은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수난을 당하고, 밀실은 넘치나 '광장'이 없는 현실에 좌절하던 명준은 결국 연인 윤애를 남겨둔 채 월북한다. 이때 등장하는 공산주의기독교의 비교가 인상적이며, 학교대사전 등에서 패러디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 또한 표현의 자유가 극히 제한받는, 각종 집단주의를 위한 광장은 있으나 개인의 '밀실'이 없는 곳이었고[2] 그는 그곳에서 도피하듯 새 연인 은혜와 인연을 맺는다.[3] 그러던 중 6.25 전쟁이 벌어지고, 공산군 고위 장교로 참전한 명준은, 꿈에서 친구 태식의 아내가 된 윤애를 강간하려다가 그만두고 '악마도 되지 못한' 자신을 비웃는다.



윤애 날 믿어줘, 알몸으로 날 믿어줘

낙동강 전선에서 명준은 간호장교로 투입된 은혜를 다시 만난다. 그곳의 한 동굴에서 둘만의 시간을 가지던 중 은혜는 명준의 딸을 가진 것 같다는 말을 하지만, 얼마 안 가 폭격에 비명횡사하고 만다. 이후 포로가 된 명준은 남한도 북한도 아닌 중립국 행을 선택하게 된다.[4]

명준은 중립국으로 지정된 인도로 향하는 타고르 호에 오른다. 그러나 중립국에서도 자신의 행복을 찾지 못하리라는 것을 예상한 명준은, 갑판 위 두 갈매기의 모습에서 은혜와 자신의 딸을 떠올리며 마지막 자유의 공간인 푸른 광장으로 뛰어든다.[5]

3. 상세[편집]


사실 마지막에 명준은 나름대로 답을 찾았다고 봐야겠지만, 그가 찾은 마지막 자유가 현실화될 수 없는 이상으로 멈춰버린 것은 결국 명준이 시대의 희생양으로 남았다고 볼 수 있는 증거이다.

줄거리를 읽다보면 알 수 있듯 성애 묘사가 의외로 빈번히 나온다.[6] 한편으로 소설을 읽다보면 한국어스러운 표현을 쓰기 위해 통찰하고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수정을 거치면서 나타난 변화 중 하나.

그 외, 광장은 작가가 가장 애착을 가진 작품으로, 10여 차례 이상 수정되었는데 부분 표준어로의 수정, 한자어가 아닌 고유어로의 수정이 많으나[7]이런 어휘 수정뿐만 아니라 내용상의 수정도 꽤 있었다. 60년 새벽지에 처음 연재되었던 판본에서는 그 유명한 "중립국"에 대한 8페이지에 걸친 이야기가 없이 그냥 중립국으로 가는 걸로 나와서 중립국에 가는 개연성이 조금 떨어지지만, 61년 정향사에서 출판될 때는 우리가 아는 그 유명한 삽화가 삽입된다. 내용과 주제 역시 많이 바뀌는데, 가령 갈매기 알레고리가 원래는 윤애와 은혜였지만, 73년 민음사본에서는 은혜와 그 딸로 바뀐다. 이데올로기 간의 대립 속에서 헤매다 희생되는 것으로밖에 해석될 수 없던 명준의 최후가 사랑에 대한 추구로도 해석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본디 이 문서에 원래 결말은 명준이 중립국으로 가는 것이었다, 검열 때문에 수정된 거다 같은 소리가 쓰여 있었는데 얼토당토 않는 소리다. 우선 광장은 전술하였듯 가장 최근 수정본이 2010년본일 정도로 끝없는 수정을 작가가 가해 온 책이며, 그중에는 73년 민음사본, 76년 문학과지성사본처럼 내용 자체에 대한 거대한 수정이 가해진 판본도 있었다. 작가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인 이 작품의 결말이 군사정권하의 검열 때문에 왜곡된 것이라면 고치려면 얼마든지 고칠 수 있었을 것이다.[8] 그리고 무엇보다



