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07

알라딘: 번역은 반역인가 - 우리 번역 문화에 대한 체험적 보고서




알라딘: 번역은 반역인가 - 우리 번역 문화에 대한 체험적 보고서










번역은 반역인가 - 우리 번역 문화에 대한 체험적 보고서

박상익(저자) | 푸른역사 | 2006-02-10 | 초판출간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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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양장본 | 275쪽 | 152*223mm (A5신) | 385g | ISBN : 9788991510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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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 인문학 > 서지/출판 > 출판/편집



서양사 교수이자 인문학술 분야 번역가인 저자가 수 년 동안 번역 작업을 해오면서 몸소 체험한 한국 번역 문화의 현주소를 냉철하게 진단한 책. 저자는 일반적으로 번역의 불완전성, 불가능성을 의미하는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담론을 부정하고, 오히려 우리 문화의 질적.양적 확장을 꾀할 수 있는 번역 작업을 기피하고 대학원생들에게 떠넘기는 저질 교수의 행태야말로 반역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논문 쓰기만을 교수의 주요 업적으로 인정하는 대학 연구 풍토, 저자에 비해 번역가를 대우해주지 않는 출판 시장 구조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번역 문화의 부실을 가져왔다고 지적한다.

서유럽, 이슬람, 일본, 중국의 역사를 번역을 통해 재조명함으로써 번역의 중요성을 역설한 점은 색다른 시도라고 평가할 만하다. 저자에 따르면 그들이 선진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번역 작업을 주도했기 때문이라는 것. 반면 우리는 모국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한 채 최근에 와서야 번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여전히 번역 사업에 대한 국가적.사회적 지원은 미비하다고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번역가로서 현장에서 체험한 경험을 토대로 실제 번역 작업을 할 때 부닥치는 현실적 문제와 한계,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한 대안, 미래의 번역가들을 위한 실무적 조언 등을 모두 털어놓는다.





머리말

1장 번역의 역사

일본과 중국의 번역사
근대 일본의 번역
잃어버린 1백 년
중국의 불경 번역

중세 이슬람과 서유럽의 번역사
번역의 시대
'야만족' 서유럽인의 무슬림 격퇴
이슬람 문명의 황금시대
아랍인과 서유럽인은 닮은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

사전 이야기
옥스퍼드 영어사전
제임스 머리와 윌리엄 체스터 마이너
영어사전과 한국어사전
마른 행주 쥐어짜듯

2장 슬픈 모국어

모국어와 외국어
아무리 그래봐야 너는 조선인이다!
못 말리는 대한민국
그들만의 리그

대중의 반란
독자들의 함성
교수와 대학원생
야단맞는 대학 교수

지식인의 반역
심각한 중역重譯문제
정신의 불량식품
인문학의 위기?

3장 번역의 실제

번역자의 조건
다양한 참고 도서의 필요성
무식유죄無識有罪, 유식무죄有識無罪
모국어 구사 능력
글쓰기와 글읽기

오역 문제
오역을 지적당하는 괴로움
행복한 비판, 불행한 비판
스승을 따르자니 사랑이 울고, 사랑을 따르자니 스승이 울고

번역 환경
고달픈 번역 작업
번역가가 되고 싶은데
한심한 번역 환경
출판 기반의 붕괴
우리의 좌표

번역자와 편집자
행복한 만남, 불행한 만남
혼돈에 질서를 주는 편집자
출판사 사장 대학 총장론

4장 책의 세계

도서관 이야기
동네 유료도서관
한심한 공공도서관
공공도서관의 각설이타령
개인도서관의 필요성
위선도 그리워
과소비는 무죄?

