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30

맑스주의 역사 강의 - 한형식 2010

맑스주의 역사 강의 - 유토피아 사회주의에서 아시아 공산주의까지 l 새움 총서 1

한형식(저자) | 그린비 | 2010-07-20



정가 18,000원


반양장본 | 440쪽 | 150*220mm | 572g | ISBN : 9788976823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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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저자가 쓴 새로운 ‘맑스주의 역사’ 입문서이다. 맑스 이전의 유토피아 사회주의부터 중국 혁명을 비롯한 아시아 공산주의 운동까지 소개하는 책이다. 맑스주의 사상의 역사뿐 아니라 운동의 역사도 함께 다루고 있으며, 일반 대중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객관적이고 친절하게 서술하고 있다.

맑스주의의 역사는 고정불변의 역사가 아니라 사회변혁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극복해 나간 역사이다. 그리고 이 책은 각 시대의 맑스주의자들이 자신이 직면한 조건들 속에서 새로운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설명한다.

<맑스주의 역사 강의>는 ‘세미나 네트워크 새움’과 그린비가 함께 출간하는 <새움 총서>의 첫 번째 책이다. 새움은 자본, 국가, 미디어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맑스주의를 비롯한 진보적 지식을 연구하는 공간으로, 앞으로 ‘맑스주의 공황론’, ‘한국경제 문제’, ‘현대 정치철학’ 등 다양한 주제의 책들을 출간할 예정이다.





들어가면서 9
이 강의의 목표 9
혼란스러운 개념들 정리 11
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12│② 맑스주의 18│③ 용어상의 혼란 20

1강 _ 자본주의의 발전과 맑스 이전의 사회주의 25
자본주의의 발전과 사회주의의 등장 26
정치적 노선의 사회주의: 바뵈프와 블랑키 29
① 가난한 자들의 봉기 29│②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관한 오해 32
경제적 노선의 사회주의: 생시몽, 푸리에, 프루동, 바쿠닌 36
① 생산력발전에 대한 낙관과 비관 36│② 정치적 행동과 직접행동 44

2강 _ 맑스·엥겔스의 초기 사상 51
자유주의자에서 사회주의자로 53
자본주의와 소외: 『1844년의 경제학-철학 초고』 56
① 이 텍스트가 지니는 의미 56│② 사적 소유와 상품생산의 철학적 해석 58
③ 변증법: 혁명적 변화의 철학적 원리 61│④ 인간의 유적 본질과 소외의 극복 63
유물론적 역사이해: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들」, 『독일 이데올로기』 65
맑스주의의 기초 확립: 『공산당 선언』 70
① 『공산당 선언』의 역사적 의미 70│② 유물론적인 자본주의 분석 74
③ 자본주의의 붕괴와 사회주의로의 이행 76│④ 공산주의에 대한 전망 79

3강 _ 맑스·엥겔스의 후기 사상 85
착취의 과학적 해명: 잉여가치론 85
제1인터내셔널: 국가주의?아나키즘과의 대결 89
① 제1인터내셔널의 결성 89│② 아나키즘과의 대립 92│③ 국가주의의 대두 95
파리코뮨과 새로운 국가론: 『프랑스 내전』 97
라살레파와의 대결: 『고타강령 초안 비판』 104
① 독일 노동운동의 통합과 「고타강령」 104│② 노동전수익권 비판 107
③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 109│④ ‘철의 임금법칙’ 비판 112
맑스 사상의 체계화: 『반뒤링』,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115
① 최초의 맑스주의 교과서 116│② 엥겔스의 해석 문제 118

4강 _ 제2인터내셔널의 논쟁들(1)?수정주의 논쟁과 총파업 논쟁 127
분열의 시작 131
수정주의 논쟁 133
① 수정주의와 개량주의 133│② 수정주의의 등장 134│③ 정통파의 입장: 붕괴론 135
④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 137
⑤ 사회개량이냐 혁명이냐: 베른슈타인과 룩셈부르크의 논쟁 141
총파업 논쟁 150
① 총파업이란 무엇인가 150│② 아나코-생디칼리즘과 총파업 153
③ 맑스주의와 총파업 155│④ 맑스주의의 총파업 수용: 1905년 혁명과 『대중파업』 160

5강 _ 제2인터내셔널의 논쟁들(2)?반전 논쟁과 식민지 논쟁 171
반전 논쟁 171
① 반전 논쟁의 역사적 배경 171│② 방어 전쟁의 논리 175
③ “전쟁에는 전쟁으로”: 「슈투트가르트 결의안」 179
식민지 논쟁 184
① 자본주의의 발전과 식민지 점령 184│② 수정주의자들의 식민지관 187
③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수정주의 식민지관 비판 197

6강 _ 러시아혁명과 레닌(1)?1917년 이전의 러시아와 레닌 201
러시아혁명의 배경 201
① 러시아혁명의 전사(前史) 202│② 인민주의자들의 등장 203
③ 초기의 러시아 맑스주의: 2단계 혁명론 206
러시아혁명의 새로운 흐름 210
① 러시아 사회민주당의 창립 210│② 레닌의 전위당 이론: 『무엇을 할 것인가?』 214
③ 1905년 혁명과 소비에트 219│④ 1905년 혁명에 대한 맑스주의자들의 평가 225

7강 _ 러시아혁명과 레닌(2)?1917년 혁명과 소련의 성립 229
2월 혁명에서 10월 혁명으로: 사회주의혁명으로의 발전 229
맑스주의 국가론을 다시 생각하다: 『국가와 혁명』 239
10월 혁명의 과제들 246
① 혁명이 직면한 문제들 247│② 서유럽 혁명의 불발 249│③ 전시공산주의 253
새로운 시대의 맑스주의: 『제국주의』 256
신경제정책(NEP):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 264

8강 _ 코민테른과 스탈린 체제 273
코민테른의 성립 273
스탈린과 소련의 발전방향을 둘러싼 논쟁들 279
① 스탈린의 부상 279│② 스탈린의 권력장악 285│③ 정치투쟁 과정에서의 논쟁들 287
스탈린 시기의 소련과 스탈린주의 291
① 일국사회주의론 291│② 스탈린 테러 297│③ 스탈린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301

9강 _ 중국혁명과 마오주의 309
중국 공산당의 형성: 신해혁명에서 대장정까지 309
옌안 시대 320
① 대중 노선의 본격화와 『옌안문예강화』 321
② 추상적 교리에서 구체적 정세로: 『실천론』과 『모순론』의 변증법 재해석 325
공산주의 중국의 성립과 새로운 사회를 위한 시도들 333
① 제1차 5개년 계획 333│② 의도와 결과의 괴리: 대약진운동 337
혁명은 계속된다: 문화대혁명 345
① 문화대혁명의 발발 345│② 문화대혁명의 문제의식: 「문혁 16조」 349
③ 홍위병운동의 확산과 문혁의 성격 전화 353│④ 문화대혁명의 의의 358

10강 _ 맑스주의의 새로운 흐름들 363
웨스턴 맑시즘 364
① 웨스턴 맑시즘의 등장과 전개 364│② 그람시의 맑스주의 373
③ 프랑크푸르트 학파 377│④ 68혁명 이후의 맑스주의들 381
아시아 공산주의 393
① 아시아 공산주의의 과제와 특징 393│② 동아시아 공산주의의 전개과정 400
③ 그 외 지역의 공산주의 411

나가면서 417

더 읽을 책들 422
찾아보기 431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핵심적 차이는, 공산주의는 개인의 발전이 동시에 다른 사람의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적 관계를 추구한다는 점입니다. 공산주의 사회와 계급 사회의 차이는 사회적 관계의 방식이 달라지는 것, 즉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맺음의 방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아무리 혁명적이고 전복적이라고 주장한다 해도, 그 사람의 주장에 대한 평가기준은 사회적 관계망에 대한 고려가 있느냐 없느냐여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자유주의입니다. _ 44쪽 (1강 「자본주의의 발전과 맑스 이전의 사회주의」중에서)


붕괴론의 한계 때문에 제2인터내셔널이 실패했다면, 이 실패를 이론적으로 극복한 것이 레닌의 『제국주의』입니다. 여기서 레닌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붕괴가 일어나지 않은 이유를 제국주의라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로 설명합니다. 동시에 제국주의 국가로부터 이전된 모순이 다른 곳에서 폭발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러시아혁명이라는 현상에 부합하는 설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국주의』의 가장 결정적인 성과는 러시아와 같은 후발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맑스주의의 이론틀 내에서 설명했다는 것입니다. _ 263쪽 (7강 「러시아혁명과 레닌(2)」중에서)

어떻게 보면 마오주의는 전통적인 맑스주의로부터 상당히 이탈한 것이어서, 이것이 진짜 맑스주의인지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죠. 지금까지 우리는 맑스주의의 흐름이라는 것이 도저히 하나의 단일한 흐름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임을 보았습니다. 레닌까지만 해도 맑스가 얘기했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마오에게 오게 되면 그런 의식도 희박해집니다. 어찌 보면 이것이 맑스주의가 갖는 생명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마오가 얘기한 것처럼 마오주의는 이론이 아니라 현실과 실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실천의 새로운 조건이 주어진다면 이론은 그에 맞추어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었습니다. _ 360~361쪽 (9강 「중국혁명과 마오주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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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2010년 7월 24일자 새로나온 책
한겨레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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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한형식

한형식 (지은이)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주변부 민중들이 스스로의 시각으로 연대하는 일, 생태 위기를 자본주의가 아닌 방식으로 극복하는 일, 연대를 위해 읽고 듣고 쓰고 말하기를 훈련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 대중과 함께하는 강의, 강독, 세미나를 진행하며 책을 쓰고 옮긴다.

연세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같은 학교에서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지은 책으로는 ≪마르크스 철학 연습≫, ≪맑스주의 역사 강의≫, ≪처음 읽는 독일 현대철학≫(공저), ≪현대 인도 저항운동사≫(공저), ≪인도 수구 세력 난동사≫(공저), 옮긴 책으로는 ≪공부하는 혁명가≫, ≪사회주의 ABC≫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처음 읽는 공산당 선언>,<마르크스 철학 연습>,<인도 수구 세력 난동사> … 총 11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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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를 위한 국내 저자의 맑스주의 역사 입문서
운동과 사상의 흐름으로 맑스주의 역사 읽기

맑스라는 이름을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그 이름이 적힌 책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변의 위협을 느껴야 했던 시대가 지나간 지도 한참이 되었다. 냉전 종식과 민주화 이후 한층 자유로워진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맑스의 저작들은 해금(解禁)을 넘어 하나의 고전이 되었고, 최근에는 필독교양서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기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신자유주의가 실패했다는 진단이 나오고 전 세계적으로 대중의 저항이 거세지면서 자본주의의 강력한 비판자로서 맑스의 사상이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오늘은 맑스주의를 편견 없이 공부할 수 있게 된 시기이자, 신자유주의의 가혹한 통치로 인해 맑스주의를 다시 읽을 것을 요청받고 있는 시기이지만, 그럼에도 맑스주의 사상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우리 시대의 맑스주의 역사서는 여전히 찾아보기 힘들다. 기껏해야 외국의 책을 번역한 20~30년 전의 책들만을 구해 볼 수 있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한형식의 『맑스주의 역사 강의: 유토피아 사회주의에서 아시아 공산주의까지』는 새로운 맑스주의의 역사 입문서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 아래 저술된 책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을 밝혀냈고, 그것의 비인간성을 폭로했으며, 새로운 사회의 전망을 제시했던 맑스˙엥겔스의 사상과 그 이후 맑스주의의 역사를 서술한다. 지금까지 국내에 ‘맑스주의의 역사’를 서술한 몇 권의 책이 소개되었지만, 대부분 외국 학자의 작업을 번역한 것이었고, 특정한 정치적 입장이 강하게 반영된 경우가 많았다. 이와 달리 『맑스주의 역사 강의: 유토피아 사회주의에 아시아 공산주의까지』(이하 『맑스주의 역사 강의』)는 국내 저자의 집필서로,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맑스주의의 역사에 접근하고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맑스주의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일반인과 학생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접할 수 있던 책들이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 없이 이론 위주로 서술되어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힘들었던 반면, 이 책은 ‘맑스주의’가 대중과 결부되어 있는 사상임을 강조하면서 역사적 배경과 이론의 형성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은 운동과 사상의 종합으로서의 맑스주의의 역사를 개관한다. 맑스주의 사상은 세상을 바꾸려 한 운동 속에서 형성되었고 또 계속해서 자신을 극복하며 발전했기 때문에, 운동과 역사를 통해 살펴봐야 맑스주의를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은 맑스주의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그 역사가 지닌 의의와 한계를 알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좋은 입문서가, 맑스주의에 대해 막연한 통념을 갖고 있던 이들에게는 그간의 오해를 불식시켜 줄 책이 될 것이다.
『맑스주의 역사 강의』는 ‘세미나 네트워크 새움’과 그린비가 펴내는 <새움 총서>의 첫번째 책이다. ‘세미나 네트워크 새움’(http://club.cyworld.com/seumnet)은 자본, 국가, 미디어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을 벌여 나가는 연구자들이 모인 공간이다. 맑스주의를 중심으로 진보적 지식을 공부하고 또 세미나와 강의를 통해 대중과 나누고 있다. 『맑스주의 역사 강의』도 저자가 지난 4년간 ‘새움’에서 진행해 온 ‘맑스주의의 역사’ 강의를 책으로 펴낸 것이다. 현재 ‘새움’은 ‘맑스주의’, ‘생태 문제’, ‘유럽중심주의’, ‘현대 정치철학’ 등 다양한 주제들을 특정한 정치적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연구하고 있으며, 앞으로 그 과정에서 얻은 성과물들을 책으로 출간해 대중과 접촉할 계획을 갖고 있다.


