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택림(저자) | 역사비평사 | 2003-06-30
양장본 | 327쪽 | 160*219mm | 491g | ISBN : 9788976967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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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안적 역사로서 등장했던 민중사에 대한 반성과 비판으로 시작된 구술사 연구 방식을 도입하여 한국 근현대사를 재구성하려 한 역사서로, 이 연구서의 줄기는 충청남도 예산군 시양리라는 한 '빨갱이 마을' 역사의 재구성이다.
지은이는 시양리 마을사를 재구성하면서 가족사와 여성 구술생사, 이 마을이 속해 있는 예산군의 역사와, 한편으로는 한반도 전체, 한민족 전체가 주체가 되는 국가전체사까지 다룬다. 구성상 세 부분으로 나뉜 책의 1부에선 대안적 역사쓰기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며, 2부에선 시양리에서의 현지조사 자료를 통해 대안적 근현대사 쓰기를 시도했다. 3부는 1996년도의 재조사와 현지조사에 대한 자기성찰적 글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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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비주류의 역사적 임무를 맡으며
제1부 대안적 한국 근현대사의 모색
제1장 문제 제기 - 나, 한국인의 역사적 정체성을 찾아서
나, '우리'의 역사적 정체성
대안적 근현대사의 모색
한국전쟁과 지방민의 역사적 경험과 해석
역사인류학적 접근: 문화기술지적 역사
각 장의 내용
시양리 소개
제2장 대안적 역사쓰기의 이론적 배경: 역사인류학적 접근
인류학과 역사학의 상호접근
문화, 역사 그리고 권력
기억의 정치학
대항담론으로서 구술사
대항서술로서 생애사
제3장 역사적 담론들의 경함의 장으로서 한국 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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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윤택림
소개 : 연세대학교 사학과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인류학 석사, 박사 취득
2017년 현재 한국구술사연구소 소장
주요저서:
<문화와 역사연구를 위한 질적연구 방법론>, <인류학자의 과거여행>, <한국의 모성>, <주민생애사를 통해 본 20세기 서울 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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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 3편
현미경을 들이대면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낮에뜬별 ㅣ 2010-03-04 ㅣ 공감(2) ㅣ 댓글 (0)
정말 오랜만에 읽는 인류학 분야의 책. 부제는 '한 빨갱이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다.
어떠한가? 제목이 자극적인가? 그렇다. '빨갱이'는 아직까지도 우리사회에서 특별한 힘을 가진다.
이 책은 사학과를 졸업한 저자가 사학분야에서의 미비함을 느끼고 인류학으로 전공을 바꾸면서 진행한 박사 논문을 발전시켜서 낸 책이다.
연구 대상이 된 곳은 충청남도 예산의 한 부락을 대상으로 했다.
(이 책에서는 시양리라고 하는데, 신분보호상 지명과 인명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고 있다.) 저자는 1989년과 1996년 두번의 현지조사를 실시했다.
물론 딸랑 가서 구경만 하고 온 것이 아니라 그곳에 거주를 하면서 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비록 인류학 분야의 책이라고는 하지만 나에게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과연 6.25나 기타등등의 '국가적', '역사적' 사건들은 누구의 기억이었던가?
전국민들이 교과서에 적힌대로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가?
이제는 그러한 질문에 부정적인 대답을 하고 조금더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볼 때가 아닌가 한다.
같은 사건이라 할지라도 남녀간의 경험차, 기억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6.25의 모습도 어찌보면 매우 국지적인 모습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한가지 예를 들면 이 책의 연구대상 지역인 시양리에서는 6.25때 벌어진 대립과 살상이 비단 사상의 차이에서 일어난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즉, 시양리에서의 6.25는 계급이 갈등의 주요변수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그곳에서의 '이데올로기는 마을사람들 간의 개인적 싸움, 가족간의 불화, 정치적 경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수사적 상징적 장치'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으로만 간단하게 파악하고 있다. 이 복잡한 사건을... 왜?
그렇게 단순한 분리 구조는 '숙청'이 용이하며 전후의 대중 통제에도 확실한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계속적으로 드러나지만 연구가 진행되었던 1989년에도 여전히 '빨갱이'는 금지된 언어였으며 시양리 사람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타인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했다.
아직까지도 '꼴통보수'와 '빨갱이'의 이분법이 유효한 것을 보면, 이것을 과거의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없을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라. 사상적으로 좌파라고 혹은 우파라고 자칭하는 인간들이 모든 생활에서 그러한 모습을 보이는지.
