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08

녹색의 이름으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를 외치다: 서울시장 후보 신지예 인터뷰 | ㅍㅍㅅㅅ



녹색의 이름으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를 외치다: 서울시장 후보 신지예 인터뷰 | ㅍㅍㅅㅅ



녹색의 이름으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를 외치다: 서울시장 후보 신지예 인터뷰

2018년 6월 4일 by 리승환


리: 어쩌다 출마를 또 하셨습니까?

신지예: 그러게 말이에요. 이번이 두 번째 출마인데요. 지금 페미니즘 이슈가 떠오르고 있음에도 기성 정치권이 관심 이상의 태도를 보여주지 않아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리: 정치권도 꽤나 시끄러웠잖아요. 미투 때문에.

신지예: 하지만 정책으로 받진 않죠. 미투로 인해 변화한 게 아니라 꼬리 자르기를 했어요. 미투 운동의 요구를 정책으로 받아서 사회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 정치가 해야 할 몫인데, 그렇지 않은 기성 정당의 모습들을 보면서 누군가는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리: 서울시장은 기탁금이 얼마죠?

신지예: 5,000만 원.기탁금 제도는 소수 정당의 선거 참여를 봉쇄한다는 비판에 부딪히고 있다. / 출처: 세계일보

리: 5,000만 원만 있으면 서울 시장 선거에 나갈 수 있다는 건 꽤나 매력적인데요? 물론 전 5,000만 원이 없지만.

신지예: 저도 없어요. 기탁금이 5,000이라는 건 엄청 높은 거예요. 전 세계적으로 기탁금이 이렇게 높은 나라는 한국과 일본밖에 없어요. 한국이 2위인데 3위하고 엄청나게 차이가 나요. 영국도 국회의원 기탁금이 100만 원도 안 해요. 뉴질랜드 16만 원. 기탁금이 일반 서민들이 선거에 나오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는 거죠. 5,000만 원을 낸다고 해서 선관위가 뭘 해주는 것도 없어요. 공보물이나 현수막도 따로 다 제 돈 내서 해야 되거든요.국회의원 후보를 기준으로 한 선거 기탁금의 해외 사례. 일본 정도를 제외하면 한국에 비해 그 액수가 적고, 반환 기준도 낮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한겨레21

리: 평소에 당 활동에 전념하세요?

신지예: 아니요. 저는 ‘오늘 공작소’라는 회사답지 않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리: 회사는 잘 됩니까?

신지예: 어떻게든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리: 당이 잘될 가능성이 높을까요 회사가 잘 될 가능성이 높을까요?

신지예: 당이 잘 될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요?

리: 회사가 그렇게 힘들어요?

신지예: 저희는 3D 프린터 쪽을 하고 있는데 이게 쉽지가 않네요.

리: 혹시 공대 나왔어요?

신지예: 아니요. 저는 대학을 안 갔고요. 저희 ‘오늘 공작소’에 있는 팀원들과 같이 몇 년 전부터 기술 교육하다가 3D 프린터 제작 사업을 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KC인증을 받았고 제품판매를 위한 준비는 끝났어요. 근데 저는 그거보단 녹색당이 잘되는 게 더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중2병에 걸린 소녀, 학교 밖에서 길을 찾다

리: 대학은 왜 안 가신 거예요?

신지예: 고등학교 진학을 안 했어요. 중학교 때 청소년 운동을 하면서 공교육에서 더 이상 내 미래는 없단 생각을 하고 대안학교인 하자 작업장을 갔어요. 그 이후에 다시 대학에 가는 건 다시 사회가 요구하는 삶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서 가지 않고, 대신 신생 사회적 기업에 들어가 4년 동안 일했죠.

리: 중학생 때 공교육에 맞서게 된 계기는 뭐였나요?

신지예: 학교에서 선도부가 교문 앞에서 등교하는 학생들 검사하잖아요. 저는 그게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도덕책엔 신체자유권이 나와 있는데 왜 학생에게 없냐. 그리고 우리 초등학교 땐 다 귀 뚫고 했잖아요. 염색도 하고. 왜 중학교에 들어와서는 교복을 입어야 되고 내 신체에 대한 자유가 없나, 이런 생각 때문에 두발자유운동을 하게 되었어요.2000년대 초반 초고속인터넷의 보급으로 청소년 인권 문제에 대해 광범위하게 이야기를 나눌 통로가 등장하면서 강제적 야간자율학습, 두발규제 등을 이슈로 한 청소년 인권 운동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 출처: 참세상

리: 중2병에 큰 영향을 준 작품이나 그런 게 있나요?

신지예: 딱 무슨 작품이라기보단… 혹시 플래시몹 아세요? 그때 플래시몹 같은 게 서울에서 유행했거든요. 저는 그때 경기도 구리에 살았는데 서울까지 지하철 타고 나와 봤어요. 그때 제 생활반경들이 넓어지면서 나도 많이 컸고 이제 내 생각을 얘기할 수 있겠구나 하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리: 굳이 서울 안 가도 인터넷 보면 희한한 거 많잖아요.

신지예: 맞아요. 근데 그때는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던 곳은 다음 카페 정도였어요. 네이버 지식인도 나오기 전이었던 거 같은데. 2004년이었으니까요. 아고라 나오고 그럴 때.지금은 주로 홍보 목적의 ‘관제 행사’로 많이 변질했지만, 플래시몹이 유행한 2000년대 초반에는 유희의 목적으로 플래시몹이 등장했다. / 출처: 시사저널

리: 학교 때려치운다고 하니까 집에선 뭐라고 했어요?

신지예: 어머니께선 네가 사회를 바꾸고 싶으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높은 곳에 올라가서 직접 바꾸라고 그러셨어요.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리면 내 맘이 변할 것 같다고 얘기하고 학교를 그만둔 거죠. 대신 검정고시 봐서 2년 만에 대학에 갈 거라고 거짓말했어요. 근데 저희 어머니가 자기 삶을 사랑하시고 자식들을 믿기 때문에 제가 대학 안 간 거에 대해 한 번도 뭐라고 하신 적이 없어요.

리: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것에 대한 부담감 같은 건 없었어요?

신지예: 두려움이 있긴 했죠. 하자 작업장의 첫 번째 졸업생들이 썼던 에세이집 제목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의 어려움』이었어요. 그 길이 어렵기는 하지만 제가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헤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리: 하자 작업장은 고등학생에 해당하는 나이의 청소년이 가는 곳인가요? 거기선 어떤 걸 해요?