19세기에서 20세기까지,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맑스주의 전체 역사를 한눈에

총 10강으로 구성된 『맑스주의 역사 강의』는 맑스 이전의 유토피아 사회주의에서 20세기의 아시아 공산주의 운동까지를 다룬다. 1강에서는 ‘정치적 노선’의 사회주의와 ‘경제적 노선’의 사회주의를 구분하면서 맑스 이전과 당대의 사회주의를 소개한다. 2~3강에서는 이 두 노선을 계승˙발전시킨 맑스˙엥겔스의 사상을 설명한다. 그들 사상의 발전과정을 추적하면서 역사와 사회를 이해하는 그들의 방식(유물론적 역사이해)과 자본주의 분석(자본주의는 생산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착취를 발생시킨다는 것, 그리고 자본주의는 역사적인 체제이므로 언제가 반드시 붕괴한다는 것)의 고유성을 해명한다. 그리고 국제노동자연맹(제1인터내셔널)에서 벌어진 아나키즘 및 국가주의 경향과의 논쟁을 살펴본다. 4~5강에서는 맑스˙엥겔스 이후 결성된 제2인터내셔널에서의 논쟁들을 다룬다. 맑스주의에 약간의 수정을 가하려 했지만 결국 맑스 사상의 대전제까지 부정한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의 수정주의와 그를 비판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 즉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과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등의 논쟁을 주로 소개한다(수정주의 논쟁, 총파업 논쟁, 반전 논쟁, 식민지 논쟁). 6~7강에서는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인 러시아 혁명의 전개과정과 그 이론적 토대를 이룬 레닌의 사상을, 8강에서는 레닌 사후 소련에서 스탈린(Iosif Stalin)이 권력을 장악하고 스탈린 체제가 성립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9강에서는 중국 혁명의 흐름과 마오쩌둥(毛澤東)의 사상을 다루며, 10강에서는 제2인터내셔널 이후의 서구 맑스주의 경향들과 중국 이외의 아시아 지역 공산주의 운동을 소개한다.
맑스주의라는 이름은 언제나 치열한 이론적˙정치적 투쟁이 벌어지는 장(場)을 의미해 왔다. 맑스˙엥겔스 자신들이 논쟁과 비판을 통해 입장을 정립해 나갔으며, 그들을 계승한 맑스주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맑스주의 역사 강의』 역시 각각의 시대˙지역의 핵심적인 맑스주의 사상가들˙저작들을 중심으로 다루면서, 그것들 간의 논쟁, 대립, 영향관계에 주안점을 두고 논의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맑스주의의 역사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역사적 맥락 속에서 맑스주의를 이해하려는 시도
『맑스주의 역사 강의』는 맑스주의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지만, 사실들만을 나열하는 역사책은 아니다.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는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면서 맑스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과 논쟁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이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맑스주의는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사상이며, 맑스주의의 이론들과 논쟁들 역시 구체적 현실을 지양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와 분리해 이론을 설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으며, 특히 현실의 사회적˙정치적 배경과 깊은 연관을 맺으면서 형성된 맑스주의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따라서 당시의 정세를 알지 못한 채 그 이론들과 논쟁들을 보게 되면 어떤 의도에서 그런 이야기들이 나왔는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9강에서는 마오쩌둥의 대표적인 저작인 『실천론』과 『모순론』을 설명한다. 이 두 책은 그 자체로는 이론과 실천의 관계, 모순의 성격을 이론적으로 논의하는 책이다. 마오는 『실천론』에서 인식은 실천에 근거하는 것이고 진리의 기준은 실천에 달려 있다고 이야기하며, 『모순론』에서는 모순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지만, 그 구체적 양상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논의를 펼친다. 저자는 역사적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이 텍스트들만을 읽는다면 마오쩌둥이 1937년에 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를 알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마오가 『실천론』을 저술한 것은 당시 중국 공산당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소련 출신 지도자들이 소련의 이론적 틀을 중국 현실에 그대로 끼워 맞추려 한 태도를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모순론』을 통해서는 공산당 내에는 모순이 없다는 소련의 입장을 비판하고,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한 사회에도 ‘모순’이 존재하므로 ‘끊임없는 혁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맑스주의는 사회정치적 현실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사상이 아니기 때문에,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면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며, 『맑스주의 역사 강의』는 사상이 등장한 현실적 배경을 설명하는 데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역사적 배경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냉전 시대에 유포된 악선전들이 맑스주의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초래했고, 특히 한국처럼 냉전의 영향을 깊이 받은 지역에서는 오해가 한층 더 심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1강에서 악명 높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개념에 대한 오해를 지적한다. 주지하다시피 맑스˙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권력을 장악한 뒤에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독재’(dictatorship)라는 표현이 후대에 와서 “맑스주의는 민주주의를 부정한다”는 통념을 낳았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맑스의 시대에 dictatorship은 오늘날과 달리 ‘독재’가 아니라 ‘통치 일반’을 가리키는 단어였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단순히 ‘프롤레타리아트의 통치’를 의미하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역사의 변천 속에서 dictatorship은 ‘강압적 전제정치’를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도 반민주적 통치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이는 냉전 시기 현실 사회주의 진영을 ‘전체주의’로 규정하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사상의 역사가 아닌 ‘운동과 사상’의 역사로서의 맑스주의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맑스주의 ‘사상’의 역사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운동’의 역사까지 포괄하고 있다는 것이다. 맑스주의의 사상들은 언제나 운동과의 연관 속에서 성립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현실의 운동보다 추상적 이론에 집중하는 ‘서구 맑스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저자는 이런 이론주의적 경향의 강세가 냉전 시기 서구의 장기호황에 힘입고 있음을 지적한다), 또 별다른 실천적 의미가 없는 서구 이론을 수입하는 데만 몰두하는 한국 진보진영에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맑스주의 이론들의 의의는 그것이 운동 속에서 산출한 효과를 인식할 때만 온전히 파악될 수 있다. 7강에서 저자는 레닌의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이하 『제국주의』)의 의의는 단순히 ‘제국주의’ 현상을 이론적으로 분석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신 그는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제국주의 단계로 나아갈 수밖에 없으며, 제국주의 열강들의 가혹한 식민통치가 피식민 지역의 저항 운동을, 더 나아가 혁명을 낳는다는 것을 해명한 점이 『제국주의』의 의의라고 이야기한다. 레닌 이전 대부분의 맑스주의자들은 사회주의 혁명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후진국들과 식민지들의 저항 운동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런 통념을 깨고 “후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혁명이 일어날 수”(263쪽) 있음을 밝힌 것이 레닌의 공적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주어진 현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의 이론적 갱신에 주목하는 저자는 아시아의 운동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기존의 맑스주의자들이 산업노동자계급만이 혁명적인 계급이라고 믿었던 반면, 중국(과 그 외 아시아 지역) 혁명에서는 당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농민도 혁명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련에서 농업집단화를 통해 농민계급을 분쇄하려 했던 것과 달리, 농촌공동체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산업화를 이루기 위한 ‘대약진운동’과 같은 시도를 전개했던 것이다. 또한 ‘문화대혁명’은 맑스주의의 전통적인 주장인 ‘토대의 변혁’에서 이탈해 ‘상부구조의 혁명’을 더 강조한 사례이다. 그리고 문화대혁명은 대규모의 대중 동원이 이루어졌다는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맑스주의의 역사에서 새로운 조류의 등장”(359쪽)이라는 의미에서도 새롭고 중요한 현상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이처럼 맑스주의의 역사는 자신이 직면한 현실에 맞추어 변화했으며, 그 과정에서 맑스 사상의 이론틀까지 변형시키기도 했다. 자본주의의 충분한 성숙, 혁명적 계급으로서의 산업노동자계급(프롤레타리아트), 상부구조보다 토대의 변혁이 결정적이라는 믿음 등이 역사 속에서 변형 혹은 부정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변형, 이탈이 오히려 의미를 지니는 것임을 강조한다. “150년 전에 출발했던 맑스주의의 이론적 틀을 가지고는 온전히 설명하기가 더 이상 불가능한 현실이 있었고, 그 현실 속에서 새로운 성격의 맑스주의가 생겨났다”(415쪽)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용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해 나갔기 때문에 맑스주의가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맑스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맑스주의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보다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시각으로 맑스주의를 읽는다!

그동안 맑스주의는 사회변혁의 유효한 무기로 인정받지 못했다. 역사적으로는 냉전, 신자유주의,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에 직면해, 이론적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근대성 비판’에 직면해 더 이상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저자는 맑스주의를 포기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맑스주의는 여전히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의 유력한 자원”(418쪽)이며, 또한 “근대성과 반근대성의 변증법적 통일”(388쪽)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맑스주의 역사 강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의미함을 띠고 있는 맑스주의를 보다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줌은 물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극복하는 데도 유용한 지침을 제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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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중의 걸작
최고의 개설서입니다 읽다가
너무 잘 서술이 되어서 100자평 남기려고 왔는데 저처럼 감탄하신 분들이 역시 많군요
도다리맨 ㅣ 2017-11-19 l 공감(0) ㅣ 댓글(0)



평이 좋아 읽었는데, 괜찮았습니다. 특별히 1905년 러시아혁명 이전 상황이 잘 그려져 있어 그간의 궁금증을 많이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책을 읽고 있으면 공부하시는 분들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이 흘러나옵니다.
봉천동 ㅣ 2016-05-24 l 공감(0) ㅣ 댓글(0)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맑스주의 역사입문서. 웨스턴 맑시즘과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맑시즘에 대해 미처 다 못다룬 게 아쉽지만 한국인의 관점에서 이만한 입문서도 없다. 특히 서구중심주의를 경계하는 데 아주 마음에 들었다.
lealea ㅣ 2015-07-02 l 공감(0) ㅣ 댓글(0)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입문서. 다만 스탈린주의와 마오주의에 대한 저자의 옹호가 자신이 표명하는 일처럼 그리 `객관적`이지는 않다.
산책이 ㅣ 2014-12-11 l 공감(0) ㅣ 댓글(0)



"천개의 맑스주의들이 신자유주의가 부과한 야만에 대항하는새로운 실천들"을 하고있는걸까~역사로 읽는 맑스주의를 아주 쉽게 친절히 설명하고 있는 고마운 글이다. 삶은 매순간 수많은 입장들이 겹쳐져서 경쟁하지만 난 그 틈바구니에서~에잉~사랑밖에 난몰라~맑스도 그랬을걸~ㅋ
오리무중 ㅣ 2014-08-23 l 공감(0) ㅣ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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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 10편




맑스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농담같은오늘 ㅣ 2016-01-12 ㅣ 공감(0) ㅣ 댓글 (0)
사회현실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나의 인식과 시선이라는 것이 생겨난 이후 이런저런 사회과학책들을 손에 잡히는대로 읽기 시작했고, 그런 와중에 맑스주의을 둘러싼 잡다한 상념들도 마구잡이로 내안에 들어와쌓였다. 이 한권의 책으로 잡다한 상념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동안 내가 이런 책을 얼마나 읽고 싶어했었는지는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맑스주의 입문서로 두말할 나위없이 추천한다는 얘기!
책 말미에 정치적, 경제적 접근법을 폐기한 후 문화환원론에 빠져버린 현재 일부 진보좌파 진영에 대한 비판제기를 읽으며 얼마전 읽은 '혁명을 팝니다'라는 책의 내용도 자연스레 떠올랐다. 최근 읽은 이 두 권의 훌륭한 책은, 신뢰하는 주간지의 책 추천코너가 아니었다면 한참 후에나 만나보았을 책들이다.

