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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치사상사연구
마루야마 마사오 (지은이)통나무1998-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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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판 확인일 : 2021-05-31
534쪽
책소개
일본 학계에서 `천황`으로 불렸던 마루야마 마사오의 대표작. 근대 일본에서 내부적으로 발전되어온 근대정신의 존재를 치밀하게 분석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우파 어용학자들이 전체주의적 권위주의적 일본 전통을 강조하던 시절에, 그에 반대하는 정치적, 학문적 의미를 담고 있었던 책이다.
목차
解題 :배움을 희구하는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고함 김용옥(1995년 3월)
영어판 저자서문 마루야마 마사오(1974년 8월)
저자 후기 마루야마 마사오(1952년 11월)
번역 작업을 마치고 나서 김석근(1995년 3월)
제1장 근세일본유교의 발전에 있어서 소라이가쿠의 특질 및 코쿠가쿠와의 관련성
제1절 머릿말- 근세 일본 유교의 성립
제2절 주자학적 사유양식과 그 해체
제3절 소라이가쿠의 특질
제4절 코쿠가쿠 특히 노리나가가쿠와의 관련성
제5절 맺음말
제2장 근세 일본정치사상에 있어서의 '자연'과 작위
제1절 이 글의 과제
제2절 주자학과 자연적 질서사상
제3절 소라이가쿠에 있어서의 선회
제4절 '자연'으로부터 '작위'에로의 추이와 그 역사적 의의
제5절 쇼오에키와 노리나가에 의한 '작위' 논리의 계승
제6절 바쿠후 말기에 있어서의 전개와 정체
제3장 국민주의의 '전기적'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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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마루야마 마사오 (丸山眞男)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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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1937년 도쿄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했으며, 1940년 같은 대학의 조교수, 1950년에는 교수가 되었다. 대표작 <일본 정치사상사 연구>에서 에도 시대의 사상가 오규 소라이를 분석해 일본의 근대 의식이 형성되는 과정을 파헤쳤다. 1996년 타계할 때까지 일본 정치학계뿐만 아니라 지성계의 흐름을 주도했다.
주요 저서로 <현대 정치의 사상과 행동> <일본의 사상> <전중과 전후의 사이> <후위의 위치에서>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 <충성과 반역>과 <마루야마 마사오 전집>(17권)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일본의 사상>,<전중과 전후 사이 1936-1957>,<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 … 총 53종 (모두보기)
9.4
헤겔 변증법의 아주 명증한 예시... 너무 흡입력이 강했다. 어떻게 극복해야할 진 잘 모르겠고, 일단 별 다섯개...
Todaraba07 2018-01-04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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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학계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명저!
HERM 2011-10-0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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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없는 명저. 30대의 젊은 마루야마 마사오의 학문적 성취에 그저 감탄만 나올 뿐. 옥에 티라면 도올의 장황한 서문. 이 서문도 그 나름대로는 재밌음.
bookworm 2020-11-10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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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치사상사연구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정치사상사연구”를, 때로는 재미있게 때로는 지루하게, 다 읽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름의 관점이 서게 되자 저자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아쉽게도 그때부터 이 책은 매우 지루한 책이 되어 버렸다. 이런 관념적인 책은 어느 일부분에만 부동의한다든지 하게 되지 않는 것 같다. 전부를 긍정하지 못한다면 전부를 부정하게 되는 것 같다.
해제를 쓴 김용옥은 저자 마사오가 이 “연구”를 이십 대의 나이에 썼다는 사실을 매우 강조한다. 그만큼 이 저작이 기적과 같은 작품이라는 뜻이리라. 그러나 적어도 지금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연구”는 이십 대의 저작이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그만큼 관념적이라는 뜻이다.
저자의 기본적인 문제 설정은 이렇다. 동양에서 일본만이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했다. 어째서일까?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일본의 근세 유학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근대적 사유의 맹아가 싹텄기 때문에, 메이지 유신 이후 그 맹아를 이어받아 근대화가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일본의 근세 사상사에서 성리학이 사상적 도전을 받아 해체되고 근대적인 사유의 맹아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자연에서 작위로’ 라는 개념틀을 이용하여 꼼꼼하게 그려나간다.
그러나 이런 관념적인 지도가 현실을 제대로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관념론은 실증적 연구의 도전을 이겨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저자 자신이, “연구” 출간 30년 후에 쓴 영어판 서문에서 이런 진화론적 도식의 난점을 분명히 인정한다. “사회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주자학의 보급과 … 주자학에의 도전은 거의 동시적으로 진행되었다고 보지 않으면 안된다”(72페이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 도식을 전부 파기한다 하더라도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반주자학적 개개 학파나 그들 사이의 연관 관계에 대한 해석들은 살려낼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솔직히 나는 후자에 있어서도 대단히 부정적이다.
내 생각에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근세 유학(혹은 신유학, 혹은 주자학)에 대한 참신한 해설인 것 같다. 단순히 이론적인 논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차원과 정치-윤리적 차원을 동시에 고려하여 입체적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간략하게 정리해보자. “태극도설”에서 만물(인간과 자연)이 태극에서 나왔다고 한 것을 주자는 “태극이 곧 리”라고 해석하여 리 중심적인 학설을 세웠는데, 이것이 곧 주자학의 정통적 해석이 된다. 이 정통적 해석은 어떤 통일적 세계관을 도모한다. 인간과 자연,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정치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 등 모든 것이 태극 혹은 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통일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런데 태극 혹은 리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도덕적인 것으로 사유된다. 그러므로 세상만사는 도덕적 가치 관계에 의해 구획되는데 그 실제는 최대한 의리, 명분을 고양하고 최대한 욕망을 억누른다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하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 신문물은 쓸데 없이 인간의 욕정을 자극하므로 억제되어야 한다, 시가는 인간을 도덕적으로 고양시킬 수 있어야 한다, 역사는 교훈을 주는 것으로 그 존재 의의가 있다, 등등.
그러므로 자연히 이런 도학주의적 관점에 반대하는 입장이 나오게 마련이다. 예컨대, 번개가 치는 것에 어떤 도덕적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임금은 정치만 잘하면 되는 것이지 그의 성적 취향을 굳이 따져야 하는가? 공자의 제자 중에도 주먹이 먼저인 사람이 있는데 모든 사람이 다 안회처럼 조용히 명상만 해야 한다는 것인가?
이는 이론적으로 말해서, 도덕으로 덧칠된 리의 우위성을 부정하고 반대로 기의 우위성을 주장한다는 것, 리는 오히려 기에 종속하는 것으로 사유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기일원론적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기일원론이 파괴한 것은 리 중심의 통일적, 보편적 세계관이었다. 예컨대, 인간은 사물과 달리 욕망을 가지고 있으므로 인간의 법칙과 사물의 법칙은 다르고, 그런 관점에서 인간의 욕망 자체도 긍정되어야 한다, 인간 중에 안회와 같은 사람도 있고 자로와 같은 사람도 있으니 이들의 기질지성은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한다, 인간이 도덕적으로 고양되어 성인이 된다고 세상을 잘 통치하는 것은 아니다. 즉, 정치는 또다른 기술의 영역이다, 등등.
그러므로 리 중심적인 입장을 주자학 우파, 기 중심적인 입장을 주자학 좌파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 마사오가 일본 근세 사상사에 있어서 반-주자학적 경향이라고 부른 것을 우리라면 그저 주자학 좌파라고 칭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는 주자학 좌파든 우파든 똑같이 주자학적 개념 안에서,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사회 경제적 위치의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사태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 한국에서라면 주자학 좌파를 넓게 봐서 실학의 일부라고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몇 가지 재미있는 문제들이 떠오른다.