신지예: 정규과목이 하나도 없고 학점만 채우면 졸업할 수 있었어요. 마지막에 인턴쉽 같은 걸 하게 하고. 거기서 무대예술, 디자인, 영상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을 배웠어요. 근데 단지 기술 습득만 한 게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들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여러 대학에서 만들어지는 학과들 같은 데 가서 인문학 교육도 받고 그랬어요.

리: 거긴 몇 년이나 다녔어요?

신지예: 4년 있었어요. 졸업까지 했어요.지난 20년간 신지예 후보를 비롯한 많은 청소년이 하자 센터를 거쳐 가면서 기술, 인문학, 예술 등의 소양을 쌓았다.

리: 4년 동안 있으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신지예: 그때 KTX 여승무원 사태가 있었는데.

리: 어린 애들을 벌써부터 좌빨로 키워내는 대단한 곳이네요.

신지예: 지금도 그럴 거예요(웃음). 제겐 또 다른 엄마죠. 아무튼 그런 데 연대하러 가거나 그걸 기록하기도 했어요. 각자 친구들끼리 역할을 분담해서 영상 하는 친구들은 영상 기록을 남기고 저는 무대예술 쪽에 있어서 행사 기획하고 무대 공연 관리하고 디자인하는 친구들은 웹자보 같은 거 만들고. 해외에도 대안학교가 있잖아요. 홍콩에 있는 대안학교 찾아가서 방문하고 교류하고 이런 것도 하고.

리: 재미있었어요?

신지예: 그럼요. 가장 잘했던 선택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사회적 기업에서 50만 원 비즈니스로

리: 하자 작업장 졸업할 즈음 인턴쉽을 했다고 했는데 어디서 뭘 하셨어요?

신지예: 문화예술분야 사회적 기업 쪽이었어요. ‘이야기꾼의 책공연’이라고 책을 가공해서 콘텐츠화하는 곳이었죠. 거기서 4년 일했죠. 그러다 23살에 거길 나와서 ‘오늘 공작소’를 만든 거죠.

리: 그 두 일자리는 다 맘에 들었어요?

신지예: 마음에 들어서 한다기보다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하는 일이라.

리: 어떤 소명의식 같은 게 있나 봐요?

신지예: 청소년 운동 때도 그랬지만 저는 세상을 바꾸고 싶은 열망이 있어요. 그래서 거기 일조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는데 어릴 때는 사회적 기업이 딱 그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회적 기업도 기업이다 보니까 이윤 창출이 제 일 순위여야 되는 거예요. 거기에 대한 한계를 느껴서 ‘오늘 공작소’로 넘어오면서 교육이나 청년 지역 사업들을 주로 해왔어요. 지역 축제를 진행하기도 하고요. 원래 ‘오늘 공작소’를 만들 때는 청년들의 50만 원 비즈니스를 실행하는 기업이었으면 좋겠단 생각이었어요.

리: 50만 원 비즈니스가 뭐에요?

신지예: 일본에 있는 후지무라 야스유키 씨라는 발명가가 만든 개념인데 이 아저씨가 되게 독특해요. 이 아저씨 생각에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본업’이라는 거예요. 사람들이 한 가지 일을 통해 너무 많이 벌고 싶어 하고 그렇기 때문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그러다 보니 또 너무 많은 돈을 쓴다는 문제의식이에요. 그래서 그분은 적게 일하고 적게 벌자, 남는 시간엔 친구와 놀자, 그래서 한 달에 자기가 필요한 임금을 계산하고 그에 맞는 비즈니스를 개인이 만들자는 거예요.

리: 이런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 거로 생각했어요?

신지예: 가능해요.

리: 얼마를 벌면 서울에서 만족하고 생활할 것 같아요?

신지예: 저희가 그때 계산하기로는 부모님 집에 얹혀살면 50만 원.

리: 조건이 너무 큰데요?(웃음)

신지예: 근데 이게 50만 원만 벌자는 건 아니에요. 각자의 원하는 소득과 일하고 싶은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중요한 건 액수가 아니라 자기의 필요 소득을 자기가 결정해보자는 거예요. 그걸 한 번도 청년들은 스스로 결정해 본 적이 없잖아요. 그냥 어떻게 더 많이 벌까, 어떻게 더 위로 올라갈까, 성공할 수 있을까만 강요하는 사회로부터 벗어나 보자는 거죠.적게 벌고 자급하는 삶을 강조하는 후지무라 야스유키. 한국에도 책과 TV를 통해서 여러 번 소개 된 바 있다.

리: 일본 아저씨의 운동이 영향을 줬군요.

신지예: 네, 그래서 50만 원 비즈니스를 하게 됐어요.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인문학과 기술이다’라는 모토 아래 기술 워크숍을 매년 바꿔가면서 했어요. 카고 바이크라고 있어요. 짐 자전거. 길이가 2미터 돼요. 덴마크 같은 평지에선 잘 써요. 아이나 짐을 실어 나르기도 하고. 그걸 한국 버전으로 만들어보자 그래서 만들기도 했고요. 그런 걸 하다가 3D 프린터를 접하게 된 거예요. 50만 원 비즈니스를 하려면 지출을 줄여야 해요. 근데 지금 청년 세대에게 가장 부담스러운 건 주거비거든요. 그래서 주거비를 어떻게 줄일까 고민하다가, 사무실 바로 옆에 부흥주택이라고 한 90가구 정도 되는데 1970년대에 만들어진 주택이 있어요. 집이 엄청 낡았는데 월세가 방 두 개는 10만 원, 방 하나는 8만 원 이래요.

리: 동네가 어디에요?

신지예: 망원동이요. 근데 방 하나짜리가 재밌는 게 부엌이 따로 분리돼 있는데 방에 들어가서 뒤로 돌면 계단이 있어요. 그 계단을 올라가면 또 방이 있고 그 방을 뒤로 돌면 또 방이 있어요. 그러니까 방이 세 개 있는 복층 구조에요. 그걸 저희가 뜯어서 완전 개조해서 청년들이 사는 프로젝트를 했었죠. 그걸 하다가 몇몇 친구들이 3D 프린터를 접하고 이것 좀 파고들어서 제품 만들어보자 했던 게 ‘오늘 공작소’의 3D 프린터 사업의 시작입니다. 솔직히 이게 잘 될지는 모르겠어요.

리: 돈을 대 주는 곳은 어디예요?

신지예: 다 다른데요. 일정 부분은 서울시 청년 사업 같은 곳에서 지원을 받고요, 일정 부분은 저희 멤버들이 각자 일을 하며 번 돈으로 충당하고 있어요.

