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밤 아내와 함께 ‘무빙’의 최후 3편을 완주했다. 무빙 특유의 가족주의를 아내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서 시작한 연휴 정주행이었다.
그런데 나는 엉뚱한 질문이 생겨서 밤잠을 설쳤다.
북한은 왜 조선후기의 왕조정부 (유가왕조 관료사회 + 농노제 국가)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중국의 개혁개방이 시작된지 40년이 넘었고, 소련이 망한지도 30년이 넘었는데, 지금의 북한 정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김씨 왕조와 10~20%의 귀족(공산당원, 평양시민?)과 80%의 천민 혹은 농노들로 구성된 왕조국가 말이다.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조선말기의 북쪽에는 왜 동학의 전파가 더뎠을까? 북쪽은 오히려 기독교가 세를 불렸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이 기독교의 성격은 무엇이었을까? 조선왕조가 멸망할 당시 북쪽과 남쪽의 지역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었을까? 북쪽의 지역들은 남쪽과 유사한 정치적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었을까? 아니면 오히려 고려시기와 비슷한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었을까?
마침 나도 흥미있게 읽은 <무당과 유생의 대결>에 대해서 서평을 쓴 역사학도 유찬근 선생께 내 소박한 질문을 드렸다.
유찬근 선생이 북한은 유가왕조라기보다는 이란과 같은 신정국가라고 평을 해주셨는데, 상당히 그럴듯하게 들렸다. 어쩌면 청나라 시기의 티벳같은 신정국가 정치체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북에서 내려온 목사들이 만든 한국의 대형교회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기독교 색채가 더 짙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주체사상은 유가적 색채가 짙을까 아니면 성서와 꾸란, 혹은 티벳불교같은 색채가 짙을까? 한번도 본 적이 없어서 궁금증이 더해진다.
내가 이런 질문을 갖게 된 이유는, 지금 중국사회의 정치제도가 그 심층적 구조로만 보면 전통사회의 유법국가에 가깝다고 느껴지고, 다만 경제정책으로 사회주의적 이념지향을 띄게 된 것이라고 짐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 (남한과 구별되는) 의 전통 정치제도 기반, 혹은 원형은 무엇이었던 것일까?
유찬근
eporostdSnhuh7m65i06h10c861uut0mu88m316499ff1ai8lg2i2hiau91a ·
다른 원고에 밀려 한 주 늦게(5주같은 4주;;) 돌아온 "역사책 달리기", 이번 책은 한승훈 선생님의 《무당과 유생의 대결》입니다. (링크는 댓글에!) 이 흥미진진한 책은 이미 여러 언론사에서 큼지막하게 다뤘고 저 역시 《유레카》에 꽤 긴 서평을 싣기도 했는데요, 굳이 《한겨레21》에서 한 번 더 소개한 이유는 최근 논란이 되는 광화문광장 세종, 이순신 동상 철거 이슈 때문입니다. 서평이라기보다는 책을 빌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글에 가깝겠네요
고백하자면, 저는 괴에에에에엥장한 모더니스트에 내셔널리스트입니다. 후배에게 "형 같은 사람이 꼭 파시즘 정권 들어서면 '내가 생각한 네이션은 이런 게 아니었어ㅠㅠ' 하며 징징대다 제일 먼저 숙청당한다고요!" 하고 지청구를 들을 정도로요. 그런 만큼 광화문 광장에서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을 치우려는 이른바 "대한민국 국민주의자"들의 심정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게 과연 뜻대로 되겠냐는 것이지만요. 저는 세종과 이순신이 나간 자리에 김대중이 들어오면 두 팔 벌려 환영이고 김성수까지도 오케이지만, 그럴 것 같지도 않고요.
그렇다면 주체사상은 유가적 색채가 짙을까 아니면 성서와 꾸란, 혹은 티벳불교같은 색채가 짙을까? 한번도 본 적이 없어서 궁금증이 더해진다.
내가 이런 질문을 갖게 된 이유는, 지금 중국사회의 정치제도가 그 심층적 구조로만 보면 전통사회의 유법국가에 가깝다고 느껴지고, 다만 경제정책으로 사회주의적 이념지향을 띄게 된 것이라고 짐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 (남한과 구별되는) 의 전통 정치제도 기반, 혹은 원형은 무엇이었던 것일까?