[마이리뷰] 맑스주의 역사 강의 팔루스의 기표 ㅣ 2016-01-08 ㅣ 공감(3) ㅣ 댓글 (0)맑스를 좋아하던 싫어하던 무관심 하지 않은 사람에게 권해요. 맑스가 세계에 영향 미친 내용을 잘 정리.

[펌글] 레디앙 서평_"자주-평등파 새로운 차원 소통 기회" 유승민 ㅣ 2010-09-29 ㅣ 공감(4) ㅣ 댓글 (0)


"자주-평등파 새로운 차원 소통 기회"
[투고-서평] 『맑스주의 역사강의』…"자주파에 일독 권한다"


2010년 09월 29일 (수) 09:30:36 민경우 / 새세대네트워크 기획위원 dalgona@redian.org


평소 안면이 있던 한형식으로부터 『맑스주의 역사강의-유토피아 사회주의에서 아시아 공산주의까지 』에 대한 서평을 부탁받았다. 나는 책 제목처럼 그저 대중적인 입문서 정도로 생각하고 심상히 들어 넘겼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고 보니 80년대 중반 맑스주의를 접하고 민족해방노선의 관점에서 20년 이상의 세월을 보냈던 내게 많은 고민을 주게 하는 책이었다.

주관적이고 실천적인 서평


▲ 책 표지
그리고 나의 고민은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동료들과 함께 나눌만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에 가능한 주관적이고 실천적으로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써보고자 한다.

가장 흥미 있는 것은 스탈린에 대한 분석과 평가이다. 한형식은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 공포정치 등이 스탈린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사상이론적인 근원에서 비롯된 문제라기보다는 당시 시대 상황, 특히 소련의 사회적 고립과 임박한 히틀러의 소련 침공에서 원인을 찾는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사례와 사건들을 소개한다. 개인적으로는 283~284쪽에 소개된 ‘아시아놈’과 관련된 일화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이 일화는 스탈린에 대한 한형식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설득력 있는 에피소드이다.

내가 보기에 스탈린에 대한 위 평가는 상식적이고 객관적인 것이다. 나는 한형식의 주장을 스탈린을 옹호하는 어떤 입장이라기보다는 당시 상황을 소개한 상식적인 주장으로 읽었다. 정작 흥미 있었던 점은 그러한 상식적인 주장이 왜 맑스주의 진영 내부로부터 왜곡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한형식은 위 과정을 흥미있게 소개한다. 한형식의 주장을 요약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1917년 10월 무장봉기로 권력을 장악한 볼셰비키는 제헌의회 선거에서 볼셰비키가 다수당이 되는데 실패하자 제헌의회를 해산한다.

이를 계기로 당시 독일 사민당의 이데올로그였던 카우츠키가 『프롤레타리아와 독재』라는 책을 통해 볼셰비키를 비난하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관련된 레닌-카우츠키 논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 논쟁이 ‘전체주의-민주주의’ 논쟁으로 비화되면서 스탈린과 스탈린주의가 구체적인 사회역사적 조건을 벗어나 신비화(악마화)되었다는 것이다.

스탈린주의의 신비화 또는 악마화

결국 한형식은 신비화되었던 스탈린을 구체적인 사회역사적 공간으로 불러내어 맑스주의의 역사 속에서 정상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내가 한형식의 위 책을 단순한 학술적인 작업이 아니라 실천적인 관점에서 독해하게 된 이유는 90년대 이후 좌파(80년대 초반 맑스주의가 진보진영의 주류로 자리 잡은 이후 자주파와 평등파로 분열된다. 여기서 좌파는 평등파 중 일부 진영을 의미한다) 진영이 레닌-스탈린, 민족해방노선을 신비화시켰던 점과 최근 사민주의에 대한 과도한 주목 때문이다.

나는 80년대 후반 이래 민족해방노선의 관점에서 운동을 했다. 나는 북의 수령론이나 군사주의가 농민국가(맑스주의는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북한의 역사적 한계의 산물이라고 보지, 절대악과 같은 무엇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한형식이 스탈린주의의 현실적이지만 불행한 선택을 소련의 고립과 히틀러의 침략 위험 때문이라고 보는 것과 같다. 그런데 좌파 동지들은 이른바 자주파를 상종하지 못할 어떤 괴물처럼 대하곤 한다. 더욱 위험한 것은 이러한 자신들의 견해를 국가보안법과 반공주의에 기대어 관철(?)하려 한 점이다.

후자의 평가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좌파 동지들이 많을 듯하여 보완하면 다음과 같다. 맑스주의는 어느 시점에 시민권을 얻었다. 더구나 대부분의 맑스주의자들은 교수나 연구자의 신분을 갖고 있다. 어느 정도 민주화된 한국에서 현실 운동에 크게 개입하지는 않되 관념적으로는 과격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몽상적인 교수들을 감옥에 보낼 이유는 별로 없다.

자주파를 상종하지 못할 괴물로 보는 '동지들'

이것이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사회주의를 외치는 교수들은 버젓이 교직을 유지하면서도 범민련이나 한총련 등 자주파와 ‘다함께’가 감옥을 메웠던 이유이다.(나는 ‘다함께’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들 또는 그들의 선배들이 감옥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에는 경외감을 갖고 있다)

위 평가에 가슴으로 동의가 되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저명한 공안수들의 연행과 그들의 석방 이후 행적을 공부해 보기 바란다. 한국의 공안기관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그들은 실질적인 위협이 되는 세력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용케 구별해낸다.

그렇기 때문에 한때 한국의 지식인들을 부끄럽게 했던 노동자 출신의 혁명가가 어느 날부터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모호한 주장을 늘어놓고, 가치가 있는 일이지만 위험하지 않고 진보적인 매체에서는 환영하지만, 첨예한 사회경제적 갈등에서는 다소 빗나간 공간에서만 활동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거기에는 여지없이 공안기관과의 직접적 또는 간접적 교감이 묻어 있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의미 있게 노력했던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어느 시점에서 공안기관, 국가보안법과 대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칭 맑스주의자임을 자칭하며 레닌-스탈린, 민족해방노선을 신비화하려는 태도에는 그것을 통해 공안기관과 국가보안법의 검열 과정을 피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의 정점에서 일어난 사건이 민주노동당의 분당과 6.2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의 참패이다. 민주노동당의 분당이 일심회 사건이나 민족문제 등에서 발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주파를 악마화하는 태도와 분당

다음으로 사민주의에 대한 평가이다. 2007년 이후 역사적인 자주파와 평등파의 정파적 갈등은 대체로 끝났다. 2007년 대선에서 100만 총궐기를 주장하고 2009년 정책당대회에서 이명박 정권 퇴진을 내걸었던 민주노동당은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의회주의 정당으로 변모했다.

반MB냐 독자후보냐의 전술적 대립보다 중요한 것은 미증유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민주노동당이 2012년 대선에서의 선거 전술을 중심으로 세상을 고민했다는 점이다. 한형식의 책을 옮기자면 마치 제2인터내셔널이 반전을 주장하고서는 정작 전쟁이 일어나자 태도를 바꾸었던 것처럼 말이다.

평등파는 워낙 갈래가 많아 궤적을 추적하기 어렵지만 북유럽 사민주의를 금과옥조처럼 되뇌이는 모습에서 맑스의 자취를 찾는 것은 무리인 듯하다.

나는 자주파와 평등파의 정치적 몰락 속에서 사민주의가 급부상하는 모습에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는 정치에서 의회주의, 합의제, 정당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복지국가 노선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런 경향은 다음의 몇 가지 점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민주의 급부상을 우려한다

첫째는 자본주의의 안정화나 호황을 전제한다는 점이다. 사민주의가 뿌리에서 자본주의 호황을 배경으로 사회변혁을 포기하고 점진적 개량을 주장한 사상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포장하든(보편적 복지, 혁신경제 따위로 보완, 치장하더라도) 사민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현재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간과한 주장이다. 이는 경제위기 이후 맑스의 자본론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의 경향이다.

둘째는 사민주의가 의회주의, 정당 민주주의 등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만큼 2008년 이후 역동적으로 분출되고 있는 촛불, 서거정국.6.2 지방선거에서의 민심 표출 등과 배치되어 있다.

셋째는 비스마르크의 복지국가 노선이 독일 노동자계급의 분출을 억제하려는 정치적 발상에서 발원했던 것처럼 한국에서의 복지국가 노선은 보수 또는 보수-중도 정치 구조를 구조화하고 진보정치를 고립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사민주의 또한 사회경제적 맥락 속에서 한정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가치이다. 개인적으로는 사회경제적 갈등이 첨예화되고 대중적 진출이 가속화되는 한국 현실에는 맞지 않는 사상-이론 체계라고 생각한다.

맑스주의 만고불변 진리 아니다

한형식의 위 책은 시종일관 맑스주의가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에서 구체적인 사회현실에 입각하여 고찰되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제 2인터내셔널이 제국주의 전쟁에 동조하고 제국주의의 식민지 수탈을 묵인한 점을 통렬하게 적고 있다.

나는 2차 대전 이후 사민주의가 이룩한 역사적 공적을 평가해야 하는 것처럼 사민주의를 역사로부터 분리해 사민주의의 초기 발전과정에서 그들이 했던 역사적 공과를 간과하려는 경향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그리고 역사적 맥락에서 최근 운위되고 있는 사민주의, 복지국가론 등을 평가해 보자는 것이다.

그밖에 한형식의 책은 여러 면에서 실천적인 쟁점을 함축하고 있다. 이를 간략히 정리하면 첫째, 제 2인터내셔널이 맑스주의의 생명력을 거세하여 1차 대전 이후 파멸한 것처럼 레닌주의나 스탈린주의의 체계화(교조화)가 소련 패망의 원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대학 시절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등에 나오는 ‘반영론’,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의 도식성에 대해 가졌던 의문을 환기시켜 준다.

둘째, 한형식은 맑스주의를 섣불리 체계화하려는 경향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그것이 경제적 토대에 대한 분석에 근거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평등파가 분화되는 과정에서 발원한 자유주의, 문화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로 보인다. 내가 평등파 동지들에게 느꼈던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경향에 대한 문제의식과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내가 속했던 자주파에는 자유주의, 문화주의의 폐해는 크지 않았다. 반면 실천과 의식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운동의 과학성을 경시하는 태도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주파, 평등파 정견의 현대적 재구성

그런 면에서 80년대 중후반 이후 진보진영을 양분했던 자주파, 평등파의 정견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맑스주의 역사를 뛰어나게 개괄한 것은 물론 다양한 실천적, 현재적 함의를 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지난 진보운동사를 정리해 보고 진보운동이 선 입각점과 과제를 명확히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특히 자주파 동지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아울러 평등파 동지들에게는 자주파와 평등파가 새로운 차원에서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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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기적 눈높이 맑스강의, 머리에 쏙쏙 라주미힌 ㅣ 2010-09-28 ㅣ 공감(11) ㅣ 댓글 (7)

맑스주의를 공부할 때 항상 용어가 혼란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용어를 단순하게 대상의 이름을 지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기 위해서 혹은 다른 정치적 입장과의 차별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쓰기 때문입니다. 20p

온갖 책에 소개되는 사상들이 어려운 이유는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전달하는 언어에 있다고 느껴왔다. 이해시키고자 정의를 한껏 내리지만, 덕지덕지 붙이는 수사만을 봐서는 그것이 설명인지 해석인지, 펼쳐 보이기 위함인지 숨기려는 건지 의아하다. 아마도 여기서부터는 들어오지 말라는 학문적 ‘영역표시’가 아닌가 한다. 그런가보다 하고 여러 책에서 뜨믄뜨믄 읽다가 이 책을 읽게 되니, 개안(開眼)된 느낌이다.