리: 박원순 지지하시겠네요.

신지예: 박원순 시장님은 그 연배에서 보기 힘든 좋은 분이세요.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사회적으로도 귀한 자산이라고 생각하고요.


당내민주주의와 숙의민주주의가 살아 있는 녹색당

리: 어쩌다가 정당 쪽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신지예: 원래 저는 청소년 인권운동하면서 민주노동당에 가입 하려고 했어요. 근데 그때는 청소년이라서 가입이 안 됐어요.

리: 그럼 중학생 때 민주노동당에 가입하려고 했던 거예요?

신지예: 네. 거기 청소년 위원회를 만들려고 했다가 무산되기도 했었어요. 민주노동당이 없어지고 난 뒤에는 당 활동을 안 하다가 2012년도에 녹색당 부스에서 나눠주는 팸플릿을 보고 ‘아, 여기 가입해야겠다’ 생각해서 가입한 거죠.

리: 어쩌다 낚인 거예요?

신지예: 저는 당내민주주의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당의 가치대로 운영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정당 중에 당내 민주주의를 구현한 정당이 거의 없어요.

리: 왜 그렇게 생각해요?

신지예: 대의원제가 대표적인데요. 대의원이 정당의 최고의결기구인데 보통 정당에선 당원의 투표를 통해 대의원을 뽑긴 하지만 기존에 당 활동을 해왔던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구조이기 때문에 신입 당원들이나 일반 당원들의 의지가 반영되기 굉장히 어려워요. 저는 일반 당원들의 목소리가 시스템에 어떻게 반영이 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봐요.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당내에서 어느 정치인의 기득권이 공고하게 있는 게 아니라 소수자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왔어요. 녹색당은 대의원을 추첨으로 해요. 정당으론 유일하죠. 일단 거기에 감명을 받았고 지금 녹색당이 국제 정당이잖아요? 전 세계 100여 개 녹색당과 연대하고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죠.2017년, 영국 리버풀에서 ‘글로벌 그린스’라는 이름의 세계 녹색 정당 연합체의 총회가 열렸다. 녹색당의 대표 성공 사례인 독일 녹색당처럼, 한국 녹색당도 크게 성장할 수 있을까? / 출처: 녹색당

리: 근데 사이즈가 커지면 그걸 벗어나기가 굉장히 힘들잖아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이라면 그 개개인의 의견이 다 반영되기가 힘들거든요.

신지예: 그런데 전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미 우리는 그렇게 할 시스템이 갖추어졌다고 저는 보거든요. 지금의 통신기술로는 굉장히 쉽게 정부나 정당이 이야기하려고 하는 걸 TV나 SNS를 통해 공유하고 혹은 숙의민주주의라는 기조 아래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해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 시도해보려고 하고는 있죠. 예컨대 탈핵 때 시민 공론화 위원회를 만들었다든지 지금 교육정책 관련해서도 전국을 돌면서 의견을 수렴하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386세대는 민주화를 이룩한 세대지만 민주주의 아래에서 큰 세대는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가령 숙의민주주의를 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긴 기간이 필요하거든요. 네덜란드에서는 ‘롱 텀 어프로치’라고 하는데 정책 하나를 짜기 위해서 10년 고민할 때도 있어요. 이번에 덴마크에서 학제개편을 하는데 정규 과목이 다 사라진대요. 이런 결정이 어떻게 가능하냐면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논의하고 숙의했기 때문이거든요. 근데 한국은 그런 걸 해본 적이 없는 거예요. 그냥 대통령이 뽑히면 대통령의 의지대로 갈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진짜 문제는 풀리지 않고 있죠. 근데 녹색당이 가진 숙의민주주의를 향한 열망, 시간이 오래 걸려도 시민들과 함께 토론해야 한다는 감각이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리: 저는 이게 시스템으로 해결이 잘 안 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윗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도 많이 갈리거든요.

신지예: 그래서 저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확립이 안 됐다고 봐요. 한국은 의회민주주의고 정당이 움직이는 민주주의인데 그러면 대통령이 누구냐 혹은 지금 정치인의 수장이 누구냐가 중요한 게 아니어야죠. 정당들이 열려 있어서 그 정당을 지지하는 당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정책으로 논의할 수 있어야 해요. 독일 같은 경우는 의회민주주의가 잘 되어 있어서 각 정당끼리 연립정부를 수립하잖아요. 그걸 위해 정당들이 정책을 갖고 모일 거 아니에요? 그걸 토론하고 토의하는데 굉장히 많은 시간을 쏟고 그 협약서를 이만큼을 작성해요. 우리는 이런 시스템이 없어요. 시민의 열망은 열망대로 있고 그걸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죠. 그냥 시민들이 있고 대통령이 있는 거예요. 근데 시민들의 의견을 대통령이 받아서 할 수 있는가?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정당과 정책을 수립하는 단위들이 있어야죠.지난해 가을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결정은 시민참여단에 의한 숙의민주주의 방식으로 이뤄졌다. 시민들의 정치적 의지를 반영하는 제도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역으로 대통령의 정치적 약속을 뒤집고 숙의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방기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 출처: 한겨레


한국엔 최소한 8개의 정당이 필요하다

리: 근데 그래서 지방자치제가 있는 거고 국회의원들이 있죠. 실제로 경험을 해보면 저는 생각보다 잘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사람들도 민의를 받지 않으며 자기 자리를 유지할 수 없어요.

신지예: 저는 한국이 지금 굉장히 심각하게 정체한 상황이라 생각해요. 한국의 가장 중요한 의제들은 대부분 10년이 넘었고 어떤 건 50년이 된 의제들도 있어요. 예컨대 차별금지법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 국회에서 논의조차 안 되고 있죠. 그리고 삼성 반올림 문제도 그렇고 주거문제도 그래요. 지금 전세계약을 2년마다 갱신하는데 1년에서 2년으로 변경된 게 1989년도에요.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이런 것들이 답이 없는 문제가 아닌데 정치권에서 정치가 작동을 안 하다 보니까 실행이 안 되는 거예요. 학제 개편도 똑같아요. 우리나라에서 대학 주도의 입시 없애야 된단 얘기 나오는데 이걸 누가 변경할 수 있나요? 대통령이 아무리 바뀌어도 그냥 껍데기만 바뀔 뿐이에요. 이 내부 정신은 바뀌질 않아요. 가령 덴마크처럼 그런 급진적인 정책을 누가 짤 수 있을까요? 대통령? 못 짜요. 임기가 5년밖에 안 되는데. 그럼 그걸 해야 하는 정치 단위는 정당이에요. 근데 한국은 정당정치도 제대로 안 될뿐더러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에 바뀌지 않는 거죠. 근데 이건 대통령 탓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스템 탓이죠.