우리의 미래
김용옥의 문제 제기
김교신과 박종홍
책의 힘
<아레오파기티카>
국민 모독
번역가를 꿈꾸는 젊은 인문학도들에게

부록 1: <번역 경시는 지식인의 반역>
부록 2: 독자들의 반응
참고 문헌
주석
찾아보기




저명 학자들의 조악한 번역서들에 대해 두 가지 경우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교수 본인이 불성실하게 번역한 경우인데, 명색이 교수라면서 일개 대학생에게 책잡힐 정도로 부실한 번역을 했다면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둘째로, 대학원생들에게 적당히 나눠 번역을 맡긴 다음 자기 이름으로 책을 낸 경우인데, 이것은 도덕 불감증 차원을 넘어 범죄 행위에 해당하는 일이다. 이태원이나 중국에서 조악한 상품에 그럴듯한 가짜 상표를 붙여 종종 말썽을 일으키곤 하는 '짝퉁' 외제 상품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 본문 89~90쪽에서

내가 <옥스포드 영어사전>을 이용하면서 크게 감명을 받은 것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방대한 어휘와 자세한 예문 때문이었다. 까다로운 고전 영어저작을 읽다보면 내가 갖고 있는 7,8종의 영한 및 영영사전을 다 뒤져도 끝끝내 나오지 않는 단어가 있다. 이럴 때 최종적으로 의지하게 되는 사전이 <옥스포드 영어사전>이다. (...) 이 사전이 나를 실망시킨 적은 거의 없다. 찾는 단어가 영락없이 나와있는 것이다.-61쪽
- 밤바람
... 역사의 문학성을 강조한 20세기 영국 역사가 트리벨리언의 말은 음미할 가치가 있다.
'읽기에 쉬운 것이 쓰기에는 어렵다. 설령 저자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처음부터 정확하게 알고 있다 해도, 쓰고 또 쓰고, 고치고 또 고치는 수고는 모든 훌륭한 저술가들이 당연히 치러야 하는 일이다. 투명한 문체는 언제나 고된 노력의 결과이며 문장과 문장, 단락과 단락 사이의 흐르는 듯한 연결은 항상 이마에 땀을 흘린 후에야 얻어지는 것이다.'-120쪽
- 밤바람



김이경 (『시의 문장들』의 저자)
: 안면홍조증에 대처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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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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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번역하는 인문학자. 1953년 청주에서 태어났다. 우석대학교에서 서양사를 강의하면서 인문사회과학대학 학장을 지냈다. 역사·문학·종교의 학제 연구에 관심을 갖고 저술 및 번역을 하고 있다.

번역을 통한 한글 콘텐츠 확충의 중요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몰이해가 21세기 한국의 앞날에 걸림돌이 되리라는 암울한 전망과 대안을 담은 저서 <번역은 반역인가>로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다. 17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혁명가인 존 밀턴의 탄생 400주년을 맞아 <밀턴 평전: 불굴의 이상주의자>를 썼고, 밀턴의 대표...




박상익의 한 마디
유럽과 미국의 대학에서 행해지고 있는 동양학 연구가 '번역'을 그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것과는 달리, 기이하게도(!) 우리 대학의 서양학 연구는 번역을 연구 업적으로 인정조차 하고 있지 않으며, 그 결과 주요 학술 고전에 대한 연구번역은 일부 학자들의 여가 선용 차원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는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한가한 탁상담론에 머물러 있을 여유가 없다. 오히려 '번역을 할 것인지 반역을 할 것인지' 두 갈래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번역을 처음 시작하고 싶은 분 l 2008-07-18

번역은 보기보다 만만치 않은 일이라고들 말합니다. 정신적으로도 긴장되는 작업일 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아주 고단한 일이라고 하지요. 철저한 자기관리는 기본이고, 꾸준한 실력 향상이 더해져야 훌륭한 번역가가 될 수 있습니다. 번역의 세계가 궁금한 분, 처음으로 번역을 시작하려고 하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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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대한 역사와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되었네요.
책 살때 출판사보다 번역자를 보게 되네요.
pada ㅣ 2014-12-13 l 공감(4) ㅣ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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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결코 반역이 아니다 haruka ㅣ 2017-06-07 ㅣ 공감(2) ㅣ 댓글 (0)


번역은 결코 반역이 아니다



내가 어릴 적 살았던 시골 마을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다. 아마도 옛날에는 마을의 식수를 책임지면서 물 길러온 아낙들의 작은 쉼터 역할을 했으리라. 당시 나는 뚜껑을 열고 우물을 자주 들여다보곤 했다. 컴컴한 우물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서서히 물빛이 보였다. 우물에 빠지지는 않을까 두렵기도 했지만, 어둠 속에 드러나는 그 물빛을 보고 싶은 마음에 나는 자주 우물을 찾았다.