맑스주의의 역사는 150년간 단일한 자기정체성을 유지한 정치적 이념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고 어떤 면에서는 자기동일성을 유지하지만 동시에 그 동일성을 끊임없이 깨뜨리면서 새로운 영역으로 확산되어 간 정치적 이념의 역사입니다. 415p


그 동안 맥락을 몰랐던 게다. 맥을 짚어내질 못했으니 맥없이 들어만 봤던 ‘지식’처럼 사용되어져 왔다. 역사적 맥락과 배경으로 사상의 흐름, 갈등, 변화를 통해 맑스주의의 맑스주의성을 설명하는 방식의 적절함과 대중을 위한 친절함은 이 책이 왜 좋은가를 말해준다. 마이클 샌댈의 ‘정의는 무엇인가’가 왜 그렇게 인기인가. 누구누구의 정의론이 수없이 출판되어도 대중에 먹히지 않던 이유를 보면 우린 인문, 사회, 역사학에 무지했던 게 아니라, 배제되어 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은 ‘좋은 책의 특징’을 많이 갖고 있다. 당파성이나 논란이 많은 부분에 대한 저자의 해석은 그에 비하면 문젯거리가 아니다. 사회과학서 치고 특정 성향이 없거나, 저자가 개입하지 않은 책은 없다. 국정교과서도 국가의 개입이 있거늘… 책이 독자를 끌어당기면 그 다음부터는 독자가 알아서 간다. 이 책으로 맑스주의를 알고자 하게 했다면 책으로써의 역할은 다한 것이다. 맑스주의가 당대의 사상이 아니라, 진화하는 생명성을 가지고 있다면 학자들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독자들에게서 나올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민중의 힘, 민중이 역사를 이끌었다고 믿는다면 말이다. 세밀함은 다음의 일이다. 보폭이 문제인데, 속도를 말하는 것은 오바다.


세상에 초월적이고 영원한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역사적일 뿐이라 것, 역사의 변화와 그 원인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 이것이 맑스 사상의 대전제 중의 하나입니다. … 맑스주의가 역사적이라는 것은 단일한 맑스주의란 있을 수 없고 최소한의 동일성을 공유하는 상이한 복수의 맑스주의들이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맑스주의들이 어떤 점에서 같고 어떤 점에서 다른지, 그 차이는 왜 발생하며 이 차이들의 실천적 의미는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맑스주의의 역사를 통해서 접근해야만 합니다. 420p

궁금함을 불러일으키는 내용들, 특히 수정주의의 대두와 제국주의와의 영합에 관한 내용, 그리고 냉전이 만든 세계적 구도를 통한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게끔 하는 부분으로 역사적 진실에 한 발작 다가서게끔 한다.
이재오와 김문수를 큰 틀로 알게 된다고나 할까. “역사는 한번도 나를 비켜가지 않았다”라는 책을 쓰신 비전향장기수의 글과 사상도 오버랩이 된다. 군사정권의 슬러지들이 아직도 꾸물거리는 것을 봐도, 보수주의라는 틀을 쓴 미제국주의의 꼭두각시들, 한국사회의 욕망과 망상의 형상을 그리는 데에 많은 도움을 받은 것 같다. 간만에 공부하고 싶어졌다.


저자의 비판도 인상 깊다.


좌파의 유럽 편향은 심각한 지경입니다. 유럽에서 거의 아무런 실천적 영향력도 없는 좌파이론의 수입에는 열을 올리면서도 21세기에 일시적이지만 유일하게 집권에 성공한 공산당이 있는 네팔이나 공산당이 집권하지 않은 나라 중에서 공산당 당원 수가 가장 많았던 인도네시아 공산당의 사례, 그리고 바로 그 인도네시아 공산당을 상대로 자행된 20세기 최대의 대학살 중의 하나에 관심을 갖는 한국의 좌파는 거의 볼 수 없습니다. 맑스주의가 사변적 이론이 아니라 실천을 위한 담론이라는 데는 누구나 동의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학계 내의 관심에만 몰두한 유럽 좌파 학자들의 주장을 수십 년간 목숨 바쳐 투쟁한 수많은 민중의 이야기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는 한국 좌파들의 풍토는 지극히 비맑스주의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364p


입문서로는 합격, 그러나 좀 더 노력해 주세요!! hkcsp ㅣ 2010-09-27 ㅣ 공감(8) ㅣ 댓글 (0)

내가 쓰는 이 글은 책 자체에 대한 평이기도 하고, 백승욱 교수의 서평에 대한 단상이기도 하다.


일단 백 교수의 지적에 대해서는 일단 일리있는 지적이란 생각이 든다. 백교수가 지적한 문혁과 관련된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내가 잘 모르는 것들이긴 하지만) 오류가 있다면 응당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겠고, 마르크스주의 역사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당'을 둘러싼 문제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부재하다는 것도 나도 책을 읽으면서 살짝 그리 느꼈던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는 독자가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백 교수가 지적한 얼마간 학술적인(물론 그것이 불가결하게 실천과 연결되는 것이긴 하지만) 지적들은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그와 전혀 다른 뉘앙스의 언론 서평들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참세상의 최인기, 오마이뉴스의 임승수의 서평만 봐도 책에 대한 호평일색인데, 이게 맑스주의를 바라보는 이들의 관점이 백 교수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좀 다른 문제도 있는 것 같다. 내 관점에서 보자면 이 책은 내용상의 부족함을 살짝 눈감아 준다고 본다면 매우 훌륭한 대학 1-2학년용 세미나 교재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책의 서술과 형식이 뛰어나기 때문인데, 부족한 식견이나마 맑스주의 개설서 중에 이렇게 쉽게 쓰여진 책은 사실 잘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맑스주의 입문서로 그나마 대학 저학년 사이에서 많이 읽히는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마르크스의 사상]도 이만큼 쉽지는 않다. 그렇다고 알렉스의 책이 한형식의 책보다 풍부하고 깊이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한형식의 책은 (변호론적 입장이긴 하지만) 맑스주의가 남겨놓은 오류에 대한 나름의 해명을 시도하지만, 알렉스의 책은 아예 그 문제를 부정한다. 이렇게 무턱대고 '맑스가 짱이에요!'를 외쳐대는 책이 대학 신입생들에게 먹힐리 없으니 이 책 읽지 말자고 한다해도 딱히 다른 대안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주로 맑스를 해석한 온갖 2차 문헌들 또는 알튀세르가 해석한 맑스에 대한 또다른 2차, 3차 문헌들을 짬뽕해서 보는 방식으로 대체 하곤 했는데, 내 경험에 기초해 평가해보자면 그런 식이라면 아예 안하는게 낫다. 세미나 간사를 맡은 사람조차도 제대로 읽어오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요즘 대학생들의 무식함을 비난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짓도 없다. 최소한 입문서를 표방하고 나오는 사회과학 서적들이 좀 더 세속의 언어에 가깝게 쓰여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굳이 비교하자면 내가 [맑스주의 역사 강의]를 읽고 느낀 반가움은 예전에 강신주의 [철학, 삶을 만나다]를 읽고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것이다. 물론 지금 와서 생각하면 강신주의 책도 문제가 없지는 않다. 알튀세르를 소개하면서 오직 '클리나멘'이라는 소재를 붙들고 '우발성의 유물론'만을 강조하며 에피쿠로스-맑스-니체-들뢰즈 등의 계보에 집어넣는 게 올바른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 책 후반에 나오는 마음의 수양 등에 관련한 부분은 대체 어떻게 감당해 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약간 뜬금없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순도 100%의 책을 찾을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처음 접했던 2006년에 여기저기에 세미나 교재로 써먹어 볼 것을 권하고 다녔다.(내가 하도 광고하고 다녀서 실제로 교재를 바꾼 이들도 있었다) 대개 학회에서 철학 세미나 할 때 많이 읽힌다는 이진경의 [철학과 굴뚝청소부]보다는 실용성이 있어보였기 때문이다.


만약에 앞으로 누군가가 나에게 맑스주의 세미나 교재로 뭐가 좋겠냐고 묻는다면 (약간의 망설임은 있겠지만) 나는 한형식의 [맑스주의 역사 강의]를 권하겠다. 망설임 속에서도 굳이 이 책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자면, 이 책 만큼 맑스주의를 둘러싼 세간의 오해를 성실하게 해명하고 이겨내려는 책이 없기 때문이다. 스탈린에 대한 악마화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세속의 시선과 눈높이를 맞춰가며 그 시선의 맹목을 깨려는 노력을 이 책 만큼 성실하게 하는 경우가 있던가?


굳이 예를 들자면 이런거다. 예전에 학교에서 페미니즘 세미나를 할 때 콜론타이의 <공산주의와 가족>이란 텍스트를 봤다. 그런데 얘들이 텍스트 자체에 대한 이해는 제껴두고 '공산주의'라는 단어가 나오니까 갑자기 북한이 어쩌니, 김일성이 어쩌니 이런 얘기를 하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오로지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레드 컴플렉스에서 벗어납시다'라는 것 말고 뭐가 있었나? 이 책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맑스주의적 관점에서의 논박이 가능하다는 거다.


이 책은 어차피 '맑스주의의 쇄신'을 염두해 두고 쓰여진 책이 아닌 것 같다. 그걸 감안하고 보면 책의 의도는 성공한 거다. 여전히 맑스주의는 현실 비판에 있어서 가장 유효한 도구이지만 그 도구를 사용함에 있어 오직 '본연의 맑스로 돌아가자'는 선언으로는 가능하지 않고 오히려 맑스주의는 역사속에서 끊임없이 자기 모습을 변모시켜 왔음을 확인했다는 선에서 보자면 충분히 성공이라는 거다. 사실 이 정도 노력을 했는데도 백 교수의 호된 비판을 받는 것은 저자로서는 좀 억울한 면이 있을 것 같다. 백 교수는 그린비 출판사와의 문제 때문에 이 책을 비판한 듯 한데, 내가 볼 땐 출판사 문제만 아니라면 비판의 화살은 원숭이 따위를 끌어들여 맑스를 설명하려는 임승수에게 맞춰져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이 책이 미흡한 점이 있는 건 사실이니 나중에 개정판이 나올 경우를 대비해 몇 가지 독자로서 부탁만 하고 끝내보련다. 첫째, 책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아시아 공산주의 얘기는 차라리 빼는게 낫지 않을까 싶다. 책의 분량 때문에 소략하는 방식으로 줄인 것 같은데, 좀 억지스럽게 동남아 지역의 공산당 문제를 하나하나 다 설명하려다 보니 전체적인 균형만 어지럽힌 느낌이다. 그냥 아시아 공산주의 문제 자체가 아직 해명되지 못한 부분이 많고, 더 논의되어야 할 중요한 부분이다, 새움의 다음 세미나에서 더 자세히 얘기하겠다 정도만 얘기하고 끝내는게 낫지 않았나 싶다.

둘째, 내가 봐도 제2인터 논쟁에 대한 서술은 진부한 감이 있다. 그 뒷부분의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 이후 역사에 대해서는 내가 잘 모르는 분야라서 재밌게 읽긴 했는데, 그나마 좀 아는 사람이 읽으면 진부하게 느낄 것 같다.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이 진부함이라는 게 단지 내용의 진부함이라기 보다는 해석의 진부함이기 때문에 보완이 시급한 것 같다. 제2인터에서 개량이냐 혁명이냐 하는 논쟁을 소개하는 부분에 할애된 분량에 비해서 충실도는 좀 떨어지는 것 같다.