리: 그럼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신지예: 저는 국회에 적어도 여덟 개의 정당은 들어와야 하고 과반수를 차지하는 정당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지금은 선거법이, 그리고 거대 정당들이 양당체제를 공고히 만들고 있어요. 그것 이전에 시민들은 너무 오랫동안 양당 체제로 살았기 때문에 너무 쉽게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어요. 최악이 있으니까 차악을 선택하자. 문재인 대통령에게 힘을 주기 위해 더불어 민주당에게 투표한다. 이런 인식이 한국의 다당제를 불가능하게 만든 주범이거든요. 저는 목표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정당이 여덟 개여야 된다. 시민들에게는 지팡이가 많아야 되니까. 지팡이 하나 갖고 시민들이 먼 길을 걸을 수 있겠냐고 묻고 싶고 다양한 계층들을 대변하는 다양한 정당들이 들어와야 된다고 생각해요. 녹색당은 지금 여성과 소수자를 대변하고 있지만 노동은 노동당 혹은 정의당이 해야 된다는 거예요. 보수정당인 민주당은 보수 쪽을 잘 잡아야죠. 근데 이걸 한 정당이 다 잡아야 일이 잘된다? 저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해요.

리: 선거법 때문에 군소정당이 위축되는 것도 있는데 역으로 제3당이 꽤 컸던 시절도 있거든요.

신지예: 근데 한국 사회에 3당이 자리한 건 진짜 짧아요. 몇 년 되지 않죠. 지금 바른미래당 지지율이 형편없이 떨어졌는데 이건 미리 예견되었던 바라고 하더라고요. 몇 가지 선거법 때문에 그런데 지금은 승자가 독식하는 제도잖아요. 결선투표제도 없고 소선거구제고. 이게 자연스럽게 두 개의 정당 외에는 살아남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거죠.

리: 녹색당이 잘 되려면 그럼 몇 개의 정당이 망해야 하나요.

신지예: 저는 녹색당만이 집권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녹색당이 어떤 정치 시스템을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녹색당이 계속해서 선거제도 개혁에 앞장서 왔거든요. 기탁금을 낮추거나 선거법 독소조항에 대한 위헌청구 소송을 낸다거나 그런 걸 해왔고요. 거듭 강조하는 데 한국엔 여덟 개의 정당은 있어야 해요.다당제 vs. 양당제는 영원한 떡밥이지만, 적어도 다당제를 제대로 구현하도록 선거와 정당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은 민주화 이래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리: 운동의 차원을 넘어서 정치로 가려면 결국 중앙으로 진입하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 그런 걸 위해 당에선 어떤 노력을 하나요?

신지예: 중앙으로 진입한다는 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녹색당이 가진 신념 아래선 더더욱 쉽지 않아요. 제일 쉬운 방법은 아마 유명한 사람 데려와서 그 사람에게 정당의 전권을 주는 거겠죠.

리: 그런데 그럴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전혀 쉬운 방법이 아닌 것 같은데.

신지예: 사람이야 많죠. 물론 그 사람들이 받을지는 미지수지만. 그런 선택이 쉬워 보일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옳은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녹색당이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길이 맞는 길이고 결국 더 빠른 길이라고 생각해요.


‘로또’ 맞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녹색당 활동

리: 녹색당에 2012년에 가입했죠?

신지예: 네, 창당도 2012년에 했어요.

리: 초기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신지예: 저는 그냥 후원당원이었어요. 당비만 내는.

리: 한 달에 얼마 냈어요?

신지예: 3,000원이요.

리: 본격적으로 당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신지예: 2015년에 녹색당 서울시당 대의원으로 추첨이 됐어요.

리: 사람이 별로 없나 봐요. 로또 돌리니까 슝 나오는.

신지예: 그… 그게 진짜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랬나…?당원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녹색당은 정당의 운영 원리로 추첨제를 도입하고 있다. 2015년 경북 녹색당의 대의원 추첨 현장. / 출처: 뉴스풀

리: 당원은 몇 명 정도?

신지예: 1만 100명이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제가 됐는지도 모르겠는데 여태까지 한번도 못 하신 분들도 계세요. 아무튼 그때 추첨해서 갔더니 좋은 거예요. 내가 당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당비 내는 것 말고도 많구나, 내가 활동을 해보면 재밌겠다 싶었죠. 그때 제가 부흥주택 프로젝트를 할 때였는데 그게 1970년대 지어진 주택이라고 했잖아요. 거기가 1990년대부터 계속 재개발 얘기가 나왔어요. 그것 때문에 저희가 걱정했었는데 어르신들이 거기 절대 재개발 안 되니까 걱정 말라고 그랬거든요. 근데 재개발이 진행됐어요. 그런 걸 보면서 결국 내가 행복한 삶을 사는 게 50만 원 비즈니스를 하거나 삶의 태도를 바꾸거나 하는 게 아니라 법 문제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정치에 나서게 됐죠.

리: 생각한 걸 실행하는 과정들이 있었을 텐데요.

신지예: 대의원 되기 전인 2014년도에 녹색당 서대문구 선거운동을 했고 2016년 때 총선 비례대표로 나가게 됐죠.

리: 그땐 어떻게 비례대표 후보가 된 거예요?

신지예: 제가 선거운동 도우면서 저를 기억했던 분이 계신 거예요. 그분이 한번 해보시면 어떻겠냐 권유해서요.

리: 그분은 어떤 분이에요?

신지예: 제가 그때 선거 운동했던 후보님이요.

리: 그분은 그럼 지금 뭐 해요?

신지예: 여기서 제 선거 돕고 계세요.

리: 품앗이구나!

신지예: 원래 선거는 품앗이죠. 그때 녹색당 정책대변인을 하고 후보로 나오고 2016년 선거 끝나고 10월에 서울시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게 되었죠.

리: 2016년엔 당선은 생각도 못 할 상황인데 그래도 선거 기간에 뭐라도 좀 했겠죠?

신지예: 저는 녹색당 될 줄 알았어요. 비례 1번이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리: 주변에 친구가 별로 없어요? 왜 그런 생각을…

신지예: 당시 트위터에 저희 녹색당 판이었어요. 그게 저의 착각이었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죠.

