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통일방안 모색 필요하다 - 강 종 일 한반도중립화연구소장
통일신문
기사입력 2003-11-24
기사입력 2003-11-24
통일은 두 개체가 존재하는 상대적 문제임으로, 남북이 주체가 되어 동등한 자격과 조건을 가지고 상대의 통일정책을 진지한 태도로 임하여 타협과 합의를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남북의 통일방안은 상호 협상의 배타적 방안이 아니라 통일의 당위성을 서로가 인식하면서 꾸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 유효한 북한의 통일방안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체제의 중립통일방안이다. 김일성은 1980년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제6차 당 대회 보고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안’을 발표하면서 남북은 “자주·평화통일·민족 대 단결”의 3대원칙에서 중립통일을 하자고 남한에 제안했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내용은 연방제와 중립통일이다.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김일성은 1960년 8월 15일 ‘8.15해방 경축대회’에서 “남북연방제” 통일을 주장했다. 당시 북한의 연방제는 국가의 외교권과 군사권이 중앙정부에 있고, 남북정부는 자치정부 수준인 “높은 단계의 연방제”였다.
그러나 김일성은 1991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과거의 높은 단계의 연방제를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수정하는 통일방안을 제의했다. 왜냐하면, 높은 단계의 연방제는 외교권과 국방권을 중앙정부에 부여하고,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외교권과 군사권을 남북정부가 독자적으로 가지면서 같은 수의 남북 대표가 참가하는 상징적 연방기구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남한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2단계인 연합제와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은 현재와 유사한 정부형태를 의미하게 됐다. 그러므로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해 남한이 너무 과민하게 부정적으로 생각하기에 앞서 보다 적극적인 대응자세가 필요하다.
김일성은 1980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안’과 함께 남북이 외세의 간섭 없이 자주정신에 입각하여 중립통일을 하자고 제안한 이래, 1985년 10월과 1993년 4월에 다시 강조했다. 북한의 통일노선이 높은 단계의 연방제에서 중립연방제로 변경된 요인은 당시 남북이 직면하고 있는 국내외 정치환경에서 몇 가지를 추론할 수 있다.
첫째, 1980년 남한의 민주화 운동을 들 수 있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반정부 데모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강압적으로 유혈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를 발생케 함으로써 사회를 혼란에 빠지게 했다. 북한은 남한의 혼란한 정치상황을 이용하여 외세의 간섭을 배격한 중립과 자주통일을 강조하면서 주한 미군의 철수를 요구했다.
둘째, 남한의 대북 흡수통일 가능성에 대한 대응책이다. 남한의 경제는 1980년을 전후하여 북한의 경제를 능가하였고, 김영삼 정부가 협상통일보다는 북한의 붕괴를 통한 흡수통일을 지향함으로써, 북한은 남한의 흡수통일에 대비한 고육책이 필요했다.
끝으로, 북한은 자신의 체제유지를 목적으로 한 것이다. 1990년대 초 중국과 러시아가 남한과 국교를 정상화함으로써 외교적으로 고립된 북한이 김일성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연방제 대안을 찾은 것 같다.
상기의 추정을 근거로 한다면, 김일성이 1980년에 주장한 중립연방제는 남한에 대한 공세적 연방제인 반면, 1990년대의 중립연방제는 북한체제의 유지를 위한 수세적 통일정책으로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은 중립연방제를 통하여 우선적으로 체제를 보존함으로써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을 방지하면서 남북협상을 통한 점진적 통일정책을 지향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므로 남한은 이제 북한의 통일정책에 대해 무조건 비판하기보다는 남한의 통일정책과 비교하면서 장단점을 검토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남북은 통일을 하루라도 단축하기 위해 남한의 연합제 통일안과 북한의 중립연방제 통일안을 비교 연구함으로써 민족공조를 통한 타협 속에서 새로운 통일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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