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은근발랄]파국으로 치닫는 현실과 '미학적 실천'의 간격경향신문 | 2013.06.28 22:00
◆ 공중전과 문학
W G 제발트 | 문학동네
연애편지를 써본 사람이라면 아마 기억할 것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한마디를 피해내기 위해 수많은 문장들을 밤새 구겨버렸던 경험을 말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모든 연애편지 앞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어떤 이중성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대개 연애편지란 처음에는 상대방에게 다가가기 위한 용기의 수단이지만, 편지지가 채워질수록 그것은 연모의 감정 이상으로 두려운 존재가 되어갈 수밖에 없다. 완성된 편지를 우체통에 집어넣는 순간, 거기에 담긴 마음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상대의 손바닥 위에 놓이게 되는 까닭이다. 아름다움뿐이던 사랑의 감정에 실패에 대한 공포가 번지고, 결국 편지는 그 순간을 유예하기 위해 한없이 길어지며 밤을 지새운다. 그렇게 사랑은 매번 서랍 깊숙한 곳에 부치지 못한 편지를 남긴다.
제발트를 이야기하면서 난데없이 달콤한 연애편지 이야기를 꺼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애써 짜낸 용기를 헛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늘어놓던 수많은 미사여구들은, 오늘날 현실을 바라보는 문학의 태도와 너무나도 많이 닮아있는 까닭이다. 게다가 현실에 만연한 풍경들은 사랑의 감정과 비교하면 훨씬 더 누추한 것들일 수밖에 없기에, 그것을 말 위에 미끄러트리는 문학의 방법론 또한 연애편지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은밀해질 수밖에 없다. 혹자는 그것을 가리켜 '미학성'이라 부르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것이 "문학이 자기 정당성을 스스로 박탈하는 처사"라고 잘라 말한다.
< 공중전과 문학 > 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발트가 주목했던 것은 영국 공군에 의해 감행된 대대적인 공습이었다.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무차별적인 파괴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전후 독일 사회에서는 이와 관련한 "그 어떤 것도 공적으로 의미 있는 기호가 되지 못했"다. 도대체 이러한 모순이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일까. 그가 보기에 "자신들이 보았던 것을 기록하고 그것을 우리 기억 속에 짜넣어두는 데 한 세대의 독일 작가 전체가 그토록 무능했던 가장 주요한 원인"에는 폭격으로 초토화된 독일을 똑바로 마주보지 않으려 했던 이들이 있었다.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압도적인 파괴의 순간들 앞에서 당시의 독일 문학은 "반어적인 경탄조로 사실을 기록함으로써 모든 인식에 필수불가결한 거리를 유지"하거나, 또는 현실이 " '불길의 먹이'니 '운명적인 밤'이니, 또는 '활활 타올랐다'느니 '지옥이 시작되었다'느니, 아니면 '우리는 생지옥을 목도했다'거나 '독일 도시들의 끔찍한 운명' 같은 상투적인 표현들 뒤에 가려 흐릿해"지도록 의도적으로 방치했다. 물론 이러한 기록들은 문학적인 표현들을 동원하여 당시의 참상을 생생하게 재현하겠다는 의도를 내세우고 있었지만, 제발트가 보기에 저 화려한 수사들이 사용된 진정한 목적은 "이해력을 넘어서는 현실을 희석시키기 위한 기억의 방어기제"들을 만들어내는 것에 불과했다.
눈 밝은 독자라면 지금부터 이어질 내 말을 이미 예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제발트를 사로잡았던 그 의문, "폭탄이 떨어진 밤에 대한 기억이 있다. 문학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저 의심은 지금 이 순간 한국문학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가해질 수 있는 질문이다. 용산참사가 일어난 즈음부터 지난 몇 해간 한국문학은 현실에 대한 '미학적 실천'을 둘러싼 고민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하지만 파국으로 치닫는 현실 앞에서 문학'만의' 실천을 고민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방어본능이 이미 작동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 이강진 | 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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