리: 진보신당이 제1당이고 사회당이 제2당이라는 트위터…

신지예: 그때 기자들 사이에 어떤 소문이 돌았냐면 이번에 원외 정당이 원내에 진입한다는 말이 있었어요. 누군가 그렇게 말해서 저희는 그게 녹색당이라고 생각해서 선거 마지막 날까지 혼신을 다해서 열심히 했어요. 저희 비례 1, 2번이 황윤 감독님이랑 이계삼 활동가님이셨는데 이런 분들 국회의원 만들어야죠.

리: 근데 결국 안 됐잖아요. 그때 어땠어요?

신지예: 문턱이 굉장히 높구나, 이걸 어떻게 부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죠.

리: 그럼 2016년 선거를 계기로 당 활동을 열심히 한 거예요?

신지예: 저는 녹색당에 희망이 있어요. 녹색당 자체의 문화와 신념과 가치에 희망이 있어요. 제가 얘기했던 정책들이 실현될 거라고 꿈꿨던 순간들이 있거든요. 그게 마치 눈앞에서 이루어질 것처럼 보이는. 그러면 너무 좋겠다 싶은 생각이 아직까지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성 후보 비율 70% 이상, 광역단체장 후보 모두 여성. 이 풍경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녹색당의 당내민주주의 시스템과 성 평등 교육, 조직 문화 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풍경이 녹색당을 넘어 서울, 한국에서도 보이면 좋겠습니다.자칫했으면 원외 정당의 원내 진입을 기독자유당이 이룰 뻔했다(…)


고령화한 국회, 표류하는 차별금지법

리: 그게 어떤 것들이었어요?

신지예: 차별금지법. 성 소수자 의제들. 여성 정책들. 탈핵. 기본소득. 이런 것들이 국회에서 다뤄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리: 근데 말씀하신 것 중에 뭐가 제일 먼저 될 것 같아요?

신지예: 차별금지법. 이건 반드시 하겠습니다. 지방선거 끝나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합니다.

리: 근데 그건 왜 안 되는 거 같아요?

신지예: 정치인들이 너무 나이가 많은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평균연령이 55.5세로 최고령이거든요. 근데 이분들이 살아오면서 성 소수자 이슈를 접해본 적이 거의 없는 거예요. 지금 국회 안에 30대가 한 명 있고 20대는 한 명도 없어요. 국회의원의 연령이 낮아지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해요.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늙은 국회’의 문제가 심각하다. / 출처: SBS

리: 기독교 눈치 보느라 그렇다곤 생각 안 하세요?

신지예: 기독교 중에서도 혐오 세력에게 굴복하는 거죠. 표를 잃기 무서워한다는 것도 있지만 본인들한테 이게 별로 중요하게 안 와닿는 게 큰 것 같아요.

리: 중앙정치인들은 그런 눈치를 보면서도 천천히 한발씩 나아가려는 게 있잖아요. 예를 들면 동반자 정책이라든지 이런 걸로 먼저 시작하자는 의원들도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신지예: 그런 의원 없어요. 동반자 등록제는 정의당에서 하고 있는데 저희와 같이 이번에 정론관에서 같이 했는데 정의당 말고는 중앙 국회의원들이 없어요.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논의가 안 되고 있죠.

리: 한발 한발 나아가는 것보다 차별금지법이 바로 딱 나오는 게 맞다고 보시는 거예요?

신지예: 저는 변화는 한 번에 온다고 생각해요. 마치 박근혜가 탄핵됐던 것처럼. 프랑스 혁명처럼. 미국에서 노예제가 없어졌던 것처럼.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죠.

리: 차별금지법에서 성 소수자 문제 외에 또 주의를 기울이는 소수자는 어떤 게 있나요?

신지예: 장애인 문제가 있어요. 지금 장애인들이 끔찍한 대우를 받으며 사세요. 어떤 장애인 시설에선 남녀를 분리해놔요. 그럼 그분들은 장애인이란 이유로 평생 사랑이 금지된 거예요. 밖에 나갈 수도 없고 거기 갇혀서 평생 사는 거예요. 수용소처럼. 한국 사회에서는 수용 시설을 설치해놓고 장애인이 눈에 안 보이니까 대처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도록 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거의 없거든요.그동안 한국 사회의 장애인 정책은 주로 특수 시설에 장애인들을 보내거나, 가족의 부양에 모든 걸 맡기는 것이었다. 이는 오히려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자립해서 살아갈 수 없도록 비가시화해왔다는 지적을 받는다. 출처: 여성경제신문

리: 혹시 본인은 어떤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계신가요?

신지예: 솔직히 얘기하면 이 시대 모든 분이 소수자라고 생각해요. 근데 일단 저는 돈이 없고…

리: 방금 되게 진정성 넘쳤어요…

신지예: 대학을 못 나와서 취업도 못 하고… 저는 제 이후 세대는 거의 답이 없다고 생각해요. 완전고용이 불가능한 시대이기 때문에 모두가 고용 불안정 속에서 살 텐데 거기서 파생되는 불안을 가진 사람은 모두 소수자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비혼주의자거든요. 결혼 제도 자체가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이제 수명이 늘어났는데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는 건 전 불가능할 것 같아요.

리: 이혼하면 되잖아요.

신지예: 복잡한 제도적 합의가 필요하잖아요. 이혼 서류도 써야 하고. 그래서 저는 동거가 제일 좋다고 생각해요.

리: 동거해봤어요?

신지예: 아니 해보진 않았지만. 아직 제 남동생이 고등학생이라 동생들이랑 같이 살아요. 아무튼 저는 비혼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리: 근데 결혼하면 이혼할 수 있다는 좋은 점이 있어요.

신지예: …


웰컴 투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리: 이번 선거에는 여성 문제에 몰빵하는 건가요?

신지예: 네.

리: 당에서는 어떻게 그런 방향을 잡게 됐어요?

신지예: 그 방향성은 제가 정한 거예요.

리: 아니 무슨 1인 독재 체제예요?

신지예: 후보자 의견이 선거 때는 중요하니까. 물론 없는 의제에서 고를 순 없겠죠. 녹색당은 공동의 헌장을 국제적으로 지니고 있는데 페미니즘도 그중 하나에요. 한국 사회에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있다는 걸 저희 엄마를 통해 봤고 저도 갖고 있고 제 동생들도 겪을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이 문제를 전면에 내걸게 되었어요. 물론 여성에 몰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 정책 안에는 소수자와 관련된 이야기나 장애인 정책, 기본소득 정책, 환경 정책 등도 다 담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리: 올라오면서 보니까 ‘웰컴 투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이런 게 붙어 있던데.

신지예: 저는 페미니즘 안에 다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은 단지 여성의 인권을 신장하자는 게 아니라 차별 자체를 철폐하자는 이념이고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는 여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소수자들이 다 있어요.