셋째, 책의 뒷날개를 보면 새움총서를 소개하면서 '어떠한 정치적 입장을 강요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쓸데없고 사실과도 맞지 않는 것 같다. 책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저자는 숨기려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군데군데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에 기초한 해석이 보인다. 맑스주의 자체가 원래 당파적인 입장에 기초한 것이니 이건 어쩔 수 없는, 아니 당연한 거라 생각한다. 이 당연한 것을 굳이 중립적인 입장에 선 것 같은 포지션을 취하며 숨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입문서의 형식을 띄면서 갖는 이 책의 장점은 알겠는데, '국정 교과서'를 쓸 생각이 아니라면 굳이 이런 노력은 안 하는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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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주관을 말하자면 한국어로 씌어진 것 중에서 이보다 알기 쉬운 입문서는 없는 듯하다. 물론 후반부가 급하게 마무리된 듯하고, 400쪽이라는 지면에 맑스주의 200년 역사를 담는다는 것이 무리하게도 보이지만, 그럼에도 핵심을 놓치지 않으면서 친절하게 설명하려는 저자의 역랑에는 박수!
수다맨 2013-07-23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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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말로 ‘맑스주의’의 흐름, 즉 철학-정치학적 맥락에서만 사건을 해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도 의도와 목적같은 추상적 개념으로서만 설명하기 때문에 부차적 역사책을 꼭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사건에 선행하는 의도뿐만 아닌 후행적 결과도 꼭 알아보십시오.
김민섭 2018-12-22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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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작입니다.
우왕 2014-01-22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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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맑스주의에 대한 확신. 가슴속에 무엇인가 꿈틀댄다.
beforesunset 2010-08-31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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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시몽부터 제3인터네셔널 파리코뮨까지 정말 일목요연하게 맑스주의의 계보에 대해서 잘 설명해 놓았습니다. <코뮤니스트>라는 4만원에 육박한 책보다 훨씬 좋은 책. 명저네요
소나무 2014-07-29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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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편식이 심한 우리사회와 여기저기 빵꾸난 근현대사를 보완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
귀를기울이면 2011-02-15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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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역사에 대한 개괄적 강의.호기심은 자극되었으나 더 알려니 머리가 아프다능.
고민 2011-05-15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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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입문서. 다만 스탈린주의와 마오주의에 대한 저자의 옹호가 자신이 표명하는 일처럼 그리 `객관적`이지는 않다.
산책이 2014-12-11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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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아닌 세상은 상상도 못하고 살아온 인생 대부분을 격하게 돌아보며 반성중인 요즈음. 대안으로서의 사회주의에 목마를 내게 단비가 되는 책. 강의또한 최고다!
indisha 2012-05-17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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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이 좋아 읽었는데, 괜찮았습니다. 특별히 1905년 러시아혁명 이전 상황이 잘 그려져 있어 그간의 궁금증을 많이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책을 읽고 있으면 공부하시는 분들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이 흘러나옵니다.
봉천동 2016-05-2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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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서로는 합격, 그러나 좀 더 노력해 주세요!!


내가 쓰는 이 글은 책 자체에 대한 평이기도 하고, 백승욱 교수의 서평에 대한 단상이기도 하다.


일단 백 교수의 지적에 대해서는 일단 일리있는 지적이란 생각이 든다. 백교수가 지적한 문혁과 관련된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내가 잘 모르는 것들이긴 하지만) 오류가 있다면 응당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겠고, 마르크스주의 역사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당'을 둘러싼 문제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부재하다는 것도 나도 책을 읽으면서 살짝 그리 느꼈던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는 독자가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백 교수가 지적한 얼마간 학술적인(물론 그것이 불가결하게 실천과 연결되는 것이긴 하지만) 지적들은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그와 전혀 다른 뉘앙스의 언론 서평들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참세상의 최인기, 오마이뉴스의 임승수의 서평만 봐도 책에 대한 호평일색인데, 이게 맑스주의를 바라보는 이들의 관점이 백 교수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좀 다른 문제도 있는 것 같다. 내 관점에서 보자면 이 책은 내용상의 부족함을 살짝 눈감아 준다고 본다면 매우 훌륭한 대학 1-2학년용 세미나 교재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책의 서술과 형식이 뛰어나기 때문인데, 부족한 식견이나마 맑스주의 개설서 중에 이렇게 쉽게 쓰여진 책은 사실 잘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맑스주의 입문서로 그나마 대학 저학년 사이에서 많이 읽히는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마르크스의 사상]도 이만큼 쉽지는 않다. 그렇다고 알렉스의 책이 한형식의 책보다 풍부하고 깊이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한형식의 책은 (변호론적 입장이긴 하지만) 맑스주의가 남겨놓은 오류에 대한 나름의 해명을 시도하지만, 알렉스의 책은 아예 그 문제를 부정한다. 이렇게 무턱대고 '맑스가 짱이에요!'를 외쳐대는 책이 대학 신입생들에게 먹힐리 없으니 이 책 읽지 말자고 한다해도 딱히 다른 대안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주로 맑스를 해석한 온갖 2차 문헌들 또는 알튀세르가 해석한 맑스에 대한 또다른 2차, 3차 문헌들을 짬뽕해서 보는 방식으로 대체 하곤 했는데, 내 경험에 기초해 평가해보자면 그런 식이라면 아예 안하는게 낫다. 세미나 간사를 맡은 사람조차도 제대로 읽어오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요즘 대학생들의 무식함을 비난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짓도 없다. 최소한 입문서를 표방하고 나오는 사회과학 서적들이 좀 더 세속의 언어에 가깝게 쓰여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굳이 비교하자면 내가 [맑스주의 역사 강의]를 읽고 느낀 반가움은 예전에 강신주의 [철학, 삶을 만나다]를 읽고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것이다. 물론 지금 와서 생각하면 강신주의 책도 문제가 없지는 않다. 알튀세르를 소개하면서 오직 '클리나멘'이라는 소재를 붙들고 '우발성의 유물론'만을 강조하며 에피쿠로스-맑스-니체-들뢰즈 등의 계보에 집어넣는 게 올바른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 책 후반에 나오는 마음의 수양 등에 관련한 부분은 대체 어떻게 감당해 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약간 뜬금없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순도 100%의 책을 찾을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처음 접했던 2006년에 여기저기에 세미나 교재로 써먹어 볼 것을 권하고 다녔다.(내가 하도 광고하고 다녀서 실제로 교재를 바꾼 이들도 있었다) 대개 학회에서 철학 세미나 할 때 많이 읽힌다는 이진경의 [철학과 굴뚝청소부]보다는 실용성이 있어보였기 때문이다.


만약에 앞으로 누군가가 나에게 맑스주의 세미나 교재로 뭐가 좋겠냐고 묻는다면 (약간의 망설임은 있겠지만) 나는 한형식의 [맑스주의 역사 강의]를 권하겠다. 망설임 속에서도 굳이 이 책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자면, 이 책 만큼 맑스주의를 둘러싼 세간의 오해를 성실하게 해명하고 이겨내려는 책이 없기 때문이다. 스탈린에 대한 악마화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세속의 시선과 눈높이를 맞춰가며 그 시선의 맹목을 깨려는 노력을 이 책 만큼 성실하게 하는 경우가 있던가?


굳이 예를 들자면 이런거다. 예전에 학교에서 페미니즘 세미나를 할 때 콜론타이의 <공산주의와 가족>이란 텍스트를 봤다. 그런데 얘들이 텍스트 자체에 대한 이해는 제껴두고 '공산주의'라는 단어가 나오니까 갑자기 북한이 어쩌니, 김일성이 어쩌니 이런 얘기를 하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오로지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레드 컴플렉스에서 벗어납시다'라는 것 말고 뭐가 있었나? 이 책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맑스주의적 관점에서의 논박이 가능하다는 거다.


이 책은 어차피 '맑스주의의 쇄신'을 염두해 두고 쓰여진 책이 아닌 것 같다. 그걸 감안하고 보면 책의 의도는 성공한 거다. 여전히 맑스주의는 현실 비판에 있어서 가장 유효한 도구이지만 그 도구를 사용함에 있어 오직 '본연의 맑스로 돌아가자'는 선언으로는 가능하지 않고 오히려 맑스주의는 역사속에서 끊임없이 자기 모습을 변모시켜 왔음을 확인했다는 선에서 보자면 충분히 성공이라는 거다. 사실 이 정도 노력을 했는데도 백 교수의 호된 비판을 받는 것은 저자로서는 좀 억울한 면이 있을 것 같다. 백 교수는 그린비 출판사와의 문제 때문에 이 책을 비판한 듯 한데, 내가 볼 땐 출판사 문제만 아니라면 비판의 화살은 원숭이 따위를 끌어들여 맑스를 설명하려는 임승수에게 맞춰져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이 책이 미흡한 점이 있는 건 사실이니 나중에 개정판이 나올 경우를 대비해 몇 가지 독자로서 부탁만 하고 끝내보련다. 첫째, 책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아시아 공산주의 얘기는 차라리 빼는게 낫지 않을까 싶다. 책의 분량 때문에 소략하는 방식으로 줄인 것 같은데, 좀 억지스럽게 동남아 지역의 공산당 문제를 하나하나 다 설명하려다 보니 전체적인 균형만 어지럽힌 느낌이다. 그냥 아시아 공산주의 문제 자체가 아직 해명되지 못한 부분이 많고, 더 논의되어야 할 중요한 부분이다, 새움의 다음 세미나에서 더 자세히 얘기하겠다 정도만 얘기하고 끝내는게 낫지 않았나 싶다.

둘째, 내가 봐도 제2인터 논쟁에 대한 서술은 진부한 감이 있다. 그 뒷부분의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 이후 역사에 대해서는 내가 잘 모르는 분야라서 재밌게 읽긴 했는데, 그나마 좀 아는 사람이 읽으면 진부하게 느낄 것 같다.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이 진부함이라는 게 단지 내용의 진부함이라기 보다는 해석의 진부함이기 때문에 보완이 시급한 것 같다. 제2인터에서 개량이냐 혁명이냐 하는 논쟁을 소개하는 부분에 할애된 분량에 비해서 충실도는 좀 떨어지는 것 같다.

셋째, 책의 뒷날개를 보면 새움총서를 소개하면서 '어떠한 정치적 입장을 강요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쓸데없고 사실과도 맞지 않는 것 같다. 책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저자는 숨기려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군데군데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에 기초한 해석이 보인다. 맑스주의 자체가 원래 당파적인 입장에 기초한 것이니 이건 어쩔 수 없는, 아니 당연한 거라 생각한다. 이 당연한 것을 굳이 중립적인 입장에 선 것 같은 포지션을 취하며 숨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입문서의 형식을 띄면서 갖는 이 책의 장점은 알겠는데, '국정 교과서'를 쓸 생각이 아니라면 굳이 이런 노력은 안 하는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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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kcsp 2010-09-27 공감(1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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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기적 눈높이 맑스강의, 머리에 쏙쏙

맑스주의를 공부할 때 항상 용어가 혼란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용어를 단순하게 대상의 이름을 지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기 위해서 혹은 다른 정치적 입장과의 차별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쓰기 때문입니다. 20p 온갖 책에 소개되는 사상들이 어려운 이유는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전달하는 언어에 있다고 느껴왔다. 이해시키고자 정의를 한껏 내리지만, 덕지덕지 붙이는 수사만을 봐서는 그것이 설명인지 해석인지, 펼쳐 보이기 위함인지 숨기려는 건지 의아하다. 아마도 여기서부터는 들어오지 말라는 학문적 ‘영역표시’가 아닌... + 더보기
라주미힌 2010-09-28 공감(11) 댓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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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를 알기위한 친절한 강의서



언제나 이사를 하면서 마음을 착찹하게 만드는 책들이 있다. 맑스의 저작선들... 언제고 읽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항상 읽지 않고 책장에 꽂아둔 그 책들을 이사하면서 포장하면서 드는 자괴감 같은
것이 있었다. 죽기전에 과연 나는 이 책들을 다시 손에 잡을 수 있을까....
이유는 여러가지다. 실천적 철학으로서의 맑스의 저작들을 실천과 유리된 채 읽는다면 고담준론보다 더 답답한 이야기들이고, 이미 실천과 유리된 삶을 사는 생활은 이 책들을 다시 들춰보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책들은 맥락을 모르고 읽는 다면 그 가독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사변적인 책들이니 가볍게 손에 들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들을 포장하면서 항상 무언가 아쉬움과 자괴감과는 또 다른 감정을 품게 되었다. 어쩌면 평생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지고가야 하는 무슨 업같은 느낌....

'맑스주의 역사강의'를 접하고서야 다시 맑스의 저작들을 챙겨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맑스주의의 기원에서 주요저작들의 역사적 배경과 논점들, 그리고 이론의 발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개괄적이면서도 중요한 지점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어서 새롭게 맑스의 저작들과 그 외 맑스주의에 대한 저작들을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단순하게 맑스의 저작을 설명한 것이 아닌, 사회주의 운동 전반의 전개과정과 그 안에서 논의되었던 실천적 논쟁들이 어떻게 이론적 분화를 했는지, 그리고 그 이론의 현실적 구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친철한 강의가 돋보이는 책이다.

특히나 제2인터네셔널과 제3 인터네셔널의 진행과정과 러시아 혁명에 대한 새로운 논점들에 대한 설명. 스탈린 주의의 성립과정과 전개에 대한 후속 논의들에 대해서는 그전 러시아 교과서에서 얻지 못한 여러가지 사실들을 알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고, 지리적으로 유럽을 벗어나 간략하게나마 아시아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주었다는 점에서 유용했다.
혁명의 순간을 넘어서 혁명을 유지하기 위해 고분분투하는 과정에서의 사상적 분화와 그 시대배경에 대한 논의들은 단순하게 맑스주의가 철학적 이념적 운동이기 보다는 매우 실천적 운동임을 다시 한 번 각인하는 계기점이 되었다. 특히 중국의 혁명과 더불어 최근에 재조명되는 문화혁명에 대한 논점들은 대중운동노선에 대한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져준 것 같다.

