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10

한국 현대사의 두 가지 포인트

한국 현대사를 바라볼 때 정말 크게 보자면 딱 두 가지의 포인트가 있는데 하나는 식민지이고 다른 하나는 박정희다. 그리고 실상 이 두 포인트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한국의 역사담론도 사실상 이 두 가지를 매개로 이뤄진다. 보수들은 전자를 부정하면서도 후자를 긍정하느라 박정희가 “무에서 유를 창출”했다며 높게 평가하는 데 반해 진보들은 둘의 연속성을 주장하며 사실상 둘이 하나였고 한국현대사를 그런 친일파가 만든 역사라며 낮게 평가한다. 

결국 이 식민지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그리고 그 식민지 방식의 근대성의 유입과정과 한국적 특질이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박정희라는 인물을 형성하게 되었는지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한국적 특질 속에서 어디로 나아갈 수 있을지 분석할 수 있다. 이 한국적 특질을 설명하려면 결국 조선왕조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조선왕조가 남긴 역사적 특질, 특히 박정희라는 한 인격체를 규정하는 문화적 특질이나 가족제도 등등에 대해 분석하면서 그것이 일본군 경험과 어떻게 연결되어 발현되었는지를 보면서 박정희를 제대로 규명해야 한다.

예전에 나는 박정희와 노무현을 많이 대비시켜서 이해하려고 했는데 요즘 보니까 노무현보다도 문재인이 더 좋은 대비인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문재인이나 박정희 모두 굉장히 한국적인 어떤 선비랄까 그런 유교적 면모를 강하게 지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뚜렷한 뭐랄까 근대화의 역사적 경험이 체현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 박정희가 겪은 식민지 근대화와 문재인이 겪은 개발독재 근대화의 차이점이나 유사성이랄지, 이런 여러가지 생각이 좀 많이 든다. 문재인 지지자라고 비난할 수도 있는데, 나는 잘하면 문재인이 한국현대사에 있어 굉장히 유의미한 터닝포인트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역사적 상황이 그러하며 문재인이라는 개인을 봐도 리더십의 특성이라든지 이런 걸 보면 뛰어난 지도자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현 상황에서 문재인을 부정하는 건 역사적 현실에 대한 이해부족이거나 당파적 이해관계 때문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민주당 지지자도 아니고, 문재인 지지자도 아니다. 박정희 지지자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아니고. 지금도 사실 문재인에게 불만이 많지만, 저 사람의 행동이라든지 말하는 거라든지 생각하는 거라든지 뭐 이런 걸 보면 성공만 한다면 저 사람이 한국 현대사에서 박정희 이상으로 굉장히 중요한 터닝포인트를 만들거라는 점은 명백하다. 이걸 부정하면 남는 건 대중혐오나 뇌내 망상밖에 없다. 문제는 내가 문재인의 지지자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문재인이 앞으로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은 그 터닝포인트를 어떻게 이해하고 역사담론화 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그런 차원에서 문재인 개인성의 형성과정에 관심이 많이 가고 박정희와의 비교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물 차원에서는 이렇고 제도적인 차원에서는 결국 식민지 유산인 귀속재산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귀속재산에 대한 연구 자체가 거의 없는 한국 학계의 상황은 좀 많이 서글프다. 귀속재산의 성격과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해야 지금 우리 당대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을텐데. 그런 의미에서 김기원의 <미군정기의 경제구조>는 정말 좋은 책이다. 

재벌의 형성과정으로 귀속재산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제국이 남긴 유산을 한국이 어떻게 이용해서 공업화를 진행했는지 그 연속성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사실 박정희 신화도 소멸시킬 수 있다. 나는 지금 와서는 해방 직후의 한국이 아프리카 수준이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30~40년대 식민지 공업화의 결과 한국은 노동력의 수준, 본원적 축적의 완비, 근대국가의 능력 등에서 중진국 이상의 경제개발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단지 제국의 붕괴 과정 속에서 무역이 끊기고 일본인 기술자들이나 경영자들이 빠져나간 공백으로 인해 혼란을 겪었을 뿐이지 금방 다시 성장할 조건들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고 본다.

경제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차원에서도 결국 국가행정권력의 연속성 문제나 일본제국이 남긴 유산 등을 제대로 봐야 한다. 이 문제도 결국 조선왕조까지 소급될 수밖에 없다. 조선왕조의 관료 중 거의 절반 이상이 총독부 관료로 임용되었는데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조선왕조의 관료제 수준이 근대국가에 그래도 적응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총독부 관료의 70~80% 이상이 조선인인데 아무리 하급관료라 할지라도 근대국가에 적응할 능력이 키워졌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마르크스의 문제의식 속에서 흡수해 담론화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계급적 착취 운운하며 지배계급에 대항한 피지배계급의 역사 운운하면 답이 없다. 담론으로서 아무런 의의를 찾을 수 없는 주장들이다. 앞으로도 시위나 운동만 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재벌과 같은 한국경제의 중요한 요소들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식민지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등등에 대해 보다 깊이 연구를 해야 한다. 김일영의 ‘건국과 부국’이라는 테제를 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정말정말 어려운 일이기에 계급투쟁 운운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걸 어떻게 이론화를 해서 이해할 것인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고민이 정말 많다. 어떻게 하면 건국과 부국 과정에서 소외되었던 이들을 포섭하는 역사담론을 만들면서도 건국과 부국에 대해 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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