첫째, 일본의 근세 사상사와 한국의 그것이 평행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우연의 일치는 아니고, 조선의 주자학, 특히 이황의 견해가 일본에 널리 소개된 것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저자 자신은 “연구”를 쓸 때 이러한 점을 소홀히 했다고 인정하고 있다. 한일 양국의 근세 사상사를 비교 연구한 것이 있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 그런 비교 연구를 통해 드러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이데올로기와 사회-경제 체제와의 관련성일 것이다. 마사오는 주자학 우파가 체제 안정적이므로, 예컨대 정립되어 있는 일본 봉건제에 잘 들어맞는다고 이야기한다. 일리 있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체제라는 것은 설사 그것이 평형 상태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평형은 항상 동적 평형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체제는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변혁을 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변혁을 꾀하는 세력이 항상 좌파인 것도 아니고, 정권 담당자들이 항상 우파인 것도 아니다. 프랑스 혁명사나 한국의 근세 사상 논쟁사를 보면 도드라지는 내용이고, 최근 터키나 예전의 이란의 예를 보더라도 결코 무심히 넘길 수 없는 부분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부분까지 신경을 쓰지는 못한 것 같다. 물론 이를 저자의 한계로 비판하고 가볍게 넘어가 버릴 수는 없다. 일본의 근대화가 위로부터의 혁명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정치적 근대화 과정의 모델로 여기고 있는 프랑스에서의 부르주아 계급같은 혁명 계급의 대두가 일본에서는 없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저자가 근대성의 맹아적 사유를 보이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일본의 근세 사상가들 대부분은 봉건제의 유지에 진력을 다한, 말하자면 반동적 사상가들이었다. 솔직히 나는 이러한 부분에 저자의 기만성이 있다고 본다.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는 철저하게 봉건적이지만, 그 수단적 이론 논쟁에 있어 주자학 좌파로 분류될 수 있는 사상들을 저자 마루야마는 근대적 사유의 단초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즉, 마루야마의 “연구”는 사회 경제적 차원을 구색 맞추기 위해 동원했을 뿐으로 관념적 논쟁사 이상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셋째. 해제자 김용옥은 “독기학설”에서 실학이라는 개념의 성립 가능성을 부정한다. 지금 그 논변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대체로 이른바 실학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이런 저런 학파를 설립한 것도 아니고, 서로가 이런 저런 경향의 학문을 하고 있다는 자의식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실학의 실체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김용옥이 보기에 실학이라는 개념은 서구 역사의 근대라는 범주를 한국 역사에 때려 맞추려고 현대적 관점에서 만들어낸 허위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정확히 마루야마의 “연구”의 안티-테제로 구성된 이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940년대에 나온 마루야마의 “연구”의 문제 설정의 한계는 그냥 눈감아 줄 수 있지만 그보다 50년이 더 지나 나온 김용옥의 시대착오적 문제 설정은 솔직히 좀 지나치다 싶다. 첫째, 조선 후기라는 시대는 서구의 주도에 의해 지구 위의 모든 인민들이 하나의 역사를 향해 모여들고 있는 시대였다. 당시 조선과 일본의 정치 집단과 사상가 집단들은 중국 이외에도 또다른 강력한 세계가 있음을 의식하도록 강제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이 서구라는 타자는 조선이나 일본의 실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둘째, 조선에서건 일본에서건 성리학적 보편주의는 사실상 중국 중심주의에 지나지 않음이 간파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주자학 좌파를 매개로 하여 그 보편주의가 해체되고 새로이 시야에 들어선 것은 자신들의 역사, 자신들의 문화, 자신들의 정치, 자신들의 백성, 자신들의 학문 등등이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실학을 하나의 실체로 정의할 때, 그 정의가 꼭이 대자적인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대자적인 정의는 항상 대타적인 것을 경유한다. 지금의 경우에는 중국의 타자화와 동시에 타자로서의 서구의 발견이 조선이나 일본의 자기 자신의 발견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마루야마의 “연구”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일본이 자기를 깨닫게 되는 순간들을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마루야마는 이를 자연에서 작위로의 변화라고 말하는데, 내 생각에 이는 완전한 억지인 것 같다. 그래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제2장은 너무도 어설퍼 보인다. 마루야마의 해석과는 달리 제2장은 성리학적 중국 중심주의가 해체되면서 일본 자신의 지역성이 발견되고, 그 지역성의 정체성을 담보할 장치로 천황이라는 제도가 발굴되는 과정으로 이해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중세 보편주의가 깨지면서 자신의 지역성을 재발견하는 과정은 유럽 세계에서도 똑같이 벌어진 일이었다. 훗날 일본의 군국화 과정에서 그 천황이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기능했다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왜 일본만이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이 어떤 내재적 답변을 요구하는 한에서 이 질문은 대단히 이데올로기적이고 위험한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한에서 이 질문은 폐기되어야 마땅하리라. 만일 이 질문을 실증적으로 접근한다면 수 많은 우연성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일본의 지정학적 위치 등등. 그리고 그 답은 중층적 관점에서 일본의 오늘을 이해하는 틀을 제공하는 것이 될 것이다. 말하자면 일본의, 혹은 한국의 오늘을 이해하는 방법으로서의 일본의, 혹은 한국 각자의 고유한 근대화 과정을 답변 구성 과정에 경유시키는 것. 그러므로 굳이 이런 질문을 설정할 필요도 없다. 일본이나 한국의 오늘을 이해하기 위한 어떤 질문도 다 이런 식의 틀을 통해서 답을 제공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면 이런 질문을 해보고 싶다. 아시아권에서 서구적 자유민주주의에 근접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유일한 나라는 한국이다. 어째서인가? 혹은 이러한 양상이 지속될 것인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가 하면, 경제 수준이 고도화하면 정치, 사회, 문화 영역 전반이 고도의 자율성을 누릴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예측했지만, 대표적으로 싱가폴에서 그런 예측은 깨졌다. 일본도 정권 교체가 빈번하게 일어난다기 보다는 일 당 내의 계파 사이에서 정권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중국도 일인 독재의 길을 열었다. 북한이 개방된다 하더라도 일당 독재 체제는 고수하려 할 것이다. 이들 나라들은 왜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일까? 이들이 양당제나 다당제의 단점들을 부각시켜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오바마가 오바마 케어를 만들면 트럼프가 그것을 폐기하려 한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온 나라 사람들이 다 분열한다. 그러므로 다당제는 쓸데없는 혼란과 정력의 낭비만을 초래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일당 독재에서 오는 부패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일당 독재론자들은 당내의 부패 방지 기구들에 의해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것 저것 플러스 마이너스를 해본다. 어떤 체제가 더 나은가? 글쎄다. 이에 답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은 아니다. 적어도 확실한 것은 이제는 사회가 진전하면 필연적으로 서구적 모델에 안착하게 되리라고 예측하는 것은 목적론적 사고라고 비판받을 만한 시대라는 것이다. 여튼 선택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이해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베트남이 곧 경제적으로 강력한 국가로 성장할 것이라고 자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 어떻게? 베트남은 유교권 국가에 속한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유교적'이라는 것이 곧 이데올로기를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경제적 토대와의 관련성 하에서 이러한 범주를 어떻게 구성하고 이해해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은 동양권 나라들의 오늘을 이해하려는 실증적 노력을 통해 도출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들이 그동안 집요하게 추구되어 왔을까? 여튼 이러한 틀거리 속에서 “연구”를 읽었을 때 “연구”는 일본 근세의 사상들과 오늘의 우리들(유교 문화권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의 어떤 연속성을 자각하게 해주고 적잖이는 당황하게 한다. 예를 들면, 한국 사람들은 아직도 나이든 사람이건 나이 적은 사람이고를 떠나, 이리 저리 자기 자랑하고 나대는 사람을 “인성이 안좋다” 라고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그 사람의 기질지성으로 보지 않고 본연지성이 가리워져 있는 것으로, 즉 윤리적으로 하자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경향의 옳고 그름을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조선 시대 사람들과 우리들 사이의 친연 관계는 상상 외로 강력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법론적으로 오늘의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를 경유하는 것은 전혀 헛된 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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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2018-11-21 공감(1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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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텐노오의 저주를 누가 풀 것인가?
마루야마 텐노오(天皇)!
일본에 대해 피상적으로 (예: 일본이 있니 없니, 혹은 배낭여행기 등등) 떠드는 것이 아니라, 학술적으로 본격적인 관심을 가진 이라면 마루야먀 마사오(丸山眞男)라는 존재에 대해 잘 알고 있으리라.