이 책이 가지는 장점은 무엇보다, 맑스주의 입문서로 매우 적절하다는 점이다. 80년대 이후 맑스는 죽은 개가 되어버렸고, 이 사회의 특성상 맑스라는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실천한다는 것은 그저 자신의 색깔만 드러내는 일이 되어 맑스를 홀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맑스에 대한 이해도 없이 그저 서구의 최신 이론만 가져다 글을 쓰면 진보라는 듯한 경향이 농후한 시점에서 그 이론적 바탕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배경을 알게 해 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무엇보다 러시아 교과서같은 교조주의적 이론이나 철지난 이론 취급하는 서구의 시각을 역사적 사건과 더불어 객관화시키려 한 저자의 노력이 보인다는 점이 좋았다.

다만, 맑스주의 이론의 역사를 이 책으로 모두 담기에는 모자람이 있을 것이다. 특히 서구 맑시즘에 비해 라틴 아메리카나 아시아의 상황을 담지 못한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아시아의 경우는 짧게라도 다루었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상황은 거의 담지 못한 점이 있다. 현재 라틴 아메리카의 실험에 대한 논점들을 좀 더 추가하여 진행하였다면 좀더 시의 적절했을텐데..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현 시점에서 대안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맑스의 비젼을 공유하고 그 대안의 출발점에서 맑스가 제외된 한국의 현실을 안타까워 하면서 이 책을 출판한다고 했다. 공감하면서 그저 이 땅에서 맑스를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얼른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품어본다. 그 새빨간 양반에게 인간의 자유와 존엄에 대해 배울건 배워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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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10-09-26 공감(9) 댓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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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맑스주의 역사 강의

맑스를 좋아하던 싫어하던 무관심 하지 않은 사람에게 권해요. 맑스가 세계에 영향 미친 내용을 잘 정리.
보빠 2016-01-08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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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욱 선생님 리뷰에 대해서.



백승욱 선생님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쓴 글을 알라딘 서평란에 누군가 옮겨놓은 것 같다.

자신의 홈페이지가 아니라 알라딘과 같은 매체에 글을 실을 때는 좀더

신중해야 할 것이다. 일단 사실관계에서 잘못된 점이 있어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린피 출판사와 새움에서 알튀세르 심포지엄을 공동기획한 것처럼

쓰고 있는데 내가 알기로는 새움 출판사에서 '독자적'으로 기획한 것이다.

새움과는 관계가 없어 보인다. [이 리뷰는 새움이나 그린피 출판사와는 관계가 없다.]

백승욱 교수는 어떤 근거로 공동기획이라고 쓰고 있을까?

갑자기 책 서평 중에 책과 관계 없는 심포지엄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당황스럽다.

그리고 백승욱 선생이 출판사의 책 제목 결정에 대해서 불쾌해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된다.

일단 <맑스주의 역사 강의>는 백승욱 선생과 관계 없는 총서로 기획된 것이고,

표지도 다르기 때문에 독자들이 연속 기획물로 오해할 것 같지는 않다.

책 제목 결정에 대해서 출판사가 재량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책에서 맑스주의의 쇄신이 담겨 있지 않다고 비판하는 것도 약간

핵심을 벗어난 것 같다.

이 책의 주제나 목적이 맑스주의의 쇄신이 아닌 것 같아서이다.

[저자의 생각은 잘 모르겠다.]

말 그대로 맑스주의의 초기 성립부터 '수많은 맑스주의'로 분화되어 현재에 이르는

과정/역사를 담담히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승욱 선생은 맑스주의는 혹은

맑스주의'만은' "역사적 진열장 속에 있는 마르크스주의라는 유물을 다시 꺼내 먼지를

후후 불어 털고 다시 한 번 감상해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선언하고 있다.

맑스주의는 '쇄신' 혹은 내재적 비판이 아니라면 통사적 서술 따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인가! 여기서 백승욱 교수는 맑스주의 내부에 어떤 극복해야 할 난점이 있다고

'전제'하고 있으며, 이것이 전제되지 않는 한 역사적 서술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백승욱 선생의 '독특한' 관점이지 맑스주의자들이 합의한 사항은 아니다.

아울러 나는 이른바 "지난 20년간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와 마르크스 자신을 대상으로 하여

국내외에서 진행 되어온 나름 심도있는 연구의 결과" 중 그 국내 논의라는 것이 궁금하다.

"20년"이란 바로 "알튀세르"를 연상시키는데, 알튀세르가 아니라면 맑스라는 이름을

호명하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일까..

그러나 이 책의 목적은 (내가 파악하기로는) 현실의 운동과의 연관 하에서 어떻게 맑스주의가

수많은 맑스주의로 분기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는 것 같다. 미안하지만

알튀세르는 그 수많은 맑스주의들 중 '하나'이다.

물론 이 책의 한계는 명백하다. 저자가 쓰고 있듯이 저자는 '전문 학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맑스주의 역사를 서술하는 데 시도했으며 책이라는 성과물을 냈다.

소련의 역사에 대해서도 아마 자료를 모두 섬렵하지 못했기 때문에 소련의 붕괴라는

중요한 주제를 다루지 못했을 것이며, 중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백승욱 교수가 비판했듯이

정교하지 못한 면들이 보인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누가 맑스주의 통사를 쓰려고 하는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면 말이다.

백승욱 선생은 20년 전이 아니라면 이 책의 출판의 가치가 없다고 하는데,

미안하지만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맑스주의 역사 책은 정말 변변찮다.

따라서 바로 이 시점에서 이 책의 출간의 의의는 저자가 후기에서 밝혔듯이

다른 연구자들로 하여금 맑스주의의 역사에 대해 논하도록 자극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맑스주의는 침묵에 둘러싸일 것인가.....

# 아. 그리고 백승욱 선생이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이 논외로 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는데,

맑스 정치경제학 비판이 아니라 '세계체계론'에 착목하는 분이 이런 비판을 한다는 점도

아이러니하다. [세계체계론의 '과도한' 열풍은 아마 맑스주의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세계체계론의 경제학적 베이스가 약하다는 점에서 이는 정치경제학 비판에

필적할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세계체계론에서 하는 얘기들은

맑스 경제학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 스탈린주의에 대한 역사적 옹호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한 말이 없다.

한국사회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왜 그렇게 스탈린(주의) [그런 것이 있다면] 를 그렇게

싫어하는 걸까? 모든게 스탈린주의 때문이라면, 소련의 붕괴를 스탈린주의로부터

연역해보라! 아마 상당히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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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명품위즐 2010-09-24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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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레디앙 서평_"자주-평등파 새로운 차원 소통 기회"



"자주-평등파 새로운 차원 소통 기회"
[투고-서평] 『맑스주의 역사강의』…"자주파에 일독 권한다"

2010년 09월 29일 (수) 09:30:36 민경우 / 새세대네트워크 기획위원 dalgona@redian.org


평소 안면이 있던 한형식으로부터 『맑스주의 역사강의-유토피아 사회주의에서 아시아 공산주의까지 』에 대한 서평을 부탁받았다. 나는 책 제목처럼 그저 대중적인 입문서 정도로 생각하고 심상히 들어 넘겼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고 보니 80년대 중반 맑스주의를 접하고 민족해방노선의 관점에서 20년 이상의 세월을 보냈던 내게 많은 고민을 주게 하는 책이었다.

주관적이고 실천적인 서평


▲ 책 표지
그리고 나의 고민은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동료들과 함께 나눌만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에 가능한 주관적이고 실천적으로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써보고자 한다.

가장 흥미 있는 것은 스탈린에 대한 분석과 평가이다. 한형식은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 공포정치 등이 스탈린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사상이론적인 근원에서 비롯된 문제라기보다는 당시 시대 상황, 특히 소련의 사회적 고립과 임박한 히틀러의 소련 침공에서 원인을 찾는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사례와 사건들을 소개한다. 개인적으로는 283~284쪽에 소개된 ‘아시아놈’과 관련된 일화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이 일화는 스탈린에 대한 한형식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설득력 있는 에피소드이다.

내가 보기에 스탈린에 대한 위 평가는 상식적이고 객관적인 것이다. 나는 한형식의 주장을 스탈린을 옹호하는 어떤 입장이라기보다는 당시 상황을 소개한 상식적인 주장으로 읽었다. 정작 흥미 있었던 점은 그러한 상식적인 주장이 왜 맑스주의 진영 내부로부터 왜곡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한형식은 위 과정을 흥미있게 소개한다. 한형식의 주장을 요약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1917년 10월 무장봉기로 권력을 장악한 볼셰비키는 제헌의회 선거에서 볼셰비키가 다수당이 되는데 실패하자 제헌의회를 해산한다.

이를 계기로 당시 독일 사민당의 이데올로그였던 카우츠키가 『프롤레타리아와 독재』라는 책을 통해 볼셰비키를 비난하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관련된 레닌-카우츠키 논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 논쟁이 ‘전체주의-민주주의’ 논쟁으로 비화되면서 스탈린과 스탈린주의가 구체적인 사회역사적 조건을 벗어나 신비화(악마화)되었다는 것이다.

스탈린주의의 신비화 또는 악마화

결국 한형식은 신비화되었던 스탈린을 구체적인 사회역사적 공간으로 불러내어 맑스주의의 역사 속에서 정상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내가 한형식의 위 책을 단순한 학술적인 작업이 아니라 실천적인 관점에서 독해하게 된 이유는 90년대 이후 좌파(80년대 초반 맑스주의가 진보진영의 주류로 자리 잡은 이후 자주파와 평등파로 분열된다. 여기서 좌파는 평등파 중 일부 진영을 의미한다) 진영이 레닌-스탈린, 민족해방노선을 신비화시켰던 점과 최근 사민주의에 대한 과도한 주목 때문이다.

나는 80년대 후반 이래 민족해방노선의 관점에서 운동을 했다. 나는 북의 수령론이나 군사주의가 농민국가(맑스주의는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북한의 역사적 한계의 산물이라고 보지, 절대악과 같은 무엇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한형식이 스탈린주의의 현실적이지만 불행한 선택을 소련의 고립과 히틀러의 침략 위험 때문이라고 보는 것과 같다. 그런데 좌파 동지들은 이른바 자주파를 상종하지 못할 어떤 괴물처럼 대하곤 한다. 더욱 위험한 것은 이러한 자신들의 견해를 국가보안법과 반공주의에 기대어 관철(?)하려 한 점이다.

후자의 평가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좌파 동지들이 많을 듯하여 보완하면 다음과 같다. 맑스주의는 어느 시점에 시민권을 얻었다. 더구나 대부분의 맑스주의자들은 교수나 연구자의 신분을 갖고 있다. 어느 정도 민주화된 한국에서 현실 운동에 크게 개입하지는 않되 관념적으로는 과격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몽상적인 교수들을 감옥에 보낼 이유는 별로 없다.

자주파를 상종하지 못할 괴물로 보는 '동지들'

이것이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사회주의를 외치는 교수들은 버젓이 교직을 유지하면서도 범민련이나 한총련 등 자주파와 ‘다함께’가 감옥을 메웠던 이유이다.(나는 ‘다함께’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들 또는 그들의 선배들이 감옥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에는 경외감을 갖고 있다)

위 평가에 가슴으로 동의가 되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저명한 공안수들의 연행과 그들의 석방 이후 행적을 공부해 보기 바란다. 한국의 공안기관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그들은 실질적인 위협이 되는 세력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용케 구별해낸다.

그렇기 때문에 한때 한국의 지식인들을 부끄럽게 했던 노동자 출신의 혁명가가 어느 날부터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모호한 주장을 늘어놓고, 가치가 있는 일이지만 위험하지 않고 진보적인 매체에서는 환영하지만, 첨예한 사회경제적 갈등에서는 다소 빗나간 공간에서만 활동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거기에는 여지없이 공안기관과의 직접적 또는 간접적 교감이 묻어 있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의미 있게 노력했던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어느 시점에서 공안기관, 국가보안법과 대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칭 맑스주의자임을 자칭하며 레닌-스탈린, 민족해방노선을 신비화하려는 태도에는 그것을 통해 공안기관과 국가보안법의 검열 과정을 피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의 정점에서 일어난 사건이 민주노동당의 분당과 6.2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의 참패이다. 민주노동당의 분당이 일심회 사건이나 민족문제 등에서 발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주파를 악마화하는 태도와 분당

다음으로 사민주의에 대한 평가이다. 2007년 이후 역사적인 자주파와 평등파의 정파적 갈등은 대체로 끝났다. 2007년 대선에서 100만 총궐기를 주장하고 2009년 정책당대회에서 이명박 정권 퇴진을 내걸었던 민주노동당은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의회주의 정당으로 변모했다.