번역 공부를 시작하면서 나는 우물을 들여다보며 느꼈던 감정을 다시금 맛보게 되었다. 난해한 외국어 문장과 마주했을 때 처음에는 깜깜한 우물 안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가도, 읽으면 읽을수록 우물 안 물빛처럼 서서히 그 의미가 드러나는 것이었다. 이처럼 외국어로 된 문장을 모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어두컴컴한 우물에서 서서히 물빛을 발견해나가는 과정과 닮아 있었다.

점점 번역이라는 우물에 깊이 빠져든 나는 번역가의 길을 가리라 결심했지만, 정작 번역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런 나에게 ≪번역은 반역인가≫라는 책은 우리 사회에서 번역이 왜 필요한지에 대하여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번역은 반역인가≫에서 말하는 ‘반역’이란 무엇을 뜻할까. 이 표현은 프랑스의 저널리스트였던 로베스 에스카르피의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에서 왔다. 한 언어로 쓴 글을 다른 언어로 완벽하게 재현해내기란 불가능하다는 뜻에서 ‘번역’을 ‘반역’으로 표현한 것이다. 프랑스의 대표적 계몽사상가 볼테르가 ‘번역으로 인해 작품의 흠이 늘어나고 아름다움은 훼손된다’라는 말까지 한 점을 보면 번역은 정말 불가능한 작업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정말 번역은 반역일까? 책의 저자는, 역사상 어느 문명이든 다른 문명과 처음 접촉할 때 가장 먼저 수행하는 작업이 번역이라고 하였다. 번역은 한국어 사용권에 존재하지 않는 텍스트를 존재하도록 하는 가치 있는 행위이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다. 번역이 왕성해야 우리말도 풍부해지고 우리말이 풍부해져야 세상의 지식이 우리의 지식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오히려 번역은 반역이 아니라 애국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저자는 일본이 메이지 유신 때 정부 내에 번역국을 설치하여 서양 서적을 조직적으로 번역해온 역사를 들며, 일본이 근대화를 이루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건이 바로 번역 활동이라고 했다. 그만큼 번역은 사회 발전을 위해 필수불가결하고, 나아가 그 작업을 수행하는 번역가야말로 꼭 필요한 사람이다.

이렇게 막중한 임무를 띤 번역가이지만 그들이 처한 번역 환경은 결코 녹록지 않다. 번역에 쏟는 막대한 시간과 노력에 비해 그 보상은 미미하고, 디지털 문화의 확산으로 출판 시장은 계속 침체 상태이며, 우리 사회는 번역의 필요성마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대학에서는 교수라는 신분과 명성에 의지하여 조교나 학생들에게 대신 번역을 시키는 교수들이 많다고 한다. 작가이자 번역가인 안정효는 ≪번역의 테크닉≫이라는 책에서 이들을 ‘매춘교수’라 부르며, 우리 번역 문학의 위상을 실추하는 장본인들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처럼 ≪번역은 반역인가≫는 번역의 역사를 시작으로, 번역의 필요성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가 처한 번역의 상황과 비전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는 책이다.

저자는 사회가 발전하는 데 번역의 역할이 무척 중요한 만큼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언젠가 번역이 합당하게 대우받을 날이 온다고 말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번역은 반역인가≫를 읽고 나는 번역의 필요성을 새삼 실감하였다. 번역가란, 우물 안 물빛을 발견하는데 그치지 않고 지식에 목말라 하는 독자에게 ‘문화’라는 우물물을 길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 또한 깨달았다. 번역이 반역이 될지 아닐지는 결국 우리 번역가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도.