사실 국내에 일본사상사(日本思想史)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환기시킨 사람으로 도올 선생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일본정치사상사연구(日本政治思想史硏究)》의 해제에서 도올이 마루야마 마사오라는 존재를 알고난 이후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도록 치열하게 대결해온 역정을 기술한 것만 보더라도, 일본학계에서 마루야마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도올의 고백에서도 나타나듯 아직도 일본학계에서 ‘마루야마 텐노오(天皇)’의 권위를 뛰어넘는 자를 찾기 힘든게 사실인 듯 하다. 물론 마루야마 생전이나 사후에 마루야마의 방법론을 비판한 학자나 서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근원적으로 마루야마를 부정하고 뛰어넘는 성과가 있었던 것은 아닌 듯 싶으니.. 오죽하면 도올의 데미안 쿠로즈미 마코토 교수가 마루야마의《켄큐(硏究)》를 "거대한 거짓말"이라 했을까.
일본에 유학을 간 학자들을 크게 분류하자면 대개 두가지 타입으로 볼 수 있을 듯 싶다. 일본 학계의 우월성에 심취해 매몰되는 사람과 그 속에서 허점을 발견하려 애쓰는 사람.
도올은 마루야마가 서구라파 근대사상이나 서구라파의 역사전개방식에 대해 하등의 의심을 품지 않고 종교적 신념처럼 받아들이고 있음을 비판하고 나름대로 일본학계의 문제점을 넘어서려 애써왔으니,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려나..
이 책의 번역자 김석근 교수는 마루야마의 여러 저서를 한글로 번역해 내면서 실력을 쌓아가고 있음을 볼때, 우리학계의 신진학자들이 마루야마의 저주를 풀 날도 조만간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보며..
나 역시 수박 겉핥기만 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이 거대한 책에 서평이 적은 것이 안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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看書痴 2006-05-02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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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마루야마 마사오의 "발견"을 바라며
사실,
새로운 마루야마 마사오의 발견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아주 모순적이다.
이미 시대는 마루야마 마사오가 "일본정치사상사"를 쓰던 시대와도,
도올 김용옥이 20대에 "일본정치사상사"를 쓸 수 있던 마루야마를
신격화(이 표현이 타당하다면)하는 시대도 아니기에.
기본적으로 나는 이 책을 비판하기 위해 꺼내들었음을 미리 밝힌다.
"근대"를 꿈꾸었던, 진정한 "근대"를 꿈꾸었던 마루야마 마사오를 읽는 것은
도올 김용옥이 읽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새로운 의미를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제 말기 일본어 소설을 위시한 친일문학을 비판하던 임종국이 "국민문학"을 부러워했던 것과
김용옥이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정치사상사"를 부러워하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내면의 발견, 풍경의 발견은 이렇게도 무섭다.
말 그대로 '내면'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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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감는새 2009-07-08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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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큐'를 읽고
96년 사망한 일본 학계의 거성 마루야마 마사오의 대표작 '켄큐'를 읽었다. 25세의 나이에 이정도의 스칼라십을 보여준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규우 소라이라는 도쿠가와 시대의 한 유학자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 일본근대 정치사상의 태두를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과 적절하게 조화시키고 그 방법론으로 독일의 사회과학방법론을 접합시킨 그의 글을 일본을 알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독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세 일본에서 유교 특히 주자학이 위치와 그것이 전국시대의 불안을 마감하고 막부체제의 안정화에 어떻게 기여해 왔는가 에서 부터 시작해서 이후 출현한 코쿠가쿠와 소라이카쿠(소라이학)등의 주자학적 패러다임을 내부로 부터 무너뜨리고 우리가 근대적 정신이라고 말할수 있는 사상을 출현하고 받아들이는데 기초가 될 수 있었던 근세 일본의 사상들을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고, 각각의 사상들의 연관성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서술해놓은 수작이다.
작위와 부작위 등의 개념을 포함한 생소하지만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용어들을 배울 수 있고, 영어판 서문에서 저자 마루야마가 썼듯이 그가 '켄큐'를 쓰던 파시즘적 일본의 상황에 나름대로 대응하고자 했던 지식인으로서의 마루야마의 고뇌가 엿보이는 책이기도 하고, 본문을 읽기에 앞서 도올 김용옥이 쓴 '해제'역시 꼭 한번 읽고 넘어가야할 글들이다. 일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실 분들은 겁내지 마시고 한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솔직히 나도 책 구입한지 2년만이 이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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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원 2002-06-09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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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문화재단 독서챌린지 1기] 26주차 : 노라, 명희의 가출 그리고 탈아입구(脫亞入歐)
밀폐해버린 것, 그것들은 모순이며 회의이며 욕망, 또한 절망이기도 했었다. 그것은 혈기였으며 자기 추구였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지순한 것, 방종 뒤켠에 숨겨진 맑은 것, 진실이었을 것이다. 끝도 시작도 없었으며 풀지도 맺지도 못하는 몸부림과 쓰라렸던 것. 그러나 살기 위하여, 살아남기 위하여 적당한 곳에서 매듭짓고 적당한 곳에서 풀어버리고...... 그것들이 생명을 향한 비밀이 있듯이 사람도 생명을 향한 비밀이 있겠으나, 그게 바로 방편일 수는 없다. 방편은 오히려 인위요 섭리에 반(反)한 것일 수도 있다. _ 박경리, <토지 13> , p416/596
<토지> 독서챌린지 26주차. 이번 주 읽은 <토지 13>에서는 이혼을 둘러싼 조용하와 임명희의 대립이 그려진다. 동생 찬하와 아내를 부정한 관계로 엮어 내며, 이들을 괴롭히던 즐거움을 바라던 용하는 오히려 이혼(離婚)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황하고 만다. 용하에게 명희는 일시적 장난감이 아닌 지속적인 장난감이라는 면에서 놓쳐서는 안 될 존재였지만, 명희는 용하의 음모를 통해 '박제되어 버린 학'이 아닌 창공으로 날아오를 백조로 새롭게 자신을 인식한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에서 헨릭 입센(Henrik Johan Ibsen, 1828~1906)의 <인형의 집 Et Dukkehjem>을 떠올리게 된다.
지체만 얕았다 뿐이지 기품 있는 용모에 지적 분위기, 멍청하다 싶을 만큼 집착하는 것이 없었으며 약간 살풍경하고 무관심한 듯, 그런 감성은 이기적이며 싫증내기를 잘하는 용하 같은 성격에는 새로운 매력으로써 지속되어온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물질적 정신적, 혹은 육체적으로 욕망이 강한 여자를 용하는 싫어했다. 밀착해오는 여자는 일시적 장난감으로서 끝내버린다. 홍성숙이 그런 예에 속한다. _ 박경리, <토지 13> , p597/724
'나는 생각을 잃어버린, 다리도 목도 다 부러져버린 인형일까? 현실 같지가 않아. 누가 내 손가락 하나를 부러뜨려버린다 해도 아플 것 같지가 않아. 피도 흐르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사람일까? 저기 저 계속하여 끝없이 주절대는 사내도 사람일까? 점심을 가져가는 농부의 아낙, 가래질을 하는 농부, 그들보다 천배만배 불행한 나와 저 사나이. 왜 화가 나지 않지? 나는 지금 모욕감도 없다! 구경꾼을 넘어서서 난 이제 송장이 되었나?' _ 박경리, <토지 13> , p603/724
<인형의 집>의 노라가 빌린 돈에 대한 채무로 인해 '인형'이라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는다면, <토지>의 명희는 자신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용하를 통해 '인형'임을 알게 된다. 비록, 두 인물 모두 자신이 '인형'에 불과하다는 인식에 도달하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전자가 외부에서 주어진 충격을 계기로 자신의 삶 전반을 돌아본다면, 후자는 가정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곪아온 상처가 가정 내부의 폭발로 터졌다 것을 다른 지점이다.