유찬근
eporostdSnhuh7m65i06h10c861uut0mu88m316499ff1ai8lg2i2hiau91a ·
다른 원고에 밀려 한 주 늦게(5주같은 4주;;) 돌아온 "역사책 달리기", 이번 책은 한승훈 선생님의 《무당과 유생의 대결》입니다. (링크는 댓글에!) 이 흥미진진한 책은 이미 여러 언론사에서 큼지막하게 다뤘고 저 역시 《유레카》에 꽤 긴 서평을 싣기도 했는데요, 굳이 《한겨레21》에서 한 번 더 소개한 이유는 최근 논란이 되는 광화문광장 세종, 이순신 동상 철거 이슈 때문입니다. 서평이라기보다는 책을 빌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글에 가깝겠네요
고백하자면, 저는 괴에에에에엥장한 모더니스트에 내셔널리스트입니다. 후배에게 "형 같은 사람이 꼭 파시즘 정권 들어서면 '내가 생각한 네이션은 이런 게 아니었어ㅠㅠ' 하며 징징대다 제일 먼저 숙청당한다고요!" 하고 지청구를 들을 정도로요. 그런 만큼 광화문 광장에서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을 치우려는 이른바 "대한민국 국민주의자"들의 심정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게 과연 뜻대로 되겠냐는 것이지만요. 저는 세종과 이순신이 나간 자리에 김대중이 들어오면 두 팔 벌려 환영이고 김성수까지도 오케이지만, 그럴 것 같지도 않고요.
이들이 애써 민족과 국가를 구분하고 전자를 전근대=미개, 후자를 근대=선진으로 여기는 것 또한 문제적이지요. 아니, 둘 다 영어로 "Nation"이잖아요;; 과거 진보적 민족주의자들이 박정희 정권은 억압적인 "국가주의"고, 민주화운동 세력은 저항적인 "민족주의"라고 구분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요?
일상에 질서와 리듬을 부여하고 신과 망자를 관리할 권리를 두고 경쟁한 조선시대 무당과 유생처럼, 광화문광장에 누구 동상을 세우고 뺄 것이냐로 벌어진 해프닝 역시 서로 다른 시민종교 사이의 투쟁인 것이겠지요. 어떻게 결착이 날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역사학도라면 다 마찬가지겠지만, 지난 8월 말 육사가 홍범도 흉상을 철거하겠다 밝힌 이후로 넌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나름대로 답을 하면 할수록 느낀 건, 제가 이 이슈를 참 모르고 관심도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얼마 전 복간한 김일영 선생님의 《건국과 부국》(기파랑, 2023.)이
김봉국 선생님의 《냉전과 투쟁》(선인, 2018.)을 끝내 "역사책 달리기"에서 다루지 않은, 혹은 못한건 그래서입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저는 국가 차원의 시민종교가 필요하다 생각하는 "김대중 민주주의자"이기도 하고요. (사실 김대중은 민주주의자라기보다는 공화주의자라 생각하지만 어쨌거나 그는 목놓아 민주주의를 외쳤으므로.)
그래도 윤 정부 들어 칼럼 쓰기가 무척 편해진건 좋습니다. 때가 되면 기막히게 뭔 일이 터져서 다음 원고로 뭘 쓸지 고민한 기억이 별로 없네요. 물론 저와 공동체의 미래를 팔아 소잿거리를 얻는 기분이긴 합니다만;;;; 《한겨레21》 한가위 통권호로 다음 "역사책 달리기"는 4주 뒤에 돌아옵니다.
그래도 윤 정부 들어 칼럼 쓰기가 무척 편해진건 좋습니다. 때가 되면 기막히게 뭔 일이 터져서 다음 원고로 뭘 쓸지 고민한 기억이 별로 없네요. 물론 저와 공동체의 미래를 팔아 소잿거리를 얻는 기분이긴 합니다만;;;; 《한겨레21》 한가위 통권호로 다음 "역사책 달리기"는 4주 뒤에 돌아옵니다.