리: 총선에 나와서 해야 할 얘기를 서울 시장 선거에 나와서 한다는 생각도 드는데.

신지예: 저는 그게 너무 답답해요. 총선에 나온다면 더 근본적인 얘길 할 수 있을 텐데. 예컨대 차별금지법 지지. 낙태죄 폐지. 총선이면 이거 다 하겠다, 할 수 있을 텐데. 그래서 지금 정책팀에선 어떻게든 지자체 단체장이 할 수 있는 걸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리: 시에서 낙태죄 폐지 같은 걸 할 수는 없겠지만.

신지예: 저희 정책 중에 젠더건강센터라는 게 있는데 서울시에 25개 보건소가 있고 4개의 시립병원이 있거든요. 근데 거기 이용률이 0.7% 정도로 굉장히 낮아요. 여기다가 젠더건강센터를 설치하자는 정책을 갖고 있어요. 거기선 단지 진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전 생애적 재생산권을 보장해줄 의료지원, 성교육을 하겠다는 거죠. WHO가 미프진이라는 피임유도제를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어요. 이 미프진을 젠더건강센터에 구비할 것이라는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보통 한국에선 인공임신중절 하려면 수술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한국에 있는 수술은 소파술이라고 여성의 몸에 아주 해로운 수술이거든요. 그러나 핀란드 등에서는 미프진으로 약물적 낙태를 하는 비율이 84%까지 차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 또한 여성의 몸에 호르몬적 영향을 주기 때문에 30년 동안 어떻게 건강하게 피임할 수 있을지 공공 의료시스템에서 교육하고 콘돔 사용률을 높여나가야겠죠.낙태죄 폐지와 미프진 합법화 국민청원에 23만 여명이 동참할 정도로 낙태와 피임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리: 선거운동은 주로 어딜 방문해요?

신지예: 시민단체를 많이 방문해요. 여성단체, 청년단체, 노동단체 방문해서 정책 조언도 얻고 의견도 듣고 해요.

리: 반응은 좋은가요?

신지예: 좋죠. 지지 많이 해주고. 우리가 다 한 줌이라는 게 문제지(웃음).

리: 어차피 이번 선거에 당선될 생각은 안 할 거 아니에요?

신지예: 저의 이번 선거의 과업은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녹색당의 정책을 전면에 드러내는 거죠. 사실 녹색당이 정책을 내면 다른 정당에서 그걸 받아요. 기본소득이나 여성정책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죠.

리: 근데 그건 녹색당이 안 내놔도 어차피 나오는 거 아닐까요?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기 때문에.

신지예: 시대의 흐름을 만드는 사람이 있으니까 흐름이 생기는 거 아닐까요? 녹색당은 계속해서 그 역할을 해왔으니까요. 녹색당의 가치를 잘 드러내고 녹색당 비례득표율을 올리는 것. 이것이 제 과업이라고 생각해요.

리: 몇 프로나 나올까요?

신지예: 희망 사항은 5%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한 석이 생겨요. 시의원 한 석이. 근데 쉽지 않죠.

리: 녹색당은 지표에 안 보이더라고요. 정당 지지율 하면.

신지예: 맞아요. 이게 여론조사의 문제점이에요. 방송사들이 원외 정당은 쳐 주질 않습니다.선거방송토론위원회는 평균 지지율이 5% 이상이거나 의원 5인 이상 원내 정당에서 추천한 후보자만 TV 토론회에 참가하도록 한다. 선거토론회 배제에 반발해 1인시위에 나선 제주 녹색당 고은영 후보. / 출처: 제민일보

리: 근데 머리는 일부러 녹색당에 맞춰서 한 거예요?

신지예: 네. 이끼 같죠? (웃음)

리: 나름 괜찮아요.

신지예: 미용실 갔다가 갑자기 염색해버려야겠다고 생각해서 저지른 거라, 하고 좀 후회했는데. 감사합니다.

리: 녹색당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신지예: 정당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큰 방법은 선거죠. 예를 들어 아이슬란드엔 대선 때 여성 후보가 있었는데 그 후보의 지지율이 1%였어요. 그런데 그 후보가 TV토론에 나가서 지지율을 27%까지 끌어 올렸거든요. 선거는 이렇게 정치인과 정책을 알리는 중요한 수단인데 그게 이뤄지기 위해선 방송사와 선관위가 도와야 하는 거죠. 유권자에게 온전한 알 권리를 보장해줘야 되는데 지금 한국은 여론조사에서도 빼고 TV토론도 초대 안 하죠. 지금 불공정한 TV 토론 참여 조항과 기탁금에 대해 위헌 소송을 건 상태예요. 저희는 어쨌든 장기적으로는 우리가 정치적으로 어떤 액션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번에 선택한 방법은 언론사에 힘들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제까지는 계속 보도자료 쓰고 취재 요청문 쓰고 메일 돌리고 전화 돌리고 했는데도 안 와요. 그래서 우리가 직접 우리 콘텐츠를 만들기로 했어요. 없는 자원이지만 최대한 그렇게 해보자고 하고 있어요.


직업정치인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리: 앞으로 직업 정치인으로 나갈 생각은 있어요?

신지예: 직업정치인이라는 게 뭘까요?

리: 모든 선거에 나가고, 이럴 시간에 밖에 나가 사람들 만나고.

신지예: 전 잘 모르겠어요. 직업 정치인이라는 게 생기지 않는 정치를 만들고 싶단 생각이 있어요. 누구나 정치인이 될 수 있고 국회의원이라는 게 특별한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근데 제가 선거를 몇 번 나가보니까 정치를 20년 하잖아요. 그럼 저도 아마 그렇게 될 거예요. 그 꼰대들처럼. 지금 시스템에선 개인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그 시스템이 바뀌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젊은 사람이 정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교사인 국회의원, 대학생인 국회의원이 있어야죠. 그 계층을 대변할 수 있는.

리: 그걸 떠나서 구의원이나 시의원 하려는 사람들도 어마어마한 희생이 있거든요.

신지예: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어요. 지역의 시의원, 구의원들이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구청장에 줄을 서서 나오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식으로 지역 정치 카르텔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국회의원이 구의원 집어넣고 구청장 집어넣고. 구청장이랑 구의원은 그 지역 국회의원 따르고. 그런 카르텔 안에서 시민들을 위한 정치가 이뤄질 수 있을까요? 잘못된 것을 바꿀 용기가 생길까요? 그들의 판을 지키는 데 노력하겠죠.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리: 녹색당에서는 지역을 위해 어떤 활동을 하고 계세요?

