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10

‘재인식’ 학자 4명 한때 진보성향 : 책과 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재인식’ 학자 4명 한때 진보성향 : 책과 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재인식’ 학자 4명 한때 진보성향

등록 :2006-03-03

<…재인식> 프로젝트는 이영훈 서울대 교수(경제학), 박지향 서울대 교수(서양사), 김철 연세대 교수(국문학),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 등 4명의 편집위원들이 주도했다. 이들 모두 ‘한때’ 진보성향으로 평가됐던 학자들이다. 그때는 어떤 목소리였었고 왜 ‘변성’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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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교수 ‘마르크스 주의’→‘식민지근대화론’

이영훈 교수는 80년대 중반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의 아성으로 불렸던 한신대 경제학과 창립을 함께 하고, 이 곳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식민지반봉건론의 주창자인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그의 스승인데, 식반론은 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의 한 축이었다. 이후 일본 실증경제사학을 적극 수용한 안 교수는 80년대 중후반부터 식반론을 폐기하고 식민지근대화론을 들고나왔다. 이 교수도 그 뒤를 이었다. 조선 후기사 연구에 몰두했던 이 교수는 지난 2004년 9월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서 일본군 위안부 관련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이 ‘사건’을 고비로 이 교수는 학문연구에 전념했던 길을 벗어나 적극적인 ‘대외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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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 교수 힘 숭배하는 이인화·이문열 파시즘 비판

80·90년대 <실천문학>과 <역사비평> 편집위원이었던 김철 교수의 학문적 이력은 상징적이다. 93년 평론집 <구체성의 시학>(실천문학사 펴냄)에서 김 교수는 당시 유행하던 ‘신세대 소설’의 “반총체성·반객관성·반역사성”을 크게 비판했다. 민족문학의 시행착오에 대한 반성에 공감하면서도, 변증법적 유물론과 노동계급 당파성 등의 원칙까지 유행이 지난 옷처럼 폐기처분하는 시도에는 적극 반대한다고 밝혔다. 2001년 펴낸 <문학 속의 파시즘>(삼인 펴냄)에서는 근대문학사를 지배한 민족주의 담론과 파시즘과의 관련성에 주목했다. 이광수, 이문열, 이인화의 문학을 “강력한 힘에 대한 숭배와 찬양”이라고 비판한 뒤, “그 가학·피학적 취미가 대중에게 먹혀드는 현실이 두렵다”고 적었다. 총체성과 역사성에 대한 관심 아래 파시즘을 비판했던 김 교수의 펜 끝은 이제 한국 진보세력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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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향 교수 자본주의의 대안·민족주의 균열 고민

박지향 교수는 영국사를 공부했다. 1998년 5월 영국의 좌파역사학자 에릭 홉스봄과 나눈 <한겨레> 대담에서 박 교수의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세계화·산업화가 빚어낸 환경·빈부격차의 문제 등을 생각할 때 어떻게 하면 미래를 좀 더 공평하고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가.” “이와 관련해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21세기에도 지속될 것인가. 어디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을 수 있는가.”

박 교수는 2002년 <슬픈 아일랜드>(새물결 펴냄)를 썼는데, 아일랜드에서 한국과 같은 비극의 역사를 읽으면서 ‘아일랜드 사람들의 분열된, 이중적 정체성’에 주목했다. 2004년 옮긴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휴머니스트 펴냄)에서 박 교수는 민족주의 담론의 균열과 모순에 더욱 천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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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영 교수 90년대 중반 박정희시대 객관적 검토 요구

김일영 교수는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 연구자다.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박정희 시대에 대한 ‘객관적 검토’를 요구해왔다. 2004년 쓴 <건국과 부국>(생각의나무 펴냄)은 김 교수의 생각을 압축하고 있다. 이승만 체제는 건국의 시기, 박정희 체제는 부국의 시기였고, 반공주의나 권위주의 또한 당시로선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90년대 후반까지 정당 민주화를 주장했던 그의 목소리는 요즘 듣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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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식 <역사비평> 주간은 봄호 머리말에서 이렇게 썼다. “민주화운동에 헌신적으로 참여했던 이들이 반개혁 대열의 맨앞에 서있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대체로 그들은 한 이념의 극단을 걸었던 이들로 자신의 근본주의적 이념이 현실에 부딪혀 좌절하는 순간 극단적 전향을 보였다.”

이들의 학문적 변화 과정은 한국 진보세력의 사상적 균열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우르기보다 허물어지면서 앙상한 뼈대만 유지해온 탓에, 진보학계가 여러 학자들의 문제의식을 풍부한 자양분으로 삼지 못했다는 반성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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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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