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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과 문학》 - 전쟁을 다시 써야 할 의무 | 오늘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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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0 | 스크랩 0 | 2013-11-14 09:43
W.G.제발트 | 《공중전과 문학》 | 문학동네 | 2013
기록의 원본은 기억이다. 펜을 들고 무언가를 적어내리기에 앞서 무엇을 어떻게 쓸지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느냐고 자문하는 것과 같다. 온전히 한 사람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서. 그렇기 때문에 기록은 자의적으로 쓰일 소지가 다분하다. 본래의 일을 축소·과장하는 식으로 말이다. 고통스러운 기억이라면 더욱이 저 먼 과거로 떨치고 싶을 것이다. 죽음과 파괴의 현장에서 살아남고, 살아가야 했던 기억이라면. 어떤 일은 그래서 있었으되 잊히고, 아예 기록되지 않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뒤돌아보지 않는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그러한 진보와 발전은 온당한 것일까? 그것을 극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증언하는 사람이 생을 다하고 나면 오늘날 산 자들에게 기록은 곧 기억의 원본이 된다. 하지만 애당초 무언가가 비어 있는 기억에서 비롯된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죽음과 파괴를 말하지 않고 어떻게 그 참상을 경고할 수 있을까? 기록하는 자, 문학하는 자라면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질문일 것이다. 이는 제발트가 죽음과 파괴, 즉 전쟁을 성찰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오늘날 이차대전 막바지 몇 해 동안 독일 도시들이 겪은 초토화 규모를 그 절반만이라도 제대로 떠올려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그 초토화의 참상이 어떠했는지를 깊이 생각해보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물론 연합군의 전략폭격 조사나 독일 통계청의 조사, 여타 공식 출처에서 영국 공군이 독자적으로 40만 번의 출격으로 100만 톤의 폭탄을 적국 영토에 투하했다는 것, 한 차례 또는 그 이상 수차례 공격받았던 총 131개의 독일 도시 가운데 몇몇 도시가 거의 철두철미하게 붕괴되었다는 것, 독일 민간인 60만 명이 이 공중전으로 희생되었다는 것, 주택 350만 채가 파괴되었고, 종전 무렵에는 75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앉았으며, 쾰른에선 주민 한 명당 31.4세제곱미터의 건물 잔해가 쏟아지고, 드레스덴에선 주민 한 명당 42.8세제곱미터의 건물 잔해가 쏟아졌다는 것이 모두 사실로 드러나기는 했지만, 이러한 것들이 정녕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13쪽)
“이러한 것들이 정녕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는 이유로 제발트가 꼽은 것은 “이 말 없음, 이 닫아버리고 회피하는 상태”(49쪽)다.
독일인은 왜 집단 망각에 빠지고 말았는가. 제2차 세계대전 후, 그들은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전범 국가이자 패전국으로 규정된 독일은 국가적 차원에서 자국민에 대한 애도를 피해왔다. 영국의 공습이 나치스에 대한 인과응보적 전략이라기보다는 독일 내 대다수 도시를 무분별하게 겨냥한 폭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전쟁의 참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제발트가 보기에 이 같은 인식은 독일문학에도 전이되었다.
《공중전과 문학》은 바로 자신들의 고통을 직면하지 않는 독일문학을 가리켜 그러한 “문학작품은 내면생활을 감싼 외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저급한 안감은 어디에서나 드러나는 법이다.”(194쪽)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제발트는 단지 영국의 공습만을 운운하지 않는다. 그가 환기하는 것은 “그 시절 유럽에서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101쪽)으며,
“바로 우리가, 우리가 한때 살았던 도시들의 초토화를 유발한 장본인이었”(142쪽)다는 사실이다. 연합군이건 나치스이건 간에 모든 사람에게 전쟁은 비극이었다. 그 비극은 기억되고, 기록되어야 했다. 하지만 폐허는 “집단적 광기의 참담한 결말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성공적인 재건의 첫 단계라 할 그런 것으로”(17쪽) 기억되었고, 곧이어 새로운 도시가 지어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만큼의 빈자리를 갖게 됐다. 기억의 빈자리. 지난 폐허를 마주하기에 충분한 기록을 갖지 못하는 한, 문학이 기록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한, 전쟁은 오늘날처럼 계속될 것이다.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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