반MB냐 독자후보냐의 전술적 대립보다 중요한 것은 미증유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민주노동당이 2012년 대선에서의 선거 전술을 중심으로 세상을 고민했다는 점이다. 한형식의 책을 옮기자면 마치 제2인터내셔널이 반전을 주장하고서는 정작 전쟁이 일어나자 태도를 바꾸었던 것처럼 말이다.

평등파는 워낙 갈래가 많아 궤적을 추적하기 어렵지만 북유럽 사민주의를 금과옥조처럼 되뇌이는 모습에서 맑스의 자취를 찾는 것은 무리인 듯하다.

나는 자주파와 평등파의 정치적 몰락 속에서 사민주의가 급부상하는 모습에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는 정치에서 의회주의, 합의제, 정당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복지국가 노선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런 경향은 다음의 몇 가지 점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민주의 급부상을 우려한다

첫째는 자본주의의 안정화나 호황을 전제한다는 점이다. 사민주의가 뿌리에서 자본주의 호황을 배경으로 사회변혁을 포기하고 점진적 개량을 주장한 사상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포장하든(보편적 복지, 혁신경제 따위로 보완, 치장하더라도) 사민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현재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간과한 주장이다. 이는 경제위기 이후 맑스의 자본론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의 경향이다.

둘째는 사민주의가 의회주의, 정당 민주주의 등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만큼 2008년 이후 역동적으로 분출되고 있는 촛불, 서거정국.6.2 지방선거에서의 민심 표출 등과 배치되어 있다.

셋째는 비스마르크의 복지국가 노선이 독일 노동자계급의 분출을 억제하려는 정치적 발상에서 발원했던 것처럼 한국에서의 복지국가 노선은 보수 또는 보수-중도 정치 구조를 구조화하고 진보정치를 고립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사민주의 또한 사회경제적 맥락 속에서 한정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가치이다. 개인적으로는 사회경제적 갈등이 첨예화되고 대중적 진출이 가속화되는 한국 현실에는 맞지 않는 사상-이론 체계라고 생각한다.

맑스주의 만고불변 진리 아니다

한형식의 위 책은 시종일관 맑스주의가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에서 구체적인 사회현실에 입각하여 고찰되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제 2인터내셔널이 제국주의 전쟁에 동조하고 제국주의의 식민지 수탈을 묵인한 점을 통렬하게 적고 있다.

나는 2차 대전 이후 사민주의가 이룩한 역사적 공적을 평가해야 하는 것처럼 사민주의를 역사로부터 분리해 사민주의의 초기 발전과정에서 그들이 했던 역사적 공과를 간과하려는 경향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그리고 역사적 맥락에서 최근 운위되고 있는 사민주의, 복지국가론 등을 평가해 보자는 것이다.

그밖에 한형식의 책은 여러 면에서 실천적인 쟁점을 함축하고 있다. 이를 간략히 정리하면 첫째, 제 2인터내셔널이 맑스주의의 생명력을 거세하여 1차 대전 이후 파멸한 것처럼 레닌주의나 스탈린주의의 체계화(교조화)가 소련 패망의 원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대학 시절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등에 나오는 ‘반영론’,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의 도식성에 대해 가졌던 의문을 환기시켜 준다.

둘째, 한형식은 맑스주의를 섣불리 체계화하려는 경향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그것이 경제적 토대에 대한 분석에 근거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평등파가 분화되는 과정에서 발원한 자유주의, 문화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로 보인다. 내가 평등파 동지들에게 느꼈던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경향에 대한 문제의식과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내가 속했던 자주파에는 자유주의, 문화주의의 폐해는 크지 않았다. 반면 실천과 의식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운동의 과학성을 경시하는 태도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주파, 평등파 정견의 현대적 재구성

그런 면에서 80년대 중후반 이후 진보진영을 양분했던 자주파, 평등파의 정견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맑스주의 역사를 뛰어나게 개괄한 것은 물론 다양한 실천적, 현재적 함의를 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지난 진보운동사를 정리해 보고 진보운동이 선 입각점과 과제를 명확히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특히 자주파 동지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아울러 평등파 동지들에게는 자주파와 평등파가 새로운 차원에서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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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2010-09-29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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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 역사강의] 내가 새내기 때 이걸 읽었더라면 :Q

 맑스주의 역사 입문서 『맑스주의 역사 강의』.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19세기에서 21세기까지 사회변혁을 위해 자신을 갱신해 나간 맑스주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다. 맑스 이전의 유토피아 사회주의부터 중국 혁명을 비롯한 아시아 공산주의 운동까지 모두 살펴보며, 객관적이고 친절하게 맑스주의 사상의 역사뿐 아니라 운동의 역사도 함께 다루고 있다...책소개에서.

 안녕하세요! 잉여 dcdc입니다!! 다른 말로 공부 하나도 안하고 학부를 끝장낸 dcdc라고 불러주셔도 좋겠습니다. 이 책도 읽고나서 참 재밌고 좋긴 했는데 뭘 알아야 이 책의 내용을 넘어서 그 외부에서 평가를 하든말든 할 텐데 그럴 깜냥이 안되서 트위터에 '이거 괜찮아요? 괜찮아요?'하고 묻기까지 했답니다. 잉여 dcdc에게 친절히 답변해주신 프리스티님께 감사를.

 책소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책은 맑스 이전의 공산주의/맑스/제 2 인터내셔널/레닌/스탈린/마오/웨스턴/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이어져내려오는 흐름을 통사적인 관점에서 서술합니다. 다른 부분은 둘째치더라도 스탈린과 마오에 대한 평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부정적 평'만' 들어있지는 않습니다. 특히 마오는 68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음에도 그노무 '창천항로' 참새 짤방 때문에 -_-;; 물론 비판을 제외한 것은 아닙니다.-전 아직 판단 보류 중이긴 해요-

 인강 하나 듣는 것처럼 어렵지 않게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제하지 않고 서술해나가는 저자의 뚝심은 저처럼 관심은 있지만 지식은 없는 쌩초보 입문자에게 매우 고마운 장점입니다. 지금 와서 누가 뭐라고 하든 한 시대의 절반 이상을 넘게 지배해왔고 지금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맑스와 맑스주의에 대한 기초 이해에는 더할나위 없이 든든한 나침반이 되어줄 책입니다. 또한 맑스주의라는 괜스레 무거워 보이는 주제를 떠나서도, 그저 역사서를 하나 읽는다는 기분으로 보아도 충분히 즐겁게 읽힐 것입니다.

 어쨌든 전반적으로 편하게 쉽게 읽히는 이 책입니다만 저같은 날초짜에게 가장 기뻤던 부분은 바로 부록으로 딸려나온 '더 읽을 책들' 부분(...) 맑스주의 흐름에 있어서 저자가 권하는 책들의 번역 여부와 간략한 한두줄짜리 서평이 담겨 있는데, 강의 하나 잘 듣고 교수님한테 다음에 뭐 읽으면 좋을까 하고 꼭 물어보는 학생들을 위한 친절한 답변이랄까, 그렇습니다. 어쨌든 이 책을 시작으로 저도 더 공부를 이어나가야 할 텐데 말입니다 ^^;


덧//
재미난 오탈자-혹은 미필적 고의-소개. "(베트남 설명하며)...프랑스놈들은 물러났지만 1953년경부터 미국이 프랑스를 대신하게 됩니다..." 지못미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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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dc 2010-08-28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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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강의] 유감



출처 : http://www.causocio.net/bbs/zboard.php?id=swbaek_free&no=425

중앙대 사회학과 백승욱 교수 ([자본주의 역사 강의], 그린비. 저자]


영국 생활을 마무리하고 귀국할 즈음에 인터넷을 통해 그린비 출판사에서 [맑스주의 역사 강의]라는 책이 출판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에 실린 책 소개를 보고 처음 든 느낌은 불쾌함이었다.
그린비에서 [자본주의 역사 강의]를 낸 적이 있었는데, 소개된 바로 보자면 내가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들을 담고 있는 책을, 같은 출판사에서 마치 시리즈 저작물처럼 매우 밀접한 제목을 달아 출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출판사가 어떤 책을 내는지 관여할 일은 아니지만, 서로 연상되는 유사한 제목의 책을 낼 때는 그로 인해 생길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특히 '마르크스'라는 매우 어렵고 중요한 주제의 낼 경우는 더더욱 말이다.
귀국 후 이에 대해 출판사에게 강하게 항의를 했었고, 책을 받아 읽어보았는데,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왜 필자와 출판사가 이 책을 출판하려 했는지 아직도 충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진지하게 '마르크스주의의 쇄신'이 목표라기보다는 '역사적 진열장 속에 있는 마르크스주의라는 유물을 다시 꺼내 먼지를 후후 불어 털고 다시 한 번 감상해 보자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런데, 지금 이 정세에서 우리가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단지 '역사적 변호론'으로 마르크스주의의 현실성과 유의미성을 살려 낼 수 있는 것일까?

강의로 책을 낸 후 나도 후회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강의라는 형식상 생길 수 있는 문제를 고려하더라도, 이 책은 불만족스럽다. 20년 전쯤 나왔으면, 여러 입문서 중의 하나로 읽힐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이시점이라는 것이 생뚱맞다. 지난 20년간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와 마르크스 자신을 대상으로 하여 국내외에서 진행 되어온 나름 심도있는 연구의 결과는 모두 어디로 간 것인지, 우리의 논쟁을 다시 20년 전으로 돌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느낌도 든다.

무엇보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다시 읽으면서 책이 제기하는 쟁점과 질문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어떻게 그 역사를 비판적으로 읽어내려 하는지 잘 모르겠다. 전체 구도에서 한 가지만 먼저 지적해 보면, 마르크스주의 전체 역사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당'이라는 문제는 직접적으로는 거의 다루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러시아혁명의 역사와 관련해 짜르체제의 정세적 엄혹함 하에서 출현한 전위정당을 다른 당과 혼동하면 안된다는 경고 정도가 보이는데, 이건 오히려 지하당과 전위당을 혼동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일 뿐이니까.
당의 문제는 2인터 내셔널이나 러시아혁명과 관련해서 문제가 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것이 가장 심각한 쟁점으로 떠오른 문화대혁명의 시기를 설명하면서도 쟁점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건 필자의 어떤 정치적 견해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데, 그건 양비론에 입각한 스탈린주의의 역사적 옹호와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고 보인다.

책은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너무나 쟁점없이 다루고 있다. 2인터내셔널의 시기가 그래도 역사적 사건들을 그런대로 정리해 잘 보여준다고 한다면, 그 이전과 그 이후는 과도하게 소략하다.
마르크스를 다루면서 [자본]에 대한 논의를 별도의 책에서 다루겠다고 하면서 '정치경제 비판'의 핵심적 논의를 모두 배제했는데, 그건 이후 마르크스주의 역사에서 왜 수많은 분기와 논쟁이 벌어지는가를 설명할 수 있는 출발점을 배제한 것과 다름 없어 보인다. 마르크스 이전으로 가면, 프랑스혁명에 대해서 이전의 정통적 해석의 문제를 크게 넘지 않는 수준에서 소개를 마무리 하기 때문에, 이것이 왜 지금까지도 마르크스주의와의 관계에서 쟁점이 되는지를 알기 어렵다. 전사들은 전사들이니까 일단 그렇게 놓아 두자.