"번역은 반역인가" 밑줄긋기 마늘빵 ㅣ 2014-04-24 ㅣ 공감(2) ㅣ 댓글 (0)






볼테르는 “번역으로 인해 작품의 흠은 늘어나고 아름다움은 훼손된다”고 말한다. 해럴드 블룸 같은 이는 “모든 독서는 오독이고, 모든 번역은 오역이다”라고까지 말한다.
-7쪽



에드먼드 버크는 편견을 일컬어 ‘인류가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한 집단적 지혜’라고 평가하기도 했다.`-11쪽



번역이 전제되지 않는 지적 활동이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동양철학자 김용옥의 말처럼 제아무리 훌륭한 논문을 써도 그 논문에 관련된 고전이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으면 그 논문이 전개한 아이디어는 ‘우리 문화’의 일부로 편입될 수 없다. 제아무리 영어 도사들이 많이 출현해도 그들이 ‘우리말’로 그들의 학식을 표현할 수 없는 한 그들은 ‘우리 문화’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외래 문명의 새로운 개념들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우리 어휘와 개념, 더 나아가 우리 문화가 풍성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근대 일본의 번역 활동을 역사상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이라고 한 고종석의 평가는 다소 과장되어 보이기는 하나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것이다.-21쪽



서양 철학자 강영안은 “우리에게 철학은 무엇인가”에서 우리가 2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번역 작업을 통해 서양 문화를 수용하고자 애쓴 일본 지식인들에게 너무나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 철학은 일본을 통해 번역된 서양 철학 용어를 거의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현대 서양 철학이 한국에 수용된 시기가, 번역에 대한 고뇌와 시행착오가 일본인들을 통해 거의 끝난 뒤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쓰고 있는 학문 용어들을 마치 옛 조선총독부 건물 헐어내듯 일거에 철거한다면, 우리는 논문은커녕 의사소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새로운 낱말을 만들어내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할 것이다.
-23쪽



도교의 개념은 불교의 초월적 관념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했다. 예컨대 도가 철학의 중심 개념이며 예부터 중시되어온 용어인 ‘도’는 때로 가르침이란 뜻의 불교 용어인 ‘다르마’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다른 경우 ‘도’는 ‘교화’라는 의미의 ‘보디’ 또는 ‘요가’를 번역하는 데 이용되었다. 불멸의 인간을 가리키는 도교 용어인 ‘진인’은 ‘완전히 교화된 사람’이란 뜻의 불교 용어인 ‘아르하트’를 번역하는 데 사용되었다. ‘무위’는 불교의 궁극적 해탈인 ‘니르바나’를 번역하는 데 이용되었다.
-32쪽



불문학자 김화영의 표현대로, ‘참다운 번역은 원작은 가치에 대한 이해에서 생겨난 존경과 감동’을 전제로 한다. 그렇지 못한 번역은 지루하고 고통스럽고 의미 없는 노동일뿐이다. 자신이 각별히 관심을 갖는 분야나 전공하는 분야의 텍스트를 선정해 번역하는 것이 원칙이다.
-110쪽



역주는 번역자가 독자에게 베푸는 최소한의 성의요 배려라고 생각한다. 번역은 결국 ‘문화’를 번역하는 것이고, 번역자가 한 권의 책을 번역하다 보면 문화적 차이로 인해 원문의 의미가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 같은, 미심쩍은 부분에 부딪히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대목을 짚어서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동하지 않는 번역자? 나는 그런 번역자를 신뢰할 수 없다.
-122쪽



충실성에 중점을 둔 번역, 가독성에 비중을 둔 번역 등 다양한 개성과 특징을 지닌 번역서가 출판되어 독자들이 ‘골라 읽는 재미’를 만끽하는 상황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것이리라.
-143쪽



당시(18세기) 사회 지도층은 독서가 너무 지나치게 보편화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특히 하층계급의 독서량 증가로 가져올 위험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예컨대 자유주의의 비조로 알려진 존 로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다.
-157쪽



당연한 일이지만, 번역자와 편집자에게는 각기 고유 영역이 있다. 번역자에게는 일차적으로 ‘정확한’ 번역을 할 의무가 따른다. 19세기 영국 역사가 액튼 경이 말했듯이 ‘정확성은 미덕이 아니라 의무’이기 때문이다. 반면, 편집자에게는 넘겨진 번역 원고를 ‘다듬는’ 임무만을 맡겨야 한다. 정확성의 의무까지 편집자에게 전가한다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하고 뻔뻔스러운 일이다.
-160쪽