인간은 그리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그러나 단순해져야 통제하기 쉬워진다.
모든 역사에서, 그러했지만 가장 쉬워보이는 길이 모두가 파멸로 이르는 지름길이다.
비록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참고 서적과 미주를 제외하면 300페이지가 좀 안된다.)
적은 분량의 책이지만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고, 많은 생각 거리를 던져주었다.
물론 현지조사의 분량이 연구조사의 당위성이나 이론적 배경 설명에 비해 너무 적은감은 있으나 아직까지 이론적 배경이나 당위성을 제껴놓고 시작할만큼 이런 쪽의 연구가 활발한 것도 아니니...
간만에 참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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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락된 역사를 쓴다는 것 stonewriter ㅣ 2008-11-09 ㅣ 공감(2) ㅣ 댓글 (0)
언젠가 제주도의 해변 마을 한 가정에 잠시 머문 적이 있었다. 일상적인 소통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지만 그들과 나 사이에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깊은 거리감이 있었다. 이방인이었던 나에게는 그들로부터 침묵으로 가득한 심연 같은 것이 느껴졌었다. 사람들로부터 집단적으로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나중에 제주도의 한 시민 단체 활동가에게 이런 느낌을 털어놓았더니 그는 ‘4.3’이라는 소통되지 않은 집단적 경험, 그것을 둘러싼 견고한 침묵의 카르텔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4.3의 경험은 사건과 사실로 설명되는 역사이지만, 그것이 일어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과 이후 세대를 포함하여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사건의 경험, 말하여진 경험인 동시에 말하여지지 않은 경험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 권력에 의해 강요된 침묵이자 생존을 위해서 스스로 선택한 침묵이었을 것이다.
잃어버린 역사, 삭제된 역사, 누락된 역사, 말이나 글로 표현되지 않은 삶의 체험들(lived experience)를 언어화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굳게 닫혀있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은 긴장과 호기심, 막연한 두려움을 동반하는 행위가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상자를 열 것인가 말 것인가, 살짝 열린 뚜껑 사이로 보이기 시작한 내용물들을 무엇이라고 명명하고 해석할 것인가를 둘러싼 치열한 각축의 장을 열어젖히는 행위가 될 것이다. 나 역시 ‘빨갱이’와 관련된 침묵의 가족사를 가지고 있기에, 그리고 누락된 역사(missing history)에 관심이 있기에, 저자가 ‘빨갱이 마을로의 과거여행’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자못 궁금했다. 또한 저자가 누락된 역사를 ‘복원’하는 방식, 그 과정에서 연구자로서 겪었던 복잡한 체험들이 유의미하게 다가왔다.
이 책은 기존의 민중사 연구의 지평을 비판적으로 확장하면서 충남 예산군의 한 ‘빨갱이 마을’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대안적 근현대사를 모색한다. 1부와 2부 초반에 전개되는 이론적인 논의들은 다소 지루한 감이 있지만, 구술 자료의 텍스트화가 전개되는 중반부 이후는 생생한 현장감을 준다. 이 책과 마찬가지로 구술사, 생애사, 가족사를 연구한 낸시 에이블만의 글을 읽을 때 저자가 글의 상당한 분량을 지루하다 싶을 만큼 이론적 논의에 할당하고 있는 점에 대해 다소 의구심이 들었는데, 그것은 이 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름대로 두 사람 모두 주류 지식 체계에서 주변적이고 폄하되었던 방법론과 인식론, 즉 구술사, 생애사, 가족사를 통해 한국근현대사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해 보았다.