신지예: 풀뿌리 지역 활동 같은 걸 많이 하죠. 은평에선 지역도서관 사업, 용산 미군기지 때문에 있었던 토양, 지하수에 대한 오염 문제 제기 활동 같은 것들이죠.

리: 이번에 나와 하는 활동들은 재밌어요?

신지예: 재미있고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좋아요.

리: 어떤 걸 배웠어요?

신지예: 아까 제가 장애인에 대한 얘길 했잖아요. 저는 그걸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 그렇게까지 끔찍한 줄은 몰랐어요. 장애인 단체와의 현장 연대를 통해 현 상황의 문제성을 알게 되고 느끼게 되죠. 정치인이 모든 해법을 가질 수 없어요. 오히려 시민단체, 현장의 영역을 잘 듣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화시키고 학계의 좋은 이론을 현실 정치에서 실현하면 된다고 생각을 해요.

리: 이번에 내놓은 정책들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원내 정당이나 다른 지자체들과 함께 뭘 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나요?

신지예: 아마 지금 있는 정당들은 녹색당이 내놓는 정책들을 못 받을 거예요. 다만 지방선거 끝나고 차별금지법 관련해서는 전면적으로 힘을 모아 싸우는 게 필요하겠단 생각은 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녹색당의 정책을 그 사람들을 찾아가 내미는 게 아니라 압박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참, 이번 홍대 불법 촬영 관련해서도 경찰청장이랑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많거든요. 불법 촬영에 대한 수사가 왜 이렇게 지지부진하냐면, 그게 내부 인센티브 문제와 연관이 돼 있어요. 지금 불법 촬영을 수사하면 경찰이 받는 점수가 교통 단속이랑 똑같아요. 당연히 교통 단속하는 게 더 쉽죠. 불법 촬영 경우엔 해외와 공조해야 하고 가해자를 찾기도 어려운데. 제도상 점수가 똑같으면 거기 가서 일하는 경찰들은 의지를 잃는 거죠. 그래서 제도적인 구조 개편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시스템을 바꿀 수 있도록 액션을 취하는 게 녹색당 같은 원외 정당이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이걸 잘해서 원내로 들어가면 이제 입법 활동에 신경을 써야겠죠.

리: 지금은 운동과 정치의 차이가 별로 없는 거잖아요. 이걸 바꿀 수 있는 계기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신지예: 그게 선거죠. 녹색당은 최선을 다할 테지만 변화를 만들어내는 건 유권자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이번 선거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녹색당이 2020년 총선에 원내로 진출할 수 있을 건지, 한국 정치가 앞으로 어떻게 될 건지를 판가름하는 선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제까지 저는 이런 선거를 못 봤어요. 박원순 후보님의 압도적 당선이 너무 확실하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시민들이 정책을 보고 자신의 비전과 소신에 맞게 투표할 수 있는 선거라고 생각해요.

리: 지금 20대로 알고 있는데 나중에 40대가 됐을 때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어요?

신지예: 그런 생각을 많이 안 해봐서. 그냥 잘 벌어먹고 남한테 폐 끼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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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9 hrs ·



녹색의 이름으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를 외치다: 서울시장 후보 신지예 인터뷰

http://ppss.kr/archives/166177

읽고 나니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졌다. 나는 신지예 후보나 녹색당에 대해 아는 바가 적다, 아니 없다. 이 인터뷰 하나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기에 상당히 조심스럽고 의문점이 많이 드는데.. 특히나 이 인터뷰에 나온 신지예 후보의 대의제에 대한 입장에 의문이 많이 든다. 선거에 나온 후보에게 당에게 물어야 할 것을 묻는 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니라 생각하지만 워낙에 정보가 적다보니 정말 많은 의문이 생긴다. 간단하게 다루자면..

1. 추첨제 문제를 다루며 이전에 길게 글을 쓴 적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대의제 의회 자체는 국왕 중심의 행정부를 견제하면서 나타난 시스템이다. 다시 말해 대의제는 관료제를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프랑스 내전>이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18일>에서 이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봉건제에 대항’해 나타난 낮은 단계의 중앙집권 체제라 비판했던 것이다. 유럽에서는 토지귀족이었던 유럽의 봉건영주들이 자신의 특권을 행정부에 점차 양도하는 대신 국왕과 행정부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으며 대의제가 발전해왔다면, 반면에 토지귀족이라는 범주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동아시아에서는 대의제가 나타날 수가 없었고 나타날 필요 또한 없었다. 이 부분은 일본 또한 마찬가지이다. 일본의 사무라이도 토지귀족적 성격을 거의 갖고 있지 못했다. 역사적 기반이 존재하지 않는 동아시아의 상황에서 서구식 근대화를 추진하며 대의제라는 시스템만 받아들였기에 대의제가 정착되기 쉽지가 않다. 특히나 종교나 계급이라는 확고한 갈등요소를 중심으로 발전해온 유럽의 정당정치와 다르게 동아시아는 사회의 갈등요소가 종교나 계급을 중심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조금 과장하자면 무엇을 대표할 것인지, 의회가 어떤 주제를 놓고 정부를 견제하면서 공공성을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한 논의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사회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경우 그 갈등은 지역을 통해 표출되었다고 생각한다. 현대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은 박정희가 유신을 행한 이후부터 행정부의 우위가 꾸준히 관철되어 왔다. 노무현만 해도 그의 대통령으로서의 장점은 뛰어난 행정가라는 점에서 나타나지, 정당정치와 관련되어서 나타나지 않는다. 이 점은 문재인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는 점이고, 그래서 사실 일전에 여러 번이나 문재인도 국가주의자라기보다는 국가를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사람이라 지적했던 것이다.