학문적 자부심에 충만한 학자들은 자신의 문장력에 대해서도 ‘환상’을 갖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글쓰기에 약점이 추호라도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자신의 문장에 대한 편집자의 지적을, 마치 자신의 논문이 비판을 당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여기고 정색을 하며 방어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161쪽



“진정 ‘이상적인’ 작가는 자기 작품의 홍보며 표지며 책 디자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때로는 일일이 자기가 확인했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항상 결과적으로는 출판사 측의 판단은 존중하고, 출판사 측이야말로 자기 못지않게 책을 많이 팔았으면 하는 쪽이란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인 것이다.”(랜덤하우스 설립자 베네트 서프)
-161-162쪽



“번역이 바라는 정도의 완성도를 갖추지 못한 채 편집자에게 넘어오는 경우, 편집자는 고심해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문제 있는 부분을 다시 번역하거나, 새로운 역자를 찾든지, 아니면 어느 정도 수위에서 교열 작업을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번역자와 편집자 사이에 마찰이 생기기 마련인데, 제대로 책을 내자는 뜻을 서로 잘 이해해 별다른 대립이나 갈등이 없이 작업이 이루어지면 다행이지만, 서로의 자존심 내지 자신의 의견에 대한 고집 때문에 불편한 관계에서 작업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책이 나오더라도 감정의 앙금이 꽤나 오랫동안 지속되며, 책의 완성도도 떨어진다.”(전응주, ‘역자에게 멱살 잡힌 사연’, 2004년 8월 26일 교수신문)
-163쪽



나는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으면서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직업이 둘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사서와 편집자이다. 그리고 이렇게 된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다고 본다. 우리나라가 아직 문화 후진국이기 때문이다. -167쪽



“출판인은 대학 총장에 못지않은 사명을 지닌 사람이다. 총장이 훌륭한 교수를 찾아서 학생을 가르치게 하는 것과 출판인이 좋은 저자를 찾아내어 많은 독자에게 감동을 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 다르겠는가?”(현암사 사장 조상원)-169쪽



“서적의 우량 여부 평가는 독자가 자기 호주머니에서 자기 돈을 꺼내어 그 책을 사는 데서 결정된다. 사는 사람의 필요에 의해서, 효용에 의해서 도서의 구매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일조각 사장 한만년)
-173쪽



김교신은 책을 남에게 빌려주는 법이 없었다. 서재란 마치 ‘군함’과도 같아서, 마치 해상에서 전투가 발발했을 때 대포가 필요할지, 소총이 필요할지 알 수 없듯이, 서재에서 글을 쓸 경우에는 언제 어떤 책이 필요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적 생활자에게 책은 양도할 수 없는 값진 무기이다.
-193쪽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혼동한다. 그러나 이 둘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전자는 귀중한 것이고 후자는 비천한 것이다. 나는 개인주의는 존중하지만 이기주의는 전적으로 배척한다. 개인주의는 개인을 존중한다. 자기를 존중함과 동시에 또한 남도 존중한다. ……개인주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서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우치무라)-208쪽



“‘관한 논문’을 쓰는 일은 그것에 대한 철저한 지식이 없더라도 가능하다. 해석이 안 되는 부분은 슬쩍 넘어갈 수도 있고, 또 책을 다 읽지 않더라도 동초서초하여 적당히 일관된 논리의 구색만 갖추면 훌륭한 논문이 될 수도 있다. 허나 번역의 경우는 전혀 이야기가 다르다. 그 작품의 문자 그대로 ‘완전한’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모르는 부분은 슬쩍 넘어갈 수도 없고 또 전체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부분의 철저한 해석조차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모든 인용출전에 대한 완전한 조사를 강요당한다. 그야말로 에누리 없이 그 번역자의 스칼라십이 완전히 노출된다.”(김용옥)-220쪽



저명 학자들의 조악한 번역서들에 대해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교수 본인이 불성실하게 번역한 경우인데, 명색 교수라면서 일개 대학생에게 책잡힐 정도로 부실한 번역을 했다면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둘째로, 대학원생들에게 적당히 나눠 번역을 맡긴 다음 자기 이름으로 책을 낸 경우인데, 이것은 도덕 불감증 차원을 넘어 범죄 행위에 해당하는 일이다. 조악한 상품에 그럴듯한 가짜 상표를 붙여 종종 말썽을 일으키는 이태원의 가짜 외제상품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주간동아’ 제279호(2011년 4월 12일))
-231쪽