저자는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페미니즘의 수사를 차용하여 “개인적인 것은 역사적인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 개인의 구체적인 삶의 경험, 가족과 생애사라는 사적이고 사소하고 비정치적이고 비학문적인 영역으로 간주되었던 영역을 들여다봄으로써 한국의 근현대사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이 연구가 진행되었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연구자에게 도전과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3부는 연구자가 현지 조사 과정을 포함한 연구 전반에 겪었던 연구자 자신의 경험을 성찰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저자는 2가지 서로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나는 ‘빨갱이 마을로의 과거 여행’을 통해 저자가 재구성한 한국의 근현대사, 다른 하나는 연구자 자신의 연구 경험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이 재구성한 지식은 두 가지 차원의 서사가 맞물려서 만들어내는 효과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지식체계에서 역사로 인식되지 않았던 사건이나 경험을 담론의 장으로 포함시키는 것, 아마도 그것은 비판적 학자들이 담당하게 되는 주된 노동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침묵된 역사, 누락된 역사 ‘복원’ 프로젝트는 연구자와 연구 참여자가 놓인 현재성, 입장들 간의 복합적 대화적 관계망 속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다층적인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문화기술지적 역사에서 시양리 마을 사람들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그대로 복원되어 마을 사람들의 역사 해석이 전달될 것이다....그럼으로써 이 문화기술지적 역사는 해석적 접근과 정치경제적 접근을 결합함으로써 남한 사회의 특수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시양리의 근현대사를 복원하는 것이다. (p24)
저자에 따르면 한국의 근현대사는 두 가지 진리체제, 즉 반공이데올로기를 통한 국가의 공식적 담론과 민중사로 대변되는 대항담론 간의 끊임없는 경합 속에 있었다. 저자는 민중사의 입장을 기본적으로 공유하면서도, 이 두 가지 진리체제 모두 ‘실제적인 지방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동일하게 획일적인 담론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비록 지방민의 목소리를 누락시키고 있는 두 가지 담론 구조 모두를 비판하고 있지만 저자가 민중의 역사를 ‘복원’과 ‘대변’하고자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민중사의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 이 책은 6.25를 중심으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재조명하고 있는데, 특히 이때 자주 등장하는 ‘복원’과 ‘대변’이라는 단어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용어의 사용은 저자가 분명히 ‘밑으로부터의 역사’를 수행하는 민중사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복원’ 가능한 ‘실체로서의 진실’과 ‘대변’ 가능한 ‘주체’를 가정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이후 민중사 연구에 대해 “민중사가 진정 민중의 입장을 대변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18p)고 비판하고 있는 점, 연구자가 지방민의 시각을 대변할 수 있다고 본 점이 그것이다.
첫 부분에서 저자가 ‘복원’, ‘대변’이라는 단어를 문제화하지 않으면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지만, 책을 덮고 나서 그것 자체가 ‘기억과 재현’, 그리고 역사 쓰기에 대한 저자의 입장과 시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과연 연구자가 연구 참여자의 경험을 대변할 수 있을 것인가? 연구자가 대변((re)present)하고 복원할 수 있는 실체(present)가 있는 것인가? 저자는 이론적 논의에서는 ‘대변’과 ‘복원’의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지만, 구술사를 텍스트화하고 있는 후반부에서는 지식의 정황성(situatedness)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식의 정황성, 그리고 ‘복원’ 혹은 ‘대변’이라는 두 가지 모순적 입장을 저자가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이었다.
현지 조사에 대한 연구자의 성찰적 글이 담긴 3부는 현재 진행 중인 나의 연구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생각해 볼 거리들을 던져주었다. 1989년과 1996년의 사회경제적, 정치적 상황 속에서 기억과 역사가 어떠한 관련성을 맺으며 상호주관적으로 구성되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부분, 연구 현장 진입의 어려움과 연구자가 연구가 진행되는 내내 참여자들로부터 의심과 경계의 대상이 되었던 상황을 설명하는 부분 등 저자가 현장 연구의 어려움을 기술하는 부분에서 ‘누락된 역사 쓰기’는 오랫동안 견고한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던 다층적 힘들과의 불가피한 경합 과정을 포함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역시 ‘잃어버린 혹은 누락된 역사’, ‘쓰여지지 않은 역사’ 쓰기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부분은 연구자가 구술 생애사에서 ‘침묵되고 생략되는 부분’을 포착하는 지점인 듯하다. (p241)
이 책의 미덕은 저자가 애써 복잡하게 설득하려고 하고 있는 자신의 이론적 입장이 아니라, 저자가 시도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이 가능케 하고 있는 역사에 대한 사유의 확장 능력이 아닐까 싶다. 누락된 역사가 누락될 수밖에 없었던 정황들이 가시화되면서 현재성을 해석하고 구성하는 담론의 새롭게 구성되는 건 헤게모니적 담론 경합의 장에서 주변적이고 하찮은 것으로 폄하되었던 생애사, 구술사, 가족사를 통한 역사의 재구성 과정에서 가능했다. 특히 누락된 역사에 관한 연구에서는 연구 참여자의 구술을 듣고 쓰는 과정에서 말하여진 것과 말하여지지 않은 것의 간극을 포착하는 감각이 특히 요구되는 듯하다. 연구자가 누구이냐에 따라 침묵은 쉽게 열리기도 하고 유지되거나 더 강화된다.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 한 ‘군위안부 할머니’가 자신이 수년 동안 만나왔던 비혼의 젊은 여성 연구자에게는 별로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성적인 경험들을 처음 만난 동년배의 연구자에게 말하더라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질적 연구 방법은 중심과 주변, 현재와 과거, 연구자와 연구참여자, 연구자들 간의 끊임없는 소통을 필요로 하는 작업인 것 같다.