헬메르 : 당신은 아내의 도리 그대로 나를 사랑했어. 통찰력이 부족해서 수단에 대해 옳은 판단을 내리지 못했을 뿐이지. 하지만 당신이 스스로 제대로 행동하지 못한다고 내가 당신을 덜 사랑할 것 같아? 아니, 아니, 그렇지 않아. 나에게 기대면 내가 당신에게 충고를 해 주고 인도하겠어. _ 헨릭 입센, <인형의 집> , p88/112
노라 : 그래요. 재미있었을 뿐이죠. 그리고 당신은 언제나 내게 친절했어요. 하지만 우리 집은 그저 놀이방에 지나지 않았어요. 나는 당신의 인형 아내였어요. 친정에서 아버지의 인형 아기였던 것이나 마찬가지로요. 그리고 아이들은 다시 내 인형들이었죠. 나는 당신이 나를 데리고 노는 게 즐겁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놀면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요. 토르발, 그게 우리의 결혼이었어요._ 헨릭 입센, <인형의 집> , p91/112
이러한 이별의 직접적인 원인에 대한 인식 문제는 노라의 남편 헬메르와 명의의 남편 용하가 이별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헬메르는 이별 직전의 대화가 채무와 관련된 문제에서 시작되었기에 노라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 지 모른다. 반면, 용하는 이별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싶지는 않지만 알기에 명희를 파멸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아닐런지. 결국, 용하는 명희를 능욕하며 마지막 잔도(棧道)를 스스로 불태우고 만다. 이런 면에서 헬메르-노라의 관계보다 용하-명의의 관계가 더 파멸적이다.
결코 저자세도 아니었다. 손이 떨렸던 것은 분노 때문인지 모른다. 아니, 사실이 그랬다. 조용하는 명희를 철저하게 부숴버리고 망가뜨리고 싶은 분노와 증오의 불을 태우고 있었다. 편지를 보낼 때마다 그는 이를 갈았다. 집 앞에서 잡는 팔을 뿌리치며 명희가 대문을 밀고 모습을 감추었을 때는 살기마저 느꼈던 것이다. 그는 결코 단념하지 않으리라 맹세를 했다. 그러나 한밤중이면 문득 명희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하곤 했다. 얼음장 같은 여자 옆에서 조용하는 지금 한밤중에 생각하곤 했던 그 절망을 되씹는 것이다. 단념을 하고 싶기도 했다. 끝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어떻게 포기를 하나. 그럴 수는 없다. 속수무책으로 끝낼 수는 없다. 낯가죽이라도 벗겨놔야지.(p585)... 능욕! 능욕, 스스로 목숨을 끊을 그런 힘조차 빼앗긴 능욕이었다. 철저하게 무자비하고 백정의 손에 달린 한 마리 가엾은 짐승같이 도살, 분명 그것은 육체를 통한 영혼의 도살이었다.(p607) _ 박경리, <토지 13> , p607/724
노라 : 우리가 함께 사는 생활이 진정한 결혼이 될 수 있다면 되겠죠. 잘 있어요.(현관문으로 나간다.)
헬메르 : (문 옆의 의자에 주저않아 머리를 손으로 감싼다.) 노라! 노라! (주위를 둘러보고 일어난다.) 아무도 없군. 그녀는 이제 없어. _ 헨릭 입센, <인형의 집> , p100/112
작품 안에서 노라와 명희는 모두 가출(家出)을 통해 가정과의 관계를 정리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그렇지만, 가출이 기존 관계의 청산이 아닌, 기존 관계의 강화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이 가출을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의 탈아입구(脫亞入歐).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 열강의 하나가 되고자 하는 일본의 욕망은 아시아라는 기존 체제를 벗어나려 했다는 점에서 하나의 나아감이고 탈출이다. 노라와 명의의 나아감과 일본의 탈출은 무엇이 달랐을까. 문제는 그들의 나아감이 그들이 형서했던 기존 세계를 자신의 나아감을 위한 연료탱크로 활용했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만일, <인형의 집> 노라가 집을 나가기 전에 집 명의와 통장의 잔고를 자신 명의의 계좌로 이체시켜 놓았다면, 이 작품의 장르는 아마도 범죄물로 바뀌었을 것이다. 일본이 아시아를 벗어나며 유럽체제로 편승하면서 벌인 모습은 이와 다르지 않게 보인다. 다만,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이러한 선택을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변할 지 모른다. 근대화된 경제 시스템과 천황제에 기반한 봉건전인 정치시스템. 전근대와 근대에 걸쳐진 이들의 갈등은 유럽제국과는 또다른 양상으로, 그리고 더 긴급하게 다가왔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를 변명하지 않았을까.
일본의 사회구조는 최상층에서는 가장 고도로 합리화된 독점자본이 우뚝 솟아 있지만, 그 저변에는 봉건시대와 거의 다름이 없는 생산양식을 지닌 영세농과 또한 거의 대부분 가족노동에 의존하고 있는 가내공업이 서로 비집고 늘어서 있었습니다. 최고도의 기술과 가장 원시적인 기술이 중첩적으로 산업구조 속에 병존하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봉건적 절대주의의 지배,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의 독점화의 진전이 결코 서로 모순하지 않고서 상호 보완해주는 관계에 있다는 것, 그것이 일본 파시즘 운동에서의 위에서 본 것과 같은 운명을 결정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_ 마루야마 마사오, <현대 정치의 사상과 행동> , p124
메이지유신(明治維新, 1868)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근대화 과정에서 드러나는 봉건제 - 천황제로 대표되는 - 와의 모순속에서 이 모순이 드러나지 않도록 '밀폐'하려는 일종의 '방편'이 제국주의 침략이었다는 점을 연관시켜 생각한다면, 결국 '탈아입구'로 표현되는 일본의 가출은 끊임없는 '과거 부정'과 '과거 지우기' 그러면서도 '과거 수탈'에 근거한 것이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용되었던 것이 바로 일본의 '내선일체(內鮮一體)'에 근거한 민족이론이라 여겨진다.
인간의 총체는 인류가 아닌가. 민족은 부분이다. 인간의 비극은 인류의 비극이요 민족의 비극도 인류의 비극이다. 개인이건 민족이건 생존을 저해하고 압박하는 것은 죄악이며, 근본적으로 부조리다.(p661)... 흔히들 국가와 국가 사이, 민족과 민족 사이엔 휴머니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들 하지. 그 말은 국가나 민족을 업고서 저지르는 도둑질이나 살인은 범죄가 아니라는 것과도 통한다. 하여 사람들은 얼굴없는 하수인, 동물적인 광란에도 수치심 죄의식이 없게 된다. 군중은 강력하지만 군중 속의 개인들은 무책임하고 방종하다. 권력이 그것을 조종할 때 권력은 인간의 부정적인 면 포악한 속성을 식지(食指)가 움직이는 곳으로 풀어주고 사냥해온 물소의 고기 한 점 던져주면서 국수주의의, 애국 애족의 이리를 만드는 거지. _ 박경리, <토지 13> , p663/724
다른 한 편으로 '내선일체'의 민족주의 속에서 어네스트 겔너(Ernest Gellner, 1925~1995)의 민족주의를 발견하게 된다. 내지(內地)의 근대화를 위한 사상기반으로 중심부-주변부를 아우룰 수 있는 사상 기반으로 '내선일체'가 이후 조선어 사용 금지 정책 등으로 발전하게 된 과정을 생각하면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민족주의는 겔너의 민족주의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에 대한 스미스(Anthony D. Smith, 1939~ )의 민족주의는 과거 전통과 종교의 역할을 대신하는 근대적 이데올로기의 일종을 민족주의라는 점에서 결을 조금 달리한다. 겔너와 스미스의 민족주의 차이는 거칠게 일본 제국주의와 이에 대항하는 독립투쟁의 민족주의의 차이로 여겨지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살펴보는 것으로 넘기자.