'메시아'가 왔다는 이천년래의 풍문이 있습니다
신이 죽었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신이 부활했다는 풍문도 있습니다. 코뮤니즘이 세계를 구하리라는 풍문도 있습니다.
우리는 참 많은 풍문 속에 삽니다. 풍문의 지층은 두텁고 무겁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르고 문화라고 부릅니다.
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풍문에 만족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운명을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합시다. 광장에 대한 풍문도 구구합니다. 제가 여기 전하는 것은 풍문에 만족지 못하고 현장에 있으려고 한 우리 친구의 얘깁니다.
아시아적 전제의 의자를 타고 앉아서 민중에겐 서구적 자유의 풍문만 들려줄 뿐 '사는 것'을 허락지 않았던 구정권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 저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


이게 광장이 최초로 공개된 새벽 지에 실렸던 1960년 11월의 서문이다. 당시 사회는 4 19로 인해 들뜬 상태였으며, 광장은 이런 주제가 자유롭게 이야기될 수 있던 굉장히 아슬아슬한 시대에 나온 작품이다. 조금만 더 빨랐으면 이승만 정부에 검열당했을 테고, 조금만 더 늦었으면 박정희에 검열당했을 테니. 휴 다행이야 역시 인생은 타이밍 참고로 광장의 최초의 출판본인 정향사본 역시 61년에 출간되긴 했으나 5 16 전에 출간되었다. 한마디로 검열 때문에 결말이 바뀌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

같은 작가의 소설 구운몽과 한책으로 묶어 파는 경우도 많다.

통쇄 189쇄를 돌파하였다고 한다.

4. 패러디[편집]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


"중립국."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장교가, 윗몸을 테이블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동무, 중립국도, 마찬가지 자본주의 나라요. 굶주림과 범죄가 우글대는 낯선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

"중립국."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요. 자랑스러운 권리를 왜 포기하는 거요?"

"중립국."

문학교과서에 자주 수록된 명준이 남한행을 설득당하는 장면은 광장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남한과 북한 측 설득자가 무슨 소리를 해도 중립국. 이 부분만은 비교적 패러디하기가 쉬워서 허생전, 방망이 깎던 노인, 운수 좋은 날 등과 함께 패러디 재료로 자주 활용된다.4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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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 이름마저 중립국의 시인 이름. 즉 명준은 타고르 호를 타고 타고르의 나라(중립국인 인도 공화국)로 가고 싶은 것이다. 게슈탈트 붕괴[2] 명준은 월북한 아버지의 힘으로 전공을 살려 처음에는 언론사에 들어갔는데, 이러한 면들에 실망하고 일부러 건설 현장으로 나간다. 명준이 또 실망한 점이라면, 아버지를 찾아갔더니 아버지는 권력층이 되어 명준 또래의 새파랗게 젊은 아내를 맞아들여 부르주아처럼 살고 있었다.[3] 노가다 일을 하다 사고로 부상당해 입원했는데, 거기에서 간호봉사를 온 은혜를 만나게 된다. 은혜는 원래 간호사는 아니고 발레리나였다.[4] 남, 북에 모두 실망한 탓도 있었고, 북한으로 가 봐야 남로당계인 아버지는 숙청당할 것이라 명준 자신도 무사할 수 없었다. 포로 수용소에 갇혔을 때, 북의 소식을 들은 병사가 박헌영이 체포당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었다.[5] 위즈키즈라는 어린이 청소년용 잡지의 인터뷰에서 소설의 마지막을 자살로 선택한 이유는 자살이 가장 임팩트있는 결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작가가 직접 설명했다. 이 때문에 수정본을 제작할 때도 이 부분은 수정하지 못했다고 한다.[6] 물론 '인간애'를 나타내고자 하는 수단이다.[7] 대표적인 것이 '조국의 하늘은 매양 곱구나'란 반어법적 탄식이 '내 나라 하늘은 곱기가 지랄이다.'란 직설적인 고유어로 바뀌었다. # 글 후반부[8] 애초에 작가가 가장 영향력있는 결말이 이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수정할 때도 수정하지 않고 놔두는 것이다.[9] 중립국혜르노빌로 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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