인간을 바라보고 탐구하는 인류학자의 멋, heyday ㅣ 2003-10-03 ㅣ 공감(3) ㅣ 댓글 (0)
우선 이 책을 다 읽은건 엄밀히 아니다. 총 3부, 10장의 책 중에 내가 읽은 챕터는 반정도이고 나머지는 띄엄띄엄 또는 아예 건너뛰며 읽었기에 말이다. 무엇보다도 쉽지않은 책이였다. 흥미는 있었으나 사전지식이 없던 나에게는 전문적 내용은 부담이기도. 하지만 친밀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 사고가 조금 넓어진 기분이다.
나는 대학생활을 하며 학생들의 소위'운동권'을 보아왔고 간혹 참여도 해보았다. 물론 지배적 계층들을 위해, 그들에 의해 쓰여진 우리나라의 역사, 현실 개탄할만하다. 우리나라 국사 교과서를 보자. 우리와 가장 밀접한, 해방후 근대사중에 독재정권의 폐해가 얼마나 나와있는가. 현재 사회가 과연 얼마나 민중들의 입장을 대변해주고 있는가.
그런데 말이다, 대학생들의 시위,데모로 대표되는 그것에도 불만이 있던거다. 그들은-물론 나도 포함되었겠지- 통일을 부르짖고 반미를 외치며 총선때는 반이회창을 외치었다.(학생운동에는 다양한 성격이 있겠지만 이러한 것들이 주체가 되었다.) 순수한 그들 자의식의 발로이다. 좋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민중들의 삶속에는 그게 어떻게 다가오는가.
'대학생 자식들 또 데모하는구만.' 이런 반응이 많다. 왜 민중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학생운동이 그렇게 괴리되어있는가. 답은 이 책의 3장에 나와있다.
문제는 두 진리체제-국가의 공식적 담론과 민중사로 대변되는 대항담론-가 그 안에 다수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하게 획일적 담론구조를 가지고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진리체제가 낳은 담론적 획일화 속에서 실제적인 지방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두 진리체제 사이의 담론적 경합 속에서 지방민의 사적인 기억을 위한 장소는 어디 있는가. 공장노동자와 농민들의 사적인 삶의 경험은 얼마나 그들 속에 반영되어있는가... 그것은 누구의 역사인가. 대항담론은 성이라는 요인을 포함하는가. 가부장제와 권위주의적 국가의 이중 억압하에 있는 한국여성은 누가 대변하는가. 이것이 민중이데올로기에 기초한 대항담론을 대변하는 민중사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요구하는 질문들이다
그동안의 내 궁금증을 어느정도 풀어주는 구문. 한민족도 좋고 평화를 위한 반미도 좋지만 이데올로기 안에서 인간이 이리저리 치이는 모습은 싫다. 인간이 아닌 이데올로기가 주가되는 주객전도 현상처럼 무서운게 어디있는가. 이데올로기가 부수적인 방법이나 수단이 아닌 목적 자체가되어버린게 전쟁과 같은, 우리 인간 역사의 추한 모습이다
학생운동도 마찬가지이다. 거창한 대의명분을 내세우기에 앞서 과연 자신들역시 획일적인 구조속에서 민중중의 일부분만을 대변하고 있지않은가 반성해야 하지않을까? 저자가 이 책을 쓴것도 지방민, 여성과 같은 주변인속의 역사를 찾아내기 위해서일것이다. 전에 말했듯이 그게 대표적 역사가 될수 있느냐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다리가 되기 위해서일것이다.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저자가 쓴 도구는 구술사, 생애사라는 새로운 개념이었고 결과는 만족스럽다.
인류학자는 -적어도 윤택림같은 분은- 이데올로기에 휩쓸려버리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것이다. 그들속에서, 그들연구의 주체는 인간일테니 말이다. :) 새로운, 만족스러운 책이였다. 학문의 맛을, 그러니까 소위 '어려운책'의 묘미를 처음 느껴본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나중에 기회가 있을때, 다시 한번 읽고싶어질때는 제대로 읽지않은 나머지 반 정도도 마저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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