===
유찬근의 역사책 달리기 1482호
조선 선비들이 무당과 경쟁한 이유
‘왜 광화문에 조선시대 인물들인가’라고 묻는 이들에게 추천하는 <무당과 유생의 대결>
등록 2023-10-04 09:02 수정 2023-10-05 10:36
<무당과 유생의 대결> 한승훈 지음, 사우 펴냄
“광화문광장을 조선시대 인물이 채우고 있는 것을 보고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나는 우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023년 9월12일, 보수 성향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결성한 ‘문화자유행동’ 창립기념행사에서 최범 공동대표는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과 이순신 동상을 문제 삼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는 <경향신문> 기자와의 통화에서 “세종이랑 이순신은 조선시대 사람이고 대한민국 사람은 아니지 않냐”며, 두 인물이 근대 공화국의 상징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해프닝이 최근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흉상 철거 움직임과 관련이 있으리라는 ‘심증’은 일단 걷어내고, 최대한 ‘선의’에 의거해 최 대표의 발언을 이해해보자. 화폐부터 광장까지 대한민국의 ‘얼굴’을 온통 조선시대 인물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푸념은 진보 진영에서도 나왔던 만큼, 그의 문제의식 자체는 나름대로 합리적이다. 합리적인 것과 실현 가능한 것은 다른 문제겠지만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최 대표를 비롯한 이른바 ‘대한민국 국민주의자’들의 행보가 이들이 그토록 혐오하고 경멸해 마지않는 조선시대 유자들과 놀랍도록 닮았다는 사실이다. 한승훈의 <무당과 유생의 대결>은 유럽의 종교개혁에 버금갈 유자들의 “성상파괴운동”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근대 공화국에 걸맞지 않은 ‘전근대적’ 상징물을 모두 치워버리려 드는 일부 보수 지식인과 마찬가지로 조선의 유학자들 역시 합리적인 신유교와 어울리지 않는 ‘미신적인’ 상징과 의례를 뜯어고치고자 했다. 고려시대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섬김을 받던 수많은 토착 신들은 이름과 형상을 뺏겼고, 제사 역시 표준화됐다. 심지어 유교의 큰 스승인 공자의 성상조차 신성함이라고 느낄 수 없는 신주로 교체됐다.
그러나 조선왕조 500년간 착실히 진행된 유자들의 종교개혁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들은 국가가 주관하는 ‘공식 종교’의 영역에서 무속을 몰아냈지만, 그 바깥 ‘민속 종교’의 영역에선 무당이나 술사와 경쟁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전래동화에서 귀신과 요괴를 무찌르는 주인공은 항상 ‘지나가던’ 선비라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유자들은 무당의 주술적 세계관을 깨부수기보다 자신이야말로 주술을 ‘올바르게’ 다룰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증명하려 했다.
퇴마사가 되어버린 선비라는 결말은 자칫 조선은 겉은 유교인데 속은 무속이라는 뻔한, 다분히 멸시적인 의도가 엿보이는 이야기로의 회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합리적인’ 유생이 ‘미신적인’ 무당을 끝끝내 정복하지 못한 실패담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무당과 유생은 일상에 리듬과 질서를 부여하고, 신과 망자를 관장할 권리를 두고 대등하게 경쟁했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다. ‘시민종교’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근대 공화국은 공동체를 통합하고 개인에게 의미를 제시할 의례와 상징체계를 필요로 한다. 문화자유행동이 불을 지핀 ‘역사전쟁’ 역시 국민주의를 신봉하는 근대적 우파와 종족주의를 숭배하는 전근대적 좌파의 대결이 아니다. ‘우리’의 기원과 범위를 놓고 벌어진, 서로 다른 시민종교 사이의 투쟁이다.
어느 쪽이 더 정의로운지, 더 다양한 기억을 포용할 수 있는지는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 다만 근대를 물신화하며 일체의 전근대적 요소를 지워버리려는 시도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근대교’를 신봉하는 21세기 유자들의 성상파괴운동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 어디 한번 지켜보겠다.
유찬근 대학원생
*역사책 달리기: 달리기가 취미인 대학원생의 역사책 리뷰. 3주마다 연재.