겔너에게 민족주의는 근대 산업사회의 문화이다. 즉 서구에서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성공한 근대화가 마치 해일과도 같이 전 지구를 불균등하게 휩쓰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민족주의이고, 그 민족주의의 핵심 내용은 근대 산업사회가 필요로 하는 언어문화(linguistic culture)로 설명된다.... 민족주의는 근본적으로 이전에는 저급한 문화들(low cultures)이 주민의 다수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주민 전체의 삶을 차지하고 있던 사회에 고급문화(a high culture)를 전반적으로 부과하는 것이다. 그것은 학교가 주선하고 국가교육기관이 감독하는 이디엄(idiom, 언어)의 확산, 즉 상당히 정확한 관료제적, 기술적 커뮤니케이션의 필요조건에 맞게 기호 체계화된 이디엄의 전반적인 확신을 의미한다. _ 김인중, <민족주의와 역사> , p749/927
이번 주 <토지> 독서 챌린지를 통해 가정의 속박을 거부한 근대화 시대의 두 여성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가정을 욕망을 밀폐시키고자 하는 일종의 방편이라고 본다면 비근대적인 요소로 볼 수 있을 것이며, 이의 연장선상에서 과거 전통을 떨쳐버리고 근대화를 향한 일본의 제국주의를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과거의 부정과 새로운 곳으로의 나아감. 이것이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명희와 노라, 그리고 탈아입구를 통해 생각하게 된다.
ps. 내부의 모순을 밖으로 표출하려는 일본의 다음 시선이 만주(滿州)로 향할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중일전쟁(中日戰爭) 때 함께 다루는 것으로 계획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일본은 지급 급해 있거든, 중국이 통일되어 물론 아직은 국공 간의 도저히 용해될 수 없는 문제가 남아 있지만 일단은 내란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생각한다면 중국은 일본에 비하여 두말할 것도 없이 대국 아닌가. 공포지. 특히 공산당의 집권을 무서워한 것은 바로 시장을 잃는다, 그것과 직결이 되는데 그럴 경우 일본은 바람 빠진 풍선 꼴이 되어 순식간에 쭈그러들어. 해서 그들은 만주를 두고 염치 좋게 일본의 생명선(生命線)이라 외쳐대는데 그들의 현실이 그런 것만은 사실이거든, 초조해하고 서둘러대는 건 조금도 무리가 아니야. _ 박경리, <토지 13> , p574/724
1904~1905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은 러시아를 대체하여 이 지역의 지배적 외세가 되어 특히 1910년 조선의 합병 뒤, 그리고 1차대전 중 동아시아의 제국주의 파워의 공백에서 이권과 영향을 증대시켰다.(p104)... 농업은 1898년과 1908년 사이에 두 배로 증가한 인구의 요구로, 그리고 대두 수출의 지속적인 수요로 촉진되었다. 20세기 초 만주 수출의 80%나 차지한 대두(大豆)와 그 추출물들은 세계 대두생산의 59%를 점하며, 1920년대 말까지 계속 이 지역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이 되었다. 대체로 수출지역이 일본이었지만, 후일 유럽의 축산 사료시장도 확보했다... 만주 경제의 성장으로 이 지역에 대한 중국 본토와 일본의 이권들도 증대되었다. 1903년에서 1928년까지 만주의 대 중국 무역은 3.5%에서 32.5%로 늘었지만, 상당량의 것은 일본 무역이었다. 1931년에 여전히 만주는 주로 농업경제였지만, 소비재 생산을 위한 공업생산의 성장도 있었다. _ 프래신짓트 두아라, <주권과 순수성>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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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2-01-16 공감 (49)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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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회의와 그들의 지향점, 천황제
일본회의는 1997년 5월 30일, 유력한 우파단체로 알려진 두 조직,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와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 통합하며 새롭게 결성되었다.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는 1981년 10월에 탄생했는데. 이른바 '원호법제화운동 元?法制化運動' 등을 추진한 단체를 발전시키고 개편한 것이었다.(p21)... '국민회의'는 말 그대로 학계, 재계, 종교계, 정계의 우파란 우파는 모두 결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조직이다. 한편, '일본을 지키는 모임'은 '국민회의'에 앞서 1974년, 주로 우파계 종교단체가 중심이... + 더보기
겨울호랑이 2019-12-10 공감 (4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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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과대학 중점 토론 도서 99 (시안)
0. 총론 : 공부, 지성, 교양
1. 글읽기와 삶읽기, 조한혜정, 또하나의문화, 1995
2. 우리 학문의 길, 조동일, 지식산업사, 1994
3. 뇌를 단련하다, 立花隆, 청어람미디어, 2004
4.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정민, 김영사, 2006
5.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고미숙, 그린비, 2007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고미숙, 그린비, 2008
1. 학문, 과학, 의학 - 과학철학, 의사학, 예방의학
6. 객관성의 칼날, 찰스 길리스피, 새물결, 2005 (절판)
7. 과학이란 무엇인가, 앨런 차머스, 서광사, 2003
8.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장대익, 김영사, 2008
* 과학혁명의 구조, 토마스 쿤 - 기존 번역서 2종 모두 문제가 많음.
* 자연과학철학, 칼 구스타프 헴펠, 박영사, 1987 - 품절
9. 추측과 논박, 칼 포퍼, 민음사, 2001
10. 방법에의 도전, 폴 파이어아벤트, 한겨레, 1991 (절판)
11. 현대과학의 풍경, 이완 모러스, 궁리, 2008
12. 부분과 전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지식산업사, 2005
13. 생명이란 무엇인가, 에르빈 슈뢰딩거 궁리, 2007
14. 중국의 과학과 문명-사상적 배경, 조셉 니덤, 까치, 1998 (품절)
15. 중국 전통문화와 과학, 김영식 편역, 창작과비평사, 1986 (품절)
16. 음양오행설의 연구, 김홍경 편역, 신지서원, 1993 (절판)
17. 중국의 우주론과 청대의 과학혁명, 존 헨더슨, 소명출판, 2004
18. 몸으로 본 중국사상, 加納喜光, 소나무, 1999
19. 氣 흐르는 신체, 이시다 히데미, 열린책들, 1998 (품절)
20. 몸, 국가, 우주, 하나를 꿈꾸다, 김희정, 궁리, 2008
2. 동아시아 문화 - 교양한자, 동양철학, 맹자강독
21. 설문해자주 부수자 역해, 염정삼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22. 천자문 : 욕망하는 천자문, 김근, 삼인, 2003
세상을 삼킨 천자문, 신정근 옮김, 2009
23. 문자강화, 白川靜, 바다출판사, 2008
한자의 세계, 白川靜, 솔, 2008
한자 백 가지 이야기, 白川靜, 황소자리, 2005
24. 중국고대사회, 허진웅, 동문선, 1991 / 지식산업사, 1993
25. 중국철학사, 풍우란, 까치, 1999
* 동양철학의 유혹, 신정근, 이학사, 2002 - 좀더 쉬운 입문서
26. 도의 논쟁자들, 앤거스 그레이엄, 새물결, 2003
* 중국고대사상의 세계, 벤자민 슈월츠, 살림, 2004 - 난형난제 !
27. 주역 : 주역왕필주, 임채우 옮김, 길, 2006
고형의 주역, 김상섭 옮김, 예문서원, 1995 (절판)
* 내 눈으로 읽은 주역, 김상섭, 지호, 2006 - 위 도서에 대한 대체.
