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뿐 아니라 고시원·쪽방 거주자도 홈리스”
등록 :2018-05-23
레일라니 파르하 유엔 특별보고관
14일 방한 9일간 주거상황 조사
“삶 파괴하는 강제퇴거 개선돼야…
성소수자들 취약층으로 고려안해
인간 존엄성 지키기 힘든 공간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홈리스로 봐야”
지난 19일 <한겨레> 와 만난 레일라니 파르하(Leilani Farha) 유엔 주거권특별보고관이 14일부터 둘러본 한국의 주거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박현정 기자“한국에선 개인과 가족의 삶을 파괴하는 심각한 인권침해인 강제퇴거가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강제퇴거는 국제인권법 위반이므로 시급히 개선을 촉구합니다.”
레일라니 파르하(Leilani Farha) 유엔 ‘적정 주거권’ 특별보고관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이다. 지난 14일 방한해 9일간 한국의 주거 빈곤상황을 조사한 파르하 특보는 2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 정부는 과거 불도저식 재개발이 아닌 지역 공동체를 고려한 개발 사업을 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많은 재개발이 진행되거나 계획돼 있는 것으로 안다”며 “지역사회를 파괴하고 개인과 가족이 쫓겨나갈 수 밖에 없는 사업이 지속되고 있는 데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이 다각도로 대안을 찾아봤지만 결국 퇴거할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이 나온다 하더라도 충분한 보상, 적절한 통보기간, 주거지에서 멀지 않는 곳에서 정착할 수 있게 하는 등 인권보장 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캐나다 출신 변호사이자 20년간 국내외에서 경제·사회권 이행 촉구 활동을 해 온 파르하 특보는 2014년 5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특별보고관으로 임명됐다. 특별보고관은 특정 인권 주제에 대해 조사를 하고 필요한 권고 사항을 제시한다. 그가 강조해 온 적정 주거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주거 수준을 의미한다. 공간 면적 뿐 아니라 사생활 보호·접근성·안전·계속적 거주 안정성이 확보되고, 조명·난방·환기·물 공급·위생 및 쓰레기 처리 등 기반시설이 있어야 하며, 부담되지 않는 비용 지불을 통해 이러한 주거 환경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국내에선 사람이 존엄성을 지키고 살 만한 집이 구체적으로 어떤 곳인지, 소득대비 주거비 부담이 어느 수준이어야 하는지 세부적인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 그러니까 아직은 주거권이 ‘인권’이라는 인식이 부족한 상황이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고시원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파르하 특보는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한 호텔에서 <한겨레>와 만나 거리에서 살고 있는 노숙인 뿐 아니라 고시원 등 ‘적정 주거’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공간에서 사는 사람 모두를 ‘홈리스(집 없는 사람들)’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는 거리에서 살고 있는 홈리스 숫자가 감소 추세라고 하지만, 홈리스 정의에 따라 그 숫자는 달라질 것이다. 고시원·쪽방·이주노동자 숙소 등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 역시 홈리스로 볼 수 있다. 고시원·쪽방을 둘러봤는데, 관짝같이 비좁은 공간으로 화장실이나 주방조차 없었다. 이러한 문제는 긴급한 상황으로 인식돼야 한다.” 집주인이 일방적으로 임대료를 올릴 수 있는 상황 역시, 거주 안정성을 위협하는 요소이다.
한국의 경우 ‘엘지비티아이(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인터섹스의 약자)’ 등 성 소수자들을 보호해야 할 취약 계층으로 생각하지 않는 점이 의아하다고 했다. 성 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안정된 주거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조사기간 동안 만난 한국 정부와 서울·부산시 관계자들이 주거를 인권 문제와 연결시켜 접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정부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파르하 특보가 올해 초 영국 일간 <가디언>에 기고한 글을 보면, 미국·영국 등에서 거대 자본이 소유한 ‘빈 집’이 늘어나는 한편, 홈리스와 거리에서 살아가다 숨진 사람 숫자는 늘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부자든 아니든 대부분의 국가가 주거 부문에 대한 지원을 줄였다. 시장에 맡겨진 부동산은 가장 수익성이 큰 투자처이므로 투기가 늘어나고, 가격은 올라간다. 사회안전망이 약하고 고용도 불안한 상황이 맞물리면서 비싼 임대료를 부담할 수 없는 서민들이 홈리스로 전락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집을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투자 수단으로만 보고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개발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적정 주거를 늘린다면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인한 건강악화나 범죄 노출 등 여러 문제를 줄일 수 있다. 장기적으로 사회적 비용도 아낄 수 있는 길이다.”
파르하 특보는 한국 주거상황을 조사한 최종보고서를 2019년 3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제40차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45836.html#csidx6fd8223ca13e114b2e22aeb217c8a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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