러시아혁명부터 중국혁명까지 20세기의 중요한 역사를 다루는 내용들에는 눈에 거슬리는게 너무 많다. 이야기들이 충분한 연구에 기반하고 있는 것인지 눈에 거슬린다는 이야기이다.
러시아혁명과 코민테른의 역사는 과거 소련의 공식 교과서들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이야기들과 그다지 다른지 모르겠다. 레닌과 관련되어, 1905년 혁명 시기의 [사회민주주의자의 두 가지 전술], 1917년의 '4월테제', 그리고 내전 후의 NEP에 대한 해석은 이를 '트로츠키로의 경도'나 '스탈린의 전사'의 어느 한 축으로 끌어들여 해석하려는 통상적 해석 방식을 벗어나 있지 않다. 그리고 여기도 늘 '당'의 모순이라는 문제는 논의에서 배제된다.
262쪽에서는 "레닌은 제국주의의 주체로서 독점자본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것과 같은 형태의 독점자본이 10월 혁명 이후에 러시아에서 나타나야 한다고 보는 거예요."라고 대담하게 주장하는데, 이는 1917년 레닌의 핵심문헌 중 하나인 [임박한 파국,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보지 않았거나, '4월테제'와 [임박한 파국] 사이의 모순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하는 문제가 있을 경우에 나올 수 있는 주장으로 보인다.
레닌을 NEP 시기로 마무리 하면서, 여기서도 공식 당사에서 정리하는 방식을 벗어나지 않는데, 특히 NEP와 관련해 레닌이 제기한 매우 중요한 두 가지 쟁점, 첫째는 국유화와 구분되는 사회화라는 쟁점과, 두번째로 '협동조합'에 대한 재인식이 거론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4월테제'와 [제국주의론]을 출발로하는 레닌의 인식 상의 혁신(비록 한계 속에 있었다 하더라도)을 포착하기 힘들고, 그럼 굳이 이 시기의 논의를 다시 재론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스탈린 시기의 논의는 다소의 양비론과 역사적 제약론에 기대는 방식으로 비껴가는데, 역사적 불가피성에 과도하게 실리는 무게에 동의하기 어렵다. 역사적 제약 하에서 대응은 늘 동일한 것은 아니고, 그 돌파를 위해 어떤 쟁점을 남기는가가 늘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러시아 혁명 시기를 다루면서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좌익반대파와 우익반대파는 거론하면서도 러시아혁명 이후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던 노동자반대파의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혁명 하에서 '대중의 정치'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중국혁명의 논의는 몇 개의 문헌에 의존한 소개로 보이는데, 따라서 중요한 쟁점들이 묻히거나 잘못 소개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310쪽에서 쑨원의 삼민주의를 이야기하는데, 공산당과의 협력에서 이후 지속적으로 훨씬 더 중요했던 것은 '신삼민주의'였다.
그리고 중국혁명의 과정은 코민테른과의 대립이 매우 중요하지만, 그 문제를 너무 소략하게 다룸으로써, 이것이 이후 왜 중소분열과 나아가 국제주의의 의제 자체가 붕괴하는 후과를 낳는지를 설명해 줄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316쪽에 이야기되는 '토지개혁'과 관련해서도 중국혁명기 토지개혁은 정세와 지역에 따라 '몰수'와 '감조감식'이라는 두 가지 상이한 방향으로 추진되었다는 점이 중요한데, 여기서는 과도하게 단순화되고 있다.
중국의 '소련파'와 관련한 317쪽의 주장도, 1920년대 말 소련의 '중산대학'에서 수학한 지식인들과 왕밍, 보쿠 등 코민테른과 소련의 정치적 후광 하에 당 지도부를 장악한 세력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전자의 중산대학 출신 세력에는 마오에게 늘 이론적으로 중요한 관계였고 문혁기에도 중요한 인물인 천보다가 포함되고, 지도부의 자녀들도 다수 포함된다.
320쪽 쭌의회의의 위상은 과대평가 되었는데, 쭌의회의에서 결정된 것은 '군사노선'의 문제이고, 이로부터 옌안문예 강화까지 마오사상이 당 내에서 지도적 위상으로 자리잡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330쪽 마오의 모순론 소개에는 오해의 여지가 있다. 여기서는 "어떤 조건하에서는 생산관계가 생산력보다.... 결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이 모순론의 핵심 주장은 아니다. 마오는 어쩌면 거의 항상 생산관계가 생산력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며, 이 주장의 의미는 1950년대 말 마오가 쓴 [소련 정치경제학 교과서에 대한 평주]에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난다. [모순론]의 의미는 오히려 모순에 대한 일반이론은 없고, 모든 모순은 구체적이고, 따라서 모순의 구체적 분석만 필요하며, 결론적으로 정세우위의 사상을 정립한 데 있다고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는 정확히 [제국주의론]과 '4월테제'의 레닌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는데, 332쪽에서 '마오주의는 레닌주의 틀로도 설명할 수 없는...'이라고 하는 부분에서, 이는 러시아 혁명 당시 레닌이 제기한 '정세우위'라는 사고가 왜 볼셰비키에게 수용될 수 없었고(그런 점에서 레닌은 트로츠키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런 점에서 레닌과 마오의 '모순론'이 연결되는지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주장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런 레닌-마오의 연계성에 대한 경시는 333쪽 이하에서 1949년이 '공산주의 중국의 성립'이 아니라 '신민주주의국가'의 수립이었고, 이 신민주주의적 이행기라는 모호하고 모순에 찬 규정이 사실은 '4월테제'에서 NEP까지의 시기에 레닌의 사유에서도 어떻게 동일하게 나타나며, 그리고 이것이 현실에서 어떤 난점과 모순을 낳는지를 보지 못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고 보인다.

336쪽에서는 마오의 '부단혁명론'과 '계속혁명론'을 혼동하고 있다.

이후도 여러가지 많지만, 무엇보다 1957년 반우파 투쟁과 문화대혁명의 연계를 강조하지 않는다는 점, 348쪽에서 나오는 '5.16 통지'는 1966년 공식 발표되지 않고, 1년 후에 공개된 문헌이라는 점을 모르고 있고, 354쪽 류사오치의 딸은 칭화대에서 홍위병을 조직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354쪽에서 355쪽의 "실제로 인명손실 자체가 홍위병들에 의해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보이는데, 전체적으로 보자면, 희생자 중에서 홍위병 특히 조반파에 의한 사망자의 비중이 적다고 한다면 이해가 되지만, 이들에 의한 피해가 적었던 것은 아니다. 또 문혁이 이후 당 주도로 전개되면서 대대적인 지식인의 피해가 발생한 것에 대해서도 그 다음 쪽에 오해의 소지가 있는 주장이 보인다.
356-7쪽에서는 상하이 인민공사와 상하이 공작기계창을 혼동하고 있고, 358쪽에서는 문화대혁명의 주체였다고 할 수 없는 농민을 주체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리고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358쪽 이하에서 문화대혁명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당-대중'의 모순은 쏙 빼놓고 있다.

그 이하는 간략한 정리들이어서, 쟁점을 보기는 어렵지만, '아시아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그 외적 제약의 지적은 보이지만, 그 내적모순을 사고할 수 있는 계기들은 별로 보이지 않고, 그런 점에서 이를 415쪽에서 '새로운 성격의 맑스주의가 생겨났"다고 평가하는 근거를 이해하기가 힘들다.

마르크스의 현실성과 그 이론적 힘이 강력한만큼,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모든 것이 지나간 시절의 잊힌 '역사적 퇴물'처럼 오해되고 있는 것 만큼, 마르크스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간단치 않고 많은 노력이 드는 일이다. 언제나 그래서 마르크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지만, 그것은 매우 부담스럽고 신중을 기하는 일이 된다. 그리고 그래야 변호론이 아닌, 마르크스의 진정한 발전과 현재성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보인다.

사실 새움과 그린비의 이 공동기획은 이 책에만 불만이 있던 것은 아니다. 최근 열렸던 알튀세르 심포지움에 대해서도 비슷한 불만이 있었다. 그래서 굳이 찾아가서 나름 몇가지 '딴지'를 걸어보려 한 것이었는데, 결과는 잘 모르겠다.
내 불만은 지금, 알튀세르 사후 20년에 알튀세르를 다시 논의한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우리가 '다시, 마르크스를 위하여' 그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고, 그것은 마르크스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심포지움은 그렇게 해석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세 번의 질문을 한 셈인데,
(1) 바디우나 랑시에르를 알튀세르와의 관계 속에서 논의하려면, 그들이 단지 알튀세르의 제자였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와의 관계에서 이들 사이에 왜 결별이 발생했는지가 중요하고, 이 문제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비판, 문화대혁명에 대한 이해, 이들과 발리바르 사이의 대립선 세 가지에 비추어 볼 때 함의가 드러날 수 있다는 것
(2) 2천년대 발리바르의 단절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은 불필요한 논쟁일 뿐이며, 그것은 발리바르 자신의 논의에 적용해 볼 때 오히려 문제를 낳는다. 차라리, 그것을 '정치의 맹목점'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하고, 특히 'transindividuality'의 철학자로서의 발리바르라는 쟁점을 부각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으로 생각된다.
(3) 알튀세르의 변증법의 주장을 평면적으로 소개하는 것은 그다지 유용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왜 변증법의 한계를 계속 발견하고, 변증법을 떠날 수는 없지만, 유물론적 사고를 우위에 둠으로써 '정세'와 '정치'에 대해 계속 사유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는지를 다시 분석해 보고, 여기서 변증법과 계보학의 관계라는 쟁점을 만들어 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은가 등이었다.

책의 최종 결과물이 나와보아야 알겠지만, '더욱 많은 마르크스'와 함께하지 않는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 대한 '역사적 변호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지식효과를 낳을 것으로 우려된다. 내가 그 기획에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결국 하지 않기로 한 것도 그런 우려 때문이었다.

'다시, 마르크스를 위하여', 그건 아주 긴박하게 필요한 것이지만, 준비되지 않은 모든 시도가 플러스 효과를 낳기보다 마이너스 효과를 낳기 때문에 늘 신중해야하는 기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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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분필 2010-09-22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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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현실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나의 인식과 시선이라는 것이 생겨난 이후 이런저런 사회과학책들을 손에 잡히는대로 읽기 시작했고, 그런 와중에 맑스주의을 둘러싼 잡다한 상념들도 마구잡이로 내안에 들어와쌓였다. 이 한권의 책으로 잡다한 상념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동안 내가 이런 책을 얼마나 읽고 싶어했었는지는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맑스주의 입문서로 두말할 나위없이 추천한다는 얘기!
책 말미에 정치적, 경제적 접근법을 폐기한 후 문화환원론에 빠져버린 현재 일부 진보좌파 진영에 대한 비판제기를 읽으며 얼마전 읽은 '혁명을 팝니다'라는 책의 내용도 자연스레 떠올랐다. 최근 읽은 이 두 권의 훌륭한 책은, 신뢰하는 주간지의 책 추천코너가 아니었다면 한참 후에나 만나보았을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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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같은오늘 2016-01-1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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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알아야..


이책 저책 그냥 순서없이 보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그 책의 역사적 맥락을 잘 몰랐다. 이 책을 보면서 그런 맥락을 좀 알게 됐다.
백승욱 선생님의 비판적인 논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 이 책이 나름 가치있다고 생각된다. 이 책 보고 나서 맑스주의는 철지난 얘기란 생각이 들진 않는다. 오히려 저자가 그걸 너무 의식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난 아직도 맑스의 저작들이 지금 우리 문제 해결에 가장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걸 더 알고 싶고 그 길에 이 책은 많이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책을 다 보고 다음에 보고 싶은 내용은 중국공산주의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문화대혁명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백승욱 선생님의 문화대혁명에 대한 책을 보려고 결심했다. 그런데 백 선생님은 이 책에 대해 유감어린 글을 쓰셨다. 학자적 관점에서 더욱 매서운 회초리를 드셨다고 생각된다. 내 입장에서야 이 책은 별로 부족한 점은 없으나 백 선생님의 입장에선 그래도 부족한 부분이 있었던 것같다. 책 보면서 저자의 설명을 100% 다 맞다고 믿으면서까진 읽지 않았다. 그런 주장이 섞인 부분들은 대충 판단하면서 보니깐 뭐 그리 비판적인 시각으로 책을 보진 않았다. 그리고 사실 비판할 만한 능력도 되질 못 한다.
이 책은 정말 강의 같다. 책을 본다는 생각보다 강의를 듣고 있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 무척 빠른 속도로 보게됐다. 자본주의 역사강의란 책도 그랬던 기억이다. 역사적인 맥락을 학습한다는 차원에선 많이 도움이 됐다. 역사에 대한 책을 더 보고 싶게 만든 책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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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 2010-09-24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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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맑스주의 역사 강의

시조축적 - 프랑스 부르주아 혁명 - 공상적 사회주의에서 과학적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태동기부터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 등의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의 건설과 전개과정 현실사회주의 붕괴 이후의 이론들까지 망라하는 책이다. 구어체라 쉽게 읽히고, 실제로 내용도 쉬워서 입문에 적격이다. 편향적이거나 편협한 구석이 없어서 좋았다.
꼬뮌 2019-02-06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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