저의 경우에는 함께 번역한 사람들이 전부 저보다 나이도 많고 학력도 높고, 개인적 관계로는 나의 스승이기도 하다보니 처음에는 남의 글에 손을 대기가 망설여지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일이 안 되니까 전체 논의 하에 수정을 적극적으로 할 것, 다른 사람의 수정에 대해 낫다면 전적으로 수용할 것, 개인적 감정을 갖지 말 것 등을 합의하게 되었습니다.(저자의 주간동아 글에 달린 댓글, ‘또 다른 번역의 문제점은’, ID: 번역의 실제)
-254쪽



“내가 보기에 바른 독서란 이인삼각 경기와 같다. 때문에 독자는 저자가 그 책을 쓰기 위해 펜을 내어 달렸던 그 열정의 속도와 같은 속도로 읽어 내려가야 한다. 어떤 저자도 아침에 5분, 저녁에 5분 하는 식으로 책을 쓰진 않았으므로 그런 식의 독서는 이인삼각 경기를 파탄 낸다. 똑같은 책을 자투리 독서로 한 달이 걸려 읽은 독자와 한달음에 해치운 독자는 엄밀히 말해 다른 책을 읽은 것이다. 폭풍처럼 읽어야 한다. ‘나는 그 책을 밤새워 읽었다’라든가, ‘나는 이 책을 들자마자 손에서 놓지 못했다’는 경험은 그래서 소중한 것이다.”(장정일, “장정일의 독서일기5”)-263쪽



김영민은 우리 학계에서 중요시되는 미덕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김밥 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틀에 꼭 끼어서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기, 재주 없이도 오래 버티기, 인용과 표절 능력, 명절치레나 관혼상제 챙기기’(“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263쪽



우리나라 번역의 현실 봄눈 ㅣ 2011-07-08 ㅣ 공감(3) ㅣ 댓글 (0)
처음부터 끝까지 책이 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우리나라 번역 산업은 아주 후지다. 번역을 통해서 학문을 더 넓혀야 할 대학 교수들은 대학원생들에게 번역을 떠넘겼다. 시간과 정성을 드려 번역했을지라도 도서관조차 책을 사지 않기 때문에 번역가는 힘들다. 사실 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다. 번역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거나 원서를 보는 대학원을 나왔다면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하고 느끼는 부분이 아닐까.

일본이나 서유럽, 이슬람에서는 과거에 국가적으로 주도된 번역작업을 통해 다른 나라의 학문을 배우고 익혀 발전시켰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사회적 인식이나 국가적인 지원이 없다. 번역의 역사를 소개하는 장을 읽으면서 왜 이리 일본의 역사를 칭찬하시나 하는 못마땅한 구석이 있었는데, 다 이유가 있구나.

번역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번역을 하면서 생각해야 할 여러 가지 사항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책이 나오고 5년 정도 지났지만 상황은 그다지 변한 것 같지 않다. 그렇게 힘든 일인데 누가 번역을 하고 싶을까. 하지만 외국어라는 창으로 통해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그 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으니 매력적인 일임은 분명하다.

번역은 반역이 아니다! 낮에뜬별 ㅣ 2010-04-09 ㅣ 공감(2) ㅣ 댓글 (0)
번역하면, 개인적으로 3개 정도의 경험이 생각난다.



아르바이트를 하느라고 한 번은 산림청 관련, 또 한 번은 중국 쪽 관광지 개발에 대한 사업계획서를 번역한 적이 있다.

둘 다 초벌 번역이었기 때문에 조금은 부담이 덜하기는 했는데,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인지라 꽤나 어려워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내 미천한 영어실력 때문인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고.)

또 한 번은 모 출판사에서 출간될 책을 교정을 본 거였는데, 필자가 재중교포인 까닭에 책을 거의 다시 쓰는 정도의 교정을 봤었다.

물론 마지막 것은 번역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도 안되는 문장을 그야말로 '번역'해야만 했기에 생각이 나는 것이다.