실증주역, 황태연, 청계, 2008
28. 논어 : 朱註今釋 논어, 김도련 옮김, 현음사, 1997
논어, 宮崎市定, 이산, 2001
논어금독, 이택후, 북로드, 2006
논어한글역주, 김용옥 옮김, 통나무, 2009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신정근 옮김, 사계절, 2009
29. 맹자 : 맹자역주, 양백준, 중문출판사, 2005
맹자강설, 이기동,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5
30. 대학, 박완식 옮김, 여강출판사, 2005
31. 중용, 박완식 옮김, 여강출판사, 2005
도올선생중용강의, 김용옥, 통나무, 1995
32. 노자 : 도덕경, 오강남 옮김, 현암사, 1995
노자도덕경하상공장구, 이석명 옮김, 소명출판, 2005
왕필의 노자주, 임채우 옮김, 한길사, 2005
33. 장자 : 안동림 옮김, 현암사, 1998
오강남 옮김, 현암사, 1999
34. 문자, 이석명 옮김, 홍익출판사, 2005
35. 관자, 관중, 소나무, 2006
36. 여씨춘추, 김근 옮김, 민음사, 1993~1995 (품절)
37. 한비자, 현암사, 2003 / 한길사, 2002
38. 회남자, 유안, 명문당, 2001
* 춘추번로 : 춘추-역사해석학, 동중서, 태학사, 2006
39. 사기, 사마천, 민음사, 2007
사마천 사기, 중국 고대사회의 형성, 이성규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40. 동주 열국지, 김구용, 솔, 2001
41. 루쉰 소설 전집, 노신, 을유문화사, 2008
42. 삼국유사, 일연, 까치, 1999 / 솔, 2002 / 을유문화사, 2002
43. 성학집요, 이이, 청어람미디어, 2007
44. 열하일기, 박지원, 돌베개, 2009 / 보리, 2004
45. 일본정치사상사연구, 丸山眞男, 통나무, 1998
46.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문예출판사, 2008
* 축소지향의 일본인, 이어령, 문학사상사, 2008
* 겐지 이야기, 무라사키 시키부, 한길사, 2007
47. 금강경역해, 각묵, 불광출판사, 2001
48. 불교철학의 역사, 칼루파하나, 운주사, 2008
49. 바가바드 기타, 함석헌 옮김, 한길사, 2003
50. 우파니샤드, 이재숙 옮김, 한길사, 1996
3. 유럽 문화
51. 변신이야기, 오비디우스, 숲, 2005
52. 일리아스, 호메로스, 숲, 2007
53. 오뒷세이아, 호메로스, 숲, 2006
54.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소포클레스, 숲, 2008
55. 개념-뿌리들, 이정우, 산해, 2008
56. 국가, 플라톤, 서광사, 2005
57. 티마이오스, 플라톤, 서광사, 2000
*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아카넷, 2005
58. 방법서설, 르네 데카르트, 문예출판사, 1997 / 훈복문화사, 2005
59. 순수이성비판, 임마누엘 칸트, 아카넷, 2006
60. 정신현상학, G. W. 헤겔, 한길사, 2005
61. 비극의 탄생, 프리드리히 니체, 아카넷, 2007
62. 도덕의 계보, 프리드리히 니체, 책세상, 2002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문예출판사, 2001 / 책세상, 2000
63. 꿈의 해석, 지크문트 프로이트, 열린책들, 2004
64. 심리학과 종교, 칼 구스타프 융, 창, 2001
65. 존재와 시간, 마르틴 하이데거, 까치, 1998 / 강의, 소광희, 문예출판사, 2003
66. 과학과 근대세계, A. N. 화이트헤드, 서광사, 2008
* 이성의 기능, A. N. 화이트헤드, 통나무, 1998
* 과정과 실재, A. N. 화이트헤드, 민음사, 2003 - 난해.
67. 철학적 탐구,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책세상, 2006
68. 노마디즘, 이진경, 휴머니스트, 2002
69. 비극, 윌리엄 셰익스피어
* 데카메론, 조반니 보카치오, 범우사, 2000
70. 파우스트, J. W. v. 괴테, 범우사, 1999 / 민음사, 1999
71. 마의 산, 토마스 만, 을유문화사, 2008
72.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열린책들, 2007 / 민음사, 2007
73. 암병동,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홍신문화사, 1993
74. 페스트, 알베르 카뮈, 책세상, 1998
75. 암흑의 핵심, 조셉 콘라드, 민음사, 1998 / 어둠의 심연, 을유문화사, 2008
4. 사회, 문명, 공동체 - 예방의학
76.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문예출판사, 2009 / 서광사, 2008 / 책세상, 2005
77. 공산당 선언, 마르크스 엥겔스, 박종철출판사, 1998 / 책세상, 2002
* 자본, 칼 마르크스, 길, 2008 / 비봉출판사, 2005 - 난해.
78. 거대한 전환, 칼 폴라니, 길, 2009
79. 정의론, 존 롤스, 이학사, 2005
80. 성과 속, 미르치아 엘리아데, 한길사, 1998
81. 슬픈 열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한길사, 1998
82.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 中澤新一, 동아시아, 2003~2005
83.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야콥 부르크하르트, 한길사, 2003
84. 오리엔탈리즘, 에드워드 사이드, 교보문고, 2000
85. 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중앙북스, 2007
86. 실천론 모순론, 모택동, 프레시안북, 2009
* 혁명의 시대 외, 에릭 홉스봄, 한길사, 1998
* 중국의 붉은 별, 에드가 스노우, 두레, 1995
* 아리랑, 님 웨일즈, 동녘, 2005
87. 20세기 우리 역사, 강만길, 창작과비평사, 1999
88. 대한민국사, 한홍구, 한겨레출판, 2003
89.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서경식, 철수와영희, 2009
90. 서준식 옥중서한, 서준식, 노사과연, 2008
91. 한의학, 식민지를 앓다, 연세대 의학사연구소, 아카넷, 2008
92. 한의학의 비판과 해설, 조헌영, 소나무, 1997 (품절)
93. 임상의학의 탄생, 미셸 푸코, 이매진, 2006
* 감시와 처벌, 미셸 푸코, 나남출판, 2003
*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 조르쥬 깡길렘, 인간사랑, 1996 / 한길사, 1996 (품절)
94. 의철학의 개념과 이해, 헨릭 월프 외, 아르케, 2007
95. 의사들의 생각 그 역사적 흐름, 레스터 킹, 고려의학, 1994
96. 치유의 예술을 찾아서, 버나드 라운, 몸과마음, 2003
97. 닥터 노먼 베쑨, 테드 알란, 실천문학사, 2001
98. 춤추는 죽음, 진중권, 세종서적, 2005
99.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청아출판사, 2005
5. 그리고...
100. 마지막 백 권, 당신이 채워줄 그 책을 기다립니다.
함께 나열된 책들은 동일 저작의 다른 번역본이거나 동급 수준의 저작.
* 표시가 된 책들은 최종 선정에서 빠진 심화 독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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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자나 2009-09-26 공감 (7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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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철학 vs 사무라이 사상
어제 구내서점에 들렀다가 집어든 몇 권의 책들 가운데 하나는 마루야마 마사오(1914-96)의 <일본의 사상>(한길사, 2003). 본래 1998년에 나온 책의 초판 3쇄였다. 요즘은 잘 눈에 띄지 않았었는데 어디선가 재고도서가 들어온 듯싶었다. 짐작에 마루야마의 다른 책들과 함께 박스에 보관돼 있는 책이지만 확인해볼 도리가 없는 데다가 당장 참고할 부분도 있어서 손에 들었다. 그리고는 아예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문학동네, 2007)도 주문해버렸다(그의 사상을 개관하고 있는 <오스까 히사오와 마루야마 마사오>(삼인, 2005)는 도서관에서 대출해야겠다).
역자는 두 권 모두 김석근 교수인데 사실 한국에서의 '마루야마 마사오' 번역/소개는 거의 전적으로 그에게 빚지고 있다. 그 이전에 <일본의 현대사상>(종로서적, 1981) 등이 소개된 바 있지만 마루야마의 주요 저작들이 단기간에 한국어판을 얻게 된 것은 순전히 역자의 노고 덕분인 것이다. 물론 내가 마루야마의 이름을 처음 접한 건 도올 김용옥의 책들에서였지만.
그렇게 손에 든 책에서 '옮긴이의 말'과 마침 이 번역이 마무리될 즈음 세상을 떠난 마루야마 마사오의 부음에 부쳐진 '마루야마 마사오의 삶과 사상을 생각함'을 읽었다. 역자로서의 소회를 밝히고 있는 '옮긴이의 말'에서 몇 가지 인상적인 대목이 있어서 따라가본다. 어느새 10년도 더 전의 사정이라는 점이 고려되어야 하겠지만 '일본의 사상'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반성하도록 해준다.
역자가 마루먀아를 처음 접한 건 대학원 석사과정 3학기 때라고 하는데, 본래 정치외교학 전공인 저자가 '한국정치사상사'를 공부하기 위한 방책으로 철학과를 기웃거리다가 맞닥뜨리게 된 에피소드. 마침 대학원 철학과에 '일본철학사'라는 과목이 개설되었었는데, '대학원의 높은 자리'에 있던 분의 이견으로("일본에 무슨 철학이 있냐?") 과목명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 해서 '일본사상사'로 바꾸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서("일본에는 사상도 없다!") 결국엔 '일본문화사'로 낙착되었다는 것(철학과에서 웬 문화사?).
