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 Movie] "철길을 놓고 그 위에 달릴 기차를 만든 지도자였다"
김일영의 ‘건국과 부국: 이승만·박정희 시대의 재조명’은 부정과 비난의 역사가 아니라 긍정과 계승으로의 역사를 강조한다.
우리 현대사를 재구성하면서 “그것밖에 못 했냐!”고 타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설명하고 해석하는 책이다. ‘부정과 지우기’라는 시각이 아니라 현실이란 바탕에서 ‘대한민국의 탄생과 나라 만들기(nation-building)’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이상적인 나라를 만들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악다구니를 쓰거나, 우리 대통령들은 하필 다 그 모양이냐며 비난의 화살을 마구 쏘아대는 대부분 학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1945) 이후 수많은 독립 국가가 출현했지만, 대한민국보다 더 훌륭한 역사를 만들어낸 나라가 단 하나라도 있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1948년 건국 이후 30년간 대한민국이 만든 모델과 성취보다 더 훌륭한 대안이 되거나, 더 성공한 나라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비판은 쉽지만 건물 짓기는 매우 어렵다. 더구나 건물을 지어본 경험도 없던 목수가 건물을 지어 올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도전이다.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되면서 ‘대한민국’이란 국호와 태극기를 내걸고, 민족사 처음으로 민주공화국 체제의 ‘나라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1392년 조선 건국 이래 무려 550여년 만에 누구도 해 본 적이 없는 근대국가(modern state)가 만들어진 것이다.
더구나 36년간의 일본 군국주의 식민체제로 자치를 경험해 본 적도 없었고 근대국가를 운영해 본 경험은 더더욱 없었다. 경험해 본 것은 봉건체제와 군국주의체제뿐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다시 봉건왕조체제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인구 대부분(71%)은 농업에 종사하는 전형적 농업 국가였고, 미국 원조로 연명해야했으며, 경제상황과 소득수준은 참혹했다. 광복을 맞자마자 서로가 신생국의 권력을 차지하겠다며 정당과 지도자가 난립했고, 서로가 상대방이 누구인지도 구분하기 어려웠다. ‘건국과 부국’을 통해 김일영은 무경험과 혼돈의 길을 걸으며 나라를 만들어야 했던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성공 국가’의 ‘실패 지도자’라는 궤변
이상적인 나라를 만들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악다구니를 쓰거나, 우리 대통령들은 하필 다 그 모양이냐며 비난의 화살을 마구 쏘아대는 대부분 학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1945) 이후 수많은 독립 국가가 출현했지만, 대한민국보다 더 훌륭한 역사를 만들어낸 나라가 단 하나라도 있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1948년 건국 이후 30년간 대한민국이 만든 모델과 성취보다 더 훌륭한 대안이 되거나, 더 성공한 나라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비판은 쉽지만 건물 짓기는 매우 어렵다. 더구나 건물을 지어본 경험도 없던 목수가 건물을 지어 올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도전이다.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되면서 ‘대한민국’이란 국호와 태극기를 내걸고, 민족사 처음으로 민주공화국 체제의 ‘나라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1392년 조선 건국 이래 무려 550여년 만에 누구도 해 본 적이 없는 근대국가(modern state)가 만들어진 것이다.
더구나 36년간의 일본 군국주의 식민체제로 자치를 경험해 본 적도 없었고 근대국가를 운영해 본 경험은 더더욱 없었다. 경험해 본 것은 봉건체제와 군국주의체제뿐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다시 봉건왕조체제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인구 대부분(71%)은 농업에 종사하는 전형적 농업 국가였고, 미국 원조로 연명해야했으며, 경제상황과 소득수준은 참혹했다. 광복을 맞자마자 서로가 신생국의 권력을 차지하겠다며 정당과 지도자가 난립했고, 서로가 상대방이 누구인지도 구분하기 어려웠다. ‘건국과 부국’을 통해 김일영은 무경험과 혼돈의 길을 걸으며 나라를 만들어야 했던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성공 국가’의 ‘실패 지도자’라는 궤변
더구나 한국은 주변의 대다수 국가가 가야했던 공산주의의 길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공산주의의 길은 우리 민족이 일본 전체주의에서 공산 전체주의라는 파멸과 질곡으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는 근대 국가를 만들기는커녕 공산주의가 유라시아대륙 전역으로 쓰나미 같이 확산하는 상황에서 공산주의를 막아내기도 힘겨웠던 현실이다. 우리도 주변 국가들처럼 공산체제로 가야 한다는 세력이나 좌·우 합작으로 공산주의와 자유주의를 반반씩 합친 나라를 만들어보자는 세력에서부터, ‘차라리 일제시대가 더 낫다’는 논리까지 횡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자유민주적이고 자유시장적 체제를 만들고자 한 이승만 대통령과 대한민국은 외롭고 힘겨운 사투(死鬪)를 전개한다. 공산전체주의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내면서도 근대적 자유민주적 번영사회를 동시에 만들어내야 했던 것이다.