(몇몇 문장은 정말 일하다가 폭소를 터뜨렸다. -_-... 지금 생각할 때 참 어이 없는 것은 내가 받아든 원고가 초고가 아니라 책의 형식으로 인쇄된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 출판사의 편집자는 뭐하는 사람일까? --;;)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이 있다. 여러가지 뉘앙스를 가지고 있겠으나, 이 말은 대부분 '원전'을 강조하는 말로 쓰인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역설한다. 번역은 결코 반역이 아니며, 반역이 되어서도 안된다고.



번역이 왕성해야 우리말도 풍부해지고, 우리말이 풍부해져야 세상의 지식이 우리의 지식으로 육화되는 법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정신적, 지적 역량은 향상되고 지식과 정보의 민주화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암울한 수준인 우리 번역문화를 진단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좀 오버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던 게 사실이다.

번역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 대학, 학계의 문제, 사회적 인식의 문제를 자꾸만 건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을 읽어나갈 수록, 그리고 나를 둘러싼 환경을 돌아보게 될 수록 그럴 수 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가의 수입 대리석이나 외제 욕조, 세면기, 홈시어터 따위로 집안에 '돈'을 바르는 일에는 열심이지만, 책으로 집안 장식할 생각을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읽지도 않는 책을 꽂아놓기만 하는 건 위선 아니겠느냐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위선도 그립다'고 한 김교신의 말을 떠올린다. 김교신은 성경에서 위선자의 표본으로 꼽히고 있는 바리새인들이 비록 자신들이 선을 행하지는 못 할지라도 선을 마땅히 행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고, 그 선에서 어그러지는 일을 두렵게 여길 줄은 알았는데 반해, 20세기의 현대인은 '위선을 꺼린 나머지' 공공연하게 불의를 말하고 비례非禮를 행하면 도리어 솔직하고 철저하다는 사회적 칭찬을 받는다고 지적하면서, "오호라, 이제는 위선도 그리운 세대로다"하고 개탄을 금치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행해지고 있는 정부 차원의 번역 지원은 1999년부터 본격 시행되기 시작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동서양명저번역 지원사업'이 전부이다. 2002, 2003, 2004년에는 예산이 15억 원씩 책정되다가 2005년에는 2억이 늘어 17억 원으로 책정되었다. 선저된 과제수는 각각 42건(2002년), 52건(2003년), 52건(2004년)이었다. 2002년부터 3년간 146개 과제가 선정되었으니 해마다 평균 50개 과제 정도가 예산을 지원받는 셈이다. 여기에는 서양 고전 뿐만 아니라 동양 고전까지 포함되어 있다.

4천 5백만 국민을 위한 지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투입되는 정부 1년 예산이 서울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이다.



번역서를 읽다보면, 정말 짜증나는 일이 있다. 분명 한글로 되어 있는데 무슨 소리인지 도통 알 수가 없는 거다.

그 긴 문장에 주어는 없고, 조사는 멋대로 쓰이고, 접속사는 문맥을 부숴버린다.

원문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이럴 경우 거의 100% 번역에 문제가 있는 거다. 요새 읽고 있는 책의 한 문장을 보자.



노엄 촘스키는 공공연한 반란의 동기들 중에서 "우리가 경멸해야 한다고 배우기만 했던 '선한 독일인'의 편을 드는 것"에 대한 거부를 올바르게 지적한다.



한 번만 읽고 이 문장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난 문장력이 떨어져서 이 문장을 한 번, 두 번, 세 번 읽고도 원 저자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노엄 촘스키가 올바르게 지적한 것(사실 이 표현도 어색하기 그지 없다)이 ~에 대한 거부라? 뭐.. 이건 그렇다 치자.

(공공연한 반란... 도 일단 그냥 넘어가자.)

"우리가 경멸해야 한다고 배우기만 했던 '선한 독일인'의 편을 드는 것" 이 문장이 지칭하는 것이 무엇일까?

우리가 경멸해야 한다고 배우기만 한 것 -> '선한 독일인'의 편을 드는 것 인가, 아니면

우리가 경멸해야 한다고 배우기만 했던 '선한 독일인' ->의 편을 드는 것 인가?