비슷한 사례가 될 만한 또다른 일화는 "주체적인 학문의 길을 주장"한 '어떤 선생님'과 관련된 것인데, 저자와 저서명을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짐작에 조동일 교수의 <우리 학문의 길>(지식산업사, 1993)의 내용이다. 그 책에서 저자는 "'일본에 철학사가 있는가' 하는 재미난 화두를 하나 던지고 있습니다. 그 분의 논지를 여기로 다 끌어올 수는 없겠습니다만, 요컨대 일본에는 '사상(사)'은 있지만 (보편성을 추구하는) '철학(사)'은 없다는 식으로 이해하시면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27쪽) 요컨대, 이러한 '부인'의 제스처가 알게 모르게 우리의 무의식을 잠식하고 있다는 게 필자의 문제의식이다.
물론 이후에 '일본의 철학'을 다룬 책들이 여러 권 버젓이 나오게 됐으므로 그러한 문제제기가 여전히 유효한 듯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역자가 체험한 한 시절의 풍경은 그러하다. 이것이 다소 넌센스인 것은 "애초에 '哲學'이란 단어 자체가 일본인 니시 아마네가 영어의 Philosophy를 번역하여 한자로 새로이 만들어낸 조어(造語)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동아시아문화권에서는 '철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재했던 것이다."(28쪽) 말하자면 '철학'이란 말 자체는 근대 일본의 발명이고 고안이다. 하지만 "니들에게 철학은 없다"?
여기서 필자가 인용하고 있는 건 <일본정치사상사연구>(통나무, 1995)에 붙인 김용옥의 해제의 한 대목인데, 예전에 읽은 기억이 나지만 여전히 흥미롭다.
"그것은 매우 거칠게 말해서 '한국철학'과 '일본사상'의 성격을 유비적으로 규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사상', '일본철학'이라는 말이 부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통학문을 연구하는 시각이나 방법의 성격상 한국에서는 '한국철학'이라는 말을 즐겨쓰고, 일본에서는 '일본사상'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한국에서는 '한국사상'이라고 하면, 그것은 철학에 못 미치는 좀 엉성한 체계, 그리고 철학의 소양이 부족한 2류의 학인들이 자신없이 내거는 명칭으로밖에는 인식되지 않는다. 하나 일본에서는 '일본철학'이라고 하면, 역시 좀 학문적 가치가 떨어지는 국수주의자들의 사변체계, 군국주의시대의 '코쿠타이'(國體)를 연상시키는 '미기'(右翼) 사상가들의 억지주장 냄새가 난다."
해서 요컨대, "한국에서의 사상은 좀 처지는 놈들의 엉성한 논변이요, 일본에서의 '철학'은 항상 우익의 냄새를 피울 우려가 도사리고 있다."(김용옥의 해제 28-29쪽) 그러니까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한국에서 '사상'은 좀 모자란 것이고 일본에서 '철학'은 좀 덜 떨어진 것이다.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실제로 '한국철학'이란 표현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사상은 '실학사상'이나 '계몽사상' 등의 표현으로나 쓰인다). 혹은 '철학사상'. '일본의 사상'이란 표현이 낯설게 여겨지지 않는 데 비해서 '한국의 사상'이 왠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렇게 서로 다른 관행 탓인 듯싶다(거의 개와 고양이 수준 아닌가? 똑같은 꼬리 흔들기가 각각 반가움과 경계심의 표시라는).
잠시 옆길로 갔는데, 다시 필자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저는 그것을 '철학'이라 부르느냐 아니면 '사상'이라 부르느냐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또 다른 제3의 이름으로 부른다고 해서 뭐가 크게 달라지겠습니까. 그리고 철학이나 사상이 없다든가, 사상은 있으나 철학은 없다는 식의 논지와 일본은 '있다' '없다'라는 식의 주장 사이에는, 그 성격의 현격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왠지 사물을 보는 시각 내지 생각하는 방식과 패턴 같은 것에서는 너무나도 닮아 있지 않은가 하는 느낌을, 저로서는 쉽게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29-30쪽)
"졸렌(Solen)을 말하기 전에 먼저 자인(Sein)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에 기대면, 그가 비판하는 우리의 관행적 시각 내지 생각하는 방식은 일본이란 '존재'를 정확하게 알기 전에 일본은 이렇다, 저렇다고 당위적으로/선험적으로 규정하는 태도를 가리키겠다. 그걸 경계하자는 얘기이고, 그때 필요한 건 일단은 읽는 것이다. 물론 일본사상인지 철학인지가 더 많이 소개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고(마루야마가 평생 사투했다는 근대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가 오규 소라이(1666-1728)나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의 책을 한국어로 얼마나 읽을 수 있는가?).
한편, 책의 후기를 대신하여 쓰인 '마루야마 마사오의 삶과 사상을 생각함'에는 지난 1996년 마루야마의 타계 이후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추모 열기를 소개하는 기사를 인용하고 있다. 한 유력 일간지의 도쿄 특파원이 작성했다는 기사는 가관이다.
"세계적인 석학으로 평가받으면서 이미 70년대 그의 저작들이 영문으로 번역돼나오기 시작했지만 한국에서의 소개는 약간 늦은 편이어서 1981년 <일본의 현대사상>을 시작으로 <현대일본정치론>(1988), <중국근대혁명사상>(1989), <섹스원죄 어디까지인가>(1995), <섹스법정>(1996) 등이 출판됐을 뿐이다..."
필자의 지적대로 앞의 두 권은 마루야마 마사오의 책이지만 <중국근대혁명사상>(예전사, 1989)은 마루야마 마쓰유키의 저작이며, 전혀 난데 없이 들어가 있는 <섹스> 어쩌구 하는 책들은 마루야마 마사야의 책으로 보인다. 같은 마루야마 집안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신문기사가 '장난'이 아닌 이상 이런 무식하고도 무책임한 내용이 아무런 여과없이 일간지에 게재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이런 게 우리의 평균적인 현실이라면 희비극적인 일이다). '일본은 없다'고 말하기 이전에 한국에는 입만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볼 문제이다(과연 우리에겐 '한국의 마루야마'가 있는가?).
이러한 한일 철학/사상에 관한 몰이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관련서들이 더 많이 소개되고 읽힐 필요가 있겠다(찾아보니 금장태 교수의 <도와 덕>(이끌리오, 2004)이 다산과 오규 소라이를 비교한 연구서이다). 최근에 출간된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김영사, 2007)는 그래서 눈에 띄는 책인데, 한겨레의 서평(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19266.html)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에서는 무인들이 상급 무사인 사무라이가 되기 위해 따라야 하는 도라 할 수 있는 ‘무사도’가 있다. 충과 효의 덕목에, 스스로에게 엄해야 하고 아랫사람에게는 인자해야 한다. 사적 욕심을 버려야 하고 부귀보다 명예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이 조항들 가운데 ‘패배한 적에게 연민을 베풀어야 한다’는 내용만 제외하면 ‘선비의 도’라 불러도 별 무리가 없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지은이는 이런 동질성의 계기로 임진왜란 이후 조선 성리학의 일본 전파를 꼽았다. 임진왜란 이전만 해도 일본 무사들은 주군에 대한 윤리적 충성의식이 높지 않았다. 주군과 가신들의 주종관계가 의리나 신의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계약관계였기 때문이다. 무사에게는 주군을 바꿔 다른 주군을 모실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유학자 강항과의 교류를 통해 일본에 성리학의 계통이 학립됐다. 이를 계기로 유교적 윤리인 인(仁)·충(忠)·효(孝)가 무사들에게 요구되는 규범이 되었다는 것이다. 강항에게 성리학을 배운 일본 근대 성리학의 시조 후지와라 세이카는 존왕론 주창으로 나아갔다. 천황의 역사를 성리학적으로 해석한 ‘미토학’ 태동의 지반도 성리학이었다. 미토학은 에도 막부 말기에 새로운 ‘천황중심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이념적 지주가 되었다고 지은이는 본다. 무사들이 ‘천황’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막부를 타도하겠다고 나선 메이지 유신은 “성리학의 명분론을 빌린 혁명”이었다. 이전까지 무사정권 교체는 명분론과는 무관한 패권다툼의 결과였다.