이승만은 한반도가 다시 후진적 대륙문명으로 가면 안 된다는 확신을 갖고 근대문명과 한반도의 결합을 일관되게 추진해 성공시켰다. 중국과 러시아 등 당시 한반도와 국경을 함께하고 있는 대륙문명은 낙후된 봉건문명이거나 공산주의적 전체주의였다. 5000년 역사를 함께했던 중국이나 또 다른 전체주의인 소련의 길을 거부하고 서구문명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길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승만은 전체주의에는 일본 군국주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간파했다. 소련 공산주의가 훨씬 더 문명유린적이고 자유와 민주에 반한다는 것을 뼛속 깊이까지 잘 알고, 경험했던 지도자다. 봉건도 아니고, 식민도 아니며, 공산주의도 아닌 문명의 길을 개척하며 새로 출발한 대한민국은 건국이라는 집짓기에 나선 것이었다. 반봉건, 반제국, 반공산주의라는 건국투쟁으로 다른 신생국과는 전혀 다른 대한민국이란 집을 지었다. 그 결과가 바로 오늘날 대한민국과 다른 신생독립국들과의 차이의 기원이다.
이승만 시대가 대한민국이 달려가야 할 철길을 닦는 시기였다면 박정희 시대는 기관차와 열차를 만들어 그 철길 위로 달려 나가는 시기였다. 집짓기가 끝나자 살림을 마련했고 먹고 입을 것을 만들어 번영의 길을 만들었던 것이다. 농업국가를 넘어 산업국가 시대의 대한민국이 철강과 자동차강국이 되고 제3의 정보사회시대에 반도체와 IT강국이 되면서 삼성, 현대·기아자동차와 LG, 포스코가 세계를 누비게 된 것은 박정희 시대가 쌓아놓은 땀과 눈물 때문이다. 우리는 그 시대를 살아간 분들께 빚을 지고 있고, 그런 토대를 딛고 우리 모두 더 나은 삶과 직업을 추구하며 출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록 언제나 ‘살기가 어렵다’고 누구나 푸념하지만 지난 60년간 우리가 구할 수 있는 모든 통계로 다 비교해보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만큼 삶의 질(quality of life)의 상승이 있었던 민족은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세계적인 성공국가의 모델이 된 대한민국에 실패한 지도자만 있다고 하는지.
‘건국과 부국’은 근대적 문명과 담을 쌓고 폐쇄와 은둔으로 치달았던 나라가 글로벌 국가로 거듭나는 과정의 역동성을 분석한다. 어떻게 대한민국이 전자, 철강, 기계,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을 중심으로 중화학공업의 강국으로 가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다른 신생독립국들과는 전혀 다른 길이기도 했다. 한국은 4·19 민주혁명에 이어 5·16 군사혁명으로 거듭나며 산업국가를 통한 민족웅비의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농업국가가 세계적 산업국가로 가게 되는 발전국가(development state)의 형성과 변화과정을 설명한다. 번영국가를 향한 민족적 열망이 박정희 시대를 만들고 그런 예외적인 성공이 수반한 위기가 곧바로 1972년 이후 전개된 ‘유신(維新)’이라는 권위주의 체제로 귀결되었는지 보여준다. 성공이 새로운 위기와 과제를 만들었고 그 위기와 과제를 극복하며 다시 성공의 길을 찾아나갔다는 것이다.
긍정과 계승의 역사인식을 갖추자
이승만은 한반도가 다시 후진적 대륙문명으로 가면 안 된다는 확신을 갖고 근대문명과 한반도의 결합을 일관되게 추진해 성공시켰다. 중국과 러시아 등 당시 한반도와 국경을 함께하고 있는 대륙문명은 낙후된 봉건문명이거나 공산주의적 전체주의였다. 5000년 역사를 함께했던 중국이나 또 다른 전체주의인 소련의 길을 거부하고 서구문명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길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승만은 전체주의에는 일본 군국주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간파했다. 소련 공산주의가 훨씬 더 문명유린적이고 자유와 민주에 반한다는 것을 뼛속 깊이까지 잘 알고, 경험했던 지도자다. 봉건도 아니고, 식민도 아니며, 공산주의도 아닌 문명의 길을 개척하며 새로 출발한 대한민국은 건국이라는 집짓기에 나선 것이었다. 반봉건, 반제국, 반공산주의라는 건국투쟁으로 다른 신생국과는 전혀 다른 대한민국이란 집을 지었다. 그 결과가 바로 오늘날 대한민국과 다른 신생독립국들과의 차이의 기원이다.