(뒤에 이어지는 '에 대한 거부'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카오스다. -_-)

이렇게 되면 노엄 촘스키가 올바르게 지적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원전을 비교하지 않더라도 번역에 문제가 있다는 확신이 드는 것이다.

원문의 문장 구조를 따르는 것도 좋지만, 어차피 '번역'이라면 한글을 읽는 독자들이 무슨 뜻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이건 문학작품의 번역도 아니지 않은가.



번역이 정말 어려운 일인 반면에, 그 노력에 대한 보상이 턱없이 부족한 일인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돈을 주고 책을 산 독자의 입장에서는, 울컥하는 짜증을 가라앉히며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할 의무까진 없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직접 번역을 하고 있는 번역가의 입장에서, 그리고 학계에 몸을 담고 있는 학자의 입장에서,

또 인터넷 서점의 회원등급을 유지하기 위해 리스트에 담긴 책을 구매하는 애서가의 입장에서. (아.. 동료애가 느껴진다. ㅎㅎ)

이 책은 읽기 쉽고 깔끔하게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책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번역에 대한 문제를 종종 느꼈다면. 분명 읽어볼만한 책.




어렵든 힘들든 돈 안되든 하고 싶으면 하는 거다 밤바람 ㅣ 2010-02-11 ㅣ 공감(0) ㅣ 댓글 (0)






내가 <옥스포드 영어사전>을 이용하면서 크게 감명을 받은 것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방대한 어휘와 자세한 예문 때문이었다. 까다로운 고전 영어저작을 읽다보면 내가 갖고 있는 7,8종의 영한 및 영영사전을 다 뒤져도 끝끝내 나오지 않는 단어가 있다. 이럴 때 최종적으로 의지하게 되는 사전이 <옥스포드 영어사전>이다. (...) 이 사전이 나를 실망시킨 적은 거의 없다. 찾는 단어가 영락없이 나와있는 것이다.-61쪽



... 역사의 문학성을 강조한 20세기 영국 역사가 트리벨리언의 말은 음미할 가치가 있다.
'읽기에 쉬운 것이 쓰기에는 어렵다. 설령 저자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처음부터 정확하게 알고 있다 해도, 쓰고 또 쓰고, 고치고 또 고치는 수고는 모든 훌륭한 저술가들이 당연히 치러야 하는 일이다. 투명한 문체는 언제나 고된 노력의 결과이며 문장과 문장, 단락과 단락 사이의 흐르는 듯한 연결은 항상 이마에 땀을 흘린 후에야 얻어지는 것이다.'-120쪽



번역은 한국어 사용권에 존재하지 않는 텍스트를 존재하게 만드는 가치있는 행위이다. 그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다. 좋은 책 한 권을 번역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라고 하는 거대한 동굴에 등불 하나를 밝히는 일과도 같다. 좋은 번역서 한 권이 국회의원 한 명의 4년 임기 의정활동보다 더욱 큰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이 일에 임하도록 해야 한다. -226쪽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다. 능력과 재능있는 자는 언젠가는 인정받을 날이 오고야 만다. 번역가가 그 하는 일의 중요성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엄연한 현실이다. 아니, 번역 그 자체가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고 있다. 그러나 비관할 일만도 아니다. 한국 사회가 멸망하기로 작정을 하지 않은 이상 번역과 번역가에 대한 대우가 현 수준에서 머물 수는 없다. 한국은 망하지 않는다. 끝까지 정도를 걸어라. 합당한 대우를 받는 날이 올 것이다.-228쪽



사실 이런 점은 다양한 시대와 주제를 다루는 역사 개설서를 번역 또는 저술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어려움이라 하겠다. 그러나 분명 실수는 실수이며 변명의 여지는 없다. 실수를 방지하는 길은 전문 연구서를 많이 읽고 두루 살피는 것, 그것 말고는 방도가 없다. 어쩌겠는가, 이 바닥에서는 무식유죄, 유식무죄인 것을!-115쪽



참고문헌 중에서 - <교수와 광인> <잔혹한 책읽기> <소설> <슬픈 외국어> <번역과 일본의 근대> <책과 바람난 여자>
<내 멋대로 출판사 랜덤하우스> <문화의 오역> -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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