기사에서 언급된 사무라이들의 반란 혹은 '혁명'은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2003)의 소재이기도 한데, 이 영화에서 그려진 사무라이상에 대한 유익한 비평은 아래 기사에서 읽을 수 있다.
영화에서 주장하는 ‘사무라이 반란’은 일본에서는 ‘세이난(西南) 전쟁’으로 알려진 반란이고, 가쓰모토의 모델은 그 반란의 주모자였던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입니다. 여러분 사이고 다카모리가 누구인지를 아십니까. 그는 메이지유신을 성사시킨 사쓰마, 조슈, 도사 3개 한(藩)의 하급 사무라이 중 사쓰마를 대표하는 이였습니다. 메이지유신은 폐쇄적 쇄국을 진취적 개국으로, 쇼군(將軍)중심의 봉건적 막부 정치체제를 천황 중심의 한 서양적 의회민주제로 개혁을 이룬 것을 말합니다. 그런 메이지유신의 핵심인물이 서양 문물의 홍수에 맞서서 일본의 전통을 지키려고 목숨을 받쳤다? 왠지 어색하지 않습니까.
사이고가 반란을 일으킨 이유의 핵심에는 ‘조선침략’이 놓여있습니다. 그는 일본이 서양열강과 맞서기 위해서는 문물이 뒤떨어진 한국을 공략해 식민지화해야한다는 ‘정한론’(征韓論)을 주창했던 인물입니다. 그러다 같은 사쓰마 출신의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와 조슈의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 등의 반대에 부딪히자 사쓰마로 낙향합니다. 그러나 그를 추종하는 부하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그 지도자로 나섰다가 패배해 자결한 인물입니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인격적 감화능력이 탁월해 당시 뿐 아니라 지금도 그를 존경하는 일본인들이 많습니다.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는 문구를 좋아했고, 일체의 사욕을 버리고 공리를 쫓았던 면모도 분명 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메이지 유신이라는 혁명의 선두에 설 수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는 시대착오적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메이지유신에 나섰던 이유는 ‘일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쓰마인’을 위해서였고 ‘사쓰마’가 일본 최고의 번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때문에 일생을 마치는 순간에는 ‘사쓰마파벌’의 영수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위에 인용한 글처럼 사쓰마는 오늘날 일본 사무라이의 원형을 세계에 수출한 곳입니다. 사쓰마의 다이묘가문인 시마즈 가문은 도쿠가와 막부성립기 때 줄을 잘못 서서 반 도쿠가와 편에 섰습니다. 그렇지만 번 전체가 똘똘 뭉친 단결력과 외교수완의 결과로 번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또 일도필살의 전투력으로 인해 도쿠가와도 건드리기 싫어했던 고슴도치 같은 존재였습니다. 사쓰마는 도쿠가와 막부시절에도 다른 번, 심지어 막부의 중앙관료도 함부로 출입할 수 없을 만큼 폐쇄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함흥차사’에 해당하는 표현으로 ‘사쓰마로 떠난 파발’이라는 말까지 등장했을 정도입니다.
오늘날 서양인의 뇌리에 박힌 사무라이상도 이 사쓰마 산입니다. 사쓰마의 사무라이들은 1862년 에도(지금의 도쿄)를 방문중이던 주군의 행렬에 무례하게 끼어든 영국인 사업가 일행을 일본도로 참살했습니다. 격분한 영국이 사과를 요구하자 영국과 단독으로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것이 ‘사영전쟁’입니다. 놀라운 것은 비록 일본의 한개 번으로 대영제국함대의 함포사격에 맞선 사쓰마는 비록 전쟁에 패했지만 영국군에 유례없는 타격을 가했다는 점입니다. 영국군은 63명의 사상자가 난 반면 사쓰마측 피해는 1명 사망, 7명 부상이었다고 합니다. 영국신문들은 놀라서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고, 유럽인들에게 ‘일본 사무라이는 세다. 고로 잘못 건드리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라는 인상을 팍 심어줬던 것입니다. 따라서 ‘마지막 사무라이’운운하며 사쓰마를 영화의 무대로 삼은 것은 핵심에 다가섰다고 평할만합니다.
그러나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이 군국주의로 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또한 이 사쓰마의 ‘주군이 죽으라 하면 죽는다’는 식의 돌쇠형 충성의식 때문이었습니다. 일본 군부를 장악한 것은 대부분 조슈와 사쓰마 출신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메이지유신을 민주화와 개방화 혁명이 아니라 천황에 대해 충성을 다 받치는 배타적 군국주의 혁명으로 오도했습니다. 사이고야말로 이런 일본 골수우익의 세계관 형성에 결정적 기여를 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동아일보 권재현 기자)
따라서 '성리학의 명분론을 빌린 혁명'이라고는 하지만 메이지 유신의 이면도 고려할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그것은 조선 성리학과 무사도, 혹은 '선비 철학'과 '사무라이 사상' 간의 차이에 조응하는 것은 아닐까? 한겨레의 리뷰를 마저 읽어본다.
하지만 두 세계의 차이도 명확하다. 가장 두드런 예가 교육이다. 조선 선비들은 성리학의 이상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외부에서 이물질만 들어오지 않으면” 그것으로 족했다. 포교 개념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사들은 늘 적을 상정해 만반의 대비를 했다. 조선선비 교육의 근본이 ‘학예일치’였다면 사무라이에게 학문은 무예의 보조적 기능에 불과했다. 선비가 글을 읽고 시를 읊을 때 사무라이는 학습 시간의 70%를 무예로 채웠다. 이런 전통은 지금까지도 두 나라의 교육방식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본에서는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이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초등학교엔 반드시 수영장을 설치해야 하고 수영 교습도 필수다. 중·고교에선 스포츠 동아리가 매우 활발하다. 2006년 여름 일본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출전한 고등학교 수는 전체 5400개교 가운데 76%에 이르는 4112개교다. 한국의 3%와 비교할 때 엄청난 격차다.
지은이는 맺음말에서 일본이 성리학에서 받아들인 가장 큰 부분은 ‘명분 쌓기’라고 규정했다. 일본은 이런 명분을 군사 행동의 정당화에 활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 성리학의 중심인 심성론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일본과 일본인이 인간 심성의 중요성을 깨달을 때 한국인들은 아시아와 세계평화에 대한 믿음을 비로소 가지게 될 것이다.”(강성만 기자)
한데, 우리에게 그런 심성론이 제대로 전수/학습되고 있는가, 란 의문을 문득 갖게 된다. 나부터도 퇴계의 <성학십도>나 율곡의 <성학집요>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조선 유학의 전통에 대해서도 교과서적 지식 외에 알고 있지 못하다. 이러면 공부가 '명분 쌓기'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사실 이런 깨달음을 전해주는 것은 일본이란 타자이다. 한국 철학의 자기인식이 일본 사상이란 타자를 경유해야 하는 이유이다. '퇴폐천국' 일본이란 이미지만으로는 부족하다...
07. 07. 04.
P.S. 귀가길에 한 서점에 들러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김영사, 2007)을 손에 들었는데, 이 책이 맞느냐고 점원에게 물어볼 뻔했다. 알라딘에는 분량이 472쪽이라고 돼 있어서 9,900원이라는 정가가 꽤 저렴하다고 생각했었는데(그래서 부담없이 구입하려던 것이었고) 웬걸 고작 220쪽 짜리 책이었다. 입력자의 착오로 보이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 싶은 '뻥튀기'이다. 교정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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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7-07-04 공감 (38)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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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상사와 지식의 고고학
새로운 저자들을 만나는 일은 어릴 때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던 일 만큼이나 신나는 일이다(친구가 많지는 않았지만). 물론 책으로 사귀는 저자들은 '일방적인 면식'이라는 점에서 '우리, 친구 아이가?'라고 고집하기엔 멋쩍지만. 지난주에 그렇게 사귄 친구에 일본의 근대사상사학자 '고야스 노부쿠니'가 있다("일본에도 '사상'이 있는가?"란 관련 페이퍼는 http://www.aladin.co.kr/blog/mylibrary/wmypaper.aspx?PaperId=1014133). &nbs... + 더보기
로쟈 2007-05-05 공감 (13)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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