이렇듯 대의제가 그 기반을 갖추지 못한 사회에서는 행정부를 누가 통제할 것인가를 놓고 사회적 갈등이 전개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각 나라마다 다르지만 한국의 경우 정치적 갈등이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크게 보아서 이런 구도 자체는 현재에도 그리 많이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 이후 경상도에서도 민주당이 득세할 것으로 예상되며 지역감정이 사라졌다고 보는 입장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치세력마다 특정지역에 기반해 있던 상황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민주당을 예로 들자면 전라도에 당의 기반을 둔 채로 대통령이나 주요 정치인으로 경상도 출신을 내세우는 방식은 90년대 이후 친노세력의 성장과 함께 형성되어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즉 특정지역에 기반을 가진 채로 다른 지역 출신을 주요 정치인으로 내세워 세를 확장하는 기제가 주요하게 작동해왔다고 생각한다. 한국 보수세력의 정치적 실패에는 이 기제에 대항할 수 있는 원리를 내세우지 못했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보수세력은 지역성이라는 갈등요소를 국가주의로 대체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고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좌파정당들이 이념에 따라 내세운 계급, 여성, 성소수자 등의 갈등기제는 통용되기 어렵다. 적어도 주요한 갈등 요소로 자리하기는 어렵다. 노동계급이 계급으로서 정치에 나타난 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논쟁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이며, 여성이 변혁의 주체로 나타난 건 여성주의 담론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정리하자면 역사적으로 행정부 우위와 대의제의 무(無)기반이라는 구도 속에서 지역을 갈등의 소재로 삼아 정치가 전개되어 온 한국사의 맥락 속에서 신지예 후보가 지적한 대의제의 위기(위기라는 말이 적절한가? 태초부터 대의제의 기반이 없던 사회인데?)와 그에 대한 그녀의 진단과 대안은 옳은 것일까? 우선적으로 지적하고 싶은 점은 1) 추첨제 혹은 녹색당이 내세우는 제도들이 관료제를 제어하고 견제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2) 신지예 후보가 제시하고 있는 ‘페미니즘’이라는 주제가 ‘대표’될 수 있는 것인가? 이다.

2. 1)에 대해서는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진보적인 이들은 너무나도 쉽게 변화와 혁명을 입에 담는데 이념을 선전하고 인민들을 조직해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굉장히 강한 연속성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한두 번 선전해서 성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당연하게도 이런 강한 연속성은 연속성 있는 조직을 전제로 했을 때 비로소 달성될 수 있다. 막스 베버가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지적했듯이 이런 연속성 있는 조직은 경제적인 삶으로부터 유리되어 보다 여유있는 이들이 하거나 아니면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이들이 운영한다. 후자가 관료제로 이어지거나 그들을 이끄는 경우가 근대사회에서는 일반적이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점은 이 관료제 자체가 이미 근대국가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인민으로부터의 ‘분리’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근대 자체가 내재하고 있는 정치와 경제의 분리에서 파생된 것이다. 혁명의 비극은 이 분리지점에서 나타난다. 근대국가가 인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고 통렬하게 비판하는 바로 그 정치집단이 근대국가와 마찬가지로 인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할 가능성을 항상 품고 있다는 이 모순. 인민이 혁명을 지지하지 않을 때, 혁명집단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엥겔스가 어디선가 통렬하게 지적했듯이 이런 혁명가집단은 대중과 유리되어 있기에 지지를 잃는 순간 독재를 하거나 몰락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분리 문제를 추첨제는 해결할 수 있을까? 해결한다고 보기 어렵다. 추첨제는 단지 이 분리를 유지하는 방식을 투표에서 제비뽑기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대의제에 그다지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것은 이 문제를 정당정치로 해소하기가 쉽지 않다는 인식과 함께 되려 대의제는 끝없는 수다로 인해 공적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분리를 전제로 했을 때, 추첨제가 근대국가의 관료제를 통제할 수 있을까? 통제한다면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도 상당히 의문이 가거니와 당내의 관료제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까지 들어가면 상당히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3. 2)의 문제에서는 위에서도 다소 과장되게 표현하기는 했으나 여성주의는 하나의 이념형에 지나지 않는다. 북유럽 사회에서도 페미니즘 정당이 나타나지 않는데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으로 정치적 갈등을 조직하겠다? 게다가 신지예 후보는 일선의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하고 의견을 수렴하면서 갈등을 조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표현처럼 “한 줌”도 안되는 시민단체들을 만나고 다니는건데, 그걸로 어떻게 한국 사회의 갈등을 조직할 수 있을까? 작금의 여성주의 운동 못지 않은, 되려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며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고 하는 마르크스주의 진영도 민중당 등에서 볼 수 있듯이 확장력을 얻어내지 못했다. 계급 문제는 한국 사회의 갈등을 조직하는 데 실패했으며 변혁주체로서의 노동계급은 사실상 마르크스주의자들간의 논쟁이나 문헌 속에서만 존재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소득을 중시했지 혁명은 다른 차원의 얘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여기에 실망한 일부 좌파들은 극우로 전향하기도 했으며 하지 않는 이들 중에도 몇몇은 지금도 노동계급에 대한 저주로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고 있다. 여성주의라 해서 이러한 운명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근대 대의제 정치에서 ‘여성’이라는 집단 그 자체가 과연 대표될 수 있는지에 대해 보다 깊이 연구해보아야 하는데 과문해서 그런지 그런 연구를 본 적이 없다.

수많은 진보 명망가들이 계급 등의 이념을 내세우며 표를 모으려 시도했지만 언제나 그런 시도는 진보적 이념의 확장력의 한계를 체감하는 것으로 끝났다. 이념의 확장력이란 생각 이상으로 형편없어서 아무리 대단한 이론이라 할지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는 없다. 이런 식으로 가면 정치집단에게 남는 건 인민을 탓하며 멸시하는 엘리트주의 외에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리버럴들의 정치적 한계란 그런 지점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지켜봐야겠지만 아마 신지예 후보가 받는 표의 비중은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을 내걸고 받아낼 수 있는 표의 한계, 즉 페미니즘이라는 이념의 한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 비중은 분명 생각 이상으로 적을 것이다(물론 생각 이상으로 높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때의 생각 이상이 내가 생각하는 유의미함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 생각한다). 왜 이런 무의미한 일에 5천만원이라는 거금을 쓰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지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5천만원을 갖고 차라리 지역에서 더 많은 조직화를 시도했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생긴다.

이처럼 신지예 후보가 내세운 주장과 주의는 한국의 정치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유의미한 대안이라 보기 어렵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대의제의 기반이 존재하지 않는 한국에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의제의 기반을 조금씩이나마 형성해가는 길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이런 역사적 조건들을 이용해 완전히 중앙정치로 들어갈 수 있는 거대담론을 내세우는 길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동시에 두 가지를 추진할 것인지 셋 중 하나를 택한다면, 어떤 식의 정치적 갈등을 축으로 삼을 것인지 등등에 대해 보다 깊이 고민하고 연구한 정치집단을 보고 싶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조직하고 싶다. 내가 정치에 출마할 일은 없겠지만 적어도 담론의 차원에서 항상 무언가 제기하고 정책화하고 이론화하고 싶다보니 진보 정치인들이 이런 식으로 나오고 소모되는 모습이 안타깝다. 좌익 정치집단과 정치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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