===
All reactions:26강주영 and 25 others
유찬근의 역사책 달리기 1482호
조선 선비들이 무당과 경쟁한 이유
‘왜 광화문에 조선시대 인물들인가’라고 묻는 이들에게 추천하는 <무당과 유생의 대결>
등록 2023-10-04 09:02 수정 2023-10-05 10:36
<무당과 유생의 대결> 한승훈 지음, 사우 펴냄
“광화문광장을 조선시대 인물이 채우고 있는 것을 보고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나는 우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023년 9월12일, 보수 성향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결성한 ‘문화자유행동’ 창립기념행사에서 최범 공동대표는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과 이순신 동상을 문제 삼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는 <경향신문> 기자와의 통화에서 “세종이랑 이순신은 조선시대 사람이고 대한민국 사람은 아니지 않냐”며, 두 인물이 근대 공화국의 상징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해프닝이 최근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흉상 철거 움직임과 관련이 있으리라는 ‘심증’은 일단 걷어내고, 최대한 ‘선의’에 의거해 최 대표의 발언을 이해해보자. 화폐부터 광장까지 대한민국의 ‘얼굴’을 온통 조선시대 인물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푸념은 진보 진영에서도 나왔던 만큼, 그의 문제의식 자체는 나름대로 합리적이다. 합리적인 것과 실현 가능한 것은 다른 문제겠지만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최 대표를 비롯한 이른바 ‘대한민국 국민주의자’들의 행보가 이들이 그토록 혐오하고 경멸해 마지않는 조선시대 유자들과 놀랍도록 닮았다는 사실이다. 한승훈의 <무당과 유생의 대결>은 유럽의 종교개혁에 버금갈 유자들의 “성상파괴운동”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근대 공화국에 걸맞지 않은 ‘전근대적’ 상징물을 모두 치워버리려 드는 일부 보수 지식인과 마찬가지로 조선의 유학자들 역시 합리적인 신유교와 어울리지 않는 ‘미신적인’ 상징과 의례를 뜯어고치고자 했다. 고려시대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섬김을 받던 수많은 토착 신들은 이름과 형상을 뺏겼고, 제사 역시 표준화됐다. 심지어 유교의 큰 스승인 공자의 성상조차 신성함이라고 느낄 수 없는 신주로 교체됐다.
그러나 조선왕조 500년간 착실히 진행된 유자들의 종교개혁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들은 국가가 주관하는 ‘공식 종교’의 영역에서 무속을 몰아냈지만, 그 바깥 ‘민속 종교’의 영역에선 무당이나 술사와 경쟁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전래동화에서 귀신과 요괴를 무찌르는 주인공은 항상 ‘지나가던’ 선비라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유자들은 무당의 주술적 세계관을 깨부수기보다 자신이야말로 주술을 ‘올바르게’ 다룰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증명하려 했다.
퇴마사가 되어버린 선비라는 결말은 자칫 조선은 겉은 유교인데 속은 무속이라는 뻔한, 다분히 멸시적인 의도가 엿보이는 이야기로의 회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합리적인’ 유생이 ‘미신적인’ 무당을 끝끝내 정복하지 못한 실패담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무당과 유생은 일상에 리듬과 질서를 부여하고, 신과 망자를 관장할 권리를 두고 대등하게 경쟁했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다. ‘시민종교’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근대 공화국은 공동체를 통합하고 개인에게 의미를 제시할 의례와 상징체계를 필요로 한다. 문화자유행동이 불을 지핀 ‘역사전쟁’ 역시 국민주의를 신봉하는 근대적 우파와 종족주의를 숭배하는 전근대적 좌파의 대결이 아니다. ‘우리’의 기원과 범위를 놓고 벌어진, 서로 다른 시민종교 사이의 투쟁이다.
어느 쪽이 더 정의로운지, 더 다양한 기억을 포용할 수 있는지는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 다만 근대를 물신화하며 일체의 전근대적 요소를 지워버리려는 시도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근대교’를 신봉하는 21세기 유자들의 성상파괴운동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 어디 한번 지켜보겠다.
유찬근 대학원생
*역사책 달리기: 달리기가 취미인 대학원생의 역사책 리뷰. 3주마다 연재.
===
All reactions:26강주영 and 25 others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