이승만 시대가 대한민국이 달려가야 할 철길을 닦는 시기였다면 박정희 시대는 기관차와 열차를 만들어 그 철길 위로 달려 나가는 시기였다. 집짓기가 끝나자 살림을 마련했고 먹고 입을 것을 만들어 번영의 길을 만들었던 것이다. 농업국가를 넘어 산업국가 시대의 대한민국이 철강과 자동차강국이 되고 제3의 정보사회시대에 반도체와 IT강국이 되면서 삼성, 현대·기아자동차와 LG, 포스코가 세계를 누비게 된 것은 박정희 시대가 쌓아놓은 땀과 눈물 때문이다. 우리는 그 시대를 살아간 분들께 빚을 지고 있고, 그런 토대를 딛고 우리 모두 더 나은 삶과 직업을 추구하며 출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록 언제나 ‘살기가 어렵다’고 누구나 푸념하지만 지난 60년간 우리가 구할 수 있는 모든 통계로 다 비교해보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만큼 삶의 질(quality of life)의 상승이 있었던 민족은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세계적인 성공국가의 모델이 된 대한민국에 실패한 지도자만 있다고 하는지.
‘건국과 부국’은 근대적 문명과 담을 쌓고 폐쇄와 은둔으로 치달았던 나라가 글로벌 국가로 거듭나는 과정의 역동성을 분석한다. 어떻게 대한민국이 전자, 철강, 기계,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을 중심으로 중화학공업의 강국으로 가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다른 신생독립국들과는 전혀 다른 길이기도 했다. 한국은 4·19 민주혁명에 이어 5·16 군사혁명으로 거듭나며 산업국가를 통한 민족웅비의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농업국가가 세계적 산업국가로 가게 되는 발전국가(development state)의 형성과 변화과정을 설명한다. 번영국가를 향한 민족적 열망이 박정희 시대를 만들고 그런 예외적인 성공이 수반한 위기가 곧바로 1972년 이후 전개된 ‘유신(維新)’이라는 권위주의 체제로 귀결되었는지 보여준다. 성공이 새로운 위기와 과제를 만들었고 그 위기와 과제를 극복하며 다시 성공의 길을 찾아나갔다는 것이다.
긍정과 계승의 역사인식을 갖추자
다시 돌아보면 대한민국은 자유와 민주와 민족의 성지(聖地)를 만든 나라다. 그만큼 건국 이래 60여년간 빛나는 길을 만들고 달려온 나라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가 넘어야 할 고비들이 있고, 그 고비마다 주어진 과제를 잘 넘어서야 함을 김일영 교수는 잊지 않는다. 특히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극심한 ‘체제선택’의 전쟁과 전투가 펼쳐졌던 나라였고 그 문제가 아직 종식되지 않은 사회”라고 평가한다. 그렇기에 전혀 다른 체제를 지향하는 세력에 맞서 대한민국 체제선택 문제를 완결지으면서 ‘발전국가’ 모델을 더 성숙시켜야 하는 다중적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강점이었던 발전국가를 폐기하기보다는 국가도 강해지고, 동시에 시장과 사회도 강해지면서 상호 견제할 수 있는 ‘제한적 발전국가’ 모델을 마지막으로 제안한다.
결국 ‘건국과 부국’에서 그리려 했던 것은 수많은 한계와 어려움 속에서 쌓아올린 대한민국과 우리 아버님, 어머님의 삶의 궤적이다. 미화할 것도 없고 비하할 것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국가건설과 번영사회 만들기’ 과정이다. 그리고 부모세대가 만든 것을 부정하고 지우려고 해서는 더 이상 발전이 없다는 것을 재차 강조한다. 2009년 이 책의 저자가 49세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그가 규명하고자 했던 것은 이제 남은 이들의 몫이 되었다.
김광동 < 나라정책연구원장 >
결국 ‘건국과 부국’에서 그리려 했던 것은 수많은 한계와 어려움 속에서 쌓아올린 대한민국과 우리 아버님, 어머님의 삶의 궤적이다. 미화할 것도 없고 비하할 것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국가건설과 번영사회 만들기’ 과정이다. 그리고 부모세대가 만든 것을 부정하고 지우려고 해서는 더 이상 발전이 없다는 것을 재차 강조한다. 2009년 이 책의 저자가 49세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그가 규명하고자 했던 것은 이제 남은 이들의 몫이 되었다.
김광동 < 나라정책연구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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