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21

노동자역사 한내 통일의 한길에서 미전향 장기수 고성화 선생님을 보내며



노동자역사 한내


통일의 한길에서 미전향 장기수 고성화 선생님을 보내며

노동자역사한내 제주위원회 부위원장 송 시 우

‘조국의 자주적 통일독립을 전취하기 위한 정의의 투쟁에서 ’투항‘이란 자신의 가지고 있는 신념에 대한 엄격한 의미에서 ’변절‘을 뜻하는 것이다. 그것이 의식적이든 아니든 투항은 엄격한 의미에서 변절이고 과오임에 틀림없다. 철저한 입지에서 투쟁하지 못한 과오임에 변명할 여지가 없다.’(고성화 선생님 회상기 통일의 한길에서(창미디어, 2005. 287쪽 일부)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행동 때문에 이기심과 개인주의가 생기고 그 결과로 상대를 업신여기는 우월감과 지배욕, 오늘의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관료주의가 생긴다. 이러한 악습은 자본주의 제도가 존속하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병폐이며 인간해방의 길 또한 요원하게 만드는 것이라 하겠다. 이 모든 악습을 없이하는 제도는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동지적 우애 속에 살 수 있도록 하는 진정한 제도는 오직 민주주의 즉 사회주의 제도 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실히 느꼈고 강조하고 싶다.’(위의 책 289쪽 일부)






많이 잊어 버렸던 사람이었다. 1993년 세밑에 뵈어 소식을 간간히 들었던 그 분을 20년 만에 영정으로 지난 7월18일 만났다. 20년 영어의 몸이 되어 제주도 동쪽 끝 ‘소섬’이 고향인 ‘비전향 장기수’라 불렸던 그 분, 허허롭게 웃지만 심신이 꼿꼿하고 견결한 눈매를 가지셨던 고성화 할아버지, 1916년에 태어나 98년을 식민지 청년으로 조국을 위해 현대사의 질곡을 짊어 지셨던 이론가이자 투쟁가였다. 일본에서 반제동맹 조직원으로 활동하다 학교도 졸업 못하고 일경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어도 새 세상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셨다. 특히 일제강점기 제주혁명가 3걸이라 표현되는 1920년 조선공산당 사건의 김명식 선생, 오사카 노동운동의 대부 김문준 선생,야체이카 사건의 강창보 선생과도 교감을 나누기도 하였다. 또한 1932년 ‘제주좀녀(海女)투쟁’의 지휘자이며‘제주도해녀노래’의 작사가이신 강관술 선생의 임종을 청진에서 지켜보시기도 하였다. 특히 출소 후 2002년에‘애국열사 강창보선생추모기념비’를 주도적으로 건립하는 등 일생을 그야말로 혁명가의 길로 조국통일의 한길로 발걸음을 놓으셨다.

그러나 선생님의 걸음마다 고난의 행군 속에서 생전에 질문을 드리고 싶었던 몇 가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사실 추모제에서 참석했던 동료들과 주고받았던 이야기다. 첫째는 그의 이력에서 ‘1944. 10. 1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 입사, 그리고 1945. 8. 15 퇴사’라고 스스로 정리하고 있는데, ‘조선미창’은 대한통운의 전신으로 쌀 수탈과 군수물자 이동을 위해 만들어진 회사가 아니었던가? 순천영업소의 경리사원으로 일했다고 아주 짤막하게 한 줄로 씌어져 있는데(위의 책 68쪽), 그의 일생에서 한 줄로 표현하는 10개월의 공백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둘째로 1947년 ‘3·1사건’이 일어나고 서북청년단이 내려와 경찰 노릇하며 백색테러를 자행하고 미군정청 경찰이 검거 선풍을 일으킬 때, ‘발언에 나선 나는 “고기는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조직은 대중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제주도의 섬이라는 특수 조건에서 적의 감시가 장기간 계속된다면 우리의 사업은 존재의 가치를 잃게 됩니다. 현 시기 적들은 합법을 가장하여 법 아닌 법으로 우리의 활동에 족쇄를 가하고 있습니다. 남조선 다른 지역에서는 모두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진지고수‘라는 명목으로 다른 지역에 가서 싸울 수 있는 동지들을 묶어 둘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이 문제부터 결정합시다.”고 제의하였다. 회의 결과 제주도를 떠나 다른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동지들은 그 동지들의 의사에 따라 활동하기로 결정을 보게 되었다.’(위의 책 86쪽) 조직을 보위하지 못하고 부산으로 도피해 버린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 이후 1848년 ‘무자년’의 주체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선생님께 무례하지만 듣고 싶었던 이야기다.

혁명의 짐 내려놓